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운의 일본문화 탐구 ⑥ 유방숭배와 물신숭배

분노한 일본 여성은 욘사마에게,
좌절한 일본 남자는「하녀 카페」에 간다!

  • : 김정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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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일본 남자들은 큰 가슴에 집착할까? 감동과 감탄이 부재한 삶에 대한 피곤함 때문이다.
그 크고 부드러운 가슴에 고개를 처박고, 그저 위로받고 싶고 소통하고 싶은 것이다.


金珽運은 누구인가?
1962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大 심리학과를 졸업했다.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치고,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의 전임강사로 발달심리학·문화심리학과 관련된 여러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문화심리학의 세계적 석학들과 함께 「문화심리학」이라는 책을 책임집필했다.
2000년 귀국해 명지大 사회교육대학원에 국내 최초의 여가학 석사 과정인 여가경영학과를 개설했다. 저서로는 「휴테크 성공학」, 「노는 만큼 성공한다」 등이 있다.
2006년 9월부터 와세다大에 특별연구원으로 체류 중이다.
「메이드 카페」의 하녀 복장의 종업원. 여자들의 느닷없는 반란에 두려워진 일본 남자들은 이런 말도 안 되는 복장의 아가씨들과 유치하기 짝이 없는 주사위놀이로 허전함을 달랜다. 큰 가슴을 바라보면서 .
봄이다. 꽃이 피기 시작했다. 서울보다 많이 남쪽에 있는 도쿄(東京)는 이미 완연한 봄이다. 숙소를 나서면 바로 보이는 와세다大 담벼락의 벚꽃은 이미 2월 중순부터 꽃잎을 날리기 시작했다. 유독 여기 담벼락의 벚꽃만 그렇다. 매년 그렇다고 한다.
 
  그래서 이 「철모르는」 벚꽃을 가리켜 와세다大 학생들은 「미친 사쿠라」라고 부른다. 허나 어찌 벚꽃만 미치고 싶으랴. 봄인데….
 
  와세다大 담벼락의 그 벚꽃이 흐드러지기 시작했을 무렵, 김혜수가 주인공으로 나온 한국영화 「타짜」 DVD를 봤다. 그때까지 나는 김혜수는 별 특징 없이 도도하기만 한 배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그녀는 노골적인 베드신 하나 없이, 그저 그 큰 가슴과 벗은 뒷모습을 살짝 보여 주는 것만으로 자신에 대한 근거없는 비난을 단번에 정리해 버렸다.
 
  이 영화를 본 이후로 나는 배우 김혜수에 관한 모든 편견을 버리기로 했다. 그녀는 교만해도 된다. 그것도 아주 많이….
 
 
  「가슴만」 큰 자매
 
와세다大 담벼락의「미친 사쿠라」.
  비슷한 시기, 이곳 일본 아침방송에서는 김혜수보다 훨씬 큰 가슴을 가진 자매가 며칠 동안 화제가 됐다. 카노우 자매다. 김혜수는 「가슴도」 크지만, 그녀들은 「가슴만」 크다. 엄청난 크기의 가슴을 세트로 내밀고 나오는 짙은 화장의 그녀들은 사실 친자매가 아니다. 그저 가슴 크기만 자매일 뿐이다.
 
  특별한 활동 분야가 있는 것도 아니다. 둘다 마흔이 넘었다. 「토털뷰티 어드바이저」 또는 「토털라이프 어드바이저」라는 아주 모호한 직업을 가진 이 자매는 TV 엔터테인먼트쇼의 단골 손님이다. 동시에 일본 여성들이 싫어하는 유명인들의 리스트에 단골로 등장한다.
 
  이 카노우 자매가 3억 엔 상당의 보석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그 정황이 매우 혼란스럽다. 카노우 자매나 그 매니저 언니가 하는 이야기가 서로 오락가락하는 것이다.
 
  기자들은 그녀들의 책 「Love & Sex」(책 제목도 기가 막히게 카노우 자매적이다) 출판 사인회에 맞춰 주목을 끌려고 일으킨 자작극이 아니냐고 계속 추궁한다. 그녀들은 으레 그 진한 화장과 가슴이 깊게 파인 옷을 입고 나와, 아니라고 부인하면서 운다. 그러나 카메라는 여전히 훌쩍이는 그녀들의 가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전체 메커니즘이 이렇게 돌아가는 것이다. 기자들(거의 남자기자들이다)은 이 사건이 자작극인 것을 이미 다 안다. 하지만 사건의 내막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녀들의 가슴을 보여 줄 기회가 한 번이라도 더 생긴다면 도난사건의 진상은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이다.
 
