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마음먹으면, 어떤 정보라도 손에 쥘 수 있는 최고의 정보권력자입니다. 이명박ㆍ박근혜 후보등에 관한 상세한 정보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노무현 정부 고위 관계자)
『1997년 大選 때 「이인제 1만원 후원금 보내기 운동」은 안기부 고위 간부와 金大中 후보 측의 합작품』 (金大中 정권의 국정원 고위 간부)
宋承鎬 月刊朝鮮 기자〈soonj@chosun.com〉
白承俱 月刊朝鮮 기자〈eaglebsk@chosun.com〉
『1997년 大選 때 「이인제 1만원 후원금 보내기 운동」은 안기부 고위 간부와 金大中 후보 측의 합작품』 (金大中 정권의 국정원 고위 간부)
宋承鎬 月刊朝鮮 기자〈soonj@chosun.com〉
白承俱 月刊朝鮮 기자〈eaglebsk@chosun.com〉
『박근혜 대표나 이명박 시장이 大選후보가 된다면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 우리는 중요한 자료들을 갖고 있다』(張永達 열린당 원내대표)
지난 6월, 총리를 지낸 사람과 열린당 고위 당직자가 李明博(이명박)·朴槿惠(박근혜) 한나라당 大選 예비후보의 「X파일」을 공개석상에서 언급했다. 곧이어 몇몇 親與(친여) 언론매체에서 李明博 후보의 재산 의혹을 보도했다. 행정기관 자료를 참고하지 않고서는 일상적인 취재활동으로 파악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朴槿惠 후보의 정신적 후원자였던 崔太敏(최태민)씨의 중앙정보부 보고서가 李海瓚 前 총리의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일도 발생했다.
한나라당은 「국정원 정치공작」을 제기했고, 그 와중에 국정원 직원이 행정전산망에 접속해 李明博 후보와 친인척 재산을 확인한 사실이 드러났다.
일련의 진행상황에 대해 前職(전직) 청와대·정보기관 고위 관계자들은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집권세력은 여권 大選후보들의 지지도가 10% 미만인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돌파구를 필요로 하고 있다. 정권 재창출을 위해 정보기관이 가지고 있는 모든 카드가 동원될 것』이라고 전했다.
두 여권 고위 인사가 언급한 「한 방」, 「중요한 자료」란 무엇을 말하는 걸까. 국정원은 과연 이명박·박근혜 후보의 X파일을 만들었을까.

정보 전산화로 국정원 힘 얻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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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해찬 前 총리의 홈페이지에 게재된「중앙정보부 작성 최태민 관련자료」. |
『대통령은 정보를 가장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이오. 두 번째로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은 국정원장이지요. 정보의 사용 여부는 대통령이 결정합니다.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소. 그래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 대통령이오』
―과거 중앙정보부 시절이라면 이해할 수 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진 것 아닙니까.
『물리적으로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일은 없겠지요. 하지만 정치인의 경우 정치생명, 기업인의 경우 회사생명을 좌지우지하는 건 마찬가지요. 정보를 잘못 사용했을 경우 후폭풍이 있겠지만…』
―현재 국정원은 불필요한 정치정보를 수집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국민의 「怨府(원부)」가 되다 보니 그런 얘기를 하는 거요. 하지만 정치정보나 정치인과 관련된 정보를 수집하지 않는다면 정보기관이 존재할 이유가 없소』
이 인사는 『현재의 정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정보의 흐름과 권력의 상관관계를 알아야 한다』고 했다.
『정보는 많이 갖고 있는 사람에게 쏠리게 돼 있소. 현재 대한민국에서 정보를 가장 많이 갖고 있는 데가 어디오? 바로 국정원이오. 국정원이 여전히 무서운 기관으로 인식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거요. 옛날 자유당 때 특무부대라는 게 있었소. 군인을 대상으로 정보를 수집하는 부서였지만, 대통령이 신임을 하니까, 특무부대에 정보가 쏠렸소.
朴正熙 대통령 시절도 마찬가지요. 朴대통령이 중앙정보부를 통해 민심을 파악하고, 통치력을 강화하니까, 중정의 힘이 막강해진 것이오. 안기부 시절도 그렇고 지금의 국정원도 마찬가지요. 대통령이 정보기관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나라가 시끄러워요』
―盧武鉉(노무현) 대통령은 지금의 국정원을 적절히 활용하는 것 같습니까.
『대통령과 국정원장이 어느 정도 신뢰하느냐에 따라 다르오. 盧대통령이 나름대로 국정원의 도움을 받는 것 같지만, 국정원의 역량이 과거만큼 높은 것 같지는 않소.
정보 가치가 과거보다 떨어졌을 것으로 봐요. 과거에는 도청을 통해 A급 정보를 많이 수집했소. 그런데 도청이 어려워지니까, 정보의 가치가 많이 떨어졌을 것이오. 하지만 정부가 보유하는 대부분의 정보가 전산화되면서 국정원이 새로운 힘을 얻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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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나라당 공작정치 저지 투쟁위원회 안상수 위원장(오른쪽 두 번째)과 박계동, 심재철 의원 등이 지난 7월6일 오전 국정원을 항의 방문,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
『무서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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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나라당 大選 후보를 한 방에 날릴 수 있다』고 장담한 장영달 열린당 원내대표(왼쪽)와 이해찬 前 총리. |
최근 문제가 된 국정원 직원 K씨도 정부 전산망을 통해 李明博 후보의 친·인척 부동산 거래내역을 열람했다. 국정원은 정부부처가 관리하는 17개의 행정전산망에 대한 정보 접근권을 가지고 있다. 국세청과 건설교통부 전산망을 통한 세금·토지·건물 정보를 비롯해 법무부의 출입국 기록, 경찰의 前科(전과) 내역, 건강보험공단의 진료 기록, 국민연금관리공단의 개인 소득 자료 등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 직원은 간단한 인증절차를 통해 전산정보에 접근이 가능하다고 한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이명박·박근혜 자료」는 국정원에서 유출된 것으로 봅니까.
『정권과 가까운 몇몇 신문에 이명박씨와 관련된 내용이 보도됐소. 열린당 김혁규 의원과 박영선 의원도 이명박씨에 대한 내용을 언급했소. 정권 재창출을 위해 여권은 가지고 있는 자료와 정보를 능히 써먹을 수 있다고 봅니다』
―최근 李海瓚·張永達 의원이 한나라당 大選 후보를 향해 「한 방이면 끝난다」고 했는데.
