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학력자일수록 잘 속고, 저학력자일수록 현명한 나라. 젊은층의 어리광에 영합하는 언론·정치·학자들, 漢字 말살로 국민교양의 토대를 무너뜨린 기성세대, 文法이 부서지니 憲法도 무너진다.

- 2008년 광우병 사태. 요즘 젊은이들이 좌파의 선동에 취약한 것은 한자교육 중단으로 인한 문해력(文解力) 저하와 관련 있다.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구매력 기준으로 2만8230달러로 세계 29위인데, 인간개발지수는 15등이다. 이는 국가가 소득 수준에 비해 교육과 보건 분야에 투자를 많이 했다는 뜻이다. 즉 소득에 비해 복지예산을 많이 썼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도 정치인들은 ‘양극화(兩極化)’ 현상을 과장, 무상(無償)복지 경쟁을 벌인다. 인간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기간을 ‘건강수명’이라 한다.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80.6세이지만 건강수명은 71세이다. 최장수국인 일본은 83.4세에 76세이다. 북한인의 건강수명은 59세로 남한 사람들보다 12세나 적다.
이명박(李明博) 정부 들어서 한국은 ‘삶의 질(質)’ 순위에서 처음으로 20등 이내에 진입했다. 2008년 금융위기를 한국이 잘 극복한 게 이런 등수로 나타난 듯하다. 그럼에도 한국의 언론과 정치는 정부가 경제를 망쳤다고 욕을 해대고, 젊은 세대의 어려움을 과장하면서 기성(旣成)세대를 일방적으로 공격한다.
국가, 조상, 선배들에 대한 고마움이 없고 공짜심리에 물들면 불평 불만이 늘어난다. 삶에 대한 만족도 부분에서 한국인은 불만이 비(非)정상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삶의 만족도는 캐나다(10점 만점에 7.7), 노르웨이(7.6)가 높은 편이고 일본(6.1) 한국(6.1) 홍콩(5.6) 중국(4.7) 등 동(東)아시아 국가들이 낮은 편이다. 삶의 질이 15등인 한국인의 불만도는 삶의 질 48등인 우루과이와 같고, 105등인 엘살바도르(6.7)보다 심하다.
2040세대가 과연 불행한가?
한국인들이 객관적 삶의 수준에 비해 주관적 불만도가 높은 것은, 정치와 언론과 학자들이 젊은층의 어려움을 과장하는 것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상황이 이렇고 보니 5060세대 입장에선 대학 공부까지 시켜 주었건만 변변한 직장에 취직 하나 제대로 못하는 아들딸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2040세대 입장에선 출구(出口)조차 없는 암울한 현실은 외면한 채 기득권 고수에 여념 없는 5060세대를 향한 분노가 고개를 들면서 ‘세대(世代) 전쟁’이라 불러도 손색없을 전선(戰線)이 형성되고 있다.”
이화여대 함인희 교수가 쓴 신문 칼럼의 한 대목이다. ‘출구조차 없는 암울한 현실’이란 표현은 과하다. 청년층의 실업률이 상대적으로 높긴 하지만 중소기업에선 사람이 모자라고 60만명 정도의 외국인 노동자가 궂은 일을 한다. ‘출구조차 없는 암울한 현실’은 6080세대가 6·25 전후(前後)에 경험했다. 그때 이들은 ‘암울한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일하면서 싸우고 싸우면서 일하여 2040세대가 누리는 부(富)를 창출했다.
“이젠 부모의 도움 없인 서울에 전셋집 한 칸 마련하는 일도 벅찬 것이 2040세대의 현실이요, 내 집 마련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 되어 버렸다.”
“5060세대에게 대학 진학은 사회적 특권의 상징이었고 졸업하고 대학문을 나서는 순간 일자리가 눈앞에 널려 있었기에… (하략)”
함 교수의 이런 비교도 사실과 맞지 않다. 현재 한국의 주택보급률은 5060세대의 젊은 시절보다 거의 배증(倍增·1970년의 74%에서 110%로 증가)했다. 5060세대의 젊은 시절보다 지금 실업률이 낮다(1970년은 4.4%, 지금은 2.9%). 한 세대 전, ‘일자리가 눈앞에 널려 있었다’는 표현은 2040세대를 동정하기 위한 과장이다. 지금 2040세대가 직면한 어려움은 선배 세대가 맞닥뜨렸던 현실에 비교하면 ‘행복한 고민’이다. 과거의 고민이 생존차원이었다면 지금의 고민은 생활차원이다.
