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서 본「인간 아베」

요령좋고 눈치빠른 부잣집 도련님
腸이 안 좋아 술 한 모금도 못 마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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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인 故 아베 신타로 외무상의 비서관 시절 그가 사무실에서 만화만 보고 긴자나 롯본기에서 화려하게 놀던 기억밖에 없다』(비서관 시절의 知人)

콘도 다이스케 週刊現代 부편집장〈kondo@wgendai.gr.jp〉
일본의 국회의원들은 일본에서 迷信(미신)을 가장 신봉하는 종족들이다. 지난 9월26일, 아베 신조(安倍晋三·52) 총리가 이끄는 아베 내각이 탄생했다. 이날, 전날까지 계속되던 맑은 가을 날씨가 마치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하루 200mm가 넘은 장대비가 쏟아져 관동지방에서는 호우주의보가 발령되었다. 국회에서 제90대 내각총리대신으로 지명받은 아베氏가 함박웃음을 터트리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한 자민당 의원은 다음과 같이 탄식하였다.
 
  『아무래도 아베 정권은 短命(단명)하겠군. 하늘이 노하고 있어!』
 
  이 의원의 말에 의하면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내각,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내각 등, 장기 정권이 시작된 날은 항상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날씨였다. 반면, 단명으로 끝난 내각의 출범일은 흐린 날이 많았다고 한다. 그는 『더구나 오늘처럼 하늘이 쪼개진 듯 비가 쏟아진 날 시작된 정권은 처음이야!』 라고 덧붙였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운데), 나카가와 히데나오 자민당 간사장(왼쪽 두 번째), 나카가와 쇼이치 정조회장(오른쪽 두 번째).
 
  너무나 다른 고이즈미와 아베
 
아베와 고이즈미 前 총리.
  2001년 4월 고이즈미 정권이 발족했을 당시, 일본은 온통 고이즈미 熱風(열풍)으로 들떠 있었다. 내각 지지율은 역대 최고인 87%. 냉정을 유지해야 하는 기자들조차 기대감을 품고 고이즈미 총리를 지켜보았다.
 
  그러나 5년 후인 현재 장대처럼 퍼붓는 비 속에서, 초가을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스산한 분위기의 총리관저 앞에 서 있던 기자들은 心身(심신)이 모두 차갑게 식어 있었다. 그리고 총리관저 안에 들어 앉은 새로운 주인을 두고 「그는 과연 언제까지 집권이 가능한가」 쑥덕거리면서 불안한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다. 아베 정권 발족 직후의 내각 지지율은 63%였다.
 
  최근 10년 동안의 일본을 돌이켜 보면, 한국처럼 力動的(역동적)이지는 않지만 확실하게 「변화」가 계속되고 있다. 오자와 이치로(小泥一郞) 민주당 대표가 정치 시스템을 바꾸었고,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前 총리가 행정 시스템을 바꾸게 되었고,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前 총리는 경제 시스템을 변화시켰다. 그리고 현재 아베 총리는 안전보장 시스템을 바꾸려고 한다. 구체적으로는 미국 모델에 가까운 안전보장 시스템을 구축해 간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아베 정권을 판단할 때 절대로 오해해서는 안 되는 점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고이즈미 개혁을 계승한다」고 공언하고 있는 아베 정권은, 사실 고이즈미 정권과 닮지 않았으며 좀더 극단적으로 말하면 정반대라고 할 수 있다.
 
  고이즈미 정권이 왜 5년 반 동안이나 계속될 수 있었을까? 이는 대략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이유 때문이다. 먼저, 適材適所(적재적소)에 人材(인재)를 배치했다. 둘째, 확실한 정치적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셋째, 선거에 있어 압도적으로 강했다. 넷째, 개인적인 스캔들이 없었다. 다섯째, 건강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아베 정권은 위의 다섯 가지 중, 어느 한 가지 요인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마치 고이즈미 정권과의 對極點(대극점)에 위치한 듯하며, 따라서 短命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은 정권이라고 판단한다.
 
 
  아베의 코드 人事
 
아베 신조 총리는 세카이 대학 학생 시절에 가와구치 호반의 별장에 친구들을 초청해 테니스를 즐겼다.
  하나 하나 짚고 넘어가 보자. 먼저 인사 정책을 살펴보자. 고이즈미 총리는 총리 취임時의 기자회견에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포스트인 관방장관(한국의 청와대 비서실장에 해당함)과 외무대신에는 야스쿠니 참배를 강렬히 반대하는 두 인물을 기용했다. 이는 야스쿠니 문제를 둘러싼 의견 대립은 있지만, 이 두 인물이야말로 적임자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한 금융담당대신은 정치가 중에는 적임자가 없다고 판단해 게이오(慶應)대학 교수를 발탁했다.
 
  이에 비해 9월26일에 발족한 아베 정권은 어떠한가? 한 사람, 한 사람씩 대신들의 이름이 발표될 때마다 나는 온 몸에 힘이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베 新내각은 「친구 혹은 신세를 진 사람」으로 가득한 정권이다.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코드 人事(인사)」인 셈이다.
 
  아베 총리는 17개의 대신 자리와 3개의 관방 부장관 자리, 5개의 총리 보좌관 자리의 거의 대부분을 자신의 친구나 자민당 총재경선에서 論功行賞(논공행상)을 한 인물들에게 나누어 주었다(일본에서는 자민당 총재 경선에서 당선된 사람이 거의 자동적으로 총리가 된다).
 
