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 대담] ‘쓰러진 金正日, 북한은 어디로 갈 것인가’

김정일이 筆談만 가능해도 북한 엘리트 그룹이 고개를 쳐들지 못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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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正日 사망해야 집단지도체제 등장 가능. 3代 세습은 어려워”

◎ 북한의 긴급 사태 시 가장 큰 변수는 중국.
    韓美 양국이 ‘5029 계획’ 짤 때 중국변수 고려해야.
◎ 李明博 대통령이 대북 정보 수집과 보고의 일원화를 지시하고 통제해야.

康仁德
⊙ 1932년 평남 평양 출생.
⊙ 한국외대 노어과 졸업. 경희대 정치학 박사.
⊙ 중앙정보부 북한국장, 극동문제연구소 이사장, 통일부 장관.
⊙ 상훈: 홍조근정훈장(1970년), 국민훈장 모란장(1988년),
    5·16 민족상(안보부문ㆍ1992년), 자랑스런 외대인상(1999년).
⊙ 저서: 〈공산주의와 통일전선〉 〈남북회담 7·4에서 6·15까지〉(공저) 등.

南成旭
⊙ 1959년 서울 출생.
⊙ 고려대 국어교육과 졸업. 미주리대 응용경제학 박사.
⊙ 국가정보원 연구원, 한국 북방학회장, 現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국가안보전략연구소장.
⊙ 저서: 〈북한경제의 특성과 경제운용방식〉 〈북한의 체제전망과 남북경협〉 등.

대담 : 康仁德 前 통일부 장관
         南成旭 국가안보전략연구소장
사회 : 金演光 月刊朝鮮 편집위원〈yeonkwang@chosun.com〉
정리 : 金南成 月刊朝鮮 기자〈sulsul@chosun.com〉
‘金正日이 지난 8월 14일 뇌졸중으로 쓰러져 중국 군의관 5명으로부터 수술을 받았다. 사지 마비 증세가 완전 해소되지 않았으나, 의사소통은 가능한 상태다. 회복 중이다.’
 
  지난 9월 9일 김정일이 북한 정권 창립 60주년 행사에 불참한 이후 불거진 ‘金正日(김정일) 異常說(이상설)’은 ‘重症(중증) 혹은 輕症(경증)의 뇌졸중’으로 정리가 됐다. ‘김정일 有故(유고)’ 혹은 ‘깜짝 쇼’설은 배제됐다.
 
  1974년 노동당 정치국원에 임명된 지 34년, 아버지 金日成(김일성) 사망 후 권력을 완전 장악한 지 14년 만에 김정일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다. 몸이 불편해진 그가 전처럼 권력을 힘있게 장악할 수 있을 것인가? 북한 軍部(군부)와 노동당이 김정일과 권력을 분점할 것인가? 헌법으로 ‘김일성의 나라’임을 선포한 북한이 3대 권력세습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이 같은 의문을 풀기 위해 긴급 좌담을 마련했다.
 
  사회: 북한의 최고 지도자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졌습니다. 김정일이 사망한 것은 아니지만, 1994년 김일성 사망 때의 상황과 비교하면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康仁德
  康仁德(강인덕): 현재의 북한 상황은 1994년 김일성이 갑자기 사망했을 때와 비교하면 덜 심각합니다. 북한 주민들의 동요가 그때만큼 심하지 않아요. 김정일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존경심은 김일성보다 크게 떨어져 있습니다. 다만 김일성 사망 때보다 불안요인이 하나 있다면, 후계자가 결정되지 않았다는 점이죠. 김정일은 1980년대 초부터 사실상의 수령 행세를 했습니다. 아버지에 버금가는 권력의 정점에 도달했어요. 김일성이 죽었지만 후계자 문제를 놓고 혼란이 일어나지 않았죠. 하지만 현재 북한 상황은 후계자가 결정되지 않아서, 불확실한 측면이 많습니다.
 
  김정일의 자식과 직계, 군부, 黨(당). 이 3자 가운데 어디가 ‘이니셔티브’를 장악하고, 만일에 대비해서 권력을 장악할지 지켜 봐야겠죠.
 
  南成旭(남성욱): 김정일 이상설이 제기된 이후 네 가지 시나리오가 나왔습니다. ‘사망 시나리오’ ‘중증 뇌졸중 시나리오’ ‘경증 뇌졸중 시나리오’ ‘깜짝쇼 시나리오’(국제사회의 관심을 집중시키기 위해 벌인 쇼-편집자 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정보를 취합하면 이번 상황은 ‘경증 뇌졸중 시나리오’에 가깝습니다. 김정일이 경증의 뇌졸중으로 몸이 약간 불편한 상태라는 사실이 확인되면, 북한의 상황은 ‘권력의 공백’이라기보다는 ‘권력의 약화’, ‘누수’ 정도입니다.
 
  사회: 뇌졸중으로 몸의 절반 혹은 손발의 일부분이 불편하더라도 몸이 정상적일 때에 비하면 운신에 큰 제약이 따릅니다. 지방을 돌아다니면서 현지지도를 할 수 없고, 군중들 앞에 불편한 몸을 드러내기가 어렵습니다. 김정일이 ‘병상 통치’에 들어가면 軍(군)과 黨(당)의 실력자들이 擧動(거동)을 꿈꾸는 것 아닐까요.
 
