國政에 파고드는 풍수도참

전직 대통령 國葬에 地官이 등장하는 나라

  • : 배진영  ironhee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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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대통령의 국장에 지관이 등장하는가 하면, 비서실 건물을 새로 짓는다면서 풍수를 청와대로 불러들인다.
이게 세계 최고 수준의 IT강국임을 자랑하고, 우주로 인공위성을 쏘아올리는 21세기 대한민국 지도자들의 모습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지난 8월 23일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안장됐다.
지난 8월 17일 세상을 떠난 金大中(김대중) 前(전) 대통령은 8월 23일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국립묘지)에 묻혔다. 그의 묘는 李承晩(이승만) 전 대통령 묘소로부터 100여m, 朴正熙(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로부터 350여m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20여m 떨어진 곳에는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代父(대부)이자 동지였던 鄭一亨(정일형) 전 외무부 장관 내외의 묘소가 있다.
 
  이곳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조카인 金寬宣(김관선·전 광주시 시의원)씨가 地官(지관)과 함께 선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소를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쓰기로 한 후, 정부는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 바로 옆에 있는 1000평 규모의 땅을 김 전 대통령의 묏자리로 권했다고 한다. 하지만 땅을 파 보았더니 돌이 많이 나와 지관이 “부적절하다”고 하는 바람에 포기하고, 대신 지관이 明堂(명당)으로 지목한 제1국가유공자 묘역 인근 80평짜리 땅을 택하게 됐다는 것이다.
 
  보도에 의하면 國葬(국장)보도가 나가자 전국에서 난다 긴다 하는 지관 150명 가량이 몰려왔다고 한다. 이들도 김 전 대통령의 묏자리를 보고 “穴(혈)이 좋다”, “흙을 파니 五色土(오색토)가 나온다”면서 명당이라고 입을 모았다고 한다.
 
  원래 낮은 평지인 이곳에 묘지를 만들기 위해 국립현충원 측은 차량 100대분의 흙을 실어다 성토를 했다. 국장을 생중계하는 장면을 본 시청자들은 양복에 운동화를 신고 지팡이를 짚은 지관이 관을 이리 놔라 저리 놔라 하면서 지시하는 모습을 지켜봤을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가톨릭 신자, 부인 李姬鎬(이희호) 여사가 감리교 신자인 것을 생각하면,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에 지관이 등장하고 명당 운운하는 말이 나오는 것이 걸맞지는 않아 보인다.
 
 
  大選 앞두고 조상묘 移葬한 정치인들
 
제15대 대선을 2년 앞둔 1995년 김대중 전 대통령은 경기도 용인에 가족묘원을 조성하고 부모의 묘를 이장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정치지도자들이 이른바 명당을 찾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지난 1995년 5월 아버지의 무덤을 고향인 전남 신안군 하의도에서 경기도 용인시 이동면 묘봉리로 옮겼다. 이어서 그의 어머니와 첫 부인, 누이동생의 무덤도 이곳으로 移葬(이장)했다.
 
  이곳을 잡아 준 사람은 ‘육관도사’로 널리 알려진 손석우씨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당시 이 묏자리에 대해 “풍수지리상 天仙下降(천선하강·‘신선이 내려온다’는 의미)의 터로, 자손 중에서 반드시 큰 인물이 나며, 하기에 따라서는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열려 있는 자리”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의 아버지가 전에 묻혔던 하의도 묏자리에 대해서는 “蜈蚣飛天(오공비천·‘지네가 하늘을 난다’는 뜻)의 터로 생명력이 끈질기며 반체제로 이름을 날리나 최고의 자리에는 오를 수 없는 자리”라고 했다.
 
  때문에 그때까지 大選(대선)에서 세 번 실패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97년 네 번째 大權(대권) 도전을 앞두고 조상의 蔭德(음덕)을 입기 위해 부모의 묘를 이장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돌았다. 그 덕분인지는 몰라도 그는 2년 후 대선에서 승리, 평생의 꿈을 이루었다.
 
  李會昌(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는 2007년 6~7월 祖父(조부)와 曾祖父(증조부) 등 直系(직계) 조상의 묘 9기를 충남 예산군 산성리에서 부모의 묘가 있는 예산군 녹문리 先塋(선영)으로 옮겼다가 구설에 올랐다.
 
 
  李會昌, 鄭東泳 대선 후보도…
 
2002년 11월 충남 예산군 산성리 선영에 마련된 부친의 묘소를 돌아보는 이회창 총재. 이 총재는 2004년 4월 부친의 묘를 예산군 녹문리로 이장했다.
  이 총재 측은 구설에 오르자 “예전 묘소 주변에 도로가 새로 나면서 이장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제17대 대선을 5~6개월 앞둔 시점인 데다가 녹문리 선영이 풍수지리상 “선비가 앉아서 책을 보는 地勢(지세)로 명당”이라는 소문이 나면서 이 총재의 대선 출마와 관련이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이에 대해 당시 이 총재의 측근인 李興柱(이흥주) 특보는 “이 총재는 친척들을 통해 이장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서 “대선 출마 등 정치와는 무관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 총재는 그해 12월 생애 3번째 대권도전을 감행했지만, 3위로 낙선했다.
 
