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News] 아직도 건재한 테러집단 ‘알 카에다’

15년 內에 全 세계 이슬람化가 그들의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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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매코넬 미국 국가정보국장은 “알 카에다의 실질적 지도자는 빈 라덴이 아니라 자와히리”라면서 “알 카에다의 모든 작전과 세부지침은 자와히리의 손에서 이뤄진다”고 밝혔다. 빈 라덴이 미국의 추적을 피해 은신하고 있는 동안 자와히리가 사실상 전권을 휘두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李長勳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 1957년 서울 출생.
⊙ 서울고ㆍ서울대 영문과 졸업.
⊙ 공군사관학교 영어 교관, 한국일보 국제부 차장, 주간한국 편집장 역임.
⊙ 저서 : <홍군vs청군 : 미국과 중국의 21세기 아시아 패권 쟁탈전>,
    <네오콘-팍스 아메리카의 전사들>, <유로화의 출범과 21세기 유럽합중국> 등.
9ㆍ11 테러가 발생한 지 7년이 지났지만, 알 카에다의 기세는 꺾이지 않고 있다. 미국이 그동안 9·11 테러를 자행한 알 카에다를 제거하기 위해 테러와의 전쟁을 강력하게 추진해 왔지만, 알 카에다는 오히려 ‘제2의 9·11’ 테러를 암중모색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公敵(공적) 1호인 알 카에다의 우두머리 오사마 빈 라덴(51)은 지금도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조직원들에게 지하드(聖戰)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미국이 빈 라덴과 제2인자인 아이만 알 자와히리(57)를 제외하고 알 카에다 고위 간부들과 조직원들을 체포 또는 사살하는 등 어느 정도 전과를 올린 것도 사실이지만, 알 카에다의 뿌리는 여전히 뽑히지 않고 있다. 도대체 알 카에다가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미국의 소탕작전에도 불구, 아직까지 건재한 비결은 무엇일까.
 
 
  테러 활동을 ‘문명 전쟁’으로 미화
 
  미국이 알 카에다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은 1998년 8월 7일 224명이 사망한 케냐와 탄자니아의 미국대사관 폭탄 테러 사건이 발생한 이후였다.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은 행정명령 13099호를 발표(8월 20일자)하고, 테러 사건의 배후로 알 카에다를 지목하면서 조직의 우두머리인 빈 라덴에 500만 달러의 현상금을 내걸었다. 빈 라덴은 아프간 전쟁이 끝나자 1989년 말 사우디아라비아로 귀국, 아프간 전쟁에 참전했다가 다치거나 희생된 무자헤딘을 지원하는 복지기관을 운영했다.
 
  그는 이슬람 사원들을 순회하면서 지하드에 대해 연설했다. 그의 격정적 연설이 녹음된 카세트 테이프는 공식적으로만 25만 개 이상 팔려 나갔다. 그는 “이슬람의 가르침을 올바로 실천한다면 어느 국가도 이슬람 국가를 이길 수 없다”면서 “아프간 전쟁은 이교도 초강대국에 대한 이슬람의 위대한 승리”라고 주장했다. 이슬람교의 두 성지(메카와 메디나) 수호자로서 권력의 정통성을 이어 온 사우디 왕가는 빈 라덴의 이 같은 이슬람 찬양을 마음에 들어 했다.
 
  빈 라덴과 사우디 왕가의 밀접한 관계는 1991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파탄이 났다. 사우디 왕가는 미군을 자국 땅에 주둔시켰다. 빈 라덴은 이슬람의 성지인 사우디에 이교도가 들어올 수 없다면서 미군 주둔을 강력히 반대했다. 이 때문에 사우디 정부는 과격한 언동을 하던 빈 라덴을 한동안 가택 연금했다.
 
  빈 라덴은 이런 탄압에 맞서 1993년 자신의 추종자들과 함께 수단의 수도 하르툼으로 망명했다. 이때부터 빈 라덴은 은밀히 각종 테러를 후원했다. 미국도 빈 라덴의 이런 행적을 눈치채고, 수단 정부에 그의 신병을 넘기라고 압력을 가했다.
 
  수단 정부는 1996년 마지못해 그를 외국으로 추방했다. 결국 그는 이슬람 근본주의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던 탈레반이 정권을 잡고 있던 아프간으로 피신했다. 그는 이곳에서 “성지를 점령하고 있는 미국 및 십자군과 유대인에 대한 성전을 수행하는 세계 이슬람 전선을 결성한다”는 파트와(칙령)를 내리고, 탈레반 정권의 비호 아래 본격적으로 알 카에다의 테러 활동을 시작했다.
 
  빈 라덴이 오랜 기간 지하드를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알 카에다의 테러 활동을 일종의 이데올로기로 진화시켰기 때문이다. 빈 라덴은 알 카에다의 테러 활동을 지하드라는 이름으로 미화하면서 일종의 문명 전쟁으로 규정했다. 그는 또 미국과 영국 등 이라크 참전국가를 십자군들이라고 부르면서, 이들과의 전쟁을 중세 십자군 전쟁의 연장으로 간주했다. 기독교 세력이 이슬람 땅을 침범했기에 이를 내쫓는 지하드는 무슬림의 의무라는 것이다.
 
