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포커스

이스라엘 vs. 이란 그림자 전쟁

  • 글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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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11월 이란 비밀군사기지 폭발사고는 타미르 파르도(신임 모사드 국장)의 작품
⊙ 모사드, 시리아-북한 핵개발 커넥션 밝혀내
⊙ 이란도 혁명수비대 예하 ‘알 쿠드스’ 등 특수부대 운영하면서 헤즈볼라 지원
미국 백악관 앞에서 반(反)이란 시위를 벌이고 있는 이란 반체제단체 인민무자헤딘.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는 인민무자헤딘을 지원하고 있다.
#1. 지난 1월 11일 오전 8시30분(현지시간) 이란 수도 테헤란 한 도심에서 은색 푸조 405 승용차 한 대가 교통정체(停滯)로 속도를 내지 못하자 괴한 2명이 탄 오토바이가 접근했다. 뒷좌석에 탄 괴한이 승용차 옆면에 무엇인가를 부착한 후 오토바이는 쏜살같이 앞으로 빠져나갔다. 정확히 9초가 지나자 승용차가 폭발했다. 탑승자 3명 중 한 명은 즉사했고, 다른 한 명은 병원에서 숨졌으며 나머지 한 명은 중상을 입었다.
 
  현장에서 숨진 사람은 이란 중부 도시 이스파한에 있는 나탄즈 우라늄 농축시설의 부책임자인 무스타파 아흐마디 로샨 테헤란공과대학 핵물리학 교수였다. 승용차에 부착된 것은 소형 자석 폭탄이었다.
 
  범인들은 로샨 교수가 테헤란 북부 치자르 구역의 자택에서 출발할 때부터 오토바이를 타고 미행했다. 범인들은 치밀하게 사전 답사를 한 듯 교통이 막히는 시간과 지점까지 미리 알고 있었다. 승용차에 탔던 경호원은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했다. 마치 스파이 영화 같은 암살 작전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됐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 근동·걸프군사분석연구소의 시어도어 카라시크 연구원은 “자석 폭탄은 매우 손쉽게 누군가를 제거할 때 사용되는 대표적 수단”이라고 지적했다.
 
  이란에선 최근 2년간 핵(核) 과학자들이 이와 비슷한 방법으로 잇달아 숨졌다. 마수드 알리 모하마디 테헤란대학 입자물리학 교수는 2010년 1월 12일 테헤란 북부 케이타리예 자택에서 출근길에 나섰다가 자택 인근 주차장에 세워진 폭탄 적재 오토바이가 원격 조종에 의해 폭발하면서 숨졌다. 마지드 샤리아리 샤히드 베히시티 대학 원자력공학과 교수도 같은 해 11월 29일 자신의 승용차로 출근하던 중 폭탄이 폭발해 즉사했다. 당시 오토바이를 탄 괴한들이 샤리아리 교수의 승용차에 접근해 창문에 폭탄을 부착했다. 2011년 7월 23일에는 이란 원자력부 소속 핵과학자인 다리우시 레자에이가 오토바이를 탄 괴한의 총격을 받아 사망했다.
 
  숨진 4명은 모두 이란의 핵 프로그램 개발에 깊숙이 참여해 왔다. 이란 핵 과학자들에 대한 범행을 주장하는 개인이나 단체는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고 있다. 테러단체들이 자신들이 저지른 범행에 대해 명분과 함께 자신들의 소행임을 밝히는 것과 상당히 대조적이다.
 
 
  이란 비밀군사기지 폭발사고
 
모사드 로고.
  #2. 2011년 11월 12일 테헤란에서 남서쪽으로 40km 떨어진 비드가네의 비밀 군사기지에서 대규모 폭발사고가 발생, 36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부상했다. 당시 이란 정부는 사고 직후 군사기지의 탄약고에서 탄약을 옮기던 중 폭발이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폭발이 발생한 이 기지는 최신예 고체연료 미사일을 실험하는 핵심 시설로 추정된다. 고체연료 미사일은 이동과 은닉이 용이해 발사 전 포착해 파괴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이란은 현재 보유하고 있는 액체연료 미사일을 고체연료 미사일로 바꾸고 있다. 이 기지는 폭발사고로 완전히 파괴됐다. 또 이 기지에서 1.6~8km 떨어진 고체연료 미사일 사격장과 미사일 발사대 8개가 있는 기지까지 일부 파괴됐다.
 
