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끼리만 한다」는 식의 사고방식을 버리지 않으면 세계화 추세에서 살아남기 힘듭니다. 우리는 민족주의 성향이 너무 강한 듯 보입니다.
젊은이들은 무조건 밖으로 돌아다녀야 합니다』
趙亮鎬
1949년생. 경복高 입학. 美 쿠싱아카데미高 졸업. 인하大 공업경영학과 졸업. 美 남가주大 경영학 석사. 인하大 경영학 박사. 우크라이나 국립항공大 항공경영학 명예박사. 1974년 대한항공 입사. 한진그룹·대한항공 회장, 전경련 부회장, 한국방위산업진흥회장. 레종도뇌르 훈장·국민훈장 모란장 수훈.
젊은이들은 무조건 밖으로 돌아다녀야 합니다』
趙亮鎬
1949년생. 경복高 입학. 美 쿠싱아카데미高 졸업. 인하大 공업경영학과 졸업. 美 남가주大 경영학 석사. 인하大 경영학 박사. 우크라이나 국립항공大 항공경영학 명예박사. 1974년 대한항공 입사. 한진그룹·대한항공 회장, 전경련 부회장, 한국방위산업진흥회장. 레종도뇌르 훈장·국민훈장 모란장 수훈.
지난 7월23일, 서울 서소문 대한항공 사옥 18층에서 趙亮鎬 회장을 만났다. 인터뷰 시간에 정확히 맞춰 도착한 그가 악수를 청했다. 큰 키에 다부진 체격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키는 183cm. 큰 키만큼이나, 악수를 나눈 손에서 힘이 느껴졌다.
매출 15조원, 재계 8위의 기업群
趙회장은 재계 서열 8위(자산기준·公기업 제외)의 한진그룹을 이끄는 재벌 총수다. 창업주인 趙重勳(조중훈·2002년 작고·향년 82세) 회장의 장남인 그는 30여 년 동안 그룹의 주력사인 대한항공에서 근무했고, 趙重勳 회장이 타계한 뒤인 2003년 2월부터 그룹 회장을 맡고 있다.
한진그룹은 지난해 매출 15조7643억원, 영업이익 7166억원을 기록했다. 한진은 국내 대표적인 물류·수송기업으로 항공기 129대, 선박 153척, 화물차량 3644대를 보유하고 있다.
그룹 매출의 절반 이상은 주력사인 대한항공을 통해 발생한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총 8조779억원의 매출과 3830억원의 순이익을 올렸다. 현재 총 37개국, 114개 도시에 취항하고 있고, 지난해 총 2240만 명의 여객과 211만8000만t의 화물을 수송했다.
한진그룹은 항공화물 수송 분야에서 3년 연속 세계 1위를 기록했다. 구형 프로펠러 항공기 몇 대로 시작한 것에 비하자면, 괄목할 만한 기록이다.
趙亮鎬 회장은 그룹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2010년도의 청사진을 내놨다. 항공화물 수송 부문 세계 1위, 항공여객 부문 세계 10위권에 진입한다는 내용이다. 현재 대한항공의 항공 여객 순위는 세계 17위권이다.
선친의 세 가지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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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이 1982년 선친 趙重勳 회장과 함께 제주도의 제동목장을 돌아보고 있다. |
『여러 가지로 서투를 겁니다. 제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趙회장께서 대한항공 경영에 참여한 지 30여 년이 됐습니다. 선친 趙重勳 회장의 이미지가 워낙 강해서인지, 아직도 많은 이들이 「대한항공」 하면 趙重勳, 「한진」 하면 베트남戰에서 베트콩의 총탄세례 속에 수송을 담당했던 기업을 떠올립니다. 선친께서 물려준 가장 중요한 유산은 뭔가요.
『고객에 대한 「신뢰」와 지고 이겨라는 「겸손」을 가르쳐 주신 게 제일 큽니다. 그 다음으로 「아는 사업에 집중하라」는, 즉 선택과 집중, 전문화입니다』
―세 가지 중에 가장 마음에 새겨 두고 실천한 가르침은 어떤 겁니까.
『「모르는 사업은 하지 말고, 아는 것에만 집중하라」는 가르침이 제일 크죠. 제가 입사 이후 수송분야를 두루 거쳤기 때문에 어느 정도 전문가여서 하고 있지만, 다른 사업분야에는 곁눈질하지 않았고, 진출을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룹이 일부 분할됐지만 물류 수송과 관련되지 않은 분야에는 일절 참여하지 않고 있습니다. 일부 기업에서 2세, 3세들이 자신이 잘 알지 못한 분야에 참여하거나 참여를 시도했다가 회사 자체가 없어지는 것을 많이 봤습니다. 「모르는 곳에 들어가지 말라」는 아버님의 가르침에 큰 뜻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趙重勳 회장께서 돌아가시고 5년 가까이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룹 경영을 직접 맡은 후 이룬 성과 가운데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뭐, 특별한 것이 있습니까. 돌아가신 후에도 그걸 유지 발전시키고 있다는 게 자랑스럽습니다』
―2004년 창립 35주년을 맞아 「2014년까지 총 10조원을 투자해 대한항공을 세계 10위의 名品(명품) 항공사로 만들겠다」는 비전을 제시하셨죠.
