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張源宰 문화칼럼] 정부 예산으로 예술가 지원은‘ 계획경제’

  • : 장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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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형태라도 지원금이 오고 가면, 돈을 받는 사람은 돈을 주는 사람의 영향권 안에 편입되기 마련이다.
개성이 충만한 작품보다는 정부가 원하는 작품, 보다 정확히 말하면, 예산권을 쥔 인사들의 의사를 거스르지 않는 작품들이 생산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것은 일종의 ‘默示的 검열’이다.


張源宰
⊙ 1967년 출생.
⊙ 고려대 국문과 졸업, 영국 런던대 비교연극학 박사.
⊙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대한축구협회 기술분과위원 역임.
⊙ 저서 : <속을 알면 더 재미있는 축구이야기> <유럽 축구에 길을 묻다>
    <우리는 왜 축구에 열광하는가> <무대와 스크린> 등.
2008년 12월 5일 해임당한 김정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이 서울 대학로 아르코 미술관 3층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2008년 12월 5일 金正憲(김정헌) 문화예술위원장이 해임됐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화부)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舊 문화예술진흥원)에 대한 특별조사(감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김정헌 위원장은 문예진흥기금 운용 규정을 위반한 투자로 거액의 투자 손실을 초래했고, 사업예산을 다른 용도로 쓰는 등 직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문화부는 김 위원장 해임사유로 ▲문화예술위는 C등급 금융기관에는 기금을 예탁할 수 없음에도 불구, 2008년 들어 1월과 5월 메릴린치증권 등에 총 200억원을 예탁해 54억여 원의 평가손실이 발생한 점 ▲전시공간 제공을 목적으로 지원 받은 방송발전기금 3억원을 작가 레지던스(상주)공간 확보라는 이유로 주거시설 임대(이용률 연간 10%)에 쓴 점 ▲아르코미술관의 프로젝트형 카페(전시도 하는 카페) 운영 사업자를 경쟁입찰이 아닌 隨意(수의)계약으로 선정한 점 등을 들었다.
 
  左派(좌파) 단체들은 이에 대해 “金潤洙(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장 계약해지에 이은 문화쿠데타”라며 격렬하게 반발하는 중이다. 김 前(전) 관장의 경우, 국립현대미술관이 2007년 5월 마르셀 뒤샹의 작품 ‘여행용 가방’을 구입하는 과정에서 작품 소장자였던 리치먼드社(사)의 실체나 적정가격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제안 받은 가격 그대로 작품수집추천위원회에 구입을 제안하고, 위원회의 결정이 나기 전에 작품 구입을 통고하는 등 작품 수집 및 관리 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해임됐다.
 
 
  민주당의 반발
 
  반대성명 발표에 민주당도 합세했다. 민주당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위원인 田炳憲(전병헌)·千正培(천정배)·李鍾杰(이종걸)·徐甲源(서갑원)·卞在一(변재일)·趙泳澤(조영택)·張世煥(장세환)·崔文洵(최문순) 의원 등은 성명서에서 “두 사람의 해임은 일종의 표적인사”라면서 이렇게 비난했다.
 
  “문화예술위원회는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문화예술 지원정책 원칙에 따라 獨任制(독임제) 행정기관을 合議制(합의제) 위원회로 바꿔 自律性(자율성)을 보장한 상징적인 기관이다. 柳仁村(유인촌) 장관은 표적감사를 통해 그 위원장을 ‘근무 태만한 자’로 몰아 내쳤다. 이제 문화예술계는 ‘군기반장’ 유인촌의 손아귀 속에 들어간 것이다.”
 
  이들 의원은 최근 문화부 내 인사에 대해서도 몇몇 사례를 摘示(적시)한 뒤 “공무원에 대한 성향조사 뒤 호남 출신, 과거 정부 청와대 근무경력자 또는 장관실 근무자, 勞組(노조) 출신 등을 적출하듯 免職(면직)시키는 것은 國基(국기)를 흔드는 행위”라면서 “유인촌 장관은 저질 인사 행렬을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민주당 성명서의 핵심은 다음 두 가지로 보인다.
 
