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운의 남자의 물건 ③ 兪榮九 KBO총재의 지도

유영구는 지도에 숨겨진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수집한다

  • 글 : 김정운 명지대 교수ㆍ여러가지문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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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古지도 140여 점 수집, 서양 古지도에는 中·日의 관점 통해 본 한반도 투영
⊙ 左右, 與野를 넘나드는 다양한 인간관계 통해 ‘관점의 遍在化’ 실천

김정운
⊙ 1962년생. 고려대 심리학과 졸업, 베를린 자유대학교 문화심리학 박사.
⊙ 현 명지대 대학원 여가경영학과 교수. 여러가지문제연구소 소장.
⊙ 저서: <노는 만큼 성공한다> <일본열광>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등.
고서와 고지도로 가득한 명지대학교 방목학술정보관의 서재. 이곳은 우리나라 학술계 원로들의 모임인 ‘태평관기영회’의 사랑방이기도 하다. 이곳에 유영구의 고지도 컬렉션의 일부가 전시되어 있다.
내겐 연구소가 몇 개나 된다. 휴먼경영연구원, 여가문화연구센터, e스포츠연구센터 등. 관심분야가 자꾸 다양해지기 때문이다. 나는 한때 우리 대학에서 연구프로젝트가 가장 많은 교수이기도 했다. 하나 시간이 지날수록 연구소 운영이 만만치 않다. 몇 명 되지도 않는 사람관리가 너무 골치 아프다. 그래서 모든 연구소를 통합하고 운영을 간소화했다. 미래지향적 간판도 야심 차게 붙였다. ‘여러가지문제연구소’. 앞으로 더 이상 새로운 연구소를 만들 이유가 없다. 이름 그대로 이 지구상의 모든 문제를 다 연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이 연구소의 소장인 내게 가장 중요한 연구주제는 ‘나 자신’이다. 매번 내 인간관계는 그리 편하지 않다. 연구펀드를 받아 오고, 뛰어난 연구성과를 만드는 것은 누구보다도 자신 있다. 그러나 연구원들과의 인간관계가 너무 피곤하다. 똑똑하다 싶으면 항상 ‘뒤통수(!)’ 친다. 성실하고 착하다 싶으면 능력이 떨어진다. 가능성 있는 사람을 키우며 기다리기에는 내 갈 길이 너무 바쁘다. 특히 견디기 어려운 일은 도무지 고마운 마음이란 없고, 자기 몫만 챙기려는 연구원들을 못 본 척해야 하는 일이다. 프로젝트 하나가 끝날 때마다 온통 섭섭한 마음뿐이다. 항상 드는 생각이라곤 ‘왜 내 밑에는 나 같은 놈 하나 없나?’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럼 너는?’
 
  ‘너는 다른가?’ 정신이 퍼뜩 드는 질문이었다. 함께 오래 일해 온 책임연구원 하나가 마음에 너무 깊은 상처를 주고 떠난 날, 침대에 누워 분노의 한숨을 삭이다가 든 생각이다. 나같이 ‘욱’하는 성격에, 도무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람을 채용해서 참고 함께 계속 일할 마음이 ‘너는’ 있는가? 다양한 자기합리화로 한참을 피해 가다 마지막으로 내가 내린 결론은 내 가슴을 아주 깊숙이 후비는 것이었다. 아, 그렇다. 나도 ‘나 같은 사람’은 절대 안 쓴다.
 
  ‘왜 내 밑에는 나 같은 놈 하나 없나’의 문제에서 시작한 내 생각은 결국 내 스스로도 밑에 두고 싶지 않은 ‘나 같은 사람’을 채용한 당시 명지학원 유영구(兪榮九) 이사장에게 이르렀다. 그는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중·고등학교의 교사뿐만 아니라 전문대학, 대학교, 대학원의 모든 교수들 인사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다. ‘나 같은 사람’은 셀 수 없이 아주 많은, 정말 골치 아픈 조직의 책임자다. 도대체 그는 그 복잡한 조직을 어떤 철학으로 운영하고 있는 것일까. 그 스트레스는 또 어떻게 견디고 있을까.
 
