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成東의 인간탐험] 前 조계종 총무원장 宋月珠 스님

“대한민국의 建國은 자랑스럽고 성공한 역사”

  • : 김성동  ksdh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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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려들이 자기 成佛만 할 것이 아니라, 대중의 成佛에도 관심을 가지고, 중생 구제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NGO 활동도 하게 되고, 시대상황에 따라 정치적인 발언도 하게 된 것이죠.”

⊙ 새해에는 서로의 반목과 갈등을 조정하고 화합하는 한 해가 되기를
⊙ 金九 선생은 金日成에게 속았고, 金大中은 金正日에게 속았다
⊙ 김대중·盧武鉉 정부의 對北정책보다 李明博 정부의 대북정책이 옳다
⊙ 李承晩 대통령의 가장 큰 功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건국했다는 것
⊙ 이전보다 공무원들이 종교 문제에 대해 신중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송월주
⊙ 1935년 전북 정읍 출생.
⊙ 정읍농고 졸업, 서울시립대 중퇴, 화엄사 대교과 졸업. 동국대 행정대학원 행정학과 수료.
    원광대 명예철학박사.
⊙ 금산사 주지,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 교무부장, 제17대·28대 조계종 총무원장,
    경제정의실천연합 공동대표, 환경운동연합 고문,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 공동대표,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공동대표 역임. 현 사단법인 지구촌공생회 이사장·永華寺 회주.

취재지원 : 조은정 月刊朝鮮 인턴기자
宋月珠(송월주) 스님은 제17대·28대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불교계의 어른이다. 그는 28대 총무원장 시절 ‘깨달음의 사회화’를 주창하면서 불교계의 사회 참여를 적극 이끌었다. 스스로도 경제정의실천연합 공동대표, 환경운동연합 고문,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 공동대표 등을 맡는 등 사회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1995년 10월 그는 불교종단 대표로서 당시 천주교의 金壽煥(김수환) 추기경, 개신교의 姜元龍(강원용) 목사 등 6대 종교단체 대표와 함께 기아에 시달리는 북한주민을 돕기 위해 식량을 지원하자는 성명을 발표하고 북한동포돕기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다음해인 1996년 6월, 6대 종교단체와 시민단체, 문화단체, 노동단체, 의약계를 총망라한 33개 단체가 모여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를 결성했다. 그는 그 단체의 공동대표를 맡았다. 이 단체는 그때부터 북한에 농기계공장 건설, 병원 현대화사업, 어린이 급식사업 등을 지원해 왔다. 이후 송월주 스님은 金大中(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과 6·15공동선언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그가 회주(통상적으로 절의 최고 高僧(고승)을 지칭)로 있는 서울시 광진구 소재 永華寺(영화사)를 찾아갔을 때 그가 처음 꺼낸 말은 우리민족돕기운동과 관련된 것이었다.
 
  “아직도 내가 이 단체 공동대표로 있는 걸로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직후인 2006년 7월에 그 자리에서 물러났어요. 나는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직후 우리민족서로돕기 관계자들도 모인 자리에서 ‘김일성이 金九(김구) 선생을 이용했던 것처럼 북한은 김대중, 鄭周永(정주영)을 다 이용해 먹었다’고 비판한 일이 있어요.”
 
  ―김대중·盧武鉉(노무현) 정부의 對北(대북)정책을 싸잡아서 비판한 거네요.
 
  “그런 셈이죠. 북한이 주체사상에 입각해서 통일하려는 근성을 바꾸지 않는 한 우리가 상대해 봤자 속기만 할 겁니다.”
 
  만나자마자 언성을 높였던 게 미안했는지 그는 씨익 웃으며 “사진을 찍으려면 長衫(장삼)을 걸쳐야 하나? 내가 승복을 갈아입고 오지” 하며 일어서려고 했다. 그는 승려들이 입는 일상복을 입고 있었다. 필자가 “오히려 그 모습이 자연스럽고 더 좋은데요” 하자, “그래, 나도 이게 편하지” 하면서 다시 앉았다.
 
  우리 나이로 75세인 그는 건강했다. 인터뷰 내내 그는 자세를 흩트리지 않고 질문에 답했다. 간간이 이를 드러내며 웃는 모습은 천진난만한 아이였다. 출가한 지 55년이 넘었지만 그는 여전히 호남사투리를 버리지 않고 있었다.
 
 
  淸富정신, 淸貧정신이 모두 필요할 때
 
  ―불교계의 큰스님으로서 새해 덕담 좀 해 주시죠.
 
