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힌두교의 나라’ 인도의 기독교 신자 수는 3900만명
⊙ “정세영, 맨발로 첸나이 벌판 기 느낀 후 공장 부지 확정” (김경수 주 첸나이 총영사)
⊙ 현대차, 올해로 인도 진출 20년 맞아… 현재 인도 시장 점유율 2위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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첸나이는 타밀나두주(州)의 주도다. 타밀나두는 ‘타밀족의 나라’란 뜻이다. 타밀족은 기원전 1000년경 아리아인의 인도 진출 전 모헨조다로, 하라파 등지에서 세계 4대 문명 중 하나인 ‘인더스 문명’을 꽃피웠던 드라비다족의 한 갈래다.
남인도의 드라비다족은 북인도에 주로 거주하는 아리아인 계통의 인도인과는 생김새가 다르다. 아리아인의 경우 피부가 상대적으로 하얗고 이목구비가 뚜렷하다. 이들이 쓰는 ‘힌두어(Hindi)’는 인도·유럽어족에 속한다.
타밀족을 비롯한 드라비다족은 아리아인보다 코가 낮고 피부가 검다. 키나 몸집도 작다. 말도 다르다. 드라비다족은 ‘드라비다어족’으로 분류되는 언어를 쓴다. 타밀족 역시 드라비다어족에 속하는 ‘타밀어’를 쓴다. 타밀나두주 인구 7200만명 중 대다수가 타밀족이기 때문에 이곳의 공식 언어는 ‘타밀어’다.
첸나이의 세계문화유산 ‘마하발리푸람 기념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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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개의 석탑으로 이뤄진 ‘해안 사원’은 마하발리푸람 기념물군 중 가장 유명한 유적이다. |
마하발리푸람 기념물군은 7~8세기 무렵 팔라비 왕조 시절에 벵골만 해안을 따라 건설한 사원들이 있는 곳이다. 1984년 국제연합교육문화과학기구(UNESCO)는 마하발리푸람의 사원, 조각 등을 묶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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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하발리푸람엔 돌마차 모양의 사원을 비롯한 다양한 석조 사원과 조각들이 있다. |
해안 사원은 두 개의 석탑으로 이뤄져 있다. 외양은 많이 다르지만, 석탑 두 개가 바다를 향해 서 있는 모습은 경주의 감은사지 3층 석탑과 비슷한 인상을 줬다. 두 탑 중 크기가 약간 작은 3층 석탑은 평화의 신 ‘비슈누’, 해안 쪽에 있는 5층 석탑은 창조와 파괴의 신 ‘시바’를 모신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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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슈나의 버터볼’은 마하발리푸람을 찾는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가장 많이 찾는 명소다. |
이 밖에 ‘크리슈나의 버터볼’도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가장 많이 찾는 명소다. ‘크리슈나의 버터볼’은 금방 굴러 떨어질 것처럼 바위산 비탈에 아슬아슬하게 놓인 공 모양의 큰 바위를 말한다. 그 모습은 설악산 흔들바위와 비슷하지만 규모는 훨씬 크다. 영국이 식민통치를 할 당시 인도인들의 자존심을 꺾기 위해 코끼리 7마리를 동원해 바위를 끌어내리려고 시도했지만 실패했다는 일화가 있다.
‘첸나이 성 도마 성당’은 교황청 공인 ‘가톨릭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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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 제자 도마가 처형당한 곳에 있는 ‘성 도마 마운트 성당’. |
인도인 13억명 중 88%는 힌두교, 5.6%는 이슬람교를 믿는다. 3%에 해당하는 3900만명은 기독교 신자다. 이 중 절반인 약 2000만명이 첸나이를 포함한 타밀나두주와 케랄라주 등 남인도에 몰려 있다. 남인도의 기독교 신자 비율은 전국 평균의 두 배인 6%인 이유다.