 
  1 지도에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숨겨져 있다. 유영구는 그 관점을 수집한다
 
한반도가 섬으로 그려져 있는 고지도. 일본과 중국을 통해 전달된 내용으로 그렸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유영구. 명지학원의 이사장을 거쳐 현재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를 맡고 있다. 그는 고지도(古地圖)를 수집한다. 물론 한반도가 포함된 고지도다. 지금까지 140개 정도를 수집했다. 그 지도가 보관되어 있는 명지대학교 방목학술정보관 2층에서 그를 만났다. 지도를 포함한 고서(古書)들이 가득한 공간은 너무 아름다웠다. 고서들로 가득한 책장이 사면을 다 채우고 있었다. 고서들에서 풍겨 나오는 묘한 곰팡이 냄새는 향기라고 해야 옳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 꾸며 보고 싶은 지적(知的) 풍요로움이 충만한 공간이다(326p 사진).
 
  그가 지도를 수집하게 된 계기는 우연이었다. 그는 오래전부터 학술적 목적에서 고서 수집을 시작했다. 국내(國內) 학자들이 서양(西洋)에 비친 한국의 모습에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생각에서 한국이 들어간 서양의 고서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유럽의 고서점은 물론, 러시아·일본·중국의 고서점들을 헤매는 것은 유영구의 취미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한국이 그려진 오래된 지도를 접하게 되었다. 그런데 지도에 나타난 한국의 모양이 매우 흥미로웠다. 어떤 지도에는 섬으로 그려져 있고, 어떤 지도에는 대륙에 매달린 고구마처럼 그려져 있었다(왼쪽 사진). 도대체 한국이 언제부터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세계에 알려졌는가에 관해서도 궁금해졌다.
 
 
  지도는 객관적이지 않다
 
고드름처럼 길쭉하게 대륙에 매달린 모습으로 그려진 한반도.
  오늘날도 지도는 절대 객관적(客觀的)이지 않다. 그리는 사람의 의도와 관점이 숨겨져 있다. 독일유학에서 내가 받았던 첫 번째 문화충격도 지도였다. 중·고교 시절, 어느 교실에나 한쪽 벽에는 세계지도가 붙어 있었다. 다른 쪽 벽에는 ‘근면성실’과 같은 교훈과 시간표가 붙어 있었다. 아,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는 푸슈킨의 시(詩)도 꼭 있었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을 위한 시라기엔 좀 특이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우리가 보고 자란 세계지도는 태평양이 가운데 있었다. 태평양을 중심으로 아시아 대륙과 아메리카 대륙이 양쪽으로 있었다. 유럽과 아프리카는 왼쪽 가장자리에 있었다. 그러나 독일에서 본 세계지도는 달랐다. 이제까지 한 번도 본적이 없었던 형태였다. 대서양이 중심에 있었다. 물론 유럽이 가운데 있었고, 한국과 일본은 오른쪽 가장 끝자리에 있었다.
 
  대서양이 중심에 놓인 세계지도를 보고서야 왜 한국이 속한 지역이 극동(極東)아시아라고 불리는지 이해되었다. 태평양을 중심으로 한 지도로 보면 한국은 세계의 중심이지만, 대서양을 중심으로 한 지도에서는 동쪽 끝, 즉 ‘극동(Far East)’이었다.
 
  내 학창시절에는 중동(中東)건설이 한창이었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이라크·이란 등을 왜 ‘중동(Middle East)’이라고 하는지 한 번도 의문을 품어 본 적이 없었다. 유럽을 중심으로 보니 동쪽으로 극동과 근동(近東)의 중간 지역이라 중동이 된 것이다. 참 흥미로운 것은 태평양을 중심으로 한 지도를 보면서도 우리는 한국이 속한 지역을 극동아시아라고 불렀다는 사실이다.
 
  북쪽을 위쪽으로 한 지도가 당연한 것 같지만, 이는 나침반이 보편화한 이후의 일이다. 그 이전에는 각 문화권에 따라 서쪽을 위로 한 지도(일본), 남쪽을 위로 한 지도(중국) 등이 있다. 호주의 스튜어트 맥아더(Stuart McArthur)라는 지도학자는 호주 대륙이 항상 밑에 그려지는 ‘북향(北向)지도’에 열 받아 거꾸로 된 수정본 세계지도를 제안한다. 이 지도는 남쪽이 위로 되어 있고, 자오선(子午線)은 호주의 캔버라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이 지도에서 유럽은 오른쪽 구석에 처박혀 있다. 세계사의 완전 변방일 뿐이다.
 