  이회창 총재는 그보다 앞선 2004년 4월에도 父親(부친)의 묘를 이장했다가 언론의 관심을 끌었다. 이때 그는 2002년 10월 사망한 부친을 예산군 산성리 선영에 안장했다가 1년5개월 만에 녹문리로 옮겼다.
 
  당시 이 총재 측은 “집단거주지 500m 이내에 묘를 쓸 수 없다는 사실을 최근 알게 돼 이장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예산군청도 “원래 매장했던 곳은 도시계획법상 묘지를 쓸 수 없는 곳이어서 군청에서도 수차 이장을 촉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초 부친을 안장했던 산성리 선영이 풍수상 좋지 않다는 얘기가 있던 터여서 이 이장은 여러 말을 낳았다.
 
  이회창 총재 집안의 녹문리 선영에서 3㎞ 가량 떨어진 충남 예산군 신양면에는 金鍾泌(김종필) 전 국무총리 부모의 묘소가 있다.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은 2005~2006년 전북 순창군 구림면에 있는 부모의 묘를 새로 단장했다.
  김 전 총리가 고향인 충남 부여에 있던 부모의 무덤을 200여 리 떨어진 이곳으로 옮긴 것은 2001년 6월이었다. 묘소의 오른쪽 마을이 侍王里(시왕리), 왼쪽은 新陽里(신양리)니, ‘왕을 모시는 마을’과 ‘새 빛이 드는 마을’ 사이에 묘를 쓴 셈이다.
 
  주민들에 의하면 “시왕리 옆에 왕을 낼 묏자리가 있다는 얘기가 예전부터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때는 이미 정치환경이나 국민들의 의식 속에서 김 전 총리는 대권주자 반열에서 멀어진 다음이었다. 이후 그에게는 대권도전은커녕 정치적으로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도 돌아오지 않았다.
 
  鄭東泳(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은 2005~2006년 전북 순창군 구림면에 있는 부모의 묘를 새로 단장했다(月刊朝鮮 2006년 6월호). 농업기반공사에서는 그 무렵 그의 부친 묘소 앞에 있는 저수지 확장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이것도 말을 낳았다. 저수지가 생기면 그의 조부와 부모의 묘가 있는 곳이 背山臨水(배산임수)에 해당돼 좋은 명당자리가 된다는 것이었다.
 
  정 전 장관 선조의 묘 40여 기가 있는 구림면 일대는 조선 8대 명당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2007년 대선에 나선 정동영 전 장관은 대선 역사상 최고의 표차인 520여만 표 차이로 참패했다.
 
 
  청와대도 풍수 대열에 합류
 
  얼마 전에는 풍수를 찾아서 吉凶禍福(길흉화복)을 물어보는 대열에 청와대도 합류했다. 지난 4월 말 청와대 총무비서관실에서 “청와대 비서실 건물을 새로 지으려 하는데 의견을 듣고 싶다”면서 風水(풍수 보는 사람·지관) 金聖洙(김성수)씨를 부른 것이다.
 
  김성수씨는 “지금의 청와대 본관 터는 생기가 없어 옛날 본관 자리만 못하다”면서 ‘옛 본관 시절의 이승만·박정희·全斗煥(전두환) 전 대통령이 그래도 제왕다운 권위를 갖춘 분들이었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다고 한다.
 
  왜 내로라하는 정치인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이 이처럼 풍수에 연연하는 것일까?
 
  趙龍憲(조용헌) 강호동양학연구소장은 이회창 총재의 아버지 묘 이전이 화제가 되던 2004년 10월 5일, 조선일보 <조용헌 살롱>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인의 전통적 死生觀(사생관)에 의하면 사람은 육체가 죽는다고 해서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죽음이란 魂魄(혼백)의 해체였다. 죽는 순간 혼은 하늘로 올라가지만, 백은 뼈에 남는다고 생각하였다. 죽은 후에도 영혼의 50%가 뼈에 남아 있다고 여겼던 것이다. 죽은 자의 뼈가 묻혀 있는 묏자리는 나머지 50%의 영혼, 즉 백이 거주하는 집이 된다. 그래서 묏자리를 幽宅(유택)이라고 불렀다. 조선시대의 주택 개념에는 산 사람이 거주하는 양택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죽은 자의 영혼이 거주하는 음택도 역시 포함됐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이를 놓고 보면 우리 조상들은 생과 사를 양과 음의 관계로 보았음을 알 수 있다. 음과 양은 밤과 낮처럼 서로 돌고 도는 관계이다. 음이 양이 되고, 양이 음이 된다. 서로 물고 물리는 관계이기도 하다. 물고 물린다는 것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따라서 조상의 음택을 명당에다 쓰면 산 사람인 후손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非(비)명당에다 쓰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여겼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김대중 전 대통령은 부모의 무덤을 명당자리로 옮겨서 대통령이 됐을지 몰라도, 이회창 총재나 김종필 전 총리, 정동영 전 장관은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대통령이 되기는 했지만, 재임 시절 아들들이 비리 혐의로 잇따라 구속되고, 큰아들인 金弘一(김홍일) 전 의원은 파킨슨씨병으로 고생하는 등 집안에 우환이 끊이지 않았다. 본인도 마지막 한 달 동안 주위사람들이 “참혹하다”고 말할 정도로 심한 고통을 겪다가 세상을 떠났다.
 
