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벌 大戰] 4200억 시장 놓고 벌이는 막걸리 전쟁

서울탁주에 국순당·포천이동 맹추격… 오리온·롯데·진로도 뛰어들어

  • 글 : 서철인 월간조선 기자  ironi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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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주류 전체 시장에서 막걸리 시장은 5% 안팎으로 작은 편
⊙ 작년 말부터 없어서 못 파는 술로 자리 매김
⊙ 작년 ‘생막걸리’ 경쟁에서 이젠 ‘우리 쌀 막걸리’로 戰線 이동
⊙ 배상면 회장의 3남매, 분가한 후 국산 쌀 생막걸리 시장에서 격돌
⊙ 서울 시장 못 잡은 포천이동주조, 해외 시장에서는 1위
작년부터 불기 시작한 막걸리 열풍이 무더운 여름을 맞아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업체마다 공급량이 달린다며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술도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된 데 이어 월드컵 열기까지 가세하면서 ‘시원한 막걸리’ 수요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농림수산식품부도 남아공 월드컵 16강 진출 기원 ‘16강 막걸리’ 선발 행사를 갖는 등 막걸리 산업 육성에 적극적이다.
 
  막걸리 업계는 이번 기회에 소주와 맥주에 빼앗겼던 시장을 되찾아야 한다며 단합하고 있지만 시장 선점을 위한 업체 간 경쟁은 어느 주류 분야보다 치열하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생막걸리로 선두 다툼을 벌이더니 올해 들어서는 우리 쌀 막걸리로 한판 승부를 걸고 있다. 몇몇 상위 업체는 확실한 고지 점령을 위해 TV와 신문에 ‘우리 쌀 100% 사용’을 강조한 광고까지 하고 있다. 싸고 저렴한 술의 대명사였던 막걸리가 업체 간 경쟁을 통해 고급화하고 있는 셈이다.
 
   막걸리 붐이 일자 신규 업체들은 물론 기존 소주 업체나 식품 기업들까지 업계 진출을 노리고 있다. 오리온은 지난 5월 참살이 막걸리의 지분 60%를 50억원에 인수해 이미 시장에 진입한 상태다. 롯데는 서울탁주제조협회(이하 서울탁주)의 살균 막걸리를 일본 산토리를 통해 유통하고 있고, 진로는 경기도 포천의 상신주류에서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생산한 제품을 일본 시장에 판매하고 있다. 그 밖에 CJ와 대상, 샘표식품 등의 발효 식품 기업과 무학, 보해 등의 소주 전문 주류 업체들이 막걸리 시장 진출을 이미 선언했거나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대기업의 막걸리 시장 진출에 대해 기존 막걸리 업체들은 상반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편에서는 “대기업이 규모가 작은 막걸리 시장에 진출하면 90%가 넘는 영세 업체들은 살아남기 힘들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유통이나 마케팅 노하우가 축적돼 있는 대기업이 진출해야 막걸리 시장이 커지고 경쟁력이 생긴다”며 환영하고 있다. 전통주 전문가들은 “누가 시장을 지배하든 일제시대에 사장된 우리 고유의 전통주 복원에 힘써야 한다”는 입장이다.
 
  사실 국내 막걸리 시장 규모는 소주나 맥주에 비해 미미한 편이다. 막걸리 열풍이 불기 시작한 지난해 시장 규모가 4200억원 수준이다. 소주나 맥주 시장이 1조원이 넘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기업이 욕심을 낼 만한 시장은 아니다. 대기업 진출로 그동안 시장에서 우위를 점해 온 중대형 막걸리 업체들은 긴장하고 있다.
 
 
  한국 누룩을 몰아낸 일본 누룩 ‘粒麴’
 
서울 필동 ‘한국의 집’에서 농수산식품부 주최로 열린 ‘16강 막걸리 선발대회’.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2010 남아공 월드컵’ 16강 진출 기원 ‘16강 막걸리 선발대회’에서 관람객들이 출품된 막걸리를 살펴보고 있다.

  막걸리는 곡물과 누룩, 물로 빚는 발효주(곡주ㆍ穀酒)다. 전통 막걸리는 고두밥에 누룩을 넣어 보름 정도 발효시켜 만들었다. 발효된 술독에서 맑게 정제된 윗부분을 떠낸 것이 청주(약주)이고, 탁하게 가라앉은 아랫부분을 걸러낸 것이 막걸리다. 소주는 청주를 증류시킨 것이다.
 
