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운용 영산大 인도연구소장
1956년 경기 고양 출생. 한국외국어大 인도어과 졸업. 同대학원 정치학 석사. KOTRA 인도 뉴델리 무역관 근무. 인도 첸나이 무역관장, 인도코리아센터 대표 역임. 現 영산大 교수, 同 인도연구소장, 인도비즈니스학과장. 저서 「내일은 인도다」. 논문 「인도의 부상과 우리의 활용방안(공저)」 등.
1956년 경기 고양 출생. 한국외국어大 인도어과 졸업. 同대학원 정치학 석사. KOTRA 인도 뉴델리 무역관 근무. 인도 첸나이 무역관장, 인도코리아센터 대표 역임. 現 영산大 교수, 同 인도연구소장, 인도비즈니스학과장. 저서 「내일은 인도다」. 논문 「인도의 부상과 우리의 활용방안(공저)」 등.

- 인도 뉴델리 남부의 한 쇼핑몰.
그러나 인도의 商去來(상거래) 관행이나, 인도 상인들의 기질을 잘 모르고 의욕만 앞세워 인도 진출을 시도한 기업인들 가운데는 사기를 당하거나 투자금을 날리는 사례가 적지않다. 그렇다고 해서 2025년이면 일본을 제치고, 2042년이면 미국을 추월한다는 인도 시장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 기업들이 인도와의 합작이나 무역거래에서 당했던 실제 사례들을 살펴보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우리나라 기업 A社는 인도 Z社와 합작으로 인도에 진출했다. 합작사 명칭은 AZ社로 하기로 했다. 경영권은 한국 측이 갖고, 생산제품은 현지에 진출한 한국 대기업에 공급하기로 했다. 약 6개월에 걸쳐 인도 정부의 투자승인과 회사설립 절차를 마치고 부지매입, 공장건설, 설비도입을 마쳤다. 하지만 인도 Z社는 그때까지 자본금을 납입하지 않았다.
A社 대표가 자본금 납입을 독촉하면 Z社 대표는 『걱정 말라. 내일 넣겠다』를 되풀이했다. 그러면서 좀처럼 자본금을 납입하지 않았다. A社 대표가 인도 현지로 출장까지 와서 1주일간 머물면서 독촉을 하자, Z社 측은 『곧 납입한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A社 대표가 한두 달 후 다시 출장을 와서 재촉을 하면 인도 측은 자본금 납입을 약속하지만, 그 약속은 이행되지 않았다.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는 동안 거의 1년이 흘렀다.
인도 측 자본금 납입이 지연되면서 부지매입비, 공장건설비용, 설비수입비용 등으로 자금이 모자라게 되자, 합작사 AZ社는 과도한 은행 借入(차입)을 하게 되었다. A社와 Z社는 계속 Z社의 자본금 납입 문제로 다투는 한편, 부족한 운영자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增資(증자)를 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Z社 측이 增資대금도 납입하지 않아 양자의 갈등은 깊어만 갔다.
사업 성공 보고서야 자본금 납입
여기서 독자 여러분은 「자본금을 납입하지 않으면 파트너를 떼어 내면 되지 않는가」 하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인도에서는 파트너를 떼어 내는 일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 계약서상에 「상대방이 자본금을 언제까지 납입하지 않으면 계약이 無效(무효)」라고 하는 조항을 넣었더라면 Z社와의 합작을 해지할 근거가 될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합작투자를 하면서 파트너가 자본금을 납입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A社는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
둘째, 계약서에 자본금 납입 기한을 명시했더라도 파트너를 쉽게 떼어 내지는 못한다. 자본금 납입 지연을 이유로 소송을 하면 될 것 같으나 그것도 쉽지 않다.
인도 진출 합작투자時 우리 측은 기계설비 가격을 높여서 수출하고, 인도 측은 부지나 건설비용을 높여서 청구하는 것이 상례다. 이는 서로 짐작하면서도 대충 넘어가 주는 것이다. 따라서 소송을 하게 되면 인도 측은 「한국 측이 기계대금 가격을 속였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반격해 오므로 사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소송에 휘말리게 된다. 게다가 인도에서의 소송은 적어도 5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셋째, 인도에서는 정부의 투자허가 등에 상당한 시일이 소요되는데, 정부가 이미 승인한 합작투자 회사가 파트너를 떼어 내게 되면 승인조건이 변경되므로 다시 새로운 승인절차를 밟아야 한다.