  그녀들이 나오면 화면을 고정하는 「미친 사쿠라」 같은 남자 시청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언니인 카노우 쿄우코는 키 168cm에 신체 사이즈 96-56-90이고, 동생인 카노우 미카는 키 170cm에 신체 사이즈 98-58-91이다.
 
  일본에는 그녀들처럼 가슴만 큰 여자들이 활동하는 영역이 따로 있다. 만화잡지나 성인잡지의 컬러 표지에 모델로 나오는 일이다. 그녀들을 「그라비아 아이돌」이라 부른다. 사진의 음각인쇄방법을 뜻하는 프랑스語의 「gravure」와 「idol」의 합성어다. 「그라비아 아이돌」은 크게 둘로 나뉜다. 가슴만 큰 모델과 어린아이같이 청순한 타입의 모델.
 
  가슴이 큰 모델은 수영복을 주로 입고, 어린 이미지의 모델은 교복이나 속옷차림이 대부분이다. 도대체 누가 볼 까 싶은 그런 사진들은 편의점의 잡지코너에 항상 놓여 있다. 그리고 그 앞에는 항상 누군가 서서 페이지를 들춰 보고 있다.
 
  TV에 나오는 연예인이나 「그라비아아이돌」만이 아니다. 일반 여성들도 가슴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옷을 즐겨 입는다. 그래서 도쿄의 봄은 여성들의 가슴으로 먼저 온다. 그저 고맙고 감사할 따름인 철없는 남자들의 가슴도 덩달아 설렌다. 한국의 젊은 여인들이 가슴의 계곡을 강조하는 옷을 입기 시작한 지 꽤 되었지만, 도쿄 여인들의 가슴 드러내기는 상당히 노골적이다.
 
  도쿄의 하라주쿠驛 맞은편의 다케시타도리라는 작은 골목에는 젊은이들을 위한 패션 상품으로 가득하다. 봄이 되자 이곳의 속옷가게들이 일제히 형형색색의 브래지어를 거리로 내다 진열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국의 TV 홈쇼핑에서 보던 것보다 평균 사이즈가 훨씬 커 보인다. 내겐 브래지어의 사이즈에 관한 아픈 기억이 있다.
 
  아주 오래 전, 결혼 1주년 기념으로 아내에게 속옷을 선물한 적이 있다. 그저 손바닥의 기억만으로 크기를 짐작해 브래지어를 사왔다. 물론 틀렸다. 「손바닥의 기억」은 당일의 심리적 요인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결혼생활이 20년에 가까운 지금도 내 손바닥이 기억하는 방식은 그때그때 다르다. 열 받은 아내는 씩씩거리며 「아줌마 빤스」 다섯 장으로 바꿔 왔다.
 
 
  여성들이 다시 가슴을 키우기 시작했다
 
카노우 자매. 영화「타짜」의 주인공 김혜수는「가슴도」크지만, 그녀들은「가슴만」크다.
  미국 스탠포드大의 여성학자 마릴린 옐름은 「유방의 역사」라는 책에서 현대 여성의 가슴 크기는 여성들의 사회적 역할에 따라 달라진다고 주장한다. 모성이 강조되는 시대에는 여성의 가슴이 실제로 풍만해진다고 한다. 반면 여성의 사회적 역할이 강조되고, 여성의 노동시장에의 진출이 활발해지면 여성의 가슴은 작아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처음 시작되었던 1920년대에는 가슴의 곡선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 드레스가 유행했다. 당시 여성들은 가슴을 작게 보이려고 끈으로 동여매기까지 했다고 한다.
 
  50년이 지난 1960년대 말~1970년대에 이르러 그 현상은 다시 나타난다. 마르고, 가슴이 거의 없는 여성의 몸매가 이상적인 몸매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거식증에 걸린 듯한 말라깽이 여자모델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가슴이 작아질 뿐만 아니라 엉덩이도 작아졌다. 모델의 몸매가 날렵한 소년처럼 된 것이다. 여성들의 이상적 몸매가 이렇게 변한 것은 남성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라고 마릴린 옐름은 주장한다. 생물학적으로 남성과 같은 체격을 가질 수 없는 여성이 남성과 경쟁하려면 날렵한 소년의 몸매를 가지는 길뿐이다.
 
  그 결과 지적이고 세련된 여성은 날렵한 소년과 같은 몸매로 자신의 경쟁력을 표현하려 한다. 사회적 성취를 이룬 여성들의 의상에서 이러한 날렵함이 어김없이 강조된다. 국내건 국외건 여성 CEO들의 의상을 눈여겨보면 이 원칙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심리학 연구 조사에 의하면 큰 가슴과 큰 엉덩이는 가사와 육아의 이미지로 연결되고, 동시에 무능력과 연결된다. 이는 남성에게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서구사회에서 뚱뚱한 남성은 知的(지적)이고 능력 있는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날씬함은 성취와 자기통제의 상징이고, 뚱뚱함은 자기통제의 실패와 사회적 무능력의 상징이 된다.
 
