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모의 억척스러운 생명력과 업이, 당신이 낳은 자식들 가운데 가장 능력이 있는 아들인 장수로 하여금 그 업에 동참하게 한 것이다.
사람은 그냥 살다가 가는 것이 아니고 자기의 표적을 어떤 방법으로든지 남기고 간다.
모든 사람은 자기 유전자 들어 있는 자식들을 남긴다.
글 : 韓勝源
⊙ 1939년 전남 장흥 출생.
⊙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 19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 ‘목선’이 당선되며 문단에 데뷔. 광주 동신중학교 교사,
조선대 국어국문학부 초빙교수 역임.
⊙ 現 장흥 바닷가 ‘해산토굴’에서 집필 중.
⊙ 저서: <해변의 길손> <앞산도 첩첩하고> <아제아제 바라아제> <초의> <추사> <다산> 등.
⊙ 상훈: 현대문학상, 한국문학 작가상, 이상문학상, 대한민국 문학상,
미국 기리야마 환태평양 도서상, 김동리 문학상 등 수상.
장수는 늘 하여 오듯, 토굴에서 자고 아침밥을 먹으러 살림집으로 내려가자마자, 95세 노모의 방으로 들어가 잘 주무셨어요, 하고 인사를 올리며, 노모의 얼굴을 살폈다. 사람은 그냥 살다가 가는 것이 아니고 자기의 표적을 어떤 방법으로든지 남기고 간다.
모든 사람은 자기 유전자 들어 있는 자식들을 남긴다.
글 : 韓勝源
⊙ 1939년 전남 장흥 출생.
⊙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 19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 ‘목선’이 당선되며 문단에 데뷔. 광주 동신중학교 교사,
조선대 국어국문학부 초빙교수 역임.
⊙ 現 장흥 바닷가 ‘해산토굴’에서 집필 중.
⊙ 저서: <해변의 길손> <앞산도 첩첩하고> <아제아제 바라아제> <초의> <추사> <다산> 등.
⊙ 상훈: 현대문학상, 한국문학 작가상, 이상문학상, 대한민국 문학상,
미국 기리야마 환태평양 도서상, 김동리 문학상 등 수상.
노모는 꼬장꼬장한 목소리로 “오냐” 하고 나서 단단히 작정을 하고 있었던 듯 장수를 향해 말했다.
“나 너한테 한마디 해야겠다.”
‘자네’라는 호칭을 쓰고 ‘하소’를 하던 것과는 다른 말씨에 장수는 긴장했다.
“말씀해 보십시오.”
“우리 불쌍한 철웅이 그 새끼, 혼자 살도록 그냥 놔두고 있을 것이냐? 올해 서른다섯 살인데?”
타박이다. 노모는 혼자서 밤새도록 생각하고 또 생각을 해둔 것이다.
노모가 내 등에 새로 얹어 주려 하는 짐 때문에 짜증이 났지만, 늘 그래 오듯 천연덕스럽게 허공을 쳐다보았다.
장수는 어느 누구인가로부터 자기의 조용한 삶의 흐름을 방해받으면 짜증이 나곤 한다. 바야흐로 쓰고 있는 소설의 인물들과 교통 교감하고 있는 그에게 누군가가 어떤 일을 이렇게 저렇게 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그의 조용한 생각의 걸음걸이를 비틀거리게 하는 것이다.
“알았어요.”
심드렁하게 대답하고 응접실로 나와 식탁에 앉았다. 노모의 말 한마디에, 짊어지기 싫은 짐을 장수는 또 어찌할 수 없이 짊어진 것이다. 달갑고 공손하게 대답하지 않고, 심드렁하게 대답한 자기의 불효를 미워하면서, 떫은 입맛을 다셨다.
아내가 밥과 국을 가져다가 식탁에 놓았다. 장수는 통유리 창밖으로 눈길을 던졌다.
바다 쪽 시야를 모두 가릴 정도로 키와 몸통이 커버린 만리향나무의 가지 위에서 늘씬한 수컷 참새가 오동통한 암컷 옆으로 다가가면서 잔망스럽게 어른다. 암컷이 몸을 낮추면서 고개를 숙이자 수컷이 암컷의 등 위로 올라타면서 꼬리를 한껏 꼬부려 항문을 맞댄다. 일이 끝나자 암컷이 후르르 날아간다. 수컷이 뒤따른다.
사람도 짝을 지어 살아야 한다. 홀아비로 살고 있는 철웅이의 일이 어깨를 짓눌렀다. 고희를 넘겼음에도 불구하고 장수는, 이승과 저승의 삶을 넘나들며 사는 노모의 권력에 휘둘리고 있었다.
토굴로 올라오다가 뒷산에서 밀려오는 아카시아 향기에 사로잡혔다. 뒷산 기슭에는 아카시아 꽃송이들이 하 다. 허기 들린 듯 향기를 빨아들였다.
향수나라 여왕의 대관식 전에서 사열분열을 하는 새하얀 제복 입은 여군들의 몸에서 풍기는 향기를 생각했다. 수천, 수만 개의 꽃의 씨방(자궁)들이 풍기는 향기.
꽃들의 자궁은 벌들을 불러들인다. 아니, 벌들이 꽃의 자궁들에게 휘둘리는 것이다.
다산한 노모의 권력을 자궁 권력이라고 장수는 생각한다. 그 권력은 그물처럼 가족의 인맥을 복잡하게 형성시켜 놓았다. 가족은 구성원 각자를 다사롭게 품어 주는 둥지이지만, 그것은 구성원 개개인에게 어찌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이 되기도 한다.
‘업이다.’
서른다섯 살인 조카 철웅의 신세는 장수의 신세와 비슷한 데가 있었다.
철웅은 두 개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있었다. 음식을 제대로 요리해 먹지 못할 정도로 지능이 모자란 데다, 무릎의 관절염을 앓고 있는, 이해 환갑인 어머니와 저능 열등아인 스물여섯 살의 남동생이라는 짐.