  남성욱: 김정일이 병상에 있다고 해서, 당이나 군부의 실세 가운데 누군가 김정일에게 머리를 쳐들 것이라고 추측하는 건, 북한의 현실을 모르는 발상입니다. 수많은 사회주의 독재자들이 과거에 병상에서 ‘리모컨 정치’를 해 왔습니다. 가장 먼 사례는 舊(구)소련의 스탈린입니다. 스탈린이 1948년에 병이 심해져 모스크바에서 멀리 요양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그는 모스크바의 권력을 장악하고 리모컨 정치를 5년 간 행사하다 1953년에 사망했습니다. 독재자들이 대중 앞에 나오지 못하는 게, 통치력의 약화를 가져올 수 있지만 통치력의 중단을 가져오지는 않습니다.
 
 
  “수령 체제 아래서 군부와 권력 나누는 건 절대 불가능”
 
南成旭
  사회: ‘김정일이 국방위원회를 통치기구로 활용하면서 이미 군부와 권력을 공유하면서 통치해 왔다’는 관측이 있지 않습니까.
 
  강인덕: 저는 그 의견에 찬성하지 않습니다. 권력을 나눠 가지는 것은 수령 체제에서는 있을 수 없습니다. 의사결정 과정에서 군부의 힘이 다른 부문보다 강하다고 할 수는 있겠지만, 군부가 김정일의 권력을 나눠서 함께 행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김정일은 군부를 계속 장악하고 있습니다.
 
  남성욱: 한국의 연구자들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북한을 연구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기껏 체험한 ‘권력의 독점’은 유신 시절 朴正熙(박정희) 대통령의 통치입니다. 하지만 그 시절에도 언론과 야당이 있어서, 박 대통령의 권한을 상당 부분 제한했습니다. 우리는 그 정도를 ‘권력의 독점’, ‘독재체제’라고 한다는 말이에요. 북한의 <노동신문>을 한번 보세요. 어디 김정일에 대한 비판이 있습니까. 권력을 나눠 가진다는 생각은 한국 학자들의 자의적 해석, 우리 식 상상력입니다.
 
  사회: 김정일이 8월 14일 전후에 쓰러졌고, 북한이 8월 26일 ‘핵 불능화 조치 회복’ 선언을 내놓았습니다. 그래서 ‘김정일이 의사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에서 군부가 강경 조치를 밀어붙인 것이다’라는 해석이 나온 적이 있습니다.
 
  남성욱: 김정일이 지난 8월 15일 전후로 쓰러졌는데, 미국이 美北(미북) 핵 협상에서 양보를 안 한단 말이에요. 그러면 북한 외무성이나 군부에서 “장군님, 미국을 손볼 때가 된 것 같습니다. 현재 진행 중인 핵 불능화 조치를 중단하겠습니다”라고 보고를 해오면, 김정일이 사인을 할 수 있는 거죠. 군부가 이번 핵 불능화 조치 중단 결정을 독단적으로 내렸다는 얘기가 흘러나오지만, 군부가 독자적으로 이런 조치를 내렸다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습니다.
 
  사회: 북한이 국방위원회 중심으로 통치되면서 ‘군에 대한 노동당의 우위가 무너졌다’는 관측이 제기됐습니다. 강인덕 전 장관께서는 일관되게 “군에 대한 노동당의 우위는 견지되고 있다”는 입장이었죠.
 
  강인덕: 국방위원회 산하 조직만으로 인민에게 정책을 전할 수 없습니다. 인민의 말단까지 정책을 전할 수 있는 건 역시 당입니다. 설사 당과 협의해서 군부의 의견이 먹혔다고 해도, 모든 군사·행정·경제 정책은 당을 통해서 내려갑니다. 현재 북한에 ‘당 중앙위원회’가 존재하는데, 정치국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게 기이합니다. 지금 정치국원으로 발표되는 건 오직 김정일 한 사람입니다. 지금은 국방위원회가 당 정치국이 해야 할 일을 대신하고 있어요. 그렇기는 하지만 군을 ‘당 속의 군’이라고 봐야지 ‘당 위의 군’은 있을 수 없어요. 超黨的(초당적)일 수 있는 건 오로지 김정일 한 명입니다.
 
 
  김정일의 권력체제 이상 없어
 
김정일 와병설 보도한 유력신문들.
  사회: 그동안 ‘김정일 有故(유고)’ ‘김정일 이상설’들이 일본과 한국發(발)이었다면, 이번 ‘김정일 이상설’은 주로 미국 쪽에서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남성욱: 미국과 중국의 정보당국이 정보를 은밀히 흘리고 ‘NCND’(시인도 부인도 안 하는 것-편집자 주)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의 정보 당국이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이런 얘기가 흘러 나오는 게 김정일의 뇌졸중이 중증이 아니라는 방증이라고 봅니다. 김정일의 병이 중증에 가까웠다면, 이런 정보가 우리 정보 당국까지 넘어오지 않았을 겁니다. 역설적이지만 경증이었기 때문에 우리 정보 당국까지 김정일의 몸 상태에 대한 정보가 넘어온 겁니다. 김일성이 사망했을 때도 34시간이 지나서야 우리 정보 당국에 알려졌어요.
 
  김정일이 경증의 뇌졸중을 앓는 상태에서 군이든 다른 권력 기관들이 자기 목소리를 낼 거라고 추측하는 건 너무 앞서가는 겁니다. 현재 북한은 종전의 권력 체제에서 크게 이탈하지 않고 있습니다.
 
