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탐구

삼성그룹 새 컨트롤 타워 金淳澤

“변신하지 못하는 회사는 망한다”

  • 글 : 정혜연 월간조선 기자  hych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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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SDI를 10년 만에 브라운관에서 친환경기업으로 탈바꿈
⊙ 삼성 비서팀장, 감사팀장 두루 거쳐 10년 동안 대표이사 지내
⊙ 직원과의 소통 중시하는 ‘덕장 CEO’

金淳澤
⊙ 1949년생. 경북대 경제학과 졸업. 제일합섬 입사. 삼성비서실 감사팀장,
    삼성중공업 건설부문 대표이사, 삼성미주본사 대표이사, 삼성SDI 사장,
    삼성전자 신사업추진단 부회장 역임. 국가품질경영대회 금탑훈장 수상.
⊙ 現 삼성그룹 부회장 미래전략실 실장.
요즘 재계(財界)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을 딱 한 명만 꼽으라면, 단연 김순택(金淳澤) 삼성그룹 부회장이다. 직급이 높아서가 아니다. 대한민국 재계 서열 1위 삼성그룹, 그중에서도 컨트롤 타워인 미래전략실장이란 책임을 맡았기 때문이다. 이 자리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삼성그룹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 곳이다. 삼성그룹 67개 전(全) 계열사를 컨트롤하고, 미래의 먹을거리를 발굴해 육성하는 것이 그에게 맡겨진 임무다.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그의 역량에 따라 삼성그룹이 흥하거나 쇠할 수 있다. 재계의 시선이 그에게 쏠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의 공식적인 프로필은 이렇다.
 
  <1949년 대구 출생. 경북고(高), 경북대(大) 경제학과 졸업. 1972년 제일합섬 입사. 삼성그룹 감사팀장. 삼성그룹 비서팀장. 삼성중공업 건설·기계부문 대표이사. 그룹 미주본사 대표이사. 삼성SDI 대표이사. 삼성전자 신(新)사업추진단 부회장>
 
  김순택 부회장은 2010년 12월 6일, 사내 게시판에 이런 글을 남겼다.
 
  “앞서 이끌기보다 같이 손잡고 고민하겠다. 삼성의 미래를 67개 계열사와 함께 만들어 가자.”
 
  혹 그가 각 사(社)를 컨트롤하는 임무를 맡아 급작스럽게 이런 얘기를 꺼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의 글을 읽은 삼성SDI 직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늘 해왔던 말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계열사 대표 맡을 때부터 ‘싱글 삼성’ 외쳐
 
  김순택 부회장이 최근까지 이끌었던 곳은 ‘삼성SDI(구 삼성전관)’다. 1999년에 대표이사 부사장으로 부임한 이후 2000년에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해 2009년 12월까지 대표이사를 맡았다. 삼성그룹 내에서 무려 10년 동안 한 명이 한 회사를 계속 맡아 경영한 예는 극히 드물다.
 
  그가 삼성SDI에 몸담으면서 늘 외쳤던 말 중의 하나가 ‘싱글 삼성(Single Samsung)’이다.
 
  김순택 부회장을 10년 이상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던 삼성 관계자의 얘기다.
 
  “김순택 부회장은 계열사에 있으면서 늘 그룹 전체를 바라봤습니다. 삼성SDI의 실적을 신경 쓰느라 바쁜 임원들에게 ‘각 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삼성 전체가 잘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일을 결정할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그룹 차원에서 보면 우리(삼성SDI)가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거야, 틀린 거야?’였습니다. 당장 이득이 되더라도 그룹 전체를 두고 볼 때 틀린 일이라고 판단하면 절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모든 일을 그룹 전체에서, 큰 시각으로 바라보는 경영인이었습니다.”
 
  그룹 관계자들은 오늘날의 삼성SDI를 변신시킨 사람이 김순택 부회장이라는 것에 대해 이견(異見)을 달지 않았다.
 
