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이야기] 국립 오페라단 <사랑의 묘약> 관람기

신예 가수들의 가창력 돋보인 벨 칸토 오페라의 名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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姜圭炯 명지대 기록대학원 교수
⊙ 서울 출생.
⊙ 연세대 사학과 졸업, 美 인디애나대 역사학 석사, 오하이오대 역사학 박사.
⊙ 現 명지대 기록대학원 교수,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위원, 전 KBS 교향악단 운영위원.
⊙ 저서: <21세기 첫 십년의 기록> <21세기에서 문화와 예술을 바라보다>.
영화 <귀여운 여인>(Pretty Woman)에서 남자 주인공 리처드 기어는 여주인공 줄리아 로버츠에게 “한번 오페라를 보고 좋아지면 평생 오페라를 사랑하게 된다”고 얘기한다.
 
  한국에도 정신과 의사나 알아주는 증권 맨으로 살다가 오페라에 몰입해서 자기 직업을 버리고 ‘오페라 전문가’로 변신한 사람이 있다. 1958년 제1회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우승한 스타 피아니스트 반 클라이번은 피아노보다 오페라를 더 좋아해서, “오페라 무대의 단역 兵士(병사)역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확실히 오페라에는 사람을 미치게 하는 요소가 있다. 오페라는 무대·의상·연극·춤에 사람 목소리까지 더해지는 종합예술이다.
 
  사람의 목소리는 모든 악기 중 가장 아름다운 악기(물론 사람 나름이지만)일 뿐 아니라, 가장 다양한 악기다. 오페라에서는 사람의 목소리 없이 오케스트라만 연주되는 파트도 있지만 사람 목소리라는 ‘악기’가 독창, 2중창, 3중창, 4중창, 5중창, 합창이라는 형태로 오케스트라와 어우러지니 어찌 아름답지 않겠는가?
 
  오페라는 드라마틱하다. 인간의 喜怒哀樂(희로애락)이 극단적으로 표출된다. 마치 소포클레스나 에우리피데스 같은 古代(고대) 그리스 비극작가들의 작품들처럼 인간 감성이 무한히 넘쳐난다.
 
  오페라는 바로크 시대에 태어났지만 그 전성기는 낭만주의 시대였다. 틀에서 벗어난 자기표현과 개성에 몰두한 낭만주의 시대의 분위기와 오페라는 ‘찰떡궁합’이었다. 당시 거세게 일던 민족주의와 오페라가 결합해 사람의 마음을 휘젓는 걸작들이 탄생하기도 했다.
 
  이런 성향이 커져 황당무계한 비현실적 내용이나 비윤리적 내용이 주를 이루기도 했다. ‘막장 오페라’라고 흔히 얘기되듯이, 오페라에는 시기·질투·분노·복수·정욕·열정·살인·강간·납치·사기·불륜 같은 인간 감정과 행동의 극단적인 분출이 종종 나타난다.
 
  이런 요소는 인간의 마음을 황폐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어떤 사람은 “오페라의 종주국인 이탈리아의 유아 납치율이 제일 높은 것과 오페라의 인기가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있다”고 한다. 여성의 평화적인 성향을 강조하는 극단적 페미니즘(feminism)을 비판할 때 오페라에 나오는 여성 캐릭터들의 잔인함과 사악함을 예로 들기도 한다.
 
 
  뚱뚱한 몸매, 날카로운 성격의 성악가들
 
  오페라는 매우 비싸고 어려운 예술이다. 무대장치, 의상에 들어가는 돈은 물론이고 일급 성악가·연주자·지휘자를 구하려면 천문학적 액수가 들어간다.
 
  마이크 없이 그 큰 오페라 하우스나 음악당을 울리는 聲量(성량)을 갖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특히 오페라의 주역을 맡는 주역 소프라노들은 청중의 환호와 찬사를 한 몸에 받기에 디바(Diva, 여신)란 애칭을 갖는다.
 