인간은 시련을 통해 진정한 행복을 얻는다. 19세기 평화를 누리던 영국도 우리와 비슷한 고민이 있었는지 토머스 칼라일은 《영웅숭배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역경(逆境)을 이기는 인간이 100명이라면, 풍요를 이기는 사람은 한 명도 안된다.”
청년 백수가 무슨 벼슬인가?
지난 11월 《중앙일보》 심상복 논설위원(경제연구소장)은 ‘청년 백수가 무슨 벼슬인가’라는 제하(題下)의 시평(時評)에서 지난 10월 일자리가 2010년 동월(同月)에 비해 50만 개 늘고 그 전달에 비해서는 24만 개 더 많아졌다는 정부 발표를 소개했다. 10월 실업률은 2.9%를 기록했는데, 3% 아래의 실업률은 9년 만이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걸 ‘고용 대박’이라고 했다가 언론의 뭇매를 맞았지만(늘어난 일자리의 절반이 50~60대용이고 2030세대 일자리는 오히려 줄었다고) 심 위원은 “양질(良質)의 일자리, 그게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뚝 떨어질 걸 예상했던 사람이 있단 말인가. 늘어난 일자리가 허접한 것이라고 하지만 당장 뾰족한 수는 없다. 더구나 지금은 찬밥 더운밥 가릴 때도 아니다”고 현실론을 편다.
그는 “문제는 그런 일자리는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 20~30대다. 대기업이라도 지방은 싫다, 수도권이라도 중소기업은 싫다고 한다. 취업전쟁이라고 하지만 현장에선 아직도 이렇게 배부른 소리가 넘쳐난다”고 했다.
그는 “한창 일할 나이에 경제활동에 가담하지 않는 것 자체가 염치없는 짓이다”고 비판한 뒤 “중소기업은 정식 직원도 지원자가 없어 못 뽑는 판이다. 그래서 채용하는 게 외국인이다. 2011년 6월 정부가 5인 이상 근로자를 고용한 3만여 개 기업을 조사한 결과, 1분기에 뽑지 못한 직원 숫자가 11만4400명에 달했다. 2010년 동기(同期)보다 4000여 명 늘어난 수치다. 이런 현상은 300명 미만 업체에서 더욱 두드러진다”고 했다.
언론이 2030세대 과보호
중소기업 관련 단체에서 감사로 근무하는 한 인사는 “대졸자들의 중소기업 기피는 상당 부분 부모 때문이다”고 했다.
“부모들이 중소기업에 자식이 다니면 결혼을 시킬 수 없다고 생각해요. 요사이 중소기업은 설비 자동화로 근무 조건이 좋고, 봉급도 대기업의 80% 수준입니다. 대졸자가 취직해도 부모가 말리는 바람에 도중에 그만두는 이들도 많아요.”
서울에 사는 40대 이승현씨는 조갑제닷컴에 기고한 글에서 “언론이 2030세대의 불만을 여과 없이 소개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한 신문에 소개된) 29세의 김모씨는 미혼인데, 월급 250만원에 할머니로부터 매달 생활비 지원까지 받고 있다. 그는 대학 시절 받았던 학자금 대출금과 오피스텔 월세를 내고 나면 저축하는 돈이 한 달에 50만원도 안된다고 보도했다”면서 이렇게 비판했다.
“적은 봉급으로 지혜롭게 열심히 살아가는 수많은 청년들을 놔두고 흥청망청 소비하고 할머니에게 삥까지 뜯어 가며 과소비하는 청년을 인터뷰해 가며 ‘가난한 아들’ 운운할 것인가? 분당에 살고 있는 34세 박모씨는 월급이 500만원이라는데 그가 빚 갚는 것도 어렵다며 늘어놓은 하소연을 왜 언론이 동정적으로 소개하나. 노름하다 빚을 졌는지, 주택시장에 투기해서 빚을 졌는지 모르지만 왜 우리가 걱정해야 하는가?”
