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은 세상의 또 다른 불가능을 발견하기 위해 떠나는 일
⊙ 詩人은 바라보고도 다 바라보지 못하고 질끈 눈을 감는 사람
李秉律
⊙ 46세.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199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 시집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 《바람의 사생활》 《찬란》 《눈사람 여관》,
여행산문집 《끌림》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등 다수 출간.
⊙ 현대시학작품상 수상.
[편집자 주]
한국시인협회의 자문을 받아 진행하는 ‘詩人의 詩’는 우리 시단(詩壇)에서 ‘실력 있는 시인’으로 평가받는 이들의 육성을 직접 듣고자 기획했다. 대중성도 중요하지만 보편성, 참신성, 작품성에 더 큰 비중을 뒀다. 민주화와 이념 투쟁의 시대 이후에 등단한, 즉 199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까지 등단한 시인들 가운데 ‘신진’이면서도 ‘중견’의 길을 걷는 뛰어난 시인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문단의 등뼈 역할을 하고 있는 이들의 작품 경향을 파악해 보는 것은 우리 사회에 대한 당대 지식인들의 반응 양상을 통찰하는 일이기도 하다.
⊙ 詩人은 바라보고도 다 바라보지 못하고 질끈 눈을 감는 사람
李秉律
⊙ 46세.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199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 시집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 《바람의 사생활》 《찬란》 《눈사람 여관》,
여행산문집 《끌림》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등 다수 출간.
⊙ 현대시학작품상 수상.
[편집자 주]
한국시인협회의 자문을 받아 진행하는 ‘詩人의 詩’는 우리 시단(詩壇)에서 ‘실력 있는 시인’으로 평가받는 이들의 육성을 직접 듣고자 기획했다. 대중성도 중요하지만 보편성, 참신성, 작품성에 더 큰 비중을 뒀다. 민주화와 이념 투쟁의 시대 이후에 등단한, 즉 199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까지 등단한 시인들 가운데 ‘신진’이면서도 ‘중견’의 길을 걷는 뛰어난 시인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문단의 등뼈 역할을 하고 있는 이들의 작품 경향을 파악해 보는 것은 우리 사회에 대한 당대 지식인들의 반응 양상을 통찰하는 일이기도 하다.
‘장도열차’라는 시는 어떻게 쓰였는지 모른다는 점에서 기묘하게 태어났다. 미치거나 기갈(飢渴)에 들지 않고는 그토록 다닐 수 없었던 날들 가운데, 오래 시간을 벼린 씨앗처럼 툭 하고 벌어져 버렸다. 기차를 좋아하는 아이였고, 기차를 타고 도시에서 고향으로 일 년에 몇 번씩 오가야 하는 아이였고, 그렇게 기차에서 본 많은 풍경을 쌓고 쌓다가 시인이 되기로 했던 소년은 성장을 하고도 계속해서 기차에서의 삶을 살게 된다. 실로 엄청난 풍경과 사람을 실은 기차는 그 방향이 극지(極地)라는 사실만을 알고 있을 뿐이다.
그토록 차오른 만큼이었을까. 어떻게든 쏟아내지 않으면 안 되는 일종의 요의(尿意) 같은 것이었을까. 수첩을 덮어둔 지 언제인지 모르는 어느 먼 훗날, 수첩을 여는데 이런 메모가 발견되었다.
![]() |
| 수첩에 몇 자 적은 메모가 詩가 되기도 한다. |
—대륙에 사는 사람들은 긴 시간 동안 열차를 타야 한다. 그래서 그들은 만나고 싶은 사람이나 친척들을 아주 잠깐이나마 열차가 쉬어가는 역에서 만난다. 그리고 그렇게 만나면서 사람들이 우는 모습을 나는 여러 번 목격했다.
