⊙ 회식비 9만8900원 쓴 것 등을 업무상 횡령으로 몰아 3년간 재판… 정권 말 무죄 선고
⊙ “북한 열차 미사일 관련 첩보 들어왔는데 死藏돼”
⊙ 당시 정보사령관, “여론 휩쓸려 두 대령 有罪로 몰아선 안 된다” 발언
⊙ 전·현직 정보사 관계자들 “文 정부 때 초토화된 對北 공작망… 再建에 10년 이상 소요”
⊙ ‘국정원 개입설’ 있지만 국정원은 부인
⊙ “북한 열차 미사일 관련 첩보 들어왔는데 死藏돼”
⊙ 당시 정보사령관, “여론 휩쓸려 두 대령 有罪로 몰아선 안 된다” 발언
⊙ 전·현직 정보사 관계자들 “文 정부 때 초토화된 對北 공작망… 再建에 10년 이상 소요”
⊙ ‘국정원 개입설’ 있지만 국정원은 부인
문재인 정권 당시 군(軍)검찰이 현직 국군정보사령부(정보사) 대령들을 대상으로 무리한 수사를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20년 이상 대북(對北) 공작 활동을 한 이들은 지난 2016년 류경식당 종업원 집단 탈북 등을 주도해 당시 내부에서 발군(拔群)의 공작관이라는 평가를 받던 인물들이다. 전·현직 정보사 관계자들은 “사실상 휴민트(Humint·인간정보)망(網)의 핵심에 있는 두 현직 대령을 지난 정부에서 3년간 재판장에 세워 수족(手足)을 묶었다”면서 “이에 따라 정보사 내 핵심 휴민트망이 모두 붕괴된 상태”라고 했다. 공교롭게도 이들이 수사와 재판을 받는 중 탈북어민 북송 사건과 서해 공무원 이대준씨 피격 사건이 발생했다. 정보사 소식통들은 “대북 정보망이 마비된 상태에서 벌어진 사건들이라 진상조사가 어려운 것”이라면서 표적수사 의혹도 제기했다.
핵심 휴민트 몰려 있는 부대 초토화
대한민국의 모든 군은 전쟁 대비 상태다. 그런데 평시(平時)에도 전쟁을 하는 부대가 있다. 정보사 내 대북 공작 담당부대다. 정확한 수치는 대외비(對外秘)로, 대북 공작을 하며 첩보·정보전(戰)을 벌이는 인원은 소수로 알려져 있다. 정보사 소식통들에 따르면 이 중에서도 ‘○○○ 부대’에 핵심 휴민트가 몰려 있는데 재판을 받은 두 대령은 모두 이곳 소속이다. 한 정보사 관계자는 “부대 내 모든 사항이 극비인 만큼 세간에서는 내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길이 없었을 것”이라면서 “문재인 정권하에 이 조직이 초토화되다시피 했다”고 했다.
지난 2019년 7월 군검찰 수사를 시작으로 2020년 1월 기소된 이들은 2022년 1월 모두 무죄판결을 받았다. 1심 무죄였는데, 군검사는 항소를 포기했다. 문 정권 말기였다. 군검사 출신인 법무법인 담솔 홍승민 변호사는 “1심 무죄 후 항소 포기는 검사 스스로 ‘무리한 기소’임을 인정하는 격”이라면서 “애초 이 정도 사안으로는 압수수색을 나가지도 않는다. 더군다나 재판정에 세웠다는 건 미증유(未曾有)의 사건으로 유사한 전례조차 없다”고 했다.
수사 시작부터 무죄판결에 이르기까지 햇수로 4년간 이 둘은 공작 업무에서 사실상 배제됐다. 그사이 탈북어민 북송 사건(2019년 11월 7일)과 서해 공무원 이대준씨 피격 사건(2020년 9월 22일)이 발생했다.
이들 대령과 지난 20년간 함께 공작 활동을 한 현직 첩보원(에이전트)은 “수십 년 첩보 활동을 하며 이런 황당한 이유로 공작관을 재판장에 세우는 일은 처음 봤다”고 했다. 한 정보사 소식통은 “(검찰 수사 전) 내부 감찰 단계에서 당사자 조사도 없이 검찰로 넘어간 뒤 기소돼 내부에서도 말이 많았던 사건”이라고 했다. 홍승민 변호사는 “감찰 단계에서 당사자에게 소명 기회를 주는 것은 기본”이라고 했다.
‘피해자 대한민국’
《월간조선》이 입수한 국방부 보통군사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A대령에게는 총 11가지, B대령에게는 6가지 혐의가 씌었다. A대령의 죄목은 업무상배임교사, 허위공문서작성교사, 허위작성공문서행사교사, 업무상횡령, 업무상배임, 사기, 허위공문서작성, 허위작성공문서행사,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허위보고교사, 허위보고다. B대령은 업무상횡령, 업무상배임, 허위공문서작성, 허위작성공문서행사, 허위보고다.
판결문에는 이들의 공작 내용과 정보망 등이 구체적으로 적시돼 있다. 보안 사항 유출 우려로 공소요지를 구체적으로 기재하기는 어렵지만, 요약하자면 이렇다. ‘업무상배임’의 경우다. 군검찰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A·B대령을 기소했다. 이 사건 피해자는 ‘대한민국’이다.
