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편의 시가 이 밤에 나타난 까닭은 나의 殺氣가 내게 미치기 때문”
⊙ “종종 활자들이 와르르 무너져 폐허가 되는 內面도 있다. 나는 그 부실이 두렵다”
尹性澤
⊙ 42세. 한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2001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 시집 《리트머스》 《감(感)에 관한 사담들》, 산문집 《그사람 건너기》 출간.
⊙ 한국시인협회 젊은시인상 수상
⊙ “종종 활자들이 와르르 무너져 폐허가 되는 內面도 있다. 나는 그 부실이 두렵다”
尹性澤
⊙ 42세. 한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2001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 시집 《리트머스》 《감(感)에 관한 사담들》, 산문집 《그사람 건너기》 출간.
⊙ 한국시인협회 젊은시인상 수상
‘나’라는 실체에 너무 많은 세월을 걸었으므로, 이 도박은 진심만이 패를 쥐고 있는 형국. 순간순간 내가 새로이 내어지는 일상. 낮에 그토록 집착했던 몸이 꿈 속에서는 한없이 사소해진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정처없이 떠도는 것은 분노나 욕심이 서린 일들뿐. 마음은 가볍게 떠 있으나 그 마음을 띄우기 위해 눈물겹게 버티는 그 어떤 비중이 있다는 사실. 은유가 직유를 살해하고 자살하는 것이 시(詩)라면, 나는 내 안에 일어나는 모든 일의 유서(遺書). 그리고 꿈을 잠그고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 생의 내력. 이제, 그 첫 줄이 내 목을 감아 그들을 구한다, 라고 하자.
아직도 우리는 살아서 잊는다/ 잊어서 아직도 내일이 다가온다/ 낯설은 내가 깨어나면 밤사이/ 어떤 밀도를 지나왔는지 알 수 없다/ 별빛이 무수한 꿈들에 닿을 때/ 아득하게 가라앉아 있는 심연 아래/ 누구에게나 떠오르지 않는 슬픔이 있다/ 다만 습관처럼 밤을 기다렸고/ 사소하게 눈을 감아 왔다는 것/ 별은 그 안에서 일생을 밝힌다/ 어느 미지에 불현듯 몸을 빌려/ 깨어난다 해도 이 밤을 각오해야 한다/ 밤하늘이 세포로 촘촘하여/ 꿈은 내내 나를 여행하다/ 이 밤에 잠시 머무는 생각
-‘꿈’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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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성택 시인의 시집들. |
몸이 생각을 앓고 나면 다시 생각이 몸을 추슬러 한 사람이 된다. 나도 모르게 어딘가에 부딪힌 멍을 샤워하다 발견할 때, 차가운 물이 눈동자에 닿기 전 순식간에 감는 눈의 반응에 몸이 나보다 더 자신을 사랑한다는 걸 느낀다. 화초 잎을 가위로 자른 다음 다시 가위를 화초에 가까이 대면 화초도 운다. 잎맥 사이로 급속하게 전기저항이 일면서 안으로 부르르 떠는 것이다. 식물에도 감정이 있으니 내 몸에도 나 아닌 마음이 있는 걸까. 내 몸에 들어가 갑옷을 입듯 깨는 아침. 내 몸이 가만히 부르르 떤다.
아득한 박동과 그 형태로 뻗어가는 내 낯섦을 빠져나가기 위해/ 떠다니는 기면(嗜眠)에서는 꿈도 불순하다/ 몸이 일그러지고, 촌각마다 화염이 비어져 나올 뿐// 누군가 촛불을 끄자 흰 연기가 지느러미를 훑으며/ 검은 점을 향해 나아간다
-‘지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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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가끔 나를 겉돈다는 걸 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절박함 앞에 서성인다. |
나는 이제 그를 마음에 눕히고 조용히 베개로 얼굴을 덮어야 한다. 버둥거리는 그를 꾹 누르면서 마지막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이 무엇일까. 잊힐 권리란 추억 밖의 추악일까. 내 글은 끊임없이 미래의 나라는 존재의 힘에 의해 교정된다. 아니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친다. 내가 살해한 글이 그러하듯, 나는 나를 의심하며 나 아닌 나를 위해 위태한 문장의 길을 간다. 한 편의 시가 이 밤에 나타난 까닭은 나의 살기(殺氣)가 내게 미치기 때문이다. 고비사막에 바람이 불면 오늘 밤 죽은 문장이 발굴된다.