  어떤 이는 “김 부회장이 아니었다면 오늘날의 삼성SDI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삼성SDI를 브라운관 회사에서 디스플레이 회사로, 또다시 전지회사로 완벽하게 변신시킨 주인공이 그이기 때문이다. 불과 10년 만에 일어난 변화다. 어지간한 결단력과 추진력이 있지 않고서야 이룰 수 없는 일이다.
 
  김순택 부회장과 삼성SDI의 인연은 1993년에 잠깐 있었다. 그는 삼성전관(삼성SDI의 전신) 기획관리본부장을 지내다가, 1999년에 대표이사 부사장으로 부임한 뒤 이듬해에 대표이사 사장이 됐다.
 

 
  끊임없이 新사업 찾아나서
 
  삼성SDI는 당시 세계 최대의 브라운관 업체였다. 전 세계 브라운관 시장의 20%를 점유하고 있었다. 1999년 매출은 3조6400억원, 순익은 1900억원이었다. 회사 매출의 80%가 브라운관 부문에서 나왔다.
 
  실적은 나쁘지 않았지만, 회사 내부의 분위기는 썩 좋지 않았다.
 
  당시 삼성SDI에 있었던 관계자의 얘기다.
 
  “삼성은 CEO를 중심으로 의사 결정이 이뤄지는데 그때 모셨던 사장이 1년 만에 다른 곳으로 옮기고 분위기가 뒤숭숭했습니다. 세계 최대의 브라운관 업체인데, 언제까지 이런 분위기가 이어질까 반신반의했죠. 만약에 2~3년 내에 회사가 망한다고 생각하면 아찔할 노릇 아닙니까? 디스플레이 시장의 빠른 변화에 대응해야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김순택 부회장의 ‘위기의식’은 남달랐다. 그는 단기 매출이나 이익에 집착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2000년 초, 김 부회장은 핵심간부 10여 명을 따로 불렀다. 여기에 속했던 관계자의 얘기다.
 
  “김 부회장이 ‘신사업발굴팀’을 만들라고 지시했습니다. ‘삼성SDI가 서비스업(業)을 하는 것이 아니고 장치산업이기 때문에 변신을 하려면 하루빨리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브라운관에 안주하지 말고, 무조건 신사업을 발굴해야 한다는 확고한 의지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태평로 본사(本社) 대신에 강남에 오피스텔을 얻고 그곳에서 근무했습니다.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벤처 기업인, 다른 업계 관계자들을 만나면서 임무를 충실히 이행했습니다. 김 부회장은 의사결정권, 예산권을 전적으로 팀원들에게 부여했죠. 별동부대는 1년 동안 이런 일을 했습니다. 회사가 구조 전환하는 데 한 축을 담당했다고 생각합니다.”
 
 
  브라운관 공장을 PDP·2차 전지 생산공장으로 탈바꿈시켜
 
김순택 부회장은 삼성SDI 사장 시절 천안공장에 있는 PDP 생산라인을 자주 찾았다.
  김순택 부회장은 브라운관을 대체할 차세대 사업으로 ‘LCD’를 선택했다. PDP(플라스마디스플레이플레이어), AMOLED(아몰레드·능동형유기발광다이오드)가 차세대 먹을거리라고 확신했다.
 
  김 부회장은 “지금은 제한적으로 보이는 LCD 시장이 앞으로는 급격히 성장할 것이다. 변신하지 못하면 회사는 망한다. 브라운관의 비중을 낮추고, 여기에 집중해라. 속도를 내자”고 직원들에게 말했다.
 
  이들 사업은 대규모 투자가 필수다. 삼성 관계자에 따르면, PDP 라인 하나를 만드는 데 드는 비용만 7000억~8000억원 정도다. 당시 삼성SDI 매출(5조원대 안팎)의 10%가 넘는 돈을 ‘미래가 불투명한’ 신규 사업에 투자를 해야 하는 셈이다. 더구나 이웃나라 일본이 이 시장에 뛰어든 뒤였다.
 