  강인덕: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지금 북한의 상황은 결정적인 유고 상황이 아닙니다. 앞으로 김정일이 외부 행사에 나가지 않는 부분이 늘어나겠지만, 그것이 안전보장, 체제유지에 영향을 주는 건 아닙니다. 외부 행사에 10번 나갈 것을 서너 번으로 줄인다고 해서 체제에 어떤 영향을 주겠습니까.
 
  사회: 김정일의 몸이 불편해지면, 업무 형태나 통치 행태에 변화가 있지 않을까요.
 
  강인덕: 가장 핵심적인 안전보장, 체제유지는 김정일이 여전히 쥐고, 인민경제 계획 같이 시시콜콜한 것은 김정일이 직접 챙기지 않겠죠. 다시 말하면 중요도가 떨어지는 사안까지 김정일의 친필 사인 받는 것은 줄어들 겁니다. 하지만 그게 체제 유지에 어떤 영향이 있겠어요?
 
  김정일은 1980년대 초부터 북한 전체를 손에 쥐었습니다. 김정일이 비밀경찰과 당을 장악해서 1990년대에 들어서 김일성은 거의 ‘로봇’이었어요. 김일성은 쌀이 떨어져 인민이 굶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김정일이 보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1994년이 돼서야 김일성이 북한 경제 실상을 알았어요.
 
  후계자가 결정된 상황이면 김정일이 2선으로 후퇴할 수 있겠지만, 후계자가 없습니다. 통치 행태나 업무 형태에 전혀 변화가 없을 겁니다. 중요한 사안은 김정일 자신이 더 쥐려고 할 겁니다. 자기 死後(사후)에 문제가 없도록 조치를 단단히 취하려고 하겠죠.
 
  남성욱: 독재자들의 병 상태가 중증이냐 경증이냐를 판단하는 기준은 ‘대화가 가능한지’ 여부입니다. 중증은 정상적으로 대화가 불가능합니다. 지시를 할 때 필담이나, 문서로 하게 되죠. 하지만 경증은 보행만 어려운 상태입니다. 요새는 風(풍)을 맞아도 1시간 이내에 병원에 가서 치료하면, 몸은 다소 불편하지만 의식이 돌아오고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지난 9월 9일 북한 정부 수립 60주년 행사에서 북한 김영일 내각총리가 노동자복을 입고 군사 퍼레이드를 참관하러 나왔습니다. 누가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까. 그건 김정일만이 할 수 있어요. 김정일이 앉아서 지시를 한다는 얘기입니다. 거동이 불편한 김정일이 현지지도를 못한다고 해서, 중앙권력이나 지방권력이 김정일에게 머리를 들 수 있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사회: 김정일이 오는 10월 10일 조선 노동당 창건 행사에 나타나느냐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남성욱: 9월 9일에 군사 퍼레이드가 2시간 지속됐는데, 관람석의 차양이 짧아서 만약 김정일이 나왔으면 2시간 동안 햇볕을 꼬박 맞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풍을 맞은 노인이 2시간을 꼬박 서 있는 게 얼마나 힘들겠어요. 8월 14일 수술을 받고 몸이 회복됐어도, 당시 군사 퍼레이드에 김정일이 나오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지금 우리 언론이 쌍십절(10월 10일)에 ‘김정일이 나오느냐 안 나오느냐’를 가지고 김정일의 건강을 추측하는데, 이건 우리 시나리오예요. 올해는 꺾어지는 다섯 돌, 열 돌도 아닌 ‘당 창건 53주년’입니다. 얼마든지 김정일이 안 나올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이날 김정일의 참석 여부와 김정일의 건강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이번 쌍십절에 김정일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사회: 김정일도 이제 자신의 후계구도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어떤 징후가 나타나면 ‘김정일이 후계구도 확립작업에 착수했다’고 짐작할 수 있을까요.
 
  강인덕: 북한이 후계자 결정에 들어가면, <노동신문>에 뭔가 징후가 나타납니다. 김정일 후계구도가 본격화될 때 <노동신문>에 ‘당 중앙’이라는 표현이 나타나 중앙정보부가 그게 누구인가 촉각을 곤두세웠습니다. ‘당 중앙’이 바로 김정일을 부르는 호칭이었습니다. 몇 년 전 김정철, 김정운의 어머니인 ‘고영희 우상화 작업’이 군 내부에서 진행됐습니다. 그걸 근거로 ‘김정철이 후계자’라는 추론이 쏟아졌죠.
 
 
  “김정일이 病床에서 후계 지목하지 않을 것”
 
  사회: 김정일이 김정남, 김정철, 김정운 세 아들 가운데 하나에게 권력을 물려줄 수 있을까요.
 
  강인덕: 김정일이 자신의 아들한테 권력을 넘길 수 있을까, 저는 의문이 들어요. 김정일은 김일성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당에서 일했고, 김일성이 항상 데리고 다녔습니다. 김일성이 1958년 모스크바에 갈 때 김정일이 함께 갔습니다. 그때 黃長燁(황장엽) 선생을 만났다고 하잖아요?
 
  김일성은 군부대에 시찰 갈 때 김정일을 데리고 다니면서 帝王學(제왕학)을 공부시켰어요. 지금 김정남이든 김정철이든 김정운이든 이런 경험이 없어요. 아들 셋 가운데, 누가 제왕학을 공부했을까, 의문이 들어요. 통치자로서 자격을 가진 자식이 없는 거죠.
 
