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 20-20-타율 3할 기록한 추신수의 성공비결

개인 훈련 단 하루도 쉬지 않는 훈련중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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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시작 6시간 전에 그는 운동장에 나간다. 팀 훈련이 시작되기 전에 개인 훈련을 마쳐야 직성이 풀린다. 코치들을 찾아다니며 끝없이 질문하고 상대 투수들에 대한 정보수집으로 숨 쉴 틈이 없을 정도다.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운동을 해야 직성이 풀리고 마음이 편해지고 자신감이 생긴다.

閔勳基 스포츠조선 야구해설위원
⊙ 1960년 서울 출생.
⊙ 캘리포니아주립대 졸업.
⊙ 수퍼액션 메이저리그 해설위원, 스포츠조선 야구부장, 스포츠조선 미주특파원,
    중앙일보 LA본사 사회부 차장 역임.
⊙ 現 KBS N 해설위원.
⊙ 저서: <메이저리그, 메이저리거>.
올 정규 시즌 메이저리그에서 20개 이상의 도루를 기록한 타자는 총 46명. 유일한 한국인 빅리그 타자인 추신수(28·클리블랜드 인디언스)도 21도루로 공동 35위에 이름을 올렸다.
 
  거포들이 즐비한 빅리그에서 20개 이상의 홈런을 친 타자는 총 87명으로 딱 20개를 친 추신수는 공동 80위다. 그런데 20개 이상의 홈런과 20개 이상의 도루를 동시에 기록한 타자로 범위를 좁혀보면 그 숫자는 확 줄어든다.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들이 뛴다는 MLB에서 올 시즌 20+ 홈런에 20+ 도루를 동시에 이룬 타자는 총 14명뿐이다.
 
  필라델피아의 체이스 어틀리(31-23), 콜로라도의 트로이 툴로위츠키(32-20), 플로리다의 헨리 라미레스(24-27), LA 다저스의 맷 켐프(26-34) 등과 함께 추신수는 어깨를 나란히 했다.
 
  ‘20-20’이 好打駿足(호타준족)을 인정받는 훈장이라면, 그보다 한 단계 높은 훈장은 ‘20-20-타율 3할’이다. 20개 이상의 홈런과 도루를 기록하면서 동시에 타율도 3할을 넘긴다면 그야말로 리그 엘리트로 명함을 내밀 수 있는 비장의 카드가 된다. 타격 기술과 파워, 스피드, 선구안과 참을성, 기회에서 결정력 등을 모두 갖춰야만 이룰 수 있는 대단한 기록이다.
 
 
  아메리칸리그에서 유일하게 ‘20-20-타율 3할’ 기록
 
지난 3월 22일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베네수엘라와의 준결승전에서 추신수가 2:0으로 앞선 1회 초 1사 후 두 번째 볼을 힘차게 방망이로 때린 뒤 타구 방향을 쳐다보고 있다. 가운데 담장을 넘기는 3점홈런.
  올 시즌 MLB를 통틀어 20-20-타율 3할을 이뤄낸 타자는 딱 4명뿐이다. 추신수가 3할을 기록했고, 애리조나의 저스틴 업턴이 26홈런-20도루-3할, 밀워키의 라이언 브라운이 32홈런-20도루-3할2푼, 그리고 헨리 라미레스가 24홈런-27도루-3할4푼2리를 기록했다. 아메리칸리그에서는 추신수가 유일하게 20-20-타율 3할을 이룬 선수다.
 
  리그 전체에서도 추신수는 이렇게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지만, 팀 내 기록을 보면 그의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 확연히 알 수가 있다.
 
  올 시즌 추신수의 최종 성적은 156경기를 뛰면서 583타수 175안타로 정확히 3할을 기록했고, 홈런 20개 외에 38개의 2루타와 6개의 3루타를 기록했다. 86타점에 87득점을 올렸고, 21도루에 도루 실패는 딱 두 번 있었다. 볼넷은 78개를 얻었고, 삼진이 151개로 다소 많았다. 출루율은 3할9푼4리에 장타율 4할8푼9리, 그리고 출루율+장타율(OPS)은 8할8푼3리를 기록했다.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출루율, 장타율, OPS는 팀 내 1위이고 타율은 2위다. 올 시즌 대부분 경기에서 에릭 웨지 감독이 추신수를 4번에 기용한 이유가 있었다.
 
  삼진이 151개로 팀 내에서 가장 많은데, 이는 타석에서 워낙 공격적인 스타일인데다가 아직도 빅리그 투수들의 변화구와 스트라이크존에 적응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앞으로 좋아질 수 있는 부분이다. 날로 치솟는 추신수의 명성이 빅리그 심판들에게도 익히 알려질 것이므로 인기선수 예우에 대한 스트라이크존의 적용은 갈수록 타석에서 그를 편안하게 해줄 수 있다.
 
