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과 눈물로 범벅된 나로호 이야기

“러시아에 강력하게 再발사 요구하겠다”

  • 글 : 김태완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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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GDP 대비 우주예산 비율은 0.03%로 미국의 0.29%, 일본의 0.06%, 프랑스의 0.10%에 비해 크게 부족
항우연의 연구인력 중 정규직은 664명, 연간 예산규모는 3250억원
일본과 프랑스, 독일 우주청의 평균 인력은 3350명, 인도 우주개발 기구(ISRO)는 1만600여 명


⊙ 90%의 성공… 실패를 통해 ‘체득 기술’ 습득
⊙ 러시아와의 협력은 불가피한 선택… 어깨너머로 고급 기술 익혀
⊙ 액체로켓 엔진의 핵심인 터보 펌프와 연소기 국산화에 성공
8월 25일 오후 5시 정각 한국 최초 우주 발사체 나로호(KSLV-Ⅰ)가 발사됐다.
“와~” 하는 환호성이 “어, 어…”라는 탄식으로 바뀌고 며칠이 지났다. 지난 8월 25일 한국 최초의 우주발사체 나로호(KSLV-Ⅰ)가 쏘아 올린 과학기술위성 2호는 유성처럼 사라졌다. 하지만 아직도 어딘가에서 시그널을 보낼 것만 같다. 위성이 추락한 그날 밤, 깜깜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무수한 별이 빛나고 있었다.
 
  대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하 항우연)으로 향했다. 열차 안에서 李柱鎭(이주진·57) 항우연 원장에게 던질 질문을 살폈다.
 
  처음, 나로호 발사는 성공인 듯 보였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육안으로만 허락된 성공이었다. 창공으로 솟구친 나로호는 홀연히 사라졌다. 이후 발사체에서 보내오는 영상과 신호는 뚝 끊겼다. 발을 동동 구른 이 원장은 “내일이 오고, 모레가 오고, 그러다 보면 신호를 다시 찾을지 모른다. 우리 힘으로, 우리 기술로 ‘아름다운’ 신호를 주고받을 것임에 틀림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에는 이 원장과 함께 ‘발사체 체계 사업단’ 朴政柱(박정주·50) 단장과 ‘나로우주센터’ 閔庚宙(민경주·56) 센터장이 동석했다. 이 원장은 “아쉬움은 있지만 우리 세 사람이 나로호 3총사”라고 말했다. 3총사의 얼굴은 닮은 점이 많다.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단단한 체구에다 꽤 골치 아픈 전투를 끝낸 兵士(병사)처럼 보였다.
 
  배트로 공을 치면 날아간다. 성냥불을 댕기면 불이 붙는다. 일상의 일들이 과학의 언어로, 수식의 모습으로 바꾸어 설명될 수 있다. 그게 과학이다. 이제 나로호의 아픈 소멸도 과학으로 해명될 차례였다.
 
  “고생했다”는 말을 먼저 할 생각이었는데 “아쉬워서 어쩌죠?”라는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이 원장은 “부담이야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뾰족한 것들만 봐도 로켓으로 보일 정도였다. 전봇대 밑동만 봐도 나로호 발사 모습이 연상됐다”고 말했다.
 
  그랬다. 나로호가 발사되던 날 아침, 사람들은 성공의 기대보다 발사 직후 폭발하지 않을까, 허망하게 태평양에 곤두박질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던 게 사실이다.
 
 
  90%의 성공, 10%의 실패
 
항공우주연구원 연구원들이 위성 보호 덮개 내부를 살펴보고 있다.
  박정주 단장은 “워낙 관심과 열기가 뜨거워, 첫 발사 시험치고는…, 여러 번 모의고사를 쳐보고 자신 있을 때 본고사를 쳐야 하는데 워낙 관심들이 높아 개발자 입장에서 부담이 많았다”고 고백했다.
 
  전남 고흥의 우주센터에서 ‘홀아비 생활’을 하다 돌아온 민경주 센터장은 “아파도 약이 없어 택배로 약을 받았고 아빠·남편으로는 빵점, 친인척 경조사 못 챙기는 것은 기본이며 주말·휴일도 못 쉬었다”고 했다.
 
  그는 이 말을 하면서 웃었다. 땀 흘린 자만이 할 수 있는 회고였다. 사실 항우연의 250여 연구원은 민경주 센터장처럼 집과 아내와 부모를 ‘기꺼이’ 버리고 8년여를 한국 최초 우주발사체 제작에 투자했다.
 
  이 원장은 “발사체 기술을 어느 나라도 이전하지 않으려 한다. ‘하나만 더 가르쳐 달라’고 떼쓸 수도 없다. 뒤늦게 우주개발에 뛰어든 우리로서는 개발 여건이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의 말이다.
 
  “러시아와의 기술협력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각과 러시아에 의존한다든가, 끌려다닌다는 이야기를 접했을 때 나로호 연구개발에 몸담고 있던 모든 연구원의 心的(심적) 고통이 매우 컸어요.”
 
  나로호 발사 전 언론의 관심은 우리가 자체적으로 위성을 쏘아 올린 세계 10번째 국가가 되느냐였다.
 