  절대 객관적일 수 없는 동서남북의 방향만큼, 지도상의 면적도 절대 객관적이지 않다. 사람들은 지도의 평면이 실제 대륙의 크기를 반영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절대 그렇지 않다.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지도는 메르카토르 투영도법(投影圖法)에 의한 지도다. 이 지도는 적도 부근에서만 정밀하다. 극으로 갈수록 엉터리다.
 
  메르카토르의 지도에서 북극에 가까운 그린란드는 아프리카 대륙 정도의 크기다. 그러나 그린란드의 실제 크기는 아프리카의 14분의 1에 불과하다. 또한 북아메리카와 유럽이 너무 크게 그려져 있다. 북아메리카의 크기는 아프리카의 3분의 2에 불과하나 지도상으로는 훨씬 크게 그려져 있다. 유럽의 크기도 실제보다 몇 배로 부풀려져 있다. 지도에는 이렇게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과 의도가 숨겨져 있다.
 
 
  古지도에 나타난 울릉도와 독도
 
1737년 프랑스 지리학자 당빌(J.B.B. d’Anville)의 ‘신중국지도첩’에 나타난 한반도. 오늘날의 지도에 상당히 근접해 있다.
  유영구의 지도에 대한 관심은 우선 한국을 바라보는 세계의 관점이 어떻게 변화했나를 밝히는 데 있다. 서양의 지도에서 한국이 섬이나 대륙에 매달린 고구마 모양의 그림으로 형상화한 것은 중국이나 일본의 관점을 통해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한반도가 그 당시 서구(西歐)의 관점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1737년 프랑스의 지리학자 당빌(J.B.B. d’Anville)의 ‘신(新)중국지도첩’에 나타난 한반도는 아주 제대로 그려져 있다(330p 사진 위). 김정호(金正浩)의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 130년이나 앞선 당빌의 지도에 나타난 한반도는 유영구의 고지도 컬렉션 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다. 한국의 독도와 울릉도가 제대로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인접해 있는 이 두 섬에 대한 표기다. 하나는 Fan ling tao로, 또 하나는 Tchian san tao로 적혀 있다(330p 사진 아래).
 
  웬 뜬금없는 ‘판 링 타오’와 ‘치안 산 타오’인가. 학자들과의 오랜 토론 끝에 내린 유영구의 결론은 이렇다. 우산도(于山島)를 천산도(千山島)로 잘못 읽어 천산도의 중국발음인 Tchian san tao(현대표기로는 Qian shan dao)로, 울릉도(鬱陵島)의 경우는 ‘울(鬱)’을 ‘반(攀)’으로 읽어 반릉도(攀陵島), 즉 Fan ling tao(현대표기로는 Fanling dao)로 적었다는 해석이다. 이 정도의 집요함이면 전문적인 지도학자 수준을 능가한다.
 
  우리나라 영토문제와 관련된 또 다른 특별한 지도를 유영구는 가지고 있다. 1740년에 제작된 프랑스 왕실의 지리학자 보곤디(R. de Vaugondy)의 지도다(332p 사진). 보곤디의 지도에는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어 서간도와 동간도(東間島)까지 조선의 영토로 표시되어 있다. 뿐만 아니다. 울릉도, 독도가 분명하게 표시되어 있고, 동해를 ‘한국해(corean sea)’라고 분명하게 표기한 지도도 자랑스럽게 꺼내 펼쳐 보였다(335p 사진).
 
 
  자신을 상대화하려는 노력
 
당빌의 지도에 나타난 을릉도와 독도. 낯선 지명으로 표기된 이유에 대해 유영구는 상당히 설득력 있는 가설(假說)로 설명한다.
  고서와 고지도에 대한 유영구의 관심은 명지대학교에 국내 최초의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을 설치하는 것으로 발전한다. 한국 사회가 선진국(先進國)이 못되는 가장 큰 원인은 역사적 기록관리가 제대로 안되기 때문이라는 것이 유영구의 생각이다.
 