『「에비에이션 위크」(항공 전문 잡지)를 보니까, 대한항공의 여객 부문이 量的(양적)으로는 세계 17위, 이익 면에서는 10위권이라고 합니다. 2010년 내에 量과 質(질)에서 모두 세계 톱10에 들어가는 것이 목표입니다. 항공기 서비스 면에서는 톱5에 들어가는 것이 목표입니다. 화물 부문에서는 현재의 量的 관리를 質的으로 변화시켜, 줄곧 세계 1위를 지켜 내는 것이 목표입니다』
―1980년의 대한항공과 2007년의 대한항공을 비교하자면, 질적으로 다른 회사라고 해야겠죠.
『고객들이 평가하실 부분이라 제가 뭐라고 할 수 없지만, 그렇게 느끼신다면 감사합니다. 세계 순위 몇 위이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量보다는 質을 따집니다. 고객 서비스가 만족스럽고, 믿을 수 있는 회사, 재정적으로 튼튼한 회사로 평가받는 것이 목표입니다』
―최근 머큐리賞(상)을 받고, 세계적인 항공잡지나 「LA 타임스」로부터 대한항공이 지역 항공사에서 글로벌 항공사로 일어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요.
『한국의 이미지와 대한항공의 이미지가 연관성 있게 성장하는 게 우리의 바람입니다. 한국의 입지가 그만큼 커졌고, 또 그만큼 대한항공에 대해 관심을 갖고, 비행기를 타봄으로써 「예상했던 것보다 좋구나」하고 느껴 그런 것 같습니다』
세계화가 대한항공에 주는 기회
―月刊朝鮮 기자 중에 아내가 대한항공 직원인 사람이 있습니다. 아내가 회사 자랑을 많이 한다더군요. 대한항공이 대학생들이 가장 가고 싶은 직장 중 하나로 꼽혔다는데요.
『지난 5년 동안 대한항공이 여러 측면에서 발전하고 있고, 내실을 기하고 있기 때문에 만족합니다. 또 가장 보람 있는 게 직원들이 자기 일에 만족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객 서비스에 있어서도 당당하게 일하고 있습니다』
―요즘 세계화 시대라고 합니다. 사실 대한항공을 빼고 세계화를 얘기할 수 없을 것 같은데요. 세계화가 대한항공에 주는 기회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항공 얼라이언스인 「스카이팀」을 만든 것입니다. 스카이팀에 들어감으로써 최고 경영층뿐만 아니라 중간 관리층까지 소위원회 회의를 주관하는 기회가 많아졌습니다. 이를 통해 직원들의 시야가 넓어지고, 자신감이 붙은 것을 꼽을 수 있습니다. 우리 직원들이 다른 회사 직원보다 해외에서 駐在(주재) 근무할 기회가 많았지만, 예전에는 한국식의 경영·문화에서 완전히 탈피했다고 볼 수 없었습니다.
요즘 우리 직원들은 유창하게 영어를 사용하는 것은 기본이고, 국제 무대에 익숙해졌습니다. 세계화가 대한항공에 준 선물입니다』
―대한항공이 「스카이팀」을 출범시켰을 당시에만 해도, 영어깨나 한다는 직원들까지 해외 항공사와의 미팅에 가지 않겠다고 했다면서요.
『단순히 언어 문제라기보다 토론식 회의문화나 국제회의를 주관하는 일에 서툴러서였을 겁니다. 하지만 세계화의 물결을 맞아 全세계를 시장으로 활동해야 하기 때문에 본인들이 싫든 좋든 국제회의를 주관해야 했고, 그런 과정에서 많이 익숙해졌죠. 요즘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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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이 주도적으로 창설한 세계적인 항공사 동맹체 「스카이팀(SkyTeam)」이 2000년 6월 뉴욕에서 출범 행사를 가졌다. (오른쪽부터) 에어프랑스 장 시릴 스피네타 회장, 조양호 회장, 알폰소 파스칼 아에로 멕시코 회장, 레오 뮬린 델타항공 회장. |
세계화는 곧 지역화
―대한항공이 앞으로 세계화 추세에서 앞서가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할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습니까.
『「한국 사람끼리만 한다」는 식의 사고방식을 버리지 않으면 세계화 추세에서 살아남기 힘듭니다. 우리는 민족주의 성향이 너무 강한 듯 보입니다. 해외 주재원들이 교포들과 어울려 지내기만 하면, 결코 실력이 늘지 않습니다.
출장길에 해외 주재 본부장을 만나면 「혼자서 얼마나 돌아다녀 봤느냐」,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호텔 예약을 해본 적이 있느냐」 묻습니다. 외국에서 아무리 오래 살아도, 그 나라의 문화와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볼 때, 저는 「미국 사람들이 가장 세계화되어 있지 않다」고 지적하고 싶습니다』
―왜죠.
『미국인의 잣대로만 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기준이 세계의 기준은 아닙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로컬라이제이션(지역화)」이 「글로벌라이제이션(세계화)」입니다』
趙회장은 질문에 대해 빙빙 돌려 대답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직접적으로 분명하게 전달하는 스타일이었다.