  “세계 10번째 우주발사체를 가진 국가가 됐나요?”라고 물었다. 지금까지 自力(자력)으로 우주발사체를 쏜 나라는 러시아(1957년 10월)를 비롯, 미국(1958년 1월)·프랑스(1965)·일본(1970)·중국(1970)·영국(1971)·인도(1980)·이스라엘(1988)·이란(2009) 등 9개국이다.
 
  이 원장은 “10번째 국가라고 말하기에는 다소 미흡하다. 위성을 정상궤도에 집어넣어야 하는데, 못했다. 하지만 ‘90%의 성공’은 일궈냈다고 평가한다”고 했다.
 
  다시 질문을 던졌다.
 
  “安秉萬(안병만) 장관이 기자들 앞에서 ‘위성보호 덮개(페어링)와 로켓 1단이 성공적으로 분리됐고 로켓 2단과 점화도 성공했으며 로켓 2단과 위성이 정상 분리됐다. 또 발사체가 우주궤도까지 도달했다’고 발표하지 않았나요? 그럼 발표내용이 잘못됐나요?”
 
  이 원장이 답했다.
 
  “우주발사체 기술은 극한 기술이고 99.9999%의 고도의 신뢰성과 안전성이 입증돼야 발사할 수 있어요. 기술력 차이는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실패를 단순히 실패라고 꼬집어 말하긴 곤란합니다. 우리 스스로 ‘90%의 성공’이라 말합니다. 로켓 1단의 연소가 정상적이었고 2단 역시 정상 연소됐잖아요. 페어링이 두 개 중 하나만 분리됐기에 未完(미완)이라 말합니다. 굳이 실패를 얘기하자면 ‘페어링 분리 실패’라고 말할 수 있어요. 나머지 일련의 과정은 다 성공했어요. 올라가다가 폭발하지 않았고 정상궤도에 도달했지요. 완전한 실패라고 말하는 것과는 엄연히 다르죠.”
 
 
  속도가 모자랐다
 
나로우주센터에서 연구원들이 국내에서 제작한 나로호 상단에 탑재될 2단 로켓을 점검하고 있다. 이 로켓은 국내 연구진과 기업들이 5년간 연구 끝에 독자 개발했다.
  박 단장이 기술용어를 써 가며 이렇게 설명했다.
 
  “로켓이 우주궤도까지 도달에 성공해도 위성이 정상궤도를 유지해야 합니다. 궤도에 넣기는 넣었는데 ‘속도가 모자랐어요.”
 
  속도가 모자랐다? 그 말이 암호문처럼 들렸다. 다시 물어보니 이렇게 말했다.
 
  “나로호는 당초 1단 로켓이 302㎞까지 쭉 올라간 뒤 2단 로켓의 점화가 이뤄지도록 설계됐어요. 1단은 정상 분리됐고 성공적으로 2단 로켓이 점화됐지요. 그런데 페어링 한쪽이 분리되지 않아 2단 로켓 무게가 무거워졌어요. 원래 초속 8㎞의 속도를 내야 하는데 5km밖에 못 냈어요. 그러니 무게 중심을 못 잡았고, 노즐이 자세제어를 하려 했지만, 자꾸 엉뚱한 방향으로 가버렸습니다.”
 
  2단(상단) 로켓의 핵심기술은 자세제어다. 2단 연소 중에는 거의 같은 고도를 유지하며 직선비행을 한다. 이때 로켓이 흔들리면 엔진 노즐을 좌우로 움직여 방향을 조절한다. 노즐은 전기모터의 힘으로 움직이는데 우리 기술로 제작됐다. 페어링 분리가 안돼 예상보다 무거워진 나로호는 무게 중심이 흔들렸고, 노즐이 균형을 잡으려 할수록 비행 각도는 더욱 벗어났다. 불가항력이었다. 여기다 속도까지 떨어졌다.
 
  이 원장이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했다.
 
  “2단 연소 중에는 쭉 직선비행을 해야 비행 방향으로 원하는 속도 증가가 얻어집니다. 그런데 330kg짜리 페어링 무게 때문에 자세제어 시스템이 아무리 용을 써도 로켓 자세가 위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었어요. 로켓이 비스듬하게 기울면서 상승 비행을 하고 연소 후반기에는 회전운동까지 하게 됐어요.”
 
  현재 ‘한·러 기술검토위원회’가 원인 분석을 하고 있지만, 항우연 측은 나로호가 정상궤도에 진입하지 못한 이유로 페어링 분리 실패가 원인이었다고 잠정 분석하고 있다. 위성보호 덮개 한쪽이 로켓의 발목을 잡은 셈이다.
 
  사실 인공위성 궤도에서 초속 8km 속도를 내야 하는 발사체는 큰 가속도를 얻기 위해 최대한 가볍게 만들어야 한다. 나로호 개발과정에서 ‘체계 종합팀’의 정의승 박사는 연구원들에게 “무게를 못 줄이면 발사체는 실패”라고 으름장을 놓곤 했다. 매주 무게 관리 현황을 보고받으며 부품의 超(초)경량화를 지휘했다고 한다. 민 센터장의 말이다.
 
