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正日의 술친구인 마카오 현지인은『金正男은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잘 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애첩에 대한 얘기도 꺼내지 않는다. 다만 옆 건물에 같이 산다는 얘기는 얼핏 한 것 같다』고 했다.
최근 마카오에서 日本 언론에 포착된 북한 金正日의 장남 金正男(36)이, 金正日의 애첩 정일선(32)과 마카오 고급빌라촌에서 함께 살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金正男은 2000년을 전후로 현재까지 마카오에 살고 있고, 정일선은 1999년 초부터 2005년경까지 마카오에서 거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후계구도에서 멀어진 金正男이 아버지의 애첩과 마카오에서 같이 살았다」는 얘기는 여러 가지 시사점을 던져 주고 있다. 이같은 사실에 대해 북한문제 전문가들은 『「金正男이 권력투쟁에서 완전히 밀려나 中國 마카오 등지를 떠돌며 사실상 망명생활을 하고 있다」는 서방의 관측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며 『金正男은 여전히 金正日의 보호막 아래 있고, 상황의 변화에 따라 金正男이 복귀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3일 중국 北京 국제공항에 모습을 드러낸 金正男은 아버지 金正日의 생일을 앞두고 평양에 가기 위해 北京에 도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거주한 빌라는 마카오 시내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위치한 콜로안 섬의 고급빌라촌 「주완 하오위안(竹灣豪園)」이다. 빌라 앞쪽으로 남중국海가 시원히 펼쳐져 있고, 단지 내에는 실외수영장이 있다. 세대별로 위성안테나와 태양광 채광시설까지 마련돼 있다.
「주완 하오위안」에서는 거주자의 私생활이 철저히 보호된다. 마카오 최고 富村(부촌)이다. 빌라의 구조는 1층이 주차장, 2·3층이 주거용으로 구성돼 있으며 한 채당 가격이 18억~20억원이다.
金正男은 2000년경 둘째 부인 장길선(33), 아들(12)과 함께 이곳에 살고 있다. 이들은 빌라 361호와 371호를 연결해 두 채를 사용한다. 북한의 「기쁨조」 출신으로 알려진 부인 장씨는 상당한 미인이며, 아들은 인근 국제학교 6학년에 재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金正男은 이곳에서 거주하면서 술친구 서너 명을 사귀었다고 한다. 金正男과 친분이 두터운 한 현지인은 『최근 외국 언론이 金正男을 집중 보도하면서 그가 자취를 감췄다』며 『첫째 부인이 살고 있는 北京으로 갔다』고 전했다.
또 다른 마카오의 한 소식통은 『金正男은 마카오를 하나의 사업 거점으로 활동해 왔다. 그는 이곳을 기점으로 北京과 싱가포르, 일본 등을 다니고 있다. 마카오에는 둘째 부인 외에 또 다른 여인이 있는 걸로 안다』고 했다.
金正男은 IT 관련 비즈니스에 관여하며 지내 왔다고 한다. 그는 개인 경호원 서너 명을 둔 것으로 알려졌다.
金正男이 사는 빌라의 오른쪽 인근 건물이 金正日의 애첩 정일선이 2005년경까지 살았던 곳이다. 정일선의 빌라는 가운데 통로를 중심으로 두 채가 연결돼 있다. 한 건물에는 정일선과 그의 아들이, 또 다른 건물에는 경호원이 거주했다. 정일선은 1999년 1월 초 「한솔」이라는 아들과 경호원으로 보이는 일행 3명을 데리고 마카오에 왔다고 한다.
