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진진 美術史 강좌]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태어난 낭만주의 미술

  • : 박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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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一浩
⊙ 1959년 충남 부여 출생.
⊙ 대전고 졸업. 서울대 미학과 졸업. 同 대학원 문학 석사, 철학 박사.
⊙ 충남대 조소과 교수, 제2대 대전시립미술관 관장, 제5회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 전시총감독,
    현대미술학회 회장 역임.
⊙ 저서: <미술은 언어다> <감성으로 보고 이성으로 읽는다> <예술의 길 문화의 길>
    <예술과 상징, 상징형식> 등.
⊙ 상훈: 동아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 당선(1995).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은 사회 및 사람들의 의식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봉건제도가 붕괴되고, 자유·평등을 내세우는 근대 시민사회로의 이행을 위한 혁명들이 줄을 이었다.
 
  사람들은 혁명에 참여하고 사회변화를 가져옴으로써 스스로가 공동체의 운명을 좌우하는 주체라는 의식을 갖게 됐다. 봉건 영주 밑에 예속됐던 신분으로부터 벗어나 자아의 능력과 권리를 확인하게 됐고, 그것을 실천하려 했다. 이런 상황 아래서 사람들의 현실에 대한 관심도 증대됐다.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 미술은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서로 다른 두 개의 양식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중 하나인 新(신)고전주의는 프랑스 대혁명으로 촉발된 혁명의 연속 및 세기말의 소용돌이와 혼란을 예술을 통해 정화시키고자 한 시도였다. 절제와 균형을 바탕으로 하는 고대의 형식과 고대 그리스의 이상적인 美(미)의 이념을 실현하고자 했고, 그것을 통해 예술뿐만 아니라 사회까지도 정화한다는 윤리적인 성격을 갖고 있었다.
 
  이에 반해 낭만주의는 프랑스 대혁명 이후의 새로운 인간관과 현실에 대한 관심, 그리고 변화를 갈망하는 시대적 흐름 속에 담긴 감성적 측면을 예술적으로 전개시킨 움직임이었다.
 
[그림 1]은 신고전주의의 대표적 작가인 자크 루이 다비드(1748-1825)의 ‘마라의 죽음’이라는 작품이다. 다비드는 루이 16세의 실정에 반기를 들고 조직된 국민의회의 구성원이었고, 공포정치를 펼쳤던 로베스피에르의 친구였다. 이 작품은 혁명기의 예술감독이었던 그가 혁명의 정당성을 전파하기 위해 그린 그림이다.
 
[그림 1] 자크 루이 다비드, 마라의 죽음, 1793년, 165.1×128.3cm, 브뤼셀 왕립미술관.
  이 작품은 로베스피에르의 政敵(정적)이자 민중의 친구로 불린 마라가 목욕 중에 암살당한 장면인데, 마치 목욕을 하면서 잠이 든 것처럼 평온하게 묘사돼 있다. 배경은 검은 갈색 단색조로 처리되어 있고, 작가의 모든 개인적 감정을 배제한 채 차갑고 냉정하게 표현하려 애쓴 듯하다.
 
  어떻게 보면 경직되고 엄숙해 보이기까지 한 표정에서 비극적 장면을 고전주의의 절제된 형식과 분위기로 나타내려 했음이 엿보인다. 다비드의 이 그림은 많은 복사본이 제작 배포됐으며, 혁명의 반대세력에 대한 경고라는 본래의 목적을 위해 쓰였다고 전해진다.
 
[그림 2]는 낭만주의 작품으로 너무 잘 알려진 외젠 들라크루아(1798-1863)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다. 나폴레옹이 몰락하고 난 후 봉건왕조로 복귀하려는 움직임에 반대해 민중이 봉기한 ‘7월혁명’(1830년 7월 파리에서 일어난 부르주아 혁명) 당시 상황을 묘사한 그림이다.
 
[그림 2] 외젠 들라크루아,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1830년, 260×325cm, 파리 루브르 박물관.
  그림 전면에는 혁명 과정에 희생된 사람들의 시체가 어지럽게 널려 있다. 그 뒤로 가슴을 반쯤 드러낸 채 민중을 이끌고 있는 여인의 모습과 혁명의 분위기에 취해 권총을 흔들고 있는 소년의 모습이 보인다. 그 뒤에 장총을 들고 모자를 쓴 들라크루아 자신의 모습을 그려 넣었다. 함성을 지르며 뒤따르는 무수한 민중의 모습은 윤곽을 알아볼 수 없는 붓 터치로 묘사돼 있다.
 
  남자의 장총, 여인이 들고 있는 깃발, 그리고 소년의 권총이 이루는 각도가 사선 형태로 되어 있어 앞을 향해 나아가려는 움직임을 암시하고 있다. 색조 구성에 있어서도 강한 明暗(명암) 대비를 보임으로써 바로크 미술에서 보인 작가의 열정과 극적 분위기를 느낄 수 있게 한다.
 
 
  이성과 규범을 중시한 다비드
 
  들라크루아는 이 그림을 통해서 자유를 향한 이상주의자의 열정을 담아내려 했다. 그리고 사람들로 하여금 행동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분위기를 자아내려 했던 것처럼 보인다.
 
