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취재

내부·외부 관찰자가 본 판사들의 윤리의식

“그들도 우리처럼 부족하고 평범한 사람”

  •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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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들이 주장과 증거를 완벽하게 제출하지 않으면 짜증을 내는 판사들도 많습니다. 밥상을 다 차려줘야 맛을 보겠다는 것이죠. 무조건 의심하는 병에 걸린 법관들도 많습니다. 국민의 미숙한 걸 모두 받아주고 안아주는, 그런 성직자 같은 판사라면 누구라도 존경할 것 같습니다”

⊙ 소송법상 법관은 운동경기에서 ‘심판’ 정도의 지위
⊙ “판사도 불완전한 존재고, 재판 제도 역시 불완전한 제도”
⊙ 시민단체 요구나 자신의 이념성향에 따라 재판하는 ‘정치판사’도 있을 수 있어
⊙ 사법부의 권위주의적 구조가 사법 정의를 실현해야 할 법정을 도리어 억압해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로비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 왼손에는 법전, 오른손에는 엄정한 판결을 뜻하는 저울을 들고 있다.
몇 해 전 대한민국에서 법조인을 가장 많이 배출한 서울대 법대의 한 명예교수가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과거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 사회기강을 바로잡는 사정(司正)의 주체와 사정의 대상도 모두 서울법대 출신이었습니다. 또 사정으로 인해 생긴 공백을 메우는 이도 서울법대 출신입니다. 이를 바라보는 서울법대인의 심정이 씁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타 공인 가장 우수하다는 서울법대 출신들이 역대 정권 때마다 사정의 주체이자 그 대상이 되었다는 아이러니는 새삼스럽지 않다. 그들이 공부한 육법전서(六法全書)의 내용은 똑같지만 누구는 영어(囹圄)의 몸이 되고, 누구는 그를 잡아 가두거나 판결하고, 누구는 그 빈자리를 메운다는 것이다. 이런 유전(流轉)은 우리 인생의 판도라일지 모른다.
 
  이 대목에서 ‘IQ와 인격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명제를 떠올리는 것보다 “인간은 자신이 어떤 삶을 살 거라고 감히 단정할 수도, 예측할 수도 없는 온갖 허술함으로 엮어져 있다”(최용철 전북대 윤리교육과 교수)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최용철(崔容哲) 교수가 쓴 《윤리란 무엇인가 묻고 생각하다》를 읽다 보니 이런 구절이 눈에 띄었다.
 
  <…어리석은 일을 한 적이 전혀 없는 인간이란 없다. 인간이 어떤 삶을 살 거라고 감히 예측하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무엇을 기대해야 할지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다. 인간이 어리석은 만큼이나 사회 규범 역시 부실하다. 인간 지혜의 한계를 절감할 때 온갖 사회 규범의 부실함은 차라리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다. 그 결핍의 인간이 문명을 이룬 것은 뛰어난 지도자나 천재의 헌신 때문이 아니다. 철학자 J.S. 밀(Mill)은 ‘100명 가운데 99명은 제대로 판단할 능력을 전혀 가지지 못하며, 그런 능력을 갖췄다고 할 수 있는 나머지 한 명도 사실은 상대적으로 그렇게 보일 뿐’이라고 했다.
 
  최 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인류의 생각과 행동이 지금처럼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결핍을 채워나가는 능력 때문”이라며 “인간은 비판활동을 거쳐 잘못을 고쳐 나간다. 누군가의 판단이 믿음직스럽게 여겨질 수 있는 까닭은 그가 다른 사람의 비판에 늘 귀를 기울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한국의 법조인, 그중에서도 판사는 타인의 비판에 얼마나 귀를 기울일까?
 
 
  사람을 분노하게 하는 것은
 
엄상익 변호사.
  기자가 아는 판사들은 죄다 모범생이고 공부벌레들이었다. 그들은 지금도 새벽까지 판결문과 씨름하며 기록과 싸울지 모른다. 그러나 일부 비행(非行)·막말 판사들로 인해 사법부 전체가 불신을 받고 있다. 대한변협 공보이사를 지낸 엄상익(嚴相益) 변호사는 “판사들이 바라는 대가는 사회의 신뢰와 존경이었다. 그런데 그게 허물어져 가고 있다”고 했다. 그의 말이다.
 
  “국민들은 높은 법대(法臺)에서 검은 법복을 걸친 판사들을 마치 솔로몬 같은 전능한 존재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소송법상 법관은 운동경기에서 ‘심판’ 정도의 지위입니다.”
 
  엄 변호사는 법정에서의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살인혐의로 재판을 받는 두 명이 있었다. 둘 중 한 명은 진범이었으나 서로 자기는 안 죽였다며 상대를 진범으로 지목했다. 묵묵히 듣던 재판장이 한마디 했다. “나는 법정에 제출된 자료 범위 내에서 논리로 판단할 의무만 있을 뿐”이라고.
 
  “그게 판사의 지위입니다. 재판이 잘못돼도 그건 주장이나 증거를 대지 못한 당사자의 책임입니다. 여기에 판사에 대한 근본적 인식의 차이가 있어요. 사람들을 분노하게 하는 법원의 작은 관행이나 틀일지 모릅니다. 판사들은 증인의 주된 진술을 거의 믿지 않는 실정입니다. 거짓말이 많기 때문이죠. 더러 진실한 증언이 ‘믿지 않는다’는 한마디로 판결문에서 배척되는 수도 있어요. 이유도 없습니다. 당사자들은 진실이 법관에 의해 거짓으로 결정이 된 것에 대해 극도의 분노를 느낍니다. 그 뒤에는 분명 부정부패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엄 변호사는 “판사들의 사건 폭주 때문에 만들어진 법원 내부의 기능적인 관례들이 엄청난 오해와 한(恨)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며 “재판은 절차적 정의다. 핵심은 납득이다. 사법도 서비스다. 그렇다면 눈높이도 국민에게 맞추어야 한다”고 했다.
 
  “변호사들이 주장과 증거를 완벽하게 제출하지 않으면 짜증을 내는 판사들도 많습니다. 밥상을 다 차려줘야 맛을 보겠다는 것이죠. 무조건 의심하는 병에 걸린 법관들도 많습니다. 국민의 미숙한 걸 모두 받아주고 안아주는, 그런 성직자 같은 판사라면 누구라도 존경할 것 같습니다.”
 
 
  “당장 예, 아니오만 대답하라니까 당황스럽고…”
 
왜 국민이 생각하고 믿는 것처럼 현실 법원의 판사는 중립적이고 친근하며 이성적이고 객관적 태도를 보이지 못할까.
  지난 7월 초, 서울 서초동 고등법원을 찾았다. 기자가 찾은 한 재판정은 15평 남짓한 작은 방이었다. 30여 명이 이 민사재판을 지켜보고 있었다. 중년의 판사 곁에 젊은 남녀 보조판사가 앉아 있었다.
 
  법대 위에 앉은 판사들은 인간의 마음을, 거짓을 꿰뚫어볼 것만 같다. 아무리 법관이, 법원에 제출된 주장과 증거를 그냥 판단하는 보통의 인간이라 말해도 일반인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법정에서 판사와 대면한 경험이 있다면 생각이 달라진다. 유죄와 무죄, 승소와 패소에 따라 판사의 존재는 천사가 되기도 악마가 되기도 한다.
 
  기자는 판사를 올려다보며 재판 과정에 귀를 세웠다. 증인으로 출석한 한 사람이 격양된 어투로 “내가 죄인입니까? 왜 그렇게 따져 묻습니까”라며 피고 측 변호사와 언쟁을 벌이고 있었다. 두 사람의 공방을 경청하던 판사가 증인을 나무라며 “화내지 말고 묻는 말에만 간략하게 답하라”고 했다. 증인이 사건의 배경과 자신의 행동에 대해 진술하려 할 때에도 판사는 “관련 내용만 말하라”고 했다.
 