  ‘막걸리’라는 이름은 ‘막 걸러낸 술’이라는 뜻에서 붙여졌다. 술 빛깔이 탁하다 하여 ‘탁주’라고도 하고, 농사지을 때 마시는 술이라 해서 ‘농주’라 부르기도 한다. 지역에 따라서는 ‘탁배기’(제주), ‘탁주’(부산)라 부르는 곳도 있다.
 
  막걸리의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다. 다만 삼한시대 문헌에 ‘곡주’가 등장하는 것으로 미루어 이때부터 빚어진 게 아닌가 짐작할 따름이다. 삼국시대 백제의 주조 기술에 대해 언급한 일본의 <고사기>(古史記)에는 ‘주국(酒麴)을 이용하여 청주, 탁주가 빚어지고 맥아(麥芽) 또는 주국을 이용한 감주가 빚어졌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막걸리 제조법이 수천 년 동안 전해져 왔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막걸리는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 이르러 온 백성이 즐겨 마신 가양주(家釀酒)로 자리 잡았다. 구한말까지만 해도 가가호호(家家戶戶) 술 담그는 비법이 전수돼 수만 가지 맛의 막걸리가 존재했다고 한다. 술을 빚는 것은 물론 판매까지 자유로워 1907년 일제가 수탈의 일환으로 주세법을 시행하기 전까지 전국에 판매용 제조장이 무려 15만5632개에 이르렀다고 전해진다.
 
  이렇듯 많았던 제조장은 1917년 일제에 의해 주류 제조업 정비가 시작되면서 대폭 줄어들었고, 자가 양조는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다. 또한 1920년 일본식 누룩인 입국(粒麴)이 들어오면서 전통주는 대부분 맥이 끊겼다. 신식 술이라는 획일적인 술들이 일제 통제하에 제조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 전통주에 사용돼 온 누룩과 일본 사케에 사용돼 온 입국은 같은 발효제이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르다. 박록담(朴碌潭) 한국전통주연구소장에 따르면 우리 누룩은 밀과 호밀 등의 곡물가루를 찌지 않고 반죽해 자연 속에서 야생 효모와 곰팡이가 자라도록 한 것이고, 입국은 쌀을 쪄서 멸균된 반죽에 단일 원균을 배양한 것이라고 한다. 박씨는 “누룩으로 빚은 술은 다양한 야생균 덕분에 맛이 풍부하고 깊지만 발효가 늦고, 입국으로 빚은 술은 단일균으로 인해 맛이 심플하고 얕지만 발효가 빠른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누룩은 기후 조건에 따라 자라는 균의 종류가 달라 술맛을 균일화하기 어렵고, 입국은 인공적으로 배양된 단일균을 심는 것이라 술맛을 균일화하기 쉽다. 이런 이점 때문에 광복 후 오늘날까지도 대부분의 막걸리 업체들은 입국을 사용해 오고 있다. 박씨는 “입국으로 발효시키는 막걸리는 엄밀하게 말해 전통주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막걸리를 두 번 죽인 釀穀令
 
이동수 서울탁주 회장.
  광복 후에도 주세(酒稅)는 국가 재정의 일부를 담당하는 일용한 세금원이어서 일제시대 생겨난 각종 규제와 함께 그대로 유지되었다. 누룩 대신 입국을 사용하면서 전통주 범위를 벗어난 막걸리는 1963년 양곡령(釀穀令ㆍ곡식으로 술 빚는 것을 금지한 정책)이 시행된 이후 주재료가 쌀에서 밀가루로 대체되어 맛이 더욱 변질됐다. 공급 구역을 양조장이 있는 시ㆍ군ㆍ구 지역 안으로 묶는 규제 강화로 지방마다 일부 업체가 독과점하는 쪽으로 시장이 재편됐다.
 
  경쟁 없는 시장에서 일부 양조업자들은 발효가 덜 되거나, 술독에 카바이드를 넣어 속성으로 발효된 술을 유통시켰다. 이들은 정상적인 발효 과정을 거치지 않은 막걸리에 사카린이나 올리고당 등의 각종 감미료를 넣어 맛을 냈다. 전통주 전문가들은 막걸리가 ‘마시면 머리 아프고 트림이 나는 싸구려 술’로 인식되기 시작한 건 이때부터라고 입을 모았다.
 
  그럼에도 막걸리는 서민의 술로 사랑받았다. 1980년대까지도 국내 주류 시장의 80%를 장악했을 정도로 승승장구했다. 이때는 제조와 판매 면허가 쉽게 부여되던 시절이라 너도 나도 막걸리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러다 보니 세수 관리가 제대로 안되었고, 영세한 제조ㆍ판매 업체의 난립과 과당경쟁으로 유통 질서가 문란해졌다. 세수 확보를 위한 관리 차원에서 정부는 1973년부터 주류제조장을 통폐합하는 한편, 신규 제조 면허를 불허했다. 전통주 제조 비법을 고수해 온 가양주 업소는 더더욱 설 자리를 잃었다.
 
