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철도, 평균속도 유럽에서 가장 빨라
⊙ 스위스철도는 스위스 시계보다 더 정확, 대중교통 수송분담률 90%
⊙ 독일철도(DB): 총길이 7만5000km, 전철선로 4만3000㎞, 차량 20만량,
6000여 驛舍 운영, 연간 수송인원 17억명
⊙ 스위스철도(SBB): 총길이 5300㎞, 1일 운행횟수 7000회, 연간 수송인원 2억5000만명
⊙ 스위스철도는 스위스 시계보다 더 정확, 대중교통 수송분담률 90%
⊙ 독일철도(DB): 총길이 7만5000km, 전철선로 4만3000㎞, 차량 20만량,
6000여 驛舍 운영, 연간 수송인원 17억명
⊙ 스위스철도(SBB): 총길이 5300㎞, 1일 운행횟수 7000회, 연간 수송인원 2억5000만명

- 독일 철도기술이 집약되어 있는 고속전철 이체(ICE).
공항 중앙홀에서 만나기로 한 윤지근 차장(코레일 프랑스사무소 파견직원)이 약속 시간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프랑스 파리에서 오는 중이었다. 한 시간 가량 지나자 그가 숨을 헐떡이며 뛰어왔다.
“이체(ICE·독일 고속철도)가 고장 났어요. 파리에서 프랑크푸르트行(행) 이체를 탔는데 중간에서 멈췄어요. 임시로 마련된 테제베(TGV)로 갈아타고 오느라 늦었습니다. 이런 일이 자주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하필이면 이때 고장 날 게 뭡니까.”
이체가 고장 났다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정확성과 견고함을 내세우는 독일 아닌가. 프랑스 테제베와 우위를 다투는 이체는 독일 기차의 자존심으로 평가 받고 있다. 그런 이체가 독일철도 취재를 온 기자 앞에서 고장이 나 연착을 한 것이다. 윤 차장은 이체가 고장 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선로에 있는 자갈이 튀어올라 열차 車體(차체)를 때린 겁니다. 가끔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데, 차량 손상을 막기 위해 객차 밑부분에 철판을 붙여놨는데도 심한 경우 가끔 고장이 나요. 이체가 테제베보다 기술력이 떨어지거나 차량이 약해서가 아니라 전동방식이 서로 달라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죠.”
이체와 테제베의 전동방식에 대해 윤 차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이체는 기차의 앞쪽에 기관차가 있고 객차에도 별도의 추진장치가 있어요. 때문에 이체가 테제베보다 힘이 셉니다. 객차 크기도 이체가 더 커요. 반면에 테제베나 KTX 등 대부분의 기차는 객차에 별도의 추진장치가 없어 순수하게 기관차가 객차를 끌고 가는 방식입니다. 이체가 힘이 워낙 세다 보니 고속으로 달리는 도중 선로에 있는 자갈이 공기 저항을 받아 빠른 속도로 浮上(부상)하는 겁니다. 튀어 오른 자갈이 차량 밑부분을 지속적으로 친다고 생각해 보세요. 고장이 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해요. 이체 전용 선로는 이를 감안해 건설됐는데 프랑스 국토에 깔린 선로는 테제베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이체의 운행에 불리하죠. 이체는 프랑스 지역에서 가급적 저속으로 달리는데도 고장 나는 경우가 있어요.”
독일 이체와 프랑스 테제베의 특징을 단번에 비교할 수 있는 事故(사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윤지근 차장과 함께 도시철도(시내와 도심 외곽을 연결하는 철도)인 에스반(S-Bahn) 8호선을 타고 남서쪽으로 10분간 달리자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이 나타났다. 프랑크푸르트를 처음 방문하는 그는 “KTX가 모델로 삼은 테제베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이체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며 “이번 취재 동행이 독일 철도를 공부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것 같다”고 했다. 윤 차장은 필자에게 취재기간 동안 프랑스와 독일의 철도 시스템을 비교·설명하는 조언자 역할을 했다.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은 도시의 서쪽에 있지만 舊(구)시가지에서 가까웠다. 驛舍(역사) 앞쪽에는 카이저 스트라세(황제의 길)가 펼쳐져 있었다.
독일 대중교통의 요충지 프랑크푸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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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내부. |
뢰머광장 동쪽에는 로마 및 카롤링 왕조시대의 주춧돌이 일부 남아있고, 광장 뒤편에는 유명한 프랑크푸르트 대성당이 원형 그대로 서 있다. 1562년부터 1792년까지 신성로마제국의 대관식이 거행된 곳이다.
다음 날 오전, 프랑크푸르트 지역을 관장하는 독일철도주식회사(DB)의 책임자를 만나기 위해 중앙역으로 갔다. 통역을 맡기로 한 안경환(安京煥·72)씨가 약속 장소에 먼저 와 있었다. 국내 유명대학을 졸업한 그는 “30년 전 사업차 독일에 왔다가 지금까지 살고 있다”고 했다. 안경환씨는 “독일 철도에는 ‘자유’라는 철학이 깃들어 있다”며 “연계교통이 발달해 있고, 기차나 지하철 등이 모두 개방돼 있어 승객들 스스로 요금을 지불하고 질서를 지키는 자율성이 특징”이라고 했다. 그는 “기름값이 올라 최근 들어 기차나 지하철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했다.
안경환씨의 말처럼, 중앙역은 별도의 대합실이 없고 플랫폼에서 곧바로 기차에 오를 수 있는 구조였다. 개찰구는 검표원이 따로 없는 개방형이었다. 수화물 보관소도 특별한 검사대가 없었다. 파리의 경우, 테러 위험에 대비해 수화물 보관소에 물건을 보관하려는 승객은 사전에 검색대를 통과해야 한다.
