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든 국가든 기술역으로 승부하는 시대…우리 기업들의 R&D는 낙제점 이하』
權哲信 성균관大 시스템경영공학과 교수
1944년 일본 출생. 한양大 工大 무기재료공학과 졸업. 한양大 대학원 산업공학(공학 석사). 연세大 대학원(경제학 석사). 일본 東京工大 경영과학과(R&D전공) 석사. 일본 東京工大 사회공학과(개발공학 전공) 박사. 대한산업공학회 「학술대상」, 훌륭한 교육자상 「국무총리상」, 성균관大 최우수 교수 「神品」 획득, 옥조 근정훈장 수상.
權哲信 성균관大 시스템경영공학과 교수
1944년 일본 출생. 한양大 工大 무기재료공학과 졸업. 한양大 대학원 산업공학(공학 석사). 연세大 대학원(경제학 석사). 일본 東京工大 경영과학과(R&D전공) 석사. 일본 東京工大 사회공학과(개발공학 전공) 박사. 대한산업공학회 「학술대상」, 훌륭한 교육자상 「국무총리상」, 성균관大 최우수 교수 「神品」 획득, 옥조 근정훈장 수상.
權교수는 1986년 9월부터 꼭 20년 동안 월요일 아침에 일주일치 도시락을 싸들고 출근해 토요일 밤에 퇴근하는 생활을 계속했다. 그의 생활은 단조롭기 그지없다. 연구실에서 자고 오전 6시에 일어나 미숫가루로 3분 만에 아침식사를 해결한다.
식당에 가는 시간이 아까워 점심과 저녁은 아내가 만들어 준 비빔밥과 카레라이스를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먹는다.
잠은 소파의 쿠션을 들어내고 바닥의 딱딱한 합판에 얇은 요를 깔고 잔다. 신장이 160cm인 그는 『키가 작아 소파에서 자는 게 불편하지 않다』며 웃었다. 權교수는 자신의 연구실을 실험실(Laboratory)과 호텔(Hotel)의 합성어 「래보텔(Labotel)」이라고 소개했지만 호텔의 안락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날씨가 추워지면 슬리핑백을 꺼낸다. 일주일에 한 번 퇴근하는 權교수의 특이한 생활방식을 함축하는 단어가 바로 「슬리핑백 연구 시스템」이다. 入山修道(입산수도)에 빗대 「入室修道(입실수도)」라고 부르기도 한다.
―週5일제 시대에 역행하고 있는데 힘들지 않으십니까.
『처음에는 힘들었죠. 이제 20년 되니까 연구실을 빠져나가면 이상해요. 가끔 밖에서 연구실을 바라보면, 나는 연구실에 그대로 있고 껍데기만 빠져나온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입실수도」 초창기에 權교수는 총장에게 불려가서 『연구하려고 꼭 별거까지 감수해야 하는 거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어린 딸은 월요일 아침마다 『아빠, 중간에 한 번 와요, 꼭요』라고 인사했다.
人材 키우기 위한 苦肉之策
그가 20년 동안 연구실에서 살다시피한 것은 「개발공학」(연구개발 경영공학의 줄임말)이라는 생소한 학문을 전파하고 선진국과의 기술격차를 줄이기 위한 苦肉之策(고육지책)이었다.權교수는 개발공학을 「연구개발(R&D)의 효율성을 극대화시키는 학문」이라고 정의했다.
『21세기에 국가와 기업의 경쟁과 생존의 관건이 되는 것이 新개념·新기술·新제품·新사업·新산업·新사회입니다. 개발공학은 이 여섯 개 영역의 가치창조를 위한 계획과 관리체계 수립, 개발과정의 메커니즘 규명, 개발시스템의 설계와 운용을 연구하는 첨단학문입니다』
우리나라에 개발공학科(과)를 개설한 대학은 한 곳도 없다. 성균관大 시스템경영공학科 안에 산업공학 전공과 개발공학 전공이 개설되어 있는 게 전부다.
權교수는 1972년 국비유학생으로 일본에 가서 東京工大 경영과학科에서 R&D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사회공학科에서 개발공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유학을 마치고 1981년부터 성균관大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1983년 미국으로 건너가 2년 6개월 간 조지워싱턴大 경영과학科 초빙교수를 지냈다. 미국에서 돌아온 權교수는 1986년부터 「입실수도」 생활을 시작했다.