부모의 과보호 아래서 자란 2030세대를 요사이는 정치인과 언론이 과보호하는 게 아닌가? 문제는 그런 젊은층의 분별력과 시민의식이다.
2010년 5월 26일 《한국일보》는 <정부의 천안함 사태 원인조사 결과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70.1%가 신뢰한다고 답했고 신뢰하지 않는다, 모르겠다는 응답은 29.9%였다>고 보도했다. 한국일보가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정부 발표를 신뢰한다는 응답은 나이가 많을수록, 학력이 낮을수록 많았다는 것이다. 덜 배운 사람일수록 현명하고 배운 사람일수록 어리석다는 결론이다.
‘덜 배운 유식자’와 ‘많이 배운 무식자’
![]() |
| 민현식 서울대 교수. |
세계 최고 학력(2030세대의 대학졸업률은 약 60%)과 세계 최고 대학 진학률(약 80%)을 자랑하는 한국의 젊은층이 속아 넘어가는 데도 1등이란 희한한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속는다는 건 말에 속는다는 뜻이다. 인간은 말과 글에 대한 이해력이 약하면 잘 속게 되어 있다.
2001년 한국교육개발원이 15세에서 65세까지의 국민 12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는 놀랍다. 대졸(大卒) 이상 한국인의 고급문서 해독력이 OECD 국가 중 꼴찌였다. 고학력층의 문해력(文解力)이 약한 것과 이들이 선동에 잘 넘어가는 것 사이엔 관련성이 있을 것이다.
교육개발원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고급 문해력은 2.4%로 꼴찌인데, 1등인 스웨덴은 35.5%였다. 스웨덴 국민 세 명 중 한 명은 고급 정보를 활용, 구사할 수 있으나 한국인은 100명 중 두세 명만이 고급정보를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한국 대졸 이상자의 문해력은 노르웨이의 중졸(中卒) 이하자(以下者)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서울대 국어교육과 민현식(閔賢植) 교수는 2009년 발표한 〈국어 능력 실태와 문법 교육의 문제점〉이라는 논문에서 “한글전용(專用) 덕분에 단순 문맹률(文盲率))은 낮으나, 규범(規範) 교육이 부실해 실질 문맹률인 문식성(文識性·literacy)이 낮고, 고학력자일수록 문식성이 낮게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민 교수는 “1990년부터 중학교에서 한자(漢字)가 선택 교과로 격하(格下)돼 한국인의 한자 및 한자어 이해력이 급감하고 있다”며 “한글전용으로 인해 한자어의 어원(語源) 의식 상실로 한글 세대에게는 한자어(漢字語)의 동음이의어(同音異義語)가 다의어(多義語)로 인식되는 현상이 생기고 있다”고 했다.
漢字말살의 업보
민 교수는 예로 ‘진통’(陣痛·산모가 해산할 때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통증)과 ‘진통’(鎭痛·통증을 가라앉혀 진정시킴)을 들었다. 의대(醫大)의 산부인과 학생들이 ‘산모가 진통을 시작하자 진통 주사를 놓았다’고 한글체로만 익히다 보니 어원 의식이 없어 한 단어의 다의어인 것으로 착각하는 의식이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전자파’(電磁波·electromagnetic wave)와 ‘전자파’(電子波·electron wave)는 한글로만 적으면 변별이 안된다. 이러다 보니 미묘한 개념의 정확한 변별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어휘력도 줄게 된다는 것이다.
‘인재(人才)’는 재주가 뛰어나게 놀라운 사람이란 뜻이고, ‘인재(人材)’는 학식이나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란 뜻이다. ‘배치(配置)’는 사람이나 물자 따위를 일정한 자리에 알맞게 나누어 둠이란 뜻이고, ‘배치(排置)’는 일정한 차례나 간격에 따라 벌여 놓음이란 뜻인데 ‘인재’ ‘배치’로 표기하면 이를 구분할 수가 없다.
고학력자일수록 좌익의 선동에 넘어가는 비율이 높고 고학력자의 문해력이 낮은 것. 이는 ‘한자말살에 의한 한글전용 풍조가 한국인의 말과 글과 사물(事物)에 대한 이해력을 약화시켜 잘 속게 만든다’는 가설(假說)을 뒷받침한다. 학력(學歷)이 좋지 못한 고령자가 학력이 좋은 젊은층에 비해 선동에 잘 속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고령자들의 한자 실력 덕분이 아닐까?