  삼성SDI 고위 관계자의 얘기다.
 
  “‘PDP’는 일본보다 늦게 시작했고, ‘유기EL’은 일본에서 실패한 기술이었습니다. 소규모 생산을 했지만 양산에 실패했죠. 주위에서 얼마나 불안했겠습니까. 하지만 김순택 부회장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일본이 실패한 사업을 우리가 성공시키자’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선이 굵은 경영자’였습니다.”
 
  김순택 부회장은 과감했다. 차세대 사업을 결정한 뒤 100억원을 넘게 투자해 연구소를 세우고, 매년 PDP 라인을 증설했다. 결국 삼성SDI를 완벽한 디스플레이 그룹으로 변신시켰다. 2000년 삼성SDI의 매출 80%를 담당했던 브라운관의 매출은 이로 인해 많이 줄었다. 당시에 브라운관을 생산했던 독일, 헝가리, 브라질 등 7개의 해외 공장은 전부 PDP, 2차전지 생산공장으로 탈바꿈했다. ‘굴뚝회사’가 ‘첨단 디스플레이’ 회사로 180도 변신하는 데는 한 사람의 의지가 주요했다.
 
 
  일찍 퇴근 후 집에서도 회사 일 구상
 
  김순택 부회장은 2004년 초에 ‘전지산업의 일류화 전략’을 선포했다. 그는 개발, 제조, 품질, 마케팅에 이르는 모든 조직을 새롭게 정비했다. 각 사업별로 세부 목표를 다시 세우라고 했다. 매월 목표치에 얼마나 도달했는지에 대한 진도 관리는 그가 직접 챙겼다.
 
  삼성그룹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김순택 부회장은 깊이 고민하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일단 결정하면 저돌적으로 몰아붙이는 것이 특징이다.
 
  김순택 부회장은 보통 오후 5시 반 정도면 먼저 퇴근을 했다. 공장 등 현장에서 저녁식사를 하는 경우가 잦지만, 쓸데없이 회사에서 야근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퇴근 이후에도 고민이 많았던 모양이다. 삼성SDI 관계자들은 종종 월요일 아침에 그에게 불려간다. 그의 말은 늘 “내가 주말에 곰곰이 생각을 해봤는데 말야~”라고 시작됐다.
 
  심지어는 이런 적이 있었다. 김순택 부회장이 하루는 임원들을 불러놓고 “어젯밤에 내가 꿈을 꿨는데 말야, 이런 것이 나왔어. 한 번 확인해 봐”라고 했을 정도다.
 
  김순택 부회장의 ‘고민’과 삼성SDI 직원들의 노력은 이후에 빛을 발했다. 2001년 4조원이었던 매출은 4조7800억원(2003년), 6조1200억원(2004년), 5조7200억원(2005년), 5조원(2006년)으로 늘었다.
 
  삼성SDI는 지난 2007년, 세계 최초로 ‘아몰레드(AMOLED)’를 양산하는 데 성공했다. ‘아몰레드’는 유기(有機)물질에 전기를 가해 발생되는 빛을 활용한 디스플레이다. LCD(액정화면)나 PDP보다 화질과 선명도가 우수하고 용처가 많아 전 세계 업체들이 개발을 앞다퉜었다. 그런데 삼성SDI가 ‘꿈의 디스플레이’였던 아몰레드를 처음으로 양산(量産)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 삼성그룹의 미래전략실은 어떤 곳
 
  삼성의 새로운 컨트롤 타워인 ‘미래전략실’이 2년7개월 만에 전격 부활했다.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이 이끌던 삼성구조조정본부의 후신(後身)이다.
 
