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속도로 건설 후인 1974년 11월 남긴 기공비
⊙ ‘박정희 대통령 각하의 영도 아래 전 국민이 뭉쳐 일한 흔적…’
⊙ 그 바로 옆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글씨도 제자題字돼 있어
⊙ ‘박정희 대통령 각하의 영도 아래 전 국민이 뭉쳐 일한 흔적…’
⊙ 그 바로 옆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글씨도 제자題字돼 있어

- 호남남해고속도로 준공기념탑.
여성이 월계관을 두 손으로 떠받치고 있는 모습이다.
양측 휴게소를 잇는 교량이다. 그곳을 지나치려는데 ‘김재규(金載圭)’라는 이름이 보였다. 김재규? 혹시? 하는 생각이 적중했다. 고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전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1974년 11월 건설부 장관을 할 때 이 고속도로를 완공하고 그것을 기념해 만들어놓은 돌비석이었던 것이다.
“이 고속도로는 박정희 대통령 각하의 영도(領導) 아래 전 국민이 굳게 뭉쳐 조국 근대화의 신념을 가지고 땀흘려 일한 결정(結晶)이며 우리 후손에게 물려줄 값진 민족자산으로 전 국토의 4대 권역을 완전한 1일 생활권으로 묶어 균형적인 발전을 기약하는 지름길이다.” 문장은 상념을 낳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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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남남해고속도로 준공기념탑이라는 글자는 박 대통령의 필적을 모아놓은 것이다. |
‘호남남해고속도로 준공기념탑’이라는 글씨는 박 대통령의 필적을 제자(題字)해 놓은 것이었다. 상사와 부하, 은인과 배신자의 흔적이 마치 기획이라도 해놓은 것처럼 같은 장소에 있는 사례는 흔치않다. 1979년 10월 26일 사망한 박정희 대통령은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안장돼 있다.
그로부터 7개월여 지난 1980년 5월 24일 처형된 김재규는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능평리 삼성공원에 안장돼 있다. 김재규를 옹호하는 이들이 ‘의사(義士) 김재규 장군 추모비’라는 글을 새겼으나 박정희 대통령 지지자들이 ‘의사’와 ‘장군’이라는 글씨를 지우려 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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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규가 건설부 장관 재직 당시 써놓은 박 대통령 칭송 글이다. |
그런데 또 다른 풍수가 장용득이 육관도사와는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는 것이다. 육관은 이곳을 “왕이 배출될 제왕지지(帝王之地)”라고 했지만 장용득은 “총이나 칼로 죽게 되는 이금치사지지(以金致死之地)”라고 했다는 것이다. 결과는 독자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김재규는 총으로 죽고 말았다.
놀랍게도 이런 에피소드를 낳은 육관은 지금도 명당으로 알려져 있는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남원군이 묻혀 있는 충남 가야산 자락 바로 위에 있다. 그 땅을 보기 위해 전국의 풍수가들의 발길이 지금도 육관의 묘 앞으로 몰려들고 있지만 혹자는 “이곳 역시 그다지 좋은 터는 아니다”고 말한다.
땅은,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은 자세히 살펴보면 역사 속의 인간과 욕망을 증명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