일본 유권자들은 투표할 때 용지에다가 지지 후보자와 정당 이름을 한자로 적어 넣는다. 문맹률이 1%밖에 안되는 나라만이 할 수 있는 방식이다. 유권자들이 투표에 참여하려면 한자에 밝아야 하고 무엇보다도 선거에 관심이 있어야 한다.
대부분의 나라에선 후보자와 정당 이름 앞에 도장을 찍는 방식이고 문맹률이 높은 곳에선 정당의 상징을 동물 도안으로 만들어 투표를 돕기도 한다. 같은 한자 문화권인 한국에서 일본식으로 투표하게 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한국과 일본의 국력(國力) 및 교양 차이는 한자실력 차이이기도 할 것이다.
2년간 일본 어학연수를 다녀온 30대 젊은 기자 김필재(金泌材)씨는 이렇게 썼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2년 동안의 일본 생활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한자를 익힌 것이다. 한자를 배움으로써 다중우주론(多重宇宙論), 평행우주론(平行宇宙論) 등 어려운 과학용어의 뜻을 명확하게 이해하게 됐다. 한자를 통해 모국어(母國語)의 독해력(讀解力)이 증대되었고, 세상이 일차원(一次元)에서 입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한글만 익히면 당연히 수평적(水平的)이고 단순한 사고밖에 할 수 없다. 외눈박이 인간이 되기 쉽다. 좌파(左派)가 한자를 사용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오지호 화백의 예언
![]() |
| 한글전용의 폐해를 예견한 오지호 화백. |
고 오지호(故 吳之湖) 화백은 1971년에 쓴 《국어(國語)에 대한 중대(重大)한 오해》란 소책자에서 이렇게 예언했는데 불행히도 적중했다.
<그러면, 이 땅에서 한자가 깨끗이 소멸한 다음에는 어떤 사태가 야기될 것인가.
1.소수(少數)의 특수 지식인을 제외한 일반 국민은 언어능력의 원시화에 의한 사고능력의 퇴화로 말미암아 국민의 정신상태는 한자 수입 이전의 저급한 단계로 환원될 것이다. 젊은 세대에 있어서는 이와 같은 사태가 이미 진행 중에 있다.
2. 학술을 연구하는 자는 필리핀이나 인도처럼 순전히 유럽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그 결과 국민은 백인화(白人化)한 소수의 지식귀족과 한글밖에 모르는 다수의 원주민 저지식족(低知識族)의 두 가지 계층으로 나누어질 것이다.
3. 우리의 민족문화는 황인문명(黃人文明)의 일환으로서 한자와 한자어를 바탕으로 생성하고 발전되어 왔다. 우리는 한자를 없앰으로써 이 강토에서 수천년 동안 연면(連綿)히 계속되어 온 우리의 고유문화는 그 전통이 단절될 것이다. 그 불가피한 결과로 국민의 생활감정과 사고방식은 외형적, 또 말초적 면에서 구미화(歐美化)할 것이다.
4. 동양문화권으로부터 스스로 이탈함으로써 한민족은 천애무의(天涯無依)의 문화적 고아가 될 것이다.>
2010년 5월 《중앙선데이》와 한국리서치는 천안함 폭침(爆沈) 관련 정부 조사 발표에 대한 여론조사를 했는데, 정치성향별 비교를 했다. 자신의 정치성향을 ‘보수’라고 답한 이들의 약 63%가 정부 발표를 믿는다고 응답했다. ‘중도’라는 이들의 58.5%, ‘진보’라는 이들의 44.5%만 신뢰한다고 답했다. 한나라당 지지자의 73.1%는 천안함 폭침이 북한 소행이라고 응답했는데, 민주당 지지자는 47%만 그렇게 믿는 것으로 나타났다(무당파는 52%).
한나라당 지지자들과 많이 겹치는 보수적 성향의 국민들보다 민주당 지지자들과 겹치는 이른바 진보적 성향의 국민들이 더 많이 천안함 괴담에 넘어가 사실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정치적 성향이나 이념이 사실 인식에도 영향을 준다는 게 입증된 셈이다.