『세계의 수도인 워싱턴에서 수원으로 돌아오니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선진국과의 기술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밤 잠 안 자고 더 열심히 노력하는 길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본은 1960년대 중반부터 대학에 개발공학科를 개설했고, 기업이 필요로 하는 人材를 배출했다고 한다.
「일당백」을 만들자는 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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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權교수의 연구실 한쪽을 차지한 찬장. |
「개발공학」을 가르치려면 공학 전반과 경영학·사회개발·시스템·산업 전반을 알아야 하는데 權교수 이후 외국에서 개발공학 박사학위를 받아 온 학자가 없다고 한다. 『혼자라도 열심히 해야겠다고 발버둥을 치다 보니 일주일에 한 번 퇴근하는 교수가 됐다』고 한다.
―편안한 잠자리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에 연구하는 게 더 능률이 오르지 않을까요.
『출퇴근하는 데 두 시간 정도 소비됩니다. 저녁 먹고 뭔가 하려고 하면 「워밍업」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니까요. 이리저리 계산해 보니 집에 가서 12시에 잔다고 해도 하루 7~8시간이 낭비되더군요. 그래서 연구실에서 생활하기로 한 겁니다』
權교수는 외출을 자제하는 대신 한 학기에 한두 차례 기업에 가서 강의를 한다. 시간이 아까워 동창회에도 나가지 않는다.
―세상과 교류를 하지 않으면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것 아닙니까.
『사회에 나가서 시달려야 사회생활 하는 게 아닙니다. 옛날에 입산수도해 검법을 익히는 사람들은 전쟁을 해본 장수들이 아닙니다. 검술에 대한 규범적인 철학을 터득한 사람들이지요. 경험으로 진리를 터득하려면 죽을 때까지 다 해도 모릅니다. 기업 관계자들을 만나면 내가 먼저 말을 시작합니다. 내 얘기를 다 듣고 나서 관계자들이 「현장에서 R&D 한 번 안 해 본 교수가 어떻게 그렇게 개발공학을 잘 아느냐」고 해요』
제자들도 入室修道
權교수는 대학원생을 뽑을 때 「입실수도하여 슬리핑백에서 잠든다」고 약속하는 학생만 제자로 받는다. 20년 동안 그 원칙을 지켰다. 석·박사 과정의 제자들은 權교수 연구실 바로 앞 연구실의 간이침대와 책상 위에서 잠을 잔다.초기에는 「대학원 학생들을 자신의 연구에 私兵(사병)으로 쓴다」는 소문에 시달렸다.
―참을성이 없는 신세대들이 개발연대式의 돌격형 연구를 잘 따라 옵니까.
『요즘 젊은이들이 나약하다고 하는데, 「어려움을 이겨 내겠다」는 별종 신세대들이 많아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상위 10% 학생들은 비슷해요. 그런 계층이 있어야 국가가 유지되지요. 우리 연구실을 밖에서 「지옥 연구실」이라고 하는데, 제자들은 「충분히 할 만하다」고 말해요』
權교수가 지도하고 있는 석·박사 과정 학생은 현재 7명이다.
오전 6시에 일어나 혼자 묵상을 마친 權교수는 오전 7시에 학생들과 만나 QT(묵상)와 PT(체력훈련)를 1시간 동안 하고 나서 다음날 새벽 1시까지 하루 16시간을 일한다. 하루 중 휴식시간이라곤 점심 먹을 때 30분, 저녁 먹을 때 30분이 전부다. 너무 피곤하면 낮에 20분 정도 눈을 붙인다.
―20년 넘게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그렇게 준비할 게 많습니까.
『R&D 분야는 매년 같은 노트로 가르칠 수 없습니다. 새로 개발된 상품은 다 찾아봅니다. 해외저널을 샅샅이 살펴보면서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하기 때문에 힘들죠』
權교수의 제자들은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낮에는 연구, 밤에는 세미나를 한다. 저녁을 먹고 나서 시작되는 세미나는 다음날 새벽 1시쯤 끝난다.
―대체 휴식은 언제 하십니까.
『뭘 「휴식」이라고 정의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아침·점심·저녁 식사 하면서 휴식하는 걸로 충분합니다. 진정한 휴식은 기분 좋은 상태를 유지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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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여학생의 입문식을 축하하러 온 대학원 선배들. |
학부 때부터 「지옥훈련」
대학원생 연구실을 방문했을 때 뜻밖에 여학생이 두 명 끼어 있었다. 여학생들이 제자로 받아 달라고 간청해 올해 처음 뽑았다고 한다. 여학생들은 새벽 1시에 기숙사에 갔다가 오전 7시에 다시 연구실에 와서 종일 공부한다. 연구실에서 생활하는 남학생들을 위해 연구실 한쪽에는 샤워부스와 주방이 마련되어 있었다.