항공사 경영인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항공기가 공항에서 이륙해서 상공의 정상궤도에 도달하고 나면, 창 밖의 햇살이 너무 눈부셔서 조종사들이 신문지로 창문을 가린다고 하던데 사실입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웃음). 상공에서는 완벽하게 컴퓨터 통제下에 비행기가 조종됩니다. 조종사들이 비행기 운항하는 내내 조종간을 잡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조종사가 낮잠을 자지도 못합니다. 운항 중에 기상이나 도착지 등에 문제가 생기면 본사 지상통제센터와 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 계속 정정합니다. 단순히 비행기가 떴다, 내렸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조종사는 비행기 조종간을 잡는 단순 기술자가 아니라, 관리자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趙회장께서 「시스템 경영론」을 펴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시스템 경영론」의 요점이 뭡니까.
『항공산업은 전문 분야가 많습니다. 비행기 조종에서부터 정비·재무·음식·기내식 서비스까지 말입니다. 한두 사람에 의해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각 전문가들이 책임 있게 일해 나가면서 서로 조화를 이뤄야 합니다. 이 역할을 하는 것이 「시스템 경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회사가 최고경영자나 몇몇 사람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에 의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시스템 경영론입니다. 최고경영자의 역할은 시스템을 잘 만들고, 시스템이 잘 돌아가게끔 하는 것입니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역할을 하는 사람이 항공업계의 최고경영자입니다』
―趙회장 본인은 「시스템 경영론」에 적합한 경영자라고 생각합니까.
『다행히 대학에서 엔지니어링을 전공했고, 항공산업의 가장 밑부분부터 정상까지 올라와서, 각 분야에서 다른 사람들 보다 많이 알기는 합니다. 하지만 저 혼자서 판단하지 않기 때문에 시스템 경영에 적합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항공산업은 첨단기술의 집약체
―대한항공의 중역들이 아침마다 커피를 마시면서, 자유롭게 토론을 한다는 「커피 브레이크」는 시스템 경영의 일환인가요.
『서로의 이해를 돕자는 차원입니다. 항공산업이 워낙 전문화해 있어서 영업은 정비를 모르고, 정비는 영업을 모릅니다.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는 부서는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릅니다.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서로 주의깊게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해, 이런 시간을 갖자고 제안했습니다.
토론문화를 많이 만들려고 하는데, 우리나라가 아직 그런 문화에 익숙지 않아서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매일 아침에 특별한 일이 없으면 커피 브레이크 타임 때 많은 일을 처리합니다. 그 과정에서 참석자들이 다른 부서에 대한 이해가 빨라졌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말씀을 들어 보니, 한진그룹 내에서 엔지니어 출신들의 위상이 높지 않을까 생각이 드네요.
『그런 면이 있습니다. 항공산업이 첨단기술의 집약체 아닙니까. 항공기술에 대한 충분한 지식이 없다면 항공회사를 경영하기 참 힘이 듭니다. 저나, 이종희 대한항공 총괄 사장이 모두 엔지니어 출신입니다. 엔지니어들이 어느 기업보다 우대받는 것이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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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양호 회장이 훈련용 시뮬레이터에 앉아 포즈를 취하고 있다. |
기내 청결상태 가장 먼저 점검
―항공기의 정비·기술 분야에는 시간을 얼마나 할애하는 편입니까.
『MBA 과정을 마치고 1979년에 서울 본사로 귀국해서 대한항공 정비본부장을 맡았어요. 그로부터 일주일 뒤에 자재부문을 겸직했고, 6개월 후에는 시스템 부문도 겸직했습니다. 공학도는 경영을 할 수 있지만, 경영 전공자는 엔지니어링을 배우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요즘도 항공기의 정비나 기술 분야에 관심을 많이 갖습니다』
재계서열 8위의 재벌 총수이자, 항공사 회장인 趙회장. 그는 비행기를 타면 제일 먼저 무엇을 볼까.
『기내 청결상태를 가장 먼저 봅니다. 다음에는 승무원의 서비스 태도, 음식의 質을 봅니다. 특히 승무원들이 사용하는 서비스 용어 중에 전문 용어가 많은데, 과연 그것을 일반 승객들이 잘 이해하는지를 신경 써서 봅니다.
시골 할아버지가 기내에 탑승했을 때, 「대한항공은 내 며느리같이 친절하게 잘해주는구나」 하는 느낌이 들어야 합니다. 기내의 복잡한 오락기기들에 대해 일반인들이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느냐 하는 것도 신경 씁니다』
―대한항공을 타면 이코노미석에까지 오락·비디오를 본인이 선택해서 볼 수 있도록 하더군요. 우리의 IT 산업이 발전했기 때문에 기내에 이런 것을 접목시키는 것이 쉽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다른 나라보다 개인 비디오를 사용하는 고객이 훨씬 많습니다. 고객들이 잘 알기 때문에 불만사항이 많이 접수됩니다. 社內(사내) 통신망 게시판에 불만사항을 적도록 했는데 억지쓰는 고객이 있긴 하지만,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내용이 많습니다. 어떤 불만이라도 귀담아 듣기 위해 노력합니다』
―趙회장은 오너 경영인입니다. 「오너가 대주주로서 배당을 챙기는 등의 한정된 역할을 하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전문 경영인처럼 회사를 경영하는 것이 옳은지」가 늘 논쟁거리입니다. 어느 쪽이 옳다고 보십니까.