잠시 후 크리스티앙 볼프 에세 DB 총괄본부장(프랑크푸르트 지역)과 토르첸 젤링어 홍보실장이 나타났다. 에세 본부장은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은 유럽과 독일의 교통 허브”라고 말했다. 그의 설명이다.
“프랑크푸르트의 인구는 60여 만명인데 유동인구까지 합치면 100만명이 넘습니다. 중앙역을 이용하는 승객은 하루에 35만여 명입니다. 하루 출발 노선이 800회에 달해요. 이곳은 여객 전용 터미널이라 화물용 터미널은 없어요. 지상에 20개가 넘는 선로가 있고, 대부분의 설비는 자동화돼 있습니다. 중앙역의 모든 시설물에는 고유번호가 매겨져 있는데 고장이 날 경우 수리반이 고유번호를 보고 곧바로 현장에 들어갑니다.”
젤링어 홍보실장은 “중앙역의 천장은 5000장의 유리창문으로 돼 있는데 예술적 가치가 높다”고 했다.
기차의 평균속도 유럽에서 가장 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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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티앙 볼프 에세 DB 총괄본부장(프랑크푸르트지역). |
―독일 철도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입니까.
“기차의 평균속도가 유럽 전체에서 가장 빠르다는 점입니다. 이체 전용 노선의 경우 300㎞ 이상 속도를 낼 수 있고, 독일 철도의 대부분 노선에서 일반 기차도 시속 200㎞로 달릴 수 있어요.”
에세 본부장은 독일 철도의 두 번째 특징은 지방분권이라고 지적했다.
“프랑스 파리에서 출발해 독일로 오는 고속열차를 타보면 흥미로운 점이 발견됩니다. 하루에 두 번 테제베와 이체가 번갈아 운행되는데 출발지인 파리의 다음 정착역이 독일의 지방도시입니다. 프랑스 구간을 논스톱 직행으로 온 기차가 독일 지역으로 들어오면 여러 역에 정차합니다. 독일의 경우 지방도시가 고루 발달해 있어 어느 한 곳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요. 독일 철도는 이런 점을 고려해 차량과 노선이 만들어졌습니다.
고속전철 이체는 전용노선뿐만 아니라 기존 노선에서도 200㎞ 이상으로 달릴 수 있어요. 그만큼 일반 철도 노선이 훌륭하게 정비되어 있다는 뜻이죠.”
에세 본부장이 지적한 독일 철도의 세 번째 특징은 독일 철도는 지방의 중소도시를 핏줄처럼 연결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철도 노선도를 보면 상당히 복잡해 보이지만, 이용승객이 목적지에 편리하게 도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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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르첸 젤링어 홍보실장. |
“독일 철도의 전략은 프랑스와 다릅니다. 속도도 중요하지만 안전이 더 중요해요. 지형이 프랑스와 다르기 때문입니다. 독일에는 노선의 직선 길이가 20km를 넘는 곳이 드물어요. 첫째가 안전, 그 다음이 속도입니다. 그렇다고 기차 속도가 다른 나라에 비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평균속도는 유럽에서 최고죠. 고속기차인 이체는 안전하기도 하지만 속도 면에서 테제베에 뒤지지 않아요.”
―어제 파리에서 출발한 이체가 운행 도중 고장을 일으켰습니다.
“국가 간 철도 시스템이 달라서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운행 시스템에 에러가 발생할 경우 신속히 해결하는 기술도 뛰어나죠. 검표 시스템이 자유롭다는 것도 큰 장점입니다. 노숙자나 알코올 중독자들이 간혹 驛舍(역사)에서 문제를 일으키곤 하지만, 부랑자들을 관리하는 특별팀이 승객의 불편을 덜고 있어요.”
―하루 이용 승객이 수십만명에 달하고 수백대의 기차가 오가는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을 관리하려면 일정한 통제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독일 철도는 국민성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기차역 안에서 담배도 피울 수 있어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도 내에서요. 자유로움, 그러면서 그만큼의 책임을 요구하는 것이 독일 철도의 정신입니다.”
―통일 이후 동독 지역의 철도 시스템은 어떻게 향상시켰습니까.
“통일 당시 서독에 비해 동독 철도가 낙후돼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통일 이후 동독 지역 철도 시스템을 實査(실사)한 결과 서독과 비슷해 큰 어려움은 없었어요. 문제는 ‘사람’이었습니다. 동독 지역 사람들의 생산력이 다소 떨어졌어요.”
이체와 테제베의 자존심 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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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의 지역열차 RB. |
통일 당시 서독 기차의 평균시속이 120km로 유럽에서 최고였는데, 동독은 서독의 절반 정도였다. 이런 속도 차이를 극복하는 데 당시 서독 화폐로 1억 마르크가 소요됐다고 한다.
―고속전철 이외에 자기부상열차를 개발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기술은 이미 개발해 놨지만 비용이 너무 비싸 상용화 여부는 고려 중입니다.”
―회사 수익을 늘리는 방안으로는 어떤 게 있습니까.
“비용절감을 위해 조직혁신을 취하고 있어요. 역사 내 부대사업에도 신경을 쓰고요. 흑자가 많이 나면 證市(증시)에 상장도 생각하고 있어요.”
―독일 철도는 친환경적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더군요.
“역사에 태양열과 地熱(지열) 등을 이용하고,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키는 전열기구도 사용하지 않아요. 기차 운행에서도 전기를 아끼는 쪽으로 가고 있어요. 뮌헨에서 함부르크를 오갈 때 기차 운행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4인 가구의 1년치 전기 사용량을 절감할 수 있어요.”
인터뷰가 끝난 후 同席(동석)했던 윤지근 차장이 이렇게 말했다.
