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과 박근혜 충돌의 끝

  • : 최병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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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3월 24일. 장세동(張世東) 국가안전기획부장은 전두환(全斗煥) 대통령에게 ‘후계구도 조기 가시화’를 건의합니다. 대선(大選)을 9개월도 채 남기지 않았을 때입니다. 그런데도 ‘조기(早期)’입니다. 요즘 같아선 대통령 후보 당내 경선(競選)에 출마한다고 출사표(出師表)를 던질 때입니다. 바로 다음날 전 대통령은 노태우(盧泰愚) 민정당 대표에게 개헌정국의 전권(全權)을 위임합니다. 대통령제를 내각책임제로 개헌(改憲)하려는 여권의 구상을 알아서 요리하라는 것이었지요. 그 의미는 후계구도 가시화(可視化)와 맥(脈)이 닿아 있습니다. 노 대표가 깔끔하게 마무리하면 후계자가 되는 것입니다. 실제 노 대표는 내각제를 포기하는 6·29선언을 하고 국민의 선택을 받아 ‘후계자’가 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전 대통령은 노 대표에게 ‘6·29선언’을 하도록 강권합니다. 현재권력(전두환)과 미래권력(노태우)이 협력해서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 케이스입니다.
 
 
  노태우, 신중과 승계
 
  그렇다고 자기 편끼리의 권력 승계가 매끄럽게만 이뤄진 것은 아닙니다. 전두환 정권이 마지막 순간까지 ‘선출된 제왕’(대통령)이 없는, 내각제 개헌에 집착한 것은 방증의 하나에 불과합니다. 85년쯤엔 노신영(盧信永) 국무총리 후계설이 있었습니다. 군부 핵심세력들 사이에서 ‘노신영을 주목하라’는 얘기가 파다했습니다. 장세동 후계설은 한술 더 떠 ‘후계자가 될지 모르니 준비해 둬라’는 식이었습니다. ‘장세동 대통령 시대’에 대비했던 정보기관도 있었습니다. 국민들은 노태우 대표가 후계자가 될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이처럼 권력 내부는 달랐습니다. 그 안에서 줄서기, 눈치 보기와 치열한 다툼이 있었을 것쯤은 능히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이어서 지금과는 많이 다르겠지요.
 
  ▶88년 민주화를 거쳐 집권한 노태우 정권 땐 완전히 다른 양상이었습니다. 현직 대통령이 있고, 그 아래에 여당으로 ‘투항(投降)’한 야당의 ‘투사(鬪士)’가 양립한 구조였습니다. 이 투사는 몸만 여당에 있었을 뿐 행동과 사고는 여당과 완전히 따로 놀았습니다. 그는 여당으로의 변신(變身) 조건이었던 내각제 개헌부터 뭉갰습니다. 본인이 서명한 내각제 각서(覺書)의 존재부터 부인하다가 문서가 공개되자 ‘정치공작(工作)’으로 몰아 궁지를 탈출했습니다. 그 후 그는 국민 지지를 바탕으로 끊임없이 현재권력(노태우)을 포위해 나갔습니다. 대선을 1년여 앞둔 91년 추석엔 노태우 대통령 수석비서관 2명에게 500만원씩의 ‘떡값’을 돌렸다고 합니다. 40대 직장인 월급이 100만원에 못미칠 때입니다. 이 소문이 청와대 안에 퍼져 서로 “누구냐”며 수군댔다고 합니다.
 
 
  YS, 포위와 쟁취
 
  그런가 하면 압박 전술도 병행했습니다. 91년 8월 9일 청와대에서 열린 노태우-김영삼(金泳三·YS) 대좌에서 YS는 노 대통령에게 ‘노란 봉투’를 내밀었다 합니다. 언론은 노란 봉투 안의 내용을 ‘통치권 누수 대책’이라고 썼습니다. 그럴까요. 실제 그 안에는 노 대통령의 비자금(秘資金)이 엉뚱한 곳으로 흘러들어 갔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고 합니다. YS는 어디서 그런 정보를 입수했을까요. 누군가 정보를 통째로 갖다줬겠지요. 그때 정보를 빼 줬다고 지목된 사람은 그 후 정치권에서 승승장구했고 19년이 지난 지금도 ‘현직’에 있습니다. 노 대통령은 이후 YS만 만나고 나면 화장실에 가곤 했다고 합니다. 대선을 1년 이상 남겨 뒀지만 주변은 포위됐지, 약점도 잡혔지, 소리 한 번 질러 보지 못했던 셈입니다. 대선이 있던 해인 92년엔 노 대통령의 뿌리인 민정계가 박태준(朴泰俊)씨를 옹립하려 하자 노 대통령은 이상연(李相淵) 안기부장을 통해 주저앉히기에 바빴지요. 미래권력이 현재권력을 압박해 ‘쟁취’한 형태의 모델이라고 규정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정치의 달인(達人) YS 시대엔 어땠을까요. YS의 임기 초중반 기세는 좋았습니다. 군대 내의 하나회 척결부터 금융실명제 전격 도입,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수사에다 ‘대쪽’으로 소문났던 이회창(李會昌)씨와 좌익·노동운동가 출신 이재오(李在五)·김문수(金文洙) 영입 등 그야말로 전통 여당으로선 획기적(劃期的)인 일의 연속이었습니다. 대통령 후보감만 해도 9명이나 됐죠. 9룡(龍)이란 말은 그렇게 생겼습니다.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여권이 쟁쟁한 후보를 9명이나 가졌던 적이 없었습니다. 패도 좋고 조커도 여러 장이니 그런 카드 게임은 해 보나 마나였지요. 더구나 상대는 ‘호남’에 갇힌 김대중(金大中·DJ)씨였으니 신한국당 정권 연장은 요식(要式)행위처럼 보였을 법합니다. 호사(好事)엔 마(魔)가 낀다고 했던가요. 대통령이 국정을 전횡한 아들의 구속으로 그립(grip)을 놓치자 국정은 부챗살처럼 지향점이 제각각이었습니다.
 