주변에서 權교수의 제자들을 「개공사단」, 「개공무림」이라고 부른다. 필자는 학생들과 함께 학교 인근의 돼지갈비집에 가서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요즘 대학원생 정도면 교수 앞에서 자유롭게 담배를 피는 풍조지만, 「개공사단」은 權교수에게 깍듯했다. 대학원생들에게 물어봤다.
―힘들지 않나요.
『석사 1년차 때는 적응이 안 돼 힘들어요. 훈련이 되면 어렵지 않아요』
―정말입니까.
『환갑을 넘긴 교수님이 행동으로 본을 보여 주시잖아요. 나이 많은 교수님이 바로 앞방에서 우리들을 위해 불편한 생활을 마다하지 않고 있는데, 젊은 우리가 힘들 게 뭐가 있겠습니까』
―「교수님 지도방식이 괴팍하다, 심하다」는 생각은 안 듭니까.
『우리를 쓸모 있는 人材로 만들려고 하드 트레이닝을 시키시는 건데 뭐 불만이 있겠어요. 「개공사단」을 거쳐간 선배들이 일류기업에 들어가 활약하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다들 열심히 합니다』
權교수 門下(문하)의 대학원생들은 이미 학부 때 혹독한 훈련을 받았다. 權교수는 3학년 때 개발공학을 선택한 학생들에게 2년 동안 개발공학에 관한 모든 것을 가르친다. 보통 3학년 1학기 때 개설되는 「R&D 관리」 과목에 60여 명이 등록한다. 하지만 워낙 수업이 혹독하여 3학년 2학기 「R&D 전략」 수업 때면 학생이 반으로 줄어든다.
4학년 1학기가 되면 대개 10명 안팎이 남는데 이 학생들이 끝까지 權교수를 따른다고 한다.
4학년 때는 말 그대로 「지옥훈련」이다. 3학점짜리 과목을 여섯 시간 이상 강의한다. 오후 3시에 수업을 시작해 세 시간 수업을 하고 저녁식사 이후 밤 10시 30분까지 수업을 한다. 게다가 과제가 엄청나게 많다.
―그렇게 강행군을 시키는 이유가 뭡니까.
『외국에는 개발공학이 한 학과로 되어 있습니다. 20과목을 가르쳐야 하는데 우린 독립 학과가 아니어서 그게 힘들어요. 그러니 2년 안에 몰아서 많이 가르칠 수밖에요』
『학부 교육에 신경 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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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공사단」입문식을 하는 고분이·이혜정 학생. |
학부 수업이 밤 11시가 넘어서 끝나기 때문에 權교수의 제자들은 학교 앞에 방을 얻어 합숙을 한다. 집에 가봐야 과제와 세미나 준비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다.
―학부 학생들이 강도 높은 강의를 잘 따라옵니까.
『제가 강의료도 안 나오는 야간 강의를 하니 다 따라오는 거지요. 학생들이 그래야 한다는 걸 이해하기 때문에 하는 겁니다. 「우리나라 대학이 대학원 중심의 대학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들을 많이 하는데 대학원 진학률이 낮은 만큼 학부 교육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대부분의 강의가 12월 초에 끝나지만 權哲信 교수는 12월 말이 되어야 종강을 한다. 『權哲信 교수가 종강을 해야 성균관大가 방학에 들어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취업을 한 학생의 경우 신입사원 연수 마지막 차수 출발일 아침에 학교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
5년간 교수 강의평가 1위
제자들은 그날을 「출소하는 날」이라고 부른다. 남들은 긴장하고 신입사원 연수를 받으러 가는데 權교수 제자들은 차 안에서 잠에 곯아떨어진다. 그게 인연이 되어 옆 자리의 여사원과 결혼한 학생이 있다고 한다. 대학원생들의 경우 학위수여식 아침에서야 논문에 도장을 받을 수 있다.
공부를 힘들게 시키는데다 학점이 후하지 않은 權교수지만 학생들이 평가하는 「교수 강의평가」에서 거의 만점에 가까운 점수로 5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강의실에 權교수가 들어서면 제자들은 존경의 표시로 중·고등학생들처럼 큰 소리로 인사를 한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다. 한 사람이 「차렷! 경례」를 외치면 다같이 『반갑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외친다.