나에게는 아직 눈물과 더러운 이해가 필요하다/ 흉한 먹구름 속에서 번쩍거리는 집착이/ 칠흑의 향기를 내뿜으며 흩어져 내린다 나는/ 아무 정처없는 단서이면서/ 탁한 환멸의 무게, 그 속성이며 취미// 날씨는 채택에 가깝고 시간은 계속 불황이다
-‘시간의 환부’ 중에서
시는 단어와 단어 사이의 간극에 절박함을 데려와 문장으로 일생을 살게 한다. 그러나 종종 활자들이 와르르 무너져 폐허가 되는 내면도 있다. 나는 늘 그 부실이 두렵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극은 어떤가. 진실함과 절박함이 오래 마주하다 진실이 떠나고 나면, 절박은 저 혼자 사람과 사람 사이 귀신이 된다. 스스로의 정체성을 잃은 채, 이기(利器)와도 욕망과도 내통하며 사람을 홀린다. 진실이 있지 않은 절박은 더 이상 사람이 될 수 없다. 시가 될 수 없다. 그러니 나의 이 절박은 무엇인가.
아무도 가보지 못한 숲이 세상에 있고/ 알면서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마음이 있다/ 우리는 위태로운 길을 보내 서로의 방향이 될 뿐/ 아무것도, 혹은 밝혀진 것이 없는 숲을 간직한 채/ 일생 안에서 어두워지는 것이다
-‘숲을 걷는다’ 중에서
내 심장 어딘가에서는 굴뚝이 있고 연신 뿜어내는 매연이 있다. 회색이 짙을수록 어느 강가 수면 위로 쿨렁쿨렁 안개가 뱉어진다. 내 안이 지옥이 되어야 내 밖이 살아갈 수 있다. 나는 어쩌면 생을 광합성하며 타들어가는, 시간에 뿌리 내린 공단(工團)일지도 모른다. 나의 재화를 위해 주위를 망치는 날들이 많아지는 건 아닐까. 때로 배려가 오염으로 이어지는 것만 같아 내가 흘려보냈던 마음이 폐수로 시커멓게 보인다. 어쩌자고 나는 내 안에 그 많은 도시를 세운 것일까. 공산품 같은 표정을 도처에 보내며 감정을 혹사시키며. 안개가 짙은 날은 누군가의 후회가 이날에 도착한 것이다. 희미한 앞을 휘저으며 한 사람이 쓸쓸히 제 미련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밤이 그치고 숲의 깊은 곳까지 서걱거리는 안개가 불빛을 들이마신다// 구부정한 가로등이 알약 속으로 들어가/ 어둡고 투명한 병을 만나면/ 고통도 잠시 별이 될 수 있을까// 아침은 불면(不眠) 밖이 만져져 까칠하다
- ‘안개’ 중에서
밤이 열이 많으면 생(生)도 잠시 빙점에 나타난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 오랜 날이 지나면 추억에도 열대야가 있다. 이날은 갇혔던 생각 속으로 과거의 밀도가 차올라, 형체가 만들어진다. 차가운 얼음을 깨무는 밤은 그래서 아리다. 잠 못 드는 이 밤이 어느 날 부피의 결핍이듯. 나는 아직도 밤이 일생을 다운로드하는 버퍼링(Buffering)이라 생각한다. 밤새 침대에서 전송과 충전을 마친 사람은 생생하게 낮을 저장한다. 그러나 한 번도 폴더에 들지 않은 인연이 어느 날 나를 다운시키기도 한다. 뻑 나듯 현실이 둔기가 되는 날, 전원을 켜둔다. 그때는 인생이 한여름 밤이다. 나는 지금 이 밤의 온도를 얼음 속에서 적고 있을 뿐이다.
