張源宰
1967년 출생. 고려大 국어국문학과 졸업. 영국 런던大 비교연극사 박사. 現 숭실大 인문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대한축구협회 기술분과위원. 저서 「속을 알면 더 재미있는 축구 이야기」, 「올림픽의 숨은 이야기」, 「우리는 왜 축구에 열광하는가」.
최근 한국 축구의 화두는 7월7~29일 말레이시아·베트남·인도네시아·태국 등 東南亞(동남아) 4개국이 공동 개최하는 「아시안컵(Asian Cup)」이다. 1967년 출생. 고려大 국어국문학과 졸업. 영국 런던大 비교연극사 박사. 現 숭실大 인문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대한축구협회 기술분과위원. 저서 「속을 알면 더 재미있는 축구 이야기」, 「올림픽의 숨은 이야기」, 「우리는 왜 축구에 열광하는가」.
세계축구선수권대회의 정점에는 월드컵이 있다. 축구 전문가들은 각 대륙별 선수권대회를 바로 다음으로 친다. 아시안컵은 아시아축구연맹(AFC)이 주관하는 아시아 최고의 타이틀매치다. 4년 주기로 열리는 것이 원칙이나, 2004년 중국 대회 이후 이번 대회에 한해 개최시기를 1년 앞당겼다. 아시안컵이 올림픽 축구 예선 및 본선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다음 대회는 2011년에 열린다.
아시안컵 개최연도가 변경된 것은 다른 종목의 빅 이벤트와 겹치지 않아야 방송중계를 유치하고 팬들의 관심을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륙별 축구선수권대회 중 가장 인기를 모으는 대회는 「유로 2004」, 「유로 2008」 등으로 불리는 유럽선수권대회다. 유럽인들은 이 대회를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빠진 실질적인 월드컵」이라고 여긴다. 월드컵 본선이 끝나면 곧바로 유럽선수권대회 지역 예선이 열리고 유럽선수권 본선 이후에는 연이어 월드컵 예선이 이어지는 톱니바퀴 일정이다.
南美(남미)선수권대회인 「코파 아메리카나」는 2년 주기로 열린다. 경기의 품질은 유럽 선수권 못지않지만 참가국이 9개국에 불과하고, 지역 예선이 없다는 점에서 권위나 명성이 조금 처지는 편이다.
한국이 아시아 축구의 맹주 가운데 하나라는 데는 별다른 이견이 없지만, 아시안컵에 관한 한 사정이 다르다. 초기의 두 대회를 連覇(연패)한 이후, 대한민국은 무려 47년 동안 이 대회의 우승컵을 들어 올리지 못했다.
1956년 9월에 열린 제1회 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 때, 전쟁의 뒤끝이라 한국 대표팀은 출전 경비를 마련할 길이 없었다. 일단 지역 예선 마지막 경기가 열리는 타이베이까지 「외상」 비행기를 타고 가기로 교섭을 마치고, 지면 그대로 귀국, 이겨서 본선 진출권을 얻으면 자유중국축구협회에 부탁해서 친선경기를 열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그 경기의 입장수입을 배당받아 본선 경기가 열리는 홍콩까지의 여비를 충당하자는 복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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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회 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에서 2연패를 달성한 뒤 그라운드를 돌며 관중의 환호에 답하는 한국선수단. |
제1회 대회, 「외상」 비행기 타고 가 우승
문제가 생긴 것은 그 다음이다. 9월2일 자유중국을 2대 1로 물리치고 4일 오후 친선경기 일정이 잡힌 데까지는 만사 오케이였다. 3일부터 폭우가 쏟아지자 경기 자체가 취소되었고, 임원진이 다시 「외상」 비행기를 통사정한 끝에 한국팀은 가까스로 트랩에 오를 수 있었다. 홍콩에 도착한 시간은 6일 오전 7시, 경기 시작 시간은 당일 오후 2시였다. 더위와 피로에 지친 채 홈 팀 홍콩에 먼저 두 골을 내주고 초라하게 몰리던 한국은 후반 시작과 함께 쏟아진 소낙비에 원기를 회복하고 2대 2 무승부를 일궈 낸다.
「외상 비행기표」에 대한 압박감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戰後(전후) 가난한 조국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을까, 한국은 다음 경기에서 우승 후보 이스라엘을 2대 1로 잡고 마지막 경기에서 베트남을 5대 3으로 꺾어 초대 아시아 챔피언의 월계관을 차지했다.
경기가 끝나고, 선수·임원 할 것 없이 운동장에 모여 모두 부동자세로 애국가를 부르는 사진 속에, 「황금의 오른발」이라는 별명의 반공포로 출신 공격수 崔貞敏(최정민)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귀국 후 경무대를 예방한 선수단은 李承晩(이승만) 대통령에게 국제규격의 잔디구장 건립을 요청했다. 李承晩 대통령은 1회 대회 우승국에 2회 대회 개최권을 준다는 아시안컵 규정을 납득하고 이 요청을 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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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회 아시아선수권대회 결승에서 승리한 뒤 운동장을 나오는 한국선수들. |
효창운동장 주변에 10만 雲集
1960년 10월 효창운동장에서 열린 제2회 대회 때 한국은 베트남, 이스라엘, 자유중국을 모두 물리치고 2連覇(연패)에 성공했다. 대한민국에서 열린 사상 최초의 국제대회에서 입석 포함 2만 명 수용의 운동장 주변에 10만 인파가 몰렸다.
이스라엘戰에서는 터치라인 주변까지 관중들이 들어차 임원들이 모두 나서서 한동안 장내정리를 마친 후에야 가까스로 경기를 진행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의 조비 브램 단장은 경기 후 『우리는 한국 선수들에게 패한 것이 아니고 무질서한 관중들의 기세에 진 것』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효창운동장에서 첨단 시설로 무장한 「황포돛배」 모양의 상암월드컵경기장까지 대한민국은 힘차게 달려왔다. 47년 만에 우승에 도전하는 대한민국 선수단에게 부디 행운이 함께하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