철웅은 마흔다섯에 이승을 떠난 제 아버지 장원의 모습을 빼다박은 듯싶다. 통마늘처럼 뭉툭하고 운두가 긴 코, 쌍꺼풀 눈매, 광대뼈가 나온 깡마른 체질, 헌칠한 키와 긴 목, 겁 많고 우유부단하고 착하고 고분고분 순한 습성….
다행히 제 아버지보다는 지능이 높고 판단력이 훨씬 더 분명하다.
한국 땅 안에 사는 모든 가족은, 그 구성원 가운데 좀 뛰어난 개체를 뜯어먹고 산다. 철웅이 자기 가족들 가운데서 지능이 가장 높은 것은, 그들 가족에게 살점을 뜯기고 살도록 운명 지워진 것이다.
웃음이 없는 우울한 표정은 어린 시절에 주위 사람들에게서 업신여김을 당하며 자란 탓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아버지를 일찍 여읜 다음 모자란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철웅은 마을 동무들과 학우들에게서 무시당하고 따돌림을 당하곤 했다.
철웅의 아버지, 장수보다 세 살 아래 동생인 장원은 고물이 덜 찬 열등아인 데다 공부를 싫어했다. 겁이 많은 까닭으로 자기보다 한두 살 아래 동무들에게도 늘 얻어맞고 풀이 죽어 있곤 했다. 장수는 동생 장원을 때린 아이들을 쫓아다니며 혼내 주곤 했지만, 그들은 장원을 구박하는 일을 그치지 않았다. 자기를 구박하는 아이들이 늘어나자 장원은 초등학교를 중도에 그만두고 어머니 아버지 밑에서 농사짓고 김 양식업을 도왔다.
읍내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장수가, 방학 때나 토요일에 집에 갔다가 자취방으로 돌아올 때면, 곡식자루 반찬항아리를 노둣돌 길 어귀나, 차부까지 짊어져다가 주곤 했다.
장수는 평생토록 그 장원에게 부채감을 가지고 있었다. 어머니 아버지에게 부채감을 가지고 있듯이.
어머니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했다.
“너 잘되면 느그 장원이 동생 불쌍히 여기고 살림살이 돌봐 주어야 한다. 장원이는 니들 종노릇만 하고 컸다.”
장수는 중학교 교직에 있을 때 얇은 봉급을 쪼개서 동생 장원의 농토 아홉 마지기(1800평)를 사 주고, 김양식업에 들어가는 물자구입 자금을 대 주었고, 그에게 여자들을 짝지어 주었다.
첫 번째 여자는 금당도의 처녀였다. 그 처녀는 장원에 비하여 모든 면에서 과분하리만큼 예쁘고 영리하고 똑똑했다. 당시 그녀의 오빠가 지리산 밑의 큰 절 주지였는데, 그녀는 장롱 화장대 재봉틀 라디오 비단 이불 따위의 혼수를 가지고 시집왔다.
그녀는 오래지 않아 장원을 깔보기 시작했고, 장원은 그녀를 휘어잡겠다고 손찌검을 했다. 시집살이 한 달째 되던 날, 장원과 심하게 싸우고 난 그녀는 몸이 아프다면서 친정으로 돌아갔다.
친정 오빠는 그녀를 자기의 절에 데려다 놓고 이혼 소송을 제기했다. 자기 동생이 시집살이를 하는 동안 신랑을 비롯한 여러 가족에게 폭행을 당하고 정신이상이 되었으므로 이혼을 해달라는 것이고, 위자료를 달라는 것이었다.
장수는 그녀가 정신이상이 되었다는 것이 억지라고 생각하고, 그녀가 머무는 절로 찾아갔다. 관광객처럼 행세하면서 그녀의 동태를 살폈다. 그녀는 스님들의 일복을 입은 채 산책을 하고 있었다. 얼굴이 해맑았고, 표정도 밝았다.
그 모습에서 그녀와 그녀 오빠의 속사정을 읽을 수 있었다.
장수는 주지를 만나 화해를 청하고, 해결점을 찾자고 말했다.
“어차피 그들 둘이는 다시 만나 부부생활을 하기는 틀렸습니다. ‘善處(선처)’ 아닌 ‘禪處(선처)’를 해 주십시오.”
그녀의 오빠는 장수의 말 대접으로 “시집갈 때 해 가지고 간 모든 혼수를 돌려주는 조건”으로 소를 취하했다.
두 번째 여자는 한 번 결혼생활을 했다가 실패하고 이 포구 저 포구를 돌며 다방 종업원 노릇 술집 종업원 노릇을 하던 여자였다. 가방 하나 달랑 들고 들어온 그 여자와 동생의 혼례식을, 고향집 마당에서 마을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치렀다. 마땅하게 주례 맡아줄 사람이 없었으므로 장수가 주례 노릇을 했다.
그 여자와 장원의 사이는 오래지 않아 파경에 이르렀다. 장원은 그 여자로 인해 성병을 앓게 되었던 것이다. 장수는 그녀에게 몇 푼의 돈을 잡혀 주면서 내보냈다.
세 번째 여자는 진도의 한 궁벽한 마을의 처녀였다. 진도에 친정이 있는 이웃 마을의 한 아주머니가 중매를 한 것이었다.
광주에서 중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장수는 그쪽 집안에, 토요일을 맞아 오후에 혼례식을 치르자고 제안했다. 토요일 오전 수업을 마치고 버스를 타고 갔다. 버스는 해남의 벽파진에서 철선을 타고 건너갔다. 그 버스가 중도에 고장이 나는 바람에 장수는 땅거미가 내린 다음에 그 처녀의 집에 도착했다.