선동기관화된 언론
![]() |
| 1964년 12월 8일 뤼브케 서독 대통령(오른쪽)과 회담하는 박정희 대통령. 주진우 기자는 두 사람의 만남 자체가 없었다고 사실과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
주진우라는 잡지 기자가 어느 출판 기념회에서 아래와 같은 말을 했다가 박정희(朴正熙) 대통령 아들 지만(志晩)씨로부터 사자(死者)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했다.
“1964년도에 대통령이 독일에 간 것은 맞습니다. 거기까진 팩트인데 뤼브케 대통령을 만나지도 못했습니다. 그때 뭐였었냐면요, 독일은 이미 조금 민주화가 되어서 대통령이 오자마자 호텔을 민주화 인사들하고 시민단체 인사들이 데모를 해 가지고요 대통령은 다른 데 한 발짝도 바깥에 못 나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통령은, 아니 독재자하고, 우리나라도 그렇잖습니까? 아프리카에서 쿠데타로 정권 잡은 사람이 온다고 해서 막 만나 주고 그러지 않습니다. 아무리, 이명박도 그러지 않잖습니까? 만나지도 못했습니다. 탄광에 간 거는 맞는데, 나머지는 다 구라(거짓말)입니다, 그거.”
주씨가 자신 있게 한 이 말은 물론 허위이다. 박정희 대통령과 서독 대통령 뤼브케 사이엔 몇 차례의 회담과 식사 자리가 있었고 국내 신문에 자세히 보도되었다. 주씨는 서독 대통령이, 자신을 찾아온 박정희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치부해 만나 주지 않은 것처럼 말했다. 한국을 무슨 식민지 정도로 생각하는 듯하다. 주권(主權)국가 정상(頂上)끼리의 회담이 갖는 외교상의 중요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폭언이자 자학적(自虐的) 상상이다. 박정희를 미워하는 마음이 앞서다가 보니 기초적 사실확인도 생략한 듯하다.
박건찬 종로경찰서장은 2011년 11월 28일 밤 광화문 일대에서 한미(韓美)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무효화를 요구하며 불법집회를 벌이던 시위대에 집단 폭행당했다. MBC는 이와 관련, “폭력행위를 용납할 수 없다”는 경찰 입장과 “당시 경찰 행동에 문제가 있었다”는 시위대 입장 사이에 논란이 있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2011년 11월 28일 뉴스데스크는 “영하의 날씨에 물대포 진압으로 이미 감정이 격앙돼 있던 상황. 이런 상황에서 경찰서장이 사전 통보 없이 경호조와 채증조를 데리고 시위대 한가운데를 가로지른 건 시위대를 자극하기에 충분했고, 그래서 상당수 시위대들이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는 겁니다”는 기자의 설명을 담았다. “영하의 날씨에 물대포 진압으로 이미 감정이 격앙돼 있던 상황”이라는 설명 때는 경찰의 물대포 사용 영상도 나왔다. 시청자로 하여금 물대포 사용이 시위대를 자극한 것처럼 느끼게 보도한 것이다.
MBC 보도와 달리 이날 경찰은 물대포를 사용하지 않았다. 경고방송만 했었다. 이런 지적을 받아도 MBC는 정정 보도를 하지 않았다. 경찰도 “MBC는 원래 그러니까…”라면서 항의를 하지 않았다.
최은배 부장판사는 ‘뼛속까지’ 從北?
기자에 이어 판사도 선동에 가담한다. ‘우리법연구회’ 소속 최은배 부장판사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 “뼛속까지 친미인 대통령과 통상관료들이 서민과 나라 살림을 팔아먹은 2011년 11월 22일, 난 이날을 잊지 않겠다.”
문맥상 최 판사는 친미(親美)를 악으로 보는 듯하다. ‘뼛속까지’ ‘팔아먹은’이란 극도로 감정적인 어휘 선택은 그가 미국을 증오하는 사람이 아닌가 짐작하게 만든다.
판사는 심판자 역할을 하므로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노출시켜선 안 되는 직업이다. 영국 축구팀과 프랑스 축구팀이 경기를 하는데 심판이 평소에 “난 영국놈들이 정말 싫어”라고 공언(公言)하고 다닌 인물이라면 심판의 공정성을 누가 믿겠는가?