  숨진 사람들 중에는 ‘이란 미사일 개발의 대부(代父)’라는 말을 들어온 혁명수비대의 하산 테흐라니 모카담 소장(少將)도 포함돼 있다. 모카담 소장은 지난 25년간 탄도미사일을 개발해 온 핵심인물로 이스라엘을 공격할 수 있는 사거리 2000km의 샤하브 3호 미사일을 제작한 바 있다. 모카담 소장은 이란에서 ‘미사일의 왕(王)’이라는 말을 들어 왔다. 모카담 소장의 장례식에는 이란 국가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까지 참석했었다.
 
  미국 《뉴욕 타임스》는 이 사고로 이란의 장거리 미사일 계획이 치명적 타격을 입은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일본 《산케이(産經)신문》도 당시 폭발사고로 이 기지에 파견된 북한 기술자 5명이 숨지고 2명이 다쳤다면서 이 중 3명은 북한 무기개발의 핵심기관인 제2자연과학원(국방과학원) 소속이라고 보도했다.
 
  사고 발생 이후 혁명수비대의 모하메드 알리 알 자파리 총사령관은 모든 산하 부대에 경계를 강화하라는 긴급 지시를 내렸다. 자파리 총사령관은 특히 샤하브 3호를 비롯한 각종 미사일과 폭탄들을 비밀 장소에 분산 배치하라고 명령했다. 영국 국제전략연구소(IISS)의 마크 피츠패트릭 연구원은 “미사일은 핵무기의 운반수단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무기”라면서 “이란의 미사일 전문가를 암살하거나 미사일 실험기지를 폭파하는 것은 비밀 전쟁의 중요한 목표”라고 지적했다.
 
 
  아이히만 체포작전으로 명성 떨쳐
 
모사드에 체포되어 재판을 받은 나치전범 아돌프 아이히만(가운데).
  이스라엘이 이란의 핵 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눈에 보이지 않는 ‘그림자 전쟁(shadow war)’을 그동안 추진해 왔다는 것은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림자 전쟁’이란 선전포고(宣戰布告)를 하고 공식적으로 전쟁하는 행위와는 달리 어떤 국가가 자국의 개입 사실을 숨긴 채 증거를 남기지 않고 특정 국가를 공격하거나 요인들을 암살하는 것을 말한다.
 
  이스라엘의 ‘그림자 전쟁’을 수행하는 핵심 조직은 대외(對外)정보기관 모사드(Mossad)이다. ‘모사드’는 히브리어로 기구·교육기관 등을 뜻한다.‘정보·특수작전기관(Institute for Intelligence and Special Operations)’이라는 의미인 모사드는 이스라엘 건국 다음 해인 1949년 12월 3일 창설됐다.
 
  총책임자인 국장의 이름만 공개되고 본부의 주소나 전화번호, 직원 수 등이 철저하게 비밀로 유지되고 있는 모사드는 이스라엘 총리실 직속 조직으로, 대외 정보수집과 특수작전을 주 임무로 하고 있다. 이스라엘에는 모사드 이외에도 국내보안을 담당하는 신베트, 군사정보를 담당하는 아만, 외무부 산하의 정치기획조사센터 등이 있다. 모사드 국장은 모든 이스라엘 정보기관을 통솔하는 최고 정보조정위원회의 의장을 맡고 있다.
 
  모사드가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것은 1960년 아르헨티나에 숨어 지내던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책임자 아돌프 아이히만을 체포해 재판에 세운 일이다.
 