신랑을 따라간 상객들과 신부 집안의 사람들은 신랑의 형인 장수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장수가 도착하자, 신부 집안의 사람들은 장수를 칙사처럼 환대했다.
처녀의 집 마당에 초례청이 마련되어 있었다. 장수는 늦게 도착한 것을 사죄하고, 밤이 깊어지기 전에 혼례식을 치르자고 말했다.
깜깜한 어둠이 초례청을 덮었다. 신부의 오빠는 식을 치르기 위해 솜 한 줌을 철사로 감고 그 철사를 댓개비 끝에 부착시킨 다음 석유를 묻혀 불을 환하게 밝혔다.
신랑은 사모관대를 하고, 신부는 활옷에 족두리를 쓰고 병풍 앞에 나란히 섰다. 여기서도 장수가 주례 노릇을 했다. 축하객들은 마을 사람 몇 명과 친척 여남은 명이었다.
장수는 “옛날에는 모든 사람이 다 저녁 무렵에 혼례식을 치렀더랍니다” 하고 깜깜한 밤에 혼례식 치르고 있는 것을 합리화시켰고, 좋은 말들을 있는 대로 끌어다가 그들의 앞날을 축하했다.
신랑 신부가 서로 술잔을 나누게 하고, 절을 한 자리씩 하게 한 다음 신방으로 들어가게 했다.
이튿날 신랑 신부는 버스를 타고 장흥 회진 덕도 장원의 집으로 于歸(우귀)했다. 장원의 집에서는 신부를 받아들이는 잔치를 베풀었다.
그녀가 장원의 집에 들어와 시집살이를 하기 시작하자마자, 장수의 집안 사람들은, 진도에서 혼례식을 치르는 날, 신부의 집안 사람들이 깜깜해져서 도착한 장수를 칙사처럼 대접한 까닭, 깜깜한 밤에 혼례식을 치르면서도 불평하지 않고 치른 까닭을 알았다.
그녀는 글자도 몰랐고, 앉고 설 자리도 몰랐고, 달거리의 뒤처리도 제대로 할 줄을 몰랐고, 사람의 도리도 몰랐고, 음식 요리해 먹을 줄도 몰랐다. 여자로서의 가죽만을 갖춘 사람인 것이었다.
속을 아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로 부족한 장원에게 알맞은 여자일 거라고 생각했고, 그들 부부는 곧 자연의 섭리에 따라 딸 하나와 아들 둘을 낳았다.
아버지가 멀리 떠나간 다음 장수의 어머니는 장원의 살림을 일으켜 주려고 장수 부부를 들볶았다. 장수는 학교 다닐 적에, 아버지 어머니를 도와 농사짓고 김양식업 하고 살면서, 그의 곡식 보따리와 반찬단지를 날라 주곤 한 동생을 도와주지 않을 수 없었다. 돈을 모아 논 아홉 마지기(1800평)를 사 주었다.
어머니는 논 사 주는 것으로 만족해하지 않고, 김 가공공장을 하게 해 주자고 청했다. 장수는 그 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아내에게, 어찌했으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아내는 어머니의 요구를 거절하지 않고 수용하려 들고 있는 장수에게 따졌다.
“당신은 하여튼 어머니 말씀이라면 무조건이야. 제발 냉정하게 생각을 좀 해 보시오. 주위 사람들 밥 노릇만 하는 장원이가 김 가공공장을 운영할 수 있을 것 같소?”
장수는 아내의 판단이 옳다고 생각됐다. 아내의 말을 참고하여 어머니를 설득했다.
“장원이가 지고 일어날 수 있는 짐을 지워 주어야지, 너무 큰 짐 지워 주면 안돼요.”
어머니가 고집을 부렸다.
“혼자 하는 것이 아니고 마을 사람들 다섯 사람이 합자로 하는 것이니까 걱정할 것 없다.”
아내는 고개를 저으면서 따졌다.
“결국에는 장원이가 그 합자한 네 사람의 밥 노릇만 하게 될 거라는 말이요.”
장수는 아내가 거절하는 한 어머니의 청을 들어줄 수 없었다.
어머니는 고향 집으로 가지 않고, 장수가 데리고 있는 동생들의 방에서 농성을 하기 시작했다. 돈을 내놓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을 태세였다.
하릴없이 장수는 아내를 설득했다.
“망해 먹든지 삶아 먹든지 공장을 하게 해 줍시다.”
“당신은 왜 안된다고 딱 잡아떼지 못하는 거요?”
장수는 아내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눈을 내리깔고 아예 입을 다물었다. 침묵으로 아내에게 압박을 가했다. 아내도 물러서려 하지 않았다. 그와 아내는 사흘 동안이나 냉전을 했다. 장수는 밤이면 아내에게 등을 돌린 채 잠을 잤다. 아내도 그랬다.
아내는 나흘 동안이나 짜증을 내고 신경질을 내다가 스스로 손을 들었다.
“당신이 번 돈이니까 당신 알아서 하십시오.”
장수는 아내에게 고맙다고 하고 나서, 어머니가 요구한 대로 돈을 잡혀 주었고, 어머니는 “공장 잘되면 느그 돈부터 갚으라고 하마” 하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장원은 그 돈으로 김 가공공장을 하기 시작했는데, 거기에 문제가 생겼다.
장원은 공장을 돌리는 한 사람의 작인으로서, 공장에 넣을 많은 물김을 생산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여기저기에서 빚을 내다가 채취용 발동선을 사고, 수협에서 외상 물자를 들여다가 김발 백 척을 막았다.
불행하게도 하필 그해 늦은 겨울에 태풍이 불었고, 발동선과 김발들이 모두 부서져 버리자 파산을 하고 말았다. 자신감을 잃은 채 술만 마시고 살던 장원은 어디론가 잠적해 버렸다.
어머니가 장수에게 달려왔다. 장원을 구해 주라는 것이었다. 장수는 빚돈을 내어 보듬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빚쟁이들이 장수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몰려들었다. 그들은 모두 차용증서를 내밀었다.