 
  멀티플레이어가 돼야
 
어린 학생부터 중년의 회사원에 이르는 다양한 독자들이 편의점 잡지코너에서「그라비아 아이돌」의 가슴을 들추고 있는 모습은 일상적 풍경이다.
  여성이 남성과 경쟁하며 사회적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고, 여성들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긍정적 컨센서스가 형성된 1990년대 이후, 이러한 소년적 여성의 몸매에 다시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여성들이 가슴을 다시 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원래 여성은 가슴이 크면 엉덩이도 크고, 가슴이 작으면 엉덩이도 작게 마련이다. 이것은 생물학적 원리다. 가슴만 크고 엉덩이는 작은 몸매는 기형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의 사회는 여성들에게 가슴도 크면서, 날렵함도 잃지 말 것을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도 잘할 뿐만 아니라 모성적 매력은 물론, 에로틱한 매력까지 잃지 않는 여성만이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결국 자연적인 상태에서는 있을 수 없는 「가슴만 크고, 엉덩이는 작은」 기형적인 몸매를 만들기 위한 다양한 형태의 기술이 발달하게 된다. 「뽕브라」, 「원더브라」에서부터 가슴 성형수술에 이르기까지.
 
  전통적인 일본사회에서 여성의 가슴은 에로티시즘의 대상이 아니었다. 1990년대 초반 조사된 바에 의하면 여성의 성기와 관련된 日語(일어) 표현은 260개 정도의 단어가 있었다. 그러니까 「그곳」에는 엄청나게 관심을 가졌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가슴과 관련된 표현은 6개 단어에 불과했다.
 
  에로틱한 가슴과 관계된 개념 자체가 아예 없었다는 이야기다. 그만큼 여성의 가슴은 남성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대상이 아니었다. 그저 젖먹이 아기들의 몫일 따름이었다.
 
  일본 여성들은 전통의상인 기모노를 입을 때, 가슴을 눌러 입었다. 가슴 큰 여자는 기모노를 입었을 때 맵시가 나지 않는다. 이는 우리 전통한복에서도 마찬가지다. 기모노를 입은 여성의 에로티시즘은 목덜미, 엉덩이 그리고 발목에 있었다.
 
  1999년에 조사된 설문결과에 의하면 일본 남성들이 제일 관심을 갖는 여성의 몸은 가슴, 다리, 눈, 얼굴, 엉덩이, 머리, 팔, 입술, 목덜미, 손 등의 순서로 나타났다. 엉덩이만 살아남고, 목덜미와 발목은 관심의 대상에서 완전히 밀려난 것이다. 이제 여성의 발목에 관심을 갖는 이는 변태적 취향으로 여겨진다.
 
  일본 성형외과의 광고는 대부분 가슴 성형에 집중되어 있다. 얼굴 부위의 성형보다 유방확대 수술을 훨씬 더 강조한다. 가슴 성형도 많이 하지만, 얼굴 성형을 훨씬 중요하게 광고하는 우리나라 성형외과와는 사뭇 다르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큰 가슴과 작은 엉덩이의 「기형적인 여성」은 20세기 후반의 사회가 여성에게 요구하는 「기형적인 역할」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직업적으로 능력이 있으며, 어머니로서 가정에 충실해야 하며, 또한 여성으로서의 에로티시즘마저 포기할 수 없는 멀티플레이어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유방숭배」의 심리학
 
하라주쿠 맞은편의 다케시타도리의 속옷가게. 형형색색의 브래지어가 길거리에 진열되기 시작하면 봄이 온 것이다.
  일본사회의 유방숭배 현상을 그저 단순히 미국식 포르노그래피의 승리로만 설명하는 것은 너무 안이한 해석이다. 유방의 심리학적 의미는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다.
 
  프로이드에게 있어 엄마의 젖을 빠는 것은 모든 인간경험의 원형이다. 젖을 빠는 것을 통해 性的(성적)인 만족을 충족하는 口脣期(구순기)로부터 인간의 모든 욕구의 구조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프로이드의 유방론을 100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 여전히 똑같은 방식으로 참고하는 것은 너무 진부하다.
 