“피고인들은 2017년 11월 23일 서울 동대문구 소재 ○○○ 동태찜 식당에서 이미 필요한 사업(판결문 각주(脚注)에 따르면 ‘공작’을 의미) 활동을 완료하였음에도, 같은 날 서울 소재 ○○ 술집에서 추가적인 사업 활동이 필요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불필요한 술자리를 추가적으로 가지고 그로 인해 발생한 주대 9만8900원을 피해자 대한민국의 사업 활동 예산을 사용하여 결제하기로 모의하였다. (중략) 피고인들은 공모하여 피고인 본인들에게 9만8900원에 해당하는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게 하고, 피해자(대한민국)에게 같은 액수에 해당하는 재산상 손해를 가하였다.”
재판부는 이에 “(공작원들의) 활동은 정형화돼 있지 않고, 신변에 대한 위험성이 내재돼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친분관계를 넘어선 깊은 신뢰 관계 구축이 필요하다”면서 “B대령이 ○○○ 동태찜 식당에서 이미 필요한 사업 활동이 완료됐다고 단정할 수 없으며, 배임의 의사를 추단할 수 있을 만큼 과도한 액수로 보이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공작 업무 관계된 인물들 무차별적 조사”
이 밖에도 모든 죄목이 비슷한 수준의 내용이다. ‘사기’의 경우 “A대령의 사업 활동 대상자(모씨)가 현재 사업이 어려워 활동을 하지 못할 정도이니 100만원 정도 지원해달라”고 사업 활동의 담당 사업관에게 부탁했는데, 이 돈이 결국 모씨 명의의 계좌가 아닌 다른 계좌로 들어간 정황으로 인해 기소됐다. 조사 결과 이 계좌는 한 음식점 주인 소유였고, 모씨가 공작 활동을 하며 지불한 식대를 음식점 주인 계좌로 직접 부친 것이었다.
재판부는 “공작원은 사업대상자에 대해 조종통제권을 확보하기 위해 이처럼 대상자의 채무를 변제하는 방법으로 지급하는 방식도 가능하다”고 봤다. ‘허위공문서작성’ 등은 요컨대 “2명이 식사한 것을 3명으로 적어냈다”는 이유였다. 재판부는 대부분의 죄목에 공통적으로 “증거에 의하여 입증되어야 할 것이나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모두 뚜렷한 증거 없이 기소했다는 얘기다. 확인 결과 해당 군검사는 기소 이후 전역한 상태였다.
무죄를 받았지만 이미 피해는 막심했다. 우선 이 둘의 재판 진행 동안 공작부대 내부 분위기가 얼어붙다시피 했다. A·B대령과 10년 이상 공작 업무를 했던 모(某) 중령은 “이번 재판으로 목숨 걸고 공작 활동을 해야 하는 후배들의 업무 또한 상당히 위축됐다”면서 “괜히 트집을 잡혀 재판까지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의 말이다.
“더 큰 문제는 수사 과정에서 참고인 명목으로 공작 업무와 관계된 인물들을 무차별적으로 조사했다는 점이다. 그 바람에 전·평시 적에게 상당한 전략적 피해를 끼칠 수 있는 필수 핵심 군사전력인 주요 대북공작망이 모두 무력화(無力化)됐다.”
망가진 휴민트 재건에 10년 이상 걸릴 수도
공작원들은 북한 접경지의 사업가들과도 긴밀히 공조한다. 제3국(북한 접경지)에서 A대령의 정보원 활동을 한 사업가 D씨를 만나 공작망 무력화 과정을 들어봤다.
D씨의 사무실은 한국에, 사업장은 북한 접경 지역에 있다. 그의 제3국 사업장에서는 다수의 북한 노동자들이 일했고, A대령은 이곳을 주요 공작 거점 중 하나로 삼았다고 한다. D씨가 제3국에서 사업권을 따내고, 현지인을 비롯해 다수의 북한노동자들을 고용하기까지 걸린 시간과 비용 모두 A대령의 공작 활동에 포함되는 셈이다. 망가진 휴민트 재건(再建)에 10년 이상이 걸릴 수도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D씨는 “나 같은 에이전트(첩보원)의 신분은 어떤 일이 있어도 노출돼서는 안 된다”면서 “특히 출장 중에는 보안상 한국과는 절대 통신 연락을 하지 않는데, 이번 사건으로 내 신원과 사업내용이 수사기관에 모두 넘어갔고, 그 직후 사업 종결에 이르렀다”고 했다.
“2019년 11월 출장을 나가 있는데, 한국 사무실에 검찰이 압수수색을 나왔다는 연락을 받았다. 사무실뿐 아니라 자택, 경리 직원의 오피스텔까지 탈탈 털어갔다. 그중에는 영장에 명시된 호실이 아닌 곳도 포함돼 있었다. 경리 직원에 따르면 검찰은 ‘너네 회사 대표가 A대령에게 돈을 받은 적이 있느냐’고도 추궁했다고 한다. A대령에게 출장비 명목으로 받은 돈보다 정보 수집을 위해 내가 쓴 사비(私費)가 더 많다. 압수수색 이후 제3국 현지 발주처로부터 갑작스럽게 ‘계약 강제 종료’ 통보를 받았고, 막대한 비용을 들여 장비들을 철수해야 했다.”