“테제베와 이체는 모든 면에서 자존심 대결을 해요. 이체는 테제베를 두고 ‘속도가 빨라서 뭐 하느냐. 크기도 작고 불편할 뿐’이라고 혹평하죠. 테제베는 이체를 두고 ‘덩치만 컸지 속도도 느리고 고장도 잦다’고 비판해요.”
에세 본부장은 필자에게 독일철도주식회사(DB) 소개자료를 건넸다. 자료에 따르면, DB는 철도 운영을 맡고 있는 공기업으로 우리의 코레일과 같은 조직이다. 신규노선 건설 및 유지보수, 여객 및 화물운송 사업, 부대사업 등을 하고 있다. DB는 1999년 ‘독일철도그룹’이라는 지주회사로 전환된 후, 그룹 산하에 여객·화물·역사관리·선로회사·부동산 등 5개 자회사를 두고 있다.
DB의 총 직원은 2008년 현재 23만여 명이다. DB의 총 연장선로는 7만5000km이며, 이 중 전철선로는 4만3000km에 달한다. DB는 현재 차량 20만량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 중 화차가 16만량, 객차는 2만1000량이다. DB는 독일 전역에 6000여 개의 역사를 운영 중이다. 연간 여객수송 인원은 약 17억명이고 이 중 장거리 여객수송이 1억명이 넘는다. 재무현황은 2000년 이후 적자이며 정부의 재정지원이 계속되고 있다.
독일 정부가 작성한 ‘연방교통투자기본계획(2006~2010)’에 따르면, 독일 정부의 교통정책은 사람과 화물의 이동성을 개선하고, 이를 통해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꾀하는 데 맞춰져 있다. 독일 정부는 제한된 예산을 효율적으로 집행하기 위해 사람과 화물의 이동성 강화를 제일 중요한 조건으로 보고 있다. 독일 정부는 1991년부터 2005년까지 1650억 유로를 연방의 철도, 국도 및 수로 인프라 확충을 위해 투자했다. 향후 교통 분야가 연방정부의 주요 투자대상이 될 것이라고 한다. 독일 정부는 2010년까지 도로보다 철도 수송량이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측해 철도에 많은 예산을 편성하고 있다.
라인강변을 달리는 독일 시골 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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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렐라이 언덕에서 내려다본 라인강. |
일행이 탄 기차는 라인강을 왼편에 두고 평화롭게 달렸다. 라인강은 지금도 독일 경제의 동맥 역할을 하고 있다. 석탄과 각종 자재를 실은 화물선, 유람선이 자주 오갔다. 라인강의 오른쪽 언덕에는 포도밭이 펼쳐져 있었다. 비탈진 언덕에 대규모 포도밭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안경환씨의 설명.
“독일의 화이트 와인은 세계적으로 유명해요. 영국 왕실에도 공급할 정도였으니까요. 알코올 도수가 낮으면서도 입에 착 달라붙는 맛이 일품이지요. 리즐링이라는 포도 품종이 유명한데, 상큼한 향기와 약간의 신맛이 독일 음식에 잘 맞아요.”
중간 정차역에서 RB로 갈아탔다. RB는 우리의 시골 마을을 오가는 완행열차와 같았다. 기차 안에는 도시와 시골을 오가는 주민들, 통학생들이 여러명 있었다. 필자 일행이 탄 좌석 옆으로 독일 아가씨 세명이 자리를 잡았다. 그들과 잠시 얘기를 나눴다. 그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유치원 실습교사를 하고 있다”고 자신들을 소개했다. “기차를 타고 출퇴근한다”는 금발머리의 제니 양은 “기차를 타고 어디든 갈 수 있어 좋지만 기차요금이 다소 비싼 게 흠”이라고 했다.
또 다른 정거장에서 자전거를 들고 기차에 오르는 신체 건장한 독일 남성이 나타났다. 자전거를 타고 기차역까지 와서 기차를 타고 목적지까지 간 후 다시 자전거를 타고 집이나 사무실로 가는 독일 사람들. 일행이 탄 기차는 독일인의 ‘발’인 자전거를 품고 라인강변을 달렸다. 윤지근 차장은 “프랑스 파리도 시내에서 자동차의 운행속도를 30km 이내로 제한하는 정책을 추진 중”이라며 “유럽에는 사람과 자전거 중심의 교통정책이 이미 정착돼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안경환씨는 “독일 사람들 중에는 기차와 자전거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많아 동호회가 활성화되어 있다”고 했다.
갑자기 낯선 남자가 나타나 자신의 신분증을 보여주며 일행에게 “승차권을 보여달라”고 했다. 무임승차를 단속하기 위해 사복을 입고 근무하는 승무원이었다. 기차가 목적지인 고우어스하우젠 역에 도착했다. 로렐라이 언덕은 역에서 내려 택시로 5분 거리에 있었다. 독일의 서정 詩人(시인) 하이네의 시에 등장하는 로렐라이 언덕. 애절한 선율의 가곡 ‘로렐라이’가 귀에 들려오는 듯했다. 언덕에 올라 라인강을 굽어보며 카메라에 추억을 담았다.
돌아오는 길에 고우어스하우젠 역 바로 앞에 있는 독일 전통 호프집에서 라인강을 바라보며 맥주 한잔을 걸쳤다. 안주는 독일인들이 즐겨 먹는 프레첼을 주문했다. 구멍이 뚫려 있는 동그란 빵 위에 소금을 뿌려 구운 프레첼은 맥주와 찰떡궁합이라고 한다.
독일 철도의 역사를 배우는 어린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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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체 객차 내부. |
아침 6시54분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을 출발, 뉘른베르크를 거쳐 뮌헨까지 가는 이체 523편에 올랐다. 이 열차는 출발역에서 종착역까지 14개 역을 지나는 것으로 돼 있다. 이체의 좌석은 고정형이었다. 독일인 체형에 맞게 객차가 큼직했고, 의자도 테제베에 비해 넓었다. 좌석에는 노트북이나 휴대용 전자기기를 사용할 수 있는 전원 플러그가 있고, 8개 채널의 오디오 시스템도 장착돼 있었다.