  역사적 기록의 부재(不在)는 당연히 역사의식의 부재로 이어진다. 체계적인 기록관리는 세계관의 체계적인 정리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기록물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고유의 세계관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을 보는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고, 이 관점이 역사적으로 변화해 왔고, 또 변한다는 역사의식은 아주 구체적인 과정에서 시작된다. 가장 객관적이고 사실적이어야 하는 지도조차 절대 객관적이고 사실적일 수 없다는 통찰이 바로 그 출발이다.
 
  자신의 관점이 상대적(相對的)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때, 타인(他人)의 관점을 인정할 수 있다. 독선(獨善)과 아집(我執)에서 벗어나 대화와 타협이 가능해진다는 이야기다. 리더일수록 더욱 상대화의 노력이 필요하다. 유영구에게 고서, 고지도 모으기는 대학교 이사장의 절대적 지위를 상대화시키려는 노력의 일부다. 그는 이렇게 아주 간단하고도 진솔하게 이사장의 역할을 상대화시킨다.
 
  “예를 들어서 내가 KBO 총재인데 야구경기에 작전 지시를 하면 돼요? 안 되죠. ‘번트를 대라’, ‘뛰어라’ 그건 내가 하면 안 되잖아. 감독이나 코치가 할 일이지. 그런데 사람들은 착각한다고. KBO 총재면 야구의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는 거지.
 
  결국은 학교도 마찬가지지. 교수가 할 일이 있고, 총장이 할 일 있고, 이사장이 할 일 있고…. 그렇잖아. 일이 다른데. 이사장이 학교의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할 때부터 뭔가 잘못된 거라고. 시간이 남으면 딴짓을 하게 되고, 시간이 남으면 월권을 하게 되고, 시간이 남으면 공상을 해 가지고 결국은 문제를 일으키거든.
 
  그러니까 이사장도 스스로 재미있는 것을 해야 돼. 자꾸 재미난 일을 해야지, 저쪽도 독립성이 유지되고 나도 재밌지. 나는 고서 모으는 일은 아주 축복받은 거라고 생각해. 대부분의 재미난 일은 보람이 별로 없어. 반대로 보람이 있는 일은 재미가 없어. 그런데 고서, 고지도 모으는 일은 두 가지가 다 있어. 이건 재미도 있고, 나중에 해 놓으면 보람도 생기고. 얼마나 축복받은 거야.”
 
 
  2 유영구의 지도는 싱글 퍼스펙티브(single perspective)가 아니다. ‘멀티플 퍼스펙티브(multiple perspective)’다
 
1740년에 제작된 프랑스 왕실의 지리학자 보곤디 (R. de Vaugondy)의 지도. 조선의 국경이 서간도와 동간도를 지나 그려져 있다.
  유영구의 지도 컬렉션에는 가치로 환산(換算)할 수 없는, 아주 귀한 지도가 있다. 북한의 ‘5만분의 1 지도’다. 현존하는 가장 자세한 북한지도다. 1970년대에 소비에트에서 항공측량과 지상에서의 삼각측량을 동시에 해서 만든 이 지도는 제작기간만 10년이다. 군사지도 이외에는 ‘5만분의 1 지도’를 만들지 않는다. 보통의 군사지도에는 하천의 폭이나 수심(水深)만 기록되지만, 이 지도는 유속(流速), 수풀의 수종(樹種)까지 기록되어 있다.
 
  총 410장으로 이뤄진 이 지도를 보고 정보기관 담당자는 있을 수 없는 지도라며 놀라워했다. 소비에트가 무너진 이후, 일본으로 유출된 이 지도를 유영구는 ‘나우카’라는 일본 고서점에서 구입했다. 이 지도는 원래 일본 자위대(自衛隊)에 넘어가기로 되어 있던 것이었다. 유영구는 몇 번이나 서점주인을 찾아가 설득해 겨우 구입할 수 있었다. 그는 당시 북한지도와 함께 유출된 ‘25만분의 1’ 중국지도를 함께 구입하지 못한 것을 지금도 아쉬워한다. 개인이 구입하기에는 너무 고가(高價)였다. 당시 정부기관을 찾아다니며 꼭 사 와야 한다고 이야기했지만, 자신만 우스운 사람이 되고 말았다며 여전히 서운해한다.
 
