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법원 진보성향모임 우리법연구회 사실상 와해됐다는데…

  • 글 : 이정현 월간조선 기자  john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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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판급 인물 법원 떠나… 법조 聖骨 민사판례연구회는 건재
⊙ 우리법연구회와 별개로 사법부 좌경화 심각
2009년 9월 서울시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시민단체 회원들이 우리법연구회 해체를 촉구하고 있다.
“요즈음 ‘우리법연구회’는 활동이 거의 없어요.”
 
  ‘법원 내 하나회’로 불리며 노무현 정부에서 주요 보직에 진출했던 진보성향 판사들의 모임인 ‘우리법연구회’가 급속히 세력이 약화되고 있다.
 
  우리법연구회의 구심점 역할을 하던 박시환(朴時煥) 전 대법관, 강금실(康錦實) 전 법무부 장관, 김종훈(金宗勳) 전 대법원장 비서실장 등이 연구회를 떠나고, 정치적 색깔에 부담을 느낀 판사들이 가입을 꺼리면서 사실상 와해(瓦解) 단계에 이르렀다는 평가다. 1988년 5월 김용철(金容喆) 대법원장 연임반대 서명운동을 벌인 법관들을 주축으로 구성된 우리법연구회는 한때 회원 수가 150명에 달했지만 2010년 60명으로 줄었다. 연구회는 2010년 이후 연구논문집 발간을 중단한 상태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근무하는 A판사는 “2009년 우리법연구회 명단이 공개된 이후 (우리법연구회 가입이)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다”며 “무슨 일을 해도 우리법연구회가 연관이 되면 언론과 정치권의 관심을 받으니 연구회가 위축(萎縮)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시 서초구 대법원 전경.
  우리법연구회는 “우리는 무난한 연구모임이다”라고 주장하지만, 지금까지의 행보를 보면 무난하지만은 않았다. 회원들은 논문 등을 통해 대법원장의 권한과 대법원의 기능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는 등 정치적 행보를 이어 왔다. 1988년 김용철 당시 대법원장의 퇴진으로 이어진 2차 사법파동, 1993년 김덕주(金德柱) 당시 대법원장을 물러나게 만든 3차 사법파동의 중심에 우리법연구회가 있었다.
 
  연구회가 법조계에 논란의 핵으로 등장한 것은 2003년 노무현 정부가 출범하면서부터이다. 당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연구회 출신 변호사들이 참여하고 법무부 장관, 대법관, 대법원장 비서실장 등이 연구회 출신 인사들로 채워지면서 “우리법연구회는 법원의 하나회”라는 비판이 정치권에서 제기됐다. 정권교체로 잠시 잠잠하던 우리법연구회는 2009년 신영철(申暎澈) 대법관의 ‘촛불시위 재판’ 개입 논란에 불을 지피면서 법조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당시 연구회 소속 판사들은 법원 내부통신망에 신 대법관 퇴진(退陣)을 요구하는 글을 연달아 올렸다. 퇴진운동을 우리법연구회가 주도한다는 비판이 제기됐고, 여당과 보수단체 등은 “법원 내 하나회로 전락한 우리법연구회는 해체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당시 정치권의 해체 요구에 대해 법원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보고에서 “우리법연구회는 학술연구단체로서 해체하라 말라 요구하기 어렵다”며 거부했다. 이렇듯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준 우리법연구회가 사라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간판급 인물 법원 떠나
 
  서울지방변호사회 소속 B변호사는 “우리법연구회는 사회적 이슈에 대해 적극적인 의견을 개진하다 보니 정치적 색깔이 지나쳤다”며 법조계의 분위기를 다음과 같이 전했다.
 
  “우리법연구회는 스스로 학술단체라고 하지만 정치적 색깔이 분명하다 보니 법원 내 하나회라는 소리까지 듣게 되었어요. 회원 수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민사판례연구회와 대비되는 것이죠. 민사판례연구회는 순수학술 활동에 집중했기 때문에 대법관의 상당수가 연구회 출신이어도 거부감이 그리 많지 않아요. 과거 박시환 대법관이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라서 시끄러웠던 것과는 많이 다르죠. 사실 판사가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는 것은 좋지 않아요. 똑같은 판결이라도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라고 하면 주목을 받게 되잖아요. 판사도 그렇지만 법원 입장에서도 부담스럽죠. 법원에서 우리법연구회를 없애라고는 하지 못하겠지만 이런 분위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활동이 위축되고 있어요. 박시환 전 대법관 등 간판급 인물들이 모두 법원을 떠나면서 관심 자체가 줄어든 것도 원인입니다.”
 
