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심층정보

북한 문화재 도굴 실태

고려청자·조선백자 신의주 거쳐 중국 유입… 일부는 高價에 한국인에게 팔려

  • 글 : 백승구 월간조선 기자  eaglebs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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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당·인민무력부 간부도 도굴 참여…북한 전역에서 조직적으로 도굴자행
⊙ 호박단추, 상평통보, 고서적, 병풍 등 도굴 문화재 다양… 고려청자 最高價에 거래
⊙ 단속요원에게 500~1000달러 뇌물 주고 사건 무마
⊙ 골동품 장사로 돈 벌기도 하지만 유물 놓고 폭행·살인사건도 빈번
북한 남포시에 있는 수산리 벽화고분 외경. 경제 파탄으로 도굴이 성행해 북한의 많은 문화유적지가 파괴되고 있다.
“골동품이 나오는 곳은 안 다녀본 데가 없어요. 2005년 이후 도굴 바람이 불면서 일반 주민은 물론이고 당간부들도 땅찌르기(도굴행위)를 하고 다닙니다. 그것도 조직적으로요. 돈이 되기 때문입니다.”
 
  북한 경제의 파탄은 역사적 가치가 높은 문화유적지까지 파괴하고 있다. 북한 주민이 생계유지 수단으로 문화재를 도굴해 중국에 팔아넘긴다는 소식이 간간이 보도됐지만, 북한 전역에서 당간부까지 가담한 조직적 도굴행위가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은 통일 후 한국 문화유산 연구 및 보존 차원에서 돌이킬 수 없는 과오(過誤)로 기록될 것이다.
 
  2003년부터 수년 동안 도굴 및 골동품 밀거래 장사를 했던 탈북자 강성현(33)씨. 북한 당간부 부인이었던 그는 《월간조선》과 《북한개혁방송》(대표 김승철)의 탈북자 심층인터뷰에서 북한 내(內) 문화재 도굴 실태를 적나라하게 털어놨다. 그는 “북한에서 도굴된 고려청자나 조선백자는 대부분 신의주를 통해 저가(低價)에 중국 장사꾼 손에 넘어간다”며 “그중 일부는 고가(高價)에 한국에 팔린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검찰소·보안서 간부도 도굴
 
개성공단 사업부지 개발 과정에서 출토된 북한 유물.
  강성현씨는 골동품 장사를 그만둔 뒤부터 한국에 올 때까지 서해바다에서 이른바 북·중(北中)무역을 하며 생활해 왔다고 했다.
 
  “북한에는 아직도 고려청자나 조선백자 등 문화재가 많아요. 도굴행위는 주로 황해도, 개성, 함경남도(은곡·양덕)에 있는 옛 묘지에서 이뤄지는데, 특히 함경남도 양덕(동양성)에서 골동품이 많이 나옵니다. 저는 북한 내 여러 곳을 다녔어요. 평안북도 선천군에 묫자리가 밀집된 지역에서도 문화재를 캐냈습니다. 제가 활동자금을 대면서 동료 두 명과 함께 일했습니다.”
 
  —언제부터 도굴에 손을 댔습니까.
 
  “2005년 즈음입니다. 이때 도굴 바람이 크게 불었어요. 당시 개성에서 활동하던 도굴꾼들이 꽤 많은 양의 고려자기를 도굴한 일이 있습니다. 값이 꽤 나가는 고려자기들이 많이 나왔는데, 이 일로 단속에 잡혀 감방살이를 한 도굴꾼도 많았어요. 도굴 바람이 분 이후 현재 검찰소부터 보안서 간부들까지 모두 골동품 장사를 하겠다고 나서고 있습니다.”
 
  —도굴 장비로는 어떤 것을 사용합니까.
 