필자와 마주보는 앞쪽 두 좌석에는 신장이 2m가 넘는 남성들이 앉았다. 좌석 테이블에는 이체 523편의 운행정보를 담은 안내서가 놓여 있었다. 윤지근 차장은 “테제베 좌석에는 이런 안내서가 없다”고 했다. 안내서에는 기차의 정차역과 연결되는 각종 기차 정보가 기재돼 있었다.
기차 안에서 사용하는 무선인터넷 사용요금은 10유로였다. 이체 523편에는 장애인실·가족실·PC실·수면실·식당차가 별도로 있었다. 윤 차장은 “테제베 1등실이 이체 일반석과 비슷하다”고 했다. 523편의 한 승무원은 “기관사를 제외하고 3명의 승무원이 근무하고 있으며 이 기차에는 일등석 98석과 일반석 330석이 있고 아침·저녁에 이용하는 승객의 70% 이상이 출퇴근하는 회사원”이라고 했다.
이체는 비츠버그 역을 지나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200㎞, 250㎞, 300㎞. 객차 문 쪽에 설치돼 있는 화면에 기차 속도가 찍혔다. 속도를 높이자 차체가 흔들렸다. 윤 차장은 “KTX보다 더 심하게 흔들리는 것 같다. 선로가 오래돼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목적지인 뉘른베르크까지는 두 시간이 걸렸다. 기차는 예정시각인 8시59분에 정확히 뉘른베르크 역에 도착했다.
철도박물관은 뉘른베르크 역에서 왼쪽으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었다. 3층으로 된 철도박물관은 200년 독일 철도 역사를 담고 있었다. 증기 및 디젤기관차·전동차·고속전철 등 각종 기차 모형과 우편·전화 등 통신자료도 있었다. 루드비히와 비스마르크의 마차 모형과 독일 최초의 기관차인 ‘아들러호’도 보였다. 3층에는 어린 학생들을 위한 체험시설도 설치됐다. 기차가 움직이는 기본원리를 배울 수 있는 공간과 기차놀이를 할 수 있는 놀이시설로 구성돼 있었다.
독일 철도의 역사는 독일 산업발전의 역사였다. 철도박물관 앞쪽에는 국립게르만민족박물관이 마주하고 있었다. 독일 사람들은 게르만족의 역사와 철도역사를 동일시하는 듯했다.
뉘른베르크의 구시가지를 가로지르는 페그니츠江(강) 다리를 중심으로 양쪽에 한국 시골마을의 5일장과 유사한 장이 섰다. 각종 야채와 달걀, 육류, 소시지, 치즈 등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장작불에 구운 소시지를 몇 개 먹었더니 시장기가 사라졌다.
국경도시 바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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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뉘른베르크에 있는 독일철도박물관. |
칼스허까지 가는 길은 거의 눈밭이었다. 며칠 전 독일 중부지역에 내린 눈이 녹지 않아 햇빛에 비친 雪野(설야)는 세상사에 지친 필자의 心身(심신)을 달래는 데 충분했다. ‘눈 덮인 저 작은 마을의 고택에는 어떤 사람이 살고 있을까’하는 상념에 빠졌다.
기차가 슈투트가르트 역에 정차하자 승객들이 대거 올라탔다. 승객 대부분이 칼스허까지 가서 독일의 남북을 잇는 메인 노선을 타고 각자의 목적지로 갈 것이다. 슈투트가르트 역에서 한 시간을 달려 칼스허에 도착했다. 찬바람이 옷깃으로 스며들었다. 오후 5시에 불과했지만 밤 기운이 역사를 물들였다.
역에서 한 시간을 기다리자 베른행 이체 279편이 도착했다. 279편은 당일 오전 12시에 독일 베를린 동역에서 출발, 종착역인 스위스 인터라켄에 밤 9시57분에 도착하는 고속열차다. 차가운 밤공기를 피해 기차에 서둘러 올라탔다. 필자와 윤 차장이 앉은 좌석 옆에는 대학생처럼 보이는 아가씨 대여섯명이 재잘거리고 있었다.
베른으로 가는 이체는 전날 탔던 이체보다 다소 낡아 보였다. 1세대 이체인 듯했다. 30분을 달리자 ‘오펜버그’에 도착했는데 많은 승객들이 내렸다. 아가씨 일행이 내리자 객차 안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갑자기 졸음이 몰려왔다. 30분간 눈을 붙였을까. 프라이부르크 역을 경유한 기차는 얼마 후 스위스 국경을 넘었다. 국경도시 바젤을 지나고 있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바젤은 스위스·프랑스·독일 등 3개국에 걸쳐 있는 특이한 도시다. 도시 대부분이 스위스 영토에 있지만 일부는 독일, 일부는 프랑스 영토다. ‘독일 바젤’에서 5km 떨어진 곳에 ‘스위스 바젤’이 시작됐다. 이곳을 지나자 스위스연방철도(SBB) 소속 승무원들이 승객에게 차표를 요구했다. 독일 기차에 스위스철도 승무원이 일하는 것이 이채로웠다.
윤 차장은 “프랑스와 독일을 오가는 이체나 테제베는 국경을 넘는다고 해서 승무원이 바뀌지 않는다. 파리에서 영국으로 가는 유로스타도, 파리에서 벨기에를 거쳐 네덜란드나 독일까지 가는 탈리스라는 국제열차도 마찬가지다.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일대를 지나는 기차만 승무원이 바뀌는 것 같다”고 했다.