  첫째, 前(전) 정권은 공정한 과정을 거쳐 가장 적임자를 예술기관의 首長(수장)으로 임명했는데, 현 정권이 무리한 표적인사를 통해 이를 인위적으로 교체한다. 둘째, 문화예술인들을 아무런 조건 없이 지원하는 것은 정부의 가장 중요한 의무 가운데 하나다.
 
  결론부터 말하면 위에서 거론된 이들에 대한 전 정권의 인사는 좌파 예술인들 사이에서도 뒷말이 많았던 인사였다. 아울러, 문화예술인들을 지원하는 일은 정부의 본질적 기능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먼저 ‘인사의 공정성’문제부터 살펴보자.
 
 
  문화예술委 노조에서도 반대했던 김정헌
 
  2007년 문화관광부는 문화예술위원회 제2대 위원장에 김정헌 문화연대 상임공동대표를 임명했다. 김정헌 위원장은 ‘민중미술 1세대’로 불리는 인물로서 공주대 교수,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 이사, 전국민족미술연합(민미협) 공동의장 등을 지냈다. 그는 다른 좌파 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창작보다는 정치활동에 더 많은 공을 들인 인물로, 좌파 비평가들 사이에서 1980년대 민중미술의 대표 작가로 꼽힌다.
 
  그는 문화연대 상임대표 시절 한미 FTA반대, 국가보안법 폐지 등 反(반)자유민주주의, 반시장경제적인 활동을 했다. 2003년 9월에는 ‘정치개혁과 새로운 정치주체 형성을 촉구하는 시민사회 1000인 선언’ 발표에 참여해 “시민사회야말로 부패와 지역주의에 물든 한국 정치를 극복할 수 있는 주체”라며 적극적인 정치참여를 선언했다. 2004년 12월에는 ‘국가보안법 완전 폐지를 위한 문화예술계 단식선언’에 참가해 단식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위원장 취임 이후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對(대)사회적으로 계속 설득하고, 문화예술에 대한 큰 談論(담론)과 비전을 제시해 나가겠다”고 발언했다. 이는 ‘정치적 식견이 낮아 좌파 이념에 동조하지 않는 무지한 대한민국 국민들을 예술이라는 도구를 활용하여 적극적으로 가르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처럼 자신이 ‘좌파 예술가’임을 공공연히 드러내는 김정헌 위원장에 대해 문화계 인사들은 “문화예술위원회가 예술가들의 정치적 성향을 분류하고 그에 따라 편향적 지원을 노골화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김정헌 위원장의 취임은 처음부터 문제의 소지가 다분한 인사였다. 그는 1기 문화예술위 위원으로서, 위원들 간의 내분에 도의적 책임이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문화예술위 노조에서 “내분의 책임 당사자인 김정헌 위원장의 취임은 적절하지 않다”는 성명을 냈겠는가.
 
  임용과정에도 문제가 많았다. 김정헌 위원장은 2007년 9월 임용심사에서 ‘1등에 훨씬 못 미치는 점수’를 받은 2등 후보였다. 문화관광부는 “추천위에서 명단이 올라올 당시 후보자들의 순위를 적시하지 않았다”라고 해명했지만, 추천위에서 순위를 적시하지 않고 후보자를 추천한 경우는 모든 정부기관 인사 가운데 이 건이 유일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문화계에서는 “김정헌 위원장의 취임은 盧武鉉(노무현) 대통령과 청와대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 결과”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임기 말 코드인사는 문화계라고 예외가 아니었던 것이다.
 
  2005년 민간 중심의 문화예술단체를 만들자는 취지하에 출범한 문화예술위원회는 한 해 사용 기금액이 1100억원을 넘는 기구다. 하지만, ‘문화계 인사들에 의한 문화계 지원’을 명분으로 출범한 문화예술위원회의 성적표는 초라하다. ‘정부산하 연·기금 운용기관 경영평가’에서 2005, 2006년 연속으로 최하위를 기록했다. 金炳翼(김병익) 초대 위원장은 ‘원월드 뮤직페스티벌’을 둘러싼 위원 간의 갈등에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각 분야 문화예술단체의 長(장)들이 대부분의 위원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각 위원들이 자신이 속한 단체에 기금을 편중적으로 지원했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문화예술위원을 지냈던 韓明熙(한명희) 전 국립국악원장은 月刊朝鮮 2007년 11월호에서 문화예술위의 예산 낭비와 난맥상을 고발했다.
 
