權起澤 부산일보 정치부 차장대우〈ktk@busan.com〉

- 지난 2월 2일 청와대에서 만나 악수를 나누는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 ‘현재 권력’인 이명박 대통령과 ‘미래 권력’인 박근혜 대표가 협력해야 한나라당에 길이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관람객이나 시청자들의 반응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그들의 과장된 연기에 웃지 않을 사람은 별로 없다. 개그 프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거대담론이 아니다. 그냥 일상에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가벼운 웃음거리다. 그래서 연기를 하는 그들도, TV 앞에 앉아 있는 시청자들도 내용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프로그램이 끝나면 기억에 남는 것도 별로 없다.
여의도에도 봉숭아학당과 비슷한 곳이 있다. 바로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이다. 명색이 10년 만에 되찾은 집권당이고, 171석이나 되는 巨大(거대)정당인데 사실은 오합지졸이다. 하는 일도 없고, 해놓은 것도 없다. 당 지도부는 무기력하기 짝이 없고, 구성원들은 뭔가를 해보려는 의지가 없다.
‘두 목소리’ 나온 한나라당 지도부
당대표와 원내대표는 틈만 나면 야당을 향해 “협조하지 않으면 힘으로 밀어붙이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아쉽게도 상대방은 그들의 ‘협박’을 아예 들은 척도 안 한다. 어차피 그들의 목소리가 ‘실속 없는 말 잔치’에 불과하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주요 의사결정기구인 최고위원회의·주요당직자회의·의원총회 등을 취재하다 보면 과연 이 당이 집권당인가 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당 지도부가 ‘근엄하게’ 당론의 큰 방향을 제시하고 나면 일부 최고위원들이 분위기가 맞지 않는 장광설을 늘어놓는다. 그들의 말 중에 혹시 쓸모 있는 내용이 있을까 하고 일일이 받아 적어야 하는 기자들 입장에선 이만저만 고역이 아니다. 아침회의를 주도하는 사람들은 당 지도부가 아니라 ‘철모르는’ 최고위원들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돌 정도다. 이게 바로 집권 2년 차를 맞는 한나라당의 현주소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지난 연말 쟁점법안 처리에 黨力(당력)을 걸었다. 홍준표 원내대표는 원내대책회의에서 각 상임委(위)에 계류중인 법안들을 서둘러 처리해 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몇몇 상임위에선 법안처리가 ‘不知何歲月(부지하세월)’이었다. 결국 홍 원내대표가 공개 회의석상에서 해당 상임위를 직접 거론하며 조속한 처리를 재촉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지난해 9월 의결정족수 부족으로 추가경정예산안을 처리하지 못한 일은 한마디로 ‘코미디’다. 당초 한나라당은 민주당의 반대로 4조원 규모의 추경안 합의처리가 어렵게 되자 단독으로 예결위에서 통과시킬 예정이었다. 홍 원내대표가 직접 전화기를 붙잡고 예결위원들의 참여를 독려했다. 하지만 한나라당 소속 29명의 전체 예결위원 가운데 7명이 그 시각에 지역구에 내려가 있었다. 근원적으로 참여가 불가능한 상황이었고, 논란 끝에 추경안은 처리되지 못했다.
용산 철거민 농성자 사망사고에 대해서도 박희태 대표와 안경률 사무총장 등은 ‘先(선) 진상규명, 後(후) 책임자 문책’을 주장한 반면 홍준표 원내대표는 관리책임자로서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는 데 무게를 뒀다. 당 지도부에서 ‘두 목소리’가 나온 셈이다.
“한나라당이 집권당 맞습니까?”
신한국당 시절부터 국회와 정치권을 취재해 온 필자는 “한나라당이 집권당 맞습니까”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처음에는 상대방의 의도를 몰라 입을 닫고 있다가 계속 물으면 “글쎄요”라고 말한다. 진짜 여당이 맞는지 필자도 헷갈리기 때문이다.