 
  의사소통의 기원
 
  문화심리학적 관점에서 볼 때, 여성의 가슴은 인간의 모든 의사소통 행위를 가능케 하는 「상호주관성」의 출발점이다. 인간의 모든 의사소통 행위는 엄마의 가슴에서 느꼈던, 바로 그 정서적 경험에서 출발한다는 이야기다. 한번 예를 들어 생각해 보자.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 글이, 읽는 사람에게 동일한 의미로 이해된다고 무슨 근거로 이야기할 수 있는가? 태어나면서부터 우리가 문자의 의미를 동일하게 해석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더 쉽게 접근해 보자. 내가 『당신을 보고 싶다』고 했을 때, 내가 말하는 「보고 싶다」의 의미와 당신이 이해하는 「보고 싶다」의 의미가 동일한 것이라고 누가 보장해 줄 수 있는가? 사전을 보고? 그럼, 사전에 기록된 「보고 싶다」를 설명하는 수많은 단어들의 의미를 「내가 이해하는 방식」과 「사전 편찬자의 의도」와 동일한 것이라고 누가 또 보장해 줄 수 있는가? 이런 식으로 가면 끝이 없다. 어딘가에는 나와 당신이 동일한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보장해 주는 상호이해의 기원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동일한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보장해 주는 상호주관성의 기원은 동일한 정서적 경험이다. 이 동일한 정서적 경험은 엄마의 가슴에서 시작된다. 아기는 엄마 품에서 젖을 빨면서 엄마와 눈을 마주치면서 웃는다.
 
  이때, 어린아이가 느끼는 정서적 경험은 엄마와 동일한 것이다. 태아는 엄마의 뱃속에서부터 엄마의 정서적 경험을 공유한다. 같은 몸이기 때문이다. 동일한 정서적 경험은 아기가 태어나서 엄 마와 분리되어도 일정기간 계속된다.
 
  아기의 발달이 어느 정도 진행되면, 아기는 엄마와 동일한 정서적 경험을 하지만 몸은 서로 독립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같은 정서적 내용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아기의 자아인식이 시작된다. 동시에 나와 다른 존재의 의사소통 능력이 발달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경험, 즉 서로 분리된 다른 존재가 동일한 정서적 경험을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상호이해와 의사소통의 기원이다.
 
  인간은 절대 논리적으로 의사소통하지 않는다. 정서적으로 의사소통한다. 어른이 될수록 정서적 경험이 풍부해지지 않으면 타인과의 의사소통 능력이 상실된다. 상호주관성의 근거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남들은 왜 나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바로 정서적 의사소통 능력이 상실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음악회에 자주 가야 하고, 미술관을 찾아야 한다. 아니면 지독한 외로움의 他地(타지) 생활을 마다하지 말아야 한다.
 
  일본 남성들의 큰 가슴으로의 회귀는 의사소통 不在(부재)에 대한 공포의 표현이다. 어머니의 가슴에서 시작되었던 바로 상호주관성의 근원으로의 회귀인 것이다. 철없는 한국 남성들이 김혜수의 엄청난 가슴에 감동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감동과 감탄이 不在한 삶에 대한 피곤함 때문이다. 크고 부드러운 가슴에 고개를 처박고, 위로받고 싶고 소통하고 싶은 것이다. 큰 가슴에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은 누구한테서도 이해받지 못하고,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고립된 자들의 처절한 몸짓이라고 해석해야 옳다.
 
여성의 사회적 역할에 따라 달라지는 가슴의 크기. 가슴도 크고 엉덩이도 컸던 마릴린 먼로 스타일에서 가슴과 엉덩이 모두 형편없이 마른 말라깽이 모델로, 그리고 다시 가슴만 커진 기형적 모델로의 변화는 여성의 사회적 역할과 밀접한 상관이 있다.
 
  보이지 않는 억압에 지친 일본 여자들의 반란,「욘사마 열풍」
 
  여성들도 지쳤다. 현재 도쿄에 체류하며 韓流(한류)를 연구 중인 영국 셰필드大의 이향진 교수는 「韓流」는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회적 능력이 있으며, 따뜻한 어머니이어야 하며, 동시에 에로틱한 애인이기까지 요구하는 다양한 방식의 드러나지 않은 사회적 억압에 지칠 대로 지친 일본 여성들의 한풀이 축제가 바로 「韓流」라는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렇다. 욘사마가 사랑했던 여자는 능력 있으며 가슴까지 큰 여자가 아니었다. 시종일관 그저 『듄상아, 듄상아』를 매번 외칠 뿐인 고등학교 시절의 첫사랑을 욘사마는 끝까지 사랑했다. 만약 「겨울연가」에 김혜수가 주연으로 나왔다면 韓流는 없었을 것이다. 韓流는 큰 가슴만을 요구하는 일본 남자들의 요구에 진절머리가 난 일본 여성들의 반란이기 때문이다.
 