  “가볍게 만드는 정도가 터지기 직전까지 깎아내는 수준이죠. 아슬아슬합니다. 개발 과정에서 경량화에 성공해 무게를 조금이라도 줄인 개발부문 책임자는 흐뭇하게 ‘감량한’ 부품을 내놓았지만, 되레 무게가 늘어난 ‘뚱보’ 부품 책임자는 무거운 어깨로 회의장에 들어서야 했지요. 이런 경쟁적인 살 빼기 작전 덕에 전체 위성 무게는 설계가 진행되면서 차츰 줄어들었어요. 결국 설계 요구조건에 맞는 무게 범위 안에 들었습니다. 이를 두고 다이어트에 성공한 노처녀가 허리띠의 마지막 칸을 끼우는 순간처럼 다들 환히 웃으며 박수를 쳤지요.”
 
  하지만 아쉽게도 페어링 분리 실패로 일을 그르치고 말았다.
 
나로 우주센터 발사지휘통제소에서 연구원들이 최종 점검을 하고 있다.
 
  최초에 페어링 ‘정상 분리’라고 판단한 이유는?
 
우주궤도에서 페어링이 분리되는 모습. (그래픽=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제공)
  하지만 발사 후 540초쯤 페어링이 정상적으로 분리됐다는 파란색 불빛이 나로우주센터 모니터에 켜졌다. 그때가 발사 후 9분 뒤인 ‘5시9분00초’였다. 권세진 KAIST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페어링만으로 궤도진입 실패가 납득이 안 간다. 우주공간에서 페어링 무게가 얼마나 영향을 줄 수 있을까” 하며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런 의문에 대해 박 단장은 “오해”라고 했다.
 
  “페어링 두 개가 다 떨어져야 불이 켜지는데 처음엔 불이 안 들어왔어요. 진짜 페어링이 안 떨어진 것인지, 혹시 통신장애는 없는지 그땐 알 수가 없었어요. 왜냐하면 로켓 1단 분리가 완벽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단이 점화됐을 때 속도가 떨어진다는 느낌이 들면서 불안해지기 시작했어요. 쭉 초속 8km로 올라가야 하는데 그때 뭐가 잘못됐다고 생각했습니다. 페어링이 발사 후 540초쯤 분리가 됐기에 통제실 디스플레이 시스템에 불이 들어왔어요.”
 
  ―그럼, 몇 초에 분리돼야 정상인가요?
 
  박 단장은 “발사 후 216초(오후 5시3분36초) 정도에 페어링 두 개가 모두 분리돼야 한다”고 했다.
 
  ―당시 왜 파악이 안됐을까요.
 
  이번에는 이 원장이 답했다.
 
  “신호 오작동은 디스플레이 하나만의 잘못으로 결정되는 게 아닙니다. 통신 경로가 복잡하게 얽혀 있기에 다른 데이터들을 보면서 판단해야 합니다. 디스플레이상에 나타난 것을 보고 단박에 오류다, 아니다 판단할 순 없어요. 디스플레이는 편의상 쉽게 보여주는 장치일 뿐입니다.”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시간대별로 재구성하면 이렇다.
 
  <▲8월 25일 오후 5시= 4초 동안의 점화 후 나로호가 발사대를 떠나기 시작.
 
  ▲오후 5시3분36초(이륙 후 216초)= 두 쪽의 페어링이 모두 분리됐어야 하지만, 한쪽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5시3분50초(230초)= 한쪽 페어링이 붙은 채로 5시3분50초에 1단 엔진이 정상적으로 종료. 이어 53초에는 1단이 분리.
 
  ▲5시6분35초(395초)= 2단 킥 모터가 고도 303km 지점에서 점화. 59초간 진행된 점화가 끝나자 정상궤도인 302km를 벗어나 327km까지 상승.
 
  ▲5시7분34초(454초)= 2단 연소 종료.
 
  ▲5시9분00초(540초)= 위성 분리. 남은 페어링 분리.
 
  ▲5시11분00초(660초)= 최대 고도 387km 도달 후 낙하.>
 
  이 원장은 ‘90%의 성공’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우리가 ‘90%의 성공’이라고 말하는 것도 페어링 분리만 빼면 모든 것이 성공적이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페어링 두 개 중 하나가 분리되지 않아 상단 로켓의 자세제어 방향이 바뀐 것입니다. 다시 말해, 직선비행으로 속도를 얻는 推力(추력·물체를 운동방향으로 미는 힘)보다는 위로 올라가는 추력을 써서 힘을 분산시켰어요.”
 
 
  로켓 두 번 발사하기로 계약 맺어
 
나로호의 삼총사. 이주진 항우연 원장(가운데)과 나로우주센터 민경주 센터장(왼쪽), 발사체 체계 사업단 박정주 단장.
  ―그걸 러시아에 책임을 물을 수 있나요?
 