  1980년대 후반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치르며 경제가 급성장하자 국민들은 좀 더 고급화된 술을 찾기 시작했다. 맥주와 희석식 소주가 대중화 바람을 탔다. 전체 주류 시장의 80%를 차지했던 막걸리는 맥주와 소주에 자리를 내줬다. 1990년대가 되면서 막걸리 시장은 10%대로 줄어들었다. 식량 부족으로 과거 25년 동안 금지해 온 쌀 막걸리 생산이 이 무렵 재개됐지만 막걸리 시장의 추락은 계속됐다. 현재 국내 주류 시장에서 막걸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5% 안팎이다.
 
  한경대 식품공학과 이종기(李鍾玘) 교수는 “1980년대 이후 막걸리 시장이 몰락한 것은 양조업자들의 비양심적 제조와 시장 흐름을 읽지 못한 안이함 때문”이라며 “이 같은 현상이 반복되지 않도록 이제부터라도 끊임없이 연구하고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탁주와 포천이동의 한판승부
 
배상면 국순당 창업주(오른쪽)와 배중호 사장이 서울 서초동 배상면주가 본사에서 함께한 모습.
  2001년 공급구역 제한이 풀리기 전까지 국내 막걸리 시장은 이렇다 할 경쟁 없이 각 지역을 대표하는 막걸리 업체들이 지배했다. 서울은 서울 지역 51개 양조장이 연합한 서울탁주제조협회(이하 서울탁주)가, 부산은 부산 지역 43개 양조장이 하나로 통합된 부산합동양조가, 대구는 49개 양조장이 통합된 대구탁주가 시장을 90% 이상 점유했다. 공급구역 제한이 풀린 후에도 이들 제조회사는 지역을 대표하는 막걸리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
 
  이들 회사의 견고한 아성에 도전장을 내민 회사가 포천이동주조(이하 포천이동)와 국순당이다. 이 두 회사는 1990년대 초부터 국내 탁·약주의 공급구역 제한을 풀어달라고 호소했던 곳이다. 배중호(裵重浩) 국순당 대표에 따르면 당시 약주 전문이었던 국순당은 막걸리 업계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위해, 인지도 면에서 전국 1위였던 포천이동은 서울이라는 큰 시장을 잡기 위해 공급구역 제한 폐지 운동을 펼쳤다고 한다.
 
  배중호 대표의 말이다.
 
  “1990년 당시 전체 주류 시장에서 막걸리의 비중은 10%인 데 반해 약주는 0.1% 수준이었어요. 경영자 입장에서 약주보다 막걸리가 더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했죠. 경기도 퇴계원의 막걸리 양조장을 인수해 놓은 상태여서 저희로서는 면허 문제도 없고, 오랫동안 전통주 연구를 해온 터라 제품개발에도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공급구역 제한으로 판로가 작은 면에 불과한 퇴계원에 묶여 있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헌법소원까지 내며 공급구역 제한 철폐 운동을 주도했죠. 당시 포천이동을 제외한 전국의 막걸리 제조사 대부분이 반대했습니다. 특히 시장이 큰 서울, 대구, 부산 지역 대표 업체들의 반대가 심했죠.”
 
  두 업체의 끈질긴 투쟁으로 1994년 약주의 제한이 풀린 데 이어 2001년 막걸리까지 개방되었다. 막걸리 업계는 인지도 1위인 포천이동주조가 곧 서울 시장을 잠식해 갈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서울탁주의 서울 수성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고, 오히려 포천이동 막걸리의 인기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왜 그랬을까.
 
  하명희(河明熙) 포천이동 이사는 “시장의 변화를 읽지 못한 전략의 실패였다”며 이렇게 말했다.
 
  “1990년대까지도 포천이동 막걸리는 인지도뿐만 아니라 맛에서도 전국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어요. 포천 지역에만 유통시키기에는 아까운 술이었죠. 그래서 공급구역 제한 폐지 운동에 동참한 것인데, 몇 년을 기다려도 달라지는 게 없더군요. 할 수 없이 눈을 돌린 것이 일본 시장 진출이었습니다. 당시 유통 구조상 생막걸리로는 일본 진출이 불가능해 살균 막걸리를 생산하기 시작했고, 수출량이 늘면서 생산라인을 아예 살균 막걸리 쪽으로 바꾸었죠. 그게 잘못이었습니다.”
 
