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진진 美術史 강좌] 사람들은 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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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一浩 이화여대 조형예술대 교수
⊙ 1959년 충남 부여 출생.
⊙ 대전고 졸업. 서울대 미학과 졸업. 同 대학원 문학 석사, 철학 박사.
⊙ 충남대 조소과 교수, 제2대 대전시립미술관 관장, 제5회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 전시총감독,
    현대미술학회 회장 역임.
⊙ 저서: <미술은 언어다> <감성으로 보고 이성으로 읽는다> <예술의 길 문화의 길>
    <예술과 상징, 상징형식> 등.
⊙ 상훈: 동아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 당선(1995), 월드컵 기랑(문화 부문).
[그림1] 스페인 북부 칸타브리아 지방에 있는 알타미라 동굴 벽화. 구석기 시대인 기원전 1만5000~1만년경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누군가의 사진을 바닥에 놓고 날카로운 바늘로 찌른다고 상상해 보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섬뜩함을 느낄 것이다. 왜 그럴까? 사진이 아닌 백지라면 그렇지 않을 텐데.
 
  우리는 사진 속 이미지가 현실 속 그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무언가 모를 믿음에 이끌려 섬뜩한 기분에 사로잡히곤 한다. 이처럼 우리 내면에는 이미지를 현실의 대용품으로 믿는,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원시적 心性(심성)이 자리하고 있다. 인간의 知的(지적) 능력이 발달함에 따라 그 믿음의 정도가 약해졌다는 점에서 원시시대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그 믿음에 더 끈끈하게 매달려 있었을 것이다.
 
  미술의 기원은 “사람들은 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까?”라는 물음으로부터 시작된다. 기원전 1만5000~1만년경 작품으로 추정되는 알타미라 동굴 벽화(그림 1)는 당시 사람들이 살았던 거주지로부터 멀리 떨어진 인적이 드문 산속에서 발견됐다.
 
  벽화 속 들소는 2.5m 크기로 기원전에 그려졌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뛰어난 색감과 입체감을 보여주고 있다. 콧구멍과 눈, 앞다리와 뒷다리 볼기 부분은 돋을새김으로 처리돼 있다. 이렇게 사실적으로 그려진 들소가 깊은 산속 동굴에서 발견됐다는 것은 이 그림이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순수미술이라든가 감상용으로 제작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추정하게 한다.
 
  美術史家(미술사가)들은 이 그림이 마술적·주술적 목적과 기능을 위해서 그려졌다고 설명한다. 위협적인 자연이나 야수의 위험으로부터 보호 받기 위해, 혹은 자신들이 원하는 동물들이 잘 잡히길 바라는 기원의 의미에서 그렸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기원전 사람들은 아마도 이 들소 앞에서 돌과 창을 던지는 연습을 하면서 위협적인 야수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려 했을 것이다. 또 실제로 사냥에 나갔을 때, 그 동물들이 자신들에게 쉽게 굴복되기를 바랐을 것이다.
 
 
  주술적 기능의 원시미술
 
[그림2] 피레네 산맥 동굴 암각화. 구석기 시대인 기원전 1만2000~1만년경 제작된 것으로,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돼 있다.
  기원전 1만2000~1만년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피레네 산맥의 동굴 암각화(그림 2)에는 산짐승인 순록과 연어 같은 물고기들이 같은 공간에 등장한다. 순록의 다리 사이에 연어들이 겹쳐져 있어 현실적인 묘사와는 거리가 있다. 연어 한 마리의 몸이 꺾여 있는 것으로 보아 연어가 잘 잡히기 바라는 마음을 담은 듯하다. 순록의 머리 위로 보이는 다이아몬드 형태는 숫자를 헤아리기 위해 그린 것으로 보인다.
 
  뿔 달린 순록이 뒤돌아보는 모습은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돼 있다. 당시의 미술 기법이 상당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다만 그들이 생각한 그림의 목적과 기능은 오늘날과 많이 달랐다. 원시시대의 벽화들을 보면 그림 속 이미지가 현실과 똑같은 힘을 갖는다는 믿음이 깊게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思考(사고)보다 원시적인 심성이 강하게 작용한 것이다.
 