  韓流가 식었다지만 욘사마의 인기는 지금도 여전하다. 내가 『욘사마와 목욕탕에서 만났었다』고 이야기하면 중년의 일본 여성들은 태도가 돌변한다. 좀더 자세히 설명해 달라고 한다. 『욘사마는 키가 엄청 크고, 다리도 「전부」 그렇게 길 수 없더라』고 내가 우쭐대며 이야기하면, 다들 입을 가리고 고개를 돌리며 어쩔 줄 몰라 한다.
 
  내 다리도 욘사마처럼 길어지는 느낌이다. 귀엽기까지 한 그녀들의 모습에서 「주제 넘게 서양여자 같은 큰 가슴만을 원하는, 다리도 짧은 일본 남자들」에 대한 분노가 읽힌다.
 
 
  일본 남성들의 분노, 「메이드 카페」
 
「메이드 카페」에서 일하고 있는 하녀복장의 여종업원들.
  일본 남성들은 나름대로 상처가 깊다. 갈수록 깊어진다. 「단카이 세대」라 불리는 戰後(전후) 베이비붐 세대가 처음으로 은퇴하기 시작하는 2007년 이후에는 일본의 이혼율이 급격히 높아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동안 꾹 참고 살았던 일본 중년여성들이 남편 은퇴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일본 여성들은 더 이상 세계 모든 남성들의 환상 속에 자리 잡고 있던, 그 여성들이 더 이상 아니다.
 
  느닷없는 이러한 변화에 영혼 깊숙이 상처받은 일본 남성들에게 세상은 너무 혼란스럽다. 그저 두려울 따름이다. 이렇게 겁에 질린 그들이 찾아가 위로받을 수 있는 곳이 몇 년 전부터 도시 곳곳에 생겨나기 시작했다. 「메이드 카페」다. 말 그대로 「하녀 카페다」.
 
  「남자들의 거리」라고 할 수 있는 아키하바라 뒷골목에 몇 년 전부터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메이드 카페는 술 마시는 곳은 아니다. 그렇다고 무슨 이상한 변태행위가 이뤄지는 곳도 아니다. 그냥 커피나 주스를 마실 뿐이란다.
 
  그럼 도대체 다른 카페와 뭐가 다른 것일까? 그래서 직접 가봤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20代 초반의 표정만 귀여운 메이드가 웃으며 반긴다. 옷은 미국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에 나오는 흑인 하녀들이 입는 하얀 레이스로 장식된 검은 옷이다. 카페 자체도 그렇게 허술할 수 없다. 어설프게 바를 흉내 낸 테이블이 가운데 있고 별도의 탁자가 몇 개 놓여 있을 뿐이다.
 
  테이블에 앉으니 메이드가 물수건을 가져온다. 손을 내밀라고 하더니 손을 닦아 준다. 옆자리를 보니 케이크를 먹여 주기까지 한다. 또 다른 테이블에는 한 사내가 메이드와 주사위놀이를 하고 있었다. 요즘 유치원에서도 보기 힘든, 정말 유치하기 짝이 없는 놀이다.
 
  그러나 둘은 사뭇 진지하다. 메뉴를 보니 90분 동안 이런 방식의 하녀 시중을 받는 데 2000엔이다. 우리 돈으로 1만6000원이다. 내가 머물렀던 1시간 동안 6명의 사내들이 들어왔다. 모두 혼자 들어왔다.
 
  커피잔을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서자, 메이드가 성적표를 내민다. 자신의 걷는 자세, 말하는 태도, 서비스, 재미 등의 항목에 점수를 매겨 달란다. 전부 만점을 줬다. 다들 그렇게 혼자 들어와 허접스런 이야기와 놀이로 시간을 보내다가 90분이 지나면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혼자서 나간다. 큰 가슴을 탐닉한 代價 치고는 참 가혹하다. 저 문을 나서면 이젠 어디로들 가야 하는 걸까?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날
  나를 찾아온 동독 난민들

 
니혼바시 위에 있는 일본국도의 출발점을 알리는 元標(원표). 니혼바시는 일본의 도로가 시작되는 곳이다. 아울러 일본식 자본주의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독일 통일은 나로 인해 완성되었다. 나는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다. 1989년 11월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날, 東獨人(동독인)들이 무너진 베를린 장벽을 뚫고 西베를린으로 넘어와 가장 먼저 찾아온 사람이 바로 나였기 때문이다. 정말이다. 그날 밤 나는 동독을 탈출한 난민들이 임시로 지내던 컨테이너로 된 난민수용소의 야간 경비를 서고 있었다.
 