  “경제성장도 중요하고 과학과 문화발달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서로 나누고 보살피는 자비심의 실천이 부족합니다. 새해에는 서로의 반목과 갈등을 조정하고 화합하는 한 해, 자비를 실천하는 한 해가 되기를 모든 불제자와 국민에게 간곡하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사회의 갈등을 어떻게 치유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지역감정을 해소하려면 가장 먼저 선거법과 제도를 고쳐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호남에서도 한나라당이 당선되고, 민주당도 영남과 기타 지역에서 당선이 되어야 지역감정이 해결될 수 있어요. 이와 함께 만연해 있는 소지역주의를 없애기 위해 법을 고쳐서라도 행정구역을 새롭게 정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빈부격차 문제도 심화되고 있는데요.
 
  “빈부격차를 해소하려면 정부와 가진 자들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있는 사람들은 나누고 베푸는 것이 필요하고, 정부는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정당한 대가를 받고 안정적인 삶을 누릴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정부가 세금을 거두어서 복지사업을 잘하고, 교육사업과 장학혜택을 잘 펼치면 더 많은 기회를 잡아서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정부가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기회를 부여하는 일만 잘해도 양극화 해소에 큰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정신적인 측면에서는요.
 
  “있는 사람들이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 정직하고 깨끗하게 돈을 버는 淸富(청부) 정신, 검소하고 자기 삶에 만족하는 淸貧(청빈) 정신이 모두 필요할 때입니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국가에서 법을 지켜 가며 돈을 더 벌려고 노력하는 것을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무조건 하나라도 더 가지려고 하고, 더 쌓으려고만 하면서 단 한 푼도 남을 위해서 내놓지 않으려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부자들이 불신을 받는 것입니다.”
 
  ―남북 간의 갈등은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남북문제는 기본적으로 이념적인 문제입니다. 따라서 개혁적인 보수와 합리적인 진보 세력이 등장해서 이들이 서로 대화를 하면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대한민국 건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세력들 있어
 
   ―우리 국민 일부에서는 남북 관계 진전을 위해서 ‘우리 민족끼리’라는 구호를 들고 나오고 있는데요.
 
  “일부 사람들이 그렇죠. 그들은 ‘우리 민족끼리’라는 것을 내세우며 민족 문제에 외세를 배격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우리 민족끼리나 자주만 내세운다고 모든 정통성을 부여받는 것이 아닙니다. 통일 문제는 우리끼리도 중요하지만 국제적인 공조 속에서 풀어 가는 지혜도 필요합니다.”
 
  ―그런 주장을 하는 분들 중에는 대한민국 건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요즘 역사 교육이 잘못되고 있어요. 많은 사람이 李承晩(이승만) 대통령이 1946년 6월에 전라도 정읍에서 ‘우선 유엔 결의하에 남한이라도 먼저 선거를 해서 정부를 세우자’고 한 것 때문에 이 대통령을 분단 조성자로 몰고, 김일성을 자주적인 통일을 원한 것으로 오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과 달라요. 이 대통령의 정읍발언 이전인 1945년 9월, 소련의 스탈린이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극동사령부를 통해서 이미 평양에 공산 정부를 수립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이에 따라 김일성이 열차 편으로 평양에 도착해서 그해 10월 14일 평양공설운동장에서 열린 ‘소련군 환영 평양시 군중대회’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김일성은 1946년 2월에 임시인민위원회를 만들어 8월에 노동당을 창당하고 노동신문도 만들었습니다. 그때부터 국가 창설을 준비한 것입니다.”
 
  ―왜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대한민국 건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싶은 거죠. 좌파들은 이런 역사적 사실을 무시하고 이승만 대통령을 분단 책임자로 돌리면서 엄연히 헌법 테두리에서 태어난 대한민국을 ‘잘못 태어난 나라’라고 왜곡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로 건국을 한 것은 위대한 선택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위대하다는 것이 아니라 체제 선택이 위대했다는 것입니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택했기 때문에 대한민국이 산업화가 되고 민주화가 되기 시작한 것 아닙니까.”
 
  ―우리민족서로돕기 공동대표 시절 여러 차례 북한에 다녀왔는데 가서 실제로 북한을 보니 어떻던가요.
 
  “제가 느낀 것은 북한이 상상 외로 자유가 없는 나라라는 겁니다. 안 가 본 사람은 거기도 사람 사회인데 얼마나 심하겠느냐고 하겠지만 직접 겪지 않으면 모를 겁니다.”
 