  포천이동은 공급구역 제한이 풀린 뒤 국내 시장에서도 살균 막걸리로 승부를 걸었다. 서울까지 이동 거리가 있어 생막걸리로 경쟁할 경우 서울탁주에 불리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생막걸리에 길들여진 소비자들은 “포천이동 막걸리 맛이 옛날 같지 않다”며 등을 돌렸다. 때마침 서울탁주는 막걸리에 탄산을 주입해 기존보다 훨씬 시원하고 청량한 맛으로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다. 포천이동의 서울 시장 진출에 대비해 비장의 무기를 준비한 서울탁주의 승리였다.
 
  현재 국내 막걸리 시장의 1인자는 서울탁주다. 이 회사는 생막걸리 ‘서울장수’와 살균 막걸리 ‘월매’를 생산하고 있다. 작년 매출은 1100억원대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작년 한 해 생막걸리만 1억420만943ℓ를 판매했다. 올해의 경우 5월 누적량이 벌써 7783만2426ℓ에 이른다. 지난해의 절반을 훌쩍 뛰어넘은 양이다. 페트병과 캔에 담아 내수와 수출 시장을 공략하고 있는 살균 막걸리도 이에 못지않은 양이 팔려나갔다. 박상태 서울탁주 영업부장은 “국내 주문 물량도 소화하지 못하는 상황이라 그동안 수출에 크게 신경 쓰지 못했으나 지난 3월부터 진천 공장을 가동하기 시작해 앞으로는 해외 시장도 적극적으로 개척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강원도 횡성에 있는 국순당 생산 공장. 최근 이곳은 국내외 관광객들의 견학 코스가 됐다.
 
  홍보도 마케팅 인력도 없는 서울탁주
 
술도가를 배경으로 가족 이야기를 그린 KBS 드라마 ‘신데렐라 언니’의 한 장면.
  충북 진천에 위치한 새 공장은 서울탁주의 주주들인 서울 지역 7개 연합 51개 양조장이 공동 투자해 설립한 별도 법인체(서울장수주식회사)다. 이창희 부장은 “이 회사는 수출용 살균 막걸리를 생산할 목적으로 설립됐으며, 지난 3월에 문을 연 공장은 막걸리 제조 단일 공장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라고 설명했다.
 
  대지 2만6769㎡(약 8100평)에 연면적 1만4850㎡(약 4500평)의 공장에는 하루 10만ℓ를 출고할 수 있는 전자동 시스템의 생산 라인과 연구소, 홍보전시실 등이 갖춰져 있었다. 5000ℓ짜리 스테인리스 발효탱크 60개가 들어선 발효실에는 술 익는 냄새가 진동했다. 하지만 아직 설비가 덜 갖춰진 탓인지 전체 공정 라인은 절반 정도만 가동되고 있었다.
 
  연구소 인력도 4명으로, 서울탁주 제품까지 연구 개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보였다. 연구소 책임자인 염성관(廉聖寬) 상무는 “현재는 수출용 막걸리 품질 검사만 하는 수준”이라며 “앞으로 연구 인력을 증원할 예정이며, 신제품 개발에도 매진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탁주는 현재 일본을 비롯해 미국, 중국, 베트남, 태국, 독일, 말레이시아, 아르헨티나 등에 살균 막걸리 ‘월매’를 수출하고 있다. 지난해 총 수출량은 28만1562ℓ로 전체 출고량에 비해 미미한 수준이다.
 
  마케팅이나 홍보 수준도 국내 1위 업체치고는 부진한 상황이다. 영업 담당이 마케팅과 홍보 업무까지 겸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인력 자체가 없는 듯했다. 이동수(李東洙) 서울탁주 회장은 “품질에 자신이 있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마케팅이나 홍보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지만 앞으로 전문인력을 영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근 수도권 5위 안의 다른 업체들이 공격적인 마케팅과 홍보 전략을 펴고 있는 것 같다”고 하자 그는 “막걸리 전체 시장에 대한 홍보가 되니 우리로서는 고마울 따름”이라고 한껏 여유를 부렸다.
 