장수는 그들이 내미는 차용증서와 준비해 간 돈 뭉텅이를 맞바꾸었다. 마지막으로 농협과 수협을 돌아다니면서 빚을 정리하고 나서 장원이 머물고 있다는 관산면의 한 마을로 찾아갔다.
장원은 남의 보리밭에 거름을 주고 있었다. 장수는 장원을 달래서 끌고 고향집으로 갔다.
“내가 네 빚 다 갚았으니까, 이제부터는 조용히 어머니 모시고 농사만 짓고 살아라. 딴생각 하지 말고.”
장원은 그의 당부에 대답을 하지 않고 고개를 떨어뜨리고만 있었다.
“왜 대답 않느냐?”
다그치자 그는 도리질을 하면서 “세상 살기 싫소” 하고 한숨을 쉬었다. 형의 돈을 끌어다가 망해 먹은 것이 염치없어서 그러는 줄 알고, 장수는 “나 돈 많다. 니 빚 갚고도 나 넉넉하게 살아갈 수 있다. 너만 어머니 모시고 조용하게 살면 된다” 하고 서울로 돌아갔다.
이후 고향에서는 장원이 연일 술만 마신다는 소문이 날아왔다.
어머니가 술을 마시지 못하게 말려도, 밤이면 마을 가게들에 나가서 소주를 사다가 어디엔가에 감추어 놓고 마시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가게들을 돌아다니면서 장원에게 술을 팔지 말아 달라고 통사정을 했다. 가게 주인들은 말했다.
“손수 술병 내려서 나발 불어 버리는디 어떻게 말리겠소?”
마침내 장원은 마흔다섯 살 되던 해에 간암으로 죽었다.
장원의 장례를 치르러 간 장수의 아내가 말했다.
“장원이는 김 공장을 감당할 수 있는 위인이 아녔어요. 어머니가 당신 욕심대로, 너무 벅찬 짐을 지워 준 까닭으로 명을 재촉한 것이었어요.”
장수는 아내에게 ‘당신의 말이 옳아’ 하고 말하지 못했다.
장원의 시신을 관에 넣어 매장할 때 장수는 죽은 동생과 약속을 했다.
‘동생아, 다 잊고 가거라. 니 자식들 내가 다 가르쳐 시집 장가보내서 잘살게 도와주께.’
그 약속은 하나의 멍에였다.
중학교를 마친 장원의 딸을 서울로 데리고 가서 미용학원엘 보냈다. 그 딸은 그 정도의 기능사가 될 자질은 넉넉했다.
장수의 아내는 그 딸을 자기 딸처럼 돌보아 주었다. 미용사 시험을 앞두고는 학원에서 특강을 받게 하고, 시험 보는 날은 도시락을 싸 들고 가서 응원해 주었다.
다행히 첫 시험에 합격을 하였고, 얼마 동안 한 미용사의 조수 노릇을 하다가 두 해 뒤부터는 미용사로 취직을 했다.
장수는 중학교를 마친 큰조카 철웅을 강진농고에 입학시켰다. 그 아이가 앞으로 건실한 농사꾼으로 살아가게 도와주고 싶었다. 장원의 빚에 넘어가려 하는 논 잡아 둔 것을 기반 삼아 농사를 지으며 살게 해줄 작정이었다.
철웅이 농고 입학식을 할 때 장수는 서울에서 강진까지 달려가 담임교사와 기숙사 사감에게 철웅을 당부했다.
서울로 돌아온 다음에는 수시로 철웅의 담임교사에게 그의 책들을 보내주곤 했고, 늘 전화를 걸어 철웅이 적응을 잘하는지 묻곤 했다.
담임교사는, 철웅이 돼지 키우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트랙터를 모는 일과 그것을 뜯어 보거나 고장 수리하는 일을 재미있어 한다고 했다.
철웅이 3학년 2학기 때에, 담임은 그 아이를 무안의 한 돼지농장에 실습을 보냈다고 말했다. 2만 마리쯤을 키우는 농장이라는 것이었다. 담임교사는 덧붙여 말했다.
“그 아이의 장래가 아주 밝습니다. 졸업을 하게 되면 군대가 면제되고, 농업 후계자 정착금을 몇천만 원 받게 되고, 이후로도 능력에 따라 많은 혜택을 입게 됩니다.”
장수는, 착하고 순한 철웅이 장차 돼지 농장을 하게 된다면 소설가인 자기보다 더 잘살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한데 철웅은 군대를 면제받을 수 있는 기간 동안 돼지 농장에서 일을 하고 나서 정착금을 받아 농사를 지으려 하지 않았다. 자동차정비 학원에 들어갔다. 트랙터를 몰거나 수리하는 일을 재미있어 하던 그는 자동차정비 공부를 하여 정비사가 되려 하고 있었다.
진로를 달리하여 홀로서기를 하겠다는 철웅을 말리지 않았다.
학원을 졸업한 다음 철웅은 장흥의 한 카센터에서 조수로 들어가 일을 했다. 찾아가 보니 기름 묻은 옷을 입은 채 일을 하고 있었다.
카센터 주인은 말했다.
“착하고, 고분고분 말 잘 듣고, 자동차 만지는 것을 아주 좋아합니다.”
장수는 철웅에게 한사코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첫째도 안전이고 둘째도 안전이고 셋째도 안전이다. 몸으로 일하고 사는 사람은 몸 한 부분이라도 없어지면 그 일생이 끝난다. 손가락도 조심하고 머리도 다치지 않게 하고, 전기도 조심하고….”
차량 정비에 자신을 얻은 철웅은 경기도 시흥으로 가서 취직을 했고, 돈을 모아 카센터 하나를 차렸다. 장애 3급 저능아인 동생을 데리고 가 부리면서 몇 년 동안 돈을 모아 연립주택 한 칸을 사고 난 다음 장수를 찾아왔다. 말쑥한 처녀를 데리고 왔다.