그는 “아무 문제없이 잘 진행했던 사업인데, 우리 업체만 콕 집어 종료시켰음에도 발주처는 납득할 만한 이유를 대지 않았다”면서 “단순 사업 손해액은 100억원 이상이고, 국익 손실분까지 더하면 추산 불가”라고 했다.
정보사 공작 장교 출신 한 인사는 “정보요원들이 가장 경계하는 것이 통신인데, 수사를 한다는 명목으로 비밀공작 중인 첩보원에게 마구잡이식 전화 연결을 한 것부터 심각한 문제”라고 했다.
“북한 열차 미사일 관련 사업망 종료”
귀국 후 참고인 조사도 몇 차례 받았다는 D씨는 “빗대자면, 3명이서 커피를 마시다가 1명이 자리를 뜬 후 2명이 남은 상태에서 커피 한 잔을 더 시켜 먹었다는 이유로 ‘횡령’을 언급하기도 했다”면서 “이런 미미한 사안을 무려 3년간 소명하는 과정에서 두 대령의 중차대한 공작기밀이 사법기관으로 모두 유출됐다”고 했다.
지난해 전역한 모 중령은 “A대령이 진행하던 북한 황해남도 해주(海州)와 함경북도 청진(淸津) 지역의 사업들도 2019년 무렵 (D씨의 경우처럼) 모두 종결됐다”면서 “해주망이 살아 있었다면 서해 피격 공무원 사건을, 청진망이 있었다면 청진 출신 탈북 어민들의 북송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는 데 이렇게 난항을 겪진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일부 SI(Special Intelligence·특별취급정보)가 남아 있다지만 휴민트망이 있었다면 좀 더 빠른 진상 조사가 가능했다는 뜻이다. A대령은 또한 과거 북한 길주군 풍계리 지역(핵실험기지)과 미사일 기지에 실시간 동향 파악이 가능한 통신장비를 심어 실시간 감시하던 인물이라고 한다. 이 중령은 이어 “사업 종료 전인 2019년 무렵 정보사에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북한 열차 미사일 관련 첩보가 들어왔는데 사장(死藏)된 일도 있었다”면서 “구체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북한 열차 미사일 관련 사업망 또한 그해 종료됐다”고 했다. 2019년 무렵 끊긴 휴민트와 관련된 사건이 모두 지금에서야 공론화된 셈이다.
“정권 교체 이후 역적으로 몰려”
정보사 일각에서는 이들의 무리한 수사 배경에 ‘육사 출신’이라는 배경이 한몫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문재인 정부는 국방개혁의 일환으로 ‘육사 독식’ 구조 탈피를 위해 비육사 출신을 중용해왔다. 정보사 한 소식통은 “당시 여단장과 부대장 포함 비(非)육사 출신이 득세하는 분위기였다”면서 “자연히 정권 방향에 협조적일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정보사 내부에서 표적 수사 의혹을 제기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이들이 지난 2016년 류경식당 종업원 집단 탈북을 주도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육사 선·후배 관계인 A·B대령은 지난 2016년 4월 중국 저장(浙江)성 닝보(寧波)에 있는 북한 류경식당 종업원 12명의 집단 탈북을 추진한 인물이다. 좀 더 정확히는, 후배인 B대령이 주도하고 A대령은 지원 역할을 했다. 이번 판결문 또한 “피고인은 과거 탈북민 집단 귀화를 성사시킨 사례가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당시 사정에 밝은 정보당국 관계자는 “류경식당 집단 탈북을 물꼬로 이후 6개월간 북한 엘리트층의 탈북 행렬이 이어졌다”면서 “박근혜 정부는 류경식당 사건을 계기로 흡수통일이 가능하다고 봤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이 구상의 핵심에 두 대령이 있었고, 둘은 누구보다 통일에 진심이었다”면서 “국정원의 개입은 사후(事後)에 일어난 일”이라고 했다.
문재인 정부도 류경식당 종업원들에 대해 “자유의사에 따라 탈북했다”고 했다. 그러나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등에서 ‘기획탈북’ 의혹을 제기했고 인권위는 탈출 2년 3개월이 지난 2018년 7월 직권 조사를 결정했다. 또 다른 정보사 소식통은 “B대령은 당초 류경식당 관계자의 ‘집단 탈북을 원하는데, 도와줬으면 한다’는 육성 등 당시 진실이 담긴 증거물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면서 “인권위에서 ‘강제성이 없었다’는 결론을 낸 이유”라고 했다.
그간 정보사는 물론 군에서 직접 집단 탈북에 관여했다고 인정한 적은 없었다. 정보사 소식통은 “회유나 협박 등 강제성이 있었다면 군사도발의 빌미가 됐겠지만, 지극히 인도주의적 탈북 지원이었다. 류경식당 집단 탈북은 정보사 내부에서도 ‘우수한 공작 사례’로 꼽힌다”면서 “박근혜 정부 때 훈장 수여 예정이었던 B대령은 정권 교체 이후 역적으로 몰렸다”고 말했다.
복수의 전·현직 정보사 관계자들은 “군검찰 조사의 가장 큰 문제는 기소된 사안과 관계가 없는 다른 대북공작망까지 요구했다는 점”이라면서 “이에 따라 고도의 보안이 생명인 대북 공작 내용이 고스란히 조직 외부로 유출됐다”고 했다.