일생을 기계 속으로 전송시킨다면/ 바코드로 된 영혼을 얻을지도 모르는 일/ 밀었다 당겼다 밤낮이 가고/ 끝내 계좌를 터오는 죽음으로부터/ 드드득 드드득 타전되는 소리,/ 구겨지거나 반듯하거나 찢어지거나/ 이곳에서 다운로드 된 사람의 것이다
-‘현금 자동지급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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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詩는 내게 필수품 같은 것이다. 그래서 스마트폰으로 시를 쓴다. |
로그인을 했다가 로그아웃하면/ 육안으로 보이는 곳에서도 나는 없다/ 내가 사실로 존재하는 것은/ 경계에 접속된 순간뿐이다/ 어디에도 있는 나를/ 어디에도 없게 하는 로그아웃,/ 나는 태연하게 다른 곳으로 로그인된다
-‘로그인’ 중에서
살면서 내 것을 버리는 데 걸리는 시간이 추억을 무모하게 만든다. 이해도 확신도 없는 너무 빨랐거나 너무 느린 기억의 속성. 들여다볼수록 지그재그로 금만 갈 뿐. 두려운 것은 내가 하나의 선택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변주된 청춘이 꿈의 환부마다 필연을 바르는 그저 이미지로 종속된 시간들. 그러니 일생에게 있어 생은 얼마나 관대한 광경인가.
우리가 보는 세계는 점점 사라지고 과거는 우리를 추억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전송되는 텍스트로 만든다. 잠시 후 이 글은 공기와 빛을 자장으로 다른 몸을 이룰 것이다. 불현듯 또 다른 내가 생각을 입을 것이다. 명랑한 집착아, 부식된 환상아, 안녕.
이제 내 뜻으로 나를 하나 버렸다.
돌아올 수 없는 추억은 아름답다/ 그런 추억일수록/ 현실을 누추하게 관통해야 한다/ 모든 기억은 추억으로 죽어가면서/ 화려해지기 때문이다
- 시집 《감(感)에 관한 사담들》 시인의 말⊙
詩人이 만난 詩人
“내면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면 시가 나온다”
⊙ 서적 도매상 이모부로부터 방학 때마다 수많은 책 선물 받고 詩에 관심 가져
⊙ 入隊 하루 전 오토바이 사고 나… 인생 진로를 바꾸다
⊙ 詩는 필수품 같은 것… 이제 스마트폰으로 시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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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은 시를 쓰려는 이들에게 “시를 쓰는 데 있어 어떤 경계를 세워 그것에 함몰되지 말고 자신의 글을 쓰기 바란다”고 조언했다. |
서울서 가져온 수많은 책 보며 詩 쓰게 돼
윤성택 시인은 충남 보령 출생이다. 사실 윤성택 시인을 만나면 이 시인이 과연 촌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는지는 쉽게 예측할 수 없다. 다만 지금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그의 유년(幼年)이 현재 그를 시인을 만드는 첫 계기가 되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보령이 고향인데 실제로는 대천과 더 가깝지요. 그렇다고 제가 도시에 대한 동경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초등학교 때 이모부가 서울 종로에서 큰 서점에 책을 납품하는 도매상을 했어요. 저는 방학 때마다 서울에 사는 이모부 댁에 놀러 갔지요. 혼자 서울을 자주 가다 보니 서울에 대한 열등감이나 특별한 그리움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1~2주 놀다 가면 이모부는 저에게 한 권 두 권이 아닌 한 질씩 책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 많은 책을 집으로 가지고 가는 일은 어린 학생으로서 너무 힘들었죠. 대천역까지는 편하게 갈 수 있는데, 다시 대천역부터 집까지 그 많은 책을 질질 끌고 가는 것을 상상해 보세요.”
어린 윤성택은 책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고 한다. 그 많은 책을 어떻게든 집으로 가지고 가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그렇게 힘들게 얻은 책이어서인지 어릴 때부터 책에 대한 소유욕이 컸어요. 그 책을 읽고 또 읽고 읽으면서 책에 대한 감상과 하루의 일과를 계속 써나갔지요. 그렇게 해서 초등학교 6년 동안 꾸준하게 일기를 쓰게 됐습니다. 일기를 쓰는 와중에 저는 마음에 있는 속마음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게 제가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첫 계기였습니다.”