  ―북한 방문 전에는 북한에도 어느 정도는 자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까.
 
  “물론 들은 것이 있어서 북한에 자유가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렇게까지 심각할 줄은 몰랐습니다.”
 
 
  북한은 창의력이 나올 수 없는 사회
 
명동성당에서 열린 김수환 추기경의 추모미사에서 송월주 스님이 예를 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북 좌파들은 북한을 비판하지 않고 대한민국 비판에만 골몰하고 있습니다.
 
  “일부에서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부정하는 시도를 계속하는 것은 의도가 있다고 봐야 합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역사적 공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대한민국을 건국했다는 것이 가장 큰 공입니다. 또 토지개혁도 성공했고, 국민들에게 의무교육도 시켜서 민주주의의 밑거름이 되게 했습니다. 또 60만명이나 되는 세계적인 强軍(강군)을 양성했고, 6·25사변 때는 우리 힘으로 안되니까 미국을 끌어들여서 나라를 지켰습니다. 그 후에는 韓美(한미)군사동맹으로 나라의 안보를 튼튼하게 했습니다.”
 
  스님은 “앞으로 국민들 마음속에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새롭게 인식시키는 교육이 필요하다”면서 말을 이었다.
 
  “대한민국의 건국은 자랑스럽고, 성공한 역사라는 긍지를 가지게 해야 합니다. 무조건 비판만 하다 보니까 역대 지도자들의 훌륭한 업적이 모두 가려져 버렸고, 그러다 보니 국민들이 패배의식으로 왜곡된 역사관에 쉽게 빠져드는 겁니다.”
 
  ―이승만 대통령 외에 다른 대통령의 공도 한번 평가해 주시죠.
 
  “全斗煥(전두환) 대통령은 한강 수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건설도 많이 했습니다. 올림픽도 유치했고요. 물가도 안정시키고, 수출을 많이 늘린 업적이 있습니다. 노태우 대통령은 한·중 수교를 비롯해서 한·러 수교와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을 성사시켰고, 올림픽 개최를 성공시켰죠. 북방정책도 노 대통령의 공이라고 할 수 있죠.”
 
  ―북한의 지도자는 어떻다고 보시나요.
 
  “북쪽은 창의력이 없고, 법의 지배가 아닌 일당독재 국가입니다. 북한에는 김일성의 語錄(어록)이 있는데 ‘김일성 주석이 이렇게 말했다’ 하면 그것이 곧 법입니다. 한마디로 법이 아니라 유언 정치가 계속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창의력이 나올 수가 없죠.”
 
 
  盧武鉉 때 행정수도 반대
 
송월주 스님이 2008년 6월 30일 촛불시위 관련 시민사회원로 시국성명 기자회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현재 세종시 문제로 여야 간 갈등과 함께 지역 간 갈등이 일어날 조짐도 있습니다. 이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저는 노무현 대통령 때 행정수도 졸속 추진을 반대했습니다. 성명까지 내면서 반대하자 청와대 비서실에서 항의 전화가 오기도 했어요. 저는 전화에 대고 좀 더 많은 여론을 듣고, 의견을 수렴해서 행정수도 이전이 타당한지 연구를 해 보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헌법재판소도 수도이전은 위헌이라고 판결을 했습니다. 헌재가 판결을 했으면 그냥 중단하면 되는데 충청도의 표를 얻기 위해서 편법으로 정부 부처를 일부만 옮긴다는 행정중심 복합도시라는 것을 밀어붙였습니다.”
 
  ―李明博(이명박) 대통령이 세종시 문제와 관련 국민들에게 사과도 했는데요.
 
  “세종시는 완전한 포퓰리즘의 산물입니다. 그걸 알면서도 표심 때문에 朴槿惠(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원안을 고수하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과의 대화를 통해서 세종시 문제에 대해 사과한 것은 잘했다고 봅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이견을 조율하고, 설득을 해야죠. 이명박 대통령이 세종시 수정안을 제대로 통과시키지 못하고, 4대강 살리기까지 실패한다면 이 정권은 식물 정권이 될 것입니다.”
 
  ―설득이 될 것이라고 보십니까.
 
  “지금 비록 야당이나 집권당 내 친박계 등 정치권에서 협조를 하지 않고 있지만 설득해야죠. 정치권은 표가 아니라 국익을 위해서 판단해야 합니다.”
 