  아이히만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終戰) 이후 신분을 감추고 잠적했다. 모사드는 그가 아르헨티나에 산다는 첩보를 입수한 뒤 3년간의 추적 끝에 1960년 5월 마침내 그를 납치해 아르헨티나 독립 150주년 축하사절단이 타고 온 비행기로 이스라엘로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 아이히만은 이스라엘 법정에서 유죄(有罪)판결을 받고 1962년 5월 처형되었다. 이 공작은 당시 신생조직이던 모사드의 역량과 나치즘에 대한 이스라엘 정부의 단호한 의지를 전 세계에 과시한 것이었다.
 
 
  모사드의 조직들
 
  모사드는 또 1972년 9월 뮌헨올림픽에서 이스라엘 선수단에 테러를 자행한 팔레스타인 테러조직 ‘검은 9월단’ 조직원 22명을 7년간의 추적 끝에 암살했다. ‘신(神)의 분노 작전(Operation Wrath of God)’이라는 이 암살 공작은 미국의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뮌헨>의 소재로 잘 알려진 바 있다. 모사드는 그동안 중동(中東)과 유럽 등에서 암살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배후로 지목돼 왔다. 하지만 모사드는 수많은 사건에 대해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모사드의 모토는 ‘기만에 의하여 전쟁을 수행한다’이다. 본부는 텔아비브에 위치해 있으며, 요원 수는 1200여명으로 추정된다.
 
  모사드의 조직은 작전을 담당하는 부서와 지원을 담당하는 부서로 나뉘어 있다. 하지만 모두 몇 개의 국(局)이 있는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작전 부서에는 수집국과 정치활동연락국, 심리전국 등이 있다. 수집국은 가장 규모가 큰 부서로 해외 정보를 수집한다. 수집국은 A·B·C의 3개실(室)을 가지고 있으며, 각 실은 지역과 해외지부를 관리한다. 정치활동연락국은 우호국의 정보기관과 정보교환 업무를 담당하며, 외교관계가 없는 국가와의 접촉 및 연락업무를 수행한다. 심리전국은 모사드의 심리전·선전·기만작전을 담당하고 있다.
 
  모사드의 작전부서 중 차프리림(Tsafririm)은 전 세계에 있는 유대인과의 연락을 담당한다. 야할로민(Yahalomin)과(課)는 특별통신부대로 이스라엘의 적대국에서 활동하는 요원들과 첩자들과의 연락을 맡고 있다. 네비오트(Neviot)는 도청 전문 부서이다.
 
  지원부서 중 가장 중요한 곳은 분석국이다. 수집된 첩보를 정보화하는 역할을 담당하며 구체적으로 일일보고서, 주간동향보고서, 월간보고서 등을 제작한다. 연구국은 14개의 지역과와 핵 담당과로 구성되어 있다. 기술국은 모사드의 작전을 지원하기 위한 최첨단의 기술과 장비를 개발한다.
 
 
  로버트 맥스웰 미러그룹 회장의 죽음
 
모사드의 협조자였다가 의문사한 로버트 맥스웰 미러그룹 회장.
  모사드의 공작 실태는 모사드의 현장 책임요원인 이른바 ‘카차’ 출신인 빅토르 오스트로프스키가 1990년 쓴 《기만의 방법으로―모사드 요원의 양성과 파멸》이란 책에서 드러났다.
 
  현재의 모사드를 만든 인물인 제3대 국장 메이르 아미트(재직기간 1963~68년)는 카차를 포함한 모사드 정식 직원 규모를 1200명으로 정했다.
 
  모사드의 요원 규모가 소수(少數)인데도 불구하고 놀라운 성과를 보여 온 것은 전 세계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과의 끈끈한 관계 때문이다. 오스트로프스키는 모사드의 협조자, 이른바 ‘사야님’이 전 세계에 3만5000명 정도이며, 이 중 2만명은 현재 활용 중인 협조자이고, 나머지 1만5000명은 잠재적 협조자인 ‘슬리퍼(Slipper)’라고 밝혔다. 아랍인 협조자는 ‘블랙(Black)’, 비(非)아랍인 협조자는 ‘화이트(White)’로 불린다.
 