  민주당은 현 정부의 ‘무리한 인사’를 비난하지만, 자신들이 정권을 잡고 있을 당시에 보여주었던 행태는 훨씬 더 과격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당선 직후 빠른 속도로 ‘문화계 요직’을 접수했다. 자신의 코드에 맞는 인사들을 문화권력을 행사하는 자리에 집중 배치한 것이다. ‘문화’를 장악하여 ‘부드러운 정치선전’을 거듭하자는 의도였다.
 
  노무현 지지자였던 영화감독 李滄東(이창동)씨를 문화관광부 장관에 임명하는 것을 시작으로, 문예진흥원장(현 문화예술위)에 민예총 출신인 소설가 玄基榮(현기영)씨, 국립국악원장에 金鐵浩(김철호) 전 민족음악인협회 이사장 등을 임명했다.
 
  문제는 이들의 세계관이 철저하게 反(반) 대한민국적이었다는 사실이다. 노 대통령의 대선 승리 직후인 2003년 1월 16일에 열린 ‘새 정부 문화정책 관련 정책제안 토론회’에서 姜來熙(강내희) ‘문화개혁을 위한 시민연대’ 집행위원장은 “예총 같은 기득권을 누린 단체들은 발을 못 붙이게 하고 민예총(민족예술인총연합) 등 진보세력을 전진 배치해 개혁을 주도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문화예술계 내에서 기득권층과 非(비)기득권층을 나누고, 계급의식에 입각해 문화계를 장악하겠다는 선언이었다.
 
 
  3大 헌장탑 개막식에 참석한 김윤수 前 국립현대미술관장
 
  이 흐름의 한가운데 서있던 인물 가운데 하나가 김윤수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이다. 그는 ‘민중미술 1세대 이론가’로 손꼽히는 인물로, 1980년대 이후 미술평론집 <민족미술과 리얼리즘> 등을 통해 민중미술의 이론적 틀을 만들어 냈다. 1975년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돼 이화여대 미대 교수에서 해직됐던 그는1980년대에는 영남대에서 다시 강제 해직됐다. 그 후 <창작과 비평사> 대표를 역임했고 2000년부터 민예총 이사장을 맡아왔다.
 
  김윤수 전 관장이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회장으로 있던 2001년 8월, 좌파예술인들은 8·15민족통일대축전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평양을 방문했다. 이들은 정부와의 약속을 어기고 ‘조국통일3대헌장기념탑’ 앞에서 열린 개막식에 참석했다. 김대중 정부에 ‘불참 서약서’까지 제출하고도, 한반도가 공산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기념물에 헌화한 것이다.
 
  이 행동이 문제가 되자 김윤수 관장은 “冷戰(냉전)논리에 기반한 보수 정치세력과 일부 언론이 8·15 민족통일대축전 행사에서 있었던 일을 ‘고무·찬양 행위’로 왜곡·과장해 정략적 이념공세를 펴고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민예총은 성명을 통해 “시대착오적인 내용으로 점철된 국가보안법을 개정은 못할지언정 통일부장관 해임 운운하는 것은 민족의 화해와 평화정책을 근본부터 뒤흔들어 놓으려는 위험한 발상”이라며 “수구 보수 세력은 반통일적 이념공세를 즉각 중단하고 민족과 역사 앞에 고개 숙여 반성하라”고 주장했다.
 
  그가 미술을 바라보는 관점은 간명하다. “미술은 구체적인 현실의 메시지를 담은 형식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말을 바꾸면, 미술은 정치선동의 도구로 이용될 때 가장 가치가 있다는 이야기다.
 
  김 관장은 이러한 관점에서 2003년 국립현대미술관장 취임 직후부터 자신의 사상을 실현하려 노력했다. 2004년 10월 국회 문화관광위의 국정감사에서 김 관장은 ‘북한을 찬양한 이적표현물’로 판정돼 몰수된 뒤 보관중인 중견작가 신학철씨의 그림 <모내기>를 법무부로부터 회수하겠다고 답변하기도 했다. ‘광복 60주년 새해 첫 기획전(2005)’에서는 사회주의 리얼리즘 계열의 중국화들을 전시해 논란을 빚었다.
 
