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인도 최대 도시 첸나이 3박4일 방문기

예수 제자 도마가 순교한 ‘아시아 기독교의 발상지’ 첸나이

  • 글·사진 : 박희석 월간조선 기자  thegood@chosun.com
글자 크기 조정
  • 스크랩
  • 본문 음성 듣기
  • 글자 크기 조정
URL이 성공적으로 복사되었습니다.
⊙ ‘힌두교의 나라’ 인도의 기독교 신자 수는 3900만명
⊙ “정세영, 맨발로 첸나이 벌판 기 느낀 후 공장 부지 확정” (김경수 주 첸나이 총영사)
⊙ 현대차, 올해로 인도 진출 20년 맞아… 현재 인도 시장 점유율 2위 기록
6월 11일부터 14일까지 3박4일 동안 인도 첸나이에 머물렀다. 첸나이는 과거 마드라스로 불린 인도 동남쪽 끝에 있는 남인도 최대 도시다. 지명(地名)이 지금처럼 바뀐 건 1998년이다. 영국 식민 지배의 잔재를 없앤다는 이유에서다. 영국은 1640년 지금의 첸나이에 동인도회사를 설립하고 성(聖) 조지 요새를 구축했다. 당시 첸나이는 영국의 인도 식민 지배와 동방무역의 거점이었다.
 
  첸나이는 타밀나두주(州)의 주도다. 타밀나두는 ‘타밀족의 나라’란 뜻이다. 타밀족은 기원전 1000년경 아리아인의 인도 진출 전 모헨조다로, 하라파 등지에서 세계 4대 문명 중 하나인 ‘인더스 문명’을 꽃피웠던 드라비다족의 한 갈래다.
 
  남인도의 드라비다족은 북인도에 주로 거주하는 아리아인 계통의 인도인과는 생김새가 다르다. 아리아인의 경우 피부가 상대적으로 하얗고 이목구비가 뚜렷하다. 이들이 쓰는 ‘힌두어(Hindi)’는 인도·유럽어족에 속한다.
 
  타밀족을 비롯한 드라비다족은 아리아인보다 코가 낮고 피부가 검다. 키나 몸집도 작다. 말도 다르다. 드라비다족은 ‘드라비다어족’으로 분류되는 언어를 쓴다. 타밀족 역시 드라비다어족에 속하는 ‘타밀어’를 쓴다. 타밀나두주 인구 7200만명 중 대다수가 타밀족이기 때문에 이곳의 공식 언어는 ‘타밀어’다.
 
 
  첸나이의 세계문화유산 ‘마하발리푸람 기념물군’
 
두 개의 석탑으로 이뤄진 ‘해안 사원’은 마하발리푸람 기념물군 중 가장 유명한 유적이다.
  672만명이 사는 대도시 첸나이엔 의외로 볼거리가 많지 않지만 이곳을 찾은 여행객들 대다수가 들르는 관광명소가 있다. 첸나이 도심에서 차로 약 1시간 거리에 있는 마하발리푸람 기념물군이다.
 
  마하발리푸람 기념물군은 7~8세기 무렵 팔라비 왕조 시절에 벵골만 해안을 따라 건설한 사원들이 있는 곳이다. 1984년 국제연합교육문화과학기구(UNESCO)는 마하발리푸람의 사원, 조각 등을 묶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마하발리푸람엔 돌마차 모양의 사원을 비롯한 다양한 석조 사원과 조각들이 있다.
  마하발리푸람의 사원 중 가장 유명한 곳은 8세기 초에 건설된 힌두교 사원인 ‘해안 사원’이다. 해안 사원을 구성하는 건물은 원래 7동이었지만 지금은 1동만 남아 있다. 6동은 해안선이 후퇴하면서 바다에 잠겼다.
 
  해안 사원은 두 개의 석탑으로 이뤄져 있다. 외양은 많이 다르지만, 석탑 두 개가 바다를 향해 서 있는 모습은 경주의 감은사지 3층 석탑과 비슷한 인상을 줬다. 두 탑 중 크기가 약간 작은 3층 석탑은 평화의 신 ‘비슈누’, 해안 쪽에 있는 5층 석탑은 창조와 파괴의 신 ‘시바’를 모신 곳이다.
 
‘크리슈나의 버터볼’은 마하발리푸람을 찾는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가장 많이 찾는 명소다.
  마하발리푸람엔 ▲돌마차 모양의 사원 ▲거대한 바위 안을 파고들어가 만든 동굴 신전 ▲높이 9m·길이 27m의 바위에 고대 인도의 서사시 ‘마하바라타’의 이야기를 새긴 ‘아르주나의 고행’도 등 화강암을 깎아 만든 다수의 석굴 사원과 조각들이 있다.
 
  이 밖에 ‘크리슈나의 버터볼’도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가장 많이 찾는 명소다. ‘크리슈나의 버터볼’은 금방 굴러 떨어질 것처럼 바위산 비탈에 아슬아슬하게 놓인 공 모양의 큰 바위를 말한다. 그 모습은 설악산 흔들바위와 비슷하지만 규모는 훨씬 크다. 영국이 식민통치를 할 당시 인도인들의 자존심을 꺾기 위해 코끼리 7마리를 동원해 바위를 끌어내리려고 시도했지만 실패했다는 일화가 있다.
 
 
  ‘첸나이 성 도마 성당’은 교황청 공인 ‘가톨릭 성지’
 
예수 제자 도마가 처형당한 곳에 있는 ‘성 도마 마운트 성당’.
  첸나이엔 교회가 많다. 건물마다 십자가가 걸린 우리나라만큼은 아니지만, 십자가가 걸린 교회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힌두교 신자가 대다수이고 소수의 이슬람교도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건 편견에 불과했다.
 