그들은 노모와 장수 부부에게 큰절을 했다.
처녀는 고향 이웃마을 처녀였는데 철웅보다 한 살이 위였다. 철웅과 초등학교 중학교 동기라고 했다. 처녀는 키가 작달막하고 오동통하고 얼굴이 예쁘장했다. 머리를 놀놀하게 염색하고 눈의 화장을 곱게 하고 상냥하고 예의바르고 말씨가 고왔다. 웃음 없고 수동적이고 겁 많고 순하고 우울한 철웅이에게는 과분한 서른한 살의 처녀였다.
요즘같이 살기 어려운 세상에, 그 처녀가 자동차정비 기술자인 철웅의 능력을 보고 그를 평생의 남편감으로 선택한 것이라고 장수는 생각했다. 고향의 한 친척에게서 그 처녀 집안의 깊은 내막을 듣고, 그 처녀가 실질적이고 만만한 철웅을 남편으로 선택한 까닭을 알았다.
처녀의 아버지는 장수의 초등학교 6년 후배였다. 그 처녀는 삼 남매 중의 장녀인데, 친정에 정신박약에다 지체장애가 있는 남동생이 하나 있었다. 그 남동생은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하고, 보호자가 용변 보는 것을 도와주어야 하고, 목욕을 시켜 주어야 한다고 했다. 육십대 중반인 아버지는 기껏 어장을 해서 몇 푼의 돈을 벌 뿐이므로, 그 처녀가 장차 집안을 책임져야 하는 형편이라는 것이었다.
장수는 차라리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철웅의 피동적이고 수동적이고 삶의 폭이 좁고 우울한 점을, 머리 잘 돌아갈 뿐만 아니라, 융통성이 넉넉한 그 처녀가 보완해 줄 듯싶었다.
장수가 노모를 모시고 장흥 바닷가로 내려와 있을 때였으므로 그는 아내와 함께 즐거운 마음으로 철웅의 큰아버지 큰어머니로서 사돈보기 하는 자리에 나갔다. 그들은 일사천리로 결혼을 했고, 시흥의 연립주택에서 신혼살림을 차렸다. 한 해 뒤에는 경기도의 카센터 가게를 접고 장흥으로 내려오겠다고 말했다.
장수가 그들에게서 그 말을 들은 시점은, 그들이 이미 장흥읍내에 가게를 물색해 놓은 상태였고, 개업을 준비하고 있는 때였다.
그 일을 주도한 것은 철웅의 아내였고, 철웅은 아내가 하자는 대로 따르고 있었다.
장수의 아내가 말했다.
“철웅이 쪽이나, 철웅이 각시 쪽이나, 다 특별한 사정이 있으니까, 그래서 장흥으로 내려오기로 작정한 모양이오.”
철웅이 쪽의 특별한 사정이란, 음식도 제대로 요리해 먹을 줄 모르는 다리 불편한 어머니와 저능아인 동생을 부양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의 아내 쪽의 특별한 사정이란, 장차 친정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돌아가신 다음 장애 심한 남동생을 부양해야 하는 것이었다.
“철웅이 각시가 장흥에서 여고를 나왔기 때문에 친구들이 아주 많다고 하네요.”
카센터를 개업하는 날 장수의 부부는 10만원짜리 봉투 하나만 호주머니에 넣고 갔다. 업소의 문 앞에는 몇 개의 화환과 화분들이 놓여 있었다.
오동통하고 예쁘고 상냥스러운 철웅의 아내는 손님을 맞이했고, 철웅은 찾아온 손님들에게 정비하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도구를 설명했다.
철웅의 아내는 장수 부부에게, 소형차와 대형차 들어 올리는 기계들을 설치하는 데 1억원이 들었다는 것과, 한 달에 50만원씩의 월세를 내야 한다는 것을 말했다. 살림집으로는 억불산 아래에 있는 연립주택을 마련했다고 했다.
카센터에 딸린 방과 응접실에는 철웅의 어머니와 처가의 장인 장모가 앉아 있었다.
장수 부부는 시설들을 둘러 살피고 나서 “이제 열심히 해 봐라” 하고 어깨를 두들겨 주고 돌아왔다.
장수는 친지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조카 철웅이 하는 카센터를 소개해 주었고, 읍내에 나갈 때마다 철웅의 카센터에 들렀다. 목이 좋은 업소여서인지, 철웅의 착함 때문인지, 차들이 즐비하게 몰려들었다. 철웅은 장수가 들를 때마다 기름 묻은 작업복을 입은 채 늘 바쁘게 차를 손보고 있곤 했다.
그런데 철웅의 아내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응접실 안에는 그의 넉넉하지 못한 철웅의 어머니가 앉아 있곤 했다.
“조카며느리는?”
장수가 물으면 철웅은 “집에 있어요” 하고 말했다.
“아니 왜 여기 나와 있으면서, 힘들게 일하는 너한테 간식도 해 먹이고 그럴 일이지….”
철웅은 대꾸하지 않고 하던 일만 계속했다. 그의 얼굴은 여느 때처럼 무표정했다.
얼마쯤 뒤 고향 사촌동생이 장수에게 전화를 걸더니 말했다.
“철웅이가 이혼했다고 하네요.”
그 말을 듣자마자 장수는 아내와 함께 철웅의 업소로 달려갔다. 이혼 말이 있던데 그게 사실이냐고 물었다.
철웅은 “오래됐어요” 하고 말했다.
장수의 아내가 따졌다.
“그 가시내 지금 어디 있냐!”
“군청 옆에서 식당을 낸다고….”