자기 집 앞 눈만 치우는 스위스 사람들
기차는 스위스 베른에 밤 9시에 정확히 도착했다. 필자를 반기듯이 베른 역에는 진눈깨비가 내리고 있었다. 도로가에는 며칠 동안 눈이 내린 듯 눈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역 인근의 숙소에 짐을 풀었다.
윤지근 차장이 전날 들려준 말이 기억났다. 스위스人(인)과 독일인의 습성을 비교하는 얘기였다. 독일 사람과 스위스 사람이 국경지역에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고 있는데 눈이 오면 스위스 사람이 눈을 먼저 치운다고 한다. 그런데 다리의 반쪽, 정확히 말해 스위스 국경까지만 치운다는 것이다. 그런 스위스 사람들을 독일인은 욕하지 않는다고 한다. 독일인만큼이나 스위스 사람도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스위스는 국토의 대부분이 알프스 산악지역에 걸쳐있지만 지하자원이 별로 없다. 하지만 국민 1인당 소득이 4만 달러가 넘는 선진국이다. 과학기술이 발달했고, 숙련된 노동력이 풍부하며, 부가가치가 높은 기계·시계·화학공업이 발달했다.
스위스연방정부는 도로보다 철도망을 더 많이 건설해 왔다. 지형과 고도에 상관없이 오르내릴 수 있는 톱니바퀴 기차도 도입했다. 스위스에는 유럽에서 가장 긴 철도 터널과 가장 높은 철길이 있다. 독일의 이체나 프랑스의 테제베와 같은 고속열차는 없지만 독일·프랑스와 연계된 구간에 고속열차가 다녀 국민들이 이용하는 데는 전혀 불편하지 않다.
스위스 내에는 EC(유럽 주요 도시를 연결하는 국제 특급기차)·IC(국내 및 유럽 주요 도시를 연결하는 특급열차)·ICN(유럽 주요 도시를 연결하는 국제 야간열차)·CIS(이탈리아·스위스·독일을 운행하는 고속열차)가 운행 중이다. IR·R·RE·에스반(S-Bahn) 등의 지역열차는 도시와 작은 마을을 잇고 있다. 독일처럼 개찰구가 없어 승객이 플랫폼에서 곧바로 기차에 오를 수 있다.
전날 내린 진눈깨비는 다음 날 새벽 함박눈으로 변해 온종일 내렸다. 오전 9시에 베른역에서 독일어 통역을 맡은 이명순(스위스명 트레버 리·60)씨를 만났다. 이명순씨는 “공무원 출신의 스위스 남자와 결혼해 이곳에서 40년 동안 살고 있다”고 소개했다. 3남매를 둔 이씨는 스위스 한인회장을 지냈으며 베른에서 한 시간 가량 떨어진 인터라켄에 살고 있다.
스위스 시계보다 더 정확한 스위스 철도
이명순씨의 스위스 철도에 대한 설명이다.
“스위스 사람들은 기차가 출발하거나 도착하는 것을 보고 시계의 시간을 맞춘다는 얘기가 있어요. 스위스産(산) 시계는 정확하기로 소문나 있는데, 스위스 시계보다 더 정확한 게 스위스 기차라는 겁니다.”
―기차 시간이 정확한 이유는 뭡니까.
“국민성에서 기인한다고 봐요. 스위스 사람들은 신용을 제일 중요한 가치로 여겨요. 유럽의 다른 국민들에 비해 스위스 사람은 행동이 다소 느리지만 약속한 것은 철저히 지키죠. 예를 들어 가구업체에 식탁 하나를 주문하면 제작에서 배달까지 6~7주가 걸려요. 그런데 품질과 배달 날짜는 정확히 지킵니다.”
―신용을 생명처럼 여기는 정신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입니까.
“스위스의 徒弟(도제) 시스템이 이런 전통을 만들었어요. ‘길드’라는 상공업협회가 있는데 전문성을 중요시해요. 스위스에는 해당 분야의 전문가를 우대하는 경향이 있어요. 수도를 고치는 사람이라도 전문가로 인정받으면 우대하고 존경합니다. 스위스 학생들은 중학교를 졸업하면 대부분 직장을 잡고 자기가 하고 싶은 분야에 들어가 실무경험부터 배우죠. 이론을 더 배우고자 하는 직장인은 야간 고등학교를 거쳐 전문대를 다닙니다. 중학교 졸업생의 20%가 학업을 계속하기 위해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대학에 들어갑니다.”
이명순씨는 몇 년 전 전남 나주시에 작은 별장을 마련해 휴가 차 한국을 가끔 방문한다고 한다. 그녀는 “한국의 교통 시스템이 아주 좋아졌지만 비행기와 기차, 버스를 연계하는 시스템이 유럽에 비해 떨어진다”고 했다.
필자 일행은 베른역 바로 뒤쪽에 있는 베른대학으로 향했다. 스위스연방철도회사(SBB) 본사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밤새 내린 눈으로 캠퍼스는 하얀 눈밭으로 변했다. SBB 본사는 유럽풍의 고상한 건물에 입주해 있었다.
산악지형을 극복한 톱니바퀴 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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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니엘 해리 SBB 홍보이사. |
“기자들로부터 하루에 40~80통의 취재전화가 걸려오는데 일일이 대답할 수 없을 정도로 일이 많아요. 그만큼 철도에 관해 국민들의 관심이 많다는 증거죠.”
―SBB의 운영철학과 목표는 무엇입니까.
“속도보다 승객의 안전과 열차의 정확성을 원칙으로 합니다. 우리가 정한 시간대에 승객을 정확하고 안전하게 수송하는 것을 중요시하죠. 아울러 스위스 내의 주요 도시를 1시간 내로 연결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를 조금 더 단축시킬 계획도 갖고 있어요. 유럽의 다른 국가와 비교할 때 스위스 철도는 운영시스템이 간단해 승객이 편리하게 가고자 하는 곳에 갈 수 있어요. 티켓 시스템도 뛰어납니다. 티켓 한 장으로 트램(路上電車·노상전차)과 버스도 이용할 수 있어요. 국민의 3분의 1이 정기 승차권을 구입해 기차를 타고다닙니다.”