  ―4대강 살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대운하 건설은 반대한다는 것을 분명히 밝힙니다. 하지만 4대강은 조건부로 지지합니다. 4대강 살리기를 하되 반드시 친환경적인 공사가 되어야 합니다. 현재 우리나라 강은 퇴적물이 많아 비가 오면 물이 넘치고, 오염이 되어서 수질도 좋지 않습니다. 홍수를 막고, 물을 맑게 한다는 것에 찬성하는 것이죠. 하지만 이것도 역시 졸속으로 추진해서는 안됩니다. 친환경적인 공사가 되도록 서두르지 말고 숙고에 숙고를 해서 공사를 했으면 합니다.”
 
  ―연례행사로 파업을 벌이던 철도노조가 이번에는 백기를 들었는데요.
 
  “만약 이번에도 정부가 과거처럼 물렁하게 대했더라면 앞으로도 파업이 일상이 돼 버렸을 겁니다. 정부가 강력하게 나오고, 국민들이 외면하니까 노조가 태도를 바꾸어 파업을 중단했는데, 이번 사태에서 보듯이 정부는 노사문제에 대해 법에 따라 원칙을 지켜야 합니다. 한 개 단체가 떼를 써서 얻어내면 무질서와 떼쓰기가 도미노 현상처럼 번질 것입니다.”
 
2004년 7월 8일, 졸속적인 행정수도 이전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는 송월주 스님(가운데).
 
  역대 정부 모두 종교 편향
 
송월주 스님이 청와대에서 열린 원로 초청 오찬간담회에 참석, 이명박 대통령과 인사하고 있다.
  ―정부가 대처를 잘한 것인가요.
 
  “아주 잘했다고 봅니다. 노무현 대통령 때는 나라의 기본 질서를 잡는 것이 약했습니다. 농민들이 죽창 들고 시위하다 사망했는데, 당시 許准榮(허준영) 경찰청장을 과잉 진압했다고 옷을 벗겼습니다. 영국의 대처 수상이 탄광노조와 싸워서 이김으로써 영국병을 고쳐 놓았습니다. 우리나라 공기업도 방만한 경영을 끝내고 구조조정을 해야 합니다. 대기업 노조를 귀족노동조합이라고도 합니다. 매번 말로는 비정규직을 보호해야 한다면서 대기업의 정규직 사원들은 자기들만의 철옹성을 만들어 놓고, 자기들 밥그릇만 챙깁니다. 아주 이기적 노조인 겁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대통령의 종교가 개신교라서 그런지 종교편향 문제가 많이 불거졌습니다. 불교 쪽에서 섭섭한 게 많은가 봅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었지만 金泳三(김영삼) 정부 때도 있었고 김대중 정부 때도 있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 후에는 이 대통령 자신보다는 공무원들이나 지방자치 단체장 등이 종교 문제에 대해 편향적인 태도를 취해서 문제가 많았습니다. 조사를 해 보니 40여 건이 있었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종교편향이 유독 심하다는 겁니까.
 
  “우리 헌법에는 엄연히 종교의 자유가 있습니다. 특정 종교를 믿는 분이 대통령이 됐다고 해서 편향적인 발언이나 정책을 펴서는 안되는 거죠. 그런데 이명박 정부 내에서 공직자들의 종교편향 발언이 자꾸 나오니까 불교계가 문제를 제기한 것입니다.”
 
  ―정부 측과 불교계의 갈등 문제는 해소된 겁니까.
 
  “당시 대통령도 유감을 표시했고, 불교도대회 후 정부 관리들이 불교계를 대하는 게 많이 달라졌습니다. 김영삼 대통령부터 쌓여 온 종교 편향 사례에 대해 불교계가 일치단결해서 일종의 경종을 울린 것이죠. 아직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지만 이전보다 공무원들이 종교 문제에 대해 신중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은 확실합니다.”
 
  ―1990년대 들어 경실련 공동대표도 맡는 등 활발하게 사회운동에 참여했는데 그런 활동을 통해 종교인으로서 어떤 깨달음을 얻으셨습니까.
 
  “내가 ‘10·27 법란’ 때 총무원장 사표를 내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외국에 가게 됐습니다. 3년 동안 미국을 다녀 보았고, 유럽, 일본 등을 거쳐 동남아도 5개월간 여행을 했습니다. 당시 성지순례를 겸해서 미얀마, 인도, 스리랑카 등지를 돌아봤습니다. 스리랑카의 경우 승려 중에 교육받은 엘리트들이 많아 지역의 주지가 지역사회의 지도자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승려들 대부분이 대처승이었는데 이들은 가족을 데리고 있으면서 복지사업, 의료사업, 양로원, 고아원 등 다양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6·25 전쟁 겪으며 出家 결심
 
   ―동남아 승려들의 활동을 보면서 사회참여를 결심하게 된 거군요.
 