  당초 러시아와 맺은 나로호 발사체 계획은 두 번 로켓을 쏠 수 있다. 두 번 중 한 번 실패해도 또 한 기의 로켓을 공짜로 가져와 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원장은 “총론적으로는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자체 개발한 1단 로켓이 성공했으니 문제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이주진: “그 부분은 기술분석이 끝나 봐야 하지만 계약상 총론적으로는 위성궤도에 집어넣는 것까지 공동책임이지요. 당연히 요구할 수 있습니다.”
 
  박정주: “기술적인 책임은 러시아 측에 있으니까….”
 
  ―러시아 측에 강력하게 요구해야 하지 않나요?
 
  이 원장은 “요구를 할 겁니다. 현재 조사 중이지만 결과가 나오면 세게 요구할 겁니다”고 강조했다.
 
  우주기술의 역사는 실패의 역사다. 우주에 로켓을 쏘아 올린 선진국의 발사 성공률도 고작 27.2%에 불과하다. 일본은 1998년부터 2003년까지 세 번 실패했고, 러시아도 세 번, 북한도 두 번 실패했다.
 
  이 원장은 “우주개발 선진국들도 처음 발사체를 만들어 첫 발사를 했을 때 성공 확률이 30%를 못 넘었다”며 “수많은 검증을 통해 개발된 상업용 위성발사체도 10번 발사에 두 번 정도는 실패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실패는 오히려 쓴 藥(약)처럼 배울 게 많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고성능 위성을 지구궤도에 집어넣는 발사체 시스템을 설계하고 직접 만들었다는 데 의미가 있어요. 비록 나로호 1단은 러시아에서 만들어진 것을 들여온 것이라고 해도 이를 우리 발사대에 실어 우주로 쏘아 올린 경험은 우리나라의 우주개발에 소중한 기술로 돌아올 것이라 확신해요. 우주개발 실패를 통해 배운 ‘體得(체득) 기술’은 우리에게 쓰디쓰지만 소중한 약이 될 겁니다.”
 
 
  어깨너머로 배운 액체로켓 기술
 
나로호 하단에 장착된 엔진의 원형 모델인 러시아 앙가라 RD191 엔진의 모습.
  ―오명 건국대 총장이 “이번 발사를 통해 한국이 확보한 기술은 그 이상의 가치가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어떤 기술을 확보하게 됐나요?
 
  이 원장의 말이다.
 
  “러시아와 우리 간 업무분장이란 게 있어요. 1단은 러시아가, 2단은 우리가 개발하고, 러시아에서 우주센터 설계도를 받아다가 다시 국산화 설계로 구축하는 등의 포괄적인 협력이죠. 사실 우주개발에서 기술이전은 국제적으로 안됩니다. 기술력을 극복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러시아와의 협력이 가치가 없다거나 잘못됐다고 말하면 터무니없는 지적이죠.”
 
  ―나로호 발사과정에서 많은 돈을 들여 어떤 기술을 확보했나요.
 
  이주진: “중요한 것은 체험적 습득이죠. 1단과 액체엔진 부분에 대해서는 기술이전이 안되도록 처음부터 약속했어요. 양국이 국회 비준까지 받았어요. 하지만 우리는 우리대로 어떻게 기술을 습득할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비록 소규모지만 30t급 1단 액체추진 엔진을 개발했습니다. 자세한 얘기는 못 하지만, 그래서 우리가 ‘체득’이라 말하는 겁니다. 러시아의 엔진시스템을 어깨너머로 보고 배우면서 액체추진 엔진을 자체 개발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1990년대만 해도 고체추진 과학로켓을 중심으로 로켓을 개발해 왔다. 액체추진 로켓은 20 02년 11월 28일 러시아의 도움을 받아 제작한 KSR-Ⅲ가 처음이다. KSR-Ⅲ는 13t급 추진력의 소형 액체엔진이다. 나로호 발사체 개발이 본격 시작된 것은 2003년 무렵이다. 그러다 보니 대형의 고성능 액체추진 기관에 대한 기술이나 개발 경험이 없었다.
 
  고체로켓은 고체 형태의 연료를 태워 추진력을 얻는 로켓을 말한다. 액체연료 로켓이 20세기에 개발되기 시작했지만, 고체연료는 13세기 중국과 아랍에서 전투에 사용한 화약식 로켓이 시작이다. 고체엔진은 액체엔진보다 매우 간단하다. 즉시 발사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軍事用(군사용)에 적합하다. 다만 한미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 협정에 따라 고체연료 로켓은 사정거리 300km, 탑재 중량 500kg 이상은 개발을 못하게 돼 있다.
 
  반면 액체엔진은 극저온·고청정도 기술이 수반되는 등 기술이 대단히 까다롭다. 연료인 액체산소나 액체수소는 섭씨 영하 253도의 전용탱크에 보관해야 하고, 길이가 1.4km나 되는 초고압 압력배관도 필요하다.
 
 
  터보 펌프 국산화에 성공
 
  민 센터장은 “반도체 공장을 생각하면 된다. 수분이 20ppm 이하, 미량의 오일이나 염분 성분도 없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연료가 액체여서 연소반응이 잘 일어나 많은 에너지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지구중력과 공기저항을 이기기 위해선 액체엔진이 필요하다.
 
  ―이번에 독자적으로 액체엔진을 개발했다는 이야기인가요.
 