마카오 경찰은 그녀의 아들 한솔이 金正日의 소생일 것으로 추정했다. 마카오에 머물던 정일선은 2004년 5월 金正日의 셋째 부인(고영희)이 사망한 이후 아들을 데리고 평양으로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金正男과 정일선은 최소 5년간 이웃 집에서 살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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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月刊朝鮮이 2003년 3월에 찍은 정일선의 집 金正日의 애첩 「정일선」이 살았던 마카오 최고급 빌라. 점선 부분이 정일선 빌라와 경호원 빌라를 연결하는 통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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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朝鮮日報가 2007년 1월 촬영한 金正男의 집 金正男과 그의 가족이 거주하는 마카오 콜로안 섬의 고급빌라. 가운데 해바라기 마크는 북한 최고지도부에 대한 충성 의미이다. 두 사진을 비교하면 같은 형태의 빌라임을 알 수 있다. 金正男의 집 오른쪽에 정일선의 집이 있다. |
마카오의 金正男 술친구의 증언
金正日의 술친구인 마카오 현지인은 『金正男은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잘 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애첩에 대한 얘기도 잘 꺼내지 않는다. 다만 옆 건물에 같이 산다는 얘기는 얼핏 한 것 같다』고 했다. 그는 『金正男이 북한 권력에서 밀려나 수년 동안 외국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지만, 金正日의 장남이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세 여자와의 사이에 여러 자식을 둔 金正日이지만 외국에서 사는 장남에 대한 관심은 적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정일선의 존재는 月刊朝鮮(2003년 4월호)을 통해 국내에 처음 알려졌다. 당시 마카오 현지 취재를 했던 禹鍾昌(우종창) 前 月刊朝鮮 편집위원의 말이다.
『마카오 현지 정보관계자의 도움을 얻어 정일선의 거주지를 알아냈습니다. 마카오 본토에서 승용차로 20분 떨어진 곳에 빌라촌이 있었어요. 빌라 앞에는 바다가 쭉 펼쳐져 있었는데, 주변 경치가 상당히 좋았습니다. 현지인의 말을 들어보니, 그 빌라 소유주는 대부분 중국과 홍콩, 마카오의 갑부들이라고 합니다. 그 당시 빌라 한 채 가격이 홍콩달러로 최하 400만 달러라고 했습니다. 한국 돈으로 당시 6억원이었는데 지금은 더 비싸겠지요.
빌라촌의 입구에는 차량 차단막이 설치돼 있었어요. 경비초소에는 경비원들이 외부인을 철저히 차단했습니다. 경비원들은 곤봉과 총을 차고 있었어요. 현지 정보관계자가 동행했기 때문에 단지 안으로 무사히 들어갔습니다. 입구를 지나 조금 더 들어가니 빌라 수십 채가 나타났어요. 한눈에 비싼 건물이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빌라의 구조가 비슷해 號數(호수)를 모르면 찾기 어렵습니다. 현지인의 도움으로 정일선이 산다는 빌라를 찾아냈습니다. 1층은 주차장이었고, 2층과 3층이 살림집이었어요. 현장을 방문한 날이 일요일 오후였는데, 정일선의 집 1층 주차장 문이 열려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주차장에서 청소를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사진기를 꺼냈지요.
사진을 찍으려는 순간 경비원이 달려와 중국말로 무슨 말을 하더군요. 통역을 통해 알아보니 「사진을 찍지 말라」는 말이었습니다. 사진기로 정일선의 집을 찍는 것이 수상해 보였는지 주차장에 있던 사람이 금방 문을 닫아 버리더군요. 할 수 없이 멀리서 정일선의 집을 찍었습니다.
정일선의 집은 구조상 특별했습니다. 두 빌라 사이에 통로를 만들어 서로 연결해 놓은 겁니다. 현지인의 말로는 「정일선의 경호문제로 구조를 변경했다」고 합니다. 두 채의 빌라 중 한 채에는 정일선 가족이 살고, 다른 한 채는 경호원 숙소라고 했습니다』

1999년 빌라 두 채 구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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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조여권으로 일본에 입국하려던 金正日의 장남 金正男과 함께 체포돼 중국으로 추방된 두 여인과 네 살짜리 아이가 2001년 5월4일 일본 나리타 공항에서 중국 베이징行 ANA 905편에 탑승하기 위해 걸어가고 있다. |
2000년 남북 頂上회담 당시 남측이 회담 代價(대가)로 주기로 한 5억원 중 1억원이 조광무역 계좌를 통해 北으로 전달됐다.
조광무역은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35호실」 소속이다. 35호실은 「對外정보조사부」의 별칭이다. 이 부서는 해외에서의 對南정보수집 및 要人암살·납치·테러 전담부서이다.
마카오 당국은 이같은 조광무역의 실체를 알고 있기 때문에 북한 외교관 신분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면밀히 주시해 왔다. 金正日의 애첩 정일선이 1999년 1월 마카오에 들어온 사실도 마카오 당국은 파악하고 있었다.