  추신수는 최희섭이 가지고 있던 코리언 빅리거의 한 시즌 타격 기록(15홈런 46타점 53득점)을 모두 갈아 치웠다. MLB에서 4시즌을 뛴 최희섭은 통산 363경기를 뛰면서 2할4푼에 40홈런 120타점, 130득점을 기록했다.
 
  추신수는 315경기를 뛰었고 37홈런 180타점, 184득점을 기록하고 있다. 이제 내년이면 경기수와 홈런을 포함해 명실공히 한국인 메이저리그 타자의 전 부문 최고 기록을 매일매일 새롭게 써내려 가게 된다.
 
 
  고교시절, 150km 강속구 투수로 활약
 
  메이저리그에서도 이제 정상급의 외야수이자 중심 타자로 힘차게 질주하고 있는 추신수. 그러나 오늘의 추신수가 있기까지 그가 걸어온 길은 멀고 험했다.
 
  그는 고2 때와 고3 때 연속으로 대통령기 대회 MVP를 받은 고교야구 최고 유망주였다. 150km에 육박하는 강속구를 던지는 뛰어난 왼손 투수이자 담장을 훌쩍 넘기는 파워를 지닌 강타자로 성장하고 있었다.
 
  고3 때인 2000년 캐나다에서 벌어진 세계 청소년 야구대회에서의 맹활약으로 그는 미국 스카우트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당시 추신수는 7차례 등판해 18이닝 동안 32개의 탈삼진을 잡아내는 맹활약으로 대회 MVP를 수상했다. 현재 국내 프로야구의 스타인 이대호, 김태균, 정근우와 추신수 등이 주축이 된 청소년 대표팀은 우승을 차지했다.
 
  그 후 텍사스, 볼티모어, 시애틀 등 많은 팀에서 입단 제의가 들어왔다. 그러나 아버지 추소민씨의 뜻에 따라 돈을 덜 받고 시애틀을 선택했다. 추신수는 “시애틀에서 계약금으로 137만 달러를 받았지만, 볼티모어에서는 200만 달러를 약속했었다”면서 “아버지가 약속과 의리가 중요하다고 하셔서 그 결정에 따랐다”고 했다. 당시 시애틀은 이재우 前(전) 국내 프로야구 감독을 앞세워 가장 먼저 추신수를 점 찍고 접촉을 했던 팀이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추신수는 시애틀行(행)을 후회하기도 한다. 좀처럼 빅리그에서 뛸 기회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같은 우익수 포지션에 스즈키 이치로라는 발군의 타자가 걸림돌이었다.
 
  한때 시애틀은 이치로를 중견수로 옮기고, 추신수를 우익수로 쓸 계획도 세웠지만 이치로가 거부하면서 무산됐다.
 
  지난여름, 클리블랜드 야구장에서 만난 추신수는 시애틀 시절에 대해 솔직한 소감을 밝혔다.
 
  “(시애틀로 간 것을) 솔직히 후회해요. 저는 마이너부터 매년 3할을 쳤었거든요. 도루도 20~30개씩 하고. 팀에서 도대체 기회를 주지 않았어요. 홈런도 10개, 15개씩 치고 장타도 많이 때렸죠. 같은 마이너리그에서 뛰는 상대팀 선수가 별로인데도 메이저로 가는 것을 보면 짜증이 났죠.”
 
 
  메이저리거 된 날, 감독에게 팔꿈치 통증 털어놔
 
추신수를 집중 소개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홈페이지.
  결국 3년 전 추신수는 클리블랜드로 트레이드됐다. 새로운 도전을 시작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다. 그런데 이번에는 부상이 추신수의 발목을 잡았다.
 
  2007시즌을 트리플A에서 시작한 추신수는 메이저리그 승격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팔꿈치 통증이 갈수록 심해졌다. 2007년 5월, 메이저리그로 승격이 결정된 날 추신수는 통증 사실을 감독에게 솔직히 털어놓았다.
 
  통증은 있었지만 계속 트리플A 경기에 뛰고 있었기 때문에 추신수가 입을 다물었으면 당연히 빅리그로 승격될 수 있었다. 그리고 메이저리그에서 잠깐이라도 뛰다가 부상자 명단에 들어가면 빅리그의 경력은 모두 인정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솔직함을 택했다. 추신수가 어떤 성격의 인물인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해 여름 플로리다에서 재활 중이던 추신수는 필자와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통증 사실을 털어놓길 잘한 것 같아요. 만약 아픈 것을 숨기고 올라갔다가 (통증 사실이) 밝혀지면 현재 팀의 트레이너와 감독은 뭐가 됩니까. 저는 억지로 통증을 숨겨가며 경기하는 것은 도움이 안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정밀 검사 결과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을 받아야 했다. 재활에 1년 이상이 걸리는 큰 수술이었다.
 