A社의 경우 현지 진출한 한국 대기업 생산일정에 맞추어 납품해야 하는 문제가 있어서 인도 파트너 Z社와 소송을 벌여 투자에 차질을 빚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가능한 한 마찰을 피하고 파트너가 자본금을 납입하도록 달래는 것이 유일한 대책이었다.
인도 Z社는 2년이 지나서야 납품처인 한국 대기업의 사업이 활성화되는 것을 본 후 자본금을 납입했다. 납입금 납입 지연에 따른 이자나 연체료 등도 내지 않았다. 만일 납품처인 한국 대기업의 사업이 여의치 않아 합작회사가 실패했다면, Z社 측은 한 푼의 손해 없이 훌훌 털고 떠났을 것이다.
합작사 대표를 인도 측에 맡기면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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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최고의 다이아몬드 가공판매 밀집지역인 인도 뭄바이의 「오페라 거리」. |
B社에서 파견한 C씨는 인도에 먼저 진출한 한국인 知人(지인)으로부터 인도 Y社의 X씨를 소개 받았다. C씨는 합작투자설립을 X씨와 협의하던 중, 『아프리카의 모리셔스에 해외거주 인도人(NRI: Non Resident Indian)이 설립한 기업을 통해 인도에 투자하면 법인세 등의 여러 가지 혜택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실제로 인도의 외국인 투자 통계에 의하면, 모리셔스의 對인도 투자가 미국·일본 등을 제치고 1위에 올라있다.
C씨는 이런 혜택을 얻기 위하여 인도에 직접 합작투자 법인을 설립하는 대신, 모리셔스에 NRI 명의의 법인을 만들었다. 한국의 B社가 자본금을 모리셔스에 설립한 합작사에 보내고 이 회사가 인도에 투자하는 형식이었다. 회사 대표는 X씨가 맡게 되었다.
그런데 모리셔스에서 인도로 들어와야 할 자금 송금이 이런저런 이유로 지연됐다. 초기부터 공장설립이 부진하고 설비도입이 지연되는 등 문제가 많이 발생하였다.
납품을 받아야 할 한국 대기업은 「B社에 조속히 BY社 공장을 설립하고 설비를 도입하라」고 요구했다. 시간에 쫓긴 B社는 합작사 BY社의 공장건설 등을 위해 인도內 은행대출, 건설대금 지급보증 등을 위해 노력했다. B社는 당연히 합작사 BY社의 대표인 인도인 X씨에게 모리셔스 문제를 빨리 해결할 것을 요구했다. X씨는 인도인 특유의 달변으로 『금방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면서 시간을 끌었다.
납품이 지연되자, 한국 대기업은 함께 진출해 온 다른 한국 중소기업에 「BY社의 제품생산을 대신해 달라」고 요청했다. X씨는 다른 한국 중소기업들의 생산품을 받아 납품하였으나, 대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한국的인 대기업·협력업체 力學관계 교묘히 이용한 인도인 X씨
이후 X씨는 공장 일부를 건설하고, 설비를 도입하여 대기업에 납품을 시작했다. 그러나 원부자재를 한국의 B社로부터 수입하면서 대금 송금은 하지 않았다. 그래도 한국內에서 같은 대기업에 납품하는 입장의 B社는 인도에 대한 원부자재 공급을 중단할 수 없었다. 따라서 납품처인 대기업의 영업이 잘 되면 될수록, B社의 인도 합작법인에 대한 원부자재 미수금은 급격히 늘어나게 되었다.
여기서 BY社 대표인 인도인 X씨의 행위를 보자.
인도인은 머리가 매우 좋다. X씨는 한국 기업과 합작투자를 추진하면서, 그 짧은 시간에 한국 대기업과 협력업체 간의 力學(역학)관계를 잘 이용하면 자신은 애쓰지 않아도 앉아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파악한 것이다.
그는 B社가 모리셔스에 보낸 자본금의 인도 송금을 제대로 안 하고, 다른 한국 기업이 대신 생산한 물품의 대금을 지불하지 않고, 은행차입 원리금 상환을 하지 않고, 한국의 母기업인 B社에 원부자재 대금을 보내지 않았다. 그로 인한 B社의 손실은 막대했다.