이에 대해 기독교 신자인 김경수 주 첸나이 총영사는 “첸나이가 아시아 기독교의 발상지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예수의 제자 사도 도마가 이곳에서 복음을 전파하다가 순교했다”며 “12사도 중 순교지에 교회가 있는 경우는 바티칸(베드로), 스페인 산티아고(야고보)와 첸나이(도마)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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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마의 유해가 안치된 ‘성 도마 성당’. |
전설에 따르면 도마는 서기 52년 인도 첸나이에 들어와 예수의 가르침을 퍼뜨렸다. 도마가 실존인물이라면 서기 1세기 당시 향신료 무역을 위해 남인도에 드나들면서 정착촌을 만들었던 유대 상인들과 함께 인도 땅을 밟았을 가능성이 높다.
인도에서 생활하던 도마는 당시 첸나이를 다스리던 왕의 총애를 받았다. 그는 왕의 새 궁전을 짓는 건설 책임자로 일했지만, 공사 경비 일부를 빼돌려 빈민구제에 썼다. 이를 눈치챈 왕은 서기 72년 첸나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으로 도마를 끌고 가 참수했다. 현재 도마 처형 장소와 무덤으로 알려진 곳엔 도마를 기리는 성당이 있다.
1504년 포르투갈인이 세우고, 1893년 재건축한 첸나이 동부 마리나 해변 인근의 ‘성 도마 성당’은 세계적인 기독교 성지다. 이곳에 도마의 유해가 있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986년 2월 첸나이의 성 도마 성당을 방문했고, 2006년에는 바티칸 교황청이 ‘가톨릭 성지’로 공인했다.
첸나이에서 접한 조용기와 정세영의 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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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 첸나이항에서 선적 대기 중인 현대차 인도공장 생산 차량들. |
조 목사는 1994년 2월 인도 정부가 사상 최초로 승인한 기독교 집회를 마드라스(현 첸나이)에서 개최한 바 있다. 당시 집회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긴 해변인 ‘마리나 해변’에서 열렸다. 집회엔 사흘 동안 200만명이 모여들었다. 길이 13km에 달하는 마리나 해변은 조 목사의 설교를 듣기 위해 모인 인파로 뒤덮였다는 후문이다. 남인도의 기독교 신자들의 모습에 감명을 받은 조 목사는 1994년 당시 마리나 해변 집회를 가장 기억에 남는 행사로 꼽는다고 한다.
조 목사 외에도 첸나이와 깊은 인연이 있는 한국인이 한 명 더 있다. 오늘날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의 기반을 다진 고(故) 정세영 현대자동차 회장이다.
1996년 5월 현대자동차는 첸나이에 인도 현지 법인을 설립하고, 산트로(아토스) 양산을 시작으로 인도 시장 점유율을 지속적으로 늘렸다. 인도 진출 20년을 맞은 현대차는 지난해 현지 시장에서 자동차 48만 대를 판매했다. 시장 점유율은 17.5%로 2위를 기록했다.
이 같은 현대차의 인도 시장 안착은 정세영 회장의 노력 덕분에 이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포니정재단에 따르면 1990년대 중반 당시 정 회장은 차량으로 하루에 200~300km 이동하면서 인도 현지 공장 후보 부지를 답사했다. 이동 과정에서 끼니를 거르는 일도 다반사였다.
김경수 주 첸나이 총영사는 정 회장이 첸나이에서 공장 부지를 물색할 당시의 비화를 소개했다.
“정세영 회장이 첸나이의 공장 후보 부지를 점검할 때 맨발로 걸어다니면서 땅의 기운을 확인했다고 해요. 맨발로 돌아다녀 봐야 사업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곳인지 알 수 있다고 하면서요. 지금이야 현대차 법인이 있는 곳에 공장들이 많이 있지만, 당시엔 허허벌판이었거든요. 정 회장이 그 벌판에서 어떤 기를 느꼈는지 몰라도 그 자리에서 바로 공장 부지를 확정했대요. 그 덕분인지 몰라도 현대차는 지금 인도 시장에서 성공을 거뒀고, 첸나이는 현대차와 그 협력업체 80여개가 진출해 한국 교민만 4000여명에 이르는 곳이 됐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