 
  명당 덕을 보긴 봤나?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묏자리는 당대 최고의 지관 중 하나라는 지창룡씨가 잡아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덕분에 朴槿惠(박근혜) 의원이 대권주자 중의 한 사람으로 떠오르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남동생의 수차례에 걸친 마약 투여, 자매간에 어린이회관을 둘러싼 볼썽사나운 육탄전과 소송 등 집안에 분란이 끊이지 않는 것을 보면 그다지 좋은 자리인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시해한 金載圭(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경우는 더 맹랑하다. 김재규가 건설부 장관으로 있던 1970년대 중반 그의 아버지가 죽었다. 육관 손석우는 부친의 묏자리를 잡아주면서 “君王之地(군왕지지)로 최고의 명당”이라고 했다지만, 장용득이라는 지관은 “이 자리에 묘를 쓰면 3년 안에 장남이 以金致死(이금치사·총기 등 쇠붙이로 죽거나, 목 매달려 죽는 일) 당한다”며 말렸다고 한다.
 
  그 후 김재규는 중앙정보부장으로 발탁되어 명당 덕을 보는가 싶었으나, 결국 대통령 시해범으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말았다.
 
  盧武鉉(노무현) 전 대통령의 生家(생가)와 선영이 명당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 자리가 명당이었다면, 노 전 대통령은 왜 그렇게 非命(비명)에 가야 했을까?
 
  노 전 대통령의 생가는 안방에서 강한 기가 나오는 명당 중의 명당이지만, 새집은 산 가운데 능선의 水脈(수맥)을 걸치고 있어서 좋지 않았다고 말하는 풍수도 있다. 그렇다면 생가와 새집의 기운 사이에 우열이 있다는 것인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가와 사저. 풍수가들은 노 전 대통령의 생가(원안)는 명당이지만, 신축한 사저(뒤쪽)는 기운이 좋지 않다고 말한다.
 
  실학자들의 풍수 비판
 
  조선 후기 실학자 朴齊家(박제가)는 <北學議(북학의)> ‘葬論(장론)’에서 “오래 살거나 일찍 죽거나, 출세를 하거나 못하거나, 흥하거나 망하거나, 부자가 되거나 가난뱅이가 되거나 하는 것은 나름의 이치가 있는 것이고, 사람을 어디에 묻는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실학자 徐有(서유구)는 <林園經濟志(임원경제지)>에서 向背(향배)와 順逆(순역)의 자리를 따지고 五行(오행: 우주 만물을 이루는 다섯 가지 원소인 쇠·물·나무·불·흙을 말함)과 六氣(육기: 천지 사이에 있다는 여섯 가지 기운으로 陰·陽·風·雨·晦·明을 이름)의 운수를 살피는 일에 대해 “군자는 그런 술수를 취하지 않는다”고 일갈했다. 그는 “집터를 고르는 자는 그런 쓸데없는 일에 얽매이지 말고 추운지 따뜻한지, 물을 마시기가 편한지 등을 보면 그만”이라고 말했다.
 
  丁若鏞(정약용)은 “풍수론이 사실이라면 지관들이 그 명당을 스스로 차지하지 않고 남에게 알려주는 것은 무슨 이유냐”고 꼬집었다.
 
  이분들이 풍수의 허무맹랑함을 지적한 것이 벌써 200년 전의 일이다. 하지만 아직도 이 나라에서는 대선만 가까워지면 대권주자들이 當代發福(당대발복)을 기원하면서 조상의 뼈를 파다가 묏자리를 다투어 옮긴다.
 
  전직 대통령의 국장에 지관이 등장하는가 하면, 비서실 건물을 새로 짓는다면서 풍수를 청와대로 불러들인다. 이게 세계 최고 수준의 IT강국임을 자랑하고, 우주로 인공위성을 쏘아올리는 21세기 대한민국 지도자들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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