『그 사람들이 늘 그런 얘기를 해왔지만, 이런 것과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가장 강력한 주자가 이명박씨이고, 그 다음이 박근혜씨가 아니오. 이명박씨를 눕혀 놓으면, 다른 사람은 쉽다고 생각하는 것 같소. 한쪽에만 치우치면 안 되니까 崔太敏 관련 정보도 내놓은 것 같소』
―崔太敏 수사 보고서를 본 적이 있습니까.
『그 보고서는 신뢰할 수 있는 자료요. 내용이 너무 구체적이고 조사하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런 存案(존안)자료가 어떻게 나왔는지 알 수 없지만, 무서운 일이 벌어지고 있소』
―중앙정보부가 1977년 崔太敏씨를 조사했는데 그 자료가 현재 국정원에 남아 있을까요.
『존안자료란 영구히 보관되는 것을 말해요. 수사가 끝나면 자료는 존안됩니다. 종결처리된 사건은 그 자체가 역사죠. 그래서 보존하는 거요. 정부문서와는 달리 국정원 기밀문서는 정부문서보관소에 이관하지 않아요. 후대에 문제가 되겠다 싶으면 국정원장이 파기하겠지만』
「은밀한 내용」 담은 存案자료
이른바 특정인에 대한 X파일은 存案자료를 통해 작성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存案자료란 어떻게 작성되고,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중앙정보부 시절 입사해 30여 년간 국내정보를 담당했던 前職 국정원 간부의 증언이다.
『존안자료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됩니다. 하나는 인물카드이고, 또 다른 하나는 사건별 자료입니다. 존안자료의 핵심은 바로 인물카드입니다』
―存案자료의 대상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고위 공직자·정치인·주요 기업인 등 사회 저명인사들이지요. 해외 주요 인물들에 대한 파일도 있습니다』
―인물카드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 있습니까.
『프로필이 기본적으로 들어 있습니다. 본적·주소·가족관계·주요 경력·인물사진 등에서부터 범죄경력, 재산형성과정, 인물평까지 들어 있지요.
국내 정보파트에서 수집된 정보 중에서 「보존해야 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존안자료를 만드는 부서로 넘어갑니다. 그렇게 해서 존안자료가 차곡차곡 쌓이게 되지요』
―存案자료에 쌓이는 「보존해야 할 가치」는 어떤 정보를 말합니까.
『해당 인물에 관한 「은밀한 내용」을 말하지요. 여자와 돈, 자주 가는 술집 등 사생활과 관련된 것들도 들어 있어요. 정보기관의 특성상, 정보요원은 해당 인물의 취약점을 파악해 報告(보고)하면 높은 점수를 받아요. 그래서 그런 정보에 민감합니다. 개인 정보는 해외 파견관을 통해서도 수집됩니다. 해외에서 발언한 내용이나 행적 등이 보고대상이지요』
―存案자료를 관리하는 부서가 따로 있습니까.
『통상적으로 「자료단」이라는 데서 관장해요. 단장의 직급은 「이사관(2급)」이죠. 자료단 직원들은 정보수집 부서에서 올라오는 보고서를 체계적으로 분류해 존안자료에 첨부해요. 언론보도나 인터넷을 통해 알려진 공개정보도 사안별로 분류해 꾸준히 입력합니다』
―存案자료의 신뢰도는 어느 정도입니까.
『사실관계를 파악해서 작성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100% 정확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사실로 확인되는 경우가 많아 신뢰도는 높다고 봐요』
―대통령이나 주요 정치인과 관련된 자료를 본 적이 있습니까.
『구체적으로 말하기 어렵지만, 1987년 大選 당시 「金大中 파일」을 본 적이 있습니다. 存案자료 두께가 A4 용지로 20cm가량 됐어요. 주로 對共수사국에서 작성된 자료들이 많았습니다』
―그 파일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까.
『글쎄요. 뭐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金大中 대통령 집권 당시 밑에서 알아서 없앴겠지만 전부 파기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국정원이 대통령 직속기관이라, 정권 실력자들이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을 없애려고 하지만, 정보기관의 특성상 그런 자료를 완전히 파기할 수 없어요. 과거 盧泰愚 정부 시절 국무총리를 지낸 모 인사가 자신의 파일을 본 후 파기하려 했지만, 결국 파기하지 못했어요. 내부 직원이 없앴다고 보고했지만, 실제로는 파기하지 않았습니다』
『이해찬 발언은 뻥튀기』
―국정원에 보관돼 있는 李明博·朴槿惠 후보의 자료는 어느 정도 됩니까.
『이명박씨의 경우 1992년부터 체계적인 관리에 들어갔습니다. 당시 大選에 출마했던 정주영씨와 이명박씨가 정치적으로 갈라지면서, 현대 측이 「이명박 파일」을 만들었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그 자료가 안기부에 입수됐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어요. 박근혜씨에 대한 자료는 오래 전부터 축적돼 왔어요. 朴正熙 대통령의 딸이라는 이유로 말입니다』
―최근 李明博 후보의 친인척 부동산 자료가 언론에 보도됐습니다.
『국정원 내부 자료가 아니라 국세청이나 행자부 자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金大中 정권 때 작성된 자료의 일부가 흘러나왔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이명박씨에 대한 치명적인 내용은 없는 것으로 판단돼요. 그런 내용이 있었다면 2002년 서울시장 선거 때 당시 여당 후보였던 김민석 후보 측에서 공개했을 겁니다. 최근 이해찬씨가 「한 방 있다」고 말했는데, 작은 것을 보고 큰 것이 있는 것처럼 뻥튀기했을 가능성이 높아요』
―한나라당은 최근 「국정원이 야당 후보를 죽이기 위해 태스크포스(TF)팀을 운영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가능한 일입니까.
『불가능하다고 봐요. 金大中 정권 때라면 가능했을지 모르죠. 盧武鉉 정권의 국정원에는 경상도 사람과 전라도 사람이 뒤섞여 있어요. 만약 특정 후보를 죽이기 위한 별동대가 있다면 들통 날 가능성이 상당히 높습니다』
복잡한 국정원 내부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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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정원內에「이명박 죽이기」TF팀이 있다』고 폭로한 이재오 한나라당 최고위원. |
지난 7월8일, 李在五(이재오)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국정원장을 상대로 공개질의했다. 다음은 질의내용의 요지다.