두 대령, 암에 걸려 수술받아
실제로 이들은 류경식당 종업원 탈북 이후 ‘제2의 집단 탈북’도 구상했는데, 이와 관련한 내용까지 수사기관에 노출된 상태다. B대령은 재판을 받으며 제2의 집단 탈북 구상을 위해 만났던 인물을 ‘왜 만났는지’까지 일일이 해명해야 했다. 판결문 내용 중 일부다.
〈피고인은 의견서에 “저는 2016년 4월 중국 닝보에서 북한 식당 종업원을 탈북시켰으며, 이로 인해 북한 정권을 붕괴시키기 위한 사업을 추진한 바 있습니다. ○○○(B대령이 비용지출을 한 대상)을 만난 것은 그와 관계된 인물 중 북한 인력 ○○명(수백 명, 구체적 인원수는 보안상 비식별 처리)을 관리하는 인원이 있어 제2의 집단 탈북을 추진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 가능하다면 추진할 의도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접촉을 추진한 것입니다”라고 기술했다.〉
재판 기록에 남은 A대령의 말이다.
“전시(戰時)든 평시든 군 전력에 피해를 주게 되면 ‘이적행위’로 엄한 처벌을 받게 되어 있다. 이런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적절한 시기에 관련자들에 대해서 반드시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다. 공작망은 단시간 내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평시에 활용할 수 있는 유일한 전력(戰力)이다. 공소장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대한민국이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정보사령부 ○○○부대의 휴민트 전력 전체가 와해·무력화됐기 때문이다. 무기체계를 예로 들면 미사일 사령부에 있는 전략미사일을 외부로 반출하여 전부 고철 처리한 것이다.”
정보사 소식통은 “문재인 정권 동안 받은 재판으로 A대령은 갑상선암, B대령은 피부암을 얻어 수술을 받았다”면서 “‘한 명의 공작관이 1개 군단을 움직인다’는 말이 있다. 두 대령이 지난 20년간 쌓아온 휴민트망의 재건에는 10년 이상이 걸릴 수도 있다”고 했다.
국정원 개입 의혹
정보사 일각에서는 이 수사에 국정원이 개입했다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해당 수사 과정을 잘 안다는 정보사 관계자는 “당초 이 사건은 2019년 4월 국정원 감사 때 비용 관련 문제제기가 되면서 시작됐다”면서 “이후 내부적으로 ‘문제없음’으로 넘어간 사안인데 갑자기 3개월 뒤 같은 건에 대해 군검찰의 압수수색이 시작됐다”고 했다.
본지는 앞서 정보사 대북 공작관 출신인 정규필 전 대령의 간첩 조작 사건을 보도했다. 서훈·박지원 원장 시절 국정원이 정 전 대령을 간첩으로 몰았고,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결정이 나오자 별건 기소를 위해 검찰에 ‘기소 청탁’을 한 정황이 있다는 내용이다. 이 보도는 지난 9월 20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도 거론됐다. 한덕수 총리는 정 전 대령 사건과 관련 “필요할 경우 감사를 진행할 수 있다”며 “결국은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했다.
수사 주체는 다르지만, 두 현직 대령도 정 전 대령과 마찬가지로 2019년 중순 무렵부터 수사를 받기 시작했다. 정보사 소식통은 “실제로 국정원의 관여가 있었다는 정황상 근거도 있다”면서 “그중 하나가 검찰 수사 시작 이후인 2019년 말 당시 지휘관이었던 C정보사령관이 A대령을 두 차례 불러 ‘나를 원망 마라. 국정원 지시라 어쩔 수 없다’는 취지의 말을 한 것”이라고 전했다.
이와 관련 C 전 사령관은 “국정원 지시 같은 것은 일절 없었다. 정보사령부는 국정원의 지시를 받아 임무를 수행하는 곳이 아니다”고 강조하면서 “당시 여단장이 수사의뢰를 건의하는 문서를 들고 왔고 이후 법무장교의 의견을 받아보니 ‘사안이 중대하니 수사의뢰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해 서명을 한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이어 “A대령은 물론 그 누구와도 본 건 수사와 관련해 단 한 차례도 언급한 일이 없다. 지휘 계통을 통해 보고받고 결정한 사항을 국정원 지시에 의한 것이라는 것은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된다”면서 “개인 비리 차원의 일에 국정원이 개입할 이유도 없으며, 국정원에서는 이 사건을 알 이유도, 알 필요도 없는 일”이라고 했다.
당시 사령관 “죄 없는 대령들 몰아가는 분위기”
군검사 출신인 홍승민 변호사는 “이 정도 수준의 일을 만에 하나 ‘비위행위’라고 정의한다고 하더라도, 공작 업무의 특성상 지휘관은 작전 사항 유출 방지를 위해 내부 감찰 단계에서 징계 처리를 밟도록 했어야 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에 C 전 사령관은 “금전적인 문제인 만큼 내부 감찰 후 징계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검찰 조사가 필요한 중대한 사안이라고 판단했다”면서 “군 재직 당시 한 번도 법과 규정에 벗어난 일을 한 일이 없다”고 말했다.