 
  빈 라덴의 목표는 강력한 이슬람제국 건설
 
이슬람 근본주의의 시조, 사이드 쿠트브.
  그의 장기적인 목표는 마호메트의 시대처럼 코란의 말씀이 모든 사회적 행위와 일치하도록 그대로 구현되는 사회를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칼리프(신의 대리인)의 땅’인 강력한 이슬람제국을 건설하는 것이다. 그는 이를 위해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등과 같은 변절한 중동 국가들과 이스라엘을 지구상에서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기독교 문화와 서구적 이념을 ‘異端(이단)’으로 본다. 기독교와 서구 문명의 대명사는 미국이다.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한 미국과의 전쟁은 불가피하다는 것이 빈 라덴의 논리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은 빈 라덴의 이런 논리를 일종의 ‘理念(이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빈 라덴의 이념을 흔히들 ‘알 카에다이즘(Al Qaedaism)’이라고 부른다. 알 카에다이즘의 뿌리는 사이드 쿠트브에서 비롯됐다.
 
  쿠트브가 주장했던 샤리아(이슬람율법)가 지배하는 이슬람공동체 건설은 바로 빈 라덴이 말하는 칼리프의 땅인 이슬람 제국을 말하는 것이다. 빈 라덴은 2001년 10월 7일 비디오 테이프를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9·11테러를 일으킨 이유에 대해 “80여 년 전에 이슬람이 겪었던 수치와 불명예 때문”이라는 점을 언급했다. 빈 라덴이 말한 수치와 불명예는 1918년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영국과 프랑스에 패배하면서 술탄(칼리프)제가 종식되고, 영토가 분할됐던 오욕의 역사를 의미했다.
 
  이슬람학의 大家(대가)인 버나드 루이스 미국 프린스턴 대 교수가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붕괴 이후 이슬람 사회가 서구 문명에 침략당했다는 인식이 이라크 전쟁 이후 확산돼 호전적인 무슬림을 양산하고 있다”고 지적한 대목도 이런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빈 라덴은 이슬람 사회의 이런 분위기를 교묘하게 이용해 알 카에다를 알 카에다이즘으로 진화시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알 카에다의 프랜차이즈 전략
 
한 아프간 소년이 오사마 빈 라덴이 총을 들고 있는 포스터를 보고 있다.
  실제로 중동은 물론 북아프리카·중앙아시아·동남아·유럽 등에서 많은 무슬림들이 알 카에다이즘을 추종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알 카에다를 표방한 무슬림들의 테러 공격이 끊이지 않는 것을 보면, 알 카에다이즘이 이들에게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들은 알 카에다의 조직원도 아니고 빈 라덴 밑에서 훈련을 받은 적도 없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의 테러를 알 카에다의 이름으로 자행하고 있다.
 
  알 카에다이즘이 이처럼 세계 곳곳으로 퍼지자, 알 카에다는 이를 프랜차이즈화하고 있다. 알 카에다의 프랜차이즈 전략은 빈 라덴의 측근이자 이론가인 아부 무사브 알 수리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이다.
 
  알 수리는 2004년 <全(전) 세계적 이슬람 저항 운동으로의 부름>이라는 제목의 1600쪽짜리 논문에서 알 카에다는 앞으로 하나의 조직이 아니라 질서를 지향해야 한다면서 단일 조직이 아닌 각 지역 조직이 연대하는 형태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전 세계에 퍼져 있는 독립적인 세포 조직들을 서로 느슨하게 연결하고, 지도부는 이들에게 이데올로기적인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는 상징적인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는 전략을 제시했다. 알 카에다는 직접 테러에 나서기보다 전 세계 하부 조직을 지원하고 전투의지를 고무시키는 참모본부 형태로 변신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북아프리카에서 활동하고 있는 알제리의 ‘이슬람 마그레브의 알 카에다’(AQIM)라는 단체이다. 마그레브는 알제리를 비롯해 리비아·튀니지·모로코 등 아프리카 북서부를 통칭하는 아랍어다. 이 단체는 원래 살라피스트 선교전투그룹(GSPC)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으나 알 카에다와 동맹을 맺고 개명했다. 이 단체는 핵심 멤버 200명과 600~800명의 조직원으로 구성됐으며,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테러를 자행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아라비아반도의 알 카에다’라는 단체가 꾸준하게 활동하고 있다. 사우디 정부는 지난 6개월 동안 유전시설에 대한 테러를 계획한 혐의로 이 단체 조직원과 추종세력 701명을 체포, 이 중 520명을 구속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알 카에다는 지난 7월 압둘라 사우디 국왕을 살해하라는 파트와를 내리기도 했다.
 
