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은 증명한다 〈1〉 박정희 대통령과 김재규의 우연한 동거

호남남해고속도로에서 발견한 김재규의 글

  • 글 : 문갑식 월간조선 편집장  gsmo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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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속도로 건설 후인 1974년 11월 남긴 기공비
⊙ ‘박정희 대통령 각하의 영도 아래 전 국민이 뭉쳐 일한 흔적…’
⊙ 그 바로 옆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글씨도 제자題字돼 있어
호남남해고속도로 준공기념탑.
여성이 월계관을 두 손으로 떠받치고 있는 모습이다.
이런 글을 이런 자리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호남남해고속도로 경상남도 진주에서 전라남도 순천으로 가는 방향, 섬진강 휴게소에서다. 잠시 쉬려고 차를 세웠는데 피아노계단이라는 게 보였다. 사람이 밟고 올라가면 ‘도레미파솔…’ 하는 식으로 음(音)이 들렸다. 그 위에는 다리가 있다.
 
  양측 휴게소를 잇는 교량이다. 그곳을 지나치려는데 ‘김재규(金載圭)’라는 이름이 보였다. 김재규? 혹시? 하는 생각이 적중했다. 고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전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1974년 11월 건설부 장관을 할 때 이 고속도로를 완공하고 그것을 기념해 만들어놓은 돌비석이었던 것이다.
 
  “이 고속도로는 박정희 대통령 각하의 영도(領導) 아래 전 국민이 굳게 뭉쳐 조국 근대화의 신념을 가지고 땀흘려 일한 결정(結晶)이며 우리 후손에게 물려줄 값진 민족자산으로 전 국토의 4대 권역을 완전한 1일 생활권으로 묶어 균형적인 발전을 기약하는 지름길이다.” 문장은 상념을 낳게 한다.
 
호남남해고속도로 준공기념탑이라는 글자는 박 대통령의 필적을 모아놓은 것이다.
  이런 칭송을 바친 지 4년11개월 후 김재규는 자신을 중용(重用)했던 대통령을 서울 궁정동 안가에서 권총으로 암살한다. 이런 생각을 하며 주변을 거닐다 또 놀랐다. 김재규가 세운 비석에서 5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박 대통령의 글씨가 있는 것이다. 글은 대통령이 직접 쓴 것은 아니었다.
 
  ‘호남남해고속도로 준공기념탑’이라는 글씨는 박 대통령의 필적을 제자(題字)해 놓은 것이었다. 상사와 부하, 은인과 배신자의 흔적이 마치 기획이라도 해놓은 것처럼 같은 장소에 있는 사례는 흔치않다. 1979년 10월 26일 사망한 박정희 대통령은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안장돼 있다.
 
  그로부터 7개월여 지난 1980년 5월 24일 처형된 김재규는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능평리 삼성공원에 안장돼 있다. 김재규를 옹호하는 이들이 ‘의사(義士) 김재규 장군 추모비’라는 글을 새겼으나 박정희 대통령 지지자들이 ‘의사’와 ‘장군’이라는 글씨를 지우려 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
 
김재규가 건설부 장관 재직 당시 써놓은 박 대통령 칭송 글이다.
  혹자는 김재규의 묘가 명당에 가깝다고 하지만 이것은 부질없는 것이다. 김재규 역시 경북 구미시 옥성면 이문리에 있는 부모의 묘소를 명당에 잡았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일설에 따르면 김재규는 건설부 장관 당시 당대의 풍수가 육관 손석우를 헬기에 태워 이곳을 점지받았다.
 
  그런데 또 다른 풍수가 장용득이 육관도사와는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는 것이다. 육관은 이곳을 “왕이 배출될 제왕지지(帝王之地)”라고 했지만 장용득은 “총이나 칼로 죽게 되는 이금치사지지(以金致死之地)”라고 했다는 것이다. 결과는 독자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김재규는 총으로 죽고 말았다.
 
  놀랍게도 이런 에피소드를 낳은 육관은 지금도 명당으로 알려져 있는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남원군이 묻혀 있는 충남 가야산 자락 바로 위에 있다. 그 땅을 보기 위해 전국의 풍수가들의 발길이 지금도 육관의 묘 앞으로 몰려들고 있지만 혹자는 “이곳 역시 그다지 좋은 터는 아니다”고 말한다.
 
  땅은,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은 자세히 살펴보면 역사 속의 인간과 욕망을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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