이들이 수사와 송사를 겪는 동안 재직한 정보사령관은 두 명이다. C 전 사령관은 두 대령이 기소될 무렵 전역했다. 이후 재판 시작부터 무죄판결을 받을 동안은 E 사령관이 재직했다. E 전 사령관에게도 당시 사정을 물어봤다. E 전 사령관은 “지휘관으로서 특정 여론이나 분위기에 휩쓸려 이들(A·B대령)을 죄가 있는 것처럼 몰아가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했다. ‘여론’과 ‘분위기’의 의미를 묻자 그는 “그 외 추가적인 답변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
한편 ‘이 사건에 국정원이 개입한 사실이 있느냐’는 질문에 국정원 측은 “사법기관의 법적 사실에 따라 진행한 것으로 국정원이 개입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고 했다. 정보사 공작장교 출신 한 인사는 “설령 국정원의 수사 개입이 없었더라도 대북 휴민트망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역할은 해줬어야 했는데 서훈·박지원 원장 시절 국정원은 이 기능을 하지 않았다”며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국정원 측은 “업무와 무관한 개인 비리 문제에 관한 내용으로 국정원이 관여할 사안이 아니다”고 했다. 그러나 국정원 간부 출신 한 인사는 “정보사의 공작예산은 국정원에서 통제한다”면서 “업무와 무관하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했다.⊙
핵심 휴민트 몰려 있는 부대 초토화
대한민국의 모든 군은 전쟁 대비 상태다. 그런데 평시(平時)에도 전쟁을 하는 부대가 있다. 정보사 내 대북 공작 담당부대다. 정확한 수치는 대외비(對外秘)로, 대북 공작을 하며 첩보·정보전(戰)을 벌이는 인원은 소수로 알려져 있다. 정보사 소식통들에 따르면 이 중에서도 ‘○○○ 부대’에 핵심 휴민트가 몰려 있는데 재판을 받은 두 대령은 모두 이곳 소속이다. 한 정보사 관계자는 “부대 내 모든 사항이 극비인 만큼 세간에서는 내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길이 없었을 것”이라면서 “문재인 정권하에 이 조직이 초토화되다시피 했다”고 했다.
지난 2019년 7월 군검찰 수사를 시작으로 2020년 1월 기소된 이들은 2022년 1월 모두 무죄판결을 받았다. 1심 무죄였는데, 군검사는 항소를 포기했다. 문 정권 말기였다. 군검사 출신인 법무법인 담솔 홍승민 변호사는 “1심 무죄 후 항소 포기는 검사 스스로 ‘무리한 기소’임을 인정하는 격”이라면서 “애초 이 정도 사안으로는 압수수색을 나가지도 않는다. 더군다나 재판정에 세웠다는 건 미증유(未曾有)의 사건으로 유사한 전례조차 없다”고 했다.
수사 시작부터 무죄판결에 이르기까지 햇수로 4년간 이 둘은 공작 업무에서 사실상 배제됐다. 그사이 탈북어민 북송 사건(2019년 11월 7일)과 서해 공무원 이대준씨 피격 사건(2020년 9월 22일)이 발생했다.
이들 대령과 지난 20년간 함께 공작 활동을 한 현직 첩보원(에이전트)은 “수십 년 첩보 활동을 하며 이런 황당한 이유로 공작관을 재판장에 세우는 일은 처음 봤다”고 했다. 한 정보사 소식통은 “(검찰 수사 전) 내부 감찰 단계에서 당사자 조사도 없이 검찰로 넘어간 뒤 기소돼 내부에서도 말이 많았던 사건”이라고 했다. 홍승민 변호사는 “감찰 단계에서 당사자에게 소명 기회를 주는 것은 기본”이라고 했다.
‘피해자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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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을 받은 정보사 B대령은 지난 2016년 중국 닝보의 류경식당 종업원 집단 탈북을 주도했다. 사진은 류경식당 전경. 사진=조선DB |
판결문에는 이들의 공작 내용과 정보망 등이 구체적으로 적시돼 있다. 보안 사항 유출 우려로 공소요지를 구체적으로 기재하기는 어렵지만, 요약하자면 이렇다. ‘업무상배임’의 경우다. 군검찰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A·B대령을 기소했다. 이 사건 피해자는 ‘대한민국’이다.
“피고인들은 2017년 11월 23일 서울 동대문구 소재 ○○○ 동태찜 식당에서 이미 필요한 사업(판결문 각주(脚注)에 따르면 ‘공작’을 의미) 활동을 완료하였음에도, 같은 날 서울 소재 ○○ 술집에서 추가적인 사업 활동이 필요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불필요한 술자리를 추가적으로 가지고 그로 인해 발생한 주대 9만8900원을 피해자 대한민국의 사업 활동 예산을 사용하여 결제하기로 모의하였다. (중략) 피고인들은 공모하여 피고인 본인들에게 9만8900원에 해당하는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게 하고, 피해자(대한민국)에게 같은 액수에 해당하는 재산상 손해를 가하였다.”
재판부는 이에 “(공작원들의) 활동은 정형화돼 있지 않고, 신변에 대한 위험성이 내재돼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친분관계를 넘어선 깊은 신뢰 관계 구축이 필요하다”면서 “B대령이 ○○○ 동태찜 식당에서 이미 필요한 사업 활동이 완료됐다고 단정할 수 없으며, 배임의 의사를 추단할 수 있을 만큼 과도한 액수로 보이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공작 업무 관계된 인물들 무차별적 조사”
이 밖에도 모든 죄목이 비슷한 수준의 내용이다. ‘사기’의 경우 “A대령의 사업 활동 대상자(모씨)가 현재 사업이 어려워 활동을 하지 못할 정도이니 100만원 정도 지원해달라”고 사업 활동의 담당 사업관에게 부탁했는데, 이 돈이 결국 모씨 명의의 계좌가 아닌 다른 계좌로 들어간 정황으로 인해 기소됐다. 조사 결과 이 계좌는 한 음식점 주인 소유였고, 모씨가 공작 활동을 하며 지불한 식대를 음식점 주인 계좌로 직접 부친 것이었다.