  가장 유명한 사야님은 영국 언론재벌 미러그룹의 사주(社主) 로버트 맥스웰이었다. 언론 사주로 막강한 국제적 영향력을 지닌 그는 모사드와 정보·커넥션을 주고받으며 사업체를 키우다가 직원의 연금(年金) 횡령 스캔들과 부도 위기에 몰리자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그는 1991년 모로코 연안 카나리아제도에서 항해하던 자신의 요트에서 실족(失足)해 익사(溺死)했다. 오스트로프스키는 그가 모사드와 영국 정보기관 MI-6와 함께 벌인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실각 등 소련 시절의 공작이 폭로될 것을 우려한 모사드에 의해 암살당했다고 주장했다.
 
  모사드에서 이처럼 비밀공작을 전담하는 부서는 메차다(Metsada)이다. 메차다는 암살, 폭파 등 사실상 군사적 활동을 수행하는 핵심 조직으로 모사드에서도 독립된 부서로 운영된다.
 
 
  암살조직 ‘키돈’
 
모사드 암살조직 키돈 출신인 치피 리브니 전 이스라엘 외무장관.
  메차다 휘하에는 암살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키돈(Kidon)’이 있다. 키돈은 히브리어로 ‘총검(銃劍·소총에 꽂아 사용하는 단검)’을 뜻한다. 1970년대 중반까지 카이사레아(Caesarea)로 불려 왔던 키돈은 44명의 소수 정예로 구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적(敵)’으로 규정된 자는 지옥까지도 찾아가 제거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는 전문 킬러들이다. 이들은 보통 4인 1조로 활동하는데, 두 명은 직접 암살을 실행하고 다른 두 명은 추적과 잠입 탈출 등을 맡는다.
 
  키돈은 모사드 요원들 중에서 선발되면 훈련은 2년 정도 받는다. 훈련 기지는 네게브 사막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키돈에는 여성 요원도 있다. 현재 이스라엘 야당인 카디마당의 대표인 치피 리브니 전(前) 외무장관도 젊은 시절 키돈의 파리 지부(支部)에서 활동했다.
 
  키돈 여성 요원의 존재는 2004년 이스라엘의 핵 기술자 모르데차이 바누누를 납치하는 과정에서 세상에 알려졌다. 이스라엘의 핵무기 개발 사실을 폭로한 바누누는 1986년 런던 도피 중 ‘신디’라는 암호명의 키돈 여성 요원에게 유혹당해 로마로 밀월(蜜月)여행을 떠났다. 그가 신디와 탑승했던 항공기에는 모사드 요원 5명이 동승했고, 로마의 호텔 방에도 이미 모사드 요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호텔 방에 들어가자마자 마취 주사를 맞은 그는 20년 가까운 세월을 이스라엘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모사드도 실패할 때가 있다
 
모사드에게 암살당할 뻔한 하마스 지도자 칼레드 마샤알.
  모사드는 대부분 작전을 완벽하게 성공시키지만 종종 실패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하마스 최고지도자인 칼레드 마샤알 암살 미수사건이다. 1997년 모사드 요원들은 위조 캐나다 여권을 이용해 요르단에 잠입했다. 이들은 마샤알에게 접근, 귀에 독극물을 주입했지만, 마샤알의 경호원들이 이들을 체포했다.
 
  이 사건으로 이스라엘과 요르단 간에는 심각한 외교적 분쟁이 벌어졌고, 캐나다 정부도 강력히 항의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당시 이스라엘 총리는 체포된 모사드 요원들을 석방시키기 위해 할 수 없이 해독제(解毒劑)를 후세인 요르단 국왕에게 주어야만 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정부는 수감 중이던 하마스의 창설자인 셰이크 야신도 풀어 줘야 했다.
 
  당시 모사드의 최고 책임자였던 대니 야톰 국장은 이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반면 죽음 직전에서 살아난 마샤알은 이 사건을 계기로 하마스 최고지도자로 부상(浮上)했다.
 