<개인이 열람할 수 없는 부동산 기록이 정치권內에 돌아다니면서 의혹 부풀리기에 사용되고 있고, 한반도 大운하 보고서가 왜곡돼 정치 공세에 이용되고 있다. 이명박 후보를 죽이기 위한 「보이지 않는 손」이 깊숙이 움직이고 있다.
20일 전 제보를 받았는데, 그동안 확인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2005년 3월부터 9월까지, 7개월 동안 이명박 X파일을 당시 국정원 국내담당 책임자가 지휘해서 만들었다」고 하는 내용이다.
김만복 원장은 얼마 전 국회 정보委에 출석해 「확인해 줄 수 없다」고 했는데, 그 직후 구체적인 이름이 적시된 제보가 들어왔다. 국정원 국내담당 최고책임자가 이명박을 죽이기 위한 X파일을 만들도록 지시했다는 것이다. 2005년 5월 당시 검찰은 서울市를 상대로 청계천 비리를 조사하고 있었는데, 이명박 시장 주변을 싹 뒤졌다.
이명박 X파일을 총괄한 국내담당 팀장은 P모씨였다고 한다. P씨는 K씨에게 지시해 이명박 시장을 죽이기 위한 X파일을 만드는 팀(3~4명)을 구성했다고 한다. 그 다음에 특정지역 책임을 맡고 있는 단장 L씨가 자기 후임인 K씨에게 업무를 인수인계하면서 「이명박 관련 보고서가 누구 누구에게 가 있으니 잘 관리하라」고 했다는데 이게 사실인지 국정원장은 답해야 한다.
특별팀은 보고서 3부를 작성했다고 한다. 당시 총책임자가 실무팀을 운영한 L씨로부터 보고서를 전달받아 권력 실세들에게 줬다고 한다. 김만복 원장이 지난 번에 「열어 보지 말라」고 했다고 했는데, 「열어 보지 말라」고 한 게 이것인지 밝혀야 한다. 지금 시중에 돌아다니고 있는 부동산 관계, 주민등록 관계, 전과 관계 등이 당시 국정원이 국세청ㆍ행자부 등에서 수집한 자료인지도 국정원장은 대답해야 한다>
『국정원 직원이 아니면 알 수 없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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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경 육영재단 내부 문제가 발생했을 당시 최태민씨의 반대파들이 작성해 유포한 자료(사진 위)와 1980년 문화공보부가 조사한「새마음 봉사단」비리관련 문건. |
―제보는 어떻게 들어왔습니까.
『일부 언론의 보도내용이 정부기관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을 무렵, 그런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제보자는 몇 명입니까.
『두 곳에서 비슷한 시점에 제보를 받았습니다. 제보를 접수한 뒤 별도 라인을 통해 확인한 결과, 신빙성이 높았습니다』
―제보자는 국정원 현직 직원입니까.
『밝힐 수 없습니다. 그러나 국정원 내부 직원이 아니면 알 수 없는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나라당 최고위원으로서 직접 공개한 이유는.
『정치적으로 역공당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였죠. 「최고위원이라는 사람이 정치쇼를 한다」는 비판을 받지 않기 위해 제보 내용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습니다. 물론 제가 이니셜로 언급한 사람들에게 직접 물어볼 수는 없었어요』
―국정원 TF팀이 왜 「이명박 X파일」을 만들었다고 합니까.
『2005년 검찰이 청계천 비리를 조사할 무렵, 국정원 고위 간부가 「이명박 시장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텐데 그때는 비리를 수집하기 곤란하니까 지금 정보를 수집하라」고 했답니다. 그 무렵 이명박 시장의 친인척들도 함께 조사했다고 해요. 조사 후 친인척 재산을 「이명박 재산」으로 몰고 갔다고 합니다.
최근 국정원 직원 K씨가 이명박 시장의 재산에 대해 행정전산망을 통해 확인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그 사람의 직속 상관이 L씨였습니다. 제게 들어온 정보가 엉터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고 있어요. 한나라당 정보위원들이 자체적으로 확인해 보더니, 제 정보가 맞다고 하더군요』
―보고서를 얼마나 만들었다고 합니까.
『여러 가지를 만들었는데 당시 작성된 보고서가 권력 실세들에게 들어갔다고 합니다』
―권력실세라는 말에는 청와대 최고 책임자까지 포함되는 겁니까.
『국정원은 대통령을 위해 존재하는 곳입니다. 청와대에 그런 보고서가 올라가지 않았다면 지나가는 개도 웃을 겁니다. 그 보고서가 작성됐을 당시 現 정부의 실세가 누구였는지 알아보세요』
李明博 X파일의 최신판
―李海瓚·張永達 의원의 최근 발언이 문제의 보고서에 기초한 것으로 생각합니까.
『확신할 수는 없지만, 관련이 있다고 봐요』
李在五 최고위원이 받은 제보 중에는 이상업 前 국정원 국내담당 차장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한나라당 소속 정보위원은 『우리가 파악한 정보에 따르면, 2005년 청계천 복원 공사가 완공될 무렵 이상업 차장의 지시로 이명박 TF팀이 활동한 것이 확실하다. 일각에서는 여권이 「박근혜 캠프」를이용해 이명박 후보를 공격한다는 시나리오가 제기되고 있다』고 했다. 이상업 前 차장은 盧武鉉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文喜相(문희상) 의원의 처남이다.
그렇다면 李明博 후보의 최신 X파일의 내용은 무엇일까. 최근에 드러난 사항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李明博 후보의 처남인 김재정씨는 전국 47곳에 224만㎡의 부동산 매입했는데 투기의혹이 있다. 김재정씨는 1982년 충북 옥천군 이원면 소재 임야 165여만㎡를 시작으로 1991년까지 10년간 전국 47곳에서 224만m2의 땅을 매입했다. 金씨는 이같은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수억원의 빚을 갚지 못해 세금도 제대로 내지 못해 자택 가압류까지 당했다. 도곡동 땅의 매각대금으로 260억원을 받고도 2억원의 빚을 갚지 못해 집이 가압류당했다면 차명재산일 가능성이 높다.