  사회: 김정일의 이복동생인 김평일 폴란드 대사, 매제인 張成澤(장성택)에게는 가능성이 없을까요.
 
  강인덕: 그것도 어려울 겁니다. 국내에서는 김정일의 여동생 남편인 장성택을 주목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북한에서 장성택 역시 ‘곁가지’에 불과합니다. 김평일은 더 하고요. 두 사람 다 한계가 있어요.
 
  남성욱: 나이 든 사람이 중풍으로 쓰러지면 심정적으로 가족에 기대게 된다고 합니다. 김정일의 병상을 찾을 수 있는 직계는 20명 정도로 집계되고 있어요. 전처 김영숙도 아프면 찾을 수 있으니까, 여기에 포함되죠. 아마 김정일은 가족 외에 절대 믿을 수 없을 겁니다. 이 때문에 요새 ‘문고리 권력’이라는 말이 나오는 거죠.
 
  저는 김정일이 비록 몸은 불편하지만 세 자식 가운데 한 명을 서둘러 후계자로 지목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합니다. 김정일은 피비린내 나는 政敵(정적) 숙청, 작은아버지 김영주·이복동생 김평일과의 처절한 권력투쟁 끝에 권좌에 올랐습니다. 섣불리 한 아들을 후계자로 지목해서 가족들간의 피비린내 나는 권력투쟁이 일어나도록 하지 않을 겁니다. 자기가 병상에서 털고 일어나 아들 중 하나가 정상적인 ‘제왕학 코스’를 거치게 하겠다고 생각하지, 병상에 누워서 ‘후계자가 첫째니 둘째니’ 하는 얘기를 하지 않을 겁니다.
 
  강인덕: 북한 군부가 2002년 8월 제작한 고영희 우상화 교육자료를 月刊朝鮮이 최초로 공개한 후 ‘김정일의 후계자는 김정철’이라는 관측이 나왔습니다. 문제는 김정철이 뭘 하고 있는지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어느 아들이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은, 각자가 어떤 위치에서 일을 시작했는지에서 출발합니다. 김정일은 당 조직지도부에서 일을 시작해, 선전선동부를 장악하고 군부를 장악했어요. 세 아들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나와야 누가 후임자에 가까이 다가가 있는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김정일의 후계자는 세력관계에서 결정되는 게 아니라 김정일이 지명합니다. 누굴 지명할지는 김정일만 아는 것이죠.
 
  남성욱: 우리가 북한의 후계 구도를 예측할 수 있는 정보와 첩보들이 정확하지 않습니다. 특히 누가 누구를 지원하는지 확인할 수 없어요. 장성택이 김정남과 가까운 후원세력이라고 하는데 불명확해요. 첩보가 틀려요. 황장엽 선생은 “둘 사이가 가깝지 않다”고 합니다. 탈북자들에게 확인해 보니 황 선생 말이 맞아요. 현재 언론에 보도되는 북한 권력층들의 親疏(친소) 관계는 부정확합니다.
 
  사회: 북한 내부에 권력 승계를 명문화해 놓은 법이나 규정이 있습니까.
 
  강인덕: 그런 것은 없습니다. 저는 과거 북한이 주체라는 연호를 정하는 걸 보면서, ‘북한은 앞으로 김씨 일가에서만 통치자가 나오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연호는 봉건 왕조에서 쓰는 것 아닙니까. 일본이 ‘명치-대정-소화-평성’으로 내려오는 것처럼요. ‘주체’라는 연호는 김일성부터 내려오는 혈연관계가 이어져야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김일성주의인 주체사상이 3대 세습을 당연히 보장해 주지는 않습니다. ‘마오쩌둥(毛澤東)주의(마오이즘)’를 보십시오. 마오쩌둥이 살아 있을 때는 ‘마오쩌둥주의’지만 죽으니까 달라지잖습니까. 죽은 후에 ‘마오쩌둥주의’ 가운데 일부는 받아들이고 일부는 잘못을 지적했죠. 1981년에 덩샤오핑(鄧小平)이 역사적인 재평가를 해서 마오가 실수한 것을 시인했습니다. 舊(구)소련은 스탈린이 죽고 나서 ‘스탈린 격하 운동’이 일어났잖습니까.
 
  사회주의 독재자들의 이론은 이데올로기 차원에서 받아들이지만, 죽고 나면 수정할 수 있어요. 후계체제가 아들에게 이어질 건지, 권력 투쟁이 일어나서 세 아들이 제거되고 당에서 새로운 후계자가 나올지 지켜봐야죠.
 
  남성욱: 사회주의에서 권력은 누가 거저 주는 게 아니라 쟁취하는 거죠. 김정일은 김일성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권력을 차지한 게 아닙니다. 김영주, 김평일과 투쟁해서 권력을 장악하고 독재체제를 이어갈 수 있었던 겁니다. 중국, 러시아 사례에서 보면, 치열한 경쟁을 벌여 권력을 잡고 그걸 지킬 수 있는 사람만이 독재를 할 수 있었습니다.
 