이번 어느 가을날,
저는 열차를 타고
당신이 사는 델 지나친다고
편지를 띄웠습니다
5시 59분 도착했다가
6시 14분에 발차합니다
하지만 플랫폼에 나오지 않았더군요
당신을 찾느라 차창 밖으로 목을 뺀 십오 분 사이
겨울이 왔고
가을은 저물 대로 저물어
지상의 바닥까지 어둑어둑해졌습니다
—시집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 중에서
메모가 시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시를 쓰겠다고 목숨 걸고 달려들었으나 시를 쓰는 일은 목숨을 걸어서는 안 되는 일인가 싶어 어정쩡하게 서 있을 무렵이었다. 1995년에 신춘문예로 데뷔하고 약 3년 뒤쯤인가 노트에 적은 글을 어느 날 새롭게 옮겨 적으면서 이 짧은 글은 온전히 시가 되었다. 하지만 발표를 하지 않았다. 지면도 없으려니와 시인 것과 시가 아닌 것의 경계에 있는 단순한 기록 같아서였다.
어떤 시는 시를 쓴 시인에게 빛을 데려다 주기도 한다. 힘이 되어 지속적으로 시인을 따라와 주는 시가 그런 시다. 나에게 ‘장도열차’는 그런 자격으로 자리매김을 한다. 이 시가 대단해서라기보다 이렇게도 시가 되는구나 싶었던 이 시가 서정에 갚을 것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게 하면서 계속해서 이 길을 가야겠다는 어떤 시적 확신을 갖게 해주었던 것 같다.
앞서 말한 것처럼, 때로 시는 무의식의 산물이기도 하여서 나를 구성하고 있는 주된 정서를 어쩔 수 없이 쏟아붓게도 되는데, 궁상맞게도 처량하게도 ‘장도열차’에는 ‘이병률이라는 사람’의 지독한 냄새가 모두 들어가 있다. 간절한 기다림에도 불구하고 만날 수 없다는 체험이 그 뼈대를 이루고 있으며 구도는 투명하다. 패기는 애써 숨긴 듯하고 균형에 휘둘리지 않으려 한 흔적도 보인다.
그렇다면 나라는 사람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닿을 수 없는 것만이 귀하고 소중하다. 그것은 인간이기 때문에 가능한 가치이다. 어느 사이 길에서만 가능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희망도 의욕도 사랑조차도. 그것은 어느 순간 보기 좋게 산산조각이 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오직 길에서 그것을 붙들고자 길을 택한다. 나의 경우, 여행은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려고 떠나는 게 아니라 세상의 또 다른 불가능을 발견하기 위해 떠난다. 나는 내가 쓴 시로 하여금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것이 기다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인생은 살아가는 게 아니라 기다리는 것일 테니까. 제대로 눈을 뜨고 살아도 모자를 판에 맹목(盲目)을 가진 것이다.
안 그래도 허수경 시인은 나의 그런 기미에 대해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지독한 텍스트를 쓰는 자는 이생에서는 장님이다. 이 장님이 세상의 지도를 더듬어 어딘가로 갔다가 다시 돌아올 때 결국 쉴 수 없는 마음은 경계를 넘어선 불구의 표정을 지니게 된다(시집 《찬란》의 해설 가운데)’고.
나에게는 사람이 별이어서 사람으로 나를 밝힐 수 있다. 사람으로 활달해지며 사람으로 젖으며 사람으로 일어선다. 그렇다 하더라도 사람을 가질 수 있던가. 어떻게 나의 것이 될 수 있는가. 더더군다나 사람으로 눈이 멀어 불구가 되었다면.
내가 살고 싶은 곳은 거의 먼 곳이었고(이곳이 받아줄 것 같지 않아서) 그 먼 곳에서조차 내가 가야 할 곳은 더 많은 먼 곳이었다(어느 곳도 받아줄 것 같지 않아서). 그래 그런가. 시집마다 기차에 관해 쓴 시가 네댓 편이 넘을 만큼 기차는 불가능한 인연들에게로 데려가 주는 지느러미 역할을 했다.
그 ‘불가능한 풍경(인연)들’에 대한 이야기는 나의 많은 시에 처연하게 파고든다. 그리고 나에게는 불가능한 ‘당신이라는 존재들’도 마찬가지의 자격으로 스민다. 예를 들면 이런 이야기.