  증인이 ‘계약서 서명’과 관련된 사실을 설명하려 하자, 판사가 “증인의 진술은 이전의 진술과 상반되지 않느냐”고 했고, 그러자 증인이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무언가를 애써서 말하려 했다. 그러나 판사는 “예, 아니오만 대답하세요!”하며 증인의 말을 잘랐다. 이후 증인은 시종 위축된 듯 보였다. 재판이 끝난 뒤 그 증인을 따로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오늘 판사의 태도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드느냐”고 하니, 이렇게 말했다.
 
  “제가 무슨 말을 하려 해도 ‘증인은 말하지 마시오’하며 딱 잘라버리니까 당황해서 제대로 말도 못했어요. 지난번에도 피고 측 변호사가 말을 강압적으로 해서 제가 항의한 적이 있어요. 그때도 판사는 저한테만 조용히 하라고 했어요.”
 
  그는 속상하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법적 용어를 제가 잘 몰라요. ‘통보서’니 ‘이행각서’니, 제게는 다 똑같은 말이에요. 그런데 그걸 꼬치꼬치 캐물어 순간 당황했습니다. 말꼬리를 잡으며 자꾸 ‘빨리 답하라’고 채근하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어요. 10년 전 기억이라 떠올리는 데 시간이 필요했어요. 그런데 당장 예, 아니오로 대답하라니까 제대로 대응하기 힘들었어요.”
 
  기자는 문득 판사가 거짓말을 밝혀내는 지혜가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억울하다고 핏대를 세우는 사람 앞에서 판사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아픈 환부를 들여다본 심약한 사람의 표정으로 얼굴 상을 찡그리고 외면하고 있지는 않을까. 그런 질문을 판사에게 던지고 싶었다.
 
  기자는 “이 재판의 진실 여부에 관심이 없다”는 점을 밝힌 뒤 담당 변호사를 만났다. 유철민(劉哲民) 변호사는 법조 경력이 26년차라고 했다.
 
  “어느 사건이나 당사자 입장에서는 명예와 재산이 걸려 있습니다. 형사재판은 그 사람의 목숨까지 걸려 있지요. 하다못해 간단한 죄를 지어도 처벌을 받게 되면 주위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습니다. 하물며 명예훼손은 오죽하겠습니까.”
 
鄭 총리와 의정부 법조비리
 
“판사에게는 ‘아주’ 관대?”

 
(왼쪽) 1998년 3월 23일 당시 정홍원 서울지검 특별범죄수사본부장이 의정부 판사비리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또 (오른쪽) 같은 날 대법원 성낙송 공보담당관이 ‘의정부 사전 수사발표에 대한 대법원의 입장’이라는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대검찰청의 ‘법조비리 사범 처리현황’에 따르면, 사건 발생 수와 혐의가 입증되어 처벌받은 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01년 법조비리가 1623건(구속 523건, 불구속 1100건) 발생했으나 2010년에는 2421건(263건, 2158건), 2011년 2137건(178건, 1959건)이 발생했다. 2009년부터 발생 건수가 2000건을 넘는다. 어림잡아 하루 5.5건이다. 공무원 범죄 기소율이 낮아지는 추세지만 법조 분야만 줄지 않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법조인은 법원·검찰·경찰·교정 등 법률과 관련된 실무에 종사하는 공무원을 일컫는데 판사·검사·변호사 등을 포함한다. 물론 현직 판사가 직접 비리에 적발돼 구속된 사례는 없다. 그러나 법조비리 특성상, 법조인의 인적(人的) 네트워크가 비리의 주요 발생원인이란 점에서 판사들이 비리와 무관하다고 단정 짓기 어렵다. 법조비리는 기소와 재판에 영향을 미치는 변호사의 사건 수임을 둘러싼 청탁·알선·촌지 등과 연결돼 있다.
 
  지난 1997년 발생한 의정부 법조비리 사건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변호사 이순호가 브로커를 이용해 사건을 대거 수임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판사 15명에게 명절 떡값, 휴가비 명목으로 수백만원씩을 건넨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다. 대법원은 이듬해 4월 판사들을 대거 정직 또는 경고조치했고 당시 지법원장은 관리 책임을 지고 사표를 냈다.
 
   이와 관련, 정홍원(鄭烘原) 국무총리는 지난 2월 인사청문회에서 당시 판사들을 상대로 불기소처분을 내리는 등 축소조사를 했다는 의혹을 해명해야 했다. 정 총리는 서울지검 3차장에 재직하며 수사를 지휘했었다. 정 총리는 “법원에서 판사를 하다가 나온 변호사가 법원을 들락거리면서 몇십만원씩 찻값에 쓰라고 준 것이다. 액수가 25~30회 누적됐다”고 설명했다. 또 “수사팀 안에서 관행을 끊어야 한다는 의견과 법정에 세우는 것은 심하다는 의견을 놓고 고민하다가 결국 2번째 안으로 갔다”고도 했다.
 
  당시 대검은 판사 15명 전원을 기소유예 처분했다. 그러나 판사 6명은 제3의 장소에서 조사했고, 판사 9명은 서면 진술서만 보고 조사를 끝내 봐주기 수사였다는 지적이 나왔다.
 
  대법원의 대응도 문제였다. 국회 법사위 한 관계자는 “당시 대법원이 의정부 지원 판사 9명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검찰의 조사자료를 요청·수집하지도 않았고, ‘직원 회식비를 1회에 10만~50만원을 예금통장으로 입금받았으나 재판과 관련해 돈을 받은 적이 없다’는 판사들의 진술만을 토대로 조사했다”고 밝혔다. 또 이들에 대한 처리도 징계(견책·감봉·정직)와 지방으로 좌천시키는 정도였다.
 
  검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순호 변호사 측은 “판사뿐 아니라 의정부지청 검사들에게도 알선을 받았고 돈을 빌려주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그제야 검찰은 이 변호사 사무장의 수첩에 검사 11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는 사실을 실토했다.
 
  판단하기 어려운 사실을 지우고 싶은 유혹
 
박근혜 대통령은 4월 25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제50회 법의 날’행사에 참석, “유전무죄 무전유죄 같은 부끄러운 말이 대한민국에서 더 이상 상용되지 않도록 앞장서달라”고 당부했다.
  유 변호사는 “한 사람의 인생이 걸린 문제를 판사들은 너무 쉽게 처리해버린다”고 했다. 판사는 정해진 기간 내에 맡은 수백 건의 사건을 처리해야 한다. 변호사는 단 3분의 변론도 판사의 눈치가 보여 힘들 때가 많다고 한다.
 
  “작년까지 판사로 계시다 지금은 모 대학 로스쿨 교수가 되신 분이 변호사 연수강의에 오셔서 이런 고백을 들려주었어요. ‘판사들은 사건을 빨리 떼어내야 한다는 부담을 갖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사건을 빨리 처리하라는 독촉을 많이 받고 쫓기다 보면, 승소로 판결해야 할 사건도 기각 처리하고 싶은 유혹을 때때로 느낀다’는 겁니다.”
 
  보통 손해배상 사건은 5단계의 절차를 거친다. 피고의 불법행위 인정→손해발생 인정→손해와 불법행위와의 인과관계 인정→피고의 항변배척→손해 액수 산정 등 여간 복잡하고 까다롭지 않다. 유 변호사는 “그렇게 되면 판사가 판결문에 쓸 내용이 많아지고, 여기다 손해 액수 산정이 복잡해지면 골치가 아프다”며 “이때 판사는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고 싶은 유혹을 받게 된다”며 이렇게 말했다.
 
  “제가 보기에도 청구를 기각하는 판결문이 청구를 인용하는 판결문보다 대체로 길지 않고, 쓰기가 쉬운 것 같아요. 형사소송도 무죄 판결문보다 유죄 판결문이 훨씬 간단한 게 사실입니다. 무죄판결을 내리려면 증인의 입증을 모두 반박해야 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유죄 판결은 쉽습니다. 증거만 쭉 나열하면 되니까요.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당연히 ‘청구인용’ 판결이나 무죄 판결이 나야 마땅한 사건도 간혹 판사들이 실망스런 판결을 하는 사례가 있었습니다.”
 