  김정일의 경우를 보면, 1973년 이후부터 우상화 작업 공작에 들어갔습니다. “수령님 사진 옆에 내 사진을 걸어라” “모든 조치는 나를 통해서 수령님에게 가라” 이런 식으로 권력을 쟁취한 겁니다. 김일성도 1950년대 말까지 연안파들의 저항 때문에 권력을 제대로 잡지 못했습니다. 김일성 역시 치열한 권력 투쟁에서 성공한 다음, 독재 체제를 유지했습니다. 앞으로 김정일의 세 아들이나, 다른 누구든 치열한 권력 투쟁에 뛰어들어 살아남아야만 권력을 승계할 수 있습니다. 김정일이 후계자로 지목하는 것과, 그 사람이 후계자가 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로 봐야 합니다.
 
지난 9월 9일 김일성 광장에서 치러진 노농적위대 열병식의 녹화중계 장면. 이날 행사에 김정일은 참석하지 않았다.
 
  “김정일이 죽기 전까지는 집단지도체제는 어불성설”
 
  사회: 그렇다면 김정일의 마음이 아주 급하겠네요.
 
  강인덕: 그렇죠.
 
  남성욱: 나이로 보면, 집에서 손자를 봐야 할 사람들이 현재 북한의 주석단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70세 이하는 젊은이니까요. 이 노인들은 잠잘 때 ‘몸이 옛날과 같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 겁니다. 김정일이 나이 66세에 풍을 맞았다고 해서, 큰 이상이 생겼다고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스탈린과 마오쩌둥의 통치행태를 잘 아는 이들 사회주의 원로 그룹에게 ‘병상 통치’는 낯설지 않습니다. 김정일이 ‘병상 통치’에 들어가기 때문에 북한의 세습 과정이 더 길어질 수 있습니다.
 
  김정일이 ‘경증의 뇌졸중’이라면 의사결정이 예전보다 늘어질 겁니다. ‘김정일이 결정해 놓은 대로 가자’는 강경파 목소리가 득세해서, 과거 김용순처럼 “서울과 대화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기가 어렵겠죠.
 
  사회: 김정일의 상태가 경증의 뇌졸중이 아니라 중증의 뇌졸중이어도 ‘병상 통치’가 가능하겠습니까.
 
  남성욱: 충분히 가능하죠. 김정일 父子(부자)에게 어설프게 머리를 들었다가 피를 본 사례가 지난 60여년간 수없이 많았습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신중한 ‘시니어 그룹’들은 완전히 사과가 땅에 떨어질 때까지 꿈쩍도 안 합니다. 경거망동을 할 수 있는 권력구조가 아닙니다. 소련의 브레즈네프는 죽기 전날까지 권력을 놓지 않았습니다.
 
  북한의 지도그룹은 일단 지켜보면서 내부적으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겠지요. 하지만 ‘김정일이 완전히 사망했다’는 이야기가 나올 때까지 어느 누구도 후계 구도 같은 얘기를 할 수 없습니다. 김정일이 김일성의 3년 喪(상)을 치른 후 북한 주민들의 지지를 얻어 권좌에 올랐습니다. 김정일이 죽은 것도 아니고 병상에 누웠다고 해서 “바꿔야 한다”고 얘기하면, 다른 그룹에 책을 잡혀서 숙청당하기 십상입니다.
 
  지금 우리 언론에 나오는 ‘집단지도체제’ 얘기는 ‘병상통치’가 적어도 2년 이어진 뒤에나 나올 수 있는 얘기입니다. ‘북한이 집단지도체제로 간다’ 운운은 북한을 잘 모르는 얘기입니다.
 
  강인덕: 맞습니다. 구 소련에서 스탈린이 죽기 전까지 아무도 후계 얘기를 못했어요. 스탈린이 죽기 전날, ‘내가 일어날 때까지 깨우지 말라’고 했대요. 저녁이 다 돼서 청소하는 여인네가 스탈린이 죽은 걸 발견했습니다. 정치국원들이 다 달려왔지만 겁이 나서 아무도 스탈린의 몸에 손을 못 댔고, 의사를 불러서 겨우 죽음을 확인했다는 것 아닙니까.
 
  김정일이 죽은 다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지만 살아 있는 한 그 앞에서는 죽은 체해야 합니다. 누구도 고개를 들 수 없습니다. 우리 언론에 ‘북한 군부가 세 아들 중 하나를 내세워 대리 통치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너무 앞서 나간 얘기입니다. 북한에서 집단지도체제라는 말은 김정일이 죽은 다음, 승계자가 없을 때 나올 수 있는 용어입니다.
 
  남성욱: 1980년대 全斗煥(전두환)의 신군부가 정권을 잡는 과정을, 우리 학자들이 북한에 종종 대입합니다. ‘권력에 공백이 생기면 가장 센 놈이 치고 들어가서 차지한다’는 시나리오는 북한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현재 미국의 반응이 얼마나 신중합니까. 백악관과 국무부가 김정일의 건강상태 등에 대해 공식 멘트를 안 하고 있어요. 우리 언론에 ‘김정일이 혼자 양치질을 한다’는 식의 가십성 얘기가 나오는 건 문제가 있어요. 미국에서는 아직 정보를 언론에 흘리지 않습니다. 종합적으로 파악하기 전에는 언론에 얘기 안 해요.
 
북한 김정일이 2008년 함경남도 염소목장을 시찰해서 가공제품을 둘러보는 장면.
 
  “국방위원회 중심이 당 정치국 중심으로 바뀔 듯”
 
  사회: 현재 북한 정권은 국방위원회라는 초헌법적 기구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정치국은 유명무실한 상태입니다. 이런 비정상 상태가 언제까지 지속될까요.
 