자상한 시간
의자가 앉으려 하고 있다
사람은 사람을 서로 아프게 하여
스스로 낫기도 하겠다는데
나는 한사코 혼자 앓겠다는 사람 옆에 있다
의자는 의자에 앉으려 애쓰고 있지만
꽃과 이 사람은
무엇을 애써 누르려 한 적도
살겠다고 애쓰는 것도 본 적이 없다
어둠이 소금처럼 짠 밤에
병이란 것과
병이 아닌 것을 아는 시간이 뜨겁게 피었다
의자를 의자에 앉힐 수 없어
풀과 나무들과
공기들의 땀 냄새를
마시고 녹이는 사이
그 바깥은
죽을 것처럼 맞춰진 시간들이
다시 죽을 것처럼 어긋나고 있었다
까치야
소용없단다
이 밤에 아무리 울어도
기쁜 일은 네 소관이 아니란다
—시집 《찬란》 중에서
우리는 누구나 혼자이지만, 혼자가 되지 않으려 한다. 둘이면서도 혼자이고, 혼자라서 둘이 될 수도 없다. 이 비극적인 영혼의 장난을 우리는 마침내 피할 수 없다. 기다림 끝에도 기쁨은 좀처럼 찾아와 주지 않는다. 닿을 수 없는 인연은 영원히 닿을 수 없어서 잔인한 거리를 둔다.
이 잔인하면서도 쓸쓸한 세계관을 품고 쓰는 시들이지만 당신은 그것으로도 힘이 된다고 했던 것이 기억난다. 밤늦게까지 나의 시를 읽어주는 당신, 그러한 당신이 나의 시를 맨 앞에 추켜 꺼내놓는다 하더라도 내 세계관대로라면 나는 당신에게 가닿을 수 없어서 힘이 나지 않겠는가.
감히 이해를 바라건대 시인은 바라보는 사람, 바라보고도 다 바라보지 못하고 질끈 눈을 감는 사람, 행여 풍경을 찌르고 가르고 발라내는 자가 아니다. 그렇다고 위험을 무릅쓰거나 맞겠다고 세상을 향해 뺨을 내놓는 사람도 아니다. 바라보고도 눈을 감은 다음 소화하며, 진흙이기보다는 모래 쪽이며, 현자 쪽이기보다는 병자에 가까운 사람이 아닐까.
내가 써놓고도 맡아지지 않는 냄새를 당신이 맡아주었다. 내가 써놓고도 비실비실한 것을 당신이 일으켜 세워주었다. 그러니 서로 혼자인 채로 아주 늦게까지 멀리까지 함께해 주지 않을 텐가. 그래야 나는 시에 있어서도 삶에 있어서도 새로이 재부팅된 혼자이지 않겠는가.⊙
詩人이 만난 詩人
“혼자, 여행, 고독… 이들과 꽤 오래 살 것 같다”
혼자서 여행을 가는 사람은 몸의 떠돎을 생(生)의 필체로 옮기는 자가 아닐까. 여행에서 돌아온다는 건 다음 문장의 행갈이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므로. 시인의 저서를 주섬주섬 생각으로 이어보는데 이병률 선생이 저 멀리 두 팔을 옆구리에 붙이며 사뿐사뿐 걸어왔다. 약속 시각에 늦었음을 미안해하는, 타인에 대한 예우인 듯하다. 훤칠한 키에 무색 안경테, 작은 파란색 둥근 점이 빽빽이 배열된 셔츠 가슴께 두 개의 주머니가 도드라졌다. 발음 하나하나에도 섬세한 감정의 깊이가 배어 있다. 조용히 카페 밖을 응시하다가 그가 말을 이었다.“어렸을 때부터 사람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성격 덕분에 여행에 관한 글을 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 여행 중에 만났던 사람들, 그리고 인연들, 그 숱한 겹겹의 길들은 사람과 사람의 이야기로 연결되어 있더군요. 그게 정체성 같아요. 사람 만나러 가는 길을 좋아하고 그게 저에게는 쉬운 일이면서 동시에 저를 닮아서.”