―강의 준비를 얼마나 하시는지요.
『3배수 원칙을 지킵니다. 세 시간 강의하려면 아홉 시간 준비하는 거죠』
―강의평가에서 늘 1등인데, 특별한 비결이 있나요.
『시간을 많이 투입하기 때문이지 가르치는 데 재능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닙니다. 제 목표는 연속방송극처럼 기다려지는 강의를 하는 겁니다. 깊게 파고들고 쉽게 풀어 주는 강의, 대화체 강의를 합니다. 플롯을 완벽하게 짭니다. 처음 20분은 마인드 트레이닝을 하고 무슨 말로 시작해서 무슨 말로 끝낼지 생각하고 강의가 지루해지지 않도록 준비합니다. 사례와 재미있는 이야기를 준비합니다. 신세대 용어를 알아야 하기 때문에 코미디 프로그램인 「개그콘서트」와 「웃찾사」를 봅니다. 개그맨들 흉내 내면서 「조사하면 다 나와」라고 말하면 폭소가 터지죠. 1시간 30분하고 10분 쉬는데 조는 학생이 없어요』
權교수의 제자들은 『수업시간에 매번 정신교육을 받은 것이 인생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학부생들을 그렇게 혹독하게 훈련시키니 대학원생들은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석사 1년차는 연구실 생활이 이해도 안 되고 잠도 오고 그렇지요. 아는 재미를 느끼게 해주는 게 중요합니다. 「이거 한번 읽어 봐」 하고 던져 주면 새로운 지식을 얻고 몹시 좋아합니다. 그럴 때 학생들에게 「이거 세계적인 학자가 투고한 거야. 그걸 네가 깨닫다니 대단하다」 이렇게 말해 주면 피로가 다 사라지지요. 학생들이 어려운 문제를 만났을 때 그때 그때 맞게 소화할 수 있는 거 던져 주고, 그거 어떻게 깨달았나 칭찬하는 것으로 동기 부여를 하지요』
학생들이 지치지 않도록 만드는 그의 무기는 「칭찬」이다.
『학생들끼리 서로 장점을 찾아서 적도록 합니다. 그걸 발표하면서 서로 기를 살려 주는 거지요. 함께 북돋우면서 헤쳐 나갑니다. 사명감과 함께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지요』
대학원생들은 기상시간과 취침시간을 자신이 알아서 정한다. 매일 연구실에서 생활하다 보면 토요일이 기다려지는 건 당연지사. 토요일이면 權교수가 언제 집에 갈지 학생들끼리 내기를 한다.
1년 중 가장 힘겨운 과정은 여름방학 한 달 동안 실시하는 「지옥 세미나」라고 한다. 강원도 삼척에서 합숙을 하면서 한 학기에 공부할 분량을 한 달 안에 끝낸다. 보통 오전 8시에 시작하여 밤 12시까지 세미나를 하는데 지난 여름에 20회 지옥세미나를 끝냈다.
지옥세미나가 끝나면 3박4일간의 하계 수련회가 기다리고 있다. 정신강화 훈련이기 때문에 아침부터 고된 과정이 이어진다. 수련회가 끝나야 비로소 일주일간 휴식이 주어진다. 그 외에 추석과 설에 딱 사흘씩 휴가가 있다.
전원 일류기업에 취업
지금까지 權哲信 교수에게 배운 학생은 학사 116명, 석사 42명, 박사 6명 등 총 164명이다. 석사과정의 학생들은 미리 기업으로부터 선점당해 등록금과 매월 20만원의 장학금을 받고 졸업하자마자 취직한다.
權교수의 제자들은 전원 추천에 의해 기업에 취업했는데 삼성 51명, LG 20명, 현대 10명 등 대부분 대기업으로 갔다. 대기업에서 근무하다 權교수 문하로 들어와 개발공학 박사학위를 받은 김점복씨는 삼성전자 차장으로 특채됐다.
『權교수 밑에서 훈련받았다는 게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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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원생들이 입실수도하는 연구실. |
『직장에서 필요한 건 예의·성실성·배려·노력 같은 것입니다. 능력은 3년 정도 지나야 나타납니다. 데리고 일하는 입장에서는 어렵고 힘들 때 숨이 턱턱 막히는 시늉을 하면 같이 일을 못 합니다. 權교수 밑에서 혹독하게 조련된 학생들은 정신자세와 기초가 되어 있습니다』
현대전자에서 8년간 근무한 뒤 다시 박사과정에 입학한 안기현씨는 『직장생활할 때 스트레스가 없었다』고 했다.