  사실 “우리법연구회와 비슷한 또 다른 사조직으로 법원 내 성골(聖骨)집단이다”는 비판을 받아 온 민사판례연구회(민판)는 올해 2월 말 현재 출범 36년 만에 회원 수가 207명에 달하는 등 급속히 세력을 넓히고 있다. 현직 대법관 14명 가운데 5명이 민사판례연구회 회원이다. 양승태 대법원장과 차한성 법원행정처장의 경우 연구회에 가입했다가 탈퇴했다. 사조직 논란에 대해 “민판 회원들이 대법관과 헌법재판관, 법원행정처 요직을 두루 장악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우리법연구회와는 경우가 다르다”는 것이 법조계의 분위기이다.
 
  서울지방변호사회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C변호사는 “민사판례연구회는 민법의 대가(大家) 곽윤직 서울대 법대 명예교수가 제자들을 불러 모아서 만든 연구조직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학술논문을 발표해 왔다”며 “정치적 발언을 하지 않고 사회적 이슈에 대해 나선 적이 없을 뿐 아니라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학술연구에 집중하다 보니 크게 문제되지 않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법관 성향 변화로 회원 영입 어려워
 
2010년 1월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이용훈 대법원장 사퇴 및 우리법연구회 해체촉구 100만인 서명운동 개시 기자회견.
  우리법연구회가 신입회원을 받지 못하고 서서히 사라지고 있는 이유를 최근 임용되고 있는 판사들의 성향에서 찾는 분석도 있다. 정부기관에서 근무하고 있는 30대 후반 변호사의 설명이다.
 
  “우리법연구회가 법조계에서 점차 사라지는 것은 젊은 판사들의 성향과 관련이 있어요. 단순히 연구회 주축 세력이 법원을 떠났기 때문에 연구회가 와해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법원 구성원의 성향이 변하고 있다는 것이죠. 연구회라는 것이 꾸준히 회원이 들어와야 유지가 되는데, 젊은 판사들의 생각은 부장급 판사들과 많이 달라요. 요즈음 임용되는 판사들을 보면 거의가 강남 출신으로 집안 배경도 있고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어요. 요즈음 대학가에 운동권은 거의 사라졌죠. 관심이 없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죠. 이런 분위기에서 성장한 신임(新任) 판사들이 우리법연구회에 관심에 가질 리 없죠. 아마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도입으로 이런 분위기가 확산될 거예요. 로스쿨 도입으로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으면 판사하기 힘들죠. 대출받은 학비를 갚기 위해서라도 로펌으로 가야 하지 않겠어요.”
 
  서울 강남, 특히 특목고 출신 판사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최근 대법원 자료를 분석한 주요 언론들의 보도에 따르면, 2010~2012년 신규임용 판사 499명 가운데 서울 강남·서초·송파구 등 이른바 강남3구 고교 출신과 외국어고 등 특목고 출신 판사는 174명으로 전체의 34.9%에 이르고 있다. 특히 특목고 출신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어, 해당 기간 동안 123명이 판사로 임용됐다. 소위 명문외고의 독주도 주목된다. 대원외고(33명), 명덕외고(18명), 한영외고(17명), 대일외고(10명) 등 명문외고의 강세가 두드러졌다.
 
  강남 강세 현상은 앞으로 계속될 전망이다. 작년까지는 사법시험에 합격해 사법연수원 성적이 우수하면 곧바로 임용되었지만 올해부터는 로스쿨 도입으로 최소 3년 이상의 법조 경력이 있어야 판사가 될 수가 있다. 이에 따라 지난해부터 배출되기 시작한 로스쿨 출신들은 2015년부터 판사직에 지원할 수 있게 된다. 2009~2012년 서울대 로스쿨 입학생의 절반 이상이 특목고 혹은 강남 소재 고등학교 출신이라는 분석에서 알 수 있듯이 강남 강세 현상은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강남 쏠림 현상으로 법원이 다양성을 잃게 될 것을 우려하는 시각이 있다.
 
  강남 쏠림 현상을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에 대해 반론을 펴는 이도 있다. 서울지방변호사회 소속 C변호사는 “강남 출신 판사가 늘어나는 것은 우수학생이 어린 시절부터 강남으로 몰렸다는 것에 불과하다”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판사 임용은 오로지 성적으로 결정됩니다. 강남 출신이 늘어나는 것은 도시화의 완성으로 이해해야 해요.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어린 시절부터 강남으로 이동한 것이죠. 우수한 학생 비율이 서울에 많다는 것으로 단순한 지역 구분은 무의미합니다. 우수한 법조인들이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는 검사를 지원했고, 1990년대에는 로펌으로 많이 갔어요. 하지만 요즈음은 다들 판사를 지망하고 있어요. 경쟁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로 강남 출신이라서 과거와 정치적 성향이 다를 것이라고 미뤄 짐작하는 것은 문제가 있어요.”
 