여행 그리고 수첩의 글씨들
이병률 시인은 시인이어서 여행 에세이스트가 되었을까. 단순한 정보 제공에만 충실했던 여행서적 사이에 50여 개국을 돌며 기록한 《끌림》(2005년)의 등장은 시적 관점에서의 새로운 여행 산문의 시작이었다. 독자들은 열광했다. 60만명의 사람이 이 책에 시선을 묻었다. 깊이 있는 사람에 관한 그만의 글쓰기는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2012년) 30만 부를 거쳐 이제 ‘혼자, 여행, 고독’의 ‘이병률’이라는 브랜드로 자리했다.
“혼자, 여행, 고독. 모두 저를 표현하기 적절한 단어들입니다. 제 모습이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다르게 보인다면 그것도 참 고통스러울 것 같아요. 제가 껴안고 사는 것들이니까 저에게 붙어 있는 거니까. 그런 것들과 그런 상태로 꽤 오래 살게 될 것 같습니다.”
그는 여행 중 항상 수첩을 들고 다닌다. 바람이 머릿결을 스치듯 그 시공간에서 채집되는 마음의 어휘들을 붙잡기 위해서이다. 이병률 시인이 직접 쓴 유려한 손글씨를 보고 또 한 번 눈을 크게 뜬다.
“중학교 2학년 때까지는 글씨를 참 못 썼습니다. 어느 날 선생님께서 대놓고 ‘너는 글씨를 너무 못 쓴다’고 하셔서 ‘그러면 글씨를 어떻게 하면 잘 쓸까요?’라고 여쭸더니 글씨를 크게 쓰라고 하더군요. 그렇게 쓰니까 노트가 많이 드는 거예요(웃음). 그때부터 손글씨 연습을 많이 했고, 노트에 시를 적고 찢어 편지를 보내기도 했어요. 그러면서 글씨체가 자리를 잡더군요. 수업시간에는 일 년 내내 판서만 했던 적이 있고, 어느 해는 학급일지 일 년치를 쓴 적도 있어요.”
나는 詩壇에서 ‘왕따’
이병률 시인은 1993년 봄 훌쩍 혼자서 파리로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그곳에서 199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응모했고 당선되었다. 여전히 혼자인 그는 절제된 슬픔의 정서와 시적 긴장을 잃지 않는 수사로 소월시 이래로 보편적 호소력을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작년 9월에 펴낸 《눈사람 여관》은 최단 기간에 2만 부가 원하는 독자의 손에 쥐어졌다. 문학성과 대중성을 서정의 힘으로 돌파하며 순수문학인 시집 코너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자의식에 차 있거나 모호하고 난해한 시가 주류를 이룬 시단에서 그걸 빗겨가면서도 결코 시가 쉽지 않으나 편하게 읽히는 묘한 기운.
“사람들이 시를 많이 안 읽고 있다가 문득 시를 봐야 되겠다 생각한 것이 아닐까요. 사실 그렇게 좋게 봐주셔서 놀라워요. ‘걔는 뭐 에세이 팔리니까 시집도 많이 팔리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요. 저는 시단에서 어느 부분 왕따라고 생각해요. 대학을 졸업하고 방송작가 일을 했었습니다. 먹고살아야 하는데 ‘쟤, 뭐야?’라는 시선이 있더군요. 무슨 직업을 가져야 되는 걸까, 출판사에 있거나 예술담당 기자 정도를 말하는 것인지, 하여튼 저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거나 있을 겁니다.”
1967년생. 미혼이다. 그의 표현대로 ‘독신의 삶을 사는 것도 시를 지키고, 그래야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선택한’ 혼자의 삶이다.
“누구나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저는 그런 편입니다. 그러한 상황은 시적 집중이 잘 되게 하죠. 몇 개 몇 개 단어들, 나를 휩싸고 있는 정서들이 응집, 접착되어서 나오는 밥풀의 힘 같은. 우울의 어두움, 다운된 정서의 접착, 그 접착이 이어지면서 한 편의 시가 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독신이요? 독신주의라고 어떤 노선을 만든 적은 없어요. 같이 있으면 일단 불편하지 않나요? 저는 매번 그 사람에게 상처를 많이 주는 상황의 사람입니다.”
그는 술을 잘 마신다. 12시간씩 먹을 수도 있다고 한다. 정말일까.