재판부는 “공작원은 사업대상자에 대해 조종통제권을 확보하기 위해 이처럼 대상자의 채무를 변제하는 방법으로 지급하는 방식도 가능하다”고 봤다. ‘허위공문서작성’ 등은 요컨대 “2명이 식사한 것을 3명으로 적어냈다”는 이유였다. 재판부는 대부분의 죄목에 공통적으로 “증거에 의하여 입증되어야 할 것이나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모두 뚜렷한 증거 없이 기소했다는 얘기다. 확인 결과 해당 군검사는 기소 이후 전역한 상태였다.
무죄를 받았지만 이미 피해는 막심했다. 우선 이 둘의 재판 진행 동안 공작부대 내부 분위기가 얼어붙다시피 했다. A·B대령과 10년 이상 공작 업무를 했던 모(某) 중령은 “이번 재판으로 목숨 걸고 공작 활동을 해야 하는 후배들의 업무 또한 상당히 위축됐다”면서 “괜히 트집을 잡혀 재판까지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의 말이다.
“더 큰 문제는 수사 과정에서 참고인 명목으로 공작 업무와 관계된 인물들을 무차별적으로 조사했다는 점이다. 그 바람에 전·평시 적에게 상당한 전략적 피해를 끼칠 수 있는 필수 핵심 군사전력인 주요 대북공작망이 모두 무력화(無力化)됐다.”
공작원들은 북한 접경지의 사업가들과도 긴밀히 공조한다. 제3국(북한 접경지)에서 A대령의 정보원 활동을 한 사업가 D씨를 만나 공작망 무력화 과정을 들어봤다.
D씨의 사무실은 한국에, 사업장은 북한 접경 지역에 있다. 그의 제3국 사업장에서는 다수의 북한 노동자들이 일했고, A대령은 이곳을 주요 공작 거점 중 하나로 삼았다고 한다. D씨가 제3국에서 사업권을 따내고, 현지인을 비롯해 다수의 북한노동자들을 고용하기까지 걸린 시간과 비용 모두 A대령의 공작 활동에 포함되는 셈이다. 망가진 휴민트 재건(再建)에 10년 이상이 걸릴 수도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D씨는 “나 같은 에이전트(첩보원)의 신분은 어떤 일이 있어도 노출돼서는 안 된다”면서 “특히 출장 중에는 보안상 한국과는 절대 통신 연락을 하지 않는데, 이번 사건으로 내 신원과 사업내용이 수사기관에 모두 넘어갔고, 그 직후 사업 종결에 이르렀다”고 했다.
“2019년 11월 출장을 나가 있는데, 한국 사무실에 검찰이 압수수색을 나왔다는 연락을 받았다. 사무실뿐 아니라 자택, 경리 직원의 오피스텔까지 탈탈 털어갔다. 그중에는 영장에 명시된 호실이 아닌 곳도 포함돼 있었다. 경리 직원에 따르면 검찰은 ‘너네 회사 대표가 A대령에게 돈을 받은 적이 있느냐’고도 추궁했다고 한다. A대령에게 출장비 명목으로 받은 돈보다 정보 수집을 위해 내가 쓴 사비(私費)가 더 많다. 압수수색 이후 제3국 현지 발주처로부터 갑작스럽게 ‘계약 강제 종료’ 통보를 받았고, 막대한 비용을 들여 장비들을 철수해야 했다.”
그는 “아무 문제없이 잘 진행했던 사업인데, 우리 업체만 콕 집어 종료시켰음에도 발주처는 납득할 만한 이유를 대지 않았다”면서 “단순 사업 손해액은 100억원 이상이고, 국익 손실분까지 더하면 추산 불가”라고 했다.
정보사 공작 장교 출신 한 인사는 “정보요원들이 가장 경계하는 것이 통신인데, 수사를 한다는 명목으로 비밀공작 중인 첩보원에게 마구잡이식 전화 연결을 한 것부터 심각한 문제”라고 했다.