 
  탄탄한 R&D로 무섭게 추격하는 국순당
 
  수도권 막걸리 시장 2위 업체는 백세주 신화로 돌풍을 일으킨 국순당이다. 이 회사의 막걸리 대표 브랜드는 ‘국순당 생막걸리’와 ‘우리쌀로 빚은 국순당 생막걸리’. 지난해 5월에 출시된 국순당 생막걸리는 출시 1년 만에 3000만 병(1병 1500원) 판매를 돌파, 백세주의 매출 감소로 위기에 빠진 국순당을 구한 효자가 됐다. 배중호 국순당 사장은 “백세주가 2003년 정점에 도달한 후 올라온 속도로 매출이 떨어지고 있을 무렵 생막걸리를 출시해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고 말했다. 1분기 막걸리 매출은 105억원, 백세주 매출은 89억원이라고 한다.
 
  이에 탄력을 받은 국순당은 올해 4월 말 100% 국산 쌀을 원료로 한 생막걸리를 출시, 국내 막걸리 업체 중 최초로 TV 광고를 하고 있다. 이 제품은 백세주의 생쌀 발효법을 적용, 고두밥을 지어 사용하는 기존 막걸리와 달리 영양소 파괴를 최소화한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1년 이내 수확한 국산 쌀을 사용해 수입 쌀을 사용한 기존 생막걸리보다 가격이 25% 정도 높다. 마트 기준 기존 생막걸리 가격은 1100원, 우리 쌀로 빚은 생막걸리 가격은 1500원이다. 이 때문에 출시 초기에는 두 제품의 매출 비중이 9 대 1이었다고 한다.
 
  꾸준한 홍보와 마케팅 결과 현재는 5 대 5 정도다. 배 사장은 “오는 7월이면 7 대 3 정도로 우리 쌀로 빚은 생막걸리의 매출이 더 높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약주 전문업체였던 국순당이 이렇듯 빠른 시간에 막걸리 시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것은 탄탄한 R&D 능력과 노하우 때문이다. 국순당은 배상면(裵商冕) 창업주가 설립한 한국 미생물 공업연구소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연구소는 맥이 끊긴 전통주 복원을 위해 누룩을 연구하고, 제조했다. 연세대에서 생화학을 전공한 배 사장 역시 누룩 전문가로 12가지 약초를 넣어 만든 백세주와 국내 최초의 캔 막걸리 ‘바이오탁’이 모두 그의 손을 거쳐 개발됐다. 지난해 5월에는 고려시대 양반가에서 즐겨 마시던 고급 막걸리 ‘이화주’를 복원해 출시했다.
 
  이화주 외에 100% 국내산 쌀과 인삼으로 빚은 ‘미몽’(米夢), 일명 ‘욘사마 막걸리’로 불리며 일본에서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는 ‘고시레 막걸리’ 등이 비슷한 시기에 나왔다. 이 중 미몽은 지난 1월 ‘제40회 다보스 포럼’ 한국의 밤 행사에 공식 건배주로 사용돼 한국은 물론 해외에서도 큰 관심을 받았다.
 
  배 사장은 “앞으로도 R&D 부문에 많은 비용을 투자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순당은 현재 국내 막걸리 업체로서는 최다인 18명의 전문 연구원이 근무하고 있고, 모든 술에 자체 개발한 누룩을 사용하고 있다.
 
경기도 포천에 있는 막걸리 박물관 ‘산사원’. 배상면주가가 운영하고 있다.
 
  전통주 名家 3남매, 막걸리 경주
 
  그의 동생들이 운영하는 배혜정누룩도가(대표 배혜정)와 배상면주가(대표 배영호) 역시 입국이 아닌 누룩을 쓰고 있다. 배중호 사장에게 “누룩은 3남매가 공유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물으니 “과거에는 공유했으나 지금은 각자 개발한 누룩을 사용하고 있다”고 답했다.
 
  항간에는 이들 3남매가 우리 쌀 막걸리 시장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첫째인 배중호 사장은 백세주 등 약주에, 둘째인 배혜정 사장은 우곡주 등의 고급 막걸리에, 셋째인 배영호(裵永浩) 사장은 산사춘 등의 전통주에 주력하는 것으로 차별화해 왔으나 최근 1, 2년 사이 모두 막걸리를 주력으로 내세우면서 최대 라이벌이 됐다. 더구나 국순당과 배상면주가는 올해 앞서거니 뒤서거니 우리 쌀 막걸리를 시장에 내놓았다. 브랜드 이름도 ‘우리쌀 국순당 생막걸리’와 ‘우리쌀 생막걸리’로 유사하다. 신문 광고마저 비슷해 헷갈릴 정도다.
 
  이에 대해 국순당의 한 관계자는 “배상면주가가 우리 광고를 따라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가 하면 배상면주가는 국순당을 겨냥한 듯 지면 광고에 ‘배상면주가에는 수입 쌀로 빚은 생막걸리는 없습니다’라는 카피를 새겨 넣었다.
 