  “네. 동남아를 돌면서 한국 불교는 사회참여가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한국 불교는 수행을 통해 깨닫기 전에는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 승려의 본분이 아니라고 보고 있습니다. 실제로 대승불교 利他(이타: 자기가 얻은 공덕과 이익을 다른 이에게 베풀어 주며 중생을 구제하는 일)는 일종의 ‘자기 이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행을 통해 자신이 깨달은 후 중생을 구제하고, 타인의 고통을 덜어 주고 즐거움을 주는 것이죠. 그러니 중생구제는 간과하고 수행에 중점을 두는 것을 올바른 승려의 모습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큽니다. 이렇게 동남아 등지를 다니며 불교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느낀 점이 많아서 활발한 사회 참여를 하게 됐습니다.”
 
  송월주 스님은 요즘 자신이 2003년 설립한 국제개발구호 NGO인 지구촌공생회 일에 전념하고 있다. 지구촌공생회는 현재 캄보디아, 라오스, 몽골, 미얀마, 네팔, 스리랑카, 케냐 등 7개국에 지부를 두고 식수 공급을 위한 ‘생명의 우물 사업’, 문맹퇴치를 위한 ‘어린이 교육 지원’ 등을 펼치고 있다.
 
  “지구상에는 하루에 1달러로 살고 있는 사람이 12억명, 2달러로 연명하는 사람이 26억명입니다. 식수난을 겪고 있는 사람이 10억명, 전기 혜택을 못 받는 사람도 16억명입니다. 우리에게는 이처럼 풍요로운 지구에서 나라 간의 빈곤의 차이가 너무 많이 납니다.”
 
  ―구호 활동을 하다 보면 우리나라 국민들이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겠네요.
 
  “그렇습니다. 제가 돕는 나라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빈곤은 빈곤도 아니죠. 그렇더라도 우리 주변에 있는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생명의 가치는 우리나라 사람이나 캄보디아 사람이나 똑같다는 것을 알고 빈곤퇴치에 모두가 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出家(출가)하게 된 특별한 동기가 있습니까.
 
  “정읍농고를 다닐 때 6·25사변이 났습니다. 동족끼리 죽이고 나라는 초토화됐습니다. 저는 전쟁을 겪으면서 서로 싸우지 않고 평화로운 통일국가에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초등학교 동창이 있었는데, 그 친구가 승려가 되었습니다. 그 친구 때문에 속리산 법주사에 갔는데 승려들이 그렇게 친절하고, 절이 조용하고, 너무나 평화로운 모습에 반해서 저도 승려가 되었습니다. 막상 승려의 길에 들어서 보니 거기도 용도 있고 뱀도 있는 龍蛇混雜(용사혼잡)이었죠. 그 속에서 불교 공부해서 승려가 된 건데 승려생활에 보람을 느낍니다.”
 
송월주 스님이 직접 쓴 글씨 귀일심원요익중생. 본래의 청정한 마음으로 돌아가 중생에게 풍요로운 이익을 준다는 원효대사의 말이다. 송월주 스님은 봉사활동에 임하는 자신의 마음이 담긴 글이라고 했다.
 
  승려들이 결혼하지 않는 이유
 
  ―6·15남북공동선언 지지 등 정치적인 발언도 했었는데요.
 
  “승려들이 자기 성불만 할 것이 아니라, 대중의 성불에도 관심을 가지고, 중생 구제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생각에서였죠. 그러다 보니 NGO 활동도 하게 되고, 시대상황에 따라 정치적인 발언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제 본심은 이 땅에 더불어 살고 있는 중생을 구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타라고 하는 자비를 실천하는 것이 승려의 본분입니다.”
 
  ―인간은 왜 자비를 베풀어야 하는 겁니까.
 
  “원효스님 말씀에 ‘歸一心源 饒益衆生(귀일심원 요익중생)’이란 말이 있는데 ‘본래의 청정한 마음으로 돌아가면 중생에게 풍요로운 이익을 준다’는 뜻으로 ‘처음 마음으로 돌아가 지혜를 얻으라. 그리고 자비를 실천하라’는 말입니다. ‘천지가 나와 한뿌리이고, 만물이 나와 한몸’입니다. 삼라만상이 한몸이기 때문에 서로 자비를 베풀고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출가 후 속세의 가족은 일절 만나지 않았습니까.
 