―산악지형에 철도가 도로보다 더 효과적입니까.
“스위스의 경우는 그렇습니다. 스위스 철도의 역사는 1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요. 오래 전에 스위스 정부는 철도가 도로보다 유리하다고 판단했고, 결과적으로 옳은 판단이었습니다.”
―현재 스위스 철도의 문제는 뭡니까.
“승객이 계속 늘고 있어요. 2030년이면 지금보다 80% 이상 승객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합니다. 현재 늘어난 승객으로 러시아워 때 일부 노선에서 지체현상이 나타나고 있어요. 기차 운행횟수를 늘리고 승차감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대책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기차가 정시에 도착하지 않을 경우 고객들의 불만은 어떻게 처리합니까.
“그런 사례가 많지는 않지만, 불가피한 이유로 밤기차가 목적지에 늦게 도착했을 때 택시비를 지급하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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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른대학 내에 있는 SBB 본사. |
“우리는 정부가 운영하는 특수법인이기 때문에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지 않아요. 다만 부동산 부분에서 임대사업으로 수입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런 수입도 철도 기반시설과 여객 부분에 재투자합니다. 회사는 대부분 정부 지원금으로 운영됩니다.”
―요금은 어떻게 결정합니까.
“철도와 버스 등 대중교통 관계자들로 구성된 교통정책위원회에서 정합니다.”
―철도 근로자들의 파업은 어느 정도 발생합니까.
“40년 동안 파업이 없었습니다.”
스위스는 철도 선진국의 典型(전형)이었다. 승객의 안전과 기차의 정확성, 높은 이용률, 철도의 관광자원화, 국가의 정책적 지원 등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이어 산악열차를 타보기 위해 인터라켄으로 향했다. 새벽부터 내린 눈은 오후에도 계속됐다. 인터라켄으로 가는 길에 스위스한인회장을 지낸 이명순씨로부터 한인회 소식을 전해 들었다.
“스위스에는 2500여 명의 교포가 사는데, 800여 명의 유학생을 제외한 교포 90% 이상이 여성입니다. 스위스 남성과 결혼한 한국 여성들이죠. 스위스 정부는 해외 이민을 받아들이지 않아요. 대신 스위스 국민과 결혼한 외국 남자나 여자에게만 시민권을 부여합니다. 영주권 발급도 엄격해요. 그래서 스위스 남성과 결혼한 한국 여성이 한인회의 대부분을 차지해요. 제네바에 180가구, 동부지역에 60가구, 취리히에 300가구가 삽니다.”
‘호수 사이’라는 뜻의 인터라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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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위스 인터라켄 인근의 설경. |
필자는 IC를 이용해 인터라켄에 도착했다. 베른에서 인터라켄까지 오는 동안 차창 밖에 펼쳐진 눈 내리는 스위스의 경치는 카메라 셔터를 아무 곳에나 눌러도 훌륭한 작품이 될 정도였다. 이명순씨의 설명에 따르면, 아름다운 설경이 겨울 내내 유지되는 데는 스위스의 독특한 기온 때문이라고 한다. 스위스의 겨울 기온은 섭씨 0도에 거의 고정돼 있다. 온도가 일정해 눈이 얼거나 녹지 않고 내린 상태 그대로 유지된다.
이명순씨는 스위스 철도와 관광자원에 대해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갖고 있었다. 알고 보니 그녀는 융프라우 산악철도 관광협회가 발급하는 ‘관광가이드 자격증’을 보유한 전문 관광가이드였다. 이씨는 “최근 들어 스위스 정부가 알프스 지역의 환경문제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다”고 했다. 그녀의 말이다.
“지난 10년 동안 융프라우 지역에만 세 번의 큰 홍수가 있었어요. 빙하와 만년설이 녹아 큰 홍수가 난 겁니다. 피해가 대단했어요. 제가 40년 전 이곳에 시집왔을 때는 빙하가 인터라켄 시내 인근까지 내려와 있었어요. 지금은 대부분 녹아 없어졌고 산중턱까지 올라와야 빙하를 볼 수 있습니다. 지구 온난화의 영향이 이곳까지 미치고 있죠. 그래서 스위스 연방정부는 이산화탄소를 줄여 지구 온난화를 방지하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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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융프라우요흐로 올라가는 산악열차. 눈이 무릎까지 쌓여도 운행이 가능하다. |
“현재 터널은 시험운행 중인데, 문제는 대형 트럭을 기차에 싣고 37㎞의 알프스 터널을 통과한 후 다시 기차에서 내리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거죠. 비용이 많이 들어 운송업체나 기업으로서는 불리한 조건인 셈이죠. 그래서 스위스 정부는 수송요금을 낮추거나 정부가 지원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스위스 정부는 90%에 달하는 철도 수송분담률을 더욱 높여 국내 운행차량의 수도 줄여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그 일환으로 스위스의 제1 중심도로인 제네바∼취리히를 오가는 차량을 철도로 흡수하기 위해 제네바∼취리히 철도노선을 확장하고 열차 운행횟수도 늘릴 방침이다.
산악열차로 짭짤한 관광수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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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라켄 동역. |
스위스는 神(신)이 내린 알프스의 절경을 이용해 막대한 관광수입을 벌어들인다. 정확한 액수는 알려지지 않지만 국가 수입의 10% 가량이 관광수입이라고 한다.