  똑같이 혁명이라는 주제를 담고 있지만, 위 두 그림의 표현 방식은 이처럼 다르다. 하나는 차갑고 냉정하리만큼 절제되어 있고, 다른 하나는 감정의 분출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이는 혁명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관점과 인식의 차이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다비드는 혁명의 주체세력에 가담해 있었고, 혁명을 통해 미래의 이상사회가 건설될 수 있다는 믿음을 전달하려 했다. 이에 반해 들라크루아는 민중의 편에 서 있었으며, 봉건왕조의 권위주의적 사회체제나 혁명 주체 세력의 강압적인 방식에 대한 반발을 그림에 담아내려 했다. 따라서 이들이 표현해낸 방식도 서로 다를 수밖에 없었다. 전자는 신고전주의라는 이성적 방식으로, 후자는 낭만주의라는 감성적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신고전주의는 정확한 시각적 사실을 중시하고, 知的(지적)인 이해를 전제로 선과 데생을 강조한다. 색을 선과 형태를 강조하는 장식적이고 부수적인 것으로 간주했다. 이에 비해 낭만주의는 정확한 사실의 묘사보다 작가의 느낌이나 감정을 중시하고, 감성적 이해를 전제로 하는 색을 일차적인 것으로 간주했다. 그림이란 작가의 개성에 따라 선택된 색의 조화를 통해 전체효과를 내고,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라는 점에서다. 이러한 특징은 다음 두 개의 작품에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림 3]은 다비드의 ‘호라티우스의 서약’이다. 이 작품은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기 5년 전에 그려졌다. 그렇지만 로마 공화정 시대의 내용을 담고 있고, 형식적 측면에서도 혁명의 이상을 구현하고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신고전주의 작품들의 교과서처럼 여겨진 그림이다.
 
[그림 3] 자크 루이 다비드, 호라티우스의 서약, 1784년, 330×425cm, 파리 루브르박물관.
  로마의 호라티우스 집안과 알바라는 나라의 큐라티우스 집안이 혼인을 통해 사돈 관계를 맺었다. 그런데 그 후 로마와 알바 간에 전쟁이 일어나자, 늙은 호라티우스가 전쟁터에 나가는 세 아들을 모아 놓고 로마의 명예를 드높이고 오라는 서약을 받고 있는 장면이다.
 
  오른쪽에 있는 여인들은 슬픔에 잠겨 있다. 그 전쟁이 공적인 의미를 갖기보다 집안 간의 싸움이라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이다. 형식적 측면에서는 중앙의 호라티우스를 중심으로 인물들이 좌우 대칭을 이루고 있다. 그림의 중심은 칼 세 자루를 들고 있는 호라티우스의 손에서 형성되고, 각각의 인물들은 뚜렷한 윤곽선에 의해 명확하게 표현돼 있다.
 
  그림 속의 모든 구성요소도 셋이라는 숫자와 그에 따른 양상들로 정돈돼 있음을 볼 수 있다. 인물들이 세 그룹으로 이루어져 있고, 형제도 여인도 셋이고, 칼도 세 자루다.
 
 
  감성과 개성을 강조한 제리코
 
  中景(중경)에 있는 세 개의 아치는 좌우 대칭으로 되어 있다. 그림을 구성하는 공간적 차원도 인물들이 놓인 前景(전경), 아치로 이루어진 중경, 그리고 그 뒤의 배경이라는 세 개의 차원으로 나란히 배열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그림 속의 모든 구성요소가 절제된 테크닉으로 표현돼 있어, 아름다움이란 고상하고 진지한 생각을 절제된 형식으로 명료하게 표현하는 것이라는 신고전주의의 규범을 읽어낼 수 있다.
 
[그림 4]는 최초의 낭만주의 작품으로 여겨지는 테오도르 제리코(1791-1824)의 ‘메두사의 뗏목’이다. 이 그림에서는 다비드 작품과는 다른 활력과 극적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이 작품은 1816년 프랑스 관리들을 식민지인 아프리카 세네갈로 운송하던 프리깃함 메두사호가 난파된 사건을 묘사하고 있다. 사건 당시 350명이 죽고 15명만이 살아남아 구원을 요청하는 아비규환의 현장을 상상력을 발휘하여 그린 작품이다.
 
[그림 4] 테오도르 제리코, 메두사의 뗏목, 1819년, 491×716cm, 파리 루브르 박물관.
  이 그림으로 제리코는 뗏목을 만들어 구원을 요청했던 당시 사람들의 고통과 공포를 묘사하고, 그 사건에 대한 자신의 분노를 표출해 정부를 비판하고자 했다. 작품 구성에 있어서도 절제된 형식이나 규범보다 작가의 느낌을 강조하고 있고, 혁신적인 방법들로 가득 채워 놓았다. 거대한 사선 구도가 그림의 왼쪽 아래에서 오른쪽 위로 공간을 가로질러 휩쓸고 올라가고 있어 격렬한 감정의 흐름과 운동감을 느끼게 한다.
 