현재 한나라당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주인의식 不在(부재)와 권력의지 상실이다. “한나라당이 내 黨(당)”이라는 주인의식과 “10년 만에 되찾은 정권을 내놓지 않겠다”는 권력의지는 온데간데 없다. 대신 “나만 잘되면 된다”는 이기주의가 판치고 있다. 정권의 연속성을 유지하려는 노력보다 자기만 잘났다고 설치다 정치판에서 사라진 열린우리당 386 前職(전직) 의원들의 쓰라린 경험을 보고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한나라당의 몇몇 초선 의원들은 ‘열린당 386’에 결코 뒤지지 않는 행동을 하고 있다.
한나라당이 지난 두 번의 큰 선거(大選과 總選)에서 모두 승리한 것은 대선 후보나 총선 후보가 잘나서라기보다 좌파정권에 대한 실망과 보수정권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한나라당 후보들이 다소 문제가 있어도 “좌파세력들보다는 잘하겠지. 살림살이가 더 나아지겠지”하는 소박한 심정으로 표를 몰아줬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정권을 창출한 지 1년도 채 안돼 대선과 총선의 의미를 망각한 듯하다.
우리 국민은 언제나 표에 관한 한 냉정했다. 민정당→민자당→신한국당으로 이어져 오던 보수정권을 한번에 무너뜨렸고, 권력을 계속 유지할 것으로 오판했던 좌파정권을 10년 만에 단죄했듯이 이 정권의 운명도 결코 장담할 수 없다. ‘權不十年 花無十日紅(권불십년 화무십일홍)’이라고 했다. 영원히 지속되는 권력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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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삼 정권 시절 정권의 군기반장 역할을 했던 姜三載 신한국당 사무총장, 崔炯佑 내무부 장관, 李源宗 정무수석비서관.(왼쪽부터) |
강삼재 총장과 이원종 수석은 수시로 만나거나 전화로 연락해 정국운영의 큰 틀을 잡았다. 당론에 배치되는 발언을 하는 사람은 중진이라도 메스를 가했고, 당론을 따르지 않는 의원들은 계속 불이익을 당했다. 물론 그때는 대통령이 집권당 총재였던 ‘黨政(당정)일체’ 시절이었고 지금은 당정이 분리됐다는 차이가 있지만, 권력의지와 당에 대한 로열티는 그때가 훨씬 강했다는 게 당시 신한국당을 출입했던 필자의 판단이다.
그들은 한마디로 정권을 위해 몸을 던졌다. 집권 말기에 불가항력적인 외환위기와 대선후보의 무사안일 등이 겹쳐 정권을 내놓긴 했지만 당시 집권당은 살아 움직였다.
집권여당 체질에 맞지 않는 이원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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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월 7일 오전 한나라당 당사에서 최고위원들의 발언을 듣고 있는 박희태(오른쪽) 대표와 홍준표 원내대표. |
과거 신한국당 시절에는 당대표가 정점에 있고, 그 밑에 사무총장과 원내총무(지금의 원내대표)가 위치해 있었다. 경우에 따라선 원내총무보다 사무총장의 파워가 강할 때가 많았다. 원만한 당 운영과 黨靑(당청) 협조체제 구축에는 이만한 제도가 없었다.
한나라당이 정권을 빼앗기고 야당이 된 뒤 ‘黨權(당권)·大權(대권) 분리’와 ‘당내 민주화’ 차원에서 원내대표의 위상은 한층 강화되고 사무총장의 격은 추락했다. 朴槿惠(박근혜) 전 대표가 당대표 시절 만든 제도다. 이 제도는 민주적인 정당 운영이라는 취지에는 맞지만 일관성과 신속성 측면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을 많이 받는다.
당·청 관계도 전환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李明博(이명박) 대통령이 진정으로 ‘脫(탈)여의도’ 식의 국정운영을 원한다면 한나라당에 전권을 부여해야 한다. 당대표의 위상을 존중하고 당정회의 등에서도 당의 입장을 적극 반영해야 한다. 한나라당 인사들을 정부와 청와대에 중용해 당·청 간 갈등요인을 차단하고 호흡도 맞춰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朴熺太(박희태) 대표와의 정례회동에서 박 대표의 정치인 입각 건의를 묵살하고 개각 내용을 사전에 충분히 알리지 않았다는 점은 당·청 관계 재정립 여부와 관계없이 바람직하지 않다. 이 대통령이 박 대표의 건의를 수용하는 형식으로 비례대표인 李達坤(이달곤) 의원을 행정안전부장관에 기용한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한나라당이 여당으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데는 계파별로 심각히 분열돼 있는 내부 사정도 한몫하고 있다. 정당에는 중진과 초선, 원로그룹과 소장그룹이 골고루 분포돼 있어야 한다. 4選(선) 이상의 중진들은 초선 의원들의 멘토가 돼 의정활동의 나침반이 돼야 하고, 초선들은 중진들의 정치경험을 배워야 한다. 때론 중진들이 낡은 정치관행에 젖어 정치발전의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자극제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한나라당의 의석분포는 극단적이다.