 
  이회창, 방심과 자멸
 
  미래권력의 반열이 아니었던 DJ는 충청권의 맹주 김종필(金鍾泌)씨를 “집권 후 내각제 하자”며 끌어들였습니다. 김종필씨는 ‘미래권력 1순위’ 이회창씨에게 관심이 많았는데 이회창씨는 ‘1순위’의 특권에 취해 있었죠. 결과는 이회창씨가 미래권력의 일부를 야당에 나눠 준 셈이 돼 버렸습니다. 이렇게 되니 안기부 고위 간부가 DJ 쪽에 접근하더군요. 전화도 하지 않고 직접 DJ 쪽의 핵심을 찾아가 여권의 고급정보를 털어놓기 시작한 것입니다. “여권이 오익제 천도교 교령 월북(越北) 사건을 DJ와 연결시키려 하고 있다”, “울산 남매 간첩단 사건을 DJ와 엮으려 하고 있다”는 각종 색깔론 기획(企劃)은 풍선에서 빠진 바람처럼 고스란히 DJ 쪽에 넘어갔습니다. 그때 기사를 보시면 알겠지만 DJ는 여러 차례 북풍(北風)을 아주 구체적으로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 막후에선 이런 현재권력의 누수(漏水) 현상이 있었던 것입니다. 물은 대선 때까지 계속 샜으니 “쥐도 새도 모르게 일을 한다”는 안기부도 막판까지 몰랐던 모양입니다. 그 ‘안기부 고위간부’는 제 짐작이 맞다면 DJ 집권 후 영화(榮華)를 제대로 누리지 못했습니다. 정보를 받았던 분은 지금 금배지를 달고 있습니다. 현재권력의 공백 속에서 미래권력 1순위자가 방심한 틈을 타 미래권력 2순위가 역전승한 경우였습니다. 여권 내로 국한해 말하면 미래권력의 오만이 빚은 자멸(自滅)형입니다.
 
  ▶이명박(李明博) 정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어떤 시기와 가장 닮았을까요. 지금 이 순간 박근혜(朴槿惠) 한나라당 전 대표는 ‘미래권력 0순위’입니다. ‘1순위’보다 앞서지요. 노태우 정권 때의 YS, YS 정권 때의 이회창보다 훨씬 ‘당첨’ 가능성이 큽니다. 여당 안을 들여다봐도, 야당을 둘러봐도 도무지 경쟁 상대가 없으니 말입니다. 국민 속으로 파고들면 더 명백해집니다. 시중에서 거론되는 대선 후보들의 지지율을 모두 합친 것보다 박 전 대표가 높습니다. 현재권력(이명박)에 맞서는 것은 흡사 YS입니다. 2008년 총선 공천, 미디어법 처리 문제, 세종시 문제까지 충돌했거나 현재도 충돌 진행 중입니다. 단지 다르다면 현재권력과의 관계에 있어 YS는 적극적인 공격(攻擊)형이었던 반면 박 전 대표는 수비(守備)형인 점입니다. 그것은 박 전 대표가 공식 직책을 맡고 있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고, 자신을 국정(國政)의 동반자도 적대자도 아닌 ‘방관자’로 스스로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박근혜, 방관과 ?
 
  이명박 대통령 입장에서 보면 가장 강력한 미래권력을, 집권 초부터 당내에 갖고 출발한다는 것은 약(藥)이 될 수도, 독(毒)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명박·박근혜 관계는 한국정치사에선 볼 수 없었던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인 셈입니다. 현재권력은 2012년 12월 18일까지는 자신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을 공식 조직을 갖고 있습니다. 정보기관에 어떤 이름의 태스크포스가 생길지, 어떤 정치검사가 누굴 노리고 있을지, 국세청이 어떤 계좌를 뒤질지 지금으로선 예측조차 어렵습니다. 현재권력은 막대한 예산을 쓰는 홍보조직과 우호적 매체도 갖고 있습니다. 현재권력이 (대선후보) 누굴 만들지는 못하지만 안되게 할 수는 있다는 건 정치판에 10년 만 있어 보면 체득(體得)합니다. 그렇다고 미래권력이 현재권력의 가공(可恐)할 위력에 눌려 기(氣)를 펴지 못하고만 있을까요. 지금 박근혜 전 대표가 이명박 대통령의 ‘강도’ 발언에 정면 반박하는 것만 봐도 이 ‘0순위’는 뭔가 다른가 하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하기야 과거보다 훨씬 세련된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지금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누가 압니까. 지금 두 사람은 밑천을 다 쏟아부어 가며 세종시 힘겨루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 끝이 어딜까요.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이 세종시에서 승부(勝負)가 나더라도 그건 1라운드일 뿐입니다. 1라운드에서 힘 다 빼 버리면 최종 라운드까지 뛰지도 못하고, 설령 그 게임을 이겼더라도 결승에서 질 게 뻔합니다. 정무(政務)에 관한 한 도사(道士)급인 시도 정무부시장, 정무부지사에게 질문을 해 봤습니다. 그랬더니 이분들도 풀기 어려웠던가 봅니다. 몇 분을 제외하곤 이리저리 빼고 얼버무립니다. 현재권력도 무섭고 미래권력도 무서운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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