  이와 관련해 법원을 오랜 기간 출입했던 중앙일간지 기자는 이렇게 정리했다.
 
  “대학에서 운동권이 사라진 것은 사회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보아야 해요. 세상이 변한 것이죠. 법원도 자연스럽게 과거 이념적 논쟁을 주도했던 모임들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죠. 우리법연구회도 이런 분위기에서 서서히 시들어 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념판결은 멈추지 않아
 
박시환 전 대법관.
  우리법연구회가 급속히 와해되고 있지만 일반인의 상식에 어긋나는 어이없는 판결은 멈추지 않고 있다. “지나치게 이념(理念)에 치우쳐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최근 판결이 최근 들어 계속되고 있다.
 
  ▶통합진보당 부정경선에 관여한 45명 전원무죄=“당내경선엔 헌법의 선거 4대 원칙 적용 안 해도 된다.”(2013년 서울중앙지법 1심)
 
  ▶김일성 시신 참배한 조모(54)씨 국가보안법 위반사건 부분 무죄=“동방예의지국인 대한민국에서 단순 참배 행위는 고인의 명복을 비는 의례적인 표현”(2013년 서울중앙지법 항소부)
 
  ▶‘빨치산 추모제’에 학생들 데려간 중학교 교사 사건 1·2심 무죄=“전야제 참가가 국가존립·안전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해악 끼칠 명백한 위험성 없어”(2010년 전주지법 1·2심)
 
  우리법연구회가 쇠퇴하고 있지만 상식 이하 판결이 꾸준히 증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검사장을 지낸 고영주(高永宙) 변호사는 “우리법연구회 출신만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 사법부의 좌경화(左傾化)가 심각하다”고 주장했다. 그의 설명이다.
 
  “법원 내부에 공안사범(公安事犯)에 무죄를 선고하거나 구속영장을 기각하는 것을 이름을 떨칠 기회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공안사건에 무죄판결을 내놓아서 양심적 판사로 이름을 떨치고 싶은 부류들이죠. 좌(左)성향의 우리법연구회는 당연히 문을 닫아야 합니다. 이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우리법연구회 출신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에요. 사법부 전체의 좌경화는 심각한 수준이에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판결은 주로 부장판사급에서 나오고 있어요. 1980년대 대학가에서 의식화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죠. 다들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는데, 의식화된 사람들이 법조계에 너무나 많아요. 예를 들어 볼까요. 제가 2003년에 사법시험 3차 면접위원을 했는데,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묻는 질문에 ‘대한민국의 건국세력은 친일파이다. 북한과 한국 정부 가운데 어느 쪽이 정통성이 있는지는 생각해 봐야 한다’는 식으로 우리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수험생이 많았어요.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너무 많아 불합격시킬 수 없더라고요. 이게 현실입니다.”
 
  결과적으로, “비록 우리법연구회가 사라지더라도 법원의 좌성향 판결은 계속될 것이다”는 설명이었다. 현실적인 대안에 대해 고 변호사는 대법원장의 인사권 이용을 주장했다. 고 변호사는 “대법원장이 인사권을 이용해 적극적 으로 나서야 하는데 전혀 그럴 생각이 없어 문제다”며 “어이없는 판결이 계속 나올 것 같아 걱정이다”고 말했다.
 
  어이없는 판결이 계속되면서, 법원이 법관의 근무평정(勤務評定)을 엄격하게 하고 재임용 요건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헌법상 법관 임기는 10년으로, 임용된 지 10년이 지난 법관은 재임용 심사를 거쳐야 한다. 그러나 1988년 재임용 제도 도입 이후 25년간 탈락한 사람은 단 5명에 불과하다. 또 법관 성적 역시 공개하지 않고 있다.
 
  우리법연구회는 “순수학술단체에 불과하다”고 주장해 왔지만, 일련의 정치적 행동으로 순수성을 끊임없이 의심받아 왔다. 법원 내에는 헌법연구회, 노동연구회 등 다양한 연구모임이 있다. 이들 연구모임은 자신들의 연구 목적을 명확히 하고 있다. 그러나 유독 우리법연구회는 그 실체가 불분명했다. 오히려 주목적인 연구보다 집단행동을 주도하는 정치집단으로 비친 것이 사실이다. 2009년 회원명단 공개 이후 해체를 요구받았던 우리법연구회는 시대변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소멸하고 있다. 세상의 큰 흐름을 거역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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