초선의원이 90명
選數(선수)별로 보면 6선 이상은 鄭夢準(정몽준)·李相得(이상득)·洪思德(홍사덕) 의원 등 3명이고, 5선은 없으며, 4선은 朴槿惠(박근혜)·洪準杓(홍준표)·金武星(김무성)·鄭義和(정의화)·朴鍾根(박종근)·李海鳳(이해봉)·李敬在(이경재)·李允盛(이윤성)·黃祐呂(황우여)·金映宣(김영선)·南景弼(남경필)·安商守(안상수) 의원 등 12명이다. 전체 171명 중 4선 이상은 고작 15명에 불과하다. 반면, 정치 초년병인 초선의원은 90명이나 된다. 정치적 입지가 애매한 再選(재선)은 41명, 허리 역할을 하는 3선은 25명이다.
정치공학적 측면에서 초선의원이 많다는 게 나쁠 것은 없다. 당에 활력이 넘치고 당이 살아 있다는 증거다. 정권과 대립각을 세워야 하는 야당 입장에선 투쟁력을 겸비한 초선의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하지만 여당은 안정적인 당 운영을 위해 중진의원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야당과의 극한적인 대립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경험 있는 중진들의 정치력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과거엔 故(고) 金潤煥(김윤환) 전 의원,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 朴相千(박상천) 민주당 의원, 金元基(김원기) 전 국회의장 같은 중진 정치인들이 막후 채널 역할을 많이 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한나라당은 2월 임시국회가 끝나는 3월 초쯤 홍준표 원내대표의 후임을 뽑는다. 홍 원내대표가 주요 쟁점법안을 처리한 뒤 그만두겠다는 뜻을 이미 밝힌 데다 당내에서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문제는 마땅한 후임자가 없다는 것이다. 여당 원내대표는 4선 의원 몫인데, 박근혜·박종근·이해봉·이윤성·김영선 의원 등은 구조적으로 원내대표를 할 수 없다. 안상수 의원은 원내대표를 벌써 지냈고, 남경필 의원은 나이가 너무 어리다. 남은 사람은 김무성·정의화·황우여 의원인데 정 의원과 황 의원은 정치력이 부족하다는 평을 듣고 있고, 김 의원은 원내대표를 할 생각이 없다.
박희태 대표의 측근 의원은 일전에 “지난번 총선 때 중진들을 마구 잘라 버려 원내대표를 맡을 사람이 없다”며 “사람을 추천해 달라”고 주문한 적이 있다. 그는 직접 의원수첩을 꺼내 들고 사람들을 찾기도 했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 안팎에선 “몇몇 인사들이 18대 총선이 끝난 뒤 자신들이 당을 장악하기 위해 경쟁이 될 만한 중진들을 다 날렸다”는 얘기까지 나돌고 있다. 일부 인사는 그런 속내를 공공연히 드러내기도 한다.
親李, 親朴으로 갈린 두나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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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월 5일 한나라당 최고위원ㆍ중진회의에 참석한 박희태 대표, 박근혜 전 대표, 이상득 전 국회 부의장. |
친이계는 당직자를 임명할 때 친이 인사를 먼저 찾는다. 사무총장과 대변인, 본부장급 인사 등 핵심 당직자는 물론 심지어 전당대회의장, 재정위원장 등 원로급 정치인이 맡는 당직도 친이계 인사를 먼저 물색한다. 친이계 중 적임자가 없으면 중도 성향, 그래도 없으면 계파색이 옅은 친박 의원에게 맡긴다. 일반 사무처 실·국장급도 친이계 일색이다.