괴테가 말하기를 “행동하는 사람에겐 양심이 없다. 관찰하는 사람에게만 양심이 있다”고 했다. 판사는 관찰자의 입장을 벗어나 행동가나 참여자가 될 때 양심을 떠나게 된다는 뜻이다. 판사는 헌법과 법률과 양심에 따라 독립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사람이다. 행동가로 데뷔하고 싶다면 변호사가 되어야 한다.
‘서민과 나라살림을 팔아먹은’이란 최 판사 표현은 좌익운동권 수준의 선동이다. 대통령과 관료들을 ‘매국노’라고 폄하한 셈이다. 법치국가에서 이런 글을 쓰고도 판사직을 유지할 수 있는 나라는 많지 않을 것이다. 이런 수준의 감성(感性)과 지성(知性)을 가진 판사가 과연 재판을 이성적으로 공정하게 진행할 수 있을까?
그가 재판장으로 있는 인천지법 행정1부는 2011년 12월 8일 민노당에 불법 후원금을 냈다는 이유로 해임 또는 정직 처분을 받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 인천지부 소속 교사 7명이 나근형 인천시 교육감을 상대로 낸 징계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原告) 승소(勝訴) 판결을 했다.
이들은 민노당에 불법 후원금을 낸 혐의로 형사 기소돼 2011년 1월 서울중앙지법에서 30만~5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으며, 현재 서울 고등법원에서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민노당과 전교조는 종북반미(從北反美) 성향을 공유하고, 전교조는 민노당의 모태(母胎)인 민노총 소속이다. 최 판사가 소속한 ‘우리법연구회’도 좌(左)편향적이란 비판을 많이 받았다. 민노당은 더구나 한미동맹 해체, 주한미군 철수, 연방제(적화)통일, 국가보안법 폐지를 강령으로 삼아 활동한다. 불법과 폭력도 서슴지 않는다. 최 판사의 판결은 그의 막말에 어울리고 ‘뼛속까지 종북’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참고로, 이용훈 대법원장이 취임한 2005년 7월 이후 5년간의 친북(親北)·좌익(左翼)·국가 공권력 도전 혐의자 관련 37개 사건 40개 판결을 분석한 결과, 무죄가 14건으로 전체의 35%에 해당했다. 그밖에 유죄·집행유예 16건, 구속영장 기각 5건, 처분취소 2건, 선고유예 1건, 공소기각 1건, 기타(수사기록 공개) 1건이었다. 유죄를 선고한 16건의 경우도 모두 집행유예로서 실제로 형을 집행한 경우는 없었다. 언론에 보도된 재판을 조사대상으로 삼았으므로 실형 선고가 전혀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李知映, 2010년)
李明博의 이념不在
최근 몇 년간 있었던 가장 큰 선동은,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한 “이념의 시대는 끝났다”는 몽상적 발언이었다. 그는 지난 4년간 한번도 ‘종북’이란 말을 입에 담지 않았다.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병리(病理) 현상을 없는 것으로 치부했다. 이 대통령은 한반도의 현실과 동떨어진 환상(幻想)을 만들어 그곳을 도피처로 삼았다. 그렇게 하여 결과적으로 종북세력을 키운 것이다. 대통령의 가장 큰 힘은 연설인데, 스스로 적전(敵前)에서 이념 무장 해제를 단행한 이명박 대통령은 반국가 세력이 주도한 폭동을 당하고도 분노할 줄 몰랐다. 레이건과 대처, 이승만(李承晩)과 박정희(朴正熙)의 성공 요인은 이념형 지도자였다는 점에 있다.
마거릿 대처 영국 수상은 좌익이 지배하던 탄광노조의 불법 행위를 진압, 지도력을 확보해 국가개혁에 성공했다. 파업 중이던 영국 탄광노조는 정부가 발전소 및 제철소로 수송하는 석탄이나 코크스를 저지하기 위해 시위대를 투입했다. 경찰이 이를 진압하려 하니 충돌이 빚어졌다. 1984년 5월 29일엔 5000명의 시위대가 경찰에 돌을 던졌다. 경찰은 기마대(騎馬隊)를 동원해 이들을 짓밟았다. 69명이 다쳤다. 다음날 대처 수상은 유명한 연설을 했다.
