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 사건에 휩쓸려들어 사형된 朴興柱 대령 의 부인 金妙春씨 이야기

그날 새벽 4시에 찾아온 남편의 마지막 당부『애들 잘 돌봐, 일이 있어서 간다!』

  • : 김지은  
글자 크기 조정
  • 스크랩
  • 본문 음성 듣기
  • 글자 크기 조정
URL이 성공적으로 복사되었습니다.
평소와 똑같았던 10월26일 아침 출근길
 
  그날 아침, 출근길에 나선 朴興柱(박흥주) 대령은 여느날과 마찬가지로 대문까지 마중나온 아내에게 다녀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집을 나섰다. 그 전날 밤 늦게 귀가한 朴대령은 초등학교 5학년인 큰딸 혜영이가 10월27일부터 반에서 사명대사 연극연습을 하게 되었다며 선조임금役(역)을 맡았으니 왕관을 만들어달라고 졸라대는 통에 너무 늦은 시간이어서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은종이, 마분지와 풀로 얼기설기 만들다 만 왕관을 갖다 놓고 칭얼대는 딸의 부탁에 확답을 하지 않고 있다가 혜영이가 잠이 들고 난 후 마음을 바꾸어 왕관을 만들기 시작했다. 밤 늦게까지 잠을 자지 않고 왕관을 만드느라 朴대령은 늦게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에 눈을 뜬 큰딸은 머리맡에 놓여 있는 근사한 종이 왕관을 보고, 반아이들에게 자랑할 생각으로 뛸 듯이 기뻐했다. 朴대령의 출근 모습은 평소와 다른 점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이상은 故(고) 朴興柱 대령의 부인 金妙春(김묘춘·58) 씨와의 인터뷰, 큰 딸 惠英(혜영·32)씨의 기록을 토대로 朴興柱 대령의 그날 아침 출근 모습을 필자가 再(재)구성해본 것이다. 10·26 朴正熙(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의 주요 인물의 한 사람이 된 朴대령이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10·26」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징후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金載圭 중앙정보부장은 민주화를 위해 「유신의 심장」을 쏠 계획을 미리 짜놓고 있었다고 주장하지만 적어도 그의 비서실장 朴興柱 대령에게는 朴대통령 시해 사건은 우발적인 것이었음이 분명한 것 같다.
 
  역사의 물굽이를 돌려놓을 엄청난 사건에 가담할 것을 미리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면 가족들에게 무엇인가 한 마디쯤은 시사할 법하지 않은가. 5·16 쿠데타를 일으킨 朴正熙 대통령도 거사 전에 가족들에게 훗날을 다짐하는 말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상식적으로 볼 때 그 편이 자연스럽다. 더구나 몸이 약한 아내와 두 딸, 그리고 결혼 10년 만에 얻은 아들을 몹시도 사랑한 남편이요, 아버지가 아니었던가.
 
  서울 성동구 행당동 언덕배기를 힘차게 걸어 차를 세워둔 곳으로 내려가는 남편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金妙春씨는 하루 내내 형광등을 켜두어야 하는 방으로 들어가 자리에 누웠다. 2층집의 1층이지만 지하로 푹 꺼진 셋집은 방이 두 개 있었는데, 朴대령 부부가 어둡고 큰 방(가족들은 이 방을 늘 껌껌했기 때문에 「한 밤」이라고 불렀다고 한다)에서 거처했고, 초등학교 5학년 혜영이, 3학년 혜은이는 작은 방을 사용했다.
 
  그 무렵 金씨는 늘 몸이 좋지 않았다. 서른 일곱에 늦은 출산을 한 때문인지 누워 있을 때가 많았다. 그날은 몸살 감기 기운까지 있어서 金씨는 종일 누워 있었다. 올해 쉰여덟이 된 金씨는 남편의 운명을 가름한 21년 전 10월26일을 어젯일처럼 증언한다.
 
  『그날 오전 남편한테서 한 차례 전화가 왔었어요.「애들 별일 없나?」 하루 한 번씩 꼭 하는 안부전화였어요』
 
 
  『애들 잘 돌봐. 일이 있어서 간다』
 
  그리고는 그날 밤이 되자 귀가 시간이 일정치 않은 남편을 기다리다가 金씨는 잠이 들었는데 비몽사몽간에 밖에서 남편의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다급히 『혜영 엄마, 혜영 엄마』 하고 부르는 소리에 잠을 깼다. 金씨는 방문을 열고 나가 계단을 걸어 마당으로 올라갔다. 대문을 열었다. 남편은 안으로 들어오려 하지 않고 그냥 선 채로 말했다.
 