  그는 “판사가 너무 많은 업무 때문에 ‘사건 떼기’의 유혹에 노출된다”며 “개인에게 할당된 사건을 줄여야 판사들의 윤리의식도 고양될 수 있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사명감을 가져야 합니다. 국민들의 막중한 수사권과 사법권을 맡겼는데 이를 헛되이 쓰면 되겠습니까. 일신의 편의를 위해 쉽게 판결하고 넘어가면 안 됩니다. 정신무장이 필요합니다.”
 
  법관의 행동은 일반인과 달라야 한다. 법원을 찾는 국민들은 법관의 실력을 가늠할 능력이 없기에 그들의 말투, 경청 자세, 진지함 등에 반응한다. 법관의 사소한 말투에 실망할 경우, 사법부 전체의 불신으로 이어지기 쉽다. “판단하기 어려운 사실을 쉬운 사실로 대체”하고 싶은 판사들의 유혹은, “판사들의 검은 법복 아래에서 목격되는 무능력·편견·게으름·야비함·평범하고 흔한 어리석음”(梁三承 변호사)이다.
 
  서울지방변호사회 소속 판사 출신의 최모 변호사는 동료 변호사 A씨의 경험담을 기자에게 들려주었다.
 
  몇 년 전 건달 출신의 속칭 ‘해결사’ B씨가 구속되었다. 채무자를 못살게 굴다가 견디다 못한 채무자가 경찰에 신고한 모양이었다. 그는 동일 전과가 있었다.
 
  사건을 수임한 변호사가 판사를 만났더니 “죄질이 나빠 집행유예는 곤란하다”며 보석신청도 기각했다고 한다.
 
  “어느 날 B씨가 A 변호사 사무실에 나타났더라는 겁니다. 술이 잔뜩 취해서 말이죠.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으니, 사건을 담당했던 부장판사가 변호사를 개업해 B씨 사건을 다시 수임, 보석으로 풀려나게 해주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내가 준 착수금을 돌려달라’고 떼를 썼다고 해요. 일부 돌려주겠다고 했지만 하도 귀찮게 해 결국 다 돌려줄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사건을 맡았던 부장판사가 변호사로 변신, 소송을 수임한 뒤 B씨의 보석을 신청하자 재판부가 받아들였다는 것이었다.
 
 
  판사는 은행 업무도 안 본다?
 
안천식 법무법인 씨에스 변호사.
  젊은 변호사 C씨는 “고위법관들 중 대개가 법정에선 절박한 당사자들을 하대(下待)하거나 떠받드는 것을 당연시하는 태도가 몸에 배어 있다”고 했다. 이 변호사는 자신도 들은 얘기라며 이런 말을 했다.
 
  “요즘 그런지는 몰라도, 과거엔 판사들이 은행에 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법원 지점의 은행직원들이 다 알아서 챙겨주기 때문이죠. 판사실로 직접 찾아가 은행 업무를 대신한다는 겁니다.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해요. 그런 관례를 모르는 신입 직원이 판사실로 전화를 걸어 ‘직접 처리하라’고 했다는 겁니다. 판사가 화가 나 지점장에게 항의했고 결국 사과를 했다는 겁니다. 이런 사례만이 아니라, 법원 경험이 오래될수록 판사들은 자신도 모르게 자기중심적이고, 특권을 당연시 여긴다고 생각이 들어요. 국민은 그런 판사까지 존경하지는 않을 겁니다.”
 
  법무법인 씨에스의 안천식(安天植) 변호사는 현재 토착민과 대기업 간 부동산 관련 소송을 진행 중이다. H건설을 상대로 17번이나 패소 당했지만 다시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본안소송이 12번, 가처분 등 보전소송이 5번이었다고 한다. 그는 최근 자신의 소송 경험담을 《18번째 소송》이란 책으로 묶었다. 그가 느낀 법정의 현실과 판사는 어떤 사람일까.
 
  “헌법에서 법관은 ‘헌법과 법률과 양심에 따라 재판한다’고 규정하면서 재판에 있어서는 외부의 간섭을 일절 배제합니다. 현행 법관양성제도는 사회경험이 거의 없는 신입 법관들이 선배 법관들에 절대적으로 의존해 도제(徒弟)교육을 받아요. 이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선배의 위계질서 속에서 자신만의 성(城)을 구축합니다. ‘재판의 독립’이라는 헌법적 근거를 십분 활용해 외부의 비판과 견제를 차단하고 내부적으로는 자신의 잘못을 통제하는 역량을 갖추지 못하게 됩니다. 즉 위계적이고, 권위적인 법원 조직은 지금까지의 법관양성제도와 헌법 환경의 필연적 결론으로 봐야 해요.”
 
  현재 안 변호사가 진행 중인 지난(至難)한 소송은, 이미 숨진 부모가 수년 전 땅을 팔았다는 부동산 매매계약서를 어느 날 자식이 받게 되면서 시작된다. 계약서는 알 수 없는 글씨로 주소, 성명, 주민번호 등이 기재돼 있고 한글 막도장이 날인돼 있었다고 한다.
 
  —패소 판결까지 받으며 대기업과 수십 차례 소송을 벌이는 까닭이 뭡니까.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는 말에 동의할 수 없어요. 증거와 법리, 경험칙과 논리의 싸움일 뿐입니다. 대기업이라고, 전관 변호사가 선임됐다고 증거와 법리, 논리와 경험칙이 달라질 수는 없습니다. 그게 법치주의이고 증거 재판주의입니다. 주변에서 어리석은 일이라고 만류하는 이가 대부분이었어요. 책까지 내게 된 것은 법원이 국민의 존경과 신뢰를 받는 헌법기관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고요.
 
  책이 나오고 법조인들로부터 고생했다는 격려를 많이 받았어요. 전혀 알지 못하는 변호사님이 제 책을 읽고 점심을 사주시기도 하고, 어떤 법대 교수님은 제 사무실로 전화를 주셔서 1시간 동안이나 위로해주시기도 했고요.”
 
  현재 소송은 대법원에서 심리 중이라고 한다. 이미 두 번씩이나 대법원에서 ‘심리 불속행’ 기각을 당했으나 이번에는 기각을 당하지 않았다고 한다.
 
  “법관은, 헌법과 법률공부에 대한 검증은 받았으나 양심에 대해 아무 검증도 못 받았어요. 물론 할 수도 없고요. 법관에게 수준 높은 도덕성과 양심을 요구할 수 있지만, 법관도 사람입니다. 그 어떤 이도 스스로 완전히 도덕적이고 업무적으로 양심적일 수는 없잖아요. 문제는 그동안 ‘법관의 독립’이라는 어젠다에 매몰돼 아무 비판과 견제가 없었던 것이 법관에 대한 불신으로 귀결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실 판결에 대한 비판과 견제는 재판의 독립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안 변호사는 자신의 책을 대법원 담당 재판부에 참고자료로 제출했다. 그런데 우연인지 대법원에서 재판 변론과정을 시범적으로 녹음하는 시도가 있었고, 법정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등 나름 공정한 재판 진행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方熙宣이란 이름 석 자
 
방희선 동국대 법대 교수.
  법조인 사이에 ‘방희선(方熙宣)’이란 이름 석 자만큼 논란을 가져온 이도 없다. 1992년 구속영장이 기각된 시위 대학생을 불법구금한 경찰관 5명을 고발하고, 법원의 인사조치에 반발해 헌법소원을 냈다. 그를 두고 법조계에선 ‘강골 판사’라는 찬사와 ‘소영웅주의’라는 비난이 함께 따랐다. 재야(在野) 경험이 없는 순수 법조인이라는 점에서 사법 기득권층과 타협하지 않은 소신이 크게 부각됐다.
 
  그는 1997년 3월 법관 재임용에서 탈락한 뒤 변호사로 활동하다 2008년부터 동국대에서 법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방 교수는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며 법원 개혁에 앞장서 왔다.
 