그녀가 마카오에 입국한 뒤 한 달 후쯤, 마카오 경찰 특수수사대가 중국을 거쳐 입국한 북한人 2명을 체포했다. 이들이 소지한 美貨(미화) 100만 달러의 위조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조사 결과 이들이 소지한 美貨가 진짜인 것으로 판명나 두 사람은 곧바로 석방됐다. 그러나 경찰당국은 이들의 움직임을 계속 주목했다. 얼마 후 이들이 마카오 콜로완 섬에 있는 「주완 하오위안」의 빌라 두 채를 구입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金正日의 애첩 정일선의 경호 책임자는 김승복이었다. 북한 외교관 여권을 소지한 그는 「조광무역」·「다엑심상사」·「명기공사」의 주재원 신분으로 가족과 함께 마카오에 나와 있었다. 다엑심상사는 「대성총국」의 마카오支社이다. 대성총국은 金正日의 해외 비자금을 담당하는 「39호실」 직속 무역회사이다. 물론 이름만 무역회사일 뿐 비자금을 관리하고 조성하는 일을 한다.
미국 비자에 드러난 정일선
禹鍾昌 前 편집위원은 金正男과 정일선이 같은 빌라촌에 거주한 데 대해 이렇게 말했다.
『金正男이 마카오에 집을 보유하고 있다는 얘기는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정일선을 추적하는 동안, 그녀가 金正日의 애첩이 아니라 金正男의 여자일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둘은 나이가 네 살 차이밖에 안 나고, 마카오에서 몰래 만날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나중에 확인해 본 결과 정일선은 金正日의 애첩이었습니다. 金正男을 잘 아는 인사와 對北소식통, 마카오 경찰을 통해 알게 됐지요. 그녀는 고영희가 사망하고 난 뒤 아이를 데리고 북한으로 들어간 걸로 압니다. 하지만 그녀가 살던 빌라는 그대로 있을 겁니다. 그 빌라가 주거用이긴 하지만 휴양소의 별장 같은 기능도 합니다. 정일선이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씩 오갈 수는 있겠지요. 정일선은 金正男과 북한 金正日의 연결고리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미국 정보기관은 정일선의 존재에 대해 일찍 파악하고 있었다. 1997년 무렵이었다. 동유럽 주재 한 미국대사관에 동양인 세 명(남자 2명, 여자 1명)이 브라질 여권과 도미니카 여권으로 「미국에 가겠다」며 비자신청이 들어왔다. 이들의 국적은 브라질과 도미니카였지만, 이름은 한국인과 비슷했다. 심사를 마친 미국대사관은 이들에게 입국 비자를 내줬다. 그러나 나중에 확인한 결과 이들은 입국을 하지 않았다.
몇 달 뒤 미국 정보기관 관계자는 비자발급 臺帳(대장)에 붙어 있는 사진을 보고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다. 사진의 주인공이 다름아닌 북한 金正日과, 金正日의 비자금을 담당하는 朴모씨, 그리고 미모의 20代 여성이었다. 그 여성은 마카오의 고급빌라에 살았던 金正日의 애첩 정일선이었다. 미국 정보기관은 이들이 비자신청 당시 미국대사관에 제출한 서류를 토대로 미국 입국 여부를 확인해본 결과, 朴씨와 정일선이 미국을 여러 번 드나들었다는 사실을 밝혀 냈다.
「정일선」이라는 이름은 북한 최고위층 사이에 사용되는 일종의 「공용 ID」일 가능성이 있다. 1998년 5월 金正日의 셋째 부인 고영희의 여동생 고영숙과 그의 남편 朴모씨가 스위스 駐在(주재) 미국대사관을 통해 미국으로 망명할 당시, 고영숙은 「정일선」이라는 이름의 외교관 여권을 가지고 있었다. 고영숙은 망명 前 언니인 고영희의 아들 김정철·정운 형제가 스위스에 유학할 때 생활편의를 봐줬다고 한다. 정철·정운 형제는 고영숙과 함께 살지 않고 고급빌라에 별도로 거주했는데, 빌라의 주인 이름이 「정일선」이었다. 빌라 주인 정일선은 제네바 주재 북한대표부 소속 직원으로 돼 있었다고 한다.
金正男과 마카오에서 같은 빌라에 살았던 金正日 애첩의 이름도 정일선이다. 그런데 제네바의 정일선과 마카오의 정일선이 실제로는 다른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 적대관계에 있는 성혜림(2002년 사망·영화배우 출신)의 아들 金正男과 고영희의 아들이 「정일선」이라는 인물을 두고 연결될 이유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