  “만나죠. 찾아오기도 하고요.”
 
  ―불교인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겁니까.
 
  “하나하나가 깨달아서 얻으라는 거죠. 더불어 진리를 전달해서 올바른 가치관을 갖고 살도록 인도해야 합니다. 나도 깨닫고 다른 사람도 깨닫도록 해야 합니다. 물질적으로 육체의 고통인 배고픔을 덜어줘야 할 뿐만 아니라 올바른 진리관을 갖고 살도록 해줘야 합니다.”
 
  ―왜 승려들은 결혼을 하지 않는 겁니까.
 
  “결혼을 하면 가족 부양책임을 가지게 되고 이성적인 관계에 빠지면 색심에 빠지게 돼 수양을 못 하잖아요. ‘자기를 버리고 오직 중생을 위해 살라. 그러기 위해서 독신수행을 하라’는 거죠.”
 
  ―꼭 결혼을 하지 말아야 올바른 수행이 되는 건가요. 결혼하는 불교 종파도 있잖습니까.
 
  “가족생활을 하면서도 자기의 일을 인격적으로 지키고, 자기 관리에 철저하고 중생을 위해서 공헌하고 기여하는 분들이 물론 있죠. 문제는 그렇게 하기 힘들다는 거예요. 중생을 위해 전적으로 보시를 하기가 힘들죠. 속정에 빠지지 말고 전적으로 독신수행하고 중생을 구제하라는 거죠.”
 
 
  出家 초기에는 고뇌와 회의도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십니까.
 
  “잠을 제대로 자요. 보통 밤 9시에 자서 새벽 3시에 일어납니다. 밤 12시에 자게 되면 6시에 일어납니다. 반드시 6~7시간은 잡니다. 저녁에 못 자면 낮에라도 자죠. 산책도 하고 30분 동안 반신욕도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부질없는 번뇌와 망상을 버려야 한다는 겁니다. 일을 안 하면 안됩니다. 일을 해야 항상 의욕이 생기잖아요. 매일 신문 열심히 보고 TV는 시사 관련 뉴스나 스포츠 조금 보다 말아요. 시사토론도 봅니다.”
 
  ―드라마는 시청 안 합니까.
 
  “10년 전까지만 해도 역사물은 봤는데 지금은 안 봐요. 드라마가 너무 퇴폐적이고 폭력적이 됐어요. 청소년 층에 유해하고 우리 사회 전반에 불건전한 분위기를 형성케 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승려의 길에 들어선 걸 후회한 적은 없나요?
 
  “처음 10년 동안은 고뇌와 회의도 있었어요. 세속적인 욕망 같은 것들이 마음에 일어나지만 그때그때 정리를 잘했어요. ‘10년이 지나서도 내가 가는 길에 확신이 서면 오로지 이 길을 위해 살아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그 고뇌와 회의의 10년 동안 장가를 가고 싶다는 생각도 했습니까.
 
  “세속적인 생각이 들긴 했었는데 그렇게 했다면 속가도 불가도 다 실패한 것이에요. 도를 구하기 위해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서 승려생활을 했는데 그런 마음을 가지면 안되지요. 아직도 부족하고 크게 내세울 공적은 없지만 지금도 나는 매사에 새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일을 합니다. 희망이 있어야 노력해야겠다는 열정이 생기잖아요.”⊙
 
  사진 : 서경리
 

  ▣ 10·27법란이란?
 
  제5공화국 출범을 앞두고 집권 新(신)군부 세력이 불교계 정화 추진을 명분으로 일으킨 사건.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 산하 합동수사단은 불교계 정화를 추진한다는 계획하에, 1980년 10월 27일 조계종 승려 등 불교계 인사 153명을 강제 연행하고, 전국의 사찰과 암자 5731곳을 국군과 경찰 병력 3만2000여 명을 투입해 수색했다. 이때 무차별 폭력과 고문이 자행됐고 일부는 삼청교육대로 끌려갔다.
 
  신군부가 이 사건을 일으킨 동기는 당시 조계종 총무원장이었던 송월주 스님이 전두환 지지 성명에 반대하고 5·18 광주 민주화운동 현장을 방문하여 성금을 전달하는 등 신군부에 밉보인 것이 원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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