  추신수에게는 그때가 고비였다. 미국 야구 도전을 포기하고 국내 복귀를 고심할 정도였다. 추신수는 “당시 마이너리그 연봉을 받았고 경제적으로 힘들어 아내와 아들을 위해 한국으로 돌아가려 했다”고 털어놨다.
 
  추신수는 SK에서 지명권을 가지고 있다. 추신수와 비슷한 처지의 최희섭, 봉중근, 김선우, 서재응 등은 미국 야구를 포기하는 대가로 거액을 받고 국내 야구로 돌아왔다.
 
  그러나 부인 하원미씨의 강력한 반대로 추신수는 한국행을 접었다. 하씨는 “얼마든지 고생은 할 수 있으니 후회 없이 야구를 해보라”고 격려했다. 추신수와 부인은 그때 둘이 정말 많이 울었다고 한다. 그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추신수에겐 가족이 가장 큰 힘이다. 그 힘으로 길고 지루한 1년간의 재활 운동 기간을 견뎌냈다.
 
 
  경기시작 6시간 전 경기장에 나가
 
  가족의 힘과 함께 추신수의 성공에는 본인의 의지와 노력이 가장 큰 뒷받침이 됐다. 야구에서 타격정확도(콘택트능력), 타격의 파워(장타력), 수비능력, 송구능력, 주루능력(스피드)을 겸비한 선수를 ‘5툴 플레이어’라고 한다. 추신수는 타고난 어깨와 스피드에 파워까지, 보기 드문 ‘5툴 플레이어’라는 평가도 있지만, 타고난 재능은 노력이 따르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추신수는 올 시즌 내내 수술한 팔꿈치 치료를 받았다. 특별히 아파서 치료를 받는 것이 아니라 수술 부위를 풀어주고 재발 방지를 위한 것이다. 단순 반복되는 치료와 마사지, 그리고 재활 운동을 꾸준히 했기 때문에 추신수는 올해 처음으로 뛴 풀타임 시즌에서 156경기나 뛸 수 있었다.
 
  추신수는 완벽주의자이고 훈련 중독자다. 개인 훈련을 단 하루도 빼놓지 않는다. 경기 시작 6시간 전에 그는 운동장에 나간다. 팀 훈련이 시작되기 전에 개인 훈련을 마쳐야 직성이 풀린다.
 
  코치들을 찾아다니며 끝없이 질문하고 상대 투수들에 대한 정보수집으로 숨 쉴 틈이 없을 정도다.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운동을 해야 직성이 풀리고 마음이 편해지고 자신감이 생긴다.
 
  그는 엉뚱한 면도 있다. 타석에 서기 전에 자신의 방망이를 모아 놓은 박스 앞에서 늘 질문을 던진다. ‘오늘은 누가 치러 나갈래?’라는 것이 그의 질문. 그의 자리에는 방망이가 스무 개쯤 들어 있는데 이것저것 잡아보고 감이 좋은 걸로 골라 나간다. 추신수는 ‘하드(HARD)’라는 한국제 방망이를 주로 쓴다. 그의 배트에는 태극기 스티커가 붙어 있다.
 
 
  추신수의 우상, 박정태 코치
 
지난 9월 7일, 메이저리그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추신수(오른쪽)가 원더걸스 멤버들과 ‘노바디 댄스’를 추고 있다.
  추신수에게 야구는 숙명과도 같다. 다시 태어나도 야구를 하겠다는 그는 아버지 추소민씨와 어머니 박유정씨의 2남 중 장남으로 1982년 7월 13일 부산에서 태어났다. 동생 추민기는 연극배우로 최근 곽경택 감독이 드라마로 만든 ‘친구’에 출연하기도 했다.
 
  어려서 가정은 경제적으로 기복이 심한 편이었다. 건축업을 하는 아버지의 사업은 아주 잘되다가 실패를 반복하기도 했다. 그의 부모는 생활이 아무리 어려워도 야구용품도 최고로 사주고 보약도 수시로 먹이면서 야구선수인 장남을 지원했다.
 
  추신수는 어려서부터 배트를 휘두르며 놀았는데 그건 바로 삼촌의 영향이었다. 1990년대 부산 야구의 대표 선수였던 박정태(현 롯데 자이언츠 2군 코치)가 그의 친삼촌이다. 추신수의 말이다.
 