  박 단장은 “액체엔진을 개발해 시험모델까지 만들 기반을 쌓아 놨다”고 귀띔했다.
 
  러시아제 1단 액체엔진의 성능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우리 기술로 응용, 제작했다는 얘기였다. 이 원장은 “우리 수준이 초등학교 수준이면 초등 수준밖에 못 배우는 법이다. 우리가 만든 30t급 액체엔진은 대학생 수준은 된다”고 말했다.
 
  기존의 액체엔진 기술은 어느 수준이었을까. 박 단장은 “과거 KSR-III는 ‘加壓(가압) 방식’으로 연료를 주입했는데 탱크 압력이 높아 로켓 무게가 무거워진다는 단점이 있었다”며 “이번에 만든 ‘터보 펌프’는 국산화가 안되는 부분이었는데 이 펌프와 연소기도 개발했다. 액체추진 기관의 기본 핵심기술을 많이 습득했다”고 강조했다.
 
  ―이번에 개발한 터보 펌프란 무엇인가요.
 
  박정주: “기체를 이용해 돌리는 강력한 펌프를 말하지요. 로켓의 연료탱크 내 추진제를 빨아들여 고압으로 연소실에 밀어 넣는데 펌프가 약하면 연료가 역류하게 되지요.”
 
  민경주: “터보 펌프의 장점은 짧은 시간 내에 펌프질이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탱크 내 액체연료를 연소실로 밀어 넣어야 하는데, 보통 펌프로는 불가능합니다. 얼마나 강력한가 하면, 수영장에 물을 가득 채우는 데 15분 만에 물을 다 채울 수 있을 정도로 셉니다.”
 
  하지만 터보 펌프를 만드는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2007년 이른 봄, 항우연 연구팀이 터보 펌프와 가스발생기 연계시험의 전 단계로 터보 펌프의 작동성을 확인하기 위해 액체산소와 연료를 이용한 水流(수류·물 흐름)시험을 했다. 시험 시작 후 약 10여 초 만에 산화제 펌프가 폭발, 터보 펌프는 공중분해됐다. 그나마 연료 펌프 배관이 망가지지 않은 게 기적이었다고 한다.
 
 
  75t급 1단 액체엔진 개발
 
지난 8월 23일 오전 발사대로 나로호를 옮기고 있는 모습.
  다시 한 해가 흘렀다. 그동안 수십 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치며 작은 오류들이 확인됐고 기존 설계를 완전히 뜯어고쳤다. 나로호를 개발하며 러시아가 가져온 1단 액체엔진을 어깨너머로 관찰하며 고칠 점이 없는지 확인했다.
 
  그리고 지난해 초 터보 펌프와 가스발생기 연계시험을 다시 했다. 연계시험에 앞서 수차례 수행한 예비 수류시험을 거치며 안전성은 파악했지만, 문제는 터보 펌프와 가스발생기를 엔진 시동 조건에서 시험한 경험이 없었다는 데 있었다.
 
  시험 몇 시간 전까지도 연구원들은 시험 중 발생 가능한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해 심각하게 협의했다.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자 폭발사고를 대비해야 했다. 박 단장의 말이다.
 
  “시험 경과 시간을 재고 있다가 시험이 안전하고 성공적으로 종료된 순간, 같이 숨죽이며 시험 진행상황을 모니터로 관찰하던 수십 명의 관련 인원들은 모두 시험 성공을 축하하며 박수를 쳤어요. 그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앞으로도 수십, 수백 번 이처럼 가슴 졸이는 시간을 거친 후에야 우리의 액체로켓 엔진이 멋지게 하늘을 가를 것이라는 점이었습니다.”
 
  항우연은 추진력 30t급 터보 펌프 방식의 액체로켓 엔진의 핵심기술을 확보한 이상 2018년쯤 순수 우리 기술로 만들 한국형 발사체(KSLV-Ⅱ)의 75t급 1단 액체엔진 개발을 위한 기반을 튼튼하게 마련한 셈이 된다.
 
  여기서 나로우주센터 발사대 시스템이 전남 고흥에 건설된 과정을 더듬어 보자. 액체엔진 개발만큼이나 땀과 노력의 산물로 지어진 발사대의 총괄 책임자는 민경주 센터장이었다.
 
  발사대 구축 관련 상세 설계문서 21박스(A3 용지로 2만1631쪽)가 지난 2007년 3월 9일 러시아 보안 담당자의 삼엄한 경비 속에 항우연에 도착했다. 이 복잡한 설계도를 보고 국내에서 한 번도 시도해 보지 못한 난해한 각종 설비를 늦어도 2008년 8월까지 구축해야 했다. 남은 시간은 불과 17개월. 러시아 전문가들은 “우리가 직접 건설해도 23개월이 걸린다”고 겁을 줬다.
 
