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요즘 예비군 훈련은?

인턴기자의 동원예비군 훈련참가記

  • 글 : 박종원 월간조선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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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軍)에서 제대한 지도 군 생활(23개월)을 두 번 할 만큼이나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어느 날 이메일을 열어 보곤 작지 않게 놀랐다. 이메일에 동원훈련 영장(令狀)이 와 있었던 것이다. 군 제대 후 복학을 하면서 예비군 훈련을 받은 적은 있지만 동원훈련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동원훈련은 어떻게 다를까 하며 영장을 열어 보고 나선 또 한번 놀랐다. 소집부대가 강원도 인제의 수송대대였기 때문이다. 내가 군 복무를 한 경기도 연천과는 엄청난 거리 차이가 있는 곳이다. 더구나 수송대대라니. 난 군에서 의무병이었다.
 
  이런 의문을 풀지 못한 채 동원예비군 소집일인 6월 11일 아침이 밝았다. 일명 ‘개구리’라고 불리는 전역모를 삐딱하게 쓰고, 양손을 바지춤에 꽂아 넣은 채로, 제대할 때의 바로 그 기분으로 집을 나섰다. 군대를 갔다온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이상하게 군복만 입으면 모든 게 귀찮아진다니까.” 그렇게 혼자 투덜대며 집을 나섰다.
 
  집합장소인 서울 양재역에 가니 이 ‘예비군’을 인제까지 태워다 줄 수송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두어 시간쯤 지났을까. 거리는 생각만큼 멀지 않았다. 영장에 나와 있는 바로 그 부대에 도착하자 현역 장병들이 정문에 도열해 있었다.
 
  한데 군복부터가 낯설었다. 내가 군에 있을 때 입었던 그 전투복이 아니었다. ‘신형(新型) 군복’이란다.
 
  새 전투복은 구형 얼룩무늬 군복에 비해 위장 효과가 높다고 한다. 상의를 바지 밖으로 내 입을 수 있어서 폼이 났다. 현역병 말로는 통풍은 좀 안 된다고 했다.
 
  무사히 ‘부대 증편 신고식’을 마쳤다. 첫날부터 총을 쐈다. 당초 둘째 날 계획됐던 사격훈련이 비가 올 것이라는 예보로 인해 첫날로 당겨졌다.
 
  흙바닥에서 구르는 게 제일 귀찮은 예비군 아저씨들이지만 그래도 사격만큼은 현역이든 예비역이든 신나는 모양이다. 다들 애써 관심없는척 하다가도 총만 잡으면 “내가 왕년에…”라며 허세를 부리면서 한껏 자세를 취한다. 현역 조교가 기를 들어 사격을 허락한다.
 
  탕- 탕- 탕-.
 
  “사격 완료!”
 
  사격을 끝내고 표적지를 교체하는 예비군의 표정에 자신감이 감돈다.
 
  “아따, 이 아저씨. 그래도 총 잡으니 군인이네. 만발(표적지에 총알이 다 맞았다는 군대 용어)이구먼!” 여기저기서 흐뭇한 표정이다. 군을 제대하고 사회생활을 몇 년씩 했지만 사격 실력만큼은 ‘녹슬지 않았다’는 자신감이 묻어났다.
 
  이날은 국가대표 축구팀이 월드컵 출전권을 놓고 우즈베키스탄과 한판 승부를 벌이는 날이었다. 오후가 지날 무렵부터 예비군들은 하나가 되어 교관이 들으라는 듯 축구 얘기를 주고받는다. 대대장이 이 ‘아저씨들’의 민원(民願)을 못 들은 체할 리 없다. 더구나 병사들에게 물어보니 대대장은 ‘스포츠광(狂)’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단다.
 
  “선배님, 선배님!” 하며 예비군 챙기기에 여념 없던 조교와 교관 가릴 것 없이 이심전심으로 국가대표팀의 승리를 기원하며 텔레비전 앞으로 모였다. 스포츠는 이렇게 처음 만나는 아저씨들도 단결시키는 힘이 있다.
 
  다음 날 훈련은 정신교육부터 시작됐다. 이른바 ‘안보교육’이다. 회사에서 잔소리깨나 듣는 사회초년생들과 복학 후 지루한 교수님 말씀에 지친 학생들에게 군대에서 또다시 강의가 웬 말인가. 그것도 안보교육이라고. 군대 다 갔다온 사람들인데…. 별 예외가 없이 꾸벅꾸벅 졸며 헤드뱅잉을 한다. 강사인 대대장 혼자 열심이다.
 