납품을 받아야 하는 대기업도 BY社를 떼어 내고 구입처를 바꾸기 위하여, 몇 달간에 걸쳐 BY社가 납품하던 부품을 한국으로부터 대량 수입하여 在庫(재고)를 쌓아야 하는 등 상당한 애로를 겪었다.
결국 한국에서 파견된 B社의 C씨, 인도인 X씨를 C씨에게 소개시켜 준 또 한 명의 한국인 주재원이 모두 인도인 X씨에게 쫓기듯 인도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英·美 등 선진국은 인도 합작기업의 대표로 인도人을 앉히는 경우가 종종 있어도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필자가 알기로 우리 기업이 인도에 진출해서 인도人을 대표로 앉힌 경우 성공한 사례가 거의 없었다. 우리 기업에는 인도人 대표를 통제할 기업경영 시스템이나 능력이 부족한 것이 아닌지,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
합작회사 不實化시킨 후 자기 것으로 만들어
우리 기업이 51% 이상의 지분을 가지고도 경영권을 빼앗겼던 사례가 있다. 우리나라 기업 C社는 인도 D社와 합작법인을 설립했다. C社는 양측의 지분을 50대 50의 합작을 하자는 인도 기업 D社와 치열한 협상 끝에 회사 지분을 51대 49로 하는 데 성공, 경영권을 장악할 수 있었다. 지분협상이 끝난 후 인도 측이 『회사 대표를 돌아가면서 하는 것은 어떠냐?』고 제안하자 C社는 깊은 검토 없이 이를 받아들였다.
인도 D社 측이 대표를 맡는 동안 원부자재 대금을 송금하지 않고, 은행 원리금 상환을 지연하는가 하면, 미수금 증가 등의 방법으로 회사를 어렵게 만들었다. 결국 C社는 同種(동종)업체들의 호황을 보면서 최근 기업을 인도 측에 넘기고 철수한 사례다.
인도 기업들은 외국과의 합작투자時 50대 50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여기에는 인도인들의 나쁜 의도가 감추어져 있다. 기업을 경영하다 보면 시장변화에 대응하기 위하여 增資(증자)를 하거나, 신규사업 진출 등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한다. 인도人들은 이때를 자기에게 유리한 기회로 활용한다.
「인도內에 있는 기업은 언제든지 자기의 기업이 될 수 있다」는 생각下에 중요한 결정이 필요할 때 의사결정을 지연시키거나, 아주 무산시켜 기업을 어려운 처지에 빠트린다.
인도에서는 기업경영이 어려워지면 기업퇴출회생 심사기관인 산업·금융재건위원회(BIFR)에 회부된다. 이 기구는 기업주에게 벌금을 부과하거나 3년간 구속할 수 있는 권한까지 가지고 있다.
그러나 결정에 몇 년씩 시간이 지연되고, 부실기업을 퇴출시키기보다는 인도 정부의 최대 목적인 고용유지를 위해 부채탕감 등의 방법으로 회생을 권유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회사대표의 책임 추궁은 흐지부지되고 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합작회사의 인도人 대표들은 회사를 부실화시켜도 그에 따른 책임은 따르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합작사를 부실화시켜 외국 파트너가 기업을 포기하고 나가게 만든 후 자기 소유로 만드는 것이다.
한국의 F社는 인도 유통망에 진입하기 위해 인도 기업인의 힘을 활용할 목적으로 인도 측 파트너에게 지분의 일부를 주었다.
인도 파트너는 초기에 자신의 루트를 활용해 적극적으로 영업활동을 전개했다. F社는 증자를 하고 서울에서 설비를 추가로 보내는 등 인도 사업을 확대해 나갔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거래처에 대한 미수금이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F社는 미수금 회수 전담직원을 배치하는 등 다방면으로 노력하였으나 미수금은 오히려 늘어났다. 나중에 알려진 바로는 인도 측 파트너가 회사를 어려운 처지로 몰아가기 위하여 거래처를 뒤에서 조종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도 경제는 상인카스트가 지배
인도에 진출하는 우리나라 기업과 인도 측의 거래에서 가장 큰 문제 가운데 하나가 미수금 회수 문제이다.