 
  초월적 시선의 분화
 
  모든 그림은 관찰자의 시선을 전제로 하고 있다. 지도도 마찬가지다. 지도가 전제하고 있는 관찰자의 시선은 하늘이다. 하늘 높은 구름 위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초월적(超越的) 시선인 것이다. 지도가 강력한 무기가 되는 것은 바로 이 초월적 시선으로 내려다보기 때문이다. 이 전지전능(全知全能)한 시선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지구상에 없다.
 
  아주 어린 아이는 이 초월적 관점을 상상할 수 없다. 그러나 대여섯 살이 되면 이 초월적 시선을 상상하는 능력이 생긴다. 스위스의 발달심리학자 피아제(Piaget)는 이 공간지각 능력이 태어날 때부터 타고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특별한 학습과정이 없어도 인간이라면 어느 정도의 인지능력이 발달되고, 그러면 누구나 이 초월적 시선을 상상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는 것은 이 초월적 시선이 선험적(先驗的)으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초월적 존재에 대한 신앙, 즉 종교는 이러한 초월적 시선에 대한 상상과 아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그래서 초기 지도의 대부분은 종교적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다. 예를 들어, 중세시대에 일반적이었던 ‘T-O지도’는 철저하게 중세 기독교의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다. 나일강과 돈강, 그리고 지중해에 의해 T자로 분할된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의 세 대륙을 둥근 O 자형의 바다가 둘러싸고 있는 모양이다.
 
  세계가 다원화(多元化)하고, 과학적 세계관이 자리 잡으면서 이 초월적 시선은 분화(分化)하기 시작한다. 싱글 퍼스펙티브(single perspective)에서 ‘멀티플 퍼스펙티브(multiple perspective)’로의 전환이다.
 
  오늘날의 지도에서는 통상적인 의미의 ‘시점’이 하나로 존재하지 않는다. 쉽게 말해 원근법(遠近法)의 소실점(vanishing point)의 반대편에 위치하는 통일된 관찰자의 시점이 없다는 이야기다. 곡면(曲面)으로 된 지구를 평면(平面)에 그리다 보니 다양한 방식의 투영법이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지도는 한 점(點)에서 바라본 세상이 아니다. 면(面)에 편재(遍在)된 시점으로 ‘투영(projection)’된 세상이다. 제대로 된 지도는 관점의 편재화, 즉 다양한 관점에 열려 있어야 한다.
 
 
  교수 임용에서도 ‘관점의 편재화’ 실천
 
  유영구는 지도 수집을 사람들과의 만남에 비유한다. 이런 사람, 저런 사람에게 다 열려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유영구의 인간관계는 참 특이하다.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 폭도 좌우(左右), 여야(與野)를 막론하고 열려 있다. 예를 들면, 그의 정치적 성향은 보수다. 사안에 따라 ‘극우(極右)’일 때도 많다. 당연히 한나라당 쪽 의원들과 가깝게 지낸다. 한때 박근혜(朴槿惠)와 정기적으로 테니스를 치기도 했다. 그러나 진보 진영의 사람들과도 아주 가깝다. 야당의 손학규(孫鶴圭), 김근태(金槿泰)와는 오랜 친구 사이다. 지금도 진보의 대부로 추앙받는 고(故) 조영래(趙英來) 변호사와도 절친한 사이였다. 그의 죽음 이후, 유영구는 앞장서 조영래 추모사업을 추진했다. 부천서 성(性)고문 사건의 권인숙(權仁淑)이 유학을 다녀온 후, 명지대학교에 교수로 임용된 것도 조영래 변호사와의 인연 때문이다.
 
  유영구는 비슷한 시기에 진보 진영의 인사와 보수 진영의 인사를 함께 명지대 교수로 임용했다. 예를 들어, 노무현(盧武鉉) 정권의 문화재청장을 지낸 유홍준(兪弘濬), 국정홍보처장을 지낸 김창호(金蒼浩·지금은 퇴직) 등이다. 반면, 뉴라이트 진영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강규형(姜圭炯)도 같은 시기에 교수로 임용됐다. 보수단체의 선언과 토론회에 빠지지 않는 조동근(趙東根)도 명지대 교수다. 이렇게 명지대 교수들의 이념적 편차는 다른 대학에 비해 훨씬 두드러진다. 유영구는 자신이 책임질 수 있는 영역에서만이라도 ‘관점의 편재화’를 실현하려는 것이다.
 