“그 가시내가 무슨 돈이 있어서 식당을 한다는 것이야? 뻔히 아는 것, 가난한 친정집에서 돈을 대줬을 리도 없고, 그 가시내가 처녀 적에 벌어 놓은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때껏 네가 벌어다가 바친 돈 빼돌린 것하고, 경기도에서 주택 정리하고 이 카센터 열면서 빼돌린 것 가지고 그러는 것이지…. 그래 가만 놔두고 볼 것이냐?”
철웅은 대꾸하지 않았다.
장수가 물었다.
“혼인 신고는 했었냐?”
철웅은 도리질을 했다.
“혼인신고도 안했더란 말이냐? 아니, 이 아이들 소꿉놀이도 아니고 도깨비들 장난도 아니고….”
장수의 아내가 말했다.
“사기 결혼이다! 네 돈만 빼내려고 일부러 혼인신고도 않고 있다가….”
장수는 끓어오르는 울분을 참을 수 없었다.
“그 가시내 혼을 내주어야겠다. 혼인신고를 하고 나서 이렇게 되었다면 용인할 수도 있지만, 혼인신고를 고의적으로 하지 않고 네 돈만 빼낸 다음 갈라서자고 하는 것이니까, 이것은 사기죄로 몰아야 한다. 변호사 선임해서 그 가시내 감옥에 처넣고 빼내간 돈 찾아야 한다.”
철웅은 그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땅만 내려다보았다.
장수의 아내가 장수의 옆구리를 질벅거렸다. 장수가 돌아보자, 아내는 얼굴을 찌푸리면서 고개를 저었다. 돌아오면서 아내가 말했다.
“철웅이는 아직도 그 가시내를 사랑하는가 봐요. 그냥 떠나가게 놔둘 생각인가 봐요. 혹시 마음을 돌려 다시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은근히 기대하고 있는지 몰라요. 그 아이 핸드폰에 무슨 노래가 입력되어 있는지 알아요?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돌아오라고, 돌아오라고’ 그 이승철이란 가수가 부른 노래여요. 아이고, 저 순하고 착해 빠진 놈, 짠해 죽겠어요.”
장수는 심호흡을 하고 나서 말했다.
“그 사기꾼 가시내가 장사하다가 돈이 부족하다고 철웅이한테 빌려달라고 손 벌리면 철웅이 저 순진한 것이 빌려주지 않을까! 이제는 더 뜯기지 않아야 하는데….”
“그렇게 못하도록 단속을 잘해야지요.”
장수의 머리에, 장원의 첫 번째 여자하고의 이혼 문제로 속 끓이던 일, 그 여자가 머무르고 있는 절로 찾아가 주지 스님과 마주앉아 주고받았던 말이 떠올랐다.
“어차피 그 아이들이 서로 다시 만나 살아가지 못할 바에는 얼른 제 갈 길을 가게 하는 것이 양쪽 보호자들이 할 일입니다.”
한식날, 업소 문을 닫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집에 온 철웅에게 장수의 노모가 말했다.
“중국이나 몽골이나 베트남 처녀들이 아주 좋단다. 거기서 데려다가 살아라. 그년 잊어버리고….”
장수의 아내도 같은 말을 했다.
장수가 말했다.
“그러기 전에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어.”
철웅의 차를 타고 산에 가서 제사를 모시고 오자마자, 철웅에게 헤어진 그녀가 장사하는 가게를 물었다.
장수는 미리 흰 종이와 볼펜을 호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갔다.
그녀가 운영하는 식당은 동교 파출소 옆에 있었다. 지은 지 오래된 납작한 건물이었다. 기둥과 문설주의 페인트도 우중충하게 바랬고, 기와지붕은 칠이 희부옇게 퇴색해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그녀 혼자서 저녁 장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집 안을 둘러보았다. 홀도 넓고 방이 네 칸이었다. 큰방에는 가스 설비가 되어 있고, 여남은 개의 고기 구워 먹는 불판들이 탁자들 위에 놓여 있었다. 낮 장사는 하지 않고 밤 장사만 하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당황해했다. 어색하게 웃으며, 장수의 부부에게 큰아버지 큰어머니라고 부르면서 툇마루에 앉으라고 권했다.
장수는 그녀의 차림새를 살폈다. 전과 다름없는 오동통한 몸매에 화사하게 화장을 한 하얀 얼굴이었다. 노란 물을 들인 긴 머리칼들을 색정적으로 보이도록 늘어뜨리고, 목 깊이 팬 블라우스에 짧은 치마를 입고 주황색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목에는 샛노란 굵은 금목걸이를 하고, 반짝거리는 귀걸이를 하고, 손목에 팔찌를 하고, 손가락에 보석 반지를 끼고….
첫눈에 그녀가 깊이 사귀는 남자가 있다고 생각됐다. 철웅과 헤어진 지 오래이므로 다른 남자가 생긴 것이야 당연한 일일 터이지만 속에서 분심이 끓어났다. 철웅의 돈을 빼내서 식당을 차리고 태연스럽게 잘살고 있다는 사실에.
“여기 앉아라. 이야기 좀 하자.”
그녀가 마주 앉았다.
장수가 말했다.
“지금 철웅이하고 너하고의 관계는 어떻게 되어 있냐?”
그녀가 태연스럽게 말했다.
“헤어진 지 1년 반이나 되었습니다. 다 끝이 났고, 이젠 남남으로 살고 있지요.”
장수가 낮은 목소리로 따졌다.
“형식상으로만 결혼하고, 혼인신고도 하지 않고 살다가, 철웅이가 벌어다 준 돈, 시흥 주택 처리한 돈 다 빼내고 헤어진 것…. 너 사기 결혼을 한 거야. 철웅이 쪽에서 고소하면 너 어떻게 된다는 것 아냐?”
그녀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옹색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시흥 살 때 내가 철웅씨한테 혼인신고하라고 서류 다 만들어 주었는데 철웅씨가 그 서류를 차에 싣고 다니다가 잃어버렸어요. 그래서 안 한 것이지 일부러 안 한 것이 아닙니다.”