산악철도는 1898년에 시작돼 1912년에 완공됐다. 톱니바퀴열차를 처음 고안한 사람은 1860년대 기술자인 스위스인 리벤바흐이고, 융프라우 산악철도를 직접 만든 사람은 슈르트밀이다. 산악철도는 융프라우 頂上(정상) 바로 밑에 있는 융프라우요흐까지 올라간다. ‘요흐’란 스위스어로 ‘능선’이라는 뜻이다.
융프라우철도회사는 민간 산악철도회사이지만, 공기업 형태로 운영된다. 인터라켄에 본사를 둔 융프라우철도회사는 버니스 오버랜드철도, 벵엔알프철도, 융프라우반넨철도, 피르스트곤돌라, 뮈렌철도, 하더퓌니큘러 등 6개 관광산악철도를 운영하고 있다. 650여 명이 근무하고 있으며, 2007년 한해 동안 1억6600만 스위스프랑(약 1644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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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년 경력의 산악열차 기관사 코볼트 씨. |
그린델발트에서 선로 폭이 80㎝인 협궤기차로 갈아탔다. 산 중턱에 산악열차의 부품을 생산하는 ‘베르크슈타트 봅’이라는 철도회사가 있다는 게 특이했다. 융프라우로 올라가는 동안에도 창밖에는 눈이 계속 내렸다. 스위스의 눈은 童話(동화) 속에 나오는 별 모양의 하얀 눈 그 자체였다. 눈 내리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이 착해지는 곳, 그곳이 바로 융프라우였다.
목적지인 클라이네샤이덱까지는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톱니바퀴의 마찰음이 신경을 거스를 법도 한데 오히려 편안한 클래식 음악처럼 들렸다. 이명순씨는 “산악열차 초기 모델은 톱니바퀴 소리가 꽤 크게 들렸는데 지금은 기술이 발달해 소음이 별로 안 난다”고 했다.
스위스 산악열차를 생산하는 ‘스타들러(STADLER)’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톱니바퀴 열차 전문제작사다. 산악열차는 서울의 지하철과 같은 1만6000V 전력을 사용한다. 차량 자체에 재생전기 보존장치가 있어 열차가 하산할 때 전기를 생산·충전한다. 속도는 시속 28㎞이며 객차 3량으로 구성돼 있지만, 관광객이 많을 때는 6량까지 늘린다고 한다.
스위스 雪景에 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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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즈퐁듀를 준비하는 이명순씨 부부. |
클라이네샤이덱에 도착하여 난생 처음 보는 알프스 雪景(설경)에 빠져들었다. 해발 2000m가 넘는 곳이라 눈발이 다소 세졌지만 스키어 수십명이 행과 열을 맞춰 스키를 즐기고 있었다. 이명순씨는 “이곳에 오면 알코올이 들어간 스위스식 커피를 반드시 마셔야 행운이 찾아온다”며 역 맞은편에 있는 작은 레스토랑으로 데려갔다.
이날 저녁 이명순씨는 필자를 자택으로 초대했다. 그녀의 남편 트레버(72) 씨도 필자를 반겨줬다. 트레버 씨는 “치즈 퐁듀를 먹고 정신 차려 스위스의 정취를 제대로 느끼고 한국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치즈 퐁듀는 두세 종류의 치즈와 화이트 와인을 냄비에 넣고 끓인 후 잘게 자른 빵에 발라 먹는 스위스 음식이다. 지역에 따라 치즈 배합이나 섞는 방법이 달라 맛과 특징이 다르다고 한다. 트레버·이명순씨 부부는 돼지불고기와 김치를 적포도주와 함께 내놓았다. 스위스의 밤은 그렇게 깊어 갔다.⊙
▣ 독일의 고속전철 이체(ICE)
독일 고속전철 이체(ICE)는 1991년 6월 함부르크∼뮌헨 간 노선에서 처음 운행됐다. 제1세대 이체는 1985년부터 신설 고속선로에서 7년간의 주행시험을 거친 후 상용화했다. 프랑스 테제베와 일본 신칸센이 전용 노선에서 운행하는 것에 비해 이체는 기존 IC(도시 간 열차) 시스템의 한 요소로 운영돼 왔다.
이체는 고속교통 수단으로서의 기능 외에 기존 열차의 효율성을 높이는 마케팅 차원에서 도입됐다. 제1세대 이체는 동력차 2량, 중간 객차 10~14량의 장대열차로 구성됐다. 이후 하노버∼뷔르츠부르크, 만하임∼슈투트가르트의 2개 노선이 추가로 완성됐다. 이들 구간은 시속 250km로 달릴 수 있는 여객열차와 기존의 화물열차가 함께 달릴 수 있는 혼합운영 노선으로 만들어졌다. 1990년 독일 통일은 동서 간 고속철도 연결을 활성화시키는 계기가 됐다. 1993년 베를린∼하노버∼브레멘의 기존 선로에 1세대 이체가 투입됐다.
제2세대 이체는 1세대와 기술적 개념은 동일하지만, 필요에 따라 한 열차를 2개 열차로 분리할 수 있는 ‘단축열차’ 개념으로 설계됐다. 단축열차는 저밀도 수요 노선에 고속열차를 운행하는 데 효과적이며, 長大(장대)열차보다 10% 이상의 운행비용 절감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996년 베를린∼쾰른 노선에서 처음 운행됐다. 2002년 12월부터 상업운행을 시작한 쾰른∼라인암 마임 구간은 최고속도 300km의 고속열차 전용선이다.
독일 철도는 곡선구간이 많은 기존 선로에는 선로를 개량하지 않고도 고속주행이 가능한 이체-T(최고속도 160km)를 개발, 운영하고 있다. 1999년 슈투트가르트∼취리히, 프랑크푸르트∼드레스덴, 뮌헨∼베를린(2000년), 베를린∼함부르크(2001년) 노선이 대표적이다. 이체-T는 기존 열차보다 30~40분 가량 운행시간을 단축했다. 2006년 6월에는 곡선구간이 많고 부분적으로 전철화하지 않은 노선에서도 운행이 가능한 디젤차량 이체-TD를 운행하고 있다.