  원시시대 미술이 마술적·주술적 기능을 갖는 데에는 이미지가 현실의 대용품이 될 수 있다는 당시 사람들의 믿음에 근거한다. 가령 어린아이가 빗자루를 들고 마치 그것이 말(馬)인 것처럼 가지고 놀 때 가졌던 믿음과 같은 것을 원시시대 미술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어린아이에게 말의 머리나 말갈기, 꼬리 같이 세부적이고 사실적인 것들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던 것처럼 원시시대 미술도 그들의 믿음을 충족시켜주는 형태만으로 충분했다. 따라서 원시시대 미술 대부분은 그 어떤 질서 잡힌 형식이나 합리적인 내용을 취하기보다 그들의 믿음과 바람에 근거한 방식을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인류 최초의 여인상이라고 말하는 일명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도 마찬가지다. 오스트리아 빌렌도르프 지방에서 발견된 이 여인상은 높이가 9.7㎝에 불과한 아주 작은 것으로, 기원전 2만년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뚱뚱하고 익살스럽게 생긴 이 여인상에는 눈도 코도 입도 없다. 얼굴과 손발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으며, 가슴과 복부만이 계란형의 둥근 형태로 강조되어 있어 아름다움이나 감상을 위한 목적보다 풍요와 多産(다산)을 기원하는 주술적 의미를 가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상의 원시미술 작품들과 지금의 미술작품들 사이의 조형적 관련성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다만 미술의 기원이라는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을 뿐이다. 대부분의 미술사 책들이 이집트 미술에서부터 조형적 특색들을 본격적으로 다루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전통과의 연속성이란 관점에서 볼 때, 이집트 미술의 조형적 전통이 그 뒤 그리스 미술에 끼친 영향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집트 미술에는 원시미술의 특징인 기능적인 요소가 남아 있다. 이집트 미술은 분묘 속의 벽화나 부장품들을 통해 전해진다.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왕은 절대 권력의 소유자이자 神(신)적 존재였다. 그래서 왕이 죽은 후에도 자신들을 보살펴 주고 영향력을 행사해 주길 바랐다. 그들은 이 마음을 그대로 미술에 담았다. 대표적인 작품이 하늘로 치솟는 형태의 피라미드다. 신적 존재였던 왕이 죽으면 신에게 돌아간다는 믿음으로 왕의 승천을 돕기 위해 피라미드를 만든 것이다.
 
 
  인체 비례와 균형미 뛰어난 이집트 미술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기원전 2만년경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높이 9.7cm.
  이집트 기자 지역에 있는 피라미드는 기원전 2500년경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지역의 피라미드는 왕족들을 위한 것까지 합쳐 본래 여섯 개였던 것이 지금은 세 개만 남아 전해지고 있다. 피라미드의 밑면은 한 변의 길이가 230m인 정사각형이고, 높이는 146m로 52도의 경사로 정점을 향해 치닫는다. 경사면을 보면 피라미드가 고도의 기하학적 측량술에 의해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고, 당시 왕의 절대권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하게 한다.
 
  피라미드 안에는 왕의 영혼이 저승에서도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屍身(시신)을 미라 형태로 만들어 안치시켰고, 머리맡에는 초상조각을 제작해 놓아두었다. 또 왕의 시중을 들 사람들과 살아생전 왕의 업적과 좋아했던 일들을 부장품과 함께 여러 가지 형상들로 묘사해 넣었다.
 
  기원전 1360년경 작품으로 추정되는 이집트 18왕조 라모스 왕 무덤벽화(그림 3)도 이런 맥락의 내용이 담겨 있다. 벽화 윗부분에는 왕의 전투 장면이 묘사돼 있고, 아랫부분에는 장례행렬이 그려져 있으며, 중간에는 왕에 관한 기록들이 상형문자로 새겨져 있다. 장례행렬에는 왕이 생전에 사용한 부채, 침대, 의자, 그리고 앞으로 먹을 양식을 들고 가는 侍從(시종)들의 모습이 묘사돼 있다.
 