 
  차세대 지도자들의 등장
 
한 팔레스타인 주민이 오사마 빈 라덴과 9 11 테러 장면이 새겨진 지포 라이터를 보여주고 있다.
  유럽에서도 알 카에다의 조직원도 아닌 자생적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테러를 알 카에다의 이름 아래 실행하고 있다. 특히 런던은 유럽의 다른 도시들보다 알 카에다를 추종하는 세력이나 조직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18~24세의 영국 무슬림 중 대다수는 9·11 테러를 미국과 이스라엘의 음모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2005년 7·7 런던 지하철 테러와 2006년 런던발 미국행 여객기테러 기도사건의 범인들 중 대다수는 영국에서 태어난 무슬림으로 드러났다.
 
  알 카에다는 그동안 와해됐던 기존 지도부의 뒤를 이을 차세대 지도자들을 아프간과 이라크 등에서 실전 경험을 쌓은 30대의 젊은 조직원들로 충원했다. 새 지도부에는 파키스탄과 북아프리카 출신도 다수 포함됐다. 이들은 과거 지도부의 엄격한 서열관계를 벗어나 독립 거점에서 독자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06년 사전 발각된 영국발 항공기 동시다발 테러 계획도 알 카에다의 새 지도부 중 한 명인 이집트 출신 아부 우바이다 알 마스리의 독자적인 작품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과거 아프간 무장세력을 지휘해 왔지만, 현재는 파키스탄에서 활동하면서 유럽에 대한 테러 공격을 기획하고 있다. 미국 정보기관들은 이집트 출신 아부 지하드 알 마스리, 리비아 출신 폭발물 전문가 아티야 아브드 알 라흐만, 모로코 출신 칼리드 하비브, 이라크 출신의 압둘 하디 알 이라크 등이 알 카에다의 차세대 지도부라고 보고 있다.
 
  알 카에다는 이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기지들을 건설하고 조직원들을 훈련시키고 있다. 새 기지들은 규모와 조직력 면에서는 탈레반 정권 시절 아프간에 구축됐던 알 카에다의 기지들에는 못 미치지만 기지당 10~20명이 훈련을 받고 있다. 미국 정보기관들은 알 카에다가 이처럼 작전을 수행할 중간급 조직과 지도부를 충원하면서 이라크 등 지역 테러조직들과의 연계도 더욱 긴밀하게 구축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존 크링겐 전 중앙정보국(CIA) 정보분석팀장은 “알 카에다가 파키스탄 정부의 통제가 불가능한 지역에 은신처를 마련했다”면서 “훈련과 자금, 통신활동의 증가가 관찰된다”고 밝혔다.
 
  알 카에다가 새로운 조직원들을 포섭하고 연계조직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는 수단은 바로 인터넷이다. 사우디의 아라비아 반도의 알 카에다가 2004년 발간한 온라인 잡지 <무아스카르 알-바타르>(칼의 캠프) 창간호에서 인터넷을 통한 신규 조직원들을 포섭하기 위해 게재한 격문 내용을 보면, 인터넷이 얼마나 유용한 수단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이 격문은 ‘오 전사 형제여! 위대한 훈련 캠프에 참가하기 위해 다른 곳으로 갈 필요가 없다. 당신도 집에서 형제들과 함께 훈련 프로그램을 이수할 수 있다’라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이처럼 알 카에다는 역사상 처음으로 게릴라 운동을 물리적 공간에서 사이버 공간으로 이동시켰다.
 
  젊은 지하드 운동가들은 비밀 은신처와 동네 인터넷 카페 등에서 노트북과 DVD 등을 이용, 훈련과 통신, 계획과 설교 시설들을 인터넷상의 수많은 새로운 장소에 복원시켜 왔다. 자살공격과 기습작전을 주로 자행하고 있는 이라크의 알 카에다 조직원들은 인터넷의 익명성과 사이버 공간에서는 적발이 어렵다는 이점을 이용해 훈련과 전술지원에서 인터넷을 일상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미국의 싱크탱크인 랜드연구소의 테러전문가 브루스 호프만은 알 카에다에게 인터넷은 테러를 위한 ‘지구적 성소’라고 지적했다. 이른바 ‘디지털 지하드’가 새로운 모델이 된 것이다.
 
 
  “인터넷은 알 카에다에 매우 중요한 전략적 수단”
 
  빈 라덴은 2001년 초 파키스탄 페샤와르 지역의 CD 제작소를 접수, ‘앗 사하브 미디어 프로덕션’을 차렸다. ‘앗 사하브(As Sahab)’는 아프간의 높은 산악지대에 걸쳐 있는 구름이란 뜻으로 ‘메시지를 통해 전 세계를 구름처럼 뒤덮는다’는 의미다. 이후 이 CD 제작소는 폐쇄됐지만 아직도 앗 사하브는 알 카에다의 미디어 조직으로 활동하고 있다.
 