  2010년 1월 아랍에미리트연합 두바이의 한 호텔 객실에서 발생한 하마스의 고위 간부 마흐무드 알 마부 암살 사건의 경우, 작전에는 성공했지만 모사드 요원들은 신분을 노출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알 마부는 하마스의 군사조직인 알 카삼 여단의 창단 요원으로, 1989년 이스라엘 군인 2명을 납치, 살해한 사건 때문에 이스라엘의 수배를 받아 온 인물이었다.
 
  두바이 경찰은 당시 호텔의 CCTV와 신용카드 사용 내역, 휴대폰 사용 기록을 조사한 결과 투숙객 11명이 사건에 관련이 있는 것으로 밝혀 냈다. CCTV에는 암살 용의자들의 얼굴이 선명하게 찍혔다. 또 암살 용의자들이 영국, 아일랜드, 독일, 프랑스 등의 위조여권을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모사드가 이란의 핵 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벌이고 있는 ‘그림자 전쟁’은 과거에도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벌어진 적이 있다. 모사드는 이라크의 핵 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스핑크스 작전(Operation Sphinx)’이라는 이름으로 암살공작을 벌였다.
 
  1980년 6월 13일 이라크 핵 개발에 참여한 이집트 핵 과학자 야히아 엘 메사드가 프랑스 파리의 메리디앙 호텔 방에서 곤봉으로 온몸을 구타당하고 목젖이 잘려 살해된 채 발견됐다. 모스크바에서 핵 과학을 공부한 그는 1960년대 이집트 핵 개발에 동원됐지만 6일 전쟁 뒤 정부가 이를 폐기하자 이라크의 핵 개발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체니의 증언
 
  모사드는 그를 포섭해 이라크 핵 시설의 정보를 빼내려 했지만 실패하자 제거했다. 당시 그와 함께 호텔 방에 있던 프랑스인 성(性)매매 여성도 살해됐다. 작전 증거를 없애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암살로 목적을 달성할 순 없었다. 이스라엘은 1981년 7월 7일 전투기를 동원해 이라크 오시라크 핵시설을 폭격한 뒤에야 사담 후세인의 핵 개발 야심을 꺾을 수 있었다.
 
  이스라엘이 시리아가 북한과 이란의 도움을 받아 비밀리에 건설 중이던 핵 시설을 공습할 수 있었던 것도 모사드가 결정적인 단서를 입수했기 때문이다. 모사드는 런던의 한 호텔에 투숙 중이던 시리아 고위 관료의 노트북 컴퓨터에서 핵 시설에 관한 정보를 빼냈다.
 
  당시 모사드의 활동은 딕 체니 전 미국 부통령이 2011년 8월 출간한 자서전 《나의 시대(In My Time)》에서 상세히 드러났다.
 
  체니 전 부통령은 모사드의 메이어 다간 국장이 2007년 4월 백악관을 비밀리에 방문해 스티브 해들리 당시 국가안보보좌관의 방에서 자신에게 시리아의 사막 지역에 있는 건물의 사진을 보여줬다고 밝혔다. 체니 전 부통령은 모사드가 시리아의 은폐 시도에도 불구하고 이 원자로가 가스냉각 방식의 흑연감속로라는 사실을 파악했으며, 외부로 노출된 전력선(電力線)이 없는 것 등으로 미뤄 전력 생산용이 아니라는 점도 확인했다고 기술(記述)했다.
 
  체니 부통령은 특히 북한이 핵무기용 플루토늄 생산을 위해 건설한 영변 원자로와 시리아의 원자로가 크기와 용량 등에서 거의 같다는 점에 놀랐으며, 북한이 당시 가스 냉각식 흑연감속로 원자로를 건설한 유일한 국가라는 점에서 북한의 관여를 사실상 확인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체니 전 부통령은 이전에도 북한의 핵 프로그램이 시리아에 지속적으로 전달된 정보를 입수했으나 확신을 못하던 중에 모사드가 제시한 자료는 결정적인 증거였다고 강조했다. 더욱이 모사드가 내놓은 자료 중에는 북한의 핵시설 담당자가 시리아를 방문해 시리아원자력에너지기구(SAEC) 책임자와 나란히 찍은 사진과 북한의 6자회담 대표단에 포함됐던 인사의 사진도 있었다고 소개했다.
 