▣ 독일 철도 歷史와 현황
유럽의 중앙에 위치해 있는 독일은 기차의 天國(천국)이라 불릴 만큼 독일 내 모든 도시가 철도로 연결돼 있다. 유럽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기에도 편리하다. 런던에서 유로스타를 이용해 브뤼셀이나 파리로 이동한 후 파리에서 테제베나 이체를 타고 독일의 프랑크푸르트나 슈투트가르트에 도착한 후 기차를 갈아타고 동유럽까지 갈 수 있다. 유럽의 고속열차는 티켓요금과 별도로 예약요금을 내야 하지만 독일의 경우 티켓예약을 하지 않고도 승차할 수 있다.
독일 철도는 영국보다 10년 늦은 1835년 뉘른베르크∼휘어튼 노선 개통으로 철도시대를 열었다. 이후 10년 동안 전국에 28개 노선이 신설되는 등 확장가도를 달렸다. 1920년에는 막대한 국가재정을 집행해 지방정부가 소유한 민간철도를 독일제국 교통부 산하로 편입해 철도국유화 정책을 폈다. 2차 대전 당시 히틀러는 기차를 타고 戰線(전선)을 누볐다.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동·서독이 분단되면서 서독은 연방철도청, 동독은 독일제국철도가 철도정책을 맡았다. 1990년 통일독일 정부는 철도조직을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1993년에 마련한 철도구조개혁법에 따라 서독철도·동독철도·서베를린의 철도자산국을 통합해 공공부문과 상업부문으로 나눴다. 신설된 연방철도청(EBA)과 연방철도자산관리청(BEV)이 공공부문을, 독일철도주식회사(DB)가 상업부문을 맡았다.
연방철도청은 교통부 산하기관으로 철도시설의 관리감독·안전·차량 검수 등의 임무를 맡고 있다. 13개 주의 비연방 철도에 대한 감독권한도 갖고 있다. 독일연방철도자산관리청은 주무행정청·관청·출장소 및 사무소로 구성돼 있다. 철도의 장기채무 처리와 종사원 대책, 토지관리 및 매각 등을 맡는다.
▣ 독일 기차의 종류
⊙ ICE: 시속 350km로 달리는 고속열차. 독일의 주요 도시를 비롯해 스위스의 바젤·베른·취리히·인터라켄, 오스트리아의 빈을 오간다.
⊙ EC(유로시티): 유럽의 주요 도시를 연결하는 국제 특급기차. 독일과 인접한 오스트리아, 스위스, 프랑스를 주로 연결한다.
⊙ IC(인터시티): 시속 200㎞의 속도로 독일 내 주요 도시를 연결하는 특급기차. 이체가 다니지 않는 구간을 주로 달린다.
⊙ S-Bahn(에스반): 독일의 주요 도시에서 근거리를 달리는 보통 기차. 도시 근교를 비롯해 지하철이 다니는 곳에도 함께 운행된다. 도시와 도시외곽을 오가는 주민들에게 유용한 열차.
⊙ DB 나흐트주크(NachtZugs): 독일의 주요 도시와 동유럽 국가를 잇는 야간열차.
⊙ RB(리저널반): 작은 도시를 잇는 지역기차.
⊙ IRE: IC만큼 빠른 급행열차.
▣ 스위스연방철도회사(SBB) 현황
스위스는 유럽철도의 요충지로, 유럽철도 대부분이 스위스를 남북으로 관통하고 있다. 스위스는 국민 1인당 교통수송수단 투자규모가 세계 최고다. 스위스에는 민간철도회사(私鐵)를 포함해 50여 개의 철도회사가 있다. 이 중 스위스연방철도회사(SBB)는 스위스 최대 수송업체로 2만8000여 명의 직원이 있다.
SBB는 스위스의 주요도시를 연결하며, 전국적으로 800여 개의 역에서 30분~1시간 간격으로 운행한다. 1일 열차 운행횟수는 7000회이며, 연간 2억5000만명의 승객과 5500만t의 화물을 수송한다. 철도노선 총길이는 5300㎞. 스위스는 남한면적의 절반도 안 되지만, 철도노선 길이는 남한의 1.7배에 달한다.
스위스 철도노선은 전체 대중교통망 2만4500㎞의 12%에 불과하지만 철도 수송분담률은 여객 87%, 화물 90%를 차지한다. 철도가 대중교통 수송분담률의 90%를 차지하는 셈이다.
공기업인 SBB는 1999년 1월 정부가 주식 100%를 소유하는 주식회사로 전환됐다. 스위스의 철도구조 개혁은 다른 유럽국가들보다 늦게 시작했지만, SBB 경영진이 강력한 결정권한을 발휘해 개혁작업에 성공했다. 스위스 정부는 철도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조직분할 및 민영화에 소극적인 입장이다.
SBB그룹은 여객, 화물, 기반시설, 부동산 임대사업부 등으로 나눠져 있다. 화물은 SBB CARGO가 담당한다. SBB 카고는 세계 26개국에 물류서비스를 제공하는 스위스의 최대 화물수송업체다. SBB는 총 521개 역(중앙역과 189개의 지방역, 259개의 지역역)을 운영하고 있다. 차량 수는 1만7000량이다. SBB 기차의 최고속도는 200㎞이지만, 통상 160㎞ 내외로 달린다.
스위스에는 민간철도회사가 많지만 개인이 보유한 주식은 3~4%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대부분 州(주)정부가 갖고 있어 私鐵(사철)이라고 해도 공기업의 성격이 강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