  알 카에다는 현재 테러 훈련과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방대하고 역동적인 온라인 도서관을 구축하고 있다. 이곳에선 재래식 폭탄뿐만 아니라 독극물과 화학무기 제조 방법도 가르친다. 자신의 신분을 위장하는 방법과 미군을 겨냥한 사격술, 사막에서 야간에 별을 보고 방향을 알 수 있는 방법 등도 포함되어 있다. 이런 자료들은 인터넷에 접속하면 아랍어, 우르두어(파키스탄 표준어), 파슈툰어(아프간 공용어)는 물론,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등 지하드 자원자들이 사용하는 언어로 상세하게 볼 수 있다.
 
  알 카에다는 또 모스크(이슬람 예배당)에서 회동하거나 위조 증명으로 국경을 넘을 필요 없이 인터넷을 통해 안전하게 활동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알 카에다는 당초 인터넷을 교신, 설교, 단원모집이나 심리전 수단으로 이용해 왔으나, 현재는 인터넷을 자생테러 유도 등 공격거점으로 활용하고 있다. 알 카에다는 심지어 자체 뉴스를 만들어 자신들의 활동상황을 알린다. 알 카에다가 올리는 뉴스는 이라크와 아프간 등에서 자행한 테러공격과 미군 사망자 숫자 등을 알려준다. 미군 차량이 폭파되는 동영상을 보여주면서 현장에서 설명까지 해 준다. 특히 각종 동영상을 영어 및 각 국의 언어로 자막 처리하거나 더빙 녹음까지 해 서방의 젊은이들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선전의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마이클 슈어 전 CIA 빈 라덴 추적팀장은 “모든 내용이 인터넷에 올려지거나 암호화된 메시지로 전달되고 있다”면서 “알 카에다는 더 이상 명령 지시문을 들고 다닐 필요가 없다”고 지적했다. 가브리엘 와이만 이스라엘 하이파 대학 교수에 따르면 9·11 테러 당시 12개에 불과했던 테러 관련 사이트 수는 5000여 개로 불어났다. 초기에는 이슬람의 단결을 위해 알 카에다 지도자들의 성명을 담은 동영상을 찍어 인터넷에 올리거나 간단한 성명을 유포시키는 방식이었지만, 이제는 사이버 공간에 일종의 ‘움마’(이슬람 공동체)가 세워졌다. ‘국가’라는 뜻으로도 사용되는 움마는 비록 가상공간이지만 알 카에다의 이념에 동조하는 전 세계 네티즌이 자유롭게 드나드는 하나의 왕국인 셈이다.
 
 
  한 손엔 소총, 다른 손엔 비디오 카메라
 
알 카에다가 오사마 빈 라덴의 메시지를 인터넷을 통해 전파하고 있다.
  최근에는 인터넷 토론방을 만들어 젊은이들과 채팅을 하면서 신입 회원들을 받고 있다. 젊은이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미군을 공격하면 마우스를 누를 때마다 점수를 얻는 방식의 온라인 게임까지 나왔다. 인터넷은 또 조직원들이 서로 연락하는 가장 편리한 수단이 되고 있다. 연락방법도 암호교환을 위해 이메일을 주고받는 방식에서 인터넷상에서 간단한 코드만을 주고받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이 방식을 이용하면 사람들이 코드를 읽더라도 테러와 전혀 관련 없는 것처럼 해석된다.
 
  동영상 공유 사이트들도 알 카에다의 주요한 선전 수단이 되고 있다. 이 때문에 테러리스트들이 한 손에 AK-47소총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비디오 카메라를 들고 활동하고 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실제로 유튜브 같은 동영상 웹사이트에서 지하드 활동을 담은 동영상을 공유하기도 한다.
 
  알 카에다는 지난 4월 자와히리와의 온라인 인터뷰도 인터넷을 통해 실행한 적이 있다. 자와히리는 각국으로부터 1888건의 질문을 받고, 이에 대해 답을 해 주기도 했다. 현재 앗 사하브는 3~4일에 한번꼴로 알 카에다 지휘관들의 오디오 또는 비디오 메시지를 온라인을 통해 내보내고 있다. 앗 사하브가 지난해 새로운 비디오 영상을 보낸 건수만 해도 97개나 되는데, 이는 2005년의 3배 규모이다.
 
  미국 등 각국 정보기관들은 이 같은 알 카에다가 사용하는 사이트들을 적발하기 위해 수많은 서버를 추적하고 있으나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알 카에다는 발각될 경우에 대비해 사이트를 한 달 정도만 유지한 뒤 폐쇄하고 다른 사이트로 옮기는 등 교묘한 방식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일반 사이트의 토론방이나 자유게시판 등을 이용할 경우 적발은 불가능하다.
 