“자주 있습니다. 저는 12시간씩 술을 마신 적이 많아요(웃음). 그렇게 긴 시간 마시려면 소주 4~5병 정도 이상을 마셔야 하죠. 저는 맥주와 위스키는 이상하게 안 취합니다. 소주를 즐기는 편인데 술을 마신다기보다는 마주 앉은 사람이 좋아서 12시간씩 달리는 경우겠지요. 그 긴 시간을 아무하고나 먹을 수는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여행을 가서 12시간씩 술을? “혼자 있을 때는 술 생각이 안 납니다. 여행을 가면 시간이 얼마나 많겠어요. 일상하곤 달라서 24시간의 두 배 반 정도 시간이 생깁니다. 전화도 꺼놓고 그런 시간에 뭘 계속하고 있습니다. 엄청 걸어다니거나 여기저기 기웃거리거나 카메라를 꺼내서 카메라 놀이를 하기도 하죠. 그리고 많은 시간은 카페에 앉아 사람들을 관찰합니다. 그 아무것도 아닌 일을 하면서 행복한 사람입니다, 저는.”
시인조차도 詩를 열심히 쓰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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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률(오른쪽) 시인은 최근 시단의 분위기를 물은 윤성택 시인에게 “시인조차도 시를 열심히 쓰지 않는 시대”라고 했다. |
“저에게 시는 발굴의 대상이에요. 인간을 발굴하는 것이며 동시에 인간이 발굴되는 과정입니다. 시를 쓰면서 제가 발굴되고 저 자신의 고백이면서 인간 전체를 드러내는 휴머니즘 덩어리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시에서는 어떤 냄새가 나야 하는 것이고 제 기준에는 그것이 사람 냄새일 겁니다.”
그렇다면 어떤 시를 써야 하는 것일까.
“요즘 시요? 시인조차도 시를 열심히 쓰지 않는 시대인 것은 확실히 맞는 것 같습니다. 요즘 시인들은 자신이 쓰기 쉬운 시를 쓰려고 하지요. 자기 틀에 대한 과한 만족, 자기 혼자 놀고 있는 듯한 시를 쓰는 건 내게 고통을 줍니다. 미의식 없는 단순히 노는 행위와 시 쓰기를 혼동하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될 때가 많아요. 자기가 쓰고자 하는 것을 무턱대고 빨리 써내는 것일 수도 있고. 다 드러내는 것이 예술은 아니니까 무언가를 덮고 하는 것이 미학(美學)으로 가는 길일 거라 생각하는데 인간에 대한 공부 없이 그것을 무작정 이용하는 거예요. 자신을 덮어버리고 사람들과 소통되든 안 되든 자신의 목적에 의해 발표하는 것 같은.”
그럴지도 모르겠다. SNS 따위의 소셜미디어가 우리가 아닌 ‘나’로 침착되는 시대에 살고 있으므로. 이토록 시대가 척박하기에 그의 시가 이제야 읽히는 것이 아닐까. 첫 시집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2003년)부터 그는 줄곧 같은 어조로 ‘세상의 나머지’를 표현해 왔다. 시에도 시차가 있다면 독자들의 내면은 오래전부터 그를 기다려온 듯도 하다.
“개인의 성향은 두드러지지만, 사회성을 거세한 채로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과의 접촉을 정면으로 하지 않고 빗겨 앉아서 눈을 마주치지 않고 얘기하는 시대입니다. 우리의 중요한 문제, 즉 절절한 외로움이라는 인간적인 결핍을 갖고 있으면서도 정면으로 타인을 끌어오지 못하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거죠.”
인터뷰를 마친 그는 “내일, 베트남으로 한국어를 가르쳤던 청년을 만나러 간다”고 했다.
“그 친구가 저에게 밥 사주고 싶답니다. 그걸 받으러 가는 것은 아닌데. 한국에 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까 친구가 되었으니 그 친구를 만나러 갑니다.”
말하나마나 세상이 그의 친구인 것이어서, 그는 여전히 여행 중이다.⊙
<윤성택 시인·한국시인협회 사무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