1. 초등학교 4학년, 여름방학
세계명작동화 전집 한 질을 깔고 앉아 존다
기차의 등받이로 삶은 계란 껍질이 부서진다
그늘이 반쯤 베어 먹은 객차는 더위로 텁텁하다
자면 안 돼 홍성 광천 다음엔 대천이야
내려야 할 역은 다가오는데 선풍기 바람은
잠을 휘휘 감고 터널을 꿀꺽 삼킨다
—‘추억에 들르다’ 중에서
윤성택 시인은 시에서 자신의 유년시절을 재미있게 드러낸다. 시인의 유년시절을 그린 이 시가 유쾌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시인 또한 그 시절을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이고 그 마음이 읽는 사람에게도 진심으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고통이 가져다준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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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기억은 추억으로 죽어가면서 화려해진다. 미래는 삶의 그 순간으로 이루어진다. |
“군대 가기 전날 오토바이를 타다 사고를 크게 당했어요. 내일이 입대이기 때문에 입대 전날 대천 시내를 오토바이를 타고 무작정 달렸지요. 내리막길을 가고 있어 저는 속력을 올렸어요. 그런데 마주 오는 트럭이 보이는 거예요. 트럭 또한 속력을 내고 있었어요. 저는 트럭을 피해 핸들을 꺾었고, 몸은 공중에 떴다가 아스팔트 바닥에 몇 바퀴 나뒹굴었습니다. 그런 후 가로수와 가로등 사이로 빠져나가 논두렁에 처박혔습니다. 왼쪽 얼굴은 일그러졌고 다리도 심한 부상을 입었지요. 그래도 일단은 군대에 입대하지 않으면 큰일을 당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응급처치만 하고 다음날 입대했습니다. 신병훈련소 군의관은 얼굴에 붕대가 칭칭 감겨 있는 저를 보고 귀향조치시켰습니다. 저는 제 모습이 혐오스러웠고 스스로 낙담했죠. 그래서 몸을 치료하는 동안 외부활동을 일절 안 했습니다.”
시인은 큰 사고로 인해 자신과 세계에 처음으로 경계를 그었다.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이었다. 시인은 그 고통을 통해서 또 다른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치료를 하는 동안 한 일이라고는 서점, 비디오 가게, 집, 그 세 곳만 왔다갔다했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활동성이 떨어지는 영화를 보고 책을 보고 글을 쓰는 일이 전부였어요. 그런데 그 시간 동안 시를 엄청나게 썼습니다. 매일매일 느꼈던 그때그때의 감정을 솔직하게 써내려갔죠. 다른 사람과의 대화가 아니라 저 자신과 대면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아마도 이 시기는 제가 고통을 견뎌내기 위해 저 자신을 설득하는 과정이었던 모양입니다. 제가 저를 보는 일이었으므로 저는 솔직하게 쓸 수 있었습니다. 저의 진심을 담은 시 습작이 되었던 셈이죠. 고통이 저를 시인으로 만들어준 것이었죠.”
시인은 일 년의 시간 동안 시 쓰는 일에 전념하며 스스로를 단련시켰다. 이듬해 군에 다시 들어갔고 제대하고 나서 기존에 다니던 학교를 때려치우고 문예창작학과로 방향을 바꿨다. 자신감과 패기로 시를 써나가는 와중에 2001년 《문학사상》으로 등단했다. 그가 낸 첫 시집 《리트머스》는 현재 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봐야 할 시집이 됐다.
다양한 사회문화예술 활동에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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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은 문화예술인 모임인 ‘헤이리마을’의 국장을 14년간 지냈다. 한국시인협회 사무국장으로도 일했다. 요즘은 헤이리마을에 위치한 ‘정한숙’ 기념관에서 서원(書院)을 운영하고 있다. |
“모든 문화예술 장르 상위에는 시가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해요. 문화행사를 시를 중심으로 풀어냈을 때 메시지 전달에 효과적이라는 것을 많은 행사를 통해서 알게 됐습니다. 물론 제가 한 활동들이 시낭송만 하는 문화예술 공연은 아니었어요. 시낭송만으로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저는 시를 음악과 연극, 캘리그라피와 접목시키는 공연을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공연·전시를 하다 보니 시가 음악과 연기로 풀어지면서 관객들에게 세련되게 전달되었습니다. 기획자로서의 욕구가 반영되는 게 신기하기도 했지요.”