  이집트 미술에서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아름다움보다 현실 속의 사건과 인물들이 영원히 지속되도록 기원하는 것이었다. 즉 이집트 미술의 목적은 이미지에 영원성을 담기 위한 것이었고, 이를 위해서 되도록이면 형태들을 명확하고 완전하게 묘사하는 원칙을 세워 지켜나가고자 했다. 사물이나 인체의 모습을 가장 특징적으로 나타내 줄 수 있는 각도에서 표현하기 위해 머리는 옆에서 본 모습, 눈이나 어깨 가슴은 앞에서 본 모습, 팔다리는 옆에서 본 모습 등으로 혼합하여 나타냈다. 19왕조 시대 센누템의 무덤 속 벽화(그림 4)에는 이러한 원칙 외에 신분이나 성별에 따라 다르게 표현하는 기법이 추가돼 있다. 가령 중요인물은 크게, 하인들은 작게 표현했는가 하면, 남자의 피부색을 여자의 피부색보다 검게 묘사했다.
 
[그림3] 이집트 테베에 있는 18왕조 라모스 왕의 무덤 벽화. 기원전 1300년경 축성한 것으로 추정한다.
  이집트 벽화 이미지들은 언뜻 보기에 알타미라 동굴벽화 속 들소 모습보다 묘사능력이 떨어져 보인다. 그렇지만 인체비례와 균형미는 훨씬 앞서 있다. 이는 피라미드 제작에서 보였던 질서 감각과 기하학적인 사고에 의한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만일 여러분이 이집트 벽화 속 인물들을 그대로 따라 그려 본다면, 그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며 그 원칙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집트 미술에는 이미지를 통해 영원성을 구현하고자 한 그 시대의 목적의식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런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집트 미술을 지탱해온 원칙들이 거의 3000년 동안이나 지속되었으며, 그 바탕에 깔린 기하학적 규칙성과 비례 및 균형이 지중해를 건너 그리스 미술의 건축과 조각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이집트 미술 역시 이미지와 현실의 경계가 약하다는 점에서 원시미술의 특징을 일부 유지하고 있다. 이집트인들은 생전에 왕이 외적을 물리쳤던 장면을 그려 넣음으로써 그 외적이 더 이상 침입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고, 그 이미지가 당시의 현실적 사건을 대신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감성으로 보는 미술, 이성으로 보는 미술
 
[그림4] 이집트 19왕조 센누템 무덤 벽화.
  원시 미술과 이집트 미술에서 미술의 출발점을 찾는다면, 이미지가 현실의 대용품으로 기능했다는 두 시대의 공통점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이미지를 통해 현실을 생각하고, 현실에서 이미지의 기능을 찾는 현실의 대용품으로 미술이 시작됐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후 각각의 시대가 부과하는 기능과 목적에 따라 미술은 각기 다른 형태로 변화해 왔다.
 
  현실의 대용품으로 시작된 미술이 각 시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 방식에 대해서는 해석이 다양할 수밖에 없다. 개인은 물론 시대에 따라 미술작품을 보는 시각과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필자는 미술을 보는 관점을 감성적 방법과 이성적 방법으로 풀어 가고자 한다. 감성에 의존하느냐 이성에 의존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조형적 차이를 예로 들고 싶은 것이다. 이는 어떤 방법이 옳고 그르냐를 따지자는 게 아니라 어느 쪽을 보다 더 강조하느냐에 따라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과 표현 방식이 달라졌는지 알아보기 위함이다.
 
  고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작품들을 감성과 이성이라는 대립적인 두 개념으로 설명한다는 것은 어쩌면 지나치게 단순화한 면이 없지 않아 있다. 그렇지만 필자는 그 양극화된 방법들이 갖는 대조적인 특징과 변화 양상을 이해하게 된다면, 그림을 통해 보다 많은 것을 보고 느끼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 시리즈를 마치게 될 때, 그림에 있어서 감성적인 특징과 이성적인 특징이 무엇이고, 그것들이 어떤 사회적·시대적 배경과 만나면서 어떻게 변해 왔는지 이해하게 된다면 소기의 목적은 달성하는 셈이다.
 
  필자는 앞으로 연재할 글이 미술작품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길잡이가 되길 바란다. 그 이후의 일은 각자의 몫으로 남겨 두고 싶다. 집안에 걸려 있는 한 장의 그림에서도 매일 다른 느낌을 받고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기쁨이 그림이 주는 매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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