  당시 이스라엘은 미국에 시리아 핵시설 폭격을 요청했지만 미국은 이를 거부했다. 결국 이스라엘은 2007년 9월 F-15I 전투기를 동원, 직접 시리아의 알 키바 핵시설을 폭격했다.
 
  시리아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의 심복이자 시리아 안보정책의 총책인 모하메드 술레이만 준장(准將)의 지휘로 이스라엘의 해외 공관들에 테러 공격을 준비해 왔다. 정보를 포착한 모사드는 2008년 8월 시리아 타르투스 해변에서 해수욕을 즐기던 술레이만을 암살했다.
 
 
  이란 反체제단체 후원
 
모사드의 내막을 폭로한 전 모사드 요원 빅토르 오스트로프스키(오른쪽)와 그의 책 《기만의 방법으로》.
  모사드가 이란에서 ‘그림자 전쟁’을 수행하는 일은 다른 나라에 비해서 매우 어렵다. 모사드가 이란에 잠입하는 것은 물론, 활동조차 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모사드는 ‘그림자 전쟁’을 위해 이란인들을 포섭하는 데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특히 모사드는 이란 반(反)체제 단체인 인민무자헤딘(MEK)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데 공을 들여 왔다.
 
  MEK는 1965년 이란 왕정(王政)에 반대해 창설된 좌익 단체로 1979년 친미(親美)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리는 데 일조했지만,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가 이슬람혁명을 성공시킨 이후 이라크로 추방됐다. 당시 MEK는 호메이니가 세운 이란 혁명정부를 ‘성직자들이 만든 독재정권’이라고 비난했다.
 
  MEK는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 편을 들어 조국과 싸웠다. 후세인 당시 이라크 대통령은 수도 바그다드에서 북쪽으로 96km 떨어진 지역에 아쉬라프 캠프를 설치하고 MEK 조직원들에게 군사훈련 등 편의를 제공했다. 미국은 MEK를 테러단체로 지정했지만, 이라크를 점령한 이후 MEK를 은밀히 후원했다.
 
  하지만 이란은 이라크에 시아파 정권이 들어서자 MEK의 아쉬라프 캠프를 없애고 조직원들을 추방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해 왔다. 이라크 정부는 지난해 말 사실상 아쉬라프 캠프를 폐쇄했고, 조직원들은 뿔뿔이 흩어진 상태이다.
 
  MEK의 정치조직으로 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둔 ‘이란국민저항위원회(NCRI)’는 현재도 활동 중이다. 이 단체는 2002년 이란이 비밀리에 건설 중이던 나탄즈 핵시설의 존재를 처음 폭로하기도 했다.
 
  MEK 조직원들과 모사드 요원들은 그동안 이란에서 서로 협력해 온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이란 비밀 군사기지 폭발사고와 관련,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모사드가 MEK와 연계해 이란의 미사일 기지를 폭발시킨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란 내 少數민족 적극 포섭
 
신임 모사드 국장 타미르 파르도.
  또 모사드가 MEK 조직원들을 훈련시켜 이란 핵 과학자 암살 작전에 투입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프랑스 일간지 《르피가로》는 모사드가 이란 정부의 탄압을 피해 해외로 도피한 망명자 그룹 중 정예요원을 선발해 이라크 북부 쿠르드 지역에서 핵 정보 수집 활동과 핵 전문가 암살 훈련을 진행했다고 보도했다.
 
  이와 함께 모사드는 이란의 수니파 반군 단체인 준달라를 이용해 비밀작전을 수행했다는 설(說)도 있다.
 