의석분포상으로는 아직까지 친이(90여명)가 친박(60여명)보다 많다. 越朴(월박: 친이에서 친박으로 넘어온 사람), 復朴(복박: 친박으로 복귀한 사람), 주이야박(낮에는 친이, 밤에는 친박)이란 말이 유행했던 것처럼 친박으로의 쏠림이 한때 유행하기도 했다.
친박은 결속력이 강한 반면 친이는 약하다. 친이는 李相得(이상득)계, 李在五(이재오)계, 李明博(이명박) 직계, 鄭斗彦(정두언)계로 헤아릴 수 없이 분화돼 있다. 친박계는 오로지 ‘박근혜’뿐이다. 친박계에선 이탈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이런 경향은 내년 7월 당대표 선거가 끝나고 2012년 대선과 총선이 가까워질수록 심화될 것이다.
이처럼 기형적인 당운영 시스템, 일방적인 당·청 관계, 불균형 의석분포 등에 따른 총체적 모순 구조는 지난해 연말 쟁점법안 처리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어쩌면 연말 쟁점법안 처리 실패는 애초부터 예견된 것인지 모른다. 원내 총사령탑인 홍준표 원내대표는 임시국회 소집 직전 “예산안 처리를 한 만큼 쟁점법안도 전쟁으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선전포고를 했다. 상대방에게 전쟁을 선포해놓고 협상을 시작한 것이다. 홍 원내대표가 상대를 너무 낮춰 봤거나 본인이 너무 안하무인했거나 둘 중 하나다.
한나라당이 조급해 했던 것도 실패의 한 요인이다. 당초 한나라당은 연말 임시국회에서 115건의 쟁점법안들을 일괄 처리하겠다고 장담했다. 정기국회 국정감사와 예산안 처리로 국회의원들이 녹초가 된 상황에서 당 지도부가 무턱대고 밀어붙인 것이다. 그러나 한계를 절감한 당 지도부는 곧바로 85개로 줄였고, 야당이 이마저 반대하자 사회개혁법안을 다시 제외했다. 결국 밀리고 밀려 ‘쟁점이 없는’ 법안 58건을 처리하는 것으로 임시국회를 끝냈다.
말만 있고 행동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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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12월 18일 韓美 FTA 비준동의안 상정 저지를 위해 회의실 문을 해머로 부수는 민주당 관계자들. 국회 다수당인 한나라당은 야당의 폭력을 수수방관했다. |
盧武鉉(노무현) 정권 초기 親盧(친노)와 386세력들은 기세등등했다. 자신들이야말로 명실상부한 개혁세력이고, 나머지는 舊惡(구악)이었다. 그들에겐 구악이 청산의 대상이지 화해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들은 구시대의 적폐들을 한꺼번에 일소하겠다고 달려들었다. 당내 온건파 중진들도 있었지만 이들의 기세에 주눅들어 보고만 있었다.
이들은 집권하자마자 국가보안법 폐지안, 사립학교법 개정안, 과거사 관련법안, 언론관련 법안 등 소위 ‘4대 법안’ 처리를 무리하게 몰아붙였다. 국민적 호응도 좋지 않았고 자신들의 힘만으론 어렵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호기를 부렸다. 결과는 뻔했다.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것은 물론 노무현 정권의 국정운영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2003년 11월 ‘100년 정당’을 기치로 출범한 열린당은 결국 4년 만에 문을 닫았다. 그때 기세등등하던 상당수 인사들은 정치판을 떠났다. 진보세력의 전폭적인 지지와 기대를 안고 출범한 노무현 정권은 집권 5년 내내 ‘불안한 정권’으로 낙인 찍혔다.