  오후엔 주특기교육이 진행됐다. 수송, 통신, 취사, 의무, 경리 등등 각자 과거 군에서 했던 보직의 경험을 되살리는 시간이다. 의무병이었던 나는 여섯 살이나 어린 현역 의무병과 함께 인공호흡법 따위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매년 예비군 훈련을 받을 때마다 느끼지만 이런 종류의 교육은 별 의미가 없다. 무기를 직접 다루는 병사가 아니라면 행정이나 사무 업무는 온라인을 통해서 교육을 실시해도 무리가 없다. 상급부대 차원에서 이 같은 ‘훈련의 비효율’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은 있을까.
 
 
  예비군들의 공통 증상
 
  마지막 날, 야외 훈련이라면 기겁을 하는 이 아저씨들에게 위기가 닥쳤다. 전술훈련의 일종으로 ‘작계(作計)시행 훈련’이 잡힌 것이다. 트럭을 타고 진지로 나가 ‘야외 정비소’를 설치하라는 특명(特命)이 떨어졌다.
 
  예비군 아저씨들의 표정이 이내 잿빛이 된다. 갑자기 다리가 저려 온다. 현기증까지 나는 듯하다. 몸 쓰기 싫어하는 예비군들의 공통적인 증상(症狀)이라는데 동원훈련 첫해인 나에게도 어느덧 그 병이 찾아온 것이다.
 
  ‘대한의 열혈남아들’인가. 그래도 명령이 떨어지자 다들 천막을 지지하는 철근을 붙잡는다. 건성으로 하는 사람이 없다.
 
  “하나, 둘-! 하나, 둘-! 하나, 둘-!”
 
  순식간에 철근들이 일렬로 늘어서고 이내 초록 천막이 올라간다. 그 안으로 대형차량이 들어와 ‘간이 정비’가 이뤄지는 순간, 예비군들의 환호가 하늘로 울려 퍼진다. 대단한 일이라도 한 양 서로 “수고했다”며 덕담을 건넨다. ‘전직 군바리’들은 한껏 고양된 상태로 트럭을 타고 부대로 복귀한다.
 
 
  스마트폰으로부터의 해방
 
  2박3일의 마지막 훈련까지 마치니 “서울에 돌아가면 소주 한잔 합시다”라며 작별인사를 주고받는다. 처음 왔을 때의 서먹함 따윈 없다. 2년을 버텨야 하는 현역병들의 고생에 비하면 그야말로 짧은 시간이지만 다들 그 사이 잔정이 든 모양이다.
 
  교관들은 입소식 때 걷었던 스마트폰들을 나눠 준다. 나눠 주자마자 아저씨들은 2박3일간의 공백을 확인하기 위해 부랴부랴 전원을 켠다. 대화창을 확인하는 아저씨들, SNS를 열람하는 사람들, 업무를 확인하는 직장인들…. 세상이 좋아진 탓에 현대인들은 3일간의 공백을 전자기기 하나로 불과 몇 분 안에 전부 확인한다.
 
  같은 생활관을 쓴 예비군은 “스마트폰이랑만 잠깐 떨어져도 답답한 일상에서 좀 벗어날 수 있네요. 돌이켜 보니 3일간 휴가 온 것 같네요. 하하”라며 웃는다.
 
  “바쁜 와중에 훈련 받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요즘 북한이 시끄러운데 이렇게 멋진 예비역들이 있으니 얼마나 든든한지 모르겠습니다.”
 
  병사들 앞에서는 근엄할 것 같은 대대장이 예비군들에게 정다운 퇴소 인사를 건넨다. 그 한마디에 3일간의 짧은 ‘군생활’은 그대로 추억이 된다.
 
  내년엔 또 어느 곳에서 어떤 동원훈련을 받게 될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덧 수송버스가 양재역에 도착했다. 오고가고 5시간에 2박3일간의 동원훈련, 게다가 형식에 치중하는 듯한 안보교육…. 뭔가 좀 더 효율적이고, 아저씨들 또한 보람을 느끼는 동원훈련이 있을 법한데 잘 떠오르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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