  당시 한국 유학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아르바이트는 공장·은행·백화점 등을 외곽에서 지키는 야간경비였다. 주말에 이틀씩 밤을 새우면 한 달치 생활비를 벌 수 있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몇 달 전, 헝가리와 오스트리아 사이의 국경을 넘어 탈출한 東獨 난민들이 집단으로 묵고 있던 난민수용소는 베를린 외곽의 여러 곳에 분산되어 있었다. 대부분의 난민수용소는 오래된 공장 건물을 개조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내가 지키던 난민수용소는 수십 개의 컨테이너로 들판에 네모 반듯하게 세워졌다.
 
  그 큰 난민수용소에 야간 경비원은 달랑 나 혼자였다. 전화선이 가설돼 있지 않아서 조작법이 그리 간단치 않은 무전기가 유일한 통신수단이었다.
 
  나는 경비실에서 다음 주에 있을 마르크스의 「잉여가치론」에 관한 수업발표를 준비하고 있었다. 갑자기 이상한 느낌이 들어 고개를 들어보니, 창문 너머 차단기 앞으로 수많은 「트라비」(東獨의 2기통 자동차인 「트라반트」의 애칭)가 줄지어 오고 있었다. 놀라 뛰쳐나간 나는 내 본연의 임무를 다해야 했다.
 
  『면회시간 이외의 야간출입은 절대 허가할 수 없다』며 돌아가라고 나름대로 단호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잠시 후, 줄지어선 트라비의 배기가스 냄새에 입을 막고 차단기를 지키던 내게 어떤 녀석이 느닷없이 권총을 들이댔다.
 
  가슴에 진짜 권총이 밀고 들어오는 그 느낌을 아는가? 순간 정신이 아찔해지며 식은땀이 흘렀다. 나는 바로 차단기의 열쇠를 그 녀석에게 던져 주고, 뒷걸음질로 도망쳤다. 혹시라도 총알이 날아올까 봐 돌아서서 정말 열심히 뛰었다. 좀 비겁한 느낌이 들긴 했다.
 
  그러나 여전히 분단되어 있는 내 조국을 위해 더욱 중요한 일을 해야 할 사람이 이렇게 남의 나라 난민수용소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다 맥없이 생을 마감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독일 통일은 「카데베」와 섹스숍 때문
 
  두꺼운 콘크리트 장벽을 무너뜨린 東獨人들이 西베를린에 넘어와서 제일 먼저 한 일은 무엇이었을까? 심리학자인 내겐 그것이 가장 궁금했다. 각종 자료에 의하면, 그들이 西베를린에서 제일 먼저 구경한 곳은 섹스숍이었다. 그들은 난생처음 보는 다양한 섹스 상품에 믿을 수 없다는 표정들이었다.
 
  서독의 기자가 느낌을 물어보자, 『그야말로 「망할 놈의 자본주의」라는 느낌이 들지만, 그것도 자유를 누리는 또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무척 즐거워 보였다. 새롭게 얻어진 자유가 실감이 난다는 표정이었다. 東獨의 현실사회주의는 인간의 에로티시즘이 가지는 상상력의 한계를 너무 과소평가했다.
 
  섹스숍을 나와 그들이 몰려간 곳은 쿠담 거리 끝에 있는 「카데베」라는 유럽 최고의 백화점이었다. 층마다 널려 있는 각종 명품의 화려함에 그들은 넋을 잃었다. 가격에는 더욱 할 말을 잃었다. 먹고 사는 것과 하등 상관없는 사치품에 그 많은 돈을 지불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들은 곧 그 사치품 구입의 대열에 참여하게 된다. 각종 혜택으로 유혹하는 자동차회사들의 판매전략에 東獨 사회주의의 자랑이었던 「트라비」를 버리고 앞다투어 「베엠베(BMW)」를 산 것이다.
 
 
  인간의 욕구, 새로움과 감동
 
  제2차 세계대전 직후 개발된 東獨의 트라비는 당시만 하더라도 가장 획기적인 자동차였다. 2기통이지만 상당히 빠르고, 연료소비의 효율성은 당시 최고였다. 곡선이 부드러운 트라비의 디자인은사람들의 마음을 빼앗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그게 다였다. 東獨 정부는 트라비로 자동차에 관한 인간의 욕구는 다 채워졌다고 생각했다. 운송과 이동의 최적의 모델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西獨의 자동차회사가 한 해 수십 가지의 모델을 만들어 내는 동안 트라비의 모델은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속도 무제한의 「아우토반」을 달리기 위해 시속 200km 이상의 BMW가 개발되는 동안, 트라비는 여전히 최고속도가 시속 80km였다. 자동차는 東獨 정부가 생각하듯이 그저 사람을 태우고 달리는 물건이 아니었다. 감동과 기쁨을 동반하는 장난감이었다.
 
