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裵重浩 국순당 대표

“백세주가 소주와 섞여 50세주 될 때 가슴 아팠다”

  • : 권세진  sjkw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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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술 하면 외국인들조차 소주를 떠올리는데, 소주는 알코올에 물 탄 것일 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술을 ‘質’이 아닌 ‘量’으로 마시기 때문에 제조업체도 맛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어차피 술맛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데 개발은 해서 뭘 하겠는가?”


裵重浩
⊙ 1953년 서울 출생.
⊙ 연세大 생화학과 졸업.
⊙ 롯데상사 근무, 前 배한산업 이사.
배 풍작으로 배 값이 폭락하고 농민들이 수확한 배를 스스로 폐기하던 지난해 10월, 청와대와 농림수산식품부는 한 통의 민원편지를 받았다.
 
  “배가 남아돌아 정부가 1만t을 사들여 폐기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농민들이 피땀 흘려 농사 지은 배가 버려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니 그 배를 이용해 전통주를 만들었으면 합니다.”
 
  국순당의 裵商冕(배상면·86) 회장과 아들 裵重浩(배중호·57) 사장의 아이디어였다. 국순당은 이 배를 원료로 하여 ‘배로 막걸리’, ‘배로 과실주’, ‘배로 증류주’ 등 배술 3종을 만들어 지난해 말 시중에 선보였다.
 
  서울 삼성동 국순당 본사에는 통유리창을 통해 잠실야구장이 내려다보이는 바(bar)가 있다. 직원들이 새 술을 시음하거나 술을 놓고 회의를 하는 공간이다. 바에서 만난 배 사장은 배술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정부 쪽에서 연락이 왔어요. 배 농가를 연결해 주더군요. 배 200t을 거저 얻다시피 싼값에 받아 왔는데, 시중에서 파는 배보다 더 맛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아삭하고 시원했습니다. ‘아니 이런 배를 왜 버려?’라는 생각이 절로 들더라고요.”
 
  그는 “전통주는 재료 수급이 큰 과제”라고 털어놨다.
 
  “국순당은 복분자나 설갱미(양조용 쌀) 같은 원재료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농가와 직접 계약하는 등 많은 노력을 하고 있어요. 배 같은 고급 과일이 남아돌면 정부가 식품업체나 주조업체 등을 대상으로 배 활용에 대한 제안을 해도 좋았을 텐데, 정부에 그런 유연한 사고가 부족한 것 같아 아쉽습니다. 실제로 배술은 시중에서 반응이 좋아요. 시원하면서도 독특한 신맛이 어우러져 우리 요리와 잘 어울리거든요. ”
 
  국내 전통주 업계 1위 업체인 국순당 집안은 1950년대부터 누룩을 제조해 왔다. 1924년생인 아버지 배 회장은 1952년 ‘기린양조장’을 설립, 누룩을 제조하고 양조장을 운영했다. 자연히 배 사장도 어릴 때부터 술과 친근했다. 어릴 때 술을 마신 것은 아니었지만 집 안팎을 뒤덮은 향긋한 누룩 냄새에 심취했다고 한다.
 
  “대학 가기 전까지는 저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받아 술 사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대학에 입학하고 나니 새로운 세계가 보이더라고요. 당시에는 세계를 누비는 상사맨이 최고 인기 직종이었고, 가장 인기 높은 회사가 종합상사였어요. 결국 종합상사에 입사했죠.”
 
 
  전통주 문화 단절
 
   ‘상사맨’으로 근무하던 그에게 술에 대한 관심을 다시 일깨워준 것은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정부가 우리 술 연구에 적극 나서면서부터였다. 세계의 손님들이 우리나라로 모여드는데 우리는 내세울 전통주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때 정부 주도하에 복원된 우리 술이 문배주와 두견주, 안동소주 등이다. 당시 이를 지켜본 배 사장은 ‘이런 일회성 사업으로는 전통주를 지켜낼 수 없다, 누군가 적극적으로 나서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시간이 있을 때면 ‘와인아카데미’와 비슷한 형식으로 ‘우리 술 강연’에 나선다는 배 사장은 우리 술의 역사에 대한 지식이 해박했다.
 