  “8mm 정도의 뾰족한 침이 달린 막대기와 호미, 삽 등을 이용했습니다. 대부분 묫자리는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있기 때문에 땅을 찌르기도 쉬워요. 흔히 도굴하는 행위를 땅찌르기라고 말하는데 기다란 봉침으로 땅을 찔러 유물이 있는지 확인하는 데서 비롯된 겁니다. 골동품 시장에서 값이 나가는 것은 조선시대 유물보다 고려시대 유물입니다. 그래서 저도 주로 고려시대 때 묘를 찾아다녔지요. 고려시대 때 묘는 주로 돌무덤이 많아요. 묘를 유심히 살펴보면 인위적으로 쌓은 돌무덤과 자연적으로 쌓인 돌이 서로 다릅니다. 1000년 된 묘지도 한번 찔러 보면 유물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어요. 골동품이 있다고 판단되면 묘 주변을 네모 모양으로 틀을 잡아 도굴을 시작합니다.”
 
 
  한국産 모조품 북한에 흘러 들어가기도
 
2004년 당시 서울에서 전시됐던 북한의 고구려 유물 ‘연가7년명 금동일광삼존상’. 우리의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국보 72호 계미명 금동삼존불상을 본뜬 위작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강성현씨는 골동품 장사 초반에는 진품을 구하지 못해 모조품을 진짜라고 속여 팔았다고 한다. 모조품은 골동품 장사꾼들 사이에 많이 유통되고 있는데, 북한 내에서 만든 것도 있고 중국이나 한국에서 제작돼 역수입된 것도 있다고 한다. 그게 다시 중국과 한국으로 되팔린다는 것이다.
 
  “모조품은 일정 기간 북한 내에서 유통되다가 중국으로 다시 팔려나갑니다. 그런데 가짜라는 게 밝혀지면 중국 쪽과 거래선이 끊기게 됩니다. 한국에서 들여온 모조품은 기본적으로 비싼 것들이 많아요. 누가 들여오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밀수꾼들의 짓이라 생각해요. 저도 모조품을 많이 팔았는데 주로 자개로 된 작은 연적(붓글씨 쓸 때 사용하는 물그릇)이었습니다. 모조품은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잘 만들어진 것이었어요. 물론 골동품에 대한 경험이 쌓이면 진품과 모조품을 골라낼 수 있지요. 골동품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이 바닥에서 바가지 쓰기 십상입니다. 초보들은 잘 모르고 덤비기 때문에 망하는 사람도 많아요.”
 
  —북한 당국은 도굴행위를 단속하지 않습니까.
 
  “보안서부터 검찰서, 보위부, 연합단속조 등 여러 기관에서 단속하지요. 도굴이나 골동품 장사를 하려면 이들 기관과 연이 없으면 절대 못해요. 단속요원들에게 뇌물을 주고 입막음을 합니다. 이들에게 상당한 돈이 들어가 사실 돈을 모으기가 쉽지 않습니다. 단속기관 중에서 보위부, 보안서, 행정기관, 재판소, 청년동맹이 합동으로 단속하는 연합단속조는 규모가 제일 큽니다. 도굴을 하지 않아도 꼬박꼬박 뇌물을 챙겨 줘야 나중에 문제가 없어요. 이들이 요구하는 액수는 저마다 다른데 500달러에서 1000달러까지 요구합니다. 그런데 단속기관이 끝이 아닙니다. 골동품을 운반하려면 철도역장도 챙겨 줘야 해요. 골동품이 나오는 곳이 시골이다 보니 차편이 제한돼 있기 때문이지요.”
 
  —유통경로는 어떻게 됩니까.
 
  “골동품 시장이 크게 형성되는 곳이 신의주입니다. 도굴된 유물도 이곳에 모이지요. 여기서 중국 대방(對方・상대방 업자)에게 팔아넘깁니다. 신의주가 불안해 한때 다른 곳을 뚫어 보려고 청진, 함흥, 원산 등지에서 거래를 해 봤지만 결국 신의주로 다시 모이더군요. 남신의주 낙원기계 쪽에 가면 골동품을 거래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골동품 시장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주로 개인집에서 거래가 이뤄집니다.”
 
  —중국 대방들에게 ‘물건’을 넘기는 과정을 간단히 설명해 주시죠.
 