지난 연말 ‘폭력국회’ 당시 한나라당이 보인 형태는 집권당도, 원내 제1당도 아니었다. 한마디로 오합지졸에 불과했다. 당 지도부는 우왕좌왕했고, 청와대는 팔짱만 낀 채 수수방관했으며, 소속 의원들은 전쟁판의 병졸처럼 아무 말도 없이 이리저리 따라만 다녔다. 원내전략회의나 원내대책회의 등의 명목으로 수차례 전략회의를 가졌지만 ‘말’뿐이었지 ‘행동’은 없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민주당 의원들이 본회의장을 점거하고 당직자들이 로텐더홀에서 장기농성을 벌여도 이를 지켜보기만 했다. 민주당 의원들과 사무처 당직자들이 ‘의기양양하게’ 해머와 징, 망치 등으로 상임위 회의실 출입문을 때려 부숴도 이를 제지하지 않았다. 시정잡배도 하기 힘든 일을 아무 거리낌없이 자행하는데도 이를 수수방관한 것이다. 원내대표단 소속 한 의원은 그때를 이렇게 회상했다.
“나는 열 받아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당 지도부에 ‘지금 뭐 하는 거냐. 우리라도 가서 막아야 한다’고 했다. 몇몇 당 지도부가 찾아갔지만 그때는 늦었다. 내가 다시 출입문을 부순 민주당 의원들과 당직자를 검찰에 고발하라고 했지만 한참을 미적거리다가 뒤늦게 (고발)했다. 정말 한심했다.”
한나라당은 민주당의 反(반)민주적 행태에 대해 “당장 중단하지 않으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말만 했다. 상대는 몸싸움을 할 준비가 돼 있는데 이쪽은 ‘말로만’ 으름장을 놓은 것이다.
쟁점법안 처리가 그렇게 중요하고 절박하다면 본회의장을 불법 점거하고 있던 민주당 의원들을 자신들이 직접 끌어내든지, 아니면 로텐더홀에서 밤샘농성이라도 해야 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온종일 따뜻한 의원회관 사무실에 앉아 있다가 “의원총회 연다”고 하면 집합장소에 달려갔다가, 총회가 끝나면 사무실에 돌아와 밤늦게까지 기다렸고, 원내 지도부가 ‘상황 종료’ 하면 아무 말없이 가방을 챙겨 집으로 돌아갔다.
국회의장의 기회주의
한나라당 출신의 金炯旿(김형오) 국회의장은 국회에서 폭력이 난무하고 자신의 집무실이 장기간 점거당한 상태인데도 이를 적극적으로 해결하지 않았다. 국회를 놔두고 지역구가 있는 부산에 내려가 기자회견을 한 것이나, 자신의 집무실 대신 사무총장실을 이용한 점 등은 ‘입법부 首長(수장)’의 위신에 걸맞지 않은 태도였다는 비난을 받기에 충분하다.
정치권 원로인 朴寬用(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김형오 의장에게 이런 충고를 했다.
“국회의장은 의사를 진행하는데 엄정중립의 위치에 있어야 한다. 그런데 중립의 의미가 뭔가 하면, 의사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어느 한 당파에 치우치지 말고 불편부당하라는 것이다. 결코 의장이 중간자 입장에서 국회의장의 권한을 사용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한나라당이 뒤늦게 국회에서의 폭력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제도정비에 나섰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이다.