『이런 얘기를 접할 때마다 우리가 모든 것을 흑백논리로 보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오너가 잘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는데 하나의 잣대만 들이댑니다. 「마이크로 소프트」의 빌게이츠나 「페덱스」의 프레데렉 스미스 회장은 오너이면서, 직접 경영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오너는 뒤에 있고, 전문 경영인이 경영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꼭 옳지는 않다고 봅니다. 저는 전문 경영인이라는 표현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오너 경영인」과 「고용 경영인」이라는 표현이 적절합니다. 이분법적으로 보기보다, 폭 넓게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너 경영인의 강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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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7월 한국과 프랑스 간 양국 경제교류 및 우호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자크 시라크 대통령으로부터 프랑스 국가 최고 훈장인 레종도뇌르-코망되르 훈장을 받는 조양호 회장. |
『고용 경영인은 회사의 장기적 발전보다는 회사의 단기 실적만 신경을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회사의 가치를 거품처럼 부풀려서 株價(주가)를 올리고, 배당만 많이 주기도 합니다. 애널리스트들의 입맛에 맞춰 株價 관리만 하게 되거든요.
자신이 몸담고 있는 회사의 株價를 올린 다음 인센티브를 받아서 나가 버리면 그만입니다. 「크라이슬러」의 아이아코카가 대표적 인물 아닙니까. 결국 크라이슬러를 빈 껍데기로 만들었습니다. 한때 경영의 귀재로 떠받들었는데, 요새 그 사람 어디 갔는지 아무도 모르잖습니까.
이에 비하면, 오너 경영인은 자기의 모든 것을 걸고 경영을 하기 때문에 보는 차원이 다릅니다. 제가 대한항공을 경영하는 식으로 미국의 회사를 경영했으면, 벌써 쫓겨났을겁니다. 내실 위주라서 배당을 많이 주지 못했으니까요. 「누가 경영을 하는 것이 좋으냐」는 부분은 상황에 따라 다르다고 봅니다』
한진그룹은 어느새 3세 경영 시대를 열고 있다. 趙亮鎬 회장의 장녀인 현아씨는 대한항공 기내식사업본부장(상무)이다. 장남 원태씨는 자재담당 임원(상무보)으로 있고, 몇 달 전에 막내딸 현민씨가 대한항공 광고선전부(과장)에 입사했다. 趙회장의 세 자녀가 모두 대한항공에서 근무하다 보니, 재계에서 이들에게 쏟는 관심이 크다.
3세 경영 시대
―제가 잘 아는 한 선배는 특이한 원칙이 하나 있습니다. 본인은 퍼스트클래스에 탑승하더라도, 자녀들은 꼭 이코노미클래스에 태운다고 합니다. 이분이 아이들에게 『교육은 최고로 시켜 준다. 비즈니스 클래스는 너희들이 돈을 벌어서 타라』고 말합니다. 자제들이 한진그룹에 근무 중인데, 평소 자녀 교육에서 주안점을 둔 것은 무엇입니까. 『절약과 겸손을 특히 강조해서 가르쳤습니다. 일부 부모들은 돈을 여유롭게 주기도 한 모양인데, 절대 그러지 않았습니다. 용돈을 조금만 줬고, 늘 절약하고 남들에게 겸손해야 한다고 교육했습니다』
趙회장은 본인이 아이들에게 금전적으로 엄한 부모가 된 배경에 대해 말을 이었다.
『제가 미국에서 사립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동급생들이 모두 부유한 미국 중산층의 자녀들이었습니다. 한 친구가 스키 여행을 가는데 아버지와 전화로 한 시간 이상 협상을 했습니다. 그 친구 아버지가 「이번에 돈을 꿔주면 어떤 방식으로 갚을 거냐」, 「다음 여름방학 때 몇 시간 동안 아르바이트를 할 것이냐」 다짐을 받았다고 합니다.
부자지간에 협상이 타결되고 나서야, 아버지가 스키 여행에 가는 비용을 허락했습니다. 그걸 보고 아이들에게 금전적으로 엄격한 것이 부모로서의 바른 훈도라는 걸 배웠습니다』
『오너의 경영참여 여부는 고객과 주주가 평가하는 것』
―3代째 가업을 이어 가는 셈인데, 자제분들에게 경영과 관련해서 지침을 내린 것이 있습니까.
『회사의 경영권은 승계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대학원까지 전문교육을 시키고, 자기 개발을 하게 기회를 줬을 뿐입니다. 물론 일반 직원들보다 제 아이들이 기회를 많이 얻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회사를 승계하는 것은 아닙니다.
본인이 경영인이 될 자격이 있는지는 고객이나 株主들에게 평가받는 것이지, 제가 평가하는 것은 아닙니다. 교과서에서 배울 수 없는 노하우는 가르쳐 주지만, 틈이 날 때마다 그 부분을 주지시킵니다』
한진그룹은 지난 3월 에쓰오일의 自社株(자사주) 3198만3000주(28.41%)를 인수했다. 이로써 한진은 에쓰오일의 최대주주인 네덜란드 AOC社와 에쓰오일 경영에 공동으로 참여하게 됐다. 총 인수금액은 2조1000여억원이었다.