  브루스 호프먼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는 “인터넷은 테러조직에 새로운 자원을 공급해 주는 저수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美 정보기관, 알 카에다 핵심부 정보 거의 없어
 
알 카에다가 진행하는 인터넷 뉴스.
  알 카에다는 올 초부터 영향력 확대를 위해 빈 라덴 등 지도자급 인물들의 메시지가 담긴 동영상의 휴대전화 다운로드 서비스도 시작했다. 현재 빈 라덴과 자와히리를 비롯해 2006년 6월 미군에 의해 사살된 이라크의 알 카에다 지도자 아부 무사브 알 자르카위 등 알 카에다 지도자들의 동영상 8건을 다운받을 수 있다. 앗 사하브는 앞으로 더 많은 동영상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은 “알 카에다는 인터넷을 통해 미국보다 메시지를 더 잘 전달한다”고 개탄했다.
 
  알 카에다가 지금까지 버텨 온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조직의 내부가 외부에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미국 정보기관들은 그동안 알 카에다의 조직 핵심에 접근하기 위해 과거 소련의 크렘린궁에 침투할 때보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미국 정보기관들은 이 과정에서 정보원 매수나 거액의 현상금 제시, 내부 고발자 유도 등 모든 수법을 동원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미국 정보기관들이 알 카에다 조직에 침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알 카에다 지도부는 물론 조직원들이 철저하게 종교적 신념으로 뭉쳐 있기 때문이다. 알랭 슈에 전 프랑스 대외안보총국(DGSE) 국장은 “서방 정보기관들이 알 카에다 조직에 침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알 카에다 조직의 내부 사정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미국 정보기관들이 알 카에다가 앞으로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 예측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알 카에다의 조직을 보면 우두머리인 빈 라덴과, 그를 보좌하는 최고 의사 결정기구인 마즐리스 알 슈라 위원회가 있다. 이 위원회는 20~30명의 알 카에다 지도자급 인물들로 구성돼 있다. 슈라 위원회 산하에는 훈련과 무기 구입, 각종 테러 공격을 전담하는 군사 위원회와 자금 및 사업 위원회, 법무 위원회, 이슬람 연구 및 파트와 위원회가 있다. 앗 사하브 조직도 별도의 위원회로 구성돼 있다.
 
  마이클 헤이든 CIA 국장은 “빈 라덴이 체포되거나 사망하더라도 알 카에다의 위협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헤이든 국장은 CIA는 빈 라덴이 사망할 경우 그를 대신할 인물들에 대해서도 주목하고 있다면서, 알 카에다 지도부에는 이집트 출신 인물들이 많이 있다고 말했다. 현재로선 빈 라덴의 유고시 제2인자인 자와히리가 빈 라덴을 대신할 것이 분명하다.
 
 
  자와히리가 全權 행사 중
 
알 카에다의 제2인자 알 자와히리가 비디오 메시지를 통해 미국에 대한 성전을 촉구하고 있다.
  마이클 매코넬 미국 국가정보국장은 “알 카에다의 실질적 지도자는 빈 라덴이 아니라 자와히리”라면서 “알 카에다의 모든 작전과 세부지침은 자와히리의 손에서 이뤄진다”고 밝혔다. 빈 라덴이 미국의 추적을 피해 은신하고 있는 동안 자와히리가 사실상 전권을 휘두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자와히리는 실제로 빈 라덴보다 더욱 강경한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호프먼 조지타운대 교수는 “미국이 가장 두려워해야 할 인물은 빈 라덴이 아닌 자와히리”라고 지적했다. 미국 정보기관들에 따르면 빈 라덴이 슈라 위원회를 주재한 것은 2년 전이 마지막이었으며 이후 자와히리가 실질적으로 알 카에다를 이끌고 있다는 것이다.
 
  자와히리는 지난 2년 동안 30여 차례에 걸쳐 주요 현안에 대한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자와히리는 빈 라덴보다는 카리스마가 떨어지지만 뛰어난 전략가이자 이론가이다. 자와히리는 최소한의 희생으로 최대의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자살공격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과격한 투쟁을 선호해 왔다.
 
  자와히리의 집안은 이집트에서 명문가로 소문이 나 있다. 아버지는 물론 부계 쪽은 모두 의사, 의대 교수, 병리학자 등으로 이집트 최대의 의사집안이다. 1995년 그의 한 친척이 죽었을 때 언급된 유족 46명 중 31명이 의사, 화학자, 약사였고 나머지는 대사, 판사, 의원들이었다.
 
  자와히리의 작은할아버지 모하메드 알 아흐마디 알 자와히리는 중동 이슬람 교육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이집트 카이로의 알 아즈하르 대학 총장이었다. 자와히리의 외할아버지는 카이로 대학 총장 출신으로, 사우디의 킹 사우드 대학 설립자인 압둘 알 와하브 아잠이다. 어려서부터 천재라는 말을 들었던 자와히리는 1974년 카이로 의대를 졸업하고, 군의관으로 3년 간 복무한 후 1978년 개인 병원을 차리고 외과의사로 활동했다.
 