李明博 후보가 서울시장으로 있을 때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 일대의 건물 고도제한을 완화했다. 그런데 그 지역 내에 李후보의 건물이 포함돼 있다. 뉴타운으로 지정된 서울 은평구 일대에는 李明博 후보와 친인척 소유의 땅이 있다.
큰형 이상은씨, 처남 김재정씨가 소유했던 서울 강남구 도곡동 땅도 李明博 후보의 부동산이다. 그는 큰형과 처남 명의로 1980년대 현대건설로부터 사들인 도곡동 땅 330㎡과 제3자에게서 매입한 땅을 1995년 포스코개발에 팔아 247억원의 차익을 남겼다. 다스라는 회사는 사전 정보를 입수해 개발 이익 246억원의 특혜를 봤는데, 다스의 실제 회사 주인이 李明博 후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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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5년 10월14일 영동-동해고속도로 개통 테이프를 끊은 직후 환영하는 주민들에게 손을 흔들며 답례하는 박정희 대통령. |
도청의 위력
이와 관련해 前職 국정원 간부는 이렇게 말했다.
『2005년경 집중적으로 「이명박 파일」이 만들어진 것 같아요. 2002년 서울시장 선거 때에는 그런 얘기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작년부터 그런 얘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어요. 2005년 국정원 내부에서 이명박씨 주변을 정밀 검사한 것 같습니다』
―李明博 후보가 「전과 14범」이라는 사실도 공개됐습니다.
『어딘가에 야당의 유력 후보를 공격하기 위한 컨트롤타워가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2002년 大選 때 도청 논란이 있었습니다. 솔직히 말해, 안기부나 中情은 도청을 통해 엄청난 정보를 모아 왔습니다. 그것을 통해 가공할 힘을 발휘하곤 했지요.
2002년 大選 당시 국정원 고위 간부들은 도청을 통해 수집한 정보를 청와대에 보고해 좋은 점수를 받았을 겁니다. 정보기관은 대통령을 위해 존재하고, 대통령을 위해 보고서를 만듭니다.
과거의 경험을 떠올려보면, 일선에서 수집된 선거관련 정보는 국정원장에게 直報(직보)되고 국정원장을 통해 곧바로 청와대에 올라갑니다. 이명박씨에 대한 정보도 마찬가지입니다. 특정 후보를 죽이고 살릴 수 있는 정보가 입수되면 최고 권력자는 어느 순간 그것을 사용하고 싶은 유혹을 가지게 될 겁니다』
崔太敏 조사, 네 차례 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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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 청와대의 지시로「경찰청 사직동팀」이 최태민氏 주변을 조사했다. 사진은 사직동팀이 있던 건물. |
『그 자료는 1970년대 말 중앙정보부가 작성한 자료로 알려져 있지만, 자료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1988년 盧泰愚 정부 시절 안기부가 작성한 자료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보고서 양식이 안기부 양식이고, 서체는 1988년 안기부에 처음으로 도입된 워드프로세스 서체입니다. 과거 中情 시절에는 「공타(타자기의 일종)」를 사용했어요. 그래서 보고서를 「공타보고서」라고 불렀는데, 당시 中情이 청와대에 보고하는 문서는 모두 공타보고서였고, 일부 필경사가 작성한 보고서가 있었습니다. 공타와 워드프로세스의 서체는 완전히 달라요』
최근 李海瓚 前 총리의 홈페이지에 등장한 「崔太敏 수사 보고서」가 1988년에 작성됐다는 결정적 증거는 보고서 안에 있다. 보고서에 등장하는 崔太敏씨의 나이는 76세. 崔씨가 1912년 출생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보고서는 1988년에 작성된 것이 확실하다. 崔씨는 1994년 사망했다.
그렇다면 1988년 안기부는 왜 「崔太敏 보고서」를 만들었을까.
취재결과, 崔太敏씨에 대한 정보·수사기관의 조사가 모두 네 차례 실시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崔太敏씨에 대한 첫 조사는 1977년 9월12일 벌어졌다. 당시 金載圭 중앙정보부장은 「최태민이 박근혜의 힘을 업고 각종 범법행위를 저지르고 있다」는 보고서를 朴正熙 대통령에게 제출했다.
이 보고서를 접한 朴대통령은 관련자를 불러 직접 조사했다. 御前(어전) 재판에는 영애 朴槿惠, 金載圭 부장, 白光鉉 中情 안전국장, 崔太敏씨가 참석했다. 이 때 朴槿惠씨는 「최태민 목사에 대한 음해」라며 崔씨를 옹호했다고 한다. 崔씨에 대한 조사는 검찰로 넘어갔지만, 별다른 조치는 없었다.
그런데 1979년 10월 초 1977년 당시의 조사자료 일부가 외부로 유출되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 金載圭 부장으로부터 관련 자료를 직접 건네 받았던 한 인사의 증언이다.
『1979년 10·26 사건이 발생하기 전 청와대에는 차지철 경호실장과 김재규 부장의 파워게임이 극에 달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영부인 역할을 했던 박근혜씨가 차지철의 편을 들었어요. 김재규는 차지철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 박근혜씨의 아킬레스건인 최태민 조사자료를 외부로 유출시켰던 겁니다.
당시 최태민씨는 박근혜씨의 힘을 등에 업고 온갖 부정을 저질렀습니다. 외부로 유출된 자료는 10·26 사건으로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1980년 신군부가 들어선 후 최태민씨에 대한 조사가 다시 이뤄졌어요. 「구국봉사단」 소속 여성단체 사람들이 최씨를 신군부에 고발했던 겁니다. 여성단체들은 구국봉사단으로부터의 독립을 원했습니다. 최태민씨가 구국봉사단을 운영하면서 일부 여성단체를 무리하게 통합했기 때문이죠. 여성단체 사람들은 당시 신군부 실세를 찾아가 「최태민을 조사해 처벌하고 구국봉사단에서 여성단체를 독립시켜 주면 전두환 사령관이 대통령에 출마할 때 적극 돕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이 제안을 받아들인 전두환씨는 이학봉씨에게 수사를 지시했고, 이때 상당한 분량의 조사자료가 만들어졌습니다. 「최태민 수사」 소식을 들은 박근혜씨는 전두환씨를 찾아가 선처를 요구했다고 합니다』
청와대에 남아 있는 「崔太敏 보고서」
崔太敏씨에 대한 세 번째 조사는 1988년에 이뤄졌다고 한다. 1987년 朴槿惠 후보가 육영재단 이사장으로 있을 당시, 崔太敏씨의 다섯째 딸이 재단운영에 관여하면서 재단 직원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이듬해 朴槿惠 후보가 이사로 있던 영남大에서 학내분규가 발생했다. 학교 재단 운영에 불만을 품고 있던 교수와 학생들이 崔太敏 측근 4인방의 퇴진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1988년 10월 영남大 교수협의회는 재단 이사진의 퇴진을 결의했고, 결국 朴槿惠 후보는 이사직을 그만둔다.