  “폐쇄적 관료주의와 순혈주의로 인한 법조인의 고립적 행태는 사법의 발전과 신뢰에 치명적입니다. 과거 수차례 사법파동 때마다 뜻있는 판사들이 지적해 온 고질적 병폐가 아닌가요? 모두가 독립된 헌법기관인 법관들의 실상이 조직 내부에선 한갓 인사권자 한 사람의 바둑돌에 불과하게 보일 정도로 상부의 눈치나 살피지 않았는지 스스로 돌아봐야 합니다.”
 
  그가 판사를 그만둔 지도 10여 년이 지났다. 그때와 지금의 법조계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그러나 그는 “본질적으로 바뀌지 않았다. 폐쇄적 관료집단의 문화는 안 바뀌더라”고 무겁게 말했다.
 
  “판사들은 법률가라는 의식보다 ‘사법의 관리’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대법원장을 정점(頂點)으로 하는 관료문화가 여전합니다. 젊은 판사조차 그 문화에 안주하고 보호받으려 합니다. 마치 과거의 목민관(牧民官)처럼 ‘백성을 보살핀다’는 문화가 남아 있어요. 법정에 가보면 얼마나 고압적인지, 그 선민(選民)의식에 놀라곤 합니다.
 
  판사 출신 ‘전관’ 변호사들은 법원에서조차 받들고, 사사로운 만남도 갖지만 일반 변호사는 천대하고… 젊은 판사가 변호사에게 모욕적인 말도 예사로 합니다. 비판받을 만한 외형적인 측면은 조심하려 하지만 큰 흐름은 안 바뀌고, 오히려 공고해지고 있어요.”
 
  방 교수는 “판사가 일반인보다 높은 윤리의식을 갖고 있다고 여기는 것은 ‘인식의 오류’”라고 했다.
 
  “법조인은 우리 사회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이며 그래서 일반인과 다른 윤리수준을 요구합니다. 시정잡배처럼 거래하면 안 되니까요. 사법부가 판사의 윤리의식을 기르기 위해 도(道)를 닦게 하거나 금욕·수도생활이라도 권장합니까. 선진국은 윤리의식이 남다른 판사를 뽑으려는 프로세스가 있지만 한국은 안 그렇습니다. 점수로 뽑고, 뽑은 뒤에는 인격교육을 시킨 적이 있나요?”
 
  그는 “판사도 일반인과 다를 게 없다”며 이렇게 말했다.
 
  “저도 사법연수원에 들어가기 전까지 법원조직에 이상적(理想的)인 생각을 가졌지만 막상 경험한 법원은 똑같은 사회집단이자, 똑같은 관료집단이었어요. 명령에 죽고 사는, 대한민국 최고 고급 관료 말이죠. 제가 보기에 판사는 일반인과 똑같은 샐러리맨이었어요. 점수가 좋아 판사가 됐고 주위 사람의 기대가 있으니 다르게 보이려 ‘척’하는 겁니다. 일종의 가식이죠. 용기 있게 ‘우리도 당신들과 똑같다’고 고백하지 않아요. ‘거룩한 우리의 껍데기를 왜 벗냐’는 식입니다. 판사실에서 돈 받고, 업자에게 선물 받고, 밤마다 술집에 갑니다. 윤리교육도 중요하지만 윤리를 담보하는 장치, 선발과정에서 문제가 없도록 하되 관리감독을 철저히 해 잘못됐을 때 제재(制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법조윤리감독제’도 갖춰야 합니다.”
 
  그는 불공정한 재판관행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몇 년 전 위조 학위사건에 대한 변호를 맡았는데 증인 심문 도중 진술내용이 조서와 다른 것을 발견했다. 방 교수가 이 점을 지적하자, 검사도 가만히 있는데 판사가 나서 “증인이 변호인과 사전에 만나 진술을 번복한 것 아니냐”며 “이상한 분위기로 몰아간 일이 있었다”고 한다.
 
  “판사들이 조서를 부실 작성하거나 허위 기재하는 경우도 봤어요. 형사소송법 56조에 따라 공판절차에 있었던 일은 오로지 조서로만 증명할 수 있는데, 사실 이 법 자체도 악법입니다. 뿐만 아니라 판사들이 이를 이용해 실제로는 부인했음에도 조서에는 인정했다고 써버립니다. 판사의 강압적인 태도 때문에 변호사가 이의를 신청하기도 쉽지 않아요.”
 
 
  가카 새끼와 빅엿
 
법관과 사법부의 분위기는 누가 뭐래도 정권의 이념적 배경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3년 3월 9일 평검사와 대화하고 있다.
  위계와 서열이 촘촘한 법조계에서 ‘소통’을 시도하려는 판사들이 등장했다. 몇 년 전 SNS 등을 통해 ‘가카 새끼 짬뽕’, ‘가카의 빅엿’, ‘뼛속까지 친미인 대통령이… 나라살림을 팔아먹은…’이라며 한껏 조롱했다. 비공식적, 단편적으로 보이지만 은밀하고 노골적인 방식으로 반(反)정부적 사견(私見)을 드러낸 것이다. 동료의 압력이나 상부의 압박을 느끼는 경우에도 언론이나 법원 내부게시판인 ‘코트넷’을 통해 불편함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2011년 11월 인천지법 최은배 부장판사가 한미FTA를 두고 “사법 주권을 침해한다”며 “ISD 조항을 연구할 사법부 내 태스크포스를 구성하라”고 요구하자, 법관 170여 명이 동조했다. 우익 성향 인사들은 이들을 ‘좌편향 정치 판사’라 부르며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 물론 170여 명 각자의 성향이 모두 ‘왼쪽’인지, FTA 부분에서만 ‘레프트’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일부 판사들의 ‘소신’은 놀라웠다.
 
  ‘가카의 빅엿’이란 표현으로 유명해진 서울북부지법 서기호(徐基鎬) 판사는 대법원으로부터 ‘재임용 부적격’ 통보를 받은 뒤 지난해 정계로 뛰어들어 진보정의당 국회의원이 됐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판사들은 평판을 중시하고 비난·비판에 익숙하지 않다. 고위법관은 조중동(朝中東) 신문, 젊은 판사는 인터넷 신문을 좀 더 많이 접한다. 대통령이 대법원장을 정치적으로 임명하게 되면 사법부 독립은 급속도로 무너질 수 있다”고 했다.
 
  사실, 법관과 사법부의 분위기는 누가 뭐래도 정권의 이념적 배경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대통령의 좌우 이념 성향, 다수를 점하는 정당의 이념 지향, 그간의 판결이나 발언에서 유추된 대법관(혹은 헌재 재판관)의 개인적 이념과 역사의식, 그리고 보혁 성향의 대법관들 간 이해관계가 혼합돼 사법부의 좌표가 결정된다. 유신(維新)과 5·6공 정부 때도, 김대중(金大中)·노무현(盧武鉉) 정부 때도 다르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철학에 부합하는 대법관과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임명하려 노력했고, 그 결과 진보 성향의 박시환(朴時煥)·김지형(金知衡) 대법관이 대법원에, 송두환(宋斗煥) 재판관이 헌재에 진입했다. 민변 부회장이던 강금실(康錦實) 변호사가 법무장관(2003.2~2004.7)이 된 것도 비슷한 케이스.
 
  그 틈 속에서 상·하급심 판사들은 법과 개인의 양심, 정치적 신념, 정권의 성향 위에서 ‘영리하게’ 외줄을 탄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서울중앙지법원장 출신의 법무법인 충정의 이우근(李宇根) 대표변호사의 말이다.
 
  “예전의 ‘권력 추종형’ 판사들은 단순히 독재정권의 눈치만 살피면 됐지만, 요즘의 일부 정치판사들은 정권의 추이(推移), 여야의 권력지형, 시류(時流)의 변화, 여론의 동향 등을 두루 살핍니다. 과거보다 훨씬 더 정치적일 수 있지요.”
 