  강인덕: 국방위원회는 ‘先軍(선군)정치’의 상징입니다. 앞으로 계속 국방위원회 체제로 가버리면, 군인들이 리더십을 장악하는 건데, 상당한 저항이 올 겁니다. 경제가 형편없으니까요. 앞으로 국방위원회가 노동당으로 흡수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당 중심의 정치’로 돌아가야 정상적인 공산당 지배체제로 환원되는 거니까요.
 
  김정일이 죽고 3대 세습이 어렵다면, 더더욱 국방위원회를 없애야죠. 국방위원회가 당 내부로 들어와서 당 지배체제로 가야 정책이 균형 있게 결정될 수 있습니다. 마오쩌둥이 죽은 후 중국공산당의 실제적인 리더는 당 군사위원회 위원장(주석)이었어요. 덩샤오핑이 장쩌민(江澤民)에게 당 총서기 권력을 주고 나서 마지막까지 군사위원회 주석을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장쩌민도 마찬가지였고. 하지만 중국의 경우 국방위원회가 당내의 조직이었습니다. 북한 역시 그렇게 가면 됩니다.
 
  남성욱: 국방위원회는 별도의 조직이 아닙니다. 김정일이 국방위원회 위원장이고, 국방위원회 소속 인사들이 군부를 형성하는 하나의 축이지 그곳에서 모든 것을 결정하지는 않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김정일이 병상에 누워 있으니 국방위원회에 더 힘이 실릴 것이다’라는 논리는 김정일이 사망해서 권력투쟁이 났을 때 시나리오지, 군사위원회 역시 지금은 5대 권력기관의 하나에 불과합니다.
 
  사회: 북한 노동당 정치국이 공백 상태가 이렇게 계속되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입니까.
 
  강인덕: 김정일이 정치국을 통해서 북한을 통치할 생각이 없으니까요. 당과는 별도로 국방위원회라는 것을 만들어서 통치한 것 아니겠습니까.
 
  남성욱: 지금은 ‘비상시국’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국방위원회를 끌고 가는 겁니다. ‘미 제국주의자들과 핵무기를 가지고 협상을 하고, 제국주의자들이 우리를 붕괴시키려고 덤벼드는 특별한 상황이다’라는 얘기죠. 국방위원회 중심의 통치로 군의 위상을 강화시키는 동시에 인민들의 위기의식을 고취시키고 단결시키자는 통치술입니다.
 
  사회: 김정일의 뇌졸중이 설사 중증이라도 필담만 할 수 있다면, 북한에서는 앞으로 상당기간 김정일의 ‘병상통치’가 계속된다는 게 두 분의 일치된 견해입니다. 그렇다면 관심은 김정일의 병상통치가 남북관계, 미북 핵 협상, 북한의 경제난 해소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느냐입니다.
 
  강인덕: 의사결정이 지연될 것이라고 봅니다. 특히 김정일이 이미 결정한 것을 바꿔야 하는 경우, 과거보다 결정이 쉽지 않을 겁니다. 예를 들어, 1980년대에 생화학무기 사용금지협정을 체결했을 때, 김정일이 사인을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군부에서 분석해 보니까 안 되겠거든요. 군부가 다시 김정일을 설득해서 취소 사인을 받아 왔어요. 원래 가지고 있는 로드 맵대로 갈 때는 문제가 없겠지만, 정책을 뒤집어야 할 때, 김옥(현재 김정일의 네 번째 여자-편집자 주)이든 서기실 35호실(김정일 비서실-편집자 주) 멤버들이든 골치 아픈 보고를 못할 겁니다.
 
 
  병상 통치의 영향력은?
 
2000년 순안 공항으로 김대중 대통령을 마중나온 김정일. 심한 복부 비만이 뇌줄중의 한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남성욱: 북한에서 김정일의 파워가 가장 많이 미치는 부분이 대외정책입니다. 외국 대표단 초청이나 파견은 김정일 사인 없이 할 수 없습니다. 미·북 관계가 앞으로 문제인데, 가장 결재를 많이 해야 할 사람이 김정일입니다. 북한은 미국의 12월 대선을 편안하게 지켜볼 수 없습니다. 북한 외교부는 아픈 김정일을 상대로 듣기 좋은 보고를 해야 할 겁니다. “미국이 장군님의 영도력에 굴복했습니다” 하는 보고가 들어가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압박전술을 허용해 달라’는 요청을 할 겁니다. “미국이 선거 때라 우리에게 관심을 안 보이는데 불능화 중단하고, 뒤로 2~3단계 역주행합시다” 이런 식으로 보고를 올렸을 겁니다.
 
  현재 미국은 대선 후보인 오바마와 매케인이 북한 핵문제에 신경 쓸 입장이 아닙니다. 부시 대통령은 사태를 악화시키지 않는 정도에서 관리하겠죠. 핵심은 ‘테러지원국 해제’인데, 부시는 절대로 의회에 요청 못할 겁니다. 그건 다음 정부가 할 일입니다. 현직 대통령이 할 일이 아닙니다.
 
  사회: 클린턴 전 대통령도 부시 대통령 당선자가 반대했기 때문에 임기 말의 북한 방문을 취소했죠.
 