趙회장은 회사의 지분 인수 직후, 에쓰오일 이사로 등재됐다. 오너가 직접 이사로 등재할 정도이니, 그가 얼마나 오일사업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에쓰오일에 등재이사가 됐는데, 치솟는 기름값을 염두에 두고 회사 지분을 인수한 것인가요. 향후 에쓰오일을 어떤 회사로 키울 생각입니까.
『정유사업은 사실 잘 모릅니다. 직접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이사로서 큰 틀을 볼 뿐입니다. 현재는 정유업계의 원로분들을 만나 대화하며 기본을 배우고 있습니다. 수송업체에서 가장 큰 것 중에 하나가 안정적인 기름 확보잖습니까. 안정적인 유류 공급선을 확보하고, 세계 석유 시장의 정보 수집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외국계 회사와 공동 경영을 하게 됐는데, 애로사항은 없을까요.
『정유사업은 잘 알지 못하지만, 저는 공동으로 경영에 참여하는 외국계 기업과 역할 분담을 잘 해서 서로 윈-윈 할 수 있도록 해 나갈 생각입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외국기업이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손해를 보는 부분도 있지 않나 싶습니다. 예컨대, 한국의 독특한 기업문화나 강성노조 등은 합리성과 대화를 중시하는 외국기업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저는 서로 보호하고 협력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고 보고 있고, 외국 기업이라고 해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애쓸 것입니다』
―이번 인수로 한진그룹이 高油價(고유가) 시대에 안정적으로 기름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고 봐도 좋습니까.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비즈니스라는 게 불확실한 환경과 니즈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면서 사업을 운영해야 합니다. 변화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죠. 단순히 高油價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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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4년 全세계 출시를 앞두고 순회 비행 중 김포에 도착한 A330 항공기의 엔진을 살펴보고 있는 조양호 회장. 왼쪽은 선친 조중훈 회장. |
연료절감형 차세대 항공기 도입 계획
―高油價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또 다른 노력으로는 어떤 게 있습니까.
『油價에 이길 수 없기 때문에 적응해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 일부 간부진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차세대 항공기 보잉 787, 에어버스 380을 도입했습니다. 이 항공기들이 연료절감형이기 때문입니다. 「도쿄 의정서」가 발효되면 일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엄청난 비용이 추가로 들기 때문에 이처럼 환경친화적 항공기들을 도입키로 한 겁니다. 보잉 787는 기존 동급 항공기에 비해 연료 소모량이 30% 절감되고, 일산화탄소 배출이 30% 줄어듭니다. 대한항공의 장기전략이고 미래를 대비한 항공기들입니다.
2015년까지 항공시장을 사전에 예측해 차세대 항공기를 적기에 확보해서 중·장기 안정적인 성장의 발판을 마련한 겁니다. 특히 우리는 차세대 항공기의 부품 제작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항공산업의 첨단화를 주도할 계획입니다』
趙회장이 먼저 항공기 부품 제작 얘기를 꺼냈다. 그렇잖아도, 대한항공에 얼마 전 날아든 희소식에 대해 물을 참이었다.
지난 7월 초, 美 보잉社는 친환경 차세대 항공기 787을 공개했다. 대한항공은 이 항공기의 국제공동개발에 참여해 후방동체, 날개구조물인 윙팁(Wing Tip) 등 6가지 기체 부품을 설계부터 제작까지 맡고 있다. 대한항공은 지난 4월 보잉社로부터 최우수 협력업체로 선정된 바 있다.
『787은 대한항공에 큰 의의가 있습니다. 일본이 보잉 787 기종에 30%를 투자하면서 이 비행기는 「메이드 인 재팬」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이런 기종에 가장 중요한 부품 중 하나인 윙팁을 우리가 만든다는 겁니다. 그것도 사업 파트너로 말입니다.
이 부품은 탄소복합 소재로 만듭니다. 787 기종의 윙팁은 유선형으로 휘어져 있어서 만들기 힘든데, 우리가 설계에서 제작까지 全과정을 책임졌습니다.
탄소복합 소재로 만든 부품을 자체적으로 설계하고 제작할 수 있는 회사는 全세계에서 몇 군데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비행기 부품을 제작할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경이롭고 주목할 만한 일입니다』
低價 항공사 별도 법인 설립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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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양호 회장의 사진 솜씨는 프로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매년 자신이 찍은 사진으로 캘린더를 제작해 해외 기업 CEO, 주한 외교사절 등 지인들에게 선물하고 있다. |
趙회장은 이 부분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한 듯했다. 低價 항공에 대한 질문을 하자마자, 자세한 설명이 이어졌다.
『低價 항공사는 세계적인 추세입니다. 하지만 低價 항공이라고 해서 「비행기를 사서, 조종사를 고용해 비행기를 띄우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은 잘못된 겁니다.
미국이나 유럽은 항공전문 인력이 많아서, 언제든 「아웃소싱」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릅니다. 항공 전문인력이 충분치 않아 안전측면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얼마 전 사고가 난 캄보디아 항공의 예를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방금 한 말씀처럼, 우리나라와 같이 항공 인적 자원이 부족한 환경에서 低價 항공사 설립이 가능할까요.