  판사들의 정치적 발언은, 나꼼수식(式) 조롱이 판치는 사회 분위기와 관련은 없을까. 이명박(李明博) 정부 당시 지지율의 급감, 이상득·최시중·천신일 등 측근 비리, 여당 국회의장이 개입된 돈 봉투 사건, 여기다 ‘안철수·문재인 바람’ 등이 범람하던 상황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 변호사의 계속된 지적이다.
 
  “과거보다 훨씬 더 ‘정치적인’ 판사들이 차기 대권주의 움직임이나 나꼼수의 인기 등을 외면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무릇 법관은 시대정신보다 헌법정신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는 ‘리걸 마인드(Legal Mind)’, 공동체를 위해 개인의 소신과 양심까지 꺾을 수 있는 용기를 갖춰야 합니다. 독일 법언(法諺) 중에 이런 말이 있어요. ‘개인의 신념에 어긋나는 설교를 하는 성직자는 경멸해 마땅하지만, 자신의 양심에 어긋나는 판결을 하는 법관은 존경해 마땅하다.’ 법관 개인의 양심보다 공동체의 상식이 우선한다는 의미입니다. 일부 ‘개념 판사’들이 깊이 새겨야 할 명제지요.”
 
 
  ‘정치판사’의 4가지 유형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대표변호사.
  이우근 변호사는 “과거 독재정권 시절에도 정치권력에 아부하거나 정치권에 줄을 대고 사익(私益)을 추구하는 ‘권력추종형’ 정치판사가 없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정권이 수시로 교체되고 권력의 사법부 장악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이즈음에는, 정치권력에 맞서 시민단체 요구나 자신의 이념적 성향에 따라 재판하는 ‘정치판사’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 변호사는 ‘정치판사’ 유형을 네 가지로 나눈다. 첫째, 시간이 흐를수록 국민의 지지를 상실해 가는 정권의 속성에 비춰, 현재의 정권보다 차기 정권에 기대를 거는 ‘권력지향형’ 판사. 둘째, 시민운동에 보조를 맞추는 소위 ‘개념 판사’로, ‘시류영합형’ 판사. 이들은 자신의 이념을 시민단체의 정체성에 끼워 맞추려 한다.
 
  셋째, 국가보다 민족을 우선시해 대한민국 헌법체계를 민족이념보다 하위(下位)에 두는 ‘민족지향형’ 판사. 넷째, 자본주의 사회를 약육강식의 비인간적 정글로 보고 정의의 기준을 약자와 소외계층에 두는 ‘소외지향형’ 판사. ‘역사는 진화(進化)한다’는 일종의 ‘진보사관’과 ‘민중사관’을 지닌 판사를 말한다.
 
  이 변호사는 그러나 “이들 4가지 유형은 대체로 한데 어우러지는 경향을 보이지만 ‘소외지향형’은 사회체제의 전복을 꿈꾸지 않는 한 건전한 ‘가치지향형’ 판사로 성숙, 승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한다.
 
  ‘정치판사’와 ‘정치적 판결’이 우려스러운 것은 재판 과정에서 판사의 비중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취재 과정에서 여러 차례 법정을 찾아 재판과정을 지켜보았다. 기자가 본 판사는 만능(萬能)의 ‘신(神)’에 가까웠다. 변호사와 검사는 판사에 맥을 못 추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렇게 판사가 개입하는 것은, 증거와 사건의 실체를 명확히 하려는 경향성 때문이라지만, 이 과정에서 개인적인 신념 내지 정치적 성향이 유·무죄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옮겨질 여지가 충분하다고 보인다.
 
한 시민단체가 법조비리에 연루된 판·검사들을 전원 구속하라고 서초동 법원청사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기자가 경험한 재판정 모습은 이렇다. 증인·피고인에 대한 검사의 신문이 진행되다가 어느 선엔가 검사의 존재는 온데간데없다. 말을 자르거나, 자기가 듣고 싶은 질문만 해댄다. 변호사도 마찬가지다. 판사를 설득하기보다 설득당하기 일쑤다. 한국의 재판정은 판사가 재판의 전 과정을 ‘지배’한다. 법정소설에서 보는 치열한 변호사·검사 간 공방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렇게 되니, 검사와 변호사는 신문 차례가 와도 주저하며 말을 안 한다. 판사는 서류를 넘겨가면서 서류와 진술의 일치 여부를 계속 확인해나간다. 공무원인 검사와 달리 변호사들은 그런 ‘절대 권력자’를 향해 불평을 늘어놓기도 한다. 작년 1월 23일자 《대한변협신문》 5면에 실린 ‘어떤 법관이 좋은 법관?’ 기사에 언급된 문제판사들의 면면을 보자.
 
  <…고압적인 말투나 모욕적인 언행으로 변호사들의 반감을 산 판사도 있었다. “20년간 맞고 살았으니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라”라든지 “저도 이 금고에서 돈을 좀 빌리고 있습니다. 지점장은 안녕하시지요?”와 같은 객관성을 상실한 발언도 문제 사례로 언급됐다.
 
  또 변호인이 제출한 준비서면을 툭 집어던지면서 “모르면 좀 아는 사람에게 물어보고 서면을 내라. 내가 안 된다고 했잖아”라며 심한 모욕을 주거나, “감히 변호사가 법대 앞으로 오느냐”며 인상을 쓰고 훈계조로 말한 사례도 있었다.…>
 
  그런 ‘절대권력’의 판사가, 정치적 편향과 권력지향적 사고, 세력화에 관심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계속된 이우근 변호사의 말이다.
 
  “법관의 양심(헌법 제103조)은 개인의 양심(헌법 제19조)과 다릅니다. 개인의 양심은 기본적 인권의 하나로 주관적, 인격적인 것이지만 법관의 양심은 재판의 준거(準據)로서 객관적, 규범적인 것입니다. 법관의 양심은 개인적인 도덕의식도, 종교적 신념도 아닙니다. 법관이 자기 개인의 소신이나 세계관 또는 종교적 양심을 ‘법관의 양심’과 동일시하는 것은 헌법이 재판의 규범으로 제시하는 법관의 양심을 오해한 것입니다. 양심(conscience)은 공동체성을 나타내는 con(함께)과 이성을 뜻하는 scientia(앎)의 합성어입니다. 즉 양심은 ‘사회공동체의 이성적(理性的) 윤리의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턴기자, 젊은 女판사와 만나다!
 
“법관은 도덕적으로 특별히 잘난 사람이 아냐”

  孔星閏 月刊朝鮮 인턴기자 pubmonth@chosun.com
 
 
  경기도 모 지방법원을 찾아가 젊은 여자 판사를 만났다. 이른바 ‘신참 법관’이었다. 그녀는 땀을 흠뻑 흘리며 새로운 길을 걷고 있었다.
 
  “판사는 계속 공부해야 하는 직업입니다. 아직 경험이 부족해 부장판사에게 많이 배우고 있어요. 연수원 시절, 이론대로만 하면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막상 해보니 어려워요. 판사들이 모르는 법이 정말 많아요. 쟁점에 대한 치열한 고민도 필요하고, 이전의 법례만 참고해 섣불리 결정하면 오판(誤判)할 가능성도 높고요.”
 
  이런 말도 했다.
 
  “사실, 판사는 사건의 진실과 가장 멀리 있는 사람입니다. 가장 잘 아는 이가 사건 당사자고, 그다음이 검사와 변호사입니다. ‘왜 사정을 몰라주느냐’며 논리 없는 말을 하면, 힘이 들어요. 판사는 증거로 판단해야 하기 때문에 주장하는 바를 증명하지 못하면 청구를 기각할 수밖에 없어요. 답답하기도 하고… 직접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이 때론 안타까워요.”
 
  —판사는 혼자 밥 먹는다면서요?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사적인 약속을 잘 잡지 않는 경향이 있어요. 대형 로펌에서 선임한 사건이 있으면 그 로펌 사람들과 가급적 안 만나려고 해요.”
 
  —법관이 일반인에 비해 좀 더 고결한 양심이 요구된다고 생각하나요?
 