  “좌나 우나, 극좌(極左)는 빼고, 내가 보기에 오 엑스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나는 우편에 있어요. 사상적으로도 우고, 오히려 극우에 가까울 정도로 우지만. 화이부동(和而不同) 아니에요? 화합은 하지만, 똑같이는 안 하더라도 좀 더 폭넓은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좋은 거 아닌가. 그게 내 생각에 소위 양극화를 방지하는 제일 좋은 방법이 아닌가 싶고…. 빛과 그림자가 아닌가 싶고. 빛이 있어야 그림자도 생기고, 그림자가 있어야 빛도 보이고 그러는 거 아니에요? 세상 살면서 두 가지는 다 있어야 하겠죠. 어느 한쪽이 없다 그러면 또 한쪽도 없는 거예요. 근데 이제 우리 사회가 그런 폭을 갖기가 조금 어려운 게, 분단이 되어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분단에 전제를 두고 생각하니까…. 사상이 자꾸 경직된다구….”
 
 
  여가경영학과와 바둑학과
 
울릉도, 독도는 물론 동해를 ‘한국해(corean sea)’로 명시한 고지도.
  정치인이나 교수만이 아니다. 가수 조영남과도 절친하다. 조영남도 유영구를 아주 살갑게 생각한다. 한번은 내가 조영남이 생방송으로 진행하는 프로에 출연했다. 조영남은 내가 명지대 교수라는 이유만으로 특유의 친근감을 표시하더니, 급기야 생방송에서 “명지대 유영구 이사장이 내 친구야. 그 사람 엄청 웃겨. 개그맨보다 더 웃겨” 하며 오버하는 바람에 입장이 아주 난처해진 적도 있다. 가수 겸 작곡가인 김수철과도 호형호제(呼兄呼弟)하는 사이다. 언젠가 술은 전혀 못하는 두 사람이 커피 잔을 앞에 두고 몇 시간이고 함께 ‘수다(?)’를 떠는 모습을 보며 참 희한해했던 기억도 있다.
 
  그는 도움을 청하는 이들을 어떻게든 도와주려 애쓴다. 내가 명지대 대학원에 ‘여가경영학과’를 만들 때도 마찬가지다.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후, 내가 공부한 ‘문화심리학’을 어떻게 한국사회에 필요한 것으로 만들까를 고민했다. 일은 세계에서 최고로 잘하는데, 왜 우리나라는 선진국이 못될까. ‘일 이외의 영역’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일 이외의 영역’을 뭐라 하는가. ‘여가’다. 일과 관련된 영역의 전문가, 즉 경영학자들은 셀 수 없이 많다. 거의 모든 직장인들이 MBA과정을 다닌다. 임원이 되려면 필수다. 그런데 왜 선진국이 못될까. 일 이외의 영역을 어떻게 경영할 것인가를 가르쳐 주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름을 붙였다. ‘여가경영학과’.
 
  ‘여가경영학과’ 제안서를 펼치고 이사장에게 보고했다. 내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후, 그는 내 무릎을 탁 치며 격려했다.
 
  “노는 학과를 만들자는 이야기지. 아, 그거 우리 사회에 정말 필요해. 그거 기가 막힌 생각이다.”
 
  세상의 어느 대학교 이사장이 ‘노는 학과’를 만들자는 데 무릎을 치며 격려해 주겠는가. 그래서 난 그 후, ‘노는 학과’의 교수가 되어 사방에 잘 놀아야 한다고 강의하고 다닌다. 노는 일도 내겐 공부다. 세상에 이렇게 좋은 직업이 어디 있을까. 뿐만 아니다.
 
  명지대에는 ‘바둑학과’도 있다. 국내 최초도 아니고 세계 최초다. 바둑해설을 할 당시, 이미 ‘교수’로 불리던 정수현(鄭壽鉉) 9단이 최초의 교수가 되었다. 처음에는 우습게 여기던 이들도 이제 아시안게임의 정식종목이 된 ‘바둑’의 학문적 접근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이렇듯 유영구는 ‘관점의 편재화’라는 지도의 철학을 대학에서도 구현하려고 애쓴다.
 