『항공기반 시설과 인적자원이 뒷받침돼야 안전이 보장됩니다. 대한항공은 현재의 원가가 높은 구조여서 低價 항공사를 하기 힘듭니다. 그래서 별도의 회사를 만들어 低價 항공사를 운영할 예정입니다.
인적 자원이 부족한 환경에서도 자체 용역 전문 인력을 키우고 확충해서 서비스할 예정입니다. 정비와 운항 훈련시설도 확보할 것이고요. 서비스는 로코스트항공사 수준이지만, 안전만큼은 기존 항공사인 대한항공 수준이 우리가 생각하는 低價 항공사입니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참여
趙亮鎬 회장은 인터뷰 내내 영어를 많이 사용했다. 어린 시절을 미국에서 보낸 터여서, 외국의 언어나 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 보였다.
趙회장은 경복高에 입학한 후, 바로 미국으로 유학길에 올라 쿠싱아카데미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軍제대 후 인하大 학부를 마친 후, 다시 미국 유학길에 올라 남가주大에서 경영학 석사를 마쳤다.
趙회장은 틈이 날 때마다 개인적으로 우리의 문화를 외국에 알리고 국제행사 유치에 앞장서고 있다. 얼마 전 아쉽게 실패로 끝난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그가 뛰었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해 애쓰셨죠. 우리가 러시아의 소치를 너무쉽게 생각했던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소치는 유럽의 상류층들이 휴가지로 자주 찾는 곳이고, 서구의 IOC위원들에게 쉽게 어필하는 휴양지입니다. 趙회장께서는 유치 실패의 원인이 뭐라고 보십니까.
『이번에는 내부 윤리 규정이 강해서, IOC 위원들을 직접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 나라의 知人(지인)을 통해서 부탁하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여러 정치적인 상황이 이번 결과에 영향을 끼쳤다고 봅니다. 국제 행사 유치라는 것이 열성만으로 되는 게 아닌데, 우리는 열성만 갖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러시아 가스와 기름에 대한 구라파의 의존도가 높고, 러시아의 株價가 한창 올라가고 있어서 경쟁하기 어려웠습니다. 우리가 88올림픽을 유치했을 때 우리가 한창 상종가였고, 경쟁 상대인 일본 나고야는 그렇지 않아서 가능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趙회장께서 2014년 아시안게임 인천 유치에 큰 힘을 보탰다고 들었습니다. 고향이 인천이라서 애착을 갖는 것인가요.
『저희 집안이 원래 서울토박이입니다. 1945년 광복 후에 선대 회장께서 인천에서 사업을 시작하셨습니다. 선대 회장님이 배 기관사였기 때문에 무역이나 중국에 일찍부터 관심이 컸습니다. 언젠가는 중국이 개방될 거라는 생각으로 인천을 거점으로 잡았고, 인천 사설 부두개발에 과감하게 투자하셨습니다. 「인천이 게이트 웨이가 될 것이다」라고 일찍부터 생각하셨습니다』
中國 항공사와 차별화 노력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솟아오르고, 우리 서해안의 중국 측 대안지역에 천진-상해가 급성장하는 것과 비하면 우리 서해안은 정체된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仁川경제특구개발계획, 인천공항을 東北亞의 허브공항으로 만든다는 구상이 왜 이리 진척이 안 되는 건가요.
『요즘은 1960년대처럼 정부의 경제개발계획에 의해서 어떤 일을 계획하고 추진하면 안 됩니다. 기업들이 커지고, 앞서 나가기 때문에 정부는 큰 가이드 라인만 제시하고 감독하면 충분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정부에서 지원보다는 모든 것을 조종하려고 하다 보니 잘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정부에서 지원을 해줘야 하는데 말입니다. 특히 사회기간 산업은 봉사하는 산업이기 때문에 이익만 추구해서는 안 되며, 서비스와 효율성 위주로 운영되어야 합니다. 공항공사 경영자도 그러한 분야로 평가받아야 합니다.
인천공항은 사회기간산업으로 설계가 잘 돼 있고, 24시간 운영된다는 점이 공항으로서 굉장한 어드밴티지(이점)입니다. 공항 공사가 이익만을 기준으로 평가하면 안 되고 효율적 서비스로 평가돼야 합니다. 정부의 제한사항이나 규제가 많아 여러 개발이 늦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어 안타깝습니다』
―중국이 가파른 속도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항공사도 예외가 아닐 것 같은데, 중국의 성장은 대한항공에 도움이 됩니까.
『중국의 성장은 기회가 될 수 있고, 위험도 될 수 있습니다. 13억 인구가 불과 2~5시간 거리에 있습니다. 중국 항공사는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들이 대한항공 수준으로 쫓아오기 전에 격차를 더욱 크게 벌리는 것입니다. 서비스 차원을 차별화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인천공항을 「東北亞의 허브」로 만드는 데 앞장서는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대한항공은 중국 23개 도시, 미국 14여 개 도시에 취항하고 있습니다.