  이들은 타고난 ‘소리통’이 좋아야 하기에 대개 넉넉한 체구를 가지고 있다. 영어에 “until the fat lady sings”라는 표현은 “주역 여가수가 노래 부르기 전에는 끝난 것이 아니다”라는 뜻으로, 의역하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의미다. 대개 디바들은 뚱뚱한 체구를 가지고 있는 데서 나온 숙어다.
 
  아주 드물게 빼어난 외모를 가진 디바들도 나타난다. 요즘 인기 절정을 달리는 안젤라 게오르규나 안나 네트렙코 같은 소프라노가 그들이다. 외모와 실력 모두 출중한 이들은 큰 인기와 함께 엄청난 개런티를 보장받는다.
 
  디바들은 물론이고 다른 성악가들도 일반인이 상상하기 힘든 스트레스를 받고 산다. 몸이 악기라 몸, 특히 목을 잘 다스려야 한다. 1960년대의 名(명)테너 프랑코 코렐리는 평소에도 조용조용 얘기하면서 성대를 보호했다고 한다.
 
  이들은 공연에서 실수할 경우 쏟아질 비난 같은 것에 매우 민감하기에 성격이 날카롭게 될 가능성이 높다. 사람들은 자기를 떠받들고 환호하는 반면 공연과 건강에 대한 스트레스는 매우 크기에, 유명 성악가들은 대개 자기중심적이고, 까다롭고 별나기로 유명하다.
 
  오페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디바였던 마리아 칼라스는 표독스런 성격으로 유명했다. 20세기 전반기의 가장 위대한 테너였던 엔리코 카루소도 ‘폭군’이라 불릴 정도로 난폭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얼마 전 來韓(내한)했던 제시 노먼은 넉넉한 체구와는 달리 계약서상에 온갖 까다로운 조건을 붙이기로 유명하다. 캐슬린 배틀은 거만한 성격 때문에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에서 해고된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가끔가다 성격이 좋은 디바가 나타나면 해외토픽감이 된다. 지금 전성기를 달리는 르네 플레밍이 그런 경우다. 그는 출중한 능력과 더불어 온화한 성품과 우아한 자태까지 갖고 있어 종종 기사거리가 된다. <타임>지는 “인생이 공평하지 않다는 것은 르네 플레밍을 보면 알 수 있다”라고까지 언급했다.
 
실력과 미모로 절정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안젤라 게오르규(왼쪽)와 안나 네트렙코.
 
  벨 칸토 오페라
 
출중한 실력과 온화한 성품, 우아한 자태를 자랑하는 르네 플레밍.
  2009년 9월 26일부터 30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 극장에서 공연된 가에타노 도니제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은 ‘막장 오페라’가 아닌 따듯하고 사랑스런 오페라다. 결말도 해피 엔딩이고 내용도 도덕적이다.
 
  작년에 취임한 예술감독 이소영이 이끄는 국립오페라단은 2008년에는 모차르트의 작품(<마술피리>, <피가로의 결혼>)에 집중하더니 올해는 낭만주의 시대 이탈리아의 벨 칸토(Bel Canto) 오페라에 승부를 걸었다.
 
  ‘아름다운 노래’(bel canto)라는 말 그대로 벨 칸토 오페라는 18~19세기 초기 이탈리아의 아름답고 화려한 唱法(창법) 위주의 오페라다. 아름다운 선율과 초절기교를 생명으로 하는 벨 칸토 오페라는 로시니, 도니제티, 벨리니라는 세 사람에 의해 절정을 맞게 된다.
 
  희대의 천재였던 조아키노 로시니는 당대 제일의 인기 작곡가로 <세빌리아의 이발사> <신데렐라> 같은 오페라 부파(Opera Buffa, 희극 오페라)에 능했던 多作(다작)의 작곡가였다.
 
  로시니보다 몇 살 아래의 도니제티는 부파와 비극 오페라에 능한 작곡가였다. <람메르모어의 루치아> <라 파보리타> 같은 비극 걸작과 <사랑의 묘약> <돈 파스콸레> 같은 부파의 걸작들을 두루 작곡했다.
 