시인은 30대 젊은 시절을 사회문화예술 활동에 모두 쏟아부었다. 매일매일 회의의 연속이었고 지역주민을 만나서 행사에 관한 이해와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다양한 문화예술인들을 만나다 보니 사회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관계’라는 단순한 진리를 깨닫게 됐습니다. 그런데 서로에 대한 반응이라고 할까요, 관계와 눈치라는 이율배반적인 상황에서도 업무는 해야 했습니다. 이런 역설적 상황이 시를 쓰는 데 큰 도움이 됐어요. 성질이 다른 관계와 눈치를 문학으로 잇는 과정에서 쪼개진 부분을 알맞게 얽어놓으면 자연스럽게 시적인 문장이 생산되는 거였습니다. 내가 아닌 상대가 되어보는 방식 중에 가장 효과적인 것이 시라고 생각합니다.”
윤성택 시인은 평소에도 시를 열심히 쓴다. 그 이유가 사뭇 흥미롭다.
“처음 등단했을 때에는 세상을 다 가진 듯이 기뻤어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기존에 등단한 시인들이 하나 둘씩 사라져 가는 것을 보게 되었지요. 저는 그게 두려웠어요. ‘나 또한 이 문단에서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휩싸였던 겁니다. 그것을 이겨내는 방법이 바로 시를 쓰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열심히 말입니다.”
윤성택 시인은 두 번째 시집 《감(感)에 관한 사담들》 이후 시 쓰기 방식에 변화를 주고 있다. 더 이상 방문을 닫고 조용한 상태를 유지하며 시를 쓰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이제 스마트폰으로 시를 쓴다. 세 번째 시집은 스마트폰으로 쓰인 시를 묶어서 출판할 계획이다.
“컴퓨터 대신 스마트폰으로 시를 써요. 스마트폰은 우리에게 일상의 상징이 됐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시를 쓴다는 것은 시가 저의 일상과 완전히 합치되는 것을 의미해요. 컴퓨터 앞에서 쓴 시는 어깨에 힘이 들어간 것이었으나 스마트폰으로 쓴 시는 한결 부드러워지고 저의 속마음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됐습니다. 시를 처음 썼을 때의 느낌이 나기도 하죠. 생각날 때마다 메모를 쉽게 하게 되고, 다른 사람의 눈치와 상관없이 스마트폰으로 시를 써요. 제가 필수품처럼 시를 다루게 된 이유입니다. 이전보다 시가 훨씬 편해진 거죠.”
문학을 즐기고 싶은 사람에게
윤성택 시인의 홈페이지는 유명하다. 시를 쓰고자 하는 습작생들에게 상당히 지명도가 있는 홈페이지이다. 천여 편이 넘는 시가 올라와 있고 각 편마다 시인이 코멘트를 했다. 그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했다.
“내 안에 있는 목소리를 적어내고 싶다는 욕구에 충실하십시오. 시를 쓰고 싶은 사람은 자기 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자신에서 상대방에게 진솔하게 전해지는 것이기도 합니다. 시에서는 진정성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것만 있다면 나머지 부분은 자연스럽게 따라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많은 시를 읽고 많은 시를 쓰면서 자기만의 스타일을 정립하면 될 것입니다. 현대철학으로 시를 바라보는 것은 좋습니다. 그런데 철학 또한 나 자신에 대한 물음이지 않습니까? 스스로에 대한 자의식을 밝혀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습작생이 어떤 이론에 맞춰서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초점을 맞춥니다. 아주 어려운 방식으로요. 일부는 그러한 것이 필요하겠지요. 다만 자신의 진정한 자의식을 숨기지 말고 소통할 수 있는 시를 썼으면 좋겠습니다. 시를 쓰는 데 있어 어떤 경계를 세워 그것에 함몰되지 말고 자신의 글을 쓰기 바랍니다.”⊙
〈글 김민철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