중국 항공사들이 우리와 같은 네트워크를 갖추기에는 시간이 걸릴 겁니다. 중국보다 나은 인천의 물류 시스템을 이용하여 인천을 허브로 해 차별화할 전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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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하고 있는 조양호 회장과 月刊朝鮮 김연광 편집장, 정혜연 기자. |
루브르박물관에 한국어 서비스 요청
―올해 초 전경련 회장 후보로 거론되셨죠. 기업의 애로사항을 얘기하고, 재계를 대변한다는 차원에서 회장직을 맡아 보겠다는 생각은 안 하셨습니까.
『전경련 회장은 거의 「풀타임」입니다. 아직 대한항공이 원하는 만큼 수준에 올라 있지 않아 고사했습니다. 그 자리에 적합한 분이 있어, 전경련의 이미지를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적극적으로 추천했습니다(웃음)』
한진은 국제대회 못지않은 「대형 프로젝트」를 하나 따내 관심을 끌고 있다. 프랑스의 루브르박물관과 제휴를 맺어, 박물관에 소장된 작품에 대한 한국어 서비스를 실시키로 한 것이다.
한국 관람객들은 올해 말부터, 한국어로 루브르박물관 작품의 설명을 들을 수 있다. 루브르박물관에서 제공하는 작품 설명 시스템에 自國(자국) 언어를 추가하려는 노력을 각국 정부 차원에서 전개했는데, 대한항공이 이 일을 성사시켰다.
『루브르박물관이 대한항공 프랑스 사무실 바로 앞에 있어서 종종 출장 길에 갔습니다. 고대와 현대가 조화를 이루는 곳이 루브르박물관입니다. 선진 구라파의 여러 유적지를 다니다 보면, 큰 기업에서 문화를 보존하기 위해 기부하는 모습을 종종 봅니다. 그런 것을 보면서, 「우리는 언제쯤 할 수 있나」 생각하던 차였습니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루브르박물관에서 스폰서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이때다」 싶었습니다. 스폰서 가격에 상관없이, 우리의 조건은 딱 하나라고 못을 박았습니다. 작품 설명 서비스에 한국어를 넣자고 말입니다. 한국 관광객들이 박물관을 돌 때 우리 말 서비스가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박물관을 한 바퀴 슬쩍 돌고 나오는 「깃발부대」에서 벗어나, 천천히 작품을 느낄 수 있게 하고 싶었습니다. 얕은 지식이 아니라, 진심으로 느끼고, 작품을 이해할 수 있도록. 그래서 스폰서를 하기로 했습니다. 요즘은 배낭여행 등으로 젊은 학생들이 많이 가니까 한국어 서비스를 하면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진촬영이 유일한 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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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양호 회장이 2005년 4월 한·몽 수교 15주년을 맞아 양국 간 우호 협력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몽골 최고 훈장인 북극성 훈장을 받고 있다. 오른쪽이 몽골의 나차긴 바가반디 대통령이다. |
인터뷰가 진행될수록 趙亮鎬 회장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 보였다.
趙회장은 무척 정적인 사람이다. 담배를 피우지 않고, 술은 와인 한 잔 마시는 것이 고작이다. 골프를 썩 즐기지도 않는다. 유일한 취미가 사진찍기다. 그의 사진 촬영은 수준급이다.
趙회장은 몇 해 전부터 직접 촬영한 사진을 모아, 매년 달력을 제작하고 있다. 중학교 때 부친으로부터 카메라를 선물받으면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필름자료 유지 관리가 힘들었는데, 디지털카메라가 나오면서 사진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유명한 사진작가들을 소개받아 체계적으로 공부하면서 관심이 더욱 커졌습니다. 사진을 찍는 이유는 기술을 자랑하기보다는, 좋은 곳을 사진 찍어서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싶어서입니다』
趙회장이 왼쪽 탁자 위에 세워져 있는 달력을 집어 들었다. 파리의 에펠탑을 찍은 사진인데, 여느 것과 조금 다르다. 에펠탑만 찍은 것이 아니라, 개선문 안에 갇힌 듯한 에펠탑의 모습이다. 전위적인 구도가 돋보인다.
『이것좀 보세요. 조금 다르죠. 다들 파리의 에펠탑만 덩그러니 사진 찍었지, 앵글을 이렇게 새롭게 잡으니까 느낌이 다르지 않습니까. 이런 사진들을 골라서 달력을 만듭니다. 한 번 방문해 봤던 사람이라도 다시 가보고 싶다는 느낌이 들지 않겠어요? 저로서는 일종의 세일즈 프로모션입니다(웃음)』
―얼마 전에 한 포털사이트에서 직장인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趙회장께서 「함께 여행하고 싶은 경영인」 3위에 올랐던데요.
『허허, 정말요? 제가 왜 3위가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독자들에게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곳」을 추천해 주십시오.
『글쎄요, 나이에 따라 많이 다릅니다. 골프를 좋아하는 사람, 유적지 탐방을 좋아하는 사람 등 본인 취향에 따라서 다릅니다. 그래도 공통적인 것은 하나 말할 수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무조건 밖으로 돌아다녀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밖에 나가면 거의 한국음식을 먹지 않습니다』
趙회장은 어렸을 때부터 혼자 여행하기를 좋아했다.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에는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혼자서 지도를 보면서 미국 전역을 돌기도 했다. 요즘 식으로 하면 배낭여행인데, 혼자 호텔 구하고, 발길 닿는 대로 이곳 저곳을 돌아다닌 기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고 한다.