이제 답은 분명해졌다. 한나라당이 ‘집권당다움’을 찾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명분없이 우왕좌왕하고 집권당다운 면모를 갖추지 못하니까 민심이 멀어지고 지지도가 곤두박질하는 것이다. 정권출범 당시 40%를 넘던 지지도가 최근 20%대 초반으로 추락한 이유를 한나라당은 알아야 한다. 한나라당이 ‘국정운영의 동반자’라는 책임의식과 ‘국익 우선주의’의 원칙을 갖고 소신 있게 일을 처리한다면 이반된 민심이 되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국민들이 지난 18代(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에 172석(具本喆 의원의 의원직 상실로 현재는 171석)을 몰아준 이유는 당당하고 소신 있게 국정을 운영하라는 의미였다. ‘준비 안된’ 진보세력에 대한 경고의 의미이기도 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거대여당
사실 한나라당은 현재의 의석수로 국회에서 뭐든지 할 수 있다. 국회법에는 대부분의 의안을 ‘과반수 출석에 과반수 찬성’으로 처리하도록 돼 있다. 비슷한 정치성향인 자유선진당과 힘을 합칠 경우 헌법개정까지도 가능하다.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다. 오히려 민주당에 끌려다니는 것처럼 보인다. 친이 핵심세력들이 먼저 반성해야 한다. 그들은 ‘CEO 이명박’을 ‘대통령 이명박’으로 만든 이유를 곱씹어 봐야 한다. 자신들이 아무 책임 없이 권한만 누리려고 그를 ‘어렵게’ 대통령으로 만든 것은 아닐 것이다. 그들 앞엔 나라의 기강을 바로잡고 침체의 늪을 헤매고 있는 ‘대한민국號(호)’를 살려야 하는 절체절명의 과제가 놓여 있다. 현 정권이 무너지는 순간 자신들의 존재가치도 사라진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박근혜 전 대표를 비롯한 친박 세력들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조용히 지내는 것이 이명박 대통령을 돕는 길”이라는 소극적인 자세를 버리고 친이 세력과 ‘공동운명체’라는 생각을 갖고 매사에 임해야 한다. 한나라당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으면 분명하게 짚어주고 바로잡아야 한다. 필요하다면 친이 세력보다 더 강하게 야당과 싸워야 한다. 말로만 “현 정권이 성공해야 박근혜 대표의 차기가 보장된다”고 할 게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현재 권력’이고 박근혜 전 대표는 ‘미래 권력’이다.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이 현재를 견인해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자신들을 어떻게 대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자신들이 적극 나서 일을 능동적으로 처리하면 이 대통령이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자신들이 노력했는데도 이 대통령이 지금과 같이 대하면 그 책임은 결국 이 대통령에게 돌아간다.
친박 세력들은 당장 ‘人(인)의 장막’을 걷어야 한다. 자신들의 영역을 지나치게 앞세우면 다른 사람들이 진입할 수 없다. 문호를 개방해야 한다. 60여 명의 계보원으로는 절대 정권을 잡을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여의도 정치’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 당·청 관계에서 당의 입장을 적극 반영해야 하고 정치인들을 대거 입각시켜 국정운영의 동반자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金泳三(김영삼) 전 대통령이 4선의 박관용 의원을, 金大中(김대중) 전 대통령이 3선의 韓光玉(한광옥) 의원을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임명했던 이유를 알아야 한다. 두 사람은 금배지를 떼기 싫었지만 대통령의 ‘호출’에 응했다.
“정무수석이 왜 청와대에 박혀 있나”
지난해 孟亨奎(맹형규) 정무수석이 元惠榮(원혜영) 민주당 대표를 만난 게 기사가 된 적이 있다. 정무수석이 與野(여야) 정치인을 수시로 만나는 게 당연한데도 그게 기삿거리가 된 것이다. 청와대가 정치를 얼마나 무시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지난 총선에서 낙선한 친이계 전직 중진의원은 청와대를 향해 뼈있는 말을 했다.
“대통령은 사람만 잘 써도 성공이다. 모든 일은 장관이나 수석들에게 맡겨놓고 대통령은 중요한 사안에 대해 결단만 내리면 된다. 그러려면 대통령은 여유가 있어야 한다. 새벽에 일찍 출근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정무수석이라는 분도 한심하다. 청와대와 여의도 간의 가교 역할을 해야 할 정무수석이 왜 청와대에 박혀 있나. 여의도에 살아야지. 여의도에서 사무실을 하나 마련해놓고 수시로 정치인들을 만나 그들의 요구사항과 불만이 뭔지를 들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밤새워가며 설득해야 한다.”
한나라당이 지난 연말 국회처럼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다면 이후의 運命(운명)은 분명하다. 우리 국민들은 ‘가능성’ 있는 정당에는 힘을 실어주지만 그 기대를 저버린 정당은 ‘가차없이’ 퇴출시킨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당 지도부는 총력을 다해 야당을 설득해야 한다. 의원들도 상임위별로 야당의원들과 적극 대화해야 한다.
국민들을 상대로 홍보작업도 강화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도 야당 지도부를 수시로 불러 설득하고 대화해야 한다. 그래도 야당이 법안처리에 협조하지 않으면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한나라당은 실추된 대한민국의 위상을 바로잡고 침체된 경제를 살리는데 필요한 법안들을 처리하지 못하면 회복불능의 상태에 빠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