  ‘신(神)의 군대’라는 뜻의 준달라는 파키스탄과 이란 남동부 접경지역인 시스탄-발루치스탄주(州)를 근거지로 삼아 20년 넘게 테러와 납치 등의 반군 활동을 벌여 왔다. 시스탄-발루치스탄주는 이란의 30개 주 가운데 면적이 18만1785㎢로 가장 넓고, 인구는 240만명이나 된다. 이란 국민 대부분이 시아파지만 이 지역에 사는 발루치족(族)은 수니파이다. 발루치족은 시스탄-발루체스탄과 파키스탄의 발루치스탄주에 흩어져 살고 있다. 준달라 조직원들은 발루치족이다.
 
  모사드는 이란에 살고 있는 쿠르드족들도 적극 포섭해 왔다. 이란 전체 인구의 10%를 차지하고 있는 쿠르드족은 그동안 주류(主流)인 시아파로부터 차별 대우를 받아 왔다. 모사드는 앞으로도 이란과의 ‘그림자 전쟁’을 더욱 치열하게 벌일 가능성이 높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지난해 1월 모사드 신임 국장으로 취임한 타미르 파르도가 그림자 전쟁을 진두지휘하고 있다면서 군사기지에서 발생한 폭발사고도 파르도의 작품이라고 보도했다.
 
 
  이란 정보기관 베바크
 
  이란도 이스라엘에 맞서 그림자 전쟁에 돌입했다. 이란 국가최고지도자인 하메네이는 자국(自國) 핵 과학자들의 암살 배후로 모사드를 지목하고 범인들을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메네이의 발언은 사실상 ‘선전포고’라고 볼 수 있다. 이란 언론들도 이스라엘의 정치인이나 군인을 상대로 보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이란 정보기관들이 이스라엘에 대한 보복작전에 나서고 있다. 이란의 대표적인 대외정보기관은 국가정보보안부(VEVAK·영어의 줄임말은 MOIS)이다. 이 기관의 전신(前身)은 1957년 팔레비 왕정시절에 창설된 사바크(SAVAK)이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지원을 받았던 사바크는 체제유지를 위해 반정부 인사와 단체들을 탄압했으며, 소련을 견제하기 위한 활동을 해 왔다. 이후 이란은 1984년 사바크를 베바크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요원들을 완전히 물갈이했다.
 
  베바크는 모사드와 마찬가지로 외국에서 암살과 테러를 벌여 왔지만 정확한 활동 내용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베바크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대표적인 사건은 1994년 7월 18일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이스라엘-아르헨티나 친선협회(AMIA) 건물에서 발생한 폭탄테러로, 당시 85명이 사망하고 300여 명이 부상했다. 이 사건은 지금까지 중남미(中南美) 최악의 폭탄테러 사건으로 기록돼 있다.
 
  아르헨티나 사법부는 폭탄테러 사건의 배후에 이란과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가 관련된 것으로 보고 있으며, 2006년 폭탄테러의 배후 인물로 지목된 아마드 바히디 국방장관 등 이란 정부 고위 인사 6명에 대해 수배령을 내린 바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비밀스런 특수부대
 
  이란의 최정예 군사조직인 혁명수비대도 해외공작을 전담하는 ‘알 쿠드스(Al Quds)’라는 조직을 두고 있다. 알 쿠드스는 아랍어로 ‘예루살렘’을 뜻한다.
 
  알 쿠드스 부대는 세계에서 가장 비밀스런 특수부대 중 하나이다. 이 부대의 활동은 매우 은밀하게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한 번도 대외적으로 제대로 알려진 적이 없다.
 
  미국 정보기관에 따르면 이 부대는 1992년 보스니아 전쟁 때 무슬림에게 무기와 자금을 지원했다. 또 수단 정부가 반군인 기독교민병대를 진압하는데 필요한 무기를 지원하고 병사들을 훈련시킬 수 있는 교관들을 파견했다.
 