  격동하는 파도에 둘러싸인 뗏목 위의 사람들이 위를 향해 솟아오르고 있으며, 그 정점에 흑인을 위치시켜 놓았다. 문명화나 이성적 추론이 자연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을 말살한다는 관점을 강조하기 위해, 즉 ‘타락한 서구 문명’과 ‘고상한 야만’을 대비시킨 루소의 낭만주의적 이론에 근거를 두고 흑인을 정점에 두었다.
 
  역시 선이나 형태보다 색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다. 색조 구성에 있어서도 어둠침침한 갈색 톤이 전체적으로 극렬한 명암 대비를 만들어 내고 있어 절망적 순간의 분위기와 작가의 분노를 잘 표현하고 있다.
 
 
  육감적이고 감각적인 女體美
 
  제리코는 33세의 나이에 생을 달리했고, 그 뒤를 이은 들라크루아에 의해서 낭만주의 그림에 관한 이론이 정립됐다. 들라크루아는 미술 창작은 눈보다 마음이나 느낌 그리고 정신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정확한 사실보다 대상을 어떻게 느끼느냐가 더 중요하고, 아름다움이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예술가들의 느낌에 따른 선택과 방법에 의해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들라크루아는 작품 구성에 있어 두 개의 대립된 요인들(비극 속에서 시적 감흥, 추에서 미의 추구 등)을 사용하여 극적 효과를 불러일으키려 했다.
 
  이러한 들라크루아의 작품 세계와 대립을 보였던 신고전주의의 대표적 작가는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1780-1867)였다. 다비드의 제자인 그는 색보다는 선과 데생을 강조했고, 작가의 느낌보다는 정형화된 규범적 형식을 중시하면서도 시대의 감성적 분위기도 함께 나타내려 했다.
 
  앵그르가 보여준 여인의 裸身(나신)은 차갑고 무감각한 고전적 인체묘사에 그치지 않았다. 육감적이고 감각적인 女體美(여체미)를 추구했다. 그는 터키나 모로코와 같은 동방에서 소재를 구하기도 했는데, 이런 점들이 스승이었던 다비드와 달리 그가 시대적 낭만성을 추구했다는 사실을 시사해 준다.
 
[그림 5]는 앵그르의 초기 대표작인 ‘발팽송의 욕녀’다. 이 작품 속 여인은 간결하면서도 평온한 포즈를 취하고 있어 고전주의적 분위기를 풍긴다. 다비드의 선들이 강하고 견고한 느낌을 준다면, 앵그르의 이 작품에서는 우아하고 유려한 선들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볼 수 있다. 또 가파른 어깨선 및 둔탁한 허리와 히프가 해부학적 정확성을 바탕으로 한 묘사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그림 5]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발팽송의 욕녀, 1808년, 146×97cm, 파리 루브르 박물관.
 
  ‘차갑게 얼어붙은 낭만주의자’ 앵그르
 
[그림 6]은 바이런의 시를 그림으로 나타낸 들라크루아의 ‘사르다나 팔르스의 죽음’이다. 이 작품은 윤곽선이나 여체의 묘사에서 앵그르의 점잖은 이탈을 훨씬 넘어서고 있다. 곧 정복당할 운명에 처해 있는 아시리아 군주가 전에 노획했던 보물들과 애첩을 쌓아 놓고 불을 지르려 한다. 모든 것이 곧 불길에 휩싸일 운명에 처해 있으며, 여인들의 격렬한 포즈와 흐트러진 자세에서 비극적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그림 6] 외젠 들라크루아, 사르다나 팔르스의 죽음, 1827년, 390×488cm, 파리 루브르 박물관.
  조형적 측면에서 앵그르의 선이 유려한 곡선의 흐름이라면, 들라크루아의 선은 거친 파도의 흐름과 같다. 또한 색조 구성이 앵그르처럼 단조롭지 않고 윤택해 풍부한 감촉을 느끼게 한다.
 
[그림 7]은 앵그르의 말년 작품인 ‘터키의 욕탕’이다. 이 작품은 들라크루아의 표현 방식과는 다른 또 하나의 감성적 경향을 느끼게 한다. 앵그르의 작품들이 말년에 와서는 시대의 감성적 분위기로 기울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그림 7]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터키의 욕탕, 1863년, 직경 108cm, 파리 루브르 박물관.
  전면에 등을 보이고 있는 여인의 모습은 ‘발팽송의 욕녀’에 등장했던 여체의 모습을 원형으로 한다. 선을 중시하면서 명확한 윤곽선을 바탕으로 한 묘사는 아직도 신고전주의의 대가다운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그렇지만 관능적인 여체들의 현란하고 난삽한 묘사를 담고 있고, 산만하게 흩어져 있는 여인들이 목욕하는 모습을 좀 더 육감적으로 표현해 내고 있다.
 
  여인의 포즈와 묘사 방식을 하나의 규범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고전주의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감각적인 여체미에 대한 관심과 표현이 농도를 더해가고 있다는 점에서는 감성적 경향을 중시한 낭만주의와 접점을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미술사학자인 L. 벤추리는 앵그르의 말년 작품에 나타나는 이런 특징에 주목, 그를 ‘차갑게 얼어붙은 낭만주의자’라 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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