  민 센터장은 “처음 8명의 연구원이 러시아의 방대한 설계문서에 상당히 당황하는 게 눈에 역력히 보였다”고 회고했다. 영문으로 작성된 복잡하고 까다로운 상세 설계문서를 검토, 주요 내용을 파악하는 데만 3주가 흘렀다. 그리고 그해 12월 러시아 전문가들과 협의를 거쳐 현대중공업과 항우연이 공동으로 국산화 설계를 마무리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 연구원들은 매일 자정이 돼야만 자체 검토회의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시간에 쫓기면서 설계도를 움켜쥐고 씨름했다. 발사대 건설 시간을 줄이기 위해 부품 제작사를 종용, 조기 제작을 서둘렀다. 그러나 러시아 규격과 100% 일치하는 소재와 부품, 공정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았다.
 
  발사대 시스템의 설치가 완료되고 이어 진행된 성능시험 과정에서 러시아가 초기에 제기한 부품시험 항목을 99개에서 무려 358개로 늘렸다. 부품 국산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미확인 결점을 확인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시험분석에서 미비점이 지적되면 공기 지연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발사대 건설 秘話
 
  민 센터장은 “당혹스러웠지만, 그 조치는 우리 연구원들에게 훌륭한 학습 기회를 제공했다. 러시아 전문가들의 까다로운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설계도를 꼼꼼히 분석, 부품의 공학적인 원리를 더 많이 이해하게 됐다”고 귀띔했다. 예를 들어 1초당 약 4kg이 생산되는 공기에 수분 및 분진 함량·분진 크기 등을 엄격히 제한하는 기술, 청정한 공기·질소·헬륨 등을 초고압으로 만들어 8개의 시스템에 공급하는 기술 등 초고압·초저온 청정기술을 고스란히 얻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부품의 입고 지연이 골칫거리였다. 연구원들은 4개월 동안 전 세계를 다니며 제작사들을 방문, 납기단축을 협상했다. 고압가스 압력조절 패널의 핵심 부품인 대구경 고압 볼 밸브의 제작사가 있는 타이완을 방문했을 때였다. 중국 쓰촨성에 있던 현지 공장이 지진으로 납기 일정을 못 지키겠다는 얘기를 듣고 그 자리에서 주저앉은 적도 있다. 또 수십 개의 국내 제작사를 찾아 제작을 독려하고 밤을 같이 새웠다. 민 센터장은 “아내가 신장이식 수술을 받고 누워 있는 서울 아산병원을 뒤로하고 파견지로 떠난 연구원도 있었다”면서 “이들의 이런 노력과 희생이 있었기에 발사대 시스템을 국산화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발사대 시스템에 사용된 전선의 길이가 140㎞, 400기압의 배관이 문어발 모양으로 1.5㎞나 깔렸고 밸브 개수가 3000여 개나 됐다. 2000년 12월 착공, 8년여 만인 2009년 6월 11일, 해발 390m의 마치山(산) 허리를 잘라내 조성한 4만6000㎡의 빈터에 나로호 발사를 위한 발사대가 세워졌다.
 
 
  러시아와 기술협약을 맺은 이유
 
나로호 발사후 이주진 항우연 원장과 박정주 단장(오른쪽)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 원장은 “실패 통해 배운 ‘체득’기술은 쓰지만 소중한 약”이라고 했다.
  그런데 미국과 일본, 프랑스 등 우주기술 선진국을 제쳐놓고 왜 러시아와 파트너십 계약을 맺었을까. 이 질문에 이주진 원장은 “러시아가 유일하게 우주 협력에 협조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의 말이다.
 
  “1987년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 협정이 생기면서 국가간 발사체 기술이전이 엄격한 제약을 받게 됐어요. 일본은 1970년대 후반에 미국의 우주기술을 다 배웠습니다. 우리가 일찍 우주개발을 시작했으면 미국에 배울 수 있었을 텐데 MTCR 규제가 시작된 1990년이 지나서 우주기술에 뛰어든 것이 문제였어요. 시기도 늦은 데다가 MTCR 규약이 워낙 심해 미국이나 일본으로부터 기술이전은 둘째치고 사업을 같이 하자는 말도 못 꺼냈어요.
 
  그렇다고 인도·중국에 협력을 제안할 수도 없었습니다. 러시아는 우주기술만큼은 미국·중국보다 우월한 나라였어요. 당시 러시아는 경제적으로 어려웠고 우리는 기술력 확보가 필요해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았어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당시 상황을 아는 분들은 ‘러시아와의 우주기술 협력은 대단히 유용한 거래였다’고 말합니다.”
 
  박정주 단장이 말을 거들었다.
 
  “프랑스는 가격도 비쌌거니와 자체 개발한 ‘아리안 V’ 발사체는 독성연료를 썼어요. 우리나라같이 인구밀도 높은 나라에서 독성추진제를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세계적으로 등유와 액체산소를 사용하는 엔진을 개발할 수 있는 나라는 러시아와 미국밖에 없습니다.”
 
  발사체 기술이 국제적으로 기술이전 제약이 심해 러시아만이 협력이 가능한 유일한 국가였다는 것이다. 항우연은 러시아 호르니 체프社(사)와 계약을 맺고 러시아 현지에 사무소를 운영했다. 시스템 설계 단계에서 1차로 21명, 상세설계 단계에서 3차에 걸쳐 51명의 연구진이 파견돼 러시아 기술진과 설계도를 함께 만들었다. “우리가 러시아에 지불한 2억 달러의 예산은 선진국들이 액체로켓을 개발한 예산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은 액수”라는 게 항우연 측의 설명이다.
 