  그가 관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국립현대미술관 직원들은 “관장 개인 취향에 맞는 그림들을 수집하고 있다”며 반발했다.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는 2006년 連任(연임)됐다.
 
 
  세금을 ‘나라 망치는 일’에 쓸 수는 없다
 
2008년 4월 1일 김윤수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장(오른쪽)이 업무보고에 앞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을 회의실로 안내하고 있다.
  김윤수 관장이 이사장으로 있었던 민예총은 창립선언문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민중과 확고히 결합된 투쟁의 현장에서, 우리는 대중성이 무엇이고 운동성이 무엇이며 진정한 예술적 가치가 무엇인지를 비로소 생생하게 자각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바로 그 자리에 서서, 민중의 정서, 민중의 미의식을 배우고 민족민주운동, 통일조국건설운동의 대의를 체현하며 끊임없이 자신의 기량을 갈고 닦음으로써 소수의 예술가만이 아니라 민중 전체가 보다 높은 예술적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참민중적 민족문화예술의 기틀을 건설해낼 것이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을 뒤엎는 혁명의 도구로 예술만큼 유용한 수단이 없다는 이야기다.
 
  공직에는 그에 상응하는 권한이 따르게 마련이다. 이러한 인물들이 여전히 ‘공식적인 포스트’에 남아있는 한, 그들은 ‘대한민국의 붕괴’를 위해 ‘정신적 독극물’의 생산과 배포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李明博(이명박) 정부는 국민들의 세금이 ‘나라 망치는 일’에 쓰여지는 것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정부가 아무 조건 없이 문화예술인들을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문제가 많다. 정부의 권한을 줄이고 개인의 자유를 늘리는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보자면, 지난 10년간 정부가 ‘문화’에 대해 채택하고 집행한 정책들은 겹으로 그르다. 그래서 개혁이 필요하다.
 
  대한민국 정부는 納稅者(납세자)들이 낸 세금을 예술가들이나 학자들에게, 그리고 방송 프로그램 제작을 지원하는데 쓴다. 이런 일에는 아무런 정당성이 없다. 무엇보다 국가의 기본 임무는 국토를 방위하고 시민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선택하지 않은 ‘문화적 행동’ 즉 전시회, 음악회, 방송 프로그램, 특정 연구에 정부 예산을 사용하는 일은 시민들의 자유를 국가가 제한하는 일이다. 아무리 적게 계산하더라도 세금액수에 해당하는 기회비용만큼은, 시민들의 선택권을 국가가 임의로 행사하는 일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에서는 시민 개개인의 의지와 의사보다, 이러한 프로젝트를 심의하고 예산 배분을 결정하는 몇몇 少數(소수)의 의사가 보다 우선시될 수밖에 없다. 정보의 왜곡과 시장질서의 왜곡이 일어나는 상황을 피할 길이 없다는 뜻이다. 이처럼 외부불경제가 발생하는 상황은 그다지 바람직한 상황이라고 말할 수 없다.
 
 
  정부 문화지원정책의 부작용
 
  다음으로, 정부의 문화지원정책은 상대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소득을 보다 부유한 사람들에게 이전하는 ‘소득의 逆(역)배분’을 조장한다는 문제가 있다. 정부의 지원을 받는 예술창작품을 즐기는 계층은 소득수준이나 교육 정도가 전체 시민 대비 평균 이상일 가능성이 높다. 박물관이나 오케스트라, 기타 예술전시회의 경우, 그것을 향유하는 계층의 소득수준이나 교육 정도가 전체 시민 대비 평균 이상일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이것은 보기보다 심각한 문제이다. 말을 바꾸면, 低(저)소득 계층은 그들이 ‘지원하도록 강요 받은’ 사안에 대해, 정부와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으며 개인적 흥미를 느끼지도 않을 공산이 크다. 국가 유지에 본연적인 활동도 아닌 일에, 자발적 참여의지도 不在(부재)한 가운데 장기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세금을 내야 한다는 것은 납세자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다지 유쾌한 상황은 아닐 터이다.
 