  전통주 전문가들은 “3남매 모두 훌륭한 부친 밑에서 전통주 기술을 익혔으니 선의의 경쟁을 통해 막걸리 업계를 발전시켰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오리온이 인수한 참살이 탁주
 
충북 진천에 위치한 장수막걸리 공장.
  국산 쌀 막걸리로만 보자면 참살이 탁주가 이들 형제보다 앞서 출시됐다. 참살이 탁주는 경기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남한산성소주가 2005년 막걸리 시장 진출을 선언하며 선보인 제품. 최근 인기리에 종영된 드라마 <신데렐라 언니>에 모티브를 제공한 업체로 알려지면서 그야말로 막걸리계의 신데렐라가 된 탁주다. 강환구 참살이 L&F 대표는 “오랫동안 전통주 맥을 잇기 위해 증류식 소주만 고집해 오다 새로운 생존 활로가 필요해 2005년 막걸리 시장에 진출하게 됐다”고 말했다.
 
  2005년만 해도 막걸리는 사양산업이었으나 강 대표는 향후 시장이 괜찮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조언에 따라 수입 쌀 막걸리보다 원가가 3배나 높은 국산 쌀 막걸리를 제조했다고 한다. 강 대표의 말이다.
 
  “국산 경기미로 막걸리를 빚는다고 하니까 당시 주변에서는 모두 말렸어요. 세무서에서조차 ‘돈 안되고 힘만 들 것이 뻔한데 뭐 하러 사서 고생을 하느냐’고 만류했죠. 모두들 막걸리를 좋은 쌀로 빚으면 사업성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강 대표는 좋은 재료로 맛좋은 술을 빚으면 사람들이 알아봐 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참살이 탁주를 출시했다고 한다. 소량 생산에 인지도도 없는 데다 가격 경쟁에서도 밀려 근 4~5년 동안 빛을 보지 못했지만 입소문을 통해 마니아층이 형성됐다. 서울대 농경제학부 최영찬(崔英璨) 교수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최 교수는 평소 막걸리를 마시는 것이 농촌의 잉여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해 학생들에게 맥주나 소주 대신 막걸리 마시기를 권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인터넷을 통해 참살이 탁주가 우리 쌀로 빚은 술이라는 것을 알고 학교 행사 때 500명분의 막걸리를 주문한 것이 계기가 돼 정·재계에 몸담고 있는 인사들에게 소개했다고 한다.
 
  최 교수는 “정운천(鄭雲天) 농식품부 전(前) 장관과 장태평(張太平) 현(現) 장관, 이달곤(李達坤) 전 행안부 장관, 김문수(金文洙) 경기도지사 등과 함께하는 식사자리에 참살이 탁주를 내놓으니 모두들 마셔보고 감탄했다”고 말했다. 이것이 계기가 돼 정부는 국산 쌀 소비 정책의 일환으로 막걸리 산업을 지원하기 시작했고, 제과업체인 오리온은 참살이 탁주를 글로벌 브랜드로 키우기 위해 인수하기에 이르렀다.
 
 
  막걸리 업계의 신데렐라로 부상
 
서울장수주식회사의 막걸리 연구소.
  한편 국립 한경대 친환경농축산연구센터는 2006년 참살이 탁주가 운지버섯에서 추출한 크레스틴(PSK)보다 항암효과가 뛰어나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참살이 탁주는 한경대의 의견에 따라 주재료를 친환경 쌀로 바꾸는 한편 고급 막걸리 대중화를 위해 ‘탁주동맹’(후에 ‘툭탁’으로 변경)이라는 주점을 서울 성수동에 열었다. 강환구 대표는 “막걸리가 일본 시장에서 먼저 붐을 일으킨 것은 참살이 탁주의 영향도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툭탁에서 젊은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국내 최초로 시도한 것이 막걸리 칵테일입니다. 여러 가지 과일을 이용해 만든 이 칵테일은 젊은 여성들에게 인기였고, 일본 관광객들에게까지 알려져 2006년 말과 2007년 초 두 차례에 걸쳐 일본의 NHK 방송이 취재해 보도했죠. 이를 계기로 일본에서 막걸리 칵테일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된 겁니다.”
 