  “신의주에는 골동품을 중국으로 넘기는 거간꾼들이 있어요. 이들은 자신들이 거래하는 골동품 장사꾼 집에 차량 한 대 분량의 골동품이 모이면 전화로 중국 대방을 호출합니다. 몇 시에 어디에서 만나자고 하면 그쪽에서 배가 와요. 계산은 골동품을 배에 다 실은 후 합니다. 현금으로 직접 거래하는 사람도 있지만 중국 은행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어요. 중국 대방과 거래할 때 해안경비대를 미리 포섭해 놓습니다. 그래야 문제가 안 생겨요. 저의 경우, 북한 전역에서 모은 골동품을 한 달에 두세 번씩 중국에 내보냈어요. 나 같은 사람이 100명이 넘으니 중국으로 흘러 들어가는 문화재의 양이 얼마인지 대충 짐작이 갈 겁니다.”
 
 
  중국 상인, 高價의 유물 헐값에 가져가
 
서울 인사동에서 한때 거래된 북한 출토 청자.
  —중국으로 나가는 문화재는 주로 어떤 것들입니까.
 
  “호박단추, 엽전, 상평통보, 노리개, 봉채 등 여러 종류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값을 쳐주는 것이 고려청자입니다. 역사책(고서적)도 많이 거래됐는데 고서(古書)의 원본 같은 것들이었어요. 그 밖에도 특수지폐라고 부르는 일본지폐, 물을 채우면 색깔이 달라지는 독, 강남석(보석), 김홍도 그림, 병풍 등도 취급했어요. 골동품이 중국으로 팔려나갈 때 게르마늄과 같은 광물도 나가는데, 이것을 전문으로 취급해서 성공한 사람도 있습니다.”
 
  강성현씨의 증언에 따르면, 중국 대방들과 거래할 때 억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고 한다. 아무리 좋은 물건이라고 해도 중국 대방을 상대로 자기가 원하는 대로 흥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돈을 갖고 있는 중국 대방이 선택권을 갖고 있어 결국 비싼 골동품을 싸게 팔 수밖에 없다고 한다.
 
  “제가 제일 비싸게 판 것이 1000달러였어요. 아주 귀한 물건이었는데 중국 대방이 헐값에 가져갔습니다. 중국인에게 물건을 사 달라고 사정하는 판이니 비싸게 팔 수 없어요. 중국사람이 안 사 가면 팔 데가 없으니까요. 중국 상인들은 아주 귀한 것이라도 웬만해서는 1000달러 이상을 안 쳐줘요. 돈이 급한 북한사람들의 주머니 사정을 이용하는 거죠.”
 
  —중국사람들은 어떤 물건을 특히 좋아합니까.
 
  “자개로 된 사각 밥상이 있었는데 1만 달러에 팔린 걸 봤어요. 중국에서는 그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팔렸다고 들었습니다. 중국 대방들과 거래할 때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듣는데 북한 골동품을 한국사람들이 많이 사간다고 해요. 중국 대방들은 북한 골동품을 한국에 팔 가격의 100분의 1 정도의 가격에 사 갑니다. 저도 보는 눈이 있으니까 골동품 중에 ‘값이 조금 나가겠구나’ 하는 물건들을 대충 압니다.”
 
  —직접 도굴한 문화재 중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습니까. 중요한 문화재도 있었나요.
 
  “고려청자 주병(목이 긴 도자기)을 도굴한 적이 있어요. 상감기법으로 제작된 것인데 연꽃과 국화 무늬가 새겨진 것이었어요. 아는 사람에게 팔아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4000달러를 불렀어요. 고려청자에다 다른 골동품도 끼워 팔았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올 때까지 그 돈을 받지 못했어요. 팔아 달라고 부탁했던 사람이 중간에 가로챈 겁니다. 그 고려청자 주병은 정말 훌륭했어요.”
 
  —북한의 골동품 시장 규모는 어느 정도입니까.
 
  “전체를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골동품 장사판에서 일하는 사람 중에는 10만~20만 달러 규모로 사업하는 사람이 적지 않아요. 실제로 연선(국경에서 중국 대방에게 물건을 파는 사람) 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크게 돈을 번 경우입니다. 자개밥상이나 고려청자, 이조백자로 성공한 사람들이지요. 제가 알고 지낸 골동품 장사꾼 몇 명은 그 일을 한 지 20년 정도 됐는데 몇 십만 달러씩 깔아 놓고 장사를 하곤 했습니다.”
 