  도니제티보다 몇 살 어린 빈센초 벨리니는 34세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했지만 <노르마> <청교도>와 같은 역사에 남는 유장하고 진지한 걸작을 작곡했다.
 
  그동안 국립오페라단을 어려움에 처하게 했던 합창단 문제가 일단락되고 올 6월 말 국립 오페라단이 야심차게 올렸던 <노르마> 공연은 여러모로 대성공이었다. 박스오피스의 성공은 차치하고라도, 21년 전인 1988년에 이규도를 타이틀 롤로 내세운 공연 이후 처음으로 무대에 다시 올린 어려운 대작을 훌륭하게 요리해 냈다.
 
  A팀의 노르마였던 김영미의 능숙함도 좋았지만, B팀 노르마였던 신예 박현주의 가창은 현기증이 날 정도로 놀라웠다. 칼라스의 금속성 목소리를 줄여놓은 듯한 카리스마와 표현력, 탁월한 연기력은 앞으로의 활동에 기대를 하기에 충분했다. 그녀는 훌륭한 토스카(푸치니의 <토스카> 중)와 비올레타(베르디의 <라트라비아타> 중)가 될 자질을 보여줬다. 아울러 사랑스럽고 젊은 메조 배역인 아달지사를 정감 있게 노래한 A팀의 양송미의 발견도 수확이었다.
 
 
  <사랑의 묘약>에 유럽파 총출동
 
  두 번째 벨 칸토 공연이 바로 이번의 <사랑의 묘약>이었다. 사모하는 동네 처녀 아디나의 환심을 사기 위해 <사랑의 묘약> (실제로는 싸구려 포도주)을 떠돌이 가짜 약장수 둘카마라에게서 사는 마을의 어리바리한 청년 네모리노. 그를 둘러싼 뒤죽박죽 스토리에 기반한 이 유쾌한 오페라는 도니제티가 2주 만에 완성한 오페라 부파의 걸작이다.
 
  네모리노가 부유한 삼촌의 사망으로 엄청난 유산을 상속받게 된 것을 안 동네 처녀들의 애정공세에 영문을 모르고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묘약의 ‘효과’를 확신하는 장면은 여러 번 봐도 배꼽을 잡게 하는 장면이다.
 
  이 공연의 특징은 현재 유럽 최정상의 바로크 소프라노로 떠오른 임선혜를 필두로 빈 국립오페라단 등에서 현역으로 맹활약하는 정호윤·심인성·강형규 등 일급 유럽파가 총출동한 것이었다. 각자 자기 역할에 딱 어울리는 호연을 펼쳤다.
 
  임선혜는 순도 높은 美聲(미성)으로 사랑스런 아디나를 아쉬움 없이 표현해 냈다. 바로크 시대뿐 아니라 벨 칸토 영역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음을 보여준 절창이었다.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인 연기력도 특기할 만했다. 더블 캐스팅 없이 4일 연속으로 아디나역을 부른 것도 주목할 일이다.
 
  능글맞게 약장수를 노래한 심인성, 네모리노의 戀敵(연적)인 벨코레를 자신감 넘치게 표현한 강형규는 적절한 캐스팅이었다. 노르마에서 박현주가 새로운 발견이었다면 이번 공연에서는 B팀에서 네모리노를 노래한 조정기가 新星(신성)으로 떠올랐다. 젊은 나이임에도 결이 고운 리리코-레제로의 진수를 보여줌으로써 앞으로 벨 칸토 테너 역할, 특히 로시니 테너로서의 활약을 예견케 했다. 국립합창단의 합창은 모범적이라 할 만큼 충실했다.
 
 
  이소영 표 오페라의 마력
 
탁월한 연출력을 보여주고 있는 이소영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
  참고로 <사랑의 묘약>은 레코딩 디스코그라피에서 불운한 작품이었다. 소위 얘기하는 결정판적인 레코딩이 존재하지 않는 작품 중 하나였다. 파바로티와 서덜랜드가 공연한 1970년대 리처드 보닝 판(Decca/London)이 그나마 대중의 인기를 얻었던 판이었다. 파바로티가 이 녹음에서 부르는 ‘남 몰래 흐르는 눈물’은 레코딩 역사에 길이 남는 절창이리라. 파바로티는 1950년대에 주로 활약했던 페루치오 탈리아비니(추억의 명화 <물망초>에서 주인공을 열연한 배우) 이후 네모리노를 가장 잘 부른 테너일 것이다.
 