“북한 열차 미사일 관련 사업망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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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대령은 북한 풍계리 지역에 통신시설을 심은 유일한 공작관이라고 한다. 사진은 지난 2018년 북한 핵무기연구소 관계자들이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거수경계를 하는 모습. 사진=조선DB |
지난해 전역한 모 중령은 “A대령이 진행하던 북한 황해남도 해주(海州)와 함경북도 청진(淸津) 지역의 사업들도 2019년 무렵 (D씨의 경우처럼) 모두 종결됐다”면서 “해주망이 살아 있었다면 서해 피격 공무원 사건을, 청진망이 있었다면 청진 출신 탈북 어민들의 북송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는 데 이렇게 난항을 겪진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일부 SI(Special Intelligence·특별취급정보)가 남아 있다지만 휴민트망이 있었다면 좀 더 빠른 진상 조사가 가능했다는 뜻이다. A대령은 또한 과거 북한 길주군 풍계리 지역(핵실험기지)과 미사일 기지에 실시간 동향 파악이 가능한 통신장비를 심어 실시간 감시하던 인물이라고 한다. 이 중령은 이어 “사업 종료 전인 2019년 무렵 정보사에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북한 열차 미사일 관련 첩보가 들어왔는데 사장(死藏)된 일도 있었다”면서 “구체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북한 열차 미사일 관련 사업망 또한 그해 종료됐다”고 했다. 2019년 무렵 끊긴 휴민트와 관련된 사건이 모두 지금에서야 공론화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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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이 류경식당 종업원 탈출에 대해 ‘기획탈북’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들의 북송을 주장하자 탈북자 단체 회원들은 2018년 5월 23일 민변 사무실 앞에서 규탄 집회를 열었다. 사진=조선DB |
육사 선·후배 관계인 A·B대령은 지난 2016년 4월 중국 저장(浙江)성 닝보(寧波)에 있는 북한 류경식당 종업원 12명의 집단 탈북을 추진한 인물이다. 좀 더 정확히는, 후배인 B대령이 주도하고 A대령은 지원 역할을 했다. 이번 판결문 또한 “피고인은 과거 탈북민 집단 귀화를 성사시킨 사례가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당시 사정에 밝은 정보당국 관계자는 “류경식당 집단 탈북을 물꼬로 이후 6개월간 북한 엘리트층의 탈북 행렬이 이어졌다”면서 “박근혜 정부는 류경식당 사건을 계기로 흡수통일이 가능하다고 봤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이 구상의 핵심에 두 대령이 있었고, 둘은 누구보다 통일에 진심이었다”면서 “국정원의 개입은 사후(事後)에 일어난 일”이라고 했다.
문재인 정부도 류경식당 종업원들에 대해 “자유의사에 따라 탈북했다”고 했다. 그러나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등에서 ‘기획탈북’ 의혹을 제기했고 인권위는 탈출 2년 3개월이 지난 2018년 7월 직권 조사를 결정했다. 또 다른 정보사 소식통은 “B대령은 당초 류경식당 관계자의 ‘집단 탈북을 원하는데, 도와줬으면 한다’는 육성 등 당시 진실이 담긴 증거물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면서 “인권위에서 ‘강제성이 없었다’는 결론을 낸 이유”라고 했다.
그간 정보사는 물론 군에서 직접 집단 탈북에 관여했다고 인정한 적은 없었다. 정보사 소식통은 “회유나 협박 등 강제성이 있었다면 군사도발의 빌미가 됐겠지만, 지극히 인도주의적 탈북 지원이었다. 류경식당 집단 탈북은 정보사 내부에서도 ‘우수한 공작 사례’로 꼽힌다”면서 “박근혜 정부 때 훈장 수여 예정이었던 B대령은 정권 교체 이후 역적으로 몰렸다”고 말했다.
복수의 전·현직 정보사 관계자들은 “군검찰 조사의 가장 큰 문제는 기소된 사안과 관계가 없는 다른 대북공작망까지 요구했다는 점”이라면서 “이에 따라 고도의 보안이 생명인 대북 공작 내용이 고스란히 조직 외부로 유출됐다”고 했다.
두 대령, 암에 걸려 수술받아
실제로 이들은 류경식당 종업원 탈북 이후 ‘제2의 집단 탈북’도 구상했는데, 이와 관련한 내용까지 수사기관에 노출된 상태다. B대령은 재판을 받으며 제2의 집단 탈북 구상을 위해 만났던 인물을 ‘왜 만났는지’까지 일일이 해명해야 했다. 판결문 내용 중 일부다.
〈피고인은 의견서에 “저는 2016년 4월 중국 닝보에서 북한 식당 종업원을 탈북시켰으며, 이로 인해 북한 정권을 붕괴시키기 위한 사업을 추진한 바 있습니다. ○○○(B대령이 비용지출을 한 대상)을 만난 것은 그와 관계된 인물 중 북한 인력 ○○명(수백 명, 구체적 인원수는 보안상 비식별 처리)을 관리하는 인원이 있어 제2의 집단 탈북을 추진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 가능하다면 추진할 의도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접촉을 추진한 것입니다”라고 기술했다.〉
재판 기록에 남은 A대령의 말이다.
“전시(戰時)든 평시든 군 전력에 피해를 주게 되면 ‘이적행위’로 엄한 처벌을 받게 되어 있다. 이런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적절한 시기에 관련자들에 대해서 반드시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다. 공작망은 단시간 내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평시에 활용할 수 있는 유일한 전력(戰力)이다. 공소장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대한민국이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정보사령부 ○○○부대의 휴민트 전력 전체가 와해·무력화됐기 때문이다. 무기체계를 예로 들면 미사일 사령부에 있는 전략미사일을 외부로 반출하여 전부 고철 처리한 것이다.”
정보사 소식통은 “문재인 정권 동안 받은 재판으로 A대령은 갑상선암, B대령은 피부암을 얻어 수술을 받았다”면서 “‘한 명의 공작관이 1개 군단을 움직인다’는 말이 있다. 두 대령이 지난 20년간 쌓아온 휴민트망의 재건에는 10년 이상이 걸릴 수도 있다”고 했다.
