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권의 책] 매혹 (최보식 著 | 휴먼&북스 刊)

‘천주학’에 매혹됐던 조선의 아웃사이더들

  • 글 : 장원재 경기파주영어마을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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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죽은 아웃사이더들과 살아 있는 순응주의자들을 상찬(賞讚)한다’는 말이 있다. 세상을 떠받치는 건 순응주의자들이지만, 인류의 발전을 견인(牽引)하는 건 아웃사이더들이다. 남들이 하지 않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기에, 아웃사이더는 언제나 소수(少數)다. 그래서 외롭다. 길이 없는 곳에서 스스로 길을 내가며 나아가야 하는데, 그 길의 끝이 어디인지를 도무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불안하다. 아웃사이더들 사이에서는 그러므로 필연적으로 동지애(同志愛)가 싹트기 마련이다.
 
  최보식의 소설 <매혹>은 200여 년 전 조선 땅에서 살아갔던 아웃사이더들의 이야기다. 그들을 매혹했던 이념은 천주학(天主學)이다. 천진암(天眞庵)에서 비밀결사 모임을 이끌었던 이벽(李檗)과 서클후배 정약용(丁若鏞)이 주인공이다. <조선일보>에서 ‘최보식 인터뷰’를 연재하며 다져진 내공으로, 필자는 사자(死者)의 내면으로 파고들어 자기만의 방법으로 그들과 인터뷰한다. 그만큼 생생하다. 치열하다. 밀고 당기는 힘이 느껴진다.
 
  세상을 바꾸는 힘 혹은 흐름은 가담자의 수, 동원 가능한 물리력의 크기, 지향하는 변화의 속도와 범위 등을 기준하여 각기 혁명ㆍ개혁ㆍ개선 등의 이름을 붙일 수 있겠다. 30대 초반 비운의 의문사로 생을 마감한 이벽이 혁명가였다면, 관리로 입신하여 백성들의 삶에 실질적 영향을 끼치고자 했던 정약용은 개혁가와 개선가 중간의 어디쯤에 위치할 터이다. 하지만 천주학 전교(傳敎)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인물은 공식적으로 배교(背敎)를 선언하고 척사문(斥邪文)까지 발표하여 동지들로부터 ‘배신자’ 소리를 들었으나 평생 속으로는 신념을 버리지 않고 묵묵히 뜻을 이룬 순교자 이승훈(李承薰)이다.
 
  아일랜드에는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더블린 사람들>의 작품 속 배경을 탐사하는 별도의 관광상품이 있어 ‘문학의 성지(聖地)순례’로 불린다는데, 오늘 밤 경기도 광주(廣州)의 천진암과 남양주 정약용의 생가(生家)를 잇는 물길과 산길을 따라 가슴 먹먹하고 황홀하여 정신 아득한 ‘매혹의 길’을 떠나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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