『24시간 연구실에서 생활하다가 여덟 시간 근무를 하니 매일 회사에 가고 싶더라고요. 일찍 퇴근하는 게 낯설어서 늘 마지막 통근차를 타고 퇴근했어요. 그러면서도 늘 휘파람을 불고 다니니 이상한 사람으로 보더군요. 퇴근하는 것만 해도 얼마나 기쁘던지. 훈련을 열심히 받아서 회사일이 어렵지 않았어요. 1만5000명 사원 중에서 일 잘하는 사원 100명에 뽑혔습니다. 요즘 방전이 많이 된 것 같아서 다시 공부하러 왔습니다』
權교수의 제자들은 직장에서 뛰어난 실력을 발휘했다. 30代 임원 승진으로 화제가 됐던 LG전자의 李廷濬(이정준) 상무와 삼성전자의 高東眞 상무 등이 權교수의 제자다.
權교수는 『연구와 교육을 병행하는 가운데 교육 쪽에 좀더 역점을 두었지만, 박사를 6명밖에 배출하지 못해 아쉽다』고 했다. 박사과정까지 마치려면 보통 7년이 걸리니 기업에서 지원을 해주지 않는다.
박사과정 때 결혼하면 연구실 생활 때문에 가족과 생이별을 해야 한다. 국내에 개발공학 학과가 없어 교수로 진출하기도 힘드니 박사과정 학생들은 삼중고에 시달리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權교수의 제자인 박준호·강일중 박사는 성균관大에서, 이재하 박사는 남서울대학교에서 「슬리핑백 연구 시스템」을 이어 가고 있다.
옥조 근정훈장 받아
權교수는 2000년부터 2005년까지 85편의 논문을 발표했고, 이 가운데 다섯편이 중요 해외저널에 게재됐다. 성균관大의 교수 업적 종합평가에서 가장 높은 등급인 「神品(신품)」을 2002년과 2003년에 받았다.權교수는 대학원생들에게 매학기 특허나 실용신안 1건을 의무적으로 따도록 했다. 창의력을 북돋우기 위해 개발작업을 직접 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개발공학 석사들은 보통 특허나 실용신안 4건, 박사들은 특허 10건과 실용신안 10건 정도는 보유하고 있다.
權교수는 성균관大에서 「成發硏(성발연)」과 「成創硏(성창연)」이라는 단체를 이끌고 있는데, 소속 학생들이 1997년부터 2005년까지 각종대회에 나가 48건의 상을 받았다. 44건의 실용신안과 발명특허를 획득했다. 그 공을 인정받아 權교수는 2004년 「발명의 날」 옥조 근정훈장을 받았다.
權교수는 『개발작업을 실제로 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체험』이라고 말했다.
『개발작업을 하면 머리에서 녹이 떨어져 나가고 창의력이 생깁니다. 「개발 과정이 이렇게 되는구나」 하는 걸 실제로 느끼면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되지요. 기업에서 이런 과정을 거친 엔지니어를 무시하지 못하죠』
權교수는 학교 보직을 맡아 달라는 학교 측의 권유를 모두 거절했다. 제자들을 기를 욕심 때문이었다.
―20년이라는 긴 세월을 연구실에서 지냈는데, 지금 소감은 어떠신지요.
『재미있게 보냈어요. 긴 시간을 내것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보통 사람의 2배를 살았지요.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면 너무 고생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시간에 끌려 다니지 않고 시간을 끌고 다닌 나의 선택에 만족합니다』
權교수는 기업체에 강의를 하러 가서 『기업이든 국가든 이제 기술로 승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權교수는 『우리나라 기업의 R&D 수준은 100점 만점에 20점 정도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시스템을 짜는 개발공학 꼭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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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년간 도시락을 싸준 부인 하옥수씨. |
『그래봐야 일본의 9분의 1 수준밖에 안 됩니다. 4~5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 全기업이 R&D에 투입하는 비용이 일본의 히타치나 도요타 같은 한 기업이 투자하는 것보다 적었습니다. 요즘은 그것보단 많지만 일본의 두 기업이 합친 것보다 좀 적습니다』
權교수는 『R&D 투자는 매출액 대비, 국민소득 대비는 의미가 없다』고 했다.