이때 안기부는 과거 中情 조사자료를 바탕으로 崔太敏씨 주위를 다시 조사했다. 당시 朴槿惠 후보에 대한 자료가 동시에 수집됐다고 한다.
네 번째 조사는 1990년에 이뤄졌다. 崔太敏씨의 육영재단 전횡에 불만을 품고 있던 박근령ㆍ지만씨가 盧泰愚 대통령에게 「자필탄원서」를 보냈던 것이다. 탄원서는 「최태민이 박근혜를 이용해 온갖 이권에 개입하고 육영재단을 불법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盧泰愚 대통령은 사정비서관으로부터 보고를 받은 후 철저한 조사를 지시했고, 청와대 하명 사건을 맡고 있던 「사직동팀」이 崔太敏씨 주변을 면밀히 수사했다고 한다.
수사결과, 崔太敏씨의 불법행위가 드러났고 崔씨의 여자관계까지 확인됐다고 한다. 하지만 조사과정에서 朴槿惠씨와 관련된 정보가 수집돼 조사결과는 공개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 대신 재단 감독기관인 서울 성동교육청을 비롯한 4개 행정기관이 일제히 육영재단에 대한 특별감사를 실시했고, 崔太敏씨가 물러나는 것으로 사건은 마무리됐다.
문제는 당시 조사자료가 현재까지 남아 있다는 데 있다. 1990년 실시된 사직동팀의 조사보고서가 현재 청와대內에 일부 남아 있는 것으로 간접 확인됐다.
현재 李明博 후보와 관련된 X파일은 일부 공개됐지만, 朴槿惠 후보와 관련된 「崔太敏 조사 보고서」는 드러난 게 거의 없다. 그렇다면 네 차례에 걸친 「崔太敏 조사 보고서」가 향후 「朴槿惠 X파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기자는 盧泰愚 정부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으로 있었던 鄭銶永(정구영) 前 검찰총장에게 「崔太敏 수사 배경」을 듣기 위해 연락을 취했으나, 鄭 前 총장은 해외여행 중이었다. 그의 한 知人은 『정구영 前 총장은 「당시 최태민씨를 조사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내부 정보 유출 사례
현재까지 국정원이 「한나라당 경선」과 12월 大選에 관여한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다. 최근 국정원은 「국정원 정치공작」 논란에 휩싸이면서 「정치 중립」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大選 후보와 관련된 국정원 내부 정보가 일부 직원에 의해 유출돼 정국을 뒤흔들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국정원 직원이 현행법까지 위반하면서 내부 정보를 유출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출세와 돈 때문이다. 과거 국정원 직원이 내부 자료를 유출시킨 사례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정보 유출의 元祖(원조)는 1990년 발생한 「노란봉투 사건」이다. 1990년 4월 金泳三 당시 민자당 최고위원은 盧泰愚 대통령을 청와대에서 만나 「노란봉투」를 내밀었다. 봉투에는 당시 안기부가 작성해 盧대통령에게 보고한 「金泳三 최고위원의 최근 특이동향」이라는 제목의 문건이 들어 있었다. 당시 안기부는 이 문건을 「金泳三 견제대책」이라 불렀다. 안기부의 한 고위 간부는 金泳三 최고위원 측에 이 문건을 비밀리에 전달했다.
문건에는 「金泳三에 대한 정치자금을 견제하도록 경제 5단체장들에게 정치자금 지원 창구를 청와대로 일원화하도록 주지시키고, 辛格浩(신격호), 朴龍學(박용학), 朴晟容(박성용), 趙重勳(조중훈) 등 재벌그룹 회장들의 은밀한 자금 지원을 자제토록 촉구해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해, 「金泳三 지원세력」을 견제·차단하는 방안이 들어 있었다.
金泳三 최고위원은 盧泰愚 대통령에게 강력히 항의하면서 재발방지를 촉구했다. 비밀이 들통나자 盧泰愚 대통령은 徐東權(서동권) 당시 안기부장을 불러 『즉시 유출자를 색출해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徐안기부장은 강도 높은 조사를 실시했지만, 유출자를 끝내 찾지 못했다.
보고서 유출자는 1993년 2월 金泳三 최고위원이 대통령에 당선된 후 자연스럽게 확인됐다. 金泳三 정부의 첫 안기부장으로 임명된 金悳씨가 차장급 고위 간부들에 대한 人事案을 들고 청와대로 金泳三 대통령을 찾아갔는데, 金대통령은 의외의 인물을 지명했다. 金대통령은 『내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데 결정적으로 도와준 양심세력이 있다』며 책상 서랍에서 이름이 적힌 메모지를 꺼내 金부장에게 건넸다. 그 인사는 이후 안기부 고위직에 임명됐고, 승승장구했다.
당시 안기부 고위 간부였던 金모씨는 『徐東權 안기부장이 이른바 「金泳三 견제대책」을 盧泰愚 대통령에게 보고해 盧대통령의 승인을 받았고, 그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해당 부서 국장급 간부들에게 보고서 복사본을 나눠 줬다. 간부 중 한 명이 복사본을 金泳三씨에게 전달했고, 그 간부는 크게 출세했다』고 했다.
『생존과 진급을 위해 정보 유출』
내부 자료 유출사건은 1995년 다시 터졌다. 당시 權魯甲(권노갑) 민주당 국회의원은 제1회 지방선거가 실시(1995년 6월27일)되기 4개월 전 『안기부가 작성한 내부 보고서 한 건을 입수했다』며 「지방자치제 관련 동향 보고서」라는 문건을 공개했다. 당시 權의원은 『이 문건은 金泳三 정부가 지방선거를 연기하기 위해 안기부를 동원했다는 명백한 증거』라고 주장했다.