  지난해 참살이 탁주의 매출은 5억원이었다. 올해는 연초에 5억원 매출을 올렸을 정도로 급신장했다. 그 무렵 강 대표는 방송사로부터 자신을 모델로 드라마를 제작하고 싶다는 제의를 받고 제작비 일부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이것저것 합쳐 지원한 금액이 3억원 정도 된다”고 밝혔다. 연매출 5억원 규모의 업체가 마케팅비로 3억원을 지원한 셈이다. 강 대표는 “올해 들어 매출 전망이 좋았기 때문에 가능한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강 대표의 모험 어린 투자는 수십 배의 효과로 나타나고 있다. 현재 참살이 탁주는 ‘신데렐라 탁주’로 불리며 백화점과 대형 마트에서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다. 지난 6월 초 신세계백화점과 이마트, 롯데백화점과 롯데마트 측에 알아본 결과 참살이 탁주는 수십 개 막걸리 브랜드 중에서 모두 판매 순위 5위 안에 랭크됐다. 강 대표는 “평소 마트마다 10병 남짓 진열했던 참살이 탁주를 요즘은 50병 넘게 진열하고 있다”며 “가격이 일반 막걸리보다 70~80% 비싼데도 없어서 못 팔 지경”이라고 말했다. 참살이 탁주는 현재 500ml 한 병에 1900원이다. 이보다 용량이 큰 서울 장수막걸리는 750ml 한 병에 1100원이다.
 
  올해 5월 오리온에 인수된 참살이 탁주는 경기도 광주에 현대화한 생산공장을 오픈한 데 이어 내년 5월까지 생산 라인을 증설할 계획이다.
 
 
  해외 시장에서는 포천이동이 1위
 
정헌배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

  국내 시장과 달리 수출 시장에서는 선도 업체인 포천이동이 1위를 달리고 있다. 1993년부터 해외 시장을 개척한 이 회사는 현재 미국, 일본, 중국 등 세계 20개국에 수출하고 있는데, 특히 일본의 경우 포천이동이 9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하명희 포천이동 이사는 “2008년 290만 달러였던 수출이 지난해는 350만 달러로 늘었다”며 “이는 포천이동 전체 매출의 64%를 차지하는 규모”라고 말했다.
 
  포천이동은 1963년 하유천 창업주가 경기도 포천군 이동면에 한일탁주합동주조장을 설립한 데서 유래한다. 하씨는 해발 903m의 백운동 계곡에서 뽑아 올린 지하수로 텁텁하고 감칠맛 나는 막걸리를 만들었다. 이것이 입소문을 타고 전국에 퍼져 포천이동막걸리는 막걸리의 대명사처럼 굳어졌다.
 
  현재 포천이동은 창업주의 차녀인 하명희 이사가 운영하고 있다. 이곳 막걸리는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막걸리였다. 포천이동이 오랜 세월 명성을 이어온 것에 대해 그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다.
 
  “포천이동 막걸리가 유명해진 것은 포천 지역에 있는 군부대 덕분입니다. 이곳 부대에는 전국에서 징집된 장병들이 복무했는데, 그들이 저희 집 막걸리를 마시고 그 맛을 잊지 못해 전국에 입소문을 내주었죠. 그 덕분에 명성은 전국구 막걸리가 되었습니다만, 공급구역 제한 때문에 유통은 포천군에 발이 꽁꽁 묶여 있었죠. 제한이 풀린 후에는 냉동차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데다 서울탁주처럼 과감한 변신을 못해 선두에서 뒤로 밀리고 말았죠.”
 
  포천이동은 경쟁 업체들이 제조 공정을 현대화한 지금도 전통 방식으로 항아리에 술을 담그고 있다. 많은 업체가 인공 탄산을 주입하고 있지만 이곳은 여전히 천연 탄산을 고집하고 있으며, 수출 비중이 높아 살균 막걸리를 많이 생산하고 있다. 2008년 매출은 64억원, 지난해 매출은 91억원이다.
 
  하 이사는 “옛 명성을 찾기 위해 포천군 이동면에 150억원을 들여 초현대식 공장을 짓고 있다”며 “오는 8월에는 새 공장에서 보다 과학화하고 위생적인 방법으로 막걸리를 생산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포천에는 포천이동 외에도 포천일동주조, 배상면주가, 상신주가 등의 막걸리 업체가 포진해 있다. 중소형 규모의 이들 업체는 막걸리 시장에 뛰어드는 대기업에 공동대처하기 위해 지난해 말 조합을 만들었다. 초대 조합장을 맡은 함범식(咸範植) 포천일동 대표는 “포천 지역 막걸리 공동 판매와 통합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조합 결성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조합은 회원들의 공동투자로 포천군 이동면 도평리에 500평 규모의 현대식 공장을 건립할 예정이다. 함 조합장은 “이 공장에서는 포천 지역 쌀로 빚은 술에 개성인삼을 가미한 고급 막걸리를 생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술이 아닌 문화를 팔아야
 
박록담 한국전통주연구소장.
  막걸리 붐이 일면서 막걸리 전문가들도 그 어느 때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박록담(본명 박덕훈) 한국전통주연구소장과 정헌배(鄭憲培)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요즘 들어 막걸리 관련 행사와 세미나가 많아 정신이 없다”고 말했다.
 