  당시 그는 ‘이집트 이슬람 지하드’라는 과격 조직을 만들고 반정부 지하운동을 벌였다. 그는 1981년 10월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 암살 사건에 연루돼 3년 간 투옥됐다. 1985년 사우디 제다에서 1년 간 의사생활을 하던 그는 아프간 난민들을 돕기 위해 파키스탄 페샤와르로 건너갔다. 이때 자와히리는 빈 라덴과 만나게 됐고 알 카에다를 비밀리에 결성했다. 1990년 이집트로 돌아온 그는 자신이 만든 이집트 이슬람 지하드의 지하운동을 이끌면서 더욱 과격한 테러활동을 벌였다. 그는 이집트 정부의 수배를 받고 1996년 자신의 추종자들과 함께 수단으로 피신했다가 다시 1998년 아프간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빈 라덴과 합류했다.
 
  그는 빈 라덴에 이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테러리스트 2위에 올라 있고, 그의 목에는 현상금 2500만 달러가 걸려 있다. 그는 또 이집트에서 각종 테러 관련 혐의로 결석재판을 통해 사형을 선고 받은 상태다.
 
 
  전세계 이슬람화 위한 7단계 계획
 
  알 카에다는 현재 자와히리의 지도 아래 아프간과 파키스탄의 국경지대에서 조직을 재건, 9·11 테러 이전과 같은 상태로 역량을 키우고 있다. 알 카에다가 앞으로 어떤 계획을 추진할 것인지 여부는 불확실하지만 미국과 서방에 대한 지하드를 계속할 것임은 분명하다. 요르단의 언론인 푸아드 후세인은 <차세대 알 카에다>라는 저서에서 알 카에다는 15년 내 전 세계를 이슬람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 7단계 계획을 수립했다고 밝혔다. 그가 밝힌 알 카에다의 지하드 7단계 계획은 9·11테러를 시작으로 무슬림을 일깨우는 ‘각성’ 단계, 젊은 무슬림을 大軍(대군)으로 충원하는 ‘開眼(개안)’ 단계, 2007~10년까지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봉기’ 단계, 2013년까지 사우디 등 중동 산유국 王政(왕정)을 무너뜨려 미국 경제를 붕괴시키는 단계, 2016년까지 ‘칼리프의 땅’ 건설, 무슬림과 非(비)무슬림 간 성전 수행, 2020년까지 확고부동한 승리 쟁취의 단계로 나뉜다. 그는 “알 카에다는 5억 명의 무슬림 전사를 동원한 전 세계적인 전쟁을 통해 칼리프 국가를 설립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만일 이런 목표가 사실이라면, 알 카에다는 구체적으로 어떤 전략을 추진할 것인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알 카에다가 지난 몇 년간 산업시설, 특히 석유 관련 시설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빈 라덴은 2004년 12월 비디오 메시지에서 “우리의 적이 우리를 지배하는 최우선 방법 가운데 하나는 우리의 석유를 훔치는 것”이라며 “여러분의 작전을 특히 이라크와 걸프만의 석유 시설에 집중하라”라고 말했다. 2006년 2월 폭발물을 실은 차량이 세계 최대 정유시설이 있는 사우디의 아브카이크 석유 복합단지로 돌진하다가 실패한 사건은 향후 테러의 방향을 잘 보여준다.
 
  아브카이크 정유공장은 사우디에서 생산하는 원유 중 3분의 2를 정제하는 매우 중요한 시설이다. 세계 석유 매장량 중 4분의 1을 보유하고 있는 사우디는 하루 약 1000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한다. 아브카이크 정유공장에서 수출하는 석유만 해도 하루 700만 배럴이나 된다. 당시 사건은 알 카에다가 사우디 석유시설을 직접 겨냥한 최초의 공격이었다. 사우디 정부는 이 사건과 관련, 테러 용의자 172명을 체포했는데, 조사결과 이들 중 일부가 비행기를 이용해 자살테러를 감행하려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3년 내에 ‘제2의 9ㆍ11’ 일어날 수도
 
  사우디 정부는 이들이 사막에 묻어 놓았던 무기와 현금 2000만 리얄(약 50억 원)을 압수했다면서 이들 중 일부는 유전 등을 파괴하기 위해 외국에서 비행훈련까지 했다고 발표했다. 사우디 정부는 지난해 7월 3만5000명 규모의 유전보호 보안군을 창설하는 등 유전공격 가능성에 대비한 각종 조치를 긴급히 내리기도 했다. 미국의 중동미디어연구소(MEMRI)가 알 카에다는 석유시설에 대한 공격을 통해 미국달러 중심의 국제경제 체제에 피해를 입히는 것을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보고 있다고 지적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말할 수 있다.
 