장수는 쓴 입맛을 다셨다. 혼인을 빙자하여 사는 체하며 재산을 빼내고 나서 이혼한 그녀를 처벌해 달라고 고소를 하지 않을 바에는 이런저런 이야기가 필요 없었다.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혼인신고하고 산 경우보다는, 사실혼이 더 무섭다. 사기죄가 성립되는 것이니까, 감옥에 갈 수도 있는 거야. 그렇지만 같은 고향 사람이므로, 너를 처벌받게 하고 싶지 않다. 철웅이도 그것을 원치 않고. 그러니까….”
그녀 앞에 흰 종이 한 장을 내밀면서 말했다.
“여기다가 앞으로, 우리 철웅이가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하게 될 때에 딴죽을 걸지 않겠다는 각서를 써라.”
그녀는 굳어진 얼굴을 펴고, 장수가 불러주는 대로 각서를 쓰고, 서명하고 도장까지 찍어 주었다.
그 각서를 받아 들고 나오는 장수의 가슴이 쓰라렸다. 장원의 첫 번째 여자, 그 스님의 여동생 쪽에서 온 사람들이, 혼수로 해 온 장롱과 화장대와 이불 따위를 실어 가던 것을 생각했다. 어쩌면 아버지와 아들이 똑같은 길을 가고 있는 것이냐.
집에 돌아와 철웅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다.
“너희들 관계 내가 다 종결지었으니까, 베트남 여자를 얻든지, 중국 여자를 얻든지, 몽골 여자를 얻든지 좌우간에 새 길을 한번 찾아 봐라.”
노모가 장수에게 말했다.“문제는 철웅이 어머니다. 어떤 여자를 새로 얻어 들이든지 철웅이하고 그 모자란 어매하고 함께 살게 놔둬서는 안된다. 그년 옆에 있으면 흉칙한 냄새가 나서 견딜 수가 없어.”
장수의 아내가 말했다.
“그것은 어머니 말씀이 맞습니다. 어떤 여자가 들어오든지 제 어매하고는 함께 살지 않으려고 할 것이요. 어매를 시골집으로 보내서 혼자 살게 하고, 철웅이는 새 여자하고 단 둘이서만 살게 해 주어야 해요. 헤어진 그 가시내도 그 어매하고 모자란 동생 때문에 헤어진 것이어요.”
장수도 동의했다. 그렇지만 입을 다문 채, 창밖 하늘을 쳐다보며 부모 자식 간의 의리를 생각했다. 과연 그 마음 여리고 착한 철웅이 모자란 제 어머니와 동생을 시골집으로 보내 살게 하고, 동생을 조수로 부리되 출퇴근을 시키면서, 새 여자하고 둘이서만 살 수 있을까.
모자란 어머니는 자꾸 읍내의 가게를 찾아와 머물려고 할 것인데, 철웅이 매정스럽게 ‘왜 나오지 말라니까 자꾸 오느냐’ 하며 내쫓을 수 있을까.
철웅은 그렇게 할 인물이 아니다. 그에게는 잔인하고 독한 구석이 없다.
장수도 그랬다.
젊은 시절 장수는, 어머니가 낳아 놓기만 하고 거두지 못하는 어린 형제들을 외면하고 지금의 아내와 둘이서만 살지 못했다.
다산성의 어머니는 장수까지 열한 명의 아들딸을 생산했다. 갓난아이 때에 한 아이가 죽고, 딸 하나가 열아홉 살 때 죽고, 나머지 아홉 남매는 모두 건강했다.
장수 위로는 형과 누님이 있었고, 장수 밑으로는 여섯 형제가 있었다. 돈 버는 데 있어 무능한 형과 그 아래 여섯 형제들이 장수를 쳐다보면서 손을 벌리곤 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중학생인 동생들 셋을, 광주의 한 중학교에서 재직하는 장수에게 떠넘겼다. 장수는 그들의 아버지 노릇을 해야 했다. 그것은 장수가 아버지의 관을 매장할 때, 아버지와 한 약속 때문이었다.
“아버지, 어린 동생들 제가 다 키우고 가르쳐 시집 장가 보내 주고, 분가시켜 줄 테니까 마음 편히 영면하십시오.”
중학교 교사인 장수는 농사짓는 형과 장성한 두 동생, 장원과 장곤에게 이리저리 뜯기면서도, 어린 동생 셋을 안고 살면서 학교에 보내야 했다.
봉급은 그들의 등록금과 생활비로 다 들어갔으므로 항상 쪼들렸고 다달이 빚을 지며 살았다.
장인 장모는 사돈네 총각과 처녀들 때문에 자기의 딸이 고생바가지를 쓰고 있다고, 장수에게 노골적으로 타박을 했다.
장수의 아내는 시동생들의 도시락을 싸고 남은 김치 국물만으로 밥을 먹곤 했다. 고깃국은 아예 먹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자기가 낳은 아들딸들에게는 변변한 옷 한 벌 사 입히지 못하고, 처가 조카들의 옷을 얻어다가 입혔다.
장수는 빚에서 벗어나려고 밤을 새워 소설을 썼다. 당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신인작가였던 장수는 일 년에 겨우 두 편쯤의 단편소설을 문학지에 발표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그 원고료를 몇 푼 받으면 모두 세 동생들의 등록금으로 바쳐야 했다.
친구들은, 원고료 받아 자기들에게 술 한 잔도 사지 않은 장수를 인색한 사람으로 취급했다.
장모는 목이 멘 목소리로 장수에게 말을 했다.
“자네 각시 얼굴 좀 보소. 애기도 안 밴 사람이 기미가 끼었어. 얼마나 못 먹고 살면 저럴까….”
잠시 눈물을 찍어내고 말을 이었다.