 
  3 유영구에게 야구는 지도 그리는 일이다
 
  매번 지도만 사 모으던 유영구에게도 이제 스스로 지도를 그려야 하는 일이 생겼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가 된 것이다. 이제까지 KBO 총재는 정치인이나 경제인이 주로 했다.
 
  고교시절부터 그는 야구광이었다. 프로야구 원년부터 MBC청룡의 팬이었고, MBC청룡이 LG에 인수될 당시, LG의 고문이기도 했다. 이후, 박용오(朴容旿) 총재 시절 돔구장 추진위원으로 활동했고, 어어 총재고문을 맡기도 했다. 총재를 맡고 1년반이 지났는데, 실제 야구인이 되고 난 느낌이 어떠냐고 물었다. 그는 대답한다.
 
  “사람이 일생에서 두 번 실수를 하면 안 되는데. 나는 똑같은 실수를 두 번 했어요. 나는 연애결혼을 했는데, 연애의 환상을 가지고 결혼했는데, 결혼이라는 현실로 돌아오니까, 그 격차가 엄청나더라고…. 야구도 그랬어. 내가 야구를 엄청 좋아했어. 야구랑 연애를 한 거지. 근데 총재가 됐다는 건 야구랑 결혼을 한 거야. 똑같은 실수를 두 번 한 거지. (웃음)”
 
  야구와의 결혼은 환상이었다며 불평하지만, 명지대 이사장 시절보다는 훨씬 즐겁고 보람된 표정이다. 하긴 ‘목소리 큰’ 교수들에 비해 실력으로 승부를 보며 평생 살아 온 야구인들과의 의사소통이 훨씬 편할 것 같기는 하다. 월급도 스스로 반납하는 무(無)보수의 봉사직이지만 새롭게 야구의 지도를 그려 나가고, 자신이 그리는 지도만큼 바로바로 나타나는 변화의 피드백은 그의 삶을 즐겁고 활기차게 해 준다.
 
 
  머그잔 1500개 수집
 
그동안 모아 놓은 머그잔을 전시한 장식장 앞에 선 유영구. 그는 이런 머그잔을 1500개나 모았다.
  일과의 대부분이 사람 만나는 일인 KBO 총재에게 혼자 지내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그래서 그는 주말이면 약수동 시장 한가운데 있는 그의 작은 사무실에서 거의 혼자 보낸다. 전화도 받지 않는다. 주로 커피를 볶는다. 술, 담배와는 거리가 먼 그에게 다양한 커피를 볶고, 마시는 일은 그의 유일한 사치다. 아, 그가 즐기는 사치가 또 하나 있다. 머그잔을 모으는 일이다. 지금까지 1500개 정도 모았다(336p 사진). 외국여행이나 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꼭 몇 개씩은 사 온다. 가방이 꽉 차, 더 이상 가져오기 어려우면 아내가 잠든 사이, 아내의 가방에 몰래 넣어 두었다가 혼나는 일도 자주 있었다.
 
  혼자 커피를 직접 볶고 가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몇 시간을 정신없이 몰두해야 가능한 일이다. 그 커피를 머그잔 가득 부어 마시면 주말의 오후는 후딱 지나간다. 혼자 보내는 시간을 즐기기는 하지만, 주말 식사는 꼭 가족과 함께 해야 한다. 그는 ‘한상에 둘러서 먹고 마셔’라는 찬송가 구절을 가장 좋아한다. 그는 개를 열 마리 넘도록 길러 봤지만, 아무리 훈련 잘 받은 훌륭한 품종의 개도 밥은 같이 못 먹는다며, 인간만 함께 식사할 줄 안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강조한다. 아무리 친해도, 밥을 같이 먹지 않으면 친한 게 아니라는 아주 독특한 철학도 설파한다.
 
  서재 가득한 다양한 관점의 고서와 고지도, 야구장의 환호성, 다양한 머그잔과 직접 만드는 커피, 그리고 사랑하는 이들과 ‘한상에 둘러서 먹고 마시는’ 식사. 그를 만나면 마음이 참 편해지고, 아무리 복잡한 문제를 이야기해도 문제의 양상이 단순해지는 느낌이 드는 까닭은 바로 이 네 가지 때문이다. 참 많이 부러운 남자의 물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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