  『별 일 없나?』
 
  『네』
 
  『당신 몸은 어때?』
 
  『 좀 아파요』
 
  『애들 잘 돌봐. 일이 있어서 간다』
 
  朴대령의 말투는 평소와 똑 같았다. 그 말만 하고는 몸을 돌리더니 유난히 급한 발걸음으로 언덕길을 걸어 내려갔다. 습관처럼 남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金씨는, 남편의 양복 상의 뒤로 와이셔츠 자락이 빠져나와 있는 것을 보았다. 깔끔한 양반이 웬 일일까, 뭔가 급한 일이 있는 모양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방으로 들어왔다. 그것이 金씨가 집에서 마지막으로 본 남편의 모습이었다. 朴대령의 진술 기록에 의하면 朴대령이 집에 들른 시간은 10월 27일 새벽 4시 30분께다.
 
  나중에 수사과정에서 밝혀진 일이지만 朴興柱 대령이 집을 찾아온 것은 궁정동에서 金載圭가 朴대통령을 시해한 후 황망 중에 金載圭 부장, 鄭昇和(정승화) 총장과 함께 국방부로 갔다가 무장해제를 당하고 난 뒤 사태가 어떻게 진전될지 아직 갈피를 잡지 못한 상황에서 한남동 주택가 골목에 한 시간 반 정도 머물며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다가 불현듯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운전기사에게 집으로 가자고 한 것으로 되어 있다.
 
  朴興柱 대령은 그러나 그 돌연한 귀가에서 아내에게 매일 하는 짤막한 안부만을 물었을 뿐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원래 집에 와서 바깥 일을 잘 이야기하지 않는 사람이긴 했지만 그렇게 엄청난 사건에 휘말린 중에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나중에 똑같이 사형선고를 받게 된 朴善浩(박선호) 과장이 그날 집으로 가서 온가족을 모두 모아놓고 사람을 죽였음을 고백하고, 자결하겠다고 결의를 밝힌 것과는 대조적이다.
 
  뜬금없이 남편이 다녀간 후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金씨는 채 한 시간이 못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문을 꽝꽝 시끄럽게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대문을 여니까 너댓 명 정도 되는 건장한 남자들이 서 있었다. 남자들은 주변을 이리저리 살피면서 물었다.
 
  『여기가 朴興柱 대령님 댁입니까?』
 
  그렇다고 했더니, 사모님 되시느냐고 다시 물었다.
 
  『어휴, 집을 찾느라 고생을 했습니다』
 
  朴대령 집을 찾으러 온 그 사람들은 행당동 산비탈을 한참이나 헤매다 끝내 못찾고는 동장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집을 찾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中情(중정)부장 수행비서실장이 이런 집에서 살다니 놀랍다는 말들을 했다.
 
  『朴대령님께 무슨 사고가 났나요?』
 
  『모릅니다』
 
  『말씀해 주세요. 제가 몸이 아픈데 너무 걱정이 됩니다. 혹시 차사고가 났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걱정하지 말라고만 할 뿐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사모님, 라디오 있습니까?』
 
 
  수사기관에 불려가 조사받다가 실신
 
  한 남자가 물었다. 라디오는 없지만 朴대령이 월남에서 사온 낡은 전축에 라디오가 부착되어 있었다. 그들 중 두 사람이 신발을 벗고 방 안으로 들어가서 라디오를 켰다. 그때 金씨는 너무 당황한 데다 걱정이 되어 라디오에서 무슨 말이 나오는지 귀기울여 듣지 못했다. 계속 무전기로 연락을 주고받던 그들은 무슨 지시를 받았는지 어느 순간부터 태도가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사모님」이라는 호칭이 「아주머니」로 바뀌었고, 온 집안 이곳저곳을 뒤지기 시작했다. 장롱 서랍이며, 책상 할 것 없이 두 방을 마구...
  • 스크랩
URL이 성공적으로 복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