  “우리나라의 전통주 기술은 조선시대에 활짝 피었어요. 집집마다 술 담그는 비법이 있었죠. 그런데 일제시대와 해방 직후에 식량이 모자라 쌀 등 곡물로 술을 못 만들게 했습니다. 쌀로 술 만드는 것을 허가한 것은 오래 되지 않아요. 그러다 보니 우리 술 역사는 80~90년이 단절됐습니다. 해방 직후에만 해도 약주(곡물로 만든 맑은 술)회사가 500여 개에 달했어요. 그런데 1990년대 초반에는 20여 개에 불과했고, 지금은 거의 찾아보기 힘듭니다. 지금 남아 있는 전통주는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것뿐이죠. 이런 현실이 안타까웠어요.”
 
  배 사장이 뒤늦게 술 사업에 뛰어들어 수년간의 연구 끝에 탄생시킨 것이 바로 ‘百歲酒(백세주)’다. 1992년 탄생한 백세주는 1990년대 중·후반에 걸쳐 전통주 돌풍을 일으켰고, 한때 단일제품 매출이 연 1300억원에 달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백세주가 처음부터 인기를 끌었던 것은 아니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약주는 명절에나 마시는 술, 마시고 나면 머리 아픈 술이라는 인식이 강했어요. 주점에서 약주를 찾는 사람이 거의 없었죠. 처음 백세주를 개발하여 정말 맛있는 술, 좋은 술이라며 업소 주인들을 설득했지만 손님들이 찾질 않으니 사 가질 않더라고요. 그래서 생각을 바꿨어요. 서울 사람들은 늘 쫓기듯 바쁘니까 주점에 와도 마실 것과 먹을 것을 미리 정하고 오고, 새로운 것을 시도할 생각을 안 하는 겁니다. 그래서 생각을 달리해 서울 외곽지역을 공략하기 시작했어요. 남한산성이나 행주산성 인근에는 토속음식점이 많습니다. 여기를 찾는 사람들은 대개 드라이브하러 와서 느긋하게 닭백숙이나 고기 등 음식과 술을 즐기고 가는 사람들이죠. 그곳 업주들을 설득해 손님들에게 백세주를 추천해 달라고 했어요. 입소문이 점차 퍼지더니 서울 시내에서도 백세주를 찾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전국적으로 소비자에게 알리는 데 5년 정도 걸린 것 같아요.”
 
 
  백세주와 50세주에 얽힌 사연
 
  그는 백세주가 ‘몸에 좋은 술’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레드 와인이 몸에 좋다고 마시는 사람도 많잖아요. 백세주는 항암효과가 레드 와인과 비슷한 수준이고, 항산화효과는 레드 와인보다 훨씬 우수합니다. 정부 차원에서 전통주의 우수성을 홍보했으면 해요. 한국음식을 세계화하자는 의견과 시도는 많은데 왜 전통주에는 그게 없는지 답답합니다.”
 
  배 사장은 한때 유행했던 ‘오십세주’에 대해서도 복잡한 심경을 토로했다.
 
  “백세주는 몸에 좋은 전통술입니다. 이걸 소주와 섞어 마시는 건 제가 용납하기 힘들었어요. 백세주의 성분들이 화학물질 같은 소주와 섞여 버린다는 게 가슴 아프더라고요.”
 
  “나중엔 국순당이 오십세주를 만들 수 있는 큰 플라스틱 병을 술집에 공급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하고 싶어 한 게 아니다”라고 털어놓았다.
 
  “오십세주가 유행하니까 주점 업주들이 그런 게 있으면 좋겠다고 제안을 하더군요. 물론 처음엔 절대 안 된다고 대답했어요. 하지만 이런 방법일지언정 전통주가 인기를 얻어 가고 있는 상황에서 제가 그 맥을 끊으면 안 되겠다고 결심한 겁니다. 결국 50세주가 백세주 판매에도 많은 도움이 됐죠.”
 