  성욕이나 식욕은 인간만의 욕구가 아니다. 그건 그야말로 「개」나 「소」나 다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만의 욕구는 무엇인가? 새로움과 놀라움, 즉 감동에 대한 욕구다. 동물은 새로운 것을 두려워한다. 동물이 새로운 것에 감동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하다. 그러나 인간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
 
  생리학적으로 새로움과 감동은 뇌에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 물질을 분비시킨다. 도파민은 그 어떤 것보다 강한 중독물질이다. 이 물질이 분비되면 행복해지기 때문에 끊을 수 없다. 뇌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추구하는 대부분의 욕구는 이 도파민 분비와 관련되어 있다.
 
  낯선 장소를 찾아나서는 여행의 짜릿함은 이 도파민 때문이다. 매일 새로운 기록에 도전하는 마라톤 마니아들도 이 도파민 때문이다. 새로운 맛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미식가들은 오늘도 새로운 식당을 찾아 나선다. 섹스도 마찬가지다. 항상 동일한 방식의, 종족번식만을 목적으로 하는 섹스처럼 피곤한 일은 없다.
 
  東區의 사회주의는 이 새로움과 감동을 불필요한 것으로 간주했다. 아니 죄악으로 여겼지만 결국 망했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근원적 욕구를 가장 잘 응용한 시스템이다. 그런 까닭에 수없는 도전에 살아남았고, 앞으로 당분간은 위협할 만한 경쟁상대가 없어 보인다.
 
 
  일본 자본주의의 역사
 
미츠코시 백화점 니혼바시 본점. 모든 종류의 새로운 서구문화는 일단 미츠코시 백화점에서 시범적으로 향유되었다. 그리고 全 일본으로 퍼져나갔다.
  인간의 본능은 옳고 그름의 차원이 아니라 그냥 있는 것이다. 메이지유신 이후의 일본은 이러한 새로움과 감동으로 매개되는 자본주의의 심리학적 원리를 정확히 이해했다. 그리고 기가 막히게 발전시킨다. 그것이 바로 일본식 자본주의다.
 
  미츠코시 백화점의 니혼바시 본점은 일본 자본주의의 역사를 몸으로 보여 주고 있다.
 
  일본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로는 최고의 걸작이라고 여겨지는 건물 외양 때문만이 아니다. 미츠코시 백화점은 새로움과 감동 생산과 관련해 세계 최고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일본식 자본주의가 시작된 곳이다. 니혼바시에서 시작한 미츠코시 백화점은 그저 물건을 파는 곳이 아니었다.
 
  서구의 근대문화는 일단 이 미츠코시 백화점에서 시범적으로 먼저 경험되고 평가되었다. 미술관도 그랬고, 잡지도 그랬고, 음악회도 그랬다. 미츠코시 백화점은 한마디로 새로운 문화가 실험되는, 유행과 취미를 통한 감동이 만들어지는 공간이었다.
 
  요즘은 한국의 거의 모든 백화점에서 시행하고 있는 문화센터의 각종 프로그램이 이미 1900년대 초 니혼바시 옆의 미츠코시 백화점에서 매일 열렸다. 이를 통해 근대일본을 이끌어 나갈 지식인과 문화인의 인맥이 형성되었다. 「무사도」의 저자로 유명한 니토베 이나조는 이곳 미츠코시 백화점에서 모였던 「유행회」의 일원이었다.
 
  미츠코시 백화점에는 당시 「공중정원」이라 불렸던 옥상 정원이 처음으로 조성되었다. 지금도 미츠코시 백화점 니혼바시 본점의 영국식 옥상 정원에서는 계절에 따라 다양한 이벤트가 열린다. 이런 다양한 기능의 백화점은 서구에서 그 유래를 찾아보기 어렵다. 새로움과 감동을 인위적으로 창조해 내는 일본식 자본주의의 구현인 것이다. 도대체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
 
 
  판매자 중심에서 고객 중심으로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가 괜히 1만 엔짜리 지폐에 나오는 것이 아니다. 우선, 미츠코시 백화점의 前身(전신)인 「마쓰이 오복점」을 근대적 형태로 개혁해 낸 나카미가와 히코지로는 후쿠자와의 조카다. 후쿠자와는 그를 자신의 자식보다 더 엄하게 교육하고 자신의 부담으로 영국 유학까지 보낸다.
 