F社의 경우처럼 인도 측 파트너가 거래처를 뒤에서 조종해 미수금을 발생하게 하는 것이 가능한 것은 인도의 독특한 「카스트 문화」 때문이다. 인도에서는 상인카스트 가족 共同體(공동체)가 특정 산업부문을 독점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F社의 경우, 거래처의 상당 부분이 파트너가 속한 상인카스트 공동체에 속해 있었다. 그들이 서로 협력해 미수금을 늘려 나갔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유명한 금융회사가 1990년대 후반 인도에 진출하기 위해 합작회사를 설립했다가 자본금을 납입하자마자 차압이 들어오는 바람에 하루도 영업을 해보지 못하고 사기를 당한 적이 있다. 이유를 살펴보자.
인도 상인카스트 공동체의 최대 목적은 공동체의 유지보호다. 이 공동체 그룹은 세계적 명성을 가진 회사와 사기 치는 일만을 목적으로 하는 회사가 같은 그룹 이름을 사용한다. 사기를 목적으로 하는 회사가 사기 치는 일에 성공하면 그룹의 이익이 되므로 이를 암묵적으로 인정한다.
실패하면 공동체 유지보호에 문제가 발생할 우려가 있으므로 이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준비를 평소에 해둔다. 그룹이 의도적으로 對정부 로비, 검은돈 세탁, 세금 포탈 등을 목적으로 명목뿐인 회사를 만들어 놓고 이 회사를 그룹을 위한 희생양으로 사용할 준비를 평소에 해두는 것이다. 한국 금융회사가 합작을 추진했던 인도 회사도 그런 類(유)의 회사였던 것이다.
인도 경제는 상인카스트가 지배한다고 보면 된다. 따라서 우리 기업이 인도와 투자나 무역거래협상을 하는 경우 거의 대부분 상인카스트 공동체의 오너들을 상대해야 한다.
상인 카스트들은 같은 공동체 구성원 중 봉급생활자를 하찮게 취급한다. 같은 커뮤니티內의 형제나 친척 기업에서는 봉급생활을 하는 구성원에게 자신의 사업을 일으키도록 압력을 넣는다. 늘어나는 식구를 부양하기 위해서는 패밀리 비즈니스 기업이 확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인카스트 집안內의 자식들은 대학을 졸업해 회사에 취직하는 날부터 자기 사업을 일으킬 준비를 한다. 이들은 후일 자기 사업을 할 경우에 대비해 여러 산업 분야를 조사하는 것이 일상의 일과처럼 되어 있다.
인수거절 후 공매 통해 싸게 인수하기도
이들은 정보만 수집할 것이면서도 마치 관련 제품을 수입할 것처럼 全세계의 관련 업체에 팩스나 메일을 보내는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인도로부터 모르는 바이어가 자기네 기업 제품에 관심 있다는 내용의 메일이 들어오면 해당 기업은 온갖 정성을 다해 응하게 마련이다.
인도 바이어의 요청에 대해 한국 기업은 진지하게 상담에 응하지만, 인도 상인은 미래에 혹시 진출할지 모르는 분야의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연락한 것이므로, 대부분 아무런 성과 없이 상담이 끝나게 마련이다.
따라서 인도 바이어로부터 어떤 상담이 들어와도 정성을 다해 응할 필요는 없다. 간단한 정보와 우리의 의사만 표시해 주고 내버려 두면 된다. 「그러다가 중요한 바이어를 놓치면 어떻게 하느냐」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만일 인도人이 필요하다고 느끼면 몇 년 후라도 반드시 다시 찾아오는 것이 그들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인도에서는 바이어가 인수 거절한 물건을 나중에 공매를 통해 싸게 인수해 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관련 절차를 지연시켜 수출업자가 물건을 포기하도록 바이어와 세관공무원이 협조한다.
한번은 인도 측 수입상이 한국 업체로부터 신발을 수입하면서 「왼쪽과 오른쪽 신발을 따로따로 선적하여 각기 다른 항구로 보내 달라」고 했다. 한국 업체는 이 요구대로 신발을 수출했다. 인도 수입업자는 왼쪽 신발은 첸나이 항구, 오른쪽 신발은 뭄바이 항구로 수입시켜 놓은 후, 대금을 지불하지 않고 오랫동안 인수하지 않았다.
한참이 지난 후 세관에서 이 신발들을 공매할 때, 인도 수입업자는 첸나이와 뭄바이에서 각각 신발들을 인수한 후 짝을 맞춰 판매했다. 이 경우 공매를 해도 한 짝씩밖에 없는 신발은 아무도 인수하지 않으므로 본래 수입업자가 다른 사람으로 가장해 헐값에 신발들을 인수해 간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