  미국 16대 정보기관이 작성, 공개한 <미국 본토에 대한 테러리스트들의 위협>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는 알 카에다가 파키스탄의 은신처에서 조직을 재건하는 등 세력을 강화해 왔다면서 이에 따라 미국은 현재 한층 높아진 테러위협 환경에 놓여 있으며 3년 내 9·11에 버금가는 테러공격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또 알 카에다는 그동안 대량살상무기를 입수하려는 노력을 계속해 왔다면서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했다면 이를 주저하지 않고 사용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임스 클래퍼 미국 국방부 차관은 “알 카에다는 미국을 공격할 음모를 꾸미고 있으며, 이를 위해 불량국가들로부터 핵과 화학 및 생물학무기를 입수하려 하고 있다”고 밝혔다. 존 스코트 레드 미국 대(對)테러센터(NCTC) 소장도 “아무리 대비를 하더라도 알 카에다의 미국 본토에 대한 테러공격이 다시 성공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이 그동안 추진해 온 테러와의 전쟁 중심 축을 이라크에서 아프간으로 이동시키려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 정치권에서도 아프간에 병력을 증파해야 한다는 데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2003년부터 시작된 이라크 전쟁은 아프간과 파키스탄에서의 對(대)테러 전쟁 역량을 직접적으로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이라크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아프간에서는 정찰용 무인비행기 한 대도 제대로 쓸 수 없었고, 중동 국가 사정에 정통한 정보요원들은 모두 이라크로 차출됐다. 3년 전만 해도 파키스탄과 아프간의 국경지역에는 알 카에다 조직원들이 수백 명 정도밖에 없었지만, 현재는 2000명에 이르는 조직원들이 언제든 테러공격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고 미국 정보기관들은 보고 있다.
 
 
  파키스탄 북서부에서 조직 재건
 
  특히 최근에는 알 카에다와 연계된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알제리 등 북아프리카, 예멘 등 중동 출신 전사들이 이 지역에 집결하고 있다. 사미르 수마이다이 유엔 주재 이라크 대사는 “지난 수년 동안 이라크를 혼란에 빠뜨렸던 알 카에다의 외국인 전사들이 아프간으로 이동하고 있다”면서 “아프간은 이제 알 카에다 대원이 활동하기에 보다 적합한 곳으로 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아프간의 상황은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최악의 국면을 맞고 있다. 아프간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파키스탄 지역에 은거하던 탈레반과 알 카에다가 손쉽게 국경을 넘어 미군을 공격하고 있다. 미 국무부가 지난 4월 30일 발표한 <2007년 테러보고서>에 따르면 알 카에다는 파키스탄 북서부 변방 지역에서 9·11 테러 이전의 조직능력 일부를 재건했으며, 제2인자 자와히리를 중심으로 지도부의 중앙통제력도 복구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파키스탄 정부가 지난해 북서부 변방 부족장들과 휴전협정을 체결한 뒤 알 카에다가 이 지역에서 군사훈련 및 작전능력을 배양하면서 조직을 재건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9·11테러가 발생했을 때도 탈레반 정권과 알 카에다는 우호관계를 유지해 왔으며, 탈레반 정권은 알 카에다 지도부를 넘기라는 요구도 거부했다. 미국의 공격으로 탈레반 정권과 알 카에다 지도부는 파키스탄 땅으로 도주했고, 이 지역에 은신하면서 재기의 기회를 노려 왔다. 미국은 그동안 페르베즈 무샤라프 전 파키스탄 대통령에게 이들을 제거하기 위한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무샤라프 전 대통령과 파키스탄 정부는 탈레반과 알 카에다를 제대로 소탕하지 못했다. 이후 탈레반은 지난해 초 북와지리스탄주를 중심으로 ‘이슬람국가’ 수립을 선언, 사실상 자신들의 해방구를 만들었다. 탈레반은 이 지역에서 자살폭탄테러 지원자를 훈련시키는 등 아프간 공격의 군사허브를 구축했다.
 
  험난한 산악지대인 이 지역은 현재 사실상 파키스탄 정부의 통치력이 미치지 않고 있기 때문에 準(준)독립상태나 다름없다. 이 지역에 세워진 수많은 마드라사(이슬람 신학교)에서 이슬람 근본주의를 교육받은 젊은 청년 수천명이 매년 탈레반에 가담, 군사훈련을 받고 있다. 이들은 훈련캠프에서 도시 게릴라 전술훈련을 받고 있으며, 각종 폭발물 제조법까지 배운다. 가장 중요한 점은 알 카에다가 탈레반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빈 라덴은 알 카에다 조직원에게 탈레반의 새로운 전사를 훈련하는 데 도움을 주라는 지시까지 내렸다.
 