 
  국가보위부 외화벌이 목적으로 골동품 장사
 
도굴된 북한 문화유물은 싼값에 중국으로 유입된다. 도굴행위는 전통 문화유산의 보존에 치명적 결과를 가져온다. 2008년 11월 남북발굴조사단은 개성 고려궁성 ‘만월대’ 지역을 공동으로 조사했다.
  강성현씨는 “골동품이 돈이 되니까 고위급 사람도 도굴에 손을 댄다”며 “이들은 주변 시선을 의식해 대리인을 내세워 몰래 관여한다”고 했다. 국가보위부도 골동품 사업에 손을 대고 있는데 보위부 차원에서 물건을 구입해 평양으로 올려 보낸다고 한다. 이들 문화재는 대부분 외화벌이용으로 해외에 ‘수출’된다.
 
  “2005년 제가 살던 곳에서 도굴꾼이 잡힌 적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자신을 수사했던 책임자에게 ‘도굴한 골동품 아홉 점을 팔아 돈을 나눠 갖자’고 제안했습니다. 돈이 안 될 거라 생각했던 수사책임자는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얼마 후 평양에서 고고학자 세 명이 내려와 도굴품을 살펴봤는데 ‘이곳에 이 같은 보물이 있느냐’고 감탄하며 골동품을 가져갔습니다. 그 유물이 나중에 평양 역사박물관에 전시됐다는 얘기를 듣고 수사책임자는 평양에 물건을 보러 갔어요. 그런데 아홉 점 중에 서너 점만 있고 값비싼 물건은 보이지 않더라는 겁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수사책임자는 골동품이 돈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도굴 장비를 직접 메고 땅찌르기를 하고 다녔습니다.”
 
  강성현씨는 “평양에서 돈 많은 사람 중에는 도굴로 부자가 된 사람도 있다”고 했다.
 
  “북한에 이런 말이 있어요. 신의주 갑부와 청진 갑부 중 누가 돈이 많은지 대결을 했는데 제아무리 돈이 많아도 평양갑부를 못 당한다는 얘기입니다. 돈은 평양사람들이 다 번다는 것입니다. 돈을 번 사람들 중에는 골동품으로 재미를 본 사람이 있어요. 2003년 무렵부터 이런 소문도 나돌았습니다. 권력기관 고위급들이 골동품으로 번 돈을 해외로 빼돌린다는 거였어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얘기는 사실이었습니다. 인민무력부 간부들이나 노동당 고위급 간부들이 골동품으로 돈을 악착같이 벌려고 했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들은 돈에 미쳐 끔찍한 일까지 꾸미곤 했습니다.”
 
  북한에서 도굴행위는 19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 시기를 거치면서 전국으로 퍼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강성현씨가 살았던 평안북도 ○○지역에만 수십 명의 전문 도굴꾼이 활개를 쳤다는 것이다. 강씨는 “도굴이나 골동품 장사로 돈맛을 보기 시작하면 마약처럼 끊지를 못한다”며 “골동품 장사를 하면서 돈 때문에 살인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한다”고 전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 북한 유물 대거 중국 유입
 
  “폭행이나 살인이 발생하는 과정은 대충 이렇습니다. 도굴꾼이 값비싼 고려청자를 손에 넣었다고 칩시다. 그러면 골동품 장사꾼이 물건을 보러 옵니다. 도굴꾼 입장에서는 골동품 장사꾼이 돈이 진짜로 있는지 없는지 먼저 확인을 해요. 장사꾼은 일단 돈이 있다는 걸 확인시켜 줍니다. 그런 후 장사꾼이 도굴꾼에게 ‘둘이 조용히 이야기하자’며 다른 곳으로 데려가요. 그러고는 죽이는 겁니다. 장사꾼은 공짜로 물건을 가져갑니다.”
 
  북한 문화재는 지금도 도굴되고 중국으로 넘어간다. 북한 유물이 중국에서 최고로 인기를 끌었던 시기는 2008년이었다고 한다. 중국 장사꾼이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북한 문화재를 대거 사들였다는 것이다. 그 이후에는 가격이 많이 떨어졌다고 한다.
 
  강성현씨는 골동품 가격이 하락한 후 북·중(北中) 간 바다무역을 하다 지난해 한국으로 탈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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