  “제 판단에는, 법관에게 특별한 도덕적 의식이 요구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일반인과 다른 차원의 양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말인가요?
 
  “그래요. ‘법관이니까 난 항상 정직해야 돼’하고 생각하다 보면 오히려 사소한 죄에 엄벌을 내릴 수도 있어요. 법관은 도덕적으로 특별히 잘난 사람이 아닙니다. 법관은 그저 사실관계에 따라 판단을 내릴 뿐이죠.”
 
  —소송 당사자들이 ‘진실발견’에 협조하지 않고 자기주장만 되풀이하면 판사에게 점쟁이 역할을 강요하게 됩니다. 그 결과 진실에 반할 위험이 커지지 않을까요?
 
  “증거가 있을 때 판결을 내려야 하는 것이 법의 일반적 원칙입니다. 누가 건물을 매입하는 데 5000만원의 물권만 계약했다고 말해도, 매매증서에 1억원이 적혀 있으면, 말보다 서증(書證)을 더 높게 판단해야 하죠. 그 원칙을 염두에 둬야 하니 당사자가 아무리 주장해도 그편을 들어줄 수 없는 경우가 있어요. ‘판사가 뭣도 모르면서’하고 불만을 품어도 어쩔 수 없어요.”
 
  —판사들은 은행업무도 본인이 안 본다는 말이 있어요.
 
  “요즘은 절대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판사가 더 조심하는 편이죠. 그런 판사보다 조심하는 판사들이 더 많아요.”
 
  —법정에서 소송인의 말을 자르거나 압박을 주는 것 같은 말투도 권위적인 행동 아닌가요?
 
  “권위적이라기보다 ‘재판 진행기술’이라 생각합니다. 사실, 증인을 신문할 때 증인의 말을 끊거나 변호인의 질문을 일축시키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이 필요한지를 두고 판사끼리도 의견이 분분해요. 권위의식이라 생각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판사가 잘나서 그러는 게 아니에요. 해야 할 사건이 너무 많은데 재판이 지연되면 곤란해요. 증인신문이 길어지면 다음 사건 당사자들이 화를 내기도 해요.”
 
  —판사가 말을 자르면 증인들은 위축돼 말을 더 못하더군요.
 
  “처리해야 할 사건이 너무 많아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있어요. 현실적으로 증인의 처지와 법조계의 상황을 모두 충족시키려면 사건 수를 줄일 수밖에 없어요.”
 
  그녀는 “어느 부장판사가 말을 끊지 않고 끝까지 들었다. 그랬더니 속기사들이 굉장히 힘들어했다. 그분들의 업무강도도 굉장히 세다. …우리도 늦게 퇴근해야 되고, 판결문 쓸 시간도 줄고… 여러모로 곤란하다”고 했다.
 
  —퇴근은 제때 합니까.
 
  “판결문 다 쓰면 하는데, 야근할 때도 있어요. 집에 가서 일하기도 하고, 주말에 일할 때도 있어요. 판사들은 야근수당도 나오지 않아요.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판결문에 흠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들 열심히 합니다.”
 
  그녀는 연애할 시간이 있느냐는 질문에 “주말에 데이트를 하고, 평일에도 시간이 나면 가끔 한다”며 그제야 활짝 웃었다.
 
  “재판은 판사의 총체적 경험 표현”
 
  —피고인 앞에 선 법관은 어떤 사람입니까.
 
  “법관은 피해자도, 신도 아닙니다. 응징이나 관용의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쳐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양형이 가장 어려운 문제입니다. 피고인에 대한 연민 때문에 법관의 책무가 흔들려서는 안 되지만, 질서와 정의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관용으로 재생(再生)의 기회를 주는 것도 법관에게 부여된 또 하나의 책무입니다. 결국 그 균형점을 찾아가는 과정이 법관의 고뇌일 것인데, 여기에는 경험과 경륜의 축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판사로 처음 임용될 당시와 지금의 법 현실에 대해 관점이나 생각이 달라졌나요.
 
  “재판은 ‘기술과학’이 아닙니다. 인생관·가치관이 한데 어우러진 총체적 경험의 표현입니다. 초임판사와 경력판사의 관점이 같을 수 없고, 같아서도 안 됩니다. 제 경우도 그랬습니다. 젊은 나이에 단독재판을 맡았던 시절을 회고하면 지금도 후회와 두려움이 있어요.
 
  그래서 저는 오래전부터 고등법원 배석판사와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다 거친 판사에게 단독재판을 맡기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해 왔어요. 단독재판장의 경력이 합의부 재판장의 경력보다 짧은데, 이것은 앞으로 점차 조정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변호사와 판사의 관점은 더욱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시야가 더 넓어진 것이지요. 이런 면에서 경력판사 제도로 가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판사들의 윤리문제는 어떻게 접근하면 좋을까요.
 
  “사법연수원 수석교수 시절, ‘법조윤리’ 과목을 담당했었는데, 솔직히 말해 사법 당국도, 연수생들 자신도 모두 법조윤리에 관심이 매우 적었습니다. 당장 실무법관을 배출해야 하는 연수원이나 실무 성적으로 진로가 결정되는 연수생들 입장에서나 법조윤리는 최우선의 관심사가 되지 못했습니다.
 
  윤리는 궁극적으로 인격의 문제인데, 연수원에서 기계적으로 만들어낼 수 없는 이상 법조인 개개인이 얼마나 인격적인 면에 관심을 기울이느냐, 하는 것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어요. 그것은 결국 법관 스스로 인문학적 소양을 쌓는 노력으로 얻을 수 있어요. 삶에 대한 성찰과 균형 잡힌 역사의식, 문화적 감수성을 고양(高揚)시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사법부는 법관들의 그런 노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적, 기능적 방안을 발굴해야 합니다. 연수원 커리큘럼의 조정, 법관 업무량의 축소, 법관들의 문화적 접촉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 등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분쟁은 사회적 질병, 판사는 질병 치료사
 
박영립 법무법인 화우 대표변호사.
  법무법인 화우의 박영립(朴永立) 대표변호사는 눈물겨운 이력을 갖고 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중학교 진학을 미룬 채 여관 조수·버스승객 계수원·양복점 기술자로 전전했다. 20세가 되어 뒤늦게 검정고시에 도전, 대학에 진학하고 결국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변호사가 되어서는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장을 맡아 구금시설 실태를 조사해 구치소, 유치장의 시설개선을 이끌었고, 성매매 피해 여성들에 대한 소송을 맡기도 했다. 그의 눈에 비친 판사는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다.
 
  “분쟁(紛爭)도 일종의 사회적 질병입니다. 질병을 치료한다는 사명감이 없어 문제가 발생해요. 판사도 감정을 지닌 평범한 인간이죠. 우리와 똑같이 부족하고 평범합니다. 판사를 바라보는 도덕적 기준이 높고 고결해야 한다는 기대심리 때문에 조금만 잘못해도 일반인은 실망합니다. 그래서 문제해결이 어렵게 됩니다.
 
  헌법에 명시된 신분은 보장하되 문제가 생기면 퇴출해야 합니다. 직무교육과 윤리교육을 강화하고 통제시스템 강도를 높여야 해요. 판사도 불완전한 존재고, 재판 제도 역시 불완전한 제도가 아닙니까. 그것이 법조윤리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입니다. 온정주의적 사표만으로 판사의 비행을 면제시켜버리면 통제가 어렵습니다. 엄격하게 책임을 묻게 되면 전관예우도 점차 사라질 겁니다.”
 
  판사들은 엄청난 업무량에 시달린다고 한다. 할당된 사건을 빨리 처리해야 하니 ‘판결문 제조기’가 될 공산이 크다. 그렇게 작성된 판결문도 일반인에게 암호와 같은 법률용어로 가득 차 있다.
 