  경영지원팀ㆍ전략1팀ㆍ전략2팀ㆍ커뮤니케이션팀ㆍ경영진단팀·인사지원팀 등 6개 팀으로 이뤄져 있다. 이들의 업무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이건희(李健熙) 그룹 회장을 중심으로 한 철저한 오너 관리와 삼성전자와 비(非) 삼성전자의 역할 구분이다. 삼성전자를 주축으로 움직이면서, 또 다른 계열사를 함께 아우르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또 여러 대외적인 사안을 의식한 듯, 그룹 안팎의 소통을 강화한다는 기능이 가장 중요하다. ‘젊은 삼성’을 외쳤던 이건희 회장의 얘기가 십분 반영돼 1950년대 중반에서 1960년대 초반에 태어난 신예들이 대거 포진했다.
 
  경영지원팀은 과거 재무팀이 맡았던 회장 일가의 지분관리, 이사회 관리 등을 맡는다. 삼성생명 출신으로 삼성구조본 재무팀 부장을 지낸 전용배(田溶裵·50) 전무가 총책임자다. 전략1팀은 계열사들의 업무를 조율하는데, 주로 삼성전자를 관리한다. 삼성전자 출신으로 북미총괄경영지원팀 이사를 거친 이상훈(李相勳·56) 사장이 총책임자다.
 
  전략2팀은 삼성전자를 제외한 화학ㆍ금융ㆍ서비스 관련 계열사를 맡는다. 삼성전자 경영지원팀에서 15년 이상 근무한 김명수(金明洙) 전무가 책임자이다. 계열사 인사를 그룹 차원에서 조율하는 인사지원팀은 정유성(鄭有盛·55) 부사장이 맡는다. 정 부사장은 1993년부터 지금까지 줄곧 인사팀에서만 근무를 해온 인사 베테랑이다. 경영진단팀은 감사 업무를 담당하는데 이영호(李榮鎬·52) 전무가 그 책임을 맡고 있으며, 홍보ㆍ기획을 담당하는 커뮤니케이션팀은 삼성회장 비서실 출신의 장충기(張忠基·57) 사장이 책임을 맡고 있다.
 
  10억 개 중 하나의 불량품도 용납 안 해
 
김순택 부회장이 2006년 삼성SDI 사장 시절, 이건희 회장과 일본 요코하마 평판 디스플레이 전시회를 참관하고 있는 모습.
  김순택 부회장은 여기에 안주하지 않았다. 그는 또다시 회사의 변신을 시도했다. 디스플레이 전문기업에서 친환경 에너지 전문기업으로 탈바꿈을 선언한 것이다.
 
  삼성SDI의 고위 관계자는 “김순택 부회장은 가장 잘나갈 때 미래를 대비하는 분”이었다며 “전지사업에 진출해 회사를 친환경 에너지 회사로 변신시키겠다는 비전을 오래전부터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2차 전지는 한 번 쓰고 버리는 1차 전지와 달리 충전과 방전을 반복해 계속 사용할 수 있는 전지다. 리튬이온전지, 니켈·수소 전지 등인데 노트북, 휴대전화, 미래형 자동차로 사용처가 확대되고 있다.
 
  김순택 부회장은 완벽주의자에 가깝다. 그는 늘 ‘업(業)의 본질’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고 했다.
 
  삼성SDI의 고위 관계자는 “전자사업은 타이밍이 중요하고, 우리 같은 디스플레이 사업은 안전이 최우선이라고 봤다”고 했다.
 
  전지라는 기기는 고농도 에너지를 저장하기 때문에 늘 위험하다.
 
  김순택 부회장은 “첫째도 둘째도 안전성이다”고 말했다. 김순택 부회장은 전지와 관련된 보고가 올라올 때마다 ‘안전성’을 제일 중요시했다고 한다.
 
  당시 삼성SDI 내부에서는 “3게이트(GATE)를 통과해야만 전지를 출시할 수 있다”고 했다.
 
  시작단계에서, 제품을 평가하는 단계, 개발에 성공해 시장에 출시되는 순간까지 ‘안전’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소리다.
 
  삼성SDI 관계자의 말이다.
 