金泳三 대통령은 權의원이 안기부 내부 보고서를 공개한 다음 날, 金悳 부총리 겸 통일원 장관을 전격 해임했다. 「지방자치제 관련 동향 보고서」의 작성시기가 「金悳 안기부장」 시절이었다는 이유에서였다. 안기부 대공수사국장과 기획판단1국장을 거쳐 1994년 12월 1차장으로 승진한 鄭亨根(정형근)씨도 곧바로 해임됐다. 안기부는 내부 문건 유출자에 대한 색출조사를 벌였으나 실패했다.
1997년에는 이른바 「吳益濟(오익제) 편지 대책 보고서」 유출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1997년 大選 당시 월북한 吳益濟 前 천도교 교령이 국민회의 大選 후보였던 金大中 前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낸 사건이다. 당시 국민회의 측은 「안기부가 金大中 후보에게 악영향을 미치기 위해 오익제 편지사건을 조작했다』고 주장했고, 이는 사실로 드러났다.
문건을 金大中씨 측에 건네준 사람은 안기부 간부 某씨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某씨는 大選 이후 안기부의 요직을 맡았고, 정년 이후에도 안기부 외곽조직에서 일했다.
2002년 大選 때는 안기부의 내부 자료가 정치권에 대량 유출됐다. 대표적인 자료가 「안기부의 정치권 도청 녹취록」이었다. 내부 자료는 집권 가능성이 높았던 한나라당에 집중적으로 전달됐다.
당시 金大中 정권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던 前職 국정원 간부는 『생존과 진급을 위해 직원들은 어쩔 수 없이 내부 정보를 유출하려는 유혹을 느낀다』고 했다.
『국정원 직원들이 줄서기를 잘 해요. 생존과 진급을 위해 그럴 수밖에 없어요. 국정원은 다른 정부기관과 달리 지방색이 아주 심해요. 현재의 국정원 내부상황을 보면, 호남 출신자들이 10년 전에 비해 괄목상대했지만, 핵심요직은 경남 출신이 장악하고 있어요. 청와대 쪽에서 盧武鉉 대통령과 同鄕(동향)인 직원들을 심어 놓은 거죠.
그렇다 보니 집권세력들은 秘線(비선)형식으로 국정원 내부 정보에 접근이 가능해요. 비선 아닌 비선조직이 바로 국정원입니다. 盧武鉉 정권 초기 徐모씨가 기획조정실장으로 있을 때 대구 출신이 대거 약진했어요. 기조실장이 그쪽 친구들과 자주 어울렸던 겁니다. 이런 사례는 어느 때나 있었어요. 국정원 인사결과를 보면 「이번에는 이쪽에서 힘을 썼구나」하는 것이 금방 드러나죠』
「찌라시」로 위장된 국정원 정보
―국정원 내부 자료는 어떤 형식으로 유출됩니까.
『국정원 보고서가 그대로 나가는 경우는 드물어요. 내부 자료를 토대로 再작성한 후 시중에 유출됩니다. 서체를 다르게 하고, 사람의 姓(성)도 다르게 쓰고, 誤字(오자)도 일부러 넣어요. 한마디로 시중에 나도는 「찌라시」(傳單·전단)처럼 만드는 거죠. 국정원 자료라는 것을 숨기기 위해서죠. 再작성된 정보는 사용목적에 따라 정치인·언론인에게 전달됩니다』
―국정원이 올해 大選에 개입할 가능성은 없습니까.
『최근에 들은 얘기지만 국정원이 이번 大選을 앞두고 내부 단속을 심하게 하고 있다고 해요. 현재 국내 정보를 총괄하고 있는 국내담당 차장은 선거와 아주 먼 사람입니다. 그는 최근 사석에서 「나는 국정원 직원이 경찰관이나 소방관처럼 업무를 하다가 순직할 경우 국립묘지에 안장되는 일에 역점을 두고 있다」고 했어요. 「선거에는 관심이 없다」는 겁니다.
국정원장도 직원들에게 「大選을 앞두고 특정 정치인이나 언론인을 접촉한 사람은 해임될 각오를 하라」고 엄명했다고 해요. 조직특성상 원장이 엄명을 내리면 직원들은 심각하게 받아들입니다. 함부로 움직일 수 없게 되지요』
이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국정원은 직원들이 사용하는 휴대폰까지 철저히 감시하고 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국정원 직원은 두 개의 휴대폰을 가지고 다닌다. 하나는 개인 소유이고, 또 다른 하나는 국정원이 지급한 것이다. 국정원이 단체로 지급한 휴대폰은 국내 某기업이 특별제작한 것으로, 성능은 최신이지만, 촬영기능은 없다고 한다. 국정원 내부 시설을 비롯해 내부 중요 문서가 휴대폰 카메라로 촬영돼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개인 휴대폰에도 카메라 기능은 없어야 하며, 국정원에 등록해야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국정원 내부에 있는 李明博ㆍ朴槿惠 후보의 존안자료는 얼마나 됩니까.
『많지 않을 걸로 압니다. 「국민의 정부」 이후 도청이 사실상 불가능해 정치권이 활용할 정보는 별로 없다고 들었어요』
―과거 안기부가 만들었다는 「崔太敏 보고서」가 정치권에 나돌고 있습니다. 이 자료는 어떻게 나온 걸까요.
『그 자료는 오래 전에 유출됐다고 봐야 해요. 전직 직원이나, 사건 관련자들이 가지고 있다가 최근에 다른 통로를 통해 공개된 것으로 봅니다. 물론 유출을 시도한 쪽은 여권이라고 봐요』
金大中과 안기부의 「이인제 살리기 공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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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년 8월 越北한 吳益濟 前 한국 천도교중앙본부 교령(사진 위)과 1992년 10월 발생한 조선노동당 간첩사건의 핵심인물 이선실. |
『당시 金大中 후보는 李會昌 후보에 비해 열세였어요. 당연히 李會昌 후보 쪽에 정보가 많이 갔지요. 안기부內 주요 인사들도 李會昌 쪽으로 쏠려 있었고요. 그런데 某인사는 그렇지 않았어요. 상대적으로 중립을 지키는 것처럼 보였죠. 그러나 이 인사는 大選 前 金大中 후보를 서울 모처에서 극비리에 만났습니다.