  박 변호사는 “한국 법원의 문제는 분쟁이 너무 많다는 것과 함께 빨리 처리할 사건은 종결하지 않고, 천천히 해도 될 사건은 빨리 처리하려는 조급함이 문제”라고 했다. “기대치가 높고 업무량은 많고, (법원이) 실적, 실적 따지며 인사고가에 반영하니 제대로 된 판단을 못 해 쫓긴다”는 것이었다.
 
  법정에 선 경험이 있는 이는 말한다. ‘판사에게 아무리 말해도 남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는다. 법리적으로 쟁점이 되지 않는 호소는 아예 막아버린다, 아무런 설명 없이 증거 신청도 받아주지 않는다’고.
 
  “어차피 재판이란 판사가 아무리 잘해도 절반의 사람에게 원성을 살 가능성이 크지 않나요? 오래된 병을 치유하려면 시간이 걸리기 마련인데, 단칼에 수술하다 보면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어요. 분쟁도 사회적 질병이기에 회복시간이 필요해요. 판사는 당사자가 분노할 때 경청해주고, 당사자끼리 시간을 갖고 해결책을 찾도록 도와야 합니다.
 
작년 1월 30일 서울 서초동 법원종합청사를 찾은 양승태 대법원장.
  또 판단하는 사람의 입장에서야 ‘이게 뭐가 고압적인 말투냐’고 하겠지만, 사건 당사자는 평범한 말 한마디에 절망합니다. 판사는 더 신중하게 용어 선택을 해야 해요. 끊임없이 직무교육을 받지 않으면, 언행에 주위를 기울이지 않으면, 무책임한 말이 튀어나올 수밖에 없어요.
 
  한국 법원이 모든 사건과 분쟁을 법정으로 끌어들이는 데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해결방식은 미흡합니다. 분쟁해결 방식도 조정이나 화해, 사적 영역에서 해결하게끔 명백한 법률적 기준을 마련할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합니다. 양쪽 당사자가 먼저 충분히 숙고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 다 듣고 판단할 수 있는 기관이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렇게 해야 사법 불신이 사라집니다.”
 
  그는 또 “판사에 대한 윤리 마지노선을 낮춰선 안 된다”고 했다.
 
  “대개 법원에 계시는 분들, 열심히 하고 대다수는 잘 합니다. 한두 판사가 문제고, 그것은 어느 조직에서나 다 있어요. 결국 불완전한, 평범한 인간집단이기에 통제나 규제가 필요하고 그래야 신뢰도 받을 수 있는 겁니다. 판사라고 자기들끼리 내부 기준을 낮춰선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겁니다. ‘판사들은 이 정도는 허용해도 된다’고 강변한다면 교만과 독선으로 비칠 수 있어요. 국민들은 판사들을 높은 기준으로 봅니다.”
 
  판사의 정치적 소신이나 신념에 대해서는 편향성으로 비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박 변호사는 “솔직히 판사도 정치적 소신이 있다. 크게는 가치관, 인생관이 판결에 녹아날 수 있으나 정치적 의사를 드러내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고 했다.
 
  “정의감 없는 판사들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실 약자나 사회적 소수자에게 ‘핸디’를 주는 사회가 더불어 사는 사회입니다. 법이라는 것도 결국은 더불어 살기 위한 약속 아닙니까. 법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약자의 상처를 고려하는 것이 법의 기본이념에 맞는 것이지, 무서운 형법을 도식적으로 대입하면 사람을 핍박하는 도구가 됩니다.
 
  판사는 약자 편에 서되 그 마음까지 치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픈 부분만 도려냈다가는 더 큰 문제가 생길 수 있어요. 상처의 원인까지 치유하려면 오래 응시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아픈 사람 말을 인내하며 들어주는 것이 분쟁을 치유하고, 사회적 질병을 치유하는 길이죠. 상처에 고춧가루 뿌리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합니다.”
 
宣在星 판사 사건과 鄕判
 
현대版 원님 재판?

 
선재성 광주지법 수석부장판사. 2011년 12월 서울 고등법원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향판(鄕判)이란 말이 있다. 부산·대구·광주·대전고법 등 지방관할 법원 중 한곳에 부임해 최고 10년간 근무하는 법관제를 말한다. 10년을 근무하면 연장도 가능하다. 2011년 말 현재 2561명의 판사 중 13%인 333명이 향판으로 추정된다. 지역 사정이 밝아 판결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으나 전관예우, 토호세력과의 유착 가능성이 높아 ‘현대판(版) 원님’이라 불린다.
 
  지난 1월 대법원이 원심을 확정한 선재성(宣在星) 광주지법 수석부장판사의 경우가 대표적인 향판비리 사건. 선 판사는 2000년부터 2002년 2월까지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재직한 시기를 제외하곤 모두 광주와 관할 지원에서 근무한 전형적 향판이었다.
 
  2010년 광주지법 파산부 수석부장 시절, D시멘트의 공동관리인 등 4명에게 ‘D건설에 대여한 원금을 회수해야 하니 강모 변호사를 찾아가 상담해보라’고 말해 직권을 남용,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강 변호사는 선 판사와 친구 사이.
 
  1심은 2011년 9월 선 판사가 재직했던 광주지법에서 이뤄졌다. 법조계에서는 선 판사가 ‘형사재판을 받는 최초의 현직 판사’라는 점에 주목했다. 자기 식구에게 유죄판결을 내릴지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았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1심 무죄. 선 판사가 변호사를 ‘소개’한 것이 아니라 ‘권고’했다는 논리였다. 작년 10월 광주지법 국정감사에서 지대운(池大雲) 광주지법원장조차 “저도 1심 판결문을 읽어 보면서 그것에 대해 좀 의문을 가졌다”고 말할 정도다.
 
  검찰은 그해 11월 “항소심 재판지를 서울로 변경해달라”고 요구했고 2심은 서울고법에서 진행됐다. 2심 재판부는 “선 판사가 직무상 관련이 있는 사건 수임에 관해 특정 변호사를 소개·알선한 것”이라며 1심을 깨고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헌법상 법관은 금고형 이상이 확정돼야 직을 잃기 때문에 판사직 박탈은 이뤄지지 않았다. 고법 부장판사급 고위 법관이 정식 재판을 거쳐 벌금형이 확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판사의 자질과 능력은 사법부가 보증해야”
 
김승열 법무법인 양헌 대표변호사.
  법무법인 양헌의 김승열(金承烈) 대표변호사는 “이참에 사법의 갑을(甲乙) 문화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거 법률제도는 통치 수단이었고, 왕과 귀족, 관료가 판사 역할을 했다. 김 변호사는 “지방의 경우 중앙에서 판사가 말을 타고 순회하여 재판을 하는 과정에서 그 지방의 인사들로 하여금 관습 등을 청취한 것이 배심원 제도의 유래가 되었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네 죄를 네가 알렸다’하는 원님 재판으로 판결이 이뤄졌어요. 원님이 호령하고 곤장을 치면 버텨낼 죄인이 없었지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도 민주적 변화가 필요합니다. 민사분쟁에서 판사는 단지 감독자, 최종 판단자입니다. 주된 선수는 양쪽 당사자이지요. 법정 운영방식이 좀 더 당사자들의 시각에서 조명될 필요가 있어요.”
 
  —풀어서 설명해주세요.
 
  “현행 구술주의는 찬성을 하지만 집중심리가 되지 않으면 공허할 수밖에 없어요. 3, 4주 단위로 반복되는 변론과정에서 구술로 주장한 것은 기억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중간에 인사이동으로 판사가 바뀌는 경우는 더 심각합니다. 미국처럼 구술주의에 충실하다면 변론이 집중돼 기억에서 멀어지기 전에 일주일이고 계속해 심리가 지속돼야 합니다.”
 