“여러분들은 어제 텔레비전을 통해서 그 광경을 보셨을 줄 압니다. 어제 광경은 법치(the rule of the law)를 폭치(暴治·the rule of the mob)로 뒤바꾸려는 책동이었습니다.
그게 성공하도록 내버려둬선 안 됩니다. 저들의 기도는 실패할 것입니다. 첫째, 훌륭한 경찰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직무를 용감하게, 그러나 공정하게 집행할 수 있도록 잘 훈련되었습니다. 둘째, 압도적 다수의 영국인들은 명예를 중시하고, 점잖으며, 법을 준수하는 이들입니다. 이들은 협박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저는 시위대를 뚫고 일터로 나간 분들의 용기에 경의를 표합니다. 법치는 폭치를 눌러야 합니다.”
대처는 탄광노조의 지도부를 노동운동가로 보지 않았다. 그들을 극좌(極左) 공산주의자로 보았다. 그는 회고록에서 이렇게 썼다.
<탄광노조의 파업이 실패함으로써 영국은 파쇼 좌익(the Fascist Left)이 무정부 상태를 만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마르크시스트들은 법이 지배하는 나라에 도전함으로써 경제의 법칙을 무너뜨리려 했다. 그들은 실패했다. 그럼으로써 자유시장경제와 자유로운 사회는 상호 의존적임을 증명했다. 누구도 잊을 수 없는 교훈이었다.>
김정일 정권을 추종하는 종북세력이야말로 ‘파쇼좌익’이다. 문제는 그렇게 규정한 뒤 국민들을 설득하고, 경찰·검찰에 힘을 실어주었어야 할 대통령의 이념 부재(不在)이다. 이념은 ‘공동체의 이해(利害)관계에 대한 자각(自覺)’(황장엽)이고 ‘자기 정당성에 대한 확신’이며 한반도에선 가장 큰 전략이다.
안보 문제에 침묵하는 안철수
![]() |
| 안철수 교수의 어록을 보면 안보에 대해 침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그는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광우병 난동’ ‘한미FTA’ ‘전교조’ ‘종북’ ‘공산당’ ‘김정일’ ‘3대 세습’ ‘북한인권’ ‘강제수용소’ ‘서울올림픽’ 등 안보 문제와 관련된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1년 8월 17일, 안철수씨는 경남 창원에서 열린 ‘청춘콘서트’에서 ‘좌우(左右) 이념 구분이 소모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외국에서는 좌파, 우파 논쟁이 20년 전에 끝났다고 하더라. 아직도 논쟁하는 나라는 지구상에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 좌파, 우파 논쟁하면서 허송세월할 만큼 우리나라 상황이 녹록지가 않다. 굉장히 소모적”이라고 비판했다.
안씨가 구사하는 어휘력은 매우 한정되어 있다. 김영삼(金泳三), 이명박 수준이다. 한자문화의 교양이 보이지 않는다. “인간은 어휘력만큼만 성장할 수 있다”는 말이 있는데, 안씨는 그런 한계 이상으로 성장한 사람으로 보인다.
《1984》 《동물농장》의 저자(著者) 조지 오웰은 ‘배운 무식자들’의 말장난은 끝없이 계속될 수 있는데, 그런 관념의 유희가 끝장나는 건 전쟁이 터졌을 때라고 했다. ‘고학력층일수록 잘 속고 저학력층일수록 건전한’ 한국 사회에서 세계 최고 학력층이 벌이는 관념의 유희를 방치한다면 한국은 유혈(流血)사태(內戰)나 경제공황, 또는 남미(南美)식의 무질서로 빠져들 것이란 예감이 든다. 이렇게 배운 무식자들이 많으면 간첩이 선거를 통해 대통령이 되어 국군 통수권을 행사하는 일도 불가능하지 않다. 한국의 어린 민주주의가 종북정권이 선거를 통해 등장하는 것을 막을 힘이 있는지 2012년에 결판이 날 것이다.
좌경화 30년은 한글전용의 확산 시기와 일치한다. 좌경화가 헌법을 붕괴시키고, 한글전용은 문법을 파괴했다. 좌경세력이 한자말살에 앞장 선 것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한자말살·한글전용으로 국민 교양이 무너진 토양에서 좌익이 번식했던 것이다. 언어(言語)는 사상(思想)을, 사상은 행동을 결정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