  배 사장이 최근 몇 년간 집중하고 있는 것은 ‘전통주 복원’이다. 조선말기 600여 종이 존재했던 전통주를 하나하나 복원해 나가자는 것. 梨花酒(이화주·걸쭉한 전통막걸리)와 煮酒(자주·꿀과 호초를 넣은 술) 등을 복원했던 그는 지난해 10월말 新稻酒(신도주)를 내놓았다. 신도주는 말 그대로 갓 수확한 햅쌀로 만든 술로, 1837년 문헌인 ‘釀酒房(양주방)’의 기록에 따른 것이다. 약간 매운맛과 입맛을 당기는 신맛, 은근한 단맛이 조화를 이루며 은은한 쌀 향기가 특징이다.
 
  “전통주를 복원하는 것은 보람도 있고 즐거운 작업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어요. 전통주의 단절기간이 너무 길다 보니 그 맛을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겁니다. 문헌 기록에 따라 재현할 수는 있지만 그 맛을 검증할 수는 없는 거죠. 그렇다고 그만둘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과거의 인위적 단절을 해소하고, 소비자가 여러 가지 전통주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저의 의무라고 봅니다.”
 
 
  “술은 취하는 게 아니라 즐기는 것”
 
   그는 우리나라의 家釀酒(가양주·집에서 만드는 술) 문화를 예찬했다.
 
  “과거 우리나라에서 술이란 醬(장)처럼 집에서 직접 담그는 것이었어요. 담가서 제사 때도 쓰고 손님 대접도 하고요. 술이라는 데는 ‘정성’이 들어있었던 겁니다. ”
 
  배 사장은 지방의 소규모 주류제조업자들의 협업 제안도 많이 받았다고 했다.
 
  “백세주가 성공하니까 손잡고 일해 보자며 찾아오는 사람도 많았어요. 물론 훌륭한 술을 만드는 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백세주처럼 돈 좀 벌어 보자는 생각이었죠. 그런 낌새가 보이는 제조업자들은 모두 돌려보냈습니다. 전통주라는 것은 기본을 지키는 것이 우선입니다. 무조건 전국적으로 확산시키고 대량생산해 돈을 벌 수 있는 아이템이 아니라는 말이죠. 전통주의 대중화와 함께 명품 전통주를 지켜내는 것도 전통주업계가 할 일입니다.”
 
  술 회사 대표이며 주위 사람들이 그의 주량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술을 ‘잘’ 마시는 배 사장이지만, 최근 한국의 술 문화에 대해서는 신랄한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우리나라 술 하면 외국인들조차 소주를 떠올립니다. 그런데 소주는 솔직히 술이라고 할 수가 없어요. 알코올에 물 탄 것일 뿐입니다. 오로지 싸게, 취하려고 마시는 겁니다. 화학물질보다 더 나쁜 걸 몸속에 넣고 있는 거예요. 이게 우리나라 술 문화의 중심이라니 안타까워요. 빨리 변해야 합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우리 술 하면 소주만 알고 있는데, 창피할 지경이에요. 맥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 맥주는 정말 맛이 없고 힘이 약해요. 중국 맥주보다 못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술을 ‘질’이 아닌 ‘양’으로 마시기 때문이죠. 그러니 제조업체도 맛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겁니다. 어차피 술맛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데 개발은 해서 뭘 하겠어요?”
 
  그는 “술은 취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우리의 가양주는 어머니들의 정성이 담긴 술이었어요. 이런 술을 벌컥벌컥 취하도록 마셨겠습니까? 우리의 어른들은 집안 여자들이 만든 술맛을 음미하고 즐기며 마셨어요. 와인과 코냑도 마찬가지죠. 그 지역에서 가꾼 재료로 일일이 정성을 들여 만들어낸 겁니다. 그 지역에서 나는 재료로 만든 음식과 잘 어우러지겠죠. 음식과 함께 그 맛의 어우러짐을 즐기는 게 바로 술입니다.”
 