  “품질관리는 ‘6시그마’라는 얘기를 합니다. 100만 개 중에서 불량이 3.4개 이상이면 불합격이라는 소리입니다. 하지만 김순택 부회장은 이 정도에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PPB’라는 말을 썼습니다. 10억 개 중 하나(part per billion)의 불량품도 용서가 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그의 이런 완벽주의는 나중에 빛을 발했다.
 
  삼성SDI는 지난 2009년 8월, 독일의 BMW사로부터 자동차 전지 사업을 발주 받았다. 당시에 국내 2개, 일본 3개 업체가 경쟁에 나섰다고 한다. 삼성이 최종적으로 따냈다. 전지 업체 중에서 리콜이 없었던 것은 삼성이 유일했기 때문이다. 한 회사는 불량품으로 인해 1000만 대 이상에 대해 리콜을 실시한 적이 있었다.
 
  삼성 관계자는 “김순택 부회장의 완벽주의가 없었다면 힘들었을 것”이라고 했다.
 
  김순택 부회장은 철저하게 현장에서 진두지휘하는 스타일이다. 틈이 날 때마다 공장을 찾았고, 본인이 현장에서 업무를 진두지휘하기를 즐겼다는 것이 삼성 관계자들의 얘기다.
 
  삼성SDI가 지난 2008년 9월, 독일의 ‘보쉬’사와 하이브리드 전기차 전지시장에 함께 진출하기로 했을 때 얘기다. 사실 이 협상을 이끌어낸 것은 김순택 부회장이었다.
 
  당시에 동행(同行)했던 관계자는 “김 부회장이 보쉬 측과 밤새 의견 조율을 했다”며 “서울에서 일을 지시한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직접 그들을 만나서 설득했기 때문에 동반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룰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계약은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보쉬 본사에서 이뤄졌다. 물론 김순택 부회장이 여기에 서명했다. 이들 양사는 2010년부터 5년 동안 약 5200억원을 투자해 리튬이온 배터리와 배터리팩 생산에 나설 계획이다.
 
  이런 혁혁한 공로 때문인지 김순택 부회장은 한 계열사에 무려 10년이나 몸담았다. 하지만 그는 본인이 혹여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에 대해 늘 경계를 했다고 한다.
 
▣ 삼성그룹 컨트롤 타워 변천사
 
  삼성그룹의 컨트롤 타워는 고(故) 이병철(李秉喆) 선대 회장 시절부터 시작됐다. 고 이 회장은 1959년 회장 비서실 내에 각 사를 아우를 수 있는 권한을 줬다.
 
  이 조직이 직접적으로 나선 것은 1998년 구조조정본부로 명칭을 바꾸면서부터다. 이학수 본부장이 그 책임을 맡았다. 당시에는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그룹의 전 계열사를 움직여야 할 의무가 있었다. 이건희 회장 체제를 굳건히 하기 위한 조직이기도 했다.
 
  이 조직은 다시 2006년에 전략기획실로 명칭을 바꿨고, 이건희 회장이 이른바 ‘김용철 사건’으로 회장에서 물러날 때 해체됐다. 2008년 8월이었다. 그랬다가 이번 2010년 11월에 다시 그룹 조직으로 부활했다.
 
  주량은 소주 2잔
 
  삼성SDI의 고위 관계자는 “우리 모두 한곳에 오래 있다고 해서 익숙해지지 말자. 잘 아는 일이라고, 또 잘할 수 있다고 방심하지 말아라. 오늘 우리가 이 시점에서 혹여 잘못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늘 관심 갖고 되돌아봐라. 나부터 그렇게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김순택 부회장은 체질적으로 술을 거의 못한다. 소주 2잔이 그의 주량이다. 하지만 직원들과 소통하는 것은 그 누구보다 좋아한다고 한다.
 