  남성욱: 그렇습니다. 북한에게는 큰 불행이었죠. 게다가 PLO(팔레스타인 해방기구) 의장 아라파트가 클린턴에게 ‘임기가 얼마 안 남은 사람이 북한보다 중동평화에 기여해 달라’ 는 편지를 써서 보냈잖아요. 어쨌든 내년 1~2월까지는 미국의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가 뉴욕 채널을 통해 사태를 악화시키지 않는 방향으로 갈 겁니다. 미국의 새로운 대통령이 당선되면 외교 안보 라인업을 갖추어 대화는 3~4월에 재개할 겁니다. 워싱턴을 움직이기 위해 평양發(발) 뉴스는 강하게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이 그것을 알고 있으니 북한의 역주행이 빈번할 걸로 봐야죠.
 
  사회: 경색된 남북관계는 어떤 식으로 진행될까요.
 
  강인덕: 남북관계는 ‘3통’(통행·통관·통신)이 해결되어야만 근본적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게 가능하겠습니까. 북한은 전혀 변하지 않을 것이고, 李明博(이명박) 정부에 대한 북측의 인식도 좋지 않습니다. 남북문제는 정체되거나 더욱 나빠지면 나빠졌지 좋아질 가능성이 없다고 봅니다.
 
 
  북한이 인도적인 반대급부 있어야 쌀·비료 지원 가능
 
  남성욱: 김용순과 같은 협상 대화파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겠는가, 좀 어려울 겁니다. 이 판국에 ‘장군님 서울과 만나야 합니다’ 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까. 종전까지 이어져 온 장관급, 당국간 회담채널은 당분간 열리기 힘들 겁니다. 문을 닫으면 자신들이 답답한 점이 있으니, 절충안은 낼 겁니다. 실리는 취하려고 하기 때문에 민간접촉은 열어놓지 않겠나 싶습니다. 물자는 받고, 사람은 막아서 부작용은 최소화하는, 나름대로 실리를 획득하는 전략전술을 펼 겁니다.
 
  사회: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이후 연간 쌀 50만t, 비료 20만~30만t을 북한에 지원하는 것이 정례화되다시피 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대북지원에서 상호주의, 투명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미국은 쌀 50만t 지원을 시작했고, 북한은 매년 받아 왔으니 쌀과 비료를 달라고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강인덕: 여론을 들어가면서 지원 여부를 결정해야죠. 북한이 우리 정부가 제안한 옥수수 5만t 지원을 거부하면서, “민간이 주는 건 받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민간에서 어떻게 쌀 20만~30만t을 줄 수 있습니까.
 
  남성욱: 쌀값이 예년에 비해 두 배 오르고, 비료값이 세 배 올랐습니다. 제가 지방에 강연을 가면 농민들이 “북한에 비료를 퍼줘서 비료값이 오르지 않았냐”고 항의를 합니다. 북한에는 비료를 무상으로 주고, 농민들은 세 배 오른 값으로 비료를 산다면, 어느 정부가 농민을 설득할 수 있습니까.
 
  과거에 쌀 40만t을 국제시세로 사면 수송비까지 해서 3000억원이 들었습니다. 비료 30만t은 2200억원 정도에 보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2배 이상의 예산이 듭니다. 이명박 정부가 아무런 반대급부 없이 1조원 이상의 예산을 투입해서 북한을 지원하겠다면 국민들이 동의하겠습니까.
 
  이명박 정부는 인도적인 차원의 쌀지원 비료지원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인도적인 차원의 관심을 보이면 북한도 이산가족 납북어부 국군포로 같은 인도적인 문제에 성의를 보여야 합니다. 물론 이걸 등가적으로 동시에 교환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1조원의 쌀과 비료를 주면, 납북자 1명, 국군포로 1명이라도 보내 달라 이겁니다.
 
 
  “美·中 협의로 북한 운명 결정될 것”
 
  사회: 김정일 사망 등으로 북한의 급변사태가 발생하면 중국이 반드시 개입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입니다. 중국이 북한에 군대를 파견하거나 親中(친중) 정권을 세울 근거가 있습니까.
 
  강인덕: 저는 북한 문제는 이제 미국과 중국의 협력으로 풀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북한 지역에서 미국과 중국의 이해관계가 완전히 상충됩니다. 어느 한쪽이 북한 지역을 점령하는 것을 호락호락 승인하지 않을 겁니다. 북한 땅은 중국의 안정보장에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한미 양국이 압록강까지 점령한다고 하면 만주, 네이멍구, 베이징 일대까지 완전히 열립니다. 중국이 그런 상황을 가만히 놔둘 리 없습니다. 중국은 ‘북한 땅의 완충지대화’가 전략적 목표입니다. 북한이 한국과 미국의 영향권으로 떨어지는 상황이 오면 무슨 명분을 내걸더라도 개입할 겁니다. 미국이 중국의 개입을 막으려고 나서면, 그건 미국과 중국의 문제가 됩니다. 우리 손을 떠나겠지요.
 
  그렇다고 우리가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죠. 우리도 가능한 북한 급변사태 시 우리가 주도권을 가지는 조치를 취해야죠. 이제 국제관계의 틀에서 한반도를 봐야지, 민족내부 문제로서 한반도를 보면 안 됩니다.
 
  남성욱: 북한 정권이 갑자기 무너져서 혼란이 생겼을 때, 우리가 생각하는 ‘김정일 사망-한국군 진격-평양 접수’ 시나리오는 소설에나 나올 얘기입니다. 한국 정부가 알기 전에 美·中(미중) 전략대화에 의해 한반도의 운명이 결정될지 모릅니다. 그런 상황에 대비해야죠. 미·중 양국이 한반도에 ‘두 개의 한국’을 유지하는 정책에 동의할 가능성이 큽니다.
 