  인도인 13억명 중 88%는 힌두교, 5.6%는 이슬람교를 믿는다. 3%에 해당하는 3900만명은 기독교 신자다. 이 중 절반인 약 2000만명이 첸나이를 포함한 타밀나두주와 케랄라주 등 남인도에 몰려 있다. 남인도의 기독교 신자 비율은 전국 평균의 두 배인 6%인 이유다.
 
  이에 대해 기독교 신자인 김경수 주 첸나이 총영사는 “첸나이가 아시아 기독교의 발상지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예수의 제자 사도 도마가 이곳에서 복음을 전파하다가 순교했다”며 “12사도 중 순교지에 교회가 있는 경우는 바티칸(베드로), 스페인 산티아고(야고보)와 첸나이(도마)뿐”이라고 했다.
 
도마의 유해가 안치된 ‘성 도마 성당’.
  예수 제자 12명 중 도마는 ‘의심 많은 제자’로 불린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처형당하고 나서 부활했다고 하자 도마는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고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고 했다. 예수는 그에게 나타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했다.
 
  전설에 따르면 도마는 서기 52년 인도 첸나이에 들어와 예수의 가르침을 퍼뜨렸다. 도마가 실존인물이라면 서기 1세기 당시 향신료 무역을 위해 남인도에 드나들면서 정착촌을 만들었던 유대 상인들과 함께 인도 땅을 밟았을 가능성이 높다.
 
  인도에서 생활하던 도마는 당시 첸나이를 다스리던 왕의 총애를 받았다. 그는 왕의 새 궁전을 짓는 건설 책임자로 일했지만, 공사 경비 일부를 빼돌려 빈민구제에 썼다. 이를 눈치챈 왕은 서기 72년 첸나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으로 도마를 끌고 가 참수했다. 현재 도마 처형 장소와 무덤으로 알려진 곳엔 도마를 기리는 성당이 있다.
 
  1504년 포르투갈인이 세우고, 1893년 재건축한 첸나이 동부 마리나 해변 인근의 ‘성 도마 성당’은 세계적인 기독교 성지다. 이곳에 도마의 유해가 있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986년 2월 첸나이의 성 도마 성당을 방문했고, 2006년에는 바티칸 교황청이 ‘가톨릭 성지’로 공인했다.
 
 
  첸나이에서 접한 조용기와 정세영의 비화
 
인도 첸나이항에서 선적 대기 중인 현대차 인도공장 생산 차량들.
  차를 타고 첸나이 시내를 오갈 때 차창 너머로 낯익은 사람의 얼굴이 보였다. 거리에 걸린 포스터엔 조용기 순복음교회 원로목사의 사진이 있었다. 조 목사는 6월 8~9일 첸나이에서 열린 ‘인도 하나님의 성회 100주년 기념 대성회’에 참여했다.
 
  조 목사는 1994년 2월 인도 정부가 사상 최초로 승인한 기독교 집회를 마드라스(현 첸나이)에서 개최한 바 있다. 당시 집회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긴 해변인 ‘마리나 해변’에서 열렸다. 집회엔 사흘 동안 200만명이 모여들었다. 길이 13km에 달하는 마리나 해변은 조 목사의 설교를 듣기 위해 모인 인파로 뒤덮였다는 후문이다. 남인도의 기독교 신자들의 모습에 감명을 받은 조 목사는 1994년 당시 마리나 해변 집회를 가장 기억에 남는 행사로 꼽는다고 한다.
 
  조 목사 외에도 첸나이와 깊은 인연이 있는 한국인이 한 명 더 있다. 오늘날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의 기반을 다진 고(故) 정세영 현대자동차 회장이다.
 
  1996년 5월 현대자동차는 첸나이에 인도 현지 법인을 설립하고, 산트로(아토스) 양산을 시작으로 인도 시장 점유율을 지속적으로 늘렸다. 인도 진출 20년을 맞은 현대차는 지난해 현지 시장에서 자동차 48만 대를 판매했다. 시장 점유율은 17.5%로 2위를 기록했다.
 
  이 같은 현대차의 인도 시장 안착은 정세영 회장의 노력 덕분에 이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포니정재단에 따르면 1990년대 중반 당시 정 회장은 차량으로 하루에 200~300km 이동하면서 인도 현지 공장 후보 부지를 답사했다. 이동 과정에서 끼니를 거르는 일도 다반사였다.
 
  김경수 주 첸나이 총영사는 정 회장이 첸나이에서 공장 부지를 물색할 당시의 비화를 소개했다.
 
  “정세영 회장이 첸나이의 공장 후보 부지를 점검할 때 맨발로 걸어다니면서 땅의 기운을 확인했다고 해요. 맨발로 돌아다녀 봐야 사업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곳인지 알 수 있다고 하면서요. 지금이야 현대차 법인이 있는 곳에 공장들이 많이 있지만, 당시엔 허허벌판이었거든요. 정 회장이 그 벌판에서 어떤 기를 느꼈는지 몰라도 그 자리에서 바로 공장 부지를 확정했대요. 그 덕분인지 몰라도 현대차는 지금 인도 시장에서 성공을 거뒀고, 첸나이는 현대차와 그 협력업체 80여개가 진출해 한국 교민만 4000여명에 이르는 곳이 됐습니다.”⊙
  • 스크랩
URL이 성공적으로 복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