하루 5달러 쓰며 유럽 전역 여행
1968년, 당시 스물이 된 趙회장은 하루에 5달러를 쓰면서, 유럽 전역을 돌아다닌 적이 있다. 여행안내 책자 한 권을 들고, 무작정 돌아다니는 여행이었다. 당시 숙박료는 아침식사를 포함해서 2달러였다. 3달러로 하루 경비를 충당했다. 여럿이서 모였다가 흩어졌다가 했던 여행이었는데, 아직도 그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기억이다. 趙회장은 『몇 해 전 친구들과 차 한 대를 끌고, 길가의 싸구려 모텔에서 묵으면서 美國 대륙을 횡단했다』고 공개했다.
―사진 찍는 것 말고 다른 취미는 없으십니까.
『골프는 허리가 좋지 않아서 그동안 꺼렸는데, 이제 시작하려고 합니다. 나중에 할 수 있는 일이 골프와 사진 찍는 것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한진과 몽골은 각별한 사이다. 한진의 이미지 광고에 몽골의 모습이 자주 실리고, 趙회장이 몽골을 찾는 횟수가 잦은 게 그 때문이다.
―한진과 몽골의 인연이 오래됐죠.
『양국의 외교관계가 처음 이뤄진 뒤에 우리가 보잉 727機를 기증하고, 항공기술 지원을 하면서 인연이 시작됐습니다. 몽골이 저희에게 많이 배웠고, 러시아와 중국 사이가 좋지 않아서인지 서울이 몽골의 게이트웨이가 됐습니다.
한국 사람하고 몽골 사람이 구분이 안 됩니다. 처음 몽골에 갔을 때 생김새가 서로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비슷해서 친근감이 더 들었고, 그러다 보니 가까워졌습니다』
―최근 3~4년 사이에 회사를 경영하면서 가장 고민스러웠던 것은 뭔가요.
趙회장은 이 대목에서 잠시 뜸을 들였다. 10초 정도 지난 뒤, 그가 입을 뗐다.
『高油價로 힘들어 구조조정을 해야 할 때였습니다. 함께 일했던 사람들을 내보내야 하는 것이 가장 어렵습니다』
―사업상 고민에 빠졌을 때 징크스 같은 것이 있습니까.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다만 사업의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시 생각합니다. 결과가 나빴지만, 합리적인 목표를 세우고 일을 판단했고, 다른 사람들과 충분히 협의해서 했다면 나무라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기 혼자 독선적으로, 기준 없이 한 사람은 결과가 좋아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대한항공은 여러 전문분야가 있기 때문에 독선적으로 나가면 어느 부서에서는 이익이 될 수 있지만, 다른 곳에서는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이 원칙만큼은 지킵니다』
―예를 하나 들어 주신다면.
『2004년 글로벌 선도항공사(Global Leading Carrier) 도약을 비전으로 제시하면서 기내좌석부터 획기적으로 업그레이드시키는 작업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영업부서와 정비부서의 의견이 서로 좀 달랐습니다. 판매를 책임지고 있는 영업부서는 승객의 안락과 편의성 측면에서 다양한 편의시설을 갖추고 싶어한 데 반해서, 항공기를 지원해야 하는 정비나 운항 부서는 효율성에 중점을 두고 무게를 경량화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모두 일리 있는 말이었고, 양쪽 의견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창조적인 해법이 필요하였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서로 이해하는 과정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에 끝까지 토론을 시켰고, 그 결과 시간을 좀 걸렸지만 만족스럽고 효과적인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었습니다』
존경받는 항공사 만들고 싶어
―특별히 고민스러울 때 상의하는 동료가 있습니까.
『고민에 따라서 다릅니다(웃음). 임원들하고 상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개인적인 것은 고등학교 친구들과 얘기합니다. 잘 모르는 것은 같은 업종의 선배들이나 전문가들에게 자주 물어봅니다』
―선친 趙重勳 회장은 개발연대의 巨人이었고, 대단한 추진력의 기업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趙회장은 나중에 어떤 경영인으로 기억되기를 바라십니까.
『無에서 有를 창조한 창업주의 경영방식을 그대로 따라할 수는 없습니다. 창업주와 달라야 합니다. 다만, 선대 회장님 세대보다 체계적으로 교육받고 일을 배웠기 때문에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겁니다.
글쎄요, 아무리 애를 써도 제가 개발연대의 거인처럼 될 수는 없겠죠.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것을 守成(수성)하여 본 궤도에 올려 놓은 데 성공한 항공전문 경영인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趙회장께서 꿈꾸는 대한항공의 미래는 어떤 것입니까.
『리스펙터블 에어라인(존경할 만한 항공사)으로 남고 싶습니다. 대한항공이 무슨 일을 한다고 하면, 업계에서 고개를 끄덕이게끔 말입니다. 「대한항공은 믿을 수 있다」, 「서비스가 좋다」 이런 생각을 심는 겁니다. 「대한항공이 하면 무슨 이유가 있을 테니 한번 검토해 봐라」는 얘기를 듣는 것, 이런 평가를 받는 것이 목표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