  중국이 북한의 핵 문제나 대량살상무기의 해외 이전을 막고, 무력충돌을 예방하겠다고 약속하면 미국이 북한에 친중 정부가 들어서는 걸 용인하는 상황이죠. 중국이 한ㆍ미ㆍ일 3개국에 북한에 대한 경제적인 원조를 요청하겠죠. 중국이 북한의 군을 통제하고, 한ㆍ미ㆍ일은 북한에 경제적인 지원을 해주는 그런 체제가 상당히 지속되지 않을까요?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한미동맹 하에서 만든 ‘개념 계획 5029’은 현실성이 많이 떨어집니다. 중국 변수를 고려하지 않았으니까요.
 
  강인덕: 남성욱 원장의 말이 맞습니다. ‘개념 계획 5029’는 1960년대식 접근입니다. 현 시점에 맞도록 만들어져야 합니다. 북한이 절대적으로 중국의 영향하에 있다는 전제를 버려서는 안 됩니다.
 
 
  “한국 통일이 4대 강국에 害가 안 된다는 점을 인식시켜라”
 
  사회: 북한의 급변사태를 통일로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우리의 외교역량이 대단히 중요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남성욱: 미 컬럼비아대 사피로 교수가 “한국이 통일을 하기 위해서는 4대 강국에게 통일이 4대 강국에 해롭지 않다고 계속 속삭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독일 학자들에게 “당신들이 통일을 먼저 했으니 조언을 달라”고 하면 “기회의 창문을 잡으라”고 대답합니다.
 
  독일에 통일의 기회가 왔을 때, 서독의 콜 총리가 모스크바로 날아가서 고르바초프를 만났어요. 통일의 최대 걸림돌인 소련의 동의를 얻기 위해 30억 달러를 들고 갔습니다. 독일은 고르바초프라는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자’를 만난 게 행운이었습니다.
 
  고르바초프는 동독에 탱크를 보낼 생각이 없었는데 콜이 돈까지 싸 들고 왔으니, 독일 통일에 반대할 이유가 없었죠. 1989년에 소련이 동독에 탱크를 보냈으면 독일 통일은 당연히 지연됐겠죠. 우리의 통일은 국제정치의 틀 속에서 논의될 수밖에 없어요. 분단이 국제적인 역학관계에서 주어졌듯이.
 
  강인덕: 통일 상황이 왔을 때 북한 군부를 제압할 수 있는 것은 중국뿐입니다. 미국이 나서면 저항이 심해질 거란 말입니다. 저는 남북한의 왕래가 중국·대만 정도만 되면 통일이라고 봅니다. 그 정도만 이뤄져도 민족공동체의 부활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상황으로 가기 위해서는 중국의 협조를 더 많이 받아야 합니다.
 
  사회: 김정일이 쓰러짐으로써 북한의 앞날을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앞으로 김정일의 병세, 북한 체제의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할 텐데 우리의 정보역량이 그만큼 되는지 걱정입니다.
 
  강인덕: 북한의 현 상황을 더욱 신중하게 다루어야 합니다. 정확한 정보를 토대로 시나리오를 짜야 합니다. 시나리오가 너무 비현실적이면, 국민을 호도할 수 있어요. 북한을 우리 식으로 단순하게 보지 말아야 합니다. 따라서 대북 정보 수집 활동이 더욱 중요합니다. 대북 정보에 관해서는 모든 정보가 하나로 묶여서, 대통령에게 직접 상달되는 그런 체제가 돼야 합니다. 그걸 할 수 있는 건 대통령밖에 없습니다. 국정원이든 어디든 대통령이 “북한 정보를 어느 기관에서 책임지고 담당하라”고 지시해야 합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는 박 대통령의 지시로 중앙정보부가 그 기능을 수행했습니다.
 
  우리 내부의 조정과 협력보다 국제 정보협력이 더 중요해요. 여기서는 보안이 가장 중요합니다. 보안이 누설된다고 생각하면 상대 국가가 절대로 정보를 주지 않습니다. 국가 간에 정보공유 협정을 체결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 면에서 지난 10년간 한미 정보공조가 완전히 깨졌어요. 이걸 빨리 회복해야 합니다.
 
  남성욱: 대북 정보 수집은 상당히 예민한 문제입니다. 金大中(김대중) 정권 이전에 미국은 우리와 정보교류를 했지만, 김대중·盧武鉉(노무현) 정권 때는 우리 정부와 정보 교류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 두 정권과는 정보교류를 할 필요성을 못 느꼈고, 정보 왜곡 현상이 많았습니다. 새 정부 들어서 이 문제가 어느 정도 개선됐는지는 의문이 듭니다.
 
  앞으로 ‘경증 뇌졸중 시나리오’가 일정기간 지속되는 과정에서 오보와 추측, 믿거나 말거나 하는 보고가 많이 나올 겁니다. 정부가 정책판단을 하는 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fact)’입니다. 우리 정보기관들의 역량을 집중해서 정보수집에 매진해야죠.
 
  우리 정보기관들이 수집하는 정보는 북한의 운명, 한반도의 운명, 한반도의 효율적 정책 등에 중요한 토대가 될 겁니다. 따라서 정부의 대북정보 수집체계를 상당한 정도로 바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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