  박록담 소장은 지난 20여 년 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800여 종의 전통주 주조법을 발굴, 기록했다. 또한 연구소와 대학원 강의를 통해 전통주 대중화에 힘써 왔다. 그는 “애주가였던 아버지에게 좀 더 맛있고 몸에 좋은 술을 사 드리기 위해 이름난 술도가를 찾아다니다 전통주의 매력에 빠졌다”고 말했다.
 
  박씨는 현재 우리 술 복원 작업과 함께 서울 녹번동에 있는 한국전통주연구소에서 벌써 12년째 전통주 보급 교육에 매진하고 있다. 전국 곳곳에서 전통주 주조를 운영하는 이들 중 다수가 이곳에서 교육을 받았다. 최근 막걸리학교 교장으로 유명한 허시명씨도 이곳 출신이다. 수강생은 교수, 한의사 등의 전문직에서부터 가정주부까지 다양하다. 현재 42기가 교육받고 있으며, 이들은 전통주 제조 공정을 짧게는 한 달, 길게는 3년에 걸쳐 배우고 익히게 된다. 수강 시간은 매주 월ㆍ수ㆍ목 저녁 7~10시다. 박씨는 “한 기수당 보통 40~50명이 수강하는데, 과거에 비해 줄어든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이곳을 거쳐간 제자들이 전국 곳곳에 포진, 교육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박씨는 좋은 막걸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잘 빚은 전통주에는 쌀 등의 곡류와 전통누룩이 발효되며 내는 방향(芳香)이 있게 마련이지요. 좋은 막걸리에서는 이런 방향이 나고, 감미를 하지 않아도 단맛, 신맛, 쓴맛, 떫은맛, 매운맛이 골고루 느껴지죠. 요즘 잘나가는 업체에서 대량으로 생산하는 막걸리에서는 이런 향과 맛이 나지 않습니다. 올리고당류의 감미료를 많이 쓰는 데다 발효와 숙성을 제대로 시키지 않기 때문이죠.”
 
  그는 “요즘 중대형 업소들이 제대로 된 술맛으로 승부하기보다 가격 경쟁으로 승부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정헌배 교수는 현직 교수이면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고급 전통주 제조회사의 대표이기도 하다. 경기도 안성에 위치한 ‘정헌배 인삼주가’가 그것이다. 이곳에서는 한 병에 2만5000원에 파는 인삼 막걸리 ‘진이(眞伊)’와 3만원에 나가는 약주 ‘비(飛)’, 한 병에 무려 110만원의 가격이 붙은 숙성주 ‘봉(鳳)’이 생산되고 있다. 이 제품들은 모두 서울 시내 백화점과 인천공항 면세점에 들어가고 있다고 한다. 정 교수는 “월 300~400병씩 나가고 있지만 원재료 값이 워낙 고가인 데다 수제(手製)여서 누적된 적자가 수억 원에 이른다”며 “직원들이 작품이 아니라 상품을 만들자고 난리”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프랑스 파리제9대학에서 마케팅 석사와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프랑스 유학파인 그가 와인이 아닌 전통주에 빠진 이유는 뭘까. 그는 “대학 시절 물 맑고 산 좋은 대한민국에서 수출 유망 상품으로 가장 좋은 것이 뭘까 고민했는데, 술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한다. 그 이후 이 시대 최고의 술을 만들어 후손에게 물려줘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대한민국을 대표할 만한 명품 전통주 연구에 몰입했다는 것이다. 다소 엉뚱하고, ‘괴짜’ 같아 보였지만 술을 대하는 그의 자세는 진지했다. 술이 아니라 문화를 빚는 사람으로 보였다.
 
  막걸리 업계는 이 두 사람을 부담스런 존재로 여기는 듯했다. 수시로 막걸리 업계에 비판의 메스를 들이대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막걸리 업계가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한 나머지 전통주 복원에 무관심하다”고 말했다. 또한 “지금의 막걸리 붐을 장삿속으로만 이용하면 일시적 현상으로 지나가고 말 것”이라며 “우리 문화를 세계에 심을 수 있는 좋은 기회로 키워 가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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