국정원 개입 의혹
정보사 일각에서는 이 수사에 국정원이 개입했다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해당 수사 과정을 잘 안다는 정보사 관계자는 “당초 이 사건은 2019년 4월 국정원 감사 때 비용 관련 문제제기가 되면서 시작됐다”면서 “이후 내부적으로 ‘문제없음’으로 넘어간 사안인데 갑자기 3개월 뒤 같은 건에 대해 군검찰의 압수수색이 시작됐다”고 했다.
본지는 앞서 정보사 대북 공작관 출신인 정규필 전 대령의 간첩 조작 사건을 보도했다. 서훈·박지원 원장 시절 국정원이 정 전 대령을 간첩으로 몰았고,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결정이 나오자 별건 기소를 위해 검찰에 ‘기소 청탁’을 한 정황이 있다는 내용이다. 이 보도는 지난 9월 20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도 거론됐다. 한덕수 총리는 정 전 대령 사건과 관련 “필요할 경우 감사를 진행할 수 있다”며 “결국은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했다.
수사 주체는 다르지만, 두 현직 대령도 정 전 대령과 마찬가지로 2019년 중순 무렵부터 수사를 받기 시작했다. 정보사 소식통은 “실제로 국정원의 관여가 있었다는 정황상 근거도 있다”면서 “그중 하나가 검찰 수사 시작 이후인 2019년 말 당시 지휘관이었던 C정보사령관이 A대령을 두 차례 불러 ‘나를 원망 마라. 국정원 지시라 어쩔 수 없다’는 취지의 말을 한 것”이라고 전했다.
이와 관련 C 전 사령관은 “국정원 지시 같은 것은 일절 없었다. 정보사령부는 국정원의 지시를 받아 임무를 수행하는 곳이 아니다”고 강조하면서 “당시 여단장이 수사의뢰를 건의하는 문서를 들고 왔고 이후 법무장교의 의견을 받아보니 ‘사안이 중대하니 수사의뢰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해 서명을 한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이어 “A대령은 물론 그 누구와도 본 건 수사와 관련해 단 한 차례도 언급한 일이 없다. 지휘 계통을 통해 보고받고 결정한 사항을 국정원 지시에 의한 것이라는 것은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된다”면서 “개인 비리 차원의 일에 국정원이 개입할 이유도 없으며, 국정원에서는 이 사건을 알 이유도, 알 필요도 없는 일”이라고 했다.
당시 사령관 “죄 없는 대령들 몰아가는 분위기”
군검사 출신인 홍승민 변호사는 “이 정도 수준의 일을 만에 하나 ‘비위행위’라고 정의한다고 하더라도, 공작 업무의 특성상 지휘관은 작전 사항 유출 방지를 위해 내부 감찰 단계에서 징계 처리를 밟도록 했어야 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에 C 전 사령관은 “금전적인 문제인 만큼 내부 감찰 후 징계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검찰 조사가 필요한 중대한 사안이라고 판단했다”면서 “군 재직 당시 한 번도 법과 규정에 벗어난 일을 한 일이 없다”고 말했다.
이들이 수사와 송사를 겪는 동안 재직한 정보사령관은 두 명이다. C 전 사령관은 두 대령이 기소될 무렵 전역했다. 이후 재판 시작부터 무죄판결을 받을 동안은 E 사령관이 재직했다. E 전 사령관에게도 당시 사정을 물어봤다. E 전 사령관은 “지휘관으로서 특정 여론이나 분위기에 휩쓸려 이들(A·B대령)을 죄가 있는 것처럼 몰아가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했다. ‘여론’과 ‘분위기’의 의미를 묻자 그는 “그 외 추가적인 답변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
한편 ‘이 사건에 국정원이 개입한 사실이 있느냐’는 질문에 국정원 측은 “사법기관의 법적 사실에 따라 진행한 것으로 국정원이 개입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고 했다. 정보사 공작장교 출신 한 인사는 “설령 국정원의 수사 개입이 없었더라도 대북 휴민트망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역할은 해줬어야 했는데 서훈·박지원 원장 시절 국정원은 이 기능을 하지 않았다”며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국정원 측은 “업무와 무관한 개인 비리 문제에 관한 내용으로 국정원이 관여할 사안이 아니다”고 했다. 그러나 국정원 간부 출신 한 인사는 “정보사의 공작예산은 국정원에서 통제한다”면서 “업무와 무관하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했다.⊙
국군정보사령부는? 군의 비밀공작을 총괄·감독하는 정보사는 국방정보본부 예하 조직이다. 해방 직후 육군 정보국으로 시작해 1972년 육군정보사령부를 거쳐 1990년 3군 정보부대가 통합하면서 국군정보사령부가 됐다. 국정원의 전신(前身)은 육군첩보부대 출신들을 모아 설립한 중앙정보부다. 국정원 간부 출신 한 인사는 “정보사가 대한민국 정보기관의 뿌리인 셈”이라면서 “문재인 정부는 2017년 국정원 무력화, 2018년 기무사령부 해체에 이어 2019년 이들의 뿌리인 정보사 붕괴를 끝으로 대한민국 국가 정보의 3대 축을 완전히 무너뜨렸다”고 했다. 정보사 공작 장교 출신 한 인사도 “지난 20년간 정권이 바뀔 때마다 휴민트 조직의 방향성이 공격적, 또는 수동적으로 바뀌긴 했지만, 역대 진보 정권에서는 그래도 근본은 지켰다”면서 “문재인 정권은 십수 년간 쌓아온 대북 공작망을 하루아침에 완전히 도려냈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