  특히 이 부대는 헤즈볼라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 왔다. 헤즈볼라는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과정에서 이란의 지원으로 창설되었다. 당시 호메이니는 헤즈볼라 대원의 군사훈련을 위해서 혁명수비대 교관 1500명을 레바논에 파견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혁명수비대는 이후 모두 철수했지만 알 쿠드스 부대는 아직도 레바논에서 암약하고 있다.
 
  이 부대는 또 팔레스타인의 하마스와 이슬람 지하드,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과도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 부대의 병력은 장교 800명을 포함해 2000여 명으로 구성됐다는 설이 있는가 하면, 5만명이라는 말도 있다.
 
  현재 이 부대의 해외 조직이 있는 곳은 이라크는 물론 레바논 팔레스타인 요르단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인도 터키 등과 수단 등 북부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및 유럽 지역이다. 이 부대의 본부는 이란 중부지역에 있었으나 2004년 이라크 국경과 가까운 지역으로 옮겼다는 설이 있고, 옛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의 경내(境內)에 있다는 설도 있다.
 
  이 부대는 1979년 이슬람혁명이 일어나면서 혁명수비대가 창설된 직후 만들어졌다. 현재 이 부대의 지휘관은 카심 술래이마니 소장이다. CIA의 전직요원인 로버트 바이어는 “이 부대의 동태를 파악하는 것은 극히 어렵다”면서 “이 부대는 무선(無線)이나 전화 등을 사용하지 않고, 인편을 통해 명령을 지시한다”고 밝혔다.
 
 
  이란의 보복테러
 
  이란은 지난 2월 14일 에어쇼 참관을 위해 싱가포르를 방문한 에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국방장관을 암살하려 했지만 사전에 발각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과 헤즈볼라의 공조로 조직된 암살단 3명이 바라크의 동선을 파악해 그가 머무는 호텔에서 암살할 계획을 세웠지만 싱가포르 보안당국이 모사드의 제보를 받고 사전에 이들을 체포했다는 것이다.
 
  이란은 물론 이스라엘과 싱가포르는 이런 암살시도는 없었다고 부인했지만, 바라크 장관은 당초 방문 목적인 에어쇼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지난 2월 13일엔 인도 수도 뉴델리와 그루지야 수도 트빌리시에서 이스라엘 대사 등을 노린 폭탄테러 기도 사건이 각각 발생했다. 인도에서는 이스라엘 대사 부인과 운전사 등 4명이 다쳤지만, 그루지야에선 폭탄이 사전에 발각돼 피해는 없었다.
 
  지난 2월 14일 태국 수도 방콕의 한 주택에서도 이란인 3명이 폭탄을 다루다 실수로 폭발하는 사건이 발생했었다. 태국 경찰은 “이들이 암살팀이고 이스라엘 대사를 표적으로 삼았다”고 밝혔다.
 
  CIA 분석가 출신의 폴 필러 조지타운대 교수는 “이란이 자국 과학자들이 암살된 것에 대한 복수로 이런 사건들을 시도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이란의 테러 공격 시도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자 이스라엘 정부는 전(全) 세계에 있는 자국 공관들은 물론 유대인과 유대교 시설에 테러 경계령을 내렸다.
 
  현재로선 양국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식으로 ‘팃 포 탯(tit-for-tat·맞대응) 전쟁’에 돌입한 양상이다. 특히 양국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정보기관이나 특수부대를 동원해 그림자 전쟁을 더욱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양국의 그림자 전쟁은 자칫하면 진짜 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도 있다. 양국 모두 ‘치킨게임(chicken game)’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치킨게임’이라는 것은 어느 한쪽도 양보하지 않고 극단적으로 치닫는 상황을 말하는 국제정치학의 용어이다. 과거 냉전시대에 미국과 소련이 군비(軍備)경쟁을 벌이면서 치킨게임을 한 적이 있다.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보이지 않는 전쟁이라는 치킨게임을 벌이다 양측이 의도적이든 아니면 우발적이든 정말로 전쟁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이나 이란 모두 핵 문제에서 결코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란 핵 문제가 과연 어떻게 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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