  그는 후쿠자와가 창간한 「지지신보(時事新報)」의 사장과 산요철도의 사장을 지내다가 미쓰이 오복점을 맡게 된다. 그는 후쿠자와의 게이오 의숙 출신의 후배들을 등용해 미츠코시의 현대화에 박차를 가한다. 그중에서 다카하시 요시오는 후쿠자와의 철학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이었다. 후쿠자와가 꿈꿨던 것은 정부의 통제로부터 가능한 한 자유로운 국가 시스템이었다.
 
  나카미가와가 다져 놓은 기반 위에 다카하시 요시오는 제일 먼저 마쓰이 오복점의 전통적 판매방식인 「좌판 판매방식」을 폐지한다. 이는 판매자 중심에서 고객 중심으로 상행위의 주체가 이동하는 혁명적 사건이었다. 그 이전까지의 판매방식은 지배인이 좌판에 걸쳐 앉아 찾아오는 손님에게 몇 개의 상품을 보여주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이 좌판을 걷어치우고 각 층을 큰 홀로 만들었다. 그리고 중간중간 유리로 만든 쇼케이스를 만들었다. 상품전시의 방식이 바뀌자 선택권은 돈을 가진 고객에게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 돈을 가진 이가 더 중요한 자본주의의 원리가 구현되기 시작한 것이다.
 
 
  물신숭배의 신전 - 미츠코시 백화점 니혼바시 본점
 
미츠코시 백화점의 파이프오르간 연주회. 중앙 홀에는 거대한 여신상이 있고, 그 뒤편으로 파이프오르간이 설치되어 있다. 매일 세 번의 오르간 연주회가 열린다.
  자본주의적 상품사회에서 인간의 상품구매 행동은 새로움과 감동의 구입이라는 또 다른 원리에 의해 결정된다. 이는 「感動價値(감동가치)」의 구매행위다. 東유럽의 사회주의는 이 새로움·놀라움·감동의 경험이 동반하는 삶의 기쁨을 애써 무시했다.
 
  감동가치는 단순한 자본주의적 상품교환과정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문화·예술을 포함하는 인간의 모든 미학적 행위의 심리학적 근본 동기가 되는 것이다. 앞서 설명한 의사소통 능력의 기원이 되는 엄마 가슴에서의 정서적 경험이 바로 이 감동과 감탄의 원형이다. 우리는 감동하기 위해 산다. 감동과 감탄이 없는 삶은 인간의 삶이 아니다.
 
  그러나 살다 보면 진정한 기쁨을 동반한 감동의 경험은 드물다. 자본주의는 바로 그 빈 틈을 기가 막히게 파고든다. 자본주의는 인위적인 감동과 감탄의 기술이 극대화된 시스템이다.
 
  진정한 가치를 가진 감동스러운 경험이든, 상업주의의 농락당하는 사이비 감동의 경험이든 뇌에서 분비되는 도파민의 효과는 동일하다. 미츠코시 백화점에서 시작하는 일본식 자본주의는 바로 이 부분을 정확히 간파했다.
 
  미츠코시 백화점 니혼바시 본점에는 아직도 다른 백화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아주 특이한 광경이 있다. 이 백화점의 한 가운데는 정면 폭이 약 12m, 앞뒤 폭이 약 18m인 거대한 중앙 홀이 있다. 1층부터 5층까지 뚫려 있어 마치 건물 가운데가 다 비어 있는 느낌이다.
 
  천장에 있는 화려한 스테인글라스를 통해 빛이 건물 전체로 내려온다. 당시의 신문은 「수에즈 운하 동쪽으로는 비교할 것이 없는 최고의 건축물」이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여기서 왜 수에즈 운하가 나오는지는 잘 이해가 안 가지만, 아무튼 그 엄청난 감동을 표현할 수 있는 당시 최고의 수사였음은 분명하다.
 
  더 흥미로운 것은 그 중앙 홀 한가운데 파이프오르간이 설치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1930년에 미국의 울리처社의 기술로 설치된, 852개의 파이프로 구성된 오르간이다. 매일 오전 10시, 낮 12시, 오후 1시에는 파이프오르간 연주회가 열린다. 마치 중세유럽의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느낌이다. 연주되는 곡목은 「어메이징 그레이스」부터 세자르 프랑크의 「생명의 양식」에 이르기까지 너무나 종교적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 파이프오르간 앞에는 형형색색의 보석들로 장식된 거대한 여신의 조형물이 서 있다. 이렇게 종교적 감동까지 서비스하는 백화점이 일본 미츠코시 백화점 이외에 또 어디에 있을까? 정말 아무 거리낌 없이 드러내놓고 행해지는 물신숭배의 신전이다. 그러나 어쩌랴. 오늘날 마르크스는 흔적도 없고, 미츠코시 백화점 니혼바시 본점은 여전히 새로움과 감동에 굶주린 사람들로 북적거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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