물론 金大中 후보의 한 인사가 안기부 간부를 자신의 차에 납치하다시피 태워 金大中 후보를 만나게 했습니다. 당시 金大中 후보 측이 확보한 안기부 사람은 전혀 없었어요. 몇몇 간부들 중에 그 간부가 포섭 대상이 됐던 겁니다. 안기부 간부는 金大中 후보를 만난 자리에서 「최소한 손해 보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金大中 후보가 만난 안기부 간부는 최고위직이었어요.
또 다른 안기부 간부를 포섭하는 일은 金大中 후보 측의 A의원이 맡았지요. 두 사람은 얘기가 잘돼 「金大中 대통령 만들기」에 뜻을 같이했습니다. 이들이 고안해 낸 전략은 「이인제 살리기」였습니다. 이인제 후보가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大選까지 간다면 李會昌 후보의 표를 상당히 잠식할 거라 판단했죠.
당시 이인제 후보에게 「1만원 성금 보내기 운동」이 벌어졌는데, 이 작품이 그들의 머리에서 나왔습니다. 성금을 보낸 사람들은 주로 金大中 후보 지지자들과 당시 국민회의 당원들이었어요』
―大選이 끝난 후 논공행상은 어떻게 이뤄졌습니까.
『1998년 金大中 정부가 들어선 후 곧바로 안기부장을 포함해 주요 간부인사가 단행됐는데, 大選에서 큰 역할을 한 안기부 간부는 곧바로 요직에 임명되지는 않았지만, 그 다음 인사에서 좋은 자리에 앉았습니다. 당시 이종찬씨가 안기부장(1999년 1월 안기부에서 국정원으로 개명)에 임명됐고, 신건씨가 차장이 됐지요. 신건씨는 김홍업씨와 절친한 사이였어요. 大選 때 金大中 후보를 도왔던 안기부 인사들은 조만간 자신에게 힘이 쏠릴 것이라고 믿었고 실제로 다 잘 됐어요. 내부 직원들은 이같은 결과를 두 눈으로 보면서 생활해 왔기 때문에, 大選이 있을 때마다 모험을 하고 큰 공을 세우려 듭니다』
―당시 안기부 간부들이 金大中 후보측에 제공한 정보는 어떤 것들입니까.
『자세한 것을 밝히기는 곤란합니다. 상대측 후보 동향을 포함해 여론추이 그리고 李會昌 후보의 약점 등을 알려 주곤 했지요. 정보를 전달할 때는 보안이 유지되는 은밀한 장소에서 만나거나, 사람이 많은 복잡한 곳에서 다른 사람이 알아보지 못하도록 허름한 옷을 입고 접촉하곤 했습니다. 포장마차에서 만나기도 했어요』
大選과 정보기관
과거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大選에 개입한 사례는 여러 차례 있다. 대부분 對北정치공작 차원에서 벌어졌다.
1997년 大選 당시 「北風(북풍)사건」이 대표적이다. 1997년 8월 안기부는 『밀입북한 오익제 천도교 교령이 金大中 당시 후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발표했다. 12월에는 『오씨가 金大中 후보에게 평양우체국 소인이 찍힌 편지를 보냈다』며 金大中 후보를 압박했다. 그러나 大選 후 검찰 조사결과, 北風 사건은 당시 權寧海(권영해) 안기부장의 정치공작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1992년에는 「남한 조선노동당 사건」이 발생했다. 안기부는 『조선노동당 정치국 후보인 이선실을 서울에 보내 남한 조선노동당을 결성했다』고 발표한 후 관련자 62명을 구속했다. 이 사건으로 大選 정국은 金大中 당시 후보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다.
1987년에 있었던 「여간첩 수지金 사건」도 안기부의 작품이다. 당시 안기부는 『북한 공작원인 수지金이 남편 윤모씨를 납치하려 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안기부는 남편 윤모씨가 부부싸움 도중 부인을 살해한 단순사건을 선거에 이용하기 위해 간첩 사건으로 몰았다.
김현희 자료, 캐비닛 두 개 분량 넘어
기자는 국정원 對共수사국에서 수십 년간 근무했던 한 간부를 만나 對共수사국이 작성하는 存案자료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對共수사국이 작성하는 存案자료는 특별합니까.
『그런 것은 없어요. 다만 다른 부서의 내부 자료는 대부분 자료단으로 보내지는데, 對共 관련 자료는 그렇지 않아요. 자료단 직원들이 「자료를 보내 달라」고 하지만, 좋은 자료를 안 보내요. 다른 부서에서 다 보기 때문이지요. KAL기 폭파범인 김현희의 경우 관련 자료를 보관하는 데 캐비닛 두 개도 모자랐어요』
―과거 對共수사국은 金大中 前 대통령이 야당 지도자 시절 수차례 조사했습니다.
『조금 했지요. 오랫동안 정보를 수집해 왔기 때문에 자료가 많았다고 볼 수 있어. 아마 지금도 어딘가에 남아 있을 거예요』
―파기됐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파기하기는 어렵지요. 다만 대통령 당선 직후 안기부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빼버렸을 수 있어요. 金泳三씨도 마찬가지예요』
金泳三 정권 시절 대통령 수행실장을 지냈던 金基洙(김기수)씨에게 金泳三 대통령의 안기부 파일을 본 적이 있는지를 물었다. 그의 말이다.
『없습니다. 그런 것 뭐 하러 봅니까. 군사정권 때 中情 요원들이 대통령의 자택을 쳐들어 와 가족사진과 개인 자료를 압수해 갔던 일이 있었는데, 그때 빼앗겼던 물건을 되찾기 위해 안기부에 확인해 본 적은 있어요. 물론 찾지 못했죠. 大選이 끝나자마자 안기부 측이 관련 파일을 모두 파기한 것 같았어요.
대통령의 유년 시절 사진이 없어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진 적이 있습니다. 1992년 당선 직후 TV에 대통령의 「돌 기념 사진」이 방영된 적이 있는데, 그 사진은 대통령의 사진이 아니라 큰따님의 「돌 사진」이었어요. 자료 사진이 없어 따님 사진을 대신 사용했던 거죠』
―1993년 집권 초 안기부에 대한 대대적인 인사개혁을 단행했습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현직 교수를 안기부장으로 임명했습니다. 경호실장을 민간인으로 바꿨고요. 군사정권의 잔재를 없애기 위한 상징적인 조치였지요. 당시 대통령께서는 안기부는 對北ㆍ국제문제에 전념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청와대에 올라오는 국내정치 보고서는 10분의 1로 줄였어요. 정치인에 관한 자질구레한 보고는 받지 않았던 겁니다.