  김 변호사는 “법정은 사법소비자의 신성한 무대”라며 “과거보다 좋아지긴 했으나 오래 대기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재판부당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재판일정을 잡는 것을 좀 더 많이 잡으면, 개별사건당 재판이 정확한 시간에 시작하고 좀 더 집중적인 심리활동이 가능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형사재판 절차 역시 변화가 필요합니다. 무죄추정의 법리에 따라 피고인에 대한 예우도 중요한 부분이죠. 심각한 것은 전관예우의 폐해입니다. 자신이 재직할 때 배석판사가 재판장을 맡은 사건에 변호사로 참여하는 것은 공정한 재판을 저해할 수 있지요. 이런 사건은 원칙적으로 수임하지 않는 사회분위기가 조성돼야 해요. 영국에서는 전직 판사의 경우, 소송 사건을 가급적 회피합니다. 판결문 공개도 중요합니다. 정보공개를 통해 건전한 비판이 이뤄져야 황당한 판결이 내려지지 않게 되지요.”
 
국민의 권리의식이 높아지고 있지만, 법원은 국민의 법의식과 권리의식을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전관예우에 대한 씁쓸한 기억을 들려주었다.
 
  “고등법원에서 간단한 행정사건이 있었어요. 관련 판례가 이미 있어 판결 결과가 어느 정도 예견됐는데, 뜻밖에도 상대방 대리인이 갓 나온 전관 출신(고법 부장) 변호사였습니다. 재판 진행이 상대방 대리인에게 유리하게 흘렀고, 실제 증인신문 과정에서 판사는 중립적인 신분이 아니었어요. 거의 상대방 대리인으로까지 착각을 느낄 정도로 편파적인 느낌을 받았어요. 그렇지만 대법원 판례가 있어 큰 걱정을 안 했는데 놀랍게도 우리가 패소를 당했습니다. 즉시 상고해 대법원 판결에서 파기환송을 해 이긴 경험이 있어요.
 
  또 얼마 전 지방에서 맡은 재판인데, 상대 측이 입증을 제대로 못 하더군요. 소송이 진행되는 도중 그 지역 지법원장 출신 변호사가 추가로 선임되면서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어요. 그러더니 상대에게 승소 판결이 내려졌는데, 판결문 내용을 보니 논리도 비상식적이었고 내용도 부실해 놀란 적이 있습니다.”
 
  김 변호사는 “우리 사법제도는 하급심의 잘못된 판결을 상급심에서 바로잡으라는 뜻에서 3심제를 두고 있지 않느냐”며 “이 과정에서 소송 당사자들이 치르는 시간과 비용이 너무 크다. 판사의 자질과 능력은 사법부가 보증해야 한다”고 했다.
 
 
  재판의 주체는 누구인가?
 
김정오 연세대 로스쿨 교수.
  법원의 이미지와 법원의 현실 사이에는 현격한 괴리가 존재한다. 이 차이는 국민의 법의식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판사와 변호사, 판사와 원·피고 및 증인의 관계가 일방적이고 권위적이면 사법 불신이 더 높아질지 모른다.
 
  법철학자인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김정오(金正梧) 교수는 “그동안 법원이 우리 사회의 변화로부터 거의 단절된 상태로 유지돼 왔다”며 “사회의 모든 부분이 민주화되고 민주주의 이념이 스며들었으나 사법부는 여전히 과거의 그릇된 체계와 관행들을 존속시키는 양상을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판사들 간에, 판사와 피고, 판사와 변호사 간의 권위주의적 인간관계가 공정성과 정의의 이름으로 획득되어야 할 권위를 대체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사법부의 권위주의적 구조가 사법 정의를 실현해야 할 법정을 도리어 억압한다는 것이죠.
 
  우리나라 법문화와 법원구조 내에서는 재판의 주체와 객체 간의 경계가 경직되고, 전도된 양상을 보입니다. 재판의 주체는 판사이고 객체는 재판을 받는 대상, 즉 소송대리인들(변호사)을 포함한 소송당사자들로 구성돼 있어요. 그러나 공정한 재판을 받을 주체는 일반 국민입니다. 그 국민의 권리에 의해 판사는 공정한 재판을 내려야 할 의무가 있는데 현재 그 관계가 전도돼 있어요.”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앞에서 일부 시민들이 막말판사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피라미드식 법관 인사제도도 문제다. 김 교수는 “지방법원 판사, 고등법원 판사, 지법 부장판사, 고법 부장판사, 지방법원장, 고등법원장, 대법관, 대법원장 등 2000여 명 조금 넘는 판사들이 여러 직급으로 위계질서를 이루는 모습이 관료주의를 상징하고, 또 그 질서가 사법부를 옭아매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고 했다.
 
  “우리 사회는 연줄로 얽힌 사회입니다. 학연·지연·혈연에 얽혀 있으니 판사들은 외부인과 일부러 만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런 분들이 생각하는 법관의 순혈주의 때문에 주위에서 칭송하고 고고한 삶으로 바라보기도 했지요. 문제는 그렇게 살면 현실과 괴리된 판단을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소송은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발생해요. 과거엔 변화의 속도가 더뎠지만, 지금은 변화하는 사회와 구성원들의 통념을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법전 속에 법이 파묻힐 가능성이 높아요. 형식적 법률주의와 실증주의에 빠지면 소송 당사자가 진정으로 원하는 판단을 못 내릴 수 있지요.
 
  미국과 한국의 법사회학자들이 ‘변호사를 만나기 전 법의식’과 ‘만난 후 법의식’, 그리고 ‘재판을 받으며 판사의 태도를 보고 갖게 된 법의식’을 심층조사한 일이 있어요. 결론은 ‘의뢰인이 판결과 상관없이 판사가 자기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준 것만으로도 공정한 재판을 받았다고 생각한다’는 겁니다. ‘들을 필요 없다’거나 말을 함부로 자른다면 공정한 재판을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게 법 감정입니다.”
 
  법 감정은 상대방에게 전달되는 담론(談論) 속 옳음과 그름, 진실과 거짓 같은 이분법적 판단체계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말에 대한 상대방의 반응이 크게 작용한다.
 
  “일선 판사들의 일감이 너무 많습니다. 과거엔 법원에 가면 이상하고 예외적인 사람으로 봤지만 지금은 소송이 수월해졌어요. 그만큼 국민의 권리의식이 높아지고 법원 활용도가 높아졌지만 그 과정에서 법원조직과 판사의 의식변화도 짚어봐야 합니다. 변화의 과정 속에 있지만, 법원은 여전히 국민의 법의식과 권리의식을 쫓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국민의 권리의식, 법원이 못 쫓아가
 
  김 교수의 계속된 말이다.
 
  “1970년대 미국에서 소송이 급격히 많아졌어요. 지나칠 정도로 소송을 선호하는 일반 대중, 과도한 규제, 엄청난 소송 때문에 진통을 앓았던 것이죠. 그래서 ‘초법률화(hyperlexis) 사회’라는 말이 생겨났어요. 그런데 1980년대 미국 법사회학자 갈란터(M.Galanter)는 ‘미국의 민주주의 수준으로 볼 때 이 정도의 소송은 많지 않다’고 결론 내렸죠. ‘반드시 소송과 분쟁을 나쁘게 볼 필요가 없으며, 민주주의를 더 탄탄하게 하고 법에 대한 국민인식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봤습니다. 소송을 공동체에 적대적인 것으로 볼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죠.
 
  한국도 미국처럼 소송이 많지만 법을 너무 경직되게 운용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돼요. 소송을 의도적으로 줄이기보다 조정이나 중재와 같은 비공식적 사법제도를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어요.”
 
  왜 시민들이 생각하고 믿는 것처럼 현실 법원의 판사는 원고, 피고에게 중립적이고 친근하며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태도를 보이지 못할까.
 
  “법조인의 자격은 한마디로 국민이 부여해준 것이라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국민에게 빚을 지고 있는 셈이죠. 그런 생각을 갖는 것이 법조윤리의 첫 번째 출발점입니다.
 
  한국사회의 민주화된 수준만큼 법원조직과 내부문화는 더디게 움직이고 있어요. 이대로 가면 국민이 갖고 있는 법원 이미지와 법원의 현실이 충돌하게 되고 그 횟수가 증가할수록, 지금의 법원 관행이 깨지는 결과가 나타날 겁니다. 민주의식과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 높아질수록 사법 불신은 더욱 커질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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