  전직 삼성SDI의 고위 관계자는 “계열사 CEO를 통틀어 그보다 접근하기 편한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의 얘기에 따르면, 김 부회장은 늘 듣는 CEO였다. 직원들의 얘기를 중간에서 자른 적이 없다. 어떤 얘기를 해도 끝까지 들어주는 편이다. 한참을 듣고 나서야 그 직원의 고민을 해결해 준다. 또 다른 관계자는 그를 두고 ‘소통하는 덕장(德將)’ 스타일이라고 했다.
 
  매년 인사철이 되면 누군가는 승진을 하고, 누군가는 승진에서 누락된다. 김순택 부회장은 이들 모두를 챙겼다.
 
  삼성SDI 고위 관계자의 얘기다.
 
  “승진에 누락한 직원들을 따로 불러 격려했습니다. 여러 여건 때문에 올해는 이렇게 되었지만, 한 해만 더 참고 일을 해보자고 다독였습니다. 진심으로 성심을 다해 이들을 챙겼습니다.”
 
2002년 5월 15일, 삼성 SDI 중앙연구소 준공식. 왼쪽부터 손욱 삼성종합기술원 사장, 송용로 삼성코닝 사장, 김순택 삼성SDI 사장, 윤종용 부회장, 강호문 삼성전기 사장, 황창규 삼성전자 사장.
 
  엄격한 첫인상
 
  핵심 임원의 생일, 결혼 기념일에는 꼬박꼬박 편지를 썼다. 인터뷰에 나선 삼성의 고위 관계자가 그의 ‘편지’를 읽어줬다.
 
  <요즘 여건이 어려운데 열심히 일을 해줘서 고맙다.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언제든 나와 상의를 하고, 함께 최선을 다하자.>
 
  장문의 편지 끝에는 ‘김순택’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김순택 부회장은 계열사 CEO로 활동하기 전에 그룹 감사팀장과 비서팀장을 지냈다. 실제로 그가 감사팀장을 맡았을 때에는 꽤 엄격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그룹의 한 관계자는 “감사팀장으로 근무할 때는 주위에서 찬바람이 쌩쌩 불 정도였다”며 “감사를 받는 직원들에 대해서는 눈길을 주지 않을 정도로 윤리의식이 투철했다”고 말했다.
 
  훗날에 그를 인터뷰했던 A기자의 얘기다.
 
  “첫인상은 ‘엄정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인터뷰를 할수록 편안하게 얘기하며, 개인적인 질문에 대해서도 성심성의껏 답변을 했습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엄격하다, 이 사람에게는 ‘감사팀장’ 자리가 딱 맞는 자리겠구나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차가웠습니다. 질문을 던지면 똑 부러지게 말을 하는 편이었고, 본인 스스로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프라이드가 상당히 강한 편이었습니다.”
 
  사실 그와 비슷한 시기에 입사를 했던 사람 중에는 일찍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이들이 많았다. 이학수(李鶴洙) 전 삼성전략기획실장이 불과 그의 1년 위 입사(1971년) 선배고, 구학서(具學書) 신세계 부회장은 입사 동기다. 이기태(李基泰) 삼성전자 부회장이 한 해 후배다. 이들 ‘스타CEO’와 비슷한 시기에 입사해 엎치락뒤치락했지만, 이들에 비하자면 언론에는 덜 노출됐다. 그가 몸담았던 곳이 ‘침묵’해야 하는 비서실, 감사실이었고, 일반 소비자와 접점이 거의 없는 ‘B2B(Business to Business)’ 회사인 삼성SDI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그는 삼성에서 가장 주목받는 CEO가 됐다. 李在鎔 체제로의 완벽한 전환이 이뤄지기까지 실질적인 삼성의 2인자 역할을 해야 할 판이다. 더구나 이 자리는 그룹의 이익을 위해, 총수의 이익을 위해 불법·편법적인 일처리를 해왔다는 비판이 항상 뒤따라 다녔던 곳이다. 그의 경력과 실적에 걸맞은 삼성 미래전략실의 변화는 과연 이뤄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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