  “유치원 가기 전부터 방망이를 잡고 놀았어요. 유치원에 가서는 늘 애들과 야구를 하고 옆 동네 애들과 시합도 했어요. 초등학교 가서는 형들과 많이 했어요. 처음엔 테니스공으로 하고 나중에는 연식 공으로 했죠. 방과 후에 곧바로 방망이에 글러브를 끼고 동네 고등학교로 가서 종일 야구를 했어요. 깜깜해질 때까지 야구를 했죠.”
 
  삼촌은 그의 우상이었고 길잡이였다. 삼촌 후배가 감독으로 있는 수영초등학교의 정장식 감독 밑에서 처음 유니폼을 입고 공식전을 벌인 것이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무작정 야구가 좋았고, 부산중이나 경남중 같은 야구 명문 학교에 가는 것이 꿈이었다.
 
  다부진 꼬마 선수 추신수는 부산중학교에 스카우트됐다. 부산고 2학년 때쯤 프로야구 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2년 선배인 백차승이 미국 시애틀 마리너스와 계약을 하면서 미국 야구라는 큰 꿈을 더 키우게 됐다,
 
  2001년 만 18세의 나이에 추신수는 태평양을 건넜고, 만 7년이 넘는 마이너리그 시절의 고생을 모두 견뎌냈다. 루키리그부터 시작해 싱글A, 하이 싱글A, 더블A, 트리플A 등 여덟 팀 이상을 거쳤다. 이사는 15번쯤 했고, 임시로 짧게 머문 것까지 합치면 스무 번도 넘게 드넓은 미국 땅을 옮겨다녀야 했다. 그리고 오늘, 그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를 대표하는 타자로 성장했다.
 
 
  내년 시즌 목표는 30-30 달성
 
  MLB에서도 정상급 선수로 급성장하고 있는 추신수지만 그에게 한 가지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다. 병역 문제다. 내년이 그가 병역을 연기할 수 있는 마지막 해다.
 
  한국의 정서를 모르는 구단에서는 “영주권을 따면 쉽게 해결될 문제를 왜 고민하느냐”며 닥달이다. 빅리그 선수는 신청만 하면 어렵지 않게 영주권을 받을 수 있다. 영주권을 받는다고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미국 시민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당장 병역을 피하는 임시방편이 된다.
 
  추신수는 어떻게든 내년 아시안 게임에 출전해 금메달을 따서 병역 혜택을 받고 싶다. 반대로 구단은 우승이 보장된 것도 아닌 대회에, 쉬어야 할 오프 시즌에 대회에 나가 부상이라도 당하면 어떻게 되느냐며 만류하고 있다.
 
  구단이 팀 내 최고 선수로 부상한 추신수와의 장기 계약을 망설이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병역이다. 한창 야구선수로 꽃을 피울 20대 후반에 군대를 2년 다녀온다면 빅리그에서의 그의 자리나 미래는 보장할 수 없게 된다.
 
  이 문제가 나오면 추신수는 입을 다문다. 고민한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고, 일단은 아시안 게임을 마음에 품고 있다.
 
  병역 혜택이 없다고 미리 발표된 WBC 대회도 어떻게 해서든 구단을 설득해서 출전했던 그다. 한국제 방망이를 쓰고, 태극기 스티커를 곳곳에 붙여놓고, 자신의 운동장 테마송으로 원더걸스의 노바디를 매일 트는 선수가 추신수다. 얼마 전에는 원더걸스가 클리블랜드의 홈구장을 방문해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추신수는 야구를 한다는 것이 너무 행복하다고 늘 말한다. 힘이 들 때도 많지만 그때마다 그는 ‘꿈의 무대에서, 수많은 관중 앞에서 매일 유니폼을 입고 주목을 받으면서 뛸 수 있다는 자체가 얼마나 행복한 일이냐?’고 자문한다고 했다. 가능하면 마흔까지 안돼도 서른일곱, 여덟까지는 현역으로 뛰고 싶다는 추신수. 그는 2010시즌의 목표를 30-30으로 잡았다.
 
  20-20도 대단한 일이지만 30-30이라면 격이 다르다. 올 시즌 MLB에서 ‘30-30 클럽’ 멤버가 된 선수는 딱 한 명, 텍사스 레인저스의 이언 킨슬러뿐이었다. 텍사스 팀 역사상 딱 두 명뿐이었을 정도로 30-30은 이루기 어려운 업적이다.
 
  그러나 추신수라면 못할 것이 없다. 스피드는 워낙 빠르기 때문에 상대 투수의 약점을 더 잘 알게 되고 노련해지면 30도루도 충분히 가능하다. 30개 이상의 홈런을 치기는 쉽지 않지만 펀치력을 타고난 선수이고 내년이 풀타임 2년차인 신인급임을 고려하면 가능성이 있다. 내년 시즌에는 추신수의 30-30 도전 때문에 야구팬들이 열광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의 도전은 이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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