  경제학의 잣대로 살피면, 정부가 정부 예산으로 예술가들을 지원하는 일은 ‘계획경제’의 일부다. 자신의 실생활에 관한 한 언제나 자유분방함을 강조하면서도, 돈을 받는 일에 관한 한 계획경제의 철학을 지지하는 일부 예술가들의 태도는 그 자체로 모순이다. 예컨대 환경운동가들이 청정환경 보존을 목 놓아 외치면서도 정작 자신은 담배를 끊지 않는 태도와 비견될 만하다.
 
  정부가 학자들이나 예술가를 지원하는 일은 또 다른 의미에서 부작용을 낳는다. 정부에 학문과 예술을 진흥할 의무가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정부가 선택과 집중을 통해 지원하는 학자와 예술가들은 과연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어떤 경우든 정부의 지원은 관료적 기구를 거치게 마련이다. 관료적 기구를 거치면, 施惠者(시혜자)와 受惠者(수혜자) 사이에 정치적 관계가 형성되는 것을 피할 길이 없다. 그리고 학문이나 예술은, 스포츠처럼 기록이나 스코어를 통해 객관적으로 우열을 평가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므로, ‘정치적 거래’를 통해 지원금을 타내려는 움직임이 늘어나게 마련이다. 개인보다는 단체의 정치적 파워가 크다는 것은 東西古今(동서고금)의 상식이므로, 대개의 경우 정부 지원금을 수주하는 경쟁은 예술창작이나 학문연구의 모습보다는, 또 학자나 예술가 개인 간의 경쟁이라는 모습보다는, ‘학술단체나 예술단체 사이의 힘겨루기’라는 형태로 변질되어 나타날 개연성이 크다. 예술인들이 창작에 전념하기보다는, 성명서 발표 및 시위집회 참가 등 비예술적 활동에 힘을 쏟게 되는 것이다.
 
 
  정부 지원은 ‘묵시적 검열’로 이어져
 
  ‘정부의 지원’이라는 관점에서 사태를 살피면 또 다른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다. 학문이나 예술, 그리고 방송은 정부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이어야 본연의 임무와 역할에 충실할 수 있다.
 
  어떤 형태라도 지원금이 오고 가면, 돈을 받는 사람은 돈을 주는 사람의 영향권 안에 편입되기 마련이다. 개성이 충만한 작품보다는 정부가 원하는 작품, 보다 정확히 말하면 예산권을 쥔 인사들의 의사를 거스르지 않는 작품들이 생산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것은 일종의 ‘默示的(묵시적) 검열’이다. 예술작품이 궁극적으로 유연한 사고와 자유로운 실험정신을 통해 발아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묵시적 자체 검열’이 예술창작품에 끼치는 害惡(해악)은 생각보다 크다.
 
  이런 맥락에서, 이명박 정부의 문화지원은 그 방향과 대상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문화적 체험은 보다 본질적인 의미에서 인간의 본성과 맞닿아 있다. 문화는 인간내면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그래서 강하다. 사람들은 문화적 체험을 통해 삶을 견디고 상처를 보듬는다. 정신적 변화의 계기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문화적 체험은 문명사회의 필수적인 부분이다.
 
  노무현 정부는 문화예술위원회라는 기구를 만들어 연간 약 7000억원의 예산을 집행했다. 하지만 현행 지원방식은 납세자들이 아니라 특정 예술가와 학자들, 그리고 예산 배분을 결정하는 몇몇 소수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방식이다. 국민으로부터 세금을 걷어 마련한 정부의 예산이 국민 대다수가 아니라 특정 개인 몇몇을 위해 사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문화’에 대한 정부의 예산은 어떤 경우든 국민 개개인의 선택권을 최대로 존중하는 방식으로 쓰여야 한다. 특정인의 선택과 취향을 다수에게 강요하기보다는, 개개인의 취향과 자유를 최대한 존중하는 사회가 미래지향적인 사회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낸 세금이 대한민국의 존재를 부정하는 예술작품을 창작하는데 쓰이고 그런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들의 경비로 전용되는 것은 正義(정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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