  발사체 개발의 경우 시스템 설계는 공동으로 수행하되 1단 추진체는 러시아가, 2단 추진체와 탑재장비, 페어링, 위성 등은 한국이 담당하는 것으로 업무분장이 이뤄졌다. 발사대의 경우 러시아가 설계하고 그에 따라 한국이 설계와 제작 및 설치를 하도록 결정했다. 박 단장의 말이다.
 
  “러시아가 협력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막대한 시간과 인력, 예산을 투입했을 것입니다. 러시아와 미국이 로켓을 처음 개발할 때 수만 명이 투입됐어요. 결과적으로 러시아 덕분에 효율적으로 개발한 측면이 높아요.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합니다. 러시아에 아쉬운 것만 얘기하니까 속으로 짜증이 날 겁니다. 그동안 열심히 도와줬는데….”
 
 
  일본과의 격차는 15년
 
  일본의 우주개발은 1955년 도쿄대 이토카와 교수의 ‘펜슬 로켓(고체 로켓)’을 시작으로 1970년 2월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했다. 하지만 1969년 미국과 일본 사이에 발사체 기술이전 협정이 맺어져 맥도널 더글러스社(사)가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에 로켓기술(이를 ‘Thor-Delta’라고 부른다)을 가르쳤다.
 
  1975년 9월에 미국의 기술이전 덕분에 액체엔진으로 만든 90t 무게의 N-1 로켓이 발사됐다. 1단은 델타 액체로켓, 2단은 일본이 개발한 액체엔진인 ‘LE-3’을 장착한 액체로켓, 3단은 델타의 고체로켓으로 구성됐다.
 
  이후 일본은 100여 기의 크고 작은 로켓을 쏘아 올렸고 최근에는 1단 액체로켓을 두 개 연결하여 발사능력을 1.4배로 향상시킨 대형 로켓 ‘H2B’의 개발에 성공했다. H2B 로켓은 국제우주정거장(ISS)에 식료품과 실험장비 등을 운반하고, 최대 30일가량 머물면서 우주 정거장의 불필요한 물품 등을 지구로 되가져오는 임무를 맡을 정도로 기술력이 뛰어나다는 평을 듣고 있다.
 
  그러나 1998년부터 2003년까지 세 번이나 발사에 실패했지만 일본의 여론은 담담했다. 거듭된 실패를 우주개발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밑거름으로 활용했다.
 
  ―한국은 교육과학기술부의 우주개발 진흥계획에 따라 2018년까지 우주발사체를 우리 기술로 독자 개발하도록 일정이 짜여 있습니다. 일정을 단축할 수는 없나요.
 
  이 질문에 박정주 단장은 “사실 9년이란 기간도 촉박하다. 75t급 액체엔진을 국산화시켜야 하고, 그러려면 우선 시험시설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자 이 원장은 “엔진 시험시설을 세우는 데 아무리 빨라도 2년 반이 걸린다”고 했다. 이 원장은 덧붙여 이런 말을 했다.
 
  “액체엔진 설계가 끝나고 제작하는 데 4년의 세월이 걸립니다. 또 2~3년간 시험을 해야 하죠. 일본도 H2 로켓을 개발하기 전 로켓 개발 경험이 20년이나 축적이 돼 가능했고, 발사하는 데만 8~9년 걸렸어요. 저도 시간을 당길 수 없나를 검토했는데 만만치 않아요. 다른 것은 빼더라도 시험시설 구축에 2년 반, 엔진 설계와 제작에 아무리 빨라도 4년이 걸립니다.”
 
  ―일정상 시험시설은 언제 착공하나요.
 
  “내년에 시작됩니다.”
 
  “예산을 두 배 이상 늘리면 기간 단축이 가능한가요?”라고 묻자 이 원장은 “거름 많이 준다고 자라는 식물이 계절까지 무시하고 열매를 맺을 수는 없다”고 했다.
 
  ―일본의 경우 이미 달 탐사위성 ‘가구야’를 쏘아 올린 데 이어 국제우주정거장에 독자 우주실험실을 갖춘 나라가 됐습니다. 우리의 기술은 일본과 비교해 어느 수준인가요.
 
  민 센터장은 “한국은 일본보다 약 30년 정도 늦게 우주개발에 참여했고, 올해 처음으로 한국 최초 우주발사체를 쏘아 올렸다”며 “일본이 나로호와 비슷한 수준의 고성능 로켓 H2A를 개발한 것이 1990년대 초반이다. 기술력을 따지면 15년 차이가 난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1980년대는 우주개발의 블랙홀
 
한국 우주 첫 발사체 나로호의 발사 장면을 지켜보던 학생들이 환호하고 있다.
  ―우린 왜 늦게 우주개발사업을 시작했나요?
 
  이주진 원장은 “1980년대 초부터 90년대 초까지 국내 우주연구의 민간활동이 없었다. 마치 블랙홀과 같은 기간이었다”고 했다.
 