『과학기술의 성과는 절대 액수를 넘어섰을 때 나타납니다. 움직이는 선까지 투자를 하지 않으면 성과가 안 납니다. 국민소득 대비 1위가 모로코인데, 그렇게 비교해서는 안 되고 선진기업과 비교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기업들이 일본 기업과 경쟁하면서 돈을 잘 버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한국 기업들은 회장들의 감각에 의지하는 감각경영을 했습니다. 감각경영은 다음 세대에 전수가 안 돼요. 앞으로 시스템 경영으로 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금까지는 체제 없이도 잘되었는데」라는 발상은 버려야 합니다.
지금까지 한국 기업들이 돈을 번 것은 R&D에 종사한 첨단 기술자들의 연구노동력을 착취했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은 착취가 안 됩니다. 인풋(Input·자본의 투입)을 넣어서 아웃풋(Output·생산)이 나오는 게 시스템입니다. 어떤 시스템을 짜느냐에 따라 아웃풋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權교수는 『앞으로 기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CTO(최고기술경영자)를 길러야 하고 차세대 CTO는 개발공학 지식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년을 3년 반 남긴 權교수는 석·박사 과정 학생들에게 CTO가 되는 훈련을 하고 있다. 사장학을 가르치면서 정신교육을 곁들이고 있다.
『그동안은 과거 기술을 조합하고 집적해서 살았던 기술진보기 시대였습니다. 우리 기업들이 지금까지 빠르게, 싸게, 대량으로 만드는 데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1990년대부터 기술혁신기에 들어섰습니다. 첨단적이고 혁신적인 것, 다른 기업이 안 하는 걸 내놓아야 합니다. 과거에는 공장이 힘을 발휘했다면 이제는 연구소가 힘을 발휘합니다.
지금은 R&D 경쟁시대이며, R&D 전략을 짜고 관리하는 것이 개발공학입니다. 연구소에 아무리 천재를 영입하더라도 천재가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으면 창조적인 것이 나올 수 없습니다. 전략 사령부의 전략이 뛰어나야 전쟁에서 보병이 덜 죽습니다』
우리나라 미래를 주도할 첨단 산업기술로 정보기술(IT), 생명공학기술(BT), 나노기술(NT), 환경공학기술(ET), 우주항공기술(ST), 문화콘텐츠기술(CT)이 꼽힌다. 權교수는 이 기술들이 성공하려면 시스템을 짜는 개발공학(DT)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한 알의 밀알이 되고 싶다』
추석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 10월4일, 權哲信 교수 자택에 학생들이 정장을 입고 속속 모여들었다. 석사 1차를 마치고 權교수의 문하에 들어가겠다고 다짐하는 입문식이 있는 날이다. 權교수 아래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이혜정·고분이 두 여학생의 입문식이 있었다.
權교수는 포도주를 한 잔씩 따라 주고 앞으로 걸어나갈 방향과 비전에 대한 확신을 불어넣어 주었다. 權교수는 『입문식 때가 가장 좋다』고 했다.
『석사 1차 때가 가장 힘들지요. 그 힘든 과정을 마치고 이제 개발공학을 위해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하는 자리니 얼마나 기쁩니까. 진정으로 개발공학 학도가 되는 날이지요』
회사에 다니는 權교수의 제자들도 참석해 후배들의 앞날을 축하해 주었다. 입문식을 마쳐야 진정한 「개공사단」의 일원이 된다.
―20년 「입실수도」를 스스로 평가하신다면.
『기업에 도움이 되는 人材를 많이 공급했다고 자평합니다. 삼성이나 LG 같은 기업에는 공급했지만, 더 많은 기업에 보낼 수 없어서 아쉬웠지요. 바람이 있다면 개발공학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했으면 하는 겁니다.
우리나라 대학의 포텐셜은 충분합니다. 그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시스템이 중요합니다. 리더도 같이 몸을 던질 수 있는 체제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 체제만 갖추면 국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유학을 보내지 않고도 국제경쟁력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외국의 뛰어난 교수들을 스카우트해 와서 학생들을 훈련해야지요』
앞으로 기업에 가서 강연과 자문을 많이 할 계획이라고 한다. 2010년 2월에 은퇴하면 외롭게 지낸 아내와 여행을 다니겠다는 權교수는 『독야청청하는 낙랑장송이 되길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밀알이 떨어져 죽어야 싹이 나고 열매를 맺습니다. 20년 세월이 고독하고 고통스러웠지만 제자들을 통해 싹이 피어날 것으로 확신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