  탈레반이 최근 들어 아프간 전통과 어긋난 여성인질 감금과 인질 살해뿐만 아니라 참수라는 극단적 방법까지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알 카에다의 영향 때문이다. <탈레반>의 저자인 아흐메드 라시드는 “탈레반이 참수라는 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라면서 “탈레반이 알 카에다가 사용해 온 극단적인 수법을 새로운 전략으로 채택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부시의 ‘테러와의 전쟁’은 실패
 
파키스탄의 한 상점 주인이 오사마 빈 라덴의 메시지가 담긴 CD를 보여주고 있다.
  ‘이슬람=테러’라는 부정적 인식이 지구촌으로 확산된다면 무슬림들의 정당한 주장이나 권리마저 무시되거나 훼손될 수 있다. 평화를 강조하는 코란을 읽는 무슬림이 테러의 피해자가 된다는 말이다. 결국 9·11 테러를 자행한 알 카에다를 소탕하려던 미국과 부시 행정부의 노력은 원점으로 돌아온 셈이다. 부시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중 빈 라덴을 반드시 제거하라는 특별 명령을 내렸지만, 어떤 성과가 나올지는 미지수이다.
 
  현재 미군 특수부대 델타를 비롯해 영국 해병대 최정예 부대인 SBS와 특수 정찰연대 SRR까지 빈 라덴 제거 작전을 벌이고 있지만, 빈 라덴의 생사에 관계없이 부시 대통령이 그동안 추진해 온 테러와의 전쟁은 일단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미국 싱크탱크인 랜드연구소도 보고서(7월 30일자)에서 부시 행정부가 7년 동안 지속해 온 ‘테러와의 전쟁’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미 국방부의 위임을 받아 작성된 이 보고서는 알 카에다 소탕이라는 현재 미군의 전략은 성공하지 못했으며 중요 전략의 변화 없이 앞으로 더 나아질 가능성도 없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전쟁이 시작된 지난 2001년 이후 알 카에다가 조직 역사상 어느 때보다 광범위한 지역에서 활발한 공격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전력도 7년 전보다 더욱 강력해졌다고 분석했다. 이 보고서의 지적대로 테러와의 전쟁은 결코 단기전이 될 수 없고, 알 카에다를 쉽게 소탕할 수도 없는 것이 사실이다. 게이츠 국방장관은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승리하더라도 극단주의에 대한 미국의 ‘장기전’을 끝내지는 않을 것이며, 알 카에다 등 테러리스트들과의 투쟁이 향후 수십년간 미국이 가장 중점을 둬야 할 군사적 우선 순위라고 강조했다.
 
 
  단기간 내 해결은 난망
 
알 카에다의 온라인 군사전략 교본.
  게이츠 장관의 말처럼 부시 행정부는 그동안 테러와의 전쟁을 새로운 냉전으로 간주해 왔다. 과거 소련을 主敵(주적)으로 삼은 냉전시대처럼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을 새로운 적으로 규정한 것이다. 실제로 부시 대통령은 그동안 빈 라덴을 히틀러와 레닌 등에 비유하면서 ‘이슬람 파시스트’라고 부르기도 했다. 부시 대통령은 미국이 수행한 테러와의 전쟁은 단순히 군사적 대결이 아닌 이데올로기 전쟁이라고 강조해 왔다. 심지어 이라크전을 가장 반대해 온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인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도 자신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이라크 주둔 미군을 빼내 아프간과 파키스탄으로 보내 알 카에다를 소탕하겠다고 밝혔다.
 
  부시 대통령과 오바마 후보가 이념적 스펙트럼에서 서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슬람 극단주의를 미국의 적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9·11 테러로 촉발된 테러와의 전쟁을 앞으로 미국이 어떻게 수행할지 여부는 미국의 21세기 전략은 물론, 국제정세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이와 관련, 게이츠 장관은 미래의 미국 지도자들에게 장기전에서 승리하려면 극단주의 세력을 키우는 환경을 없애기 위해 다른 국가들과 협력하라고 촉구했다. 조지 케이시 미 육군참모총장도 “이슬람 온건파가 극단주의자들에게 승리하지 않는 한 테러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긴 힘들다”고 지적했다.
 
  프란시스 후쿠야마 존스홉킨스대 교수도 미국이 군사력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부드러운 힘’(Soft Power)을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후쿠야마 교수는 또 미국이 중동 국가들에 민주주의를 ‘수출’하기보다 경제·사회적 발전을 촉진할 수 있는 제도를 확립하는 데 힘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대응책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은 그동안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군사력을 너무 앞세움으로써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입지를 강화한 측면이 있다. 빈 라덴과 알 카에다가 이를 이용해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을 부추겨 테러공격을 자행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무슬림들 대다수는 알 카에다의 테러공격에 반대하고 있으며, 특히 ‘종교의 이름’을 내걸고 자행하는 폭력을 비판해 왔다. 이런 점을 고려해 볼 때,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서로의 종교와 문명을 존중하고 평화 추구를 통해 알 카에다가 자생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일 수 있다. 하지만 기독교와 이슬람교 간의 갈등과 대립은 지난 1400여년에 걸쳐 형성된 것이어서 결코 단기간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점도 사실이다. 알 카에다가 히드라처럼 버티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알 카에다가 테러를 계속 자행한다면, 평화를 강조하는 코란을 읽는 무슬림들이 테러의 최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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