  그런데 영상물의 시대가 오면서 <사랑의 묘약>에서 운 좋게도 빼어난 연주들이 쏟아져 나왔다. 1970~80년대 네모리노를 가장 잘 부른 파바로티의 두 가지 공연을 추천하고 싶다. 주디스 블레겐과 협연한 구판(레시뇨 지휘/ Decca)과, 배틀과 협연한 메틀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의 신판(레바인 지휘/ DG) 둘 다 파바로티의 매력을 충분히 살린 명연이다. 화질은 신판 쪽이 낫다.
 
  현존 최고 미녀 소프라노인 안젤라 게오르규(리용 오페라 실황/ Decca)와 안나 네트렙코(빈 국립극장 실황/ Virgin)는 각각 로베르토 알라냐와 롤란도 비야손이라는 현존 최상의 테너 파트너와 함께 만족할 만한 <사랑의 묘약>을 선사한다.
 
  다시 이번 공연으로 돌아가 얘기하자면, 연출을 담당한 예술감독 이소영의 해석은 파격적이었다. 19세기 유럽이 아니라 미지의 행성으로 무대를 옮긴 이소영의 창의적 발상은 신선했다. 무대를 우주적 스케일로 가져가며 어떤 시대 어떤 곳에서건 사랑의 본질이 동일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로 해석됐다.
 
  단 요즘 老眼(노안)이 심해지면서 시력에 문제를 갖게 된 필자에게는 우주를 표현해 내기 위해 침침하게 처리된 무대가 잘 안 보이는 문제가 생겼다. 특히 객석 뒤편에서 감상한 첫날 공연에서 그런 아쉬움이 더 컸다. 타임앙상블의 오케스트라도 깔끔하긴 했지만 압도적인 유려함을 선사할 역량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이런 아쉬움은 부차적인 문제였다. 전체적으로 도니제티의 걸작 부파인 <사랑의 묘약>을 음악적으로 감상하고 이채로운 연출로 즐기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재치 있는 대사 意譯(의역)도 흥미를 돋우는 요소였다. 상쾌한 느낌이 감도는 好演(호연)이었다고 총평하고 싶다.
 
  언제나 수준 이상의 연출력을 보이며 ‘이소영 표 오페라’라는 브랜드를 갖게 된 그의 미래는 한국오페라 연출의 미래이기도 하다.
 
  내년 국립오페라단은 오페라 세리아(Opera Seria. 18세기에 주로 유행했던 진지한 오페라)의 최고 걸작인 모차르트의 <이도메네오>(원제는 <크레타의 왕 이도메네오>)와 오페라의 ‘개혁자’인 크리스토프 빌리발트 글룩(오페라 역사에서 사실적인 극의 전개와 독창, 중창, 합창, 오케스트라가 잘 어우러진 구성을 추구한 개혁자)의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같은 고음악 오페라가 예정돼 있다.
 
  특히 <피가로의 결혼> <마술피리> <돈 지오반니>와 같은 그의 인기 오페라에 가려져 진정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 <이도메네오>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향후 <티투스 왕의 자비> 같은 모차르트의 다른 세리아 걸작이나 헨델의 바로크 오페라 세리아 작품들이 임선혜, 카운터 테너 이동규 등의 참여로 연주되길 기대한다.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의 <세 개의 오렌지의 사랑>이나 아리고 보이토의 <메피스토펠레> 같이 덜 알려진 작품을 준비 중이라는 얘기도 반갑기 그지없다. 정명훈의 지휘도 잘하면 같이 볼 수 있을 것이라는 풍문과 함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내년에도 오페라 팬들이 국립오페라단에 거는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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