그런데 이후 정권이 바뀌면서 안기부의 역할이 원상태로 돌아간 것 같아요. 소위 「민주화 인사」라는 사람들이 집권하면서 정보기관을 이용하는 행태가 군사정권의 사람들보다 한술 더 뜨더군요.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일을 거꾸로 이용합디다』
―무슨 말씀이죠.
『정권 재창출을 위해 그 사람들이 한 일을 생각해 봐요. 권력남용이고 월권행위입니다』
―문민정부 시절에도 안기부 직원의 정치권 줄대기는 많았습니다.
『일부 그런 직원이 있었지만 조직적으로 움직이지는 않았어요』
―최근 불거진 국정원 직원의 행정전산망 접속 논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고 있어요. 여기저기서 흘러나오는 자료들은 특정세력에 의하지 않고서는 어렵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 정말 불행한 일입니다』
CIA 국장, 「비밀문서 공개는 국민과의 사회적 약속」
그렇다면 「盧武鉉의 청와대」는 어떤 X파일을 가지고 있을까. 익명을 요구한 現 정부의 고위 관계자는 『민감한 내용이라 조심스럽다』며 이렇게 말했다.
『국정원과 경찰 등 국내 정보기관들이 생산해 내는 모든 자료는 청와대에 보고됩니다. 이 자료에는 정치권을 비롯한 주요 인사들과 국가의 중요 사항들에 대한 모든 사항이 포함돼 있습니다. 국정원이 대통령에게 올리는 이른바 「特上(특상)보고서」는 주요 인사의 非理(비리)나 국가 핵심 사항 등 극비 중 극비 사항이 담겨 있어요.
盧武鉉 대통령은 취임 초기 국정원의 주례보고를 없앴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 주례보고를 되살렸고, 지금도 국정원은 2주에 한 번씩 대통령에게 特上보고를 합니다. 대통령은 마음만 먹으면, 어떤 정보라도 곧바로 손에 쥘 수 있는 이 나라 최고의 정보권력자입니다. 이명박ㆍ박근혜 후보를 비롯해 여권의 大選 출마자들에 관한 상세한 정보를 청와대가 가지고 있습니다』
최근 미국 정보기관 CIA는 문서보존 기간이 해제된 내부 비밀 문건을 공개했다. 이 문건에는 CIA가 국내외에서 벌인 「추악한 공작」들에 관한 문건이 포함됐다. CIA 국장은 공개 이유에 대해 『문서 공개는 국민이 우리에게 준 무한한 권력에 대한 사회적 약속이다』라고 밝혔다. 보안을 생명으로 하는 정보기관도, 국민이 부여한 권한과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가기관인 만큼,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문서를 공개한다는 것이다.
우리 정보기관도 일정 기간이 지난 후 활동 내역을 공개하는 것이 정치적 중립을 위해 필요하지 않을까. 남북 분단 상황에서 국가안보를 위해 노력해 온 국가정보원. 政權(정권)이 아닌, 국민을 위한 정보기관으로 거듭나야 할 시점이다. ●
▣ 정치권에서 제기되고 있는「공작정치」에 대한 국정원 입장
1. 김만복 국가정보원장이 밝힌 「국정원의 정치중립을 위한 TF팀」은 국정원이 국민에게 약속한 정치중립을 실천하기 위해 운영 중인 조직이다. 이는 「국정원 개혁 차원에서 국정원의 정치중립을 확립한다」는 목표하에 교육제도 및 실천방안 연구 등 직원들이 본연의 업무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독려하는 것이 목적이다.
2. 과거 중앙정보부나 안기부 자료라고 주장하는 자료는 실체가 불분명한 것으로, 자료의 존재 여부확인하는 것 자체가 국정원의 정치중립을 훼손하고 정쟁에 휘말리는 것이다.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고 있는 만큼 검찰 수사에 협조를 다할 것이다.
3. 국정원 직원 어느 누구도 정치중립을 훼손하는 업무를 지시하거나, 수행한 사실이 없다. 李在五 한나라당 의원이 주장하는 2005년 3월부터 9월까지는 불법감청에 대한 고백과 과거 업무방식에 대한 일대 개혁 조치를 시행하고 있었던 상황이라 그같은 정치 파일을 만들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국정원은 참여정부 출범 이후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등 엄정한 정치중립을 고수하고 있다.
4. 국익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국가정보기관이 유력 정치인을 음해하려는 공작에 조직적으로 동원되는 것처럼 비춰지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 유감을 표명한다. 정확한 사실관계에 의하지 않은 의혹 제기는 국가안보 수호의 보루인 국정원의 위상을 저하시키고 정보역량을 축소시키는 것으로, 이같은 소모적인 논란은 자제되어야 한다.
5. 국정원은 직원 K씨의 행자부 자료 신청 및 열람에 대해 강도높은 조사를 벌였다. K씨는 2004년 5월부터 부패척결 TF에 소속되어 「부동산비리 수집업무」를 담당하면서 「수도권 공직자 부동산 투기사례」 보고서 작성을 추진해 오던 과정에서, 2006년 4월 「이명박 시장」 관련 첩보를 입수해 직속 과장에서 구두로 보고했다. 직속 과장은 K직원이 추진하던 「수도권 고위공직자 부동산 투기실태」 관련사항으로 인식해 조사를 허용했으며, 예민한 사안이므로 무리하지 말도록 지시했다.
직속 과장 전결로 2006년 8월 행자부에 金宰正(김재정·이명박 후보의 처남)씨의 자료 열람을 신청해 관련자료를 입수했다. K씨는 열람자료를 분석한 결과, 부동산 차명은닉 등 핵심 내용이 확인되지 않아 보고서를 작성하지 않았고, 행자부로부터 지원받은 자료도 상부에 보고하거나 외부에 유출하지 않은 채 전량 폐기했다.
6. 李在五 최고위원은 국정원이 2005년 3월부터 9월까지 「李明博 X파일」을 작성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국정원 직원이 행자부 자료를 열람한 시기는 2006년 8월로 1년이나 차이가 난다. 내용 면에서도 행자부 부동산 관련 자료에 국한돼 있어, 李 前 시장 비리조사 주장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