  전임 蔡連錫(채연석) 항우연 원장은 한 인터뷰에서 “全斗煥(전두환) 정권이 들어선 후 로켓 분야의 과학자 수백 명을 외국으로 내보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에 대해 이 원장은 “내막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공백 기간이 생겼다. 1980년대 열심히 했다면 지금의 일본 수준은 됐을 것”이라고 했다.
 
  일본은 연간 29억 달러 이상을 항공우주개발에 쏟아붓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우주 예산은 지난해 말 현재 2억8700만 달러에 불과하다. 미국(463억8500만 달러)이나 프랑스(26억9400만 달러)는커녕 인도(9억6600만 달러), 캐나다(3억5800만 달러)에도 못 미친다.
 
  박 단장은 “GDP 대비 우주예산 비율은 0.03%로 미국의 0.29%, 일본의 0.06%, 프랑스의 0.10%에 비하면 크게 부족한 상황”이라고 했다.
 
  항우연의 연구인력 중 정규직은 664명, 그중 박사학위 연구원 비율은 42.3%다. 연구인력의 평균연령은 39.4세, 연간 예산규모는 3250억원 정도. 이 원장은 “지난해 기준으로 일본과 프랑스, 독일 우주청의 평균 인력은 3350명”이라며 “항우연 인력과 비교할 때 2660명의 인력 차이가 있다”고 했다. 인도 우주개발기구(ISRO)는 위성과 발사체, 발사장, 원격탐사 등을 연구하는 총 9개 산하기관에 1만600명이 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이 원장의 말이다.
 
  “우리나라는 우수한 두뇌, 손재주가 자랑거리지요. 여기에 전문성과 경험을 갖춘 인력만 키워 주면 됩니다. 현재 우주기술 연구원들은 기업 쪽 연구원을 합쳐 1000명 정도입니다. 선진국 수준이 되려면 최소 3000~4000명은 돼야 기술격차를 좁힐 수 있어요.”
 
  ―대학교육에 문제는 없나요?
 
  “전국 11개 대학 항공우주 관련 학과에서 배출하는 졸업자가 연간 400~500명에 이릅니다. 졸업 후 연구소와 기업이 이들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러려면 우주개발 프로젝트가 더 활성화되고 우주기술의 상용화, 산업화도 앞당겨야겠지요.”
 
  ―産學硏(산학연) 협력이 필요하겠네요.
 
  “항우연은 대학과의 공동연구 강화를 위한 학연 공동센터 운영 계획을 수립하고 있어요. 항우연 공동설계팀 등에 기업인력을 파견해 기술 전수 및 교류 등을 추진할 예정입니다.”
 
  나로호를 두고 절반의 성공이라 말한다. 다른 표현을 찾기도 어렵다. 연구원들은 눈가에 잔주름이 잡히고 머리카락이 세질 정도로 앞만 보고 달려왔다. 하지만 우주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공식적인 첫발을 뗀 것에 불과하다. 더 많은 실패를 거쳐야 할지도 모른다. 실패를 거듭하며 시행착오를 줄여가는 게 우주기술의 역사다. 이 원장은 “가야 할 길이 멀고 극복해야 할 기술도 많다”며 “하지만 두렵지 않다. 두렵지 않기에 다시 도전한다. 도전해서 그 기쁨을 국민에게 돌려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 액체연료 로켓 개발은 왜 어려운가?
 
  일본의 로켓 전문가 고다이 도미후미(五代富文)와 나카노 후지오(中野不二南)가 쓴 <일본과 중국의 우주개발>이란 저서를 보면 액체연료 로켓 개발의 어려움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액체수소의 비등점은 마이너스 253도로 극저온이다. 즉 마이너스 253도에서 증발이 시작된다. 따라서 액체수소를 저장하는 탱크, 배관, 밸브, 펌프까지 철저하게 단열하지 않으면 액체수소의 온도가 바로 올라가 기화해 버려서 기체 수소로 돌아가버린다. (중략) 산소나 질소 등은 극저온인 액체수소에 접하면 바로 고형화되어 버린다. 종종 발사 연기를 야기하는 밸브의 동결은 이러한 성질 때문이다. 연료공급계의 엔진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되며 최악의 경우에는 폭발해버린다. (중략)
 
  최대 난점은 터보 펌프이다. 탱크 내 액체수소를 빨아들여 압력을 올려 연료실에 내보내는 터보 펌프 안에서는 스크루와 비슷하게 생긴 인듀서라는 것이 분당 4만 회 이상 회전한다. 이 회전수가 높으면 높을수록 인듀서의 표면에 미세한 기포가 발생한다. 케비테이션이라 불리는 현상이다.
 
  케비테이션이 심해지면 대량으로 발생한 기포 탓에 인듀서가 공전하게 되므로 펌프 성능이 떨어진다. 뿐만 아니라 발생한 기포가 인듀서의 표면 부근에서 파열하는데, 그 에너지가 진동을 만든다. 미세한 기포라고 해도 방대한 양이 발생해 계속 파열하다 보면 그 진동이 인듀서에 영향을 미친다. 때로는 금속 피로를 일으켜 인듀서가 파괴되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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