“자네 동생들, 제발, 즈그들대로 살라고 내보내서 자취를 시키고, 자네들만 사소. 시동생들 가르쳐 보아야 나중에 다 쓸데없네. 곧 자네 새끼들 커나면 가르쳐야 하는데 그렇게 빚만 져서 어떻게 할라는가?”
장수는 장모 앞에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알겠습니다” 하고만 말했다. 그는 장모에게, 자기 아버지의 관을 땅에 묻을 때 아버지와 한 약속에 대하여 말할 수 없었다. 장수는 산 자에게 지켜야 하는 체면보다는 죽은 사람과의 약속을 더 무섭게 여겼다.
어찌할 수 없이 장모의 말을 무시하고 동생들이 대학 졸업할 때까지 그들을 품고 살았다.
장모가 장수에게 하던 말을 바야흐로 장수는 철웅에게 뱉어내려 하고 있었다.
“느그 어머니 고향 마을 집으로 보내고 새로 얻은 각시하고 둘이서만 살아라. 느그 어머니하고 살면 새로 얻은 각시도 견디지 못하고 나가 버릴지 모른다.”
아침밥을 먹으려고 내려간 장수를 노모가 불러 앉히고, 종이 한 장에 사인펜으로 굵직하게 쓴 것을 내밀었다. 거기에는 글씨들이 괴발개발 쓰여 있었다. 그것을 내려다보는 장수를 향해 노모가 말했다. “내가 궁합을 봐놨다. 잘 봐라. 자고로 우리 장씨 가문 사람들은 김씨하고 혼사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우리 철웅이에게는 서른다섯 살짜리 여자, 스물다섯 살짜리 여자가 딱 알맞다. 니가 나서서 베트남이나 몽골이나 중국에서 처녀 하나 얻어 붙여줘라. 혼사라는 것은 옆에 있는 어른이 서둘러 주어야 이루어지는 법이다. 지 머리를 어떻게 지가 깎는다냐?”
장수는 흰 머리칼에 깊은 주름살과 저승꽃 거뭇거뭇하게 피어 있는 노모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얼마 전에 해 드린 백내장 수술로 인하여 눈이 밝아진 노모였다.
노모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업을 생각했다.
다산성의 생명력 억척스러운 노모는 업을 많이 지었다. 지능이 많이 부족한 데다 요령이 없고 겁이 많은 장원을 낳은 것, 김 가공공장을 할 수 있는 장원이 아닌데 억지로 그것을 하게 한 것, 똑똑하고 참한 여자 거느릴 능력이 없는 장원에게 그와 지능이 비슷한 처지의 여자를 안겨준 것, 부족한 그들로 하여금 자기들과 비슷한 저능아 철성을 낳게 한 것이 모두 노모가 지은 업이다.
유일하게 똑똑한 철웅에게 오늘의 슬픈 삶을 가져다 준 것이 노모인 것이다.
노모의 억척스러운 생명력과 업이, 당신이 낳은 자식들 가운데 가장 능력이 있는 아들인 장수로 하여금 그 업에 동참하게 한 것이다.
사람은 그냥 살다가 가는 것이 아니고 자기의 표적을 어떤 방법으로든지 남기고 간다. 모든 사람은 자기 유전자 들어 있는 자식들을 남긴다.
장수는 슬픈 기억 하나를 떠올렸다.
장수가 여름방학 때 어머니를 뵈러 고향에 갔을 때 장원은 술에 취해 있었다. 그는 자기 방으로 가더니 포대기에 싼 갓난아기를 안고 와서 장수에게 자랑했다.
“형님, 제 아들 좀 보시오. 얼마나 예쁘고 잘났소?”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낳고 나서 세 번째 낳은 아들이었다. 장수는 첫눈에 그 아기가 아버지인 장원을 많이 닮았다고 느꼈다. 그 아기에게 아주 죄스러운 생각을 했다. 그 아기도 제 아비를 닮아 영특하지 못할 듯싶다는 생각이었다.
장원은 장수에게 자기 아들을 들이밀며 말했다.
“눈 초롱초롱한 것, 포동포동한 것, 콧대가 덜렁한 것… 앞으로 두고 보시오. 우리 집안에 국회의원이나 별 단 놈 하나 나올 것이오.”
장수가 보기로는 눈이 초롱초롱하지 않았고 흐릿했다. 입, 코, 눈이며… 혹시 저능아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장수가 외면해 버리자 장원은 아기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이놈아, 내가 바로 느그 아부지다. 보이냐? 커서 번쩍번쩍한 별을 달든지, 국회의원을 해먹든지, 장관을 해먹든지… 세상에 큰소리 한번 내라이.”
그로부터 3년 뒤에 장원은 간암으로 죽었는데, 그 장원이 보듬고 자랑하던 그 아이가 지금 정신지체 장애 3급 판정을 받은 철성이다.
장수는 문득 노모를 향해 냉엄하게 소리쳐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당신은 나서지 마십시오. 장원의 신세가 그렇게 된 것이 모두가 당신 때문이요.”
아, 이 얼마나 큰 불효인가. 입을 굳게 다물고 참는데 노모가 말했다.
“나도 텔레비전에서 많이 봤다. 베트남, 몽골… 어디에서 여자를 구해 오든지 절대로 김씨는 안된다. 내 말 명심해라.”
장수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베트남이나 몽골에 무슨 김씨 성 가진 여자가 있답니까?”
노모로부터 왼고개를 틀면서 생각했다. 식물이든지 동물이든지 사람이든지 혼혈아는 영리하고 강하다. 철웅도 베트남이나 몽골이나 중국 여자와 만나 살면 영리하고 강한 혼혈아기를 낳게 될지도 모른다.
장수는 어찌할 수 없이 철웅에게 또 다른 업 하나를 지을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철웅아, 오늘 일 끝내고 좀 오너라. 너하고 긴히 할 이야기가 있다.”⊙
그림 : 李友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