  “본인은 폭음이나 과음을 전혀 하지 않느냐”는 필자의 질문에 “사람 만날 일이 많아 술자리가 많지만, 늘 ‘가늘고 길게’ 마신다”고 답했다.
 
  “물론 저도 대학교 때 혈기왕성한 시절에는 술을 ‘없어서 못 마실 정도’였죠. 근데 할아버지께서 술을 너무 좋아하셨고 결국 건강을 해쳐 돌아가신 경험이 있어요. 그래서 아버지는 술을 자제하십니다. 동생(배상면주가의 裵英浩 사장)은 술을 전혀 못합니다. 술 만드는 집안이지만 술 잘 먹는 집안은 아니에요.”
 
 
  와인 공부하듯 전통주에 관심을
 
  그는 술을 즐겨 마셨던 대학 시절에도 소주나 맥주는 거의 입에 대지 않았고, 막걸리와 고량주를 즐겼다고 했다.
 
  “막걸리는 원래 좋아했고, 고량주는 대학 가면서부터 마시기 시작했는데 향긋하고 뒤끝이 없어서 좋더군요.”
 
  배 사장은 국내 술 시장이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제조사도 문제지만 국내 술 시장의 진입장벽도 문제죠. 술값 중 세금이 수십%에 달할뿐더러, 술 회사 설립도 어렵죠. 외국 술 수입도 까다롭습니다. 농민들이나 중소규모 업자도 맛있는 술을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해 주고, 판매와 유통도 철저히 관리해야 합니다.”
 
  배 사장은 전통주가 크게 발달하지 못한 데는 전통주 문화의 단절과 함께 사람들의 인식도 한몫했다고 설명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와인 아카데미를 찾는 사람이 많아요. 와인을 3개월씩 배울 정성이 있으면 우리 것부터 조금이라도 배워야 하는 게 아닙니까? 아직 국내 전통주의 질이 높은 수준은 아니지만 최소한 관심이라도 보여야죠.”
 
  그는 백세주 등 국순당의 술 몇 종을 와인 평론가와 함께 시음해 본 경험을 소개했다.
 
  “버섯 향이 난다는 분도 있었고, 흙 냄새가 난다는 분도 있었어요. 조약돌이 굴러가는 듯한 느낌이라는 분도 있었고요. 단맛이 강해 디저트 와인 같다는 평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전통주입니다. 이런 새로운 세계를 모르고 지나치기엔 너무 아깝잖아요?”
 
  또 와인 평론가들이 말하는 ‘마리아쥬’(mariage·음식과 와인의 환상적인 만남)처럼 전통주도 요리와 궁합을 맞추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배 사장은 바 한편에 놓여 있던 ‘백세주’와 신상품 ‘백세주 潭(담)’을 보여주며 설명했다.
 
  “백세주 담은 기존 백세주에서 단점으로 지적되던 단맛을 줄이고 담백한 맛을 강조한 제품입니다. 저희 국순당은 외식업체인 ‘백세주마을’을 운영하고 있는데, 전 백세주마을 메뉴개발팀에 당부했어요. 찌개 하나를 만들어도 ‘백세주용’과 ‘백세주 담용’을 따로 만들어야 한다고요. 술맛이 다르면 어울리는 음식도 다를 수밖에 없죠. 이런 식으로 전통주와 한국음식의 궁합을 맞춰 나가는 게 국내 요리사와 주조업체의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 배상면 회장은 배상면전통주연구소장으로 연구활동에 집중하고 있으며, 남동생 裵英浩(배영호) 배상면주가 대표와 여동생 裵惠貞(배혜정) 누룩도가 대표는 각각의 사업체를 이끌고 있다. 아들(29세)은 경영학을 전공하고 컨설팅회사에서 근무 중이다.
 
  “술 못 마시면 국순당에 취업할 수 없느냐”는 질문에 배 사장은 이렇게 답했다.
 
  “예전엔 주량과 상관없이 능력이 있으면 뽑았는데, 2~3년 전부터 술 못 마시는 사람은 일단 배제하고 있습니다. 음주면접? 당연히 하죠. 사람은 술이 들어가면 숨었던 진실이 다 드러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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