  몇 가지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아베 총리는 1998년에, 스스로가 멋있다(?)고 도취되어 있던 4명의 부잣집 도련님 출신 정치가들의 모임인 「NAIS會」(자신들의 이름 앞 글자를 따서 「NICE」와 발음이 같도록 배열했다)를 만들었다. A의 아베 총리를 제외하고, N의 네모토 다쿠미(根本匠)는 경제재정담당 총리 보좌관에, I의 이시하라 노부데루(石原伸晃)는 자민당 간사장대리에, C의 시오자키 야스히사는 관방장관에 각각 기용되었다.
 
  역시 某 유력 정치가의 아들로 자신의 놀이친구였던 인물을 자민당 정조회장으로 기용했으며, 가장 친한 여성 정치가는 「오키나와 북방영토 이노베이션 소자화 대신」이라고 하는 뜻도 모를 자리를 만들면서까지 무리하게 기용했다.
 
  논공행상 그룹도 차례로 입각했다. 자민당 경선 당시 아베 총리가 소속되어 있는 「모리파(森派)」의 최대 라이벌인 「쓰시마파(津島派)」에서는 아베氏의 對抗馬(대항마)로 현직 방위청 장관이 출마할 예정이었으나, 쓰시마파의 동료의원이 『출마를 포기하고 아베 정권 탄생에 도움을 주는 편이 장래를 위해 좋지 않을까』라며 甘言利說(감언이설)로 설득하여 결국 사람 좋은 방위청 장관은 눈물을 머금고 출마를 포기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이 동료의원에게 방위청 장관 자리를 빼앗겨 버렸다. 아베氏에게 비판적인 「야마자키파(山崎派)」에서는 야마자키 타쿠(山崎拓) 회장이 反아베 세력의 결집을 꾀했다. 이를 교묘한 언변으로 출마 포기를 간언했던 야마자키 회장의 부하는 결국 경제산업대신 자리를 꿰차게 되었다.
 
 
  문부과학대신, 『교육문제는 잘 모릅니다』
 
  이 밖에 자신의 출신지인 구마모토현(熊本縣)의 표를 제멋대로 모아 맨 처음 아베氏에게 가져다 바친 의원은 농림수산대신으로, 소속 파벌의 표를 긁어 모아서 아베氏에게 바친 의원은 문부과학대신의 자리에 올랐다. 그런데 일본의 교육을 총괄하는 문부과학대신 자리에 오른 이 인물은 취임 기자회견에서 『나는 교육문제는 잘 모릅니다』라고 당당히 밝혀 국민들을 아연케 만들었다.
 
  아베氏의 환심을 사기 위해 「재도전지원의원연맹」이라는 모임을 만든 의원은 금융대신에 임명되었으며, 제멋대로 「아베 신조氏를 지지하는 모임」을 만들어 회장을 맡았던 인물은 행정개혁지원활성화 道州制(도주제) 대신이라고 하는 아리송한 자리에 임명되었다.
 
  이쯤에서 접어 두겠지만, 그야말로 아베 내각은 친구들과 신세 입은 사람들만 늘어선 포진이다. 入閣(입각)이 확실시 여겨졌으나 결국 눈물을 삼켜야 했던 한 거물 의원과, 組閣(조각) 다음날 식사를 함께 했는데 그는 나에게 다음과 같이 탄식했다.
 
  『원래 아베 총리는 전형적인 도련님 출신으로, 그가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는 국회의원은 100명도 채 안 된다. 그중에서 친한 순서대로 대신에 임명된 것이 아베 내각이다. 고이즈미 前 총리는 고독을 사랑했으나 아베 총리는 친구들과 시끌벅적하게 어울리지 않으면 외로워서 견딜수 없는 타입이다.
 
  그러나 아베 총리가 「친구」라고 생각하는 의원들 중에는 아베 총리를 존경하고 따르려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모두가 도련님 총리를 이용하려고만 할 뿐이다. 이처럼 가벼운 「類似友達內閣(유의친구내각)」이 오래 지속될 리가 없다. 내가 이 내각에 들어가지 않게 돼서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한다』
 
 
  『아베 총리는 정치적 신념이 없다』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중앙)와 함께 있는 어린 시절의 아베(왼쪽) 총리와 형 히로노부(오른쪽).
  아베 정권이 短命으로 끝나리라 보는 두 번째 이유는 정치적인 信念(신념)의 문제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자민당을 갈아엎겠다』고 하여 총리 자리에 앉았으며, 그 자리에서 지난 50년간 지속되어 오던 자민당 정치의 인습을 하나 하나 갈아엎어 나갔다.
 
  작년 8월에는 자신의 「라이프 워크」라 여기던 우정민영화 법안이 참의원에서 거부되자, TV 앞에 서서 『나는 이 법안 때문에 죽어도 좋다』고 눈물로 호소했다. 바로 그날 중의원을 즉각 해산시켰다. 이 강압적인 수법에 대해 찬반여론이 있기는 했지만,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관철시키려는 고이즈미의 강인한 태도에 모두가 경외의 마음을 품었다.
 
  그러나 아베 총리에게는 고이즈미 前 총리처럼 목숨을 건 정치적 신념이 없다. 일단 그가 목표로 하는 방향은 고이즈미 정권과 정반대의 방향, 즉 고이즈미 정권이 파괴하려고 했던 낡고 우경화된 자민당 정치의 부활이다(고이즈미 前 총리는 야스쿠니 神社 참배 문제를 제외하면 대단히 「리버럴(진보적인)」한 정치가였다).
 
  아베 총리는 「쇼와(昭和)의 요괴」라고 불리는 A급 전범인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前 총리의 정치를 자신의 이상으로 삼고 있다. 아베 총리는 자택 거실에 존경하는 외조부의 대형사진을 모셔 두고 매일 아침 사진에 참배한 후 출근했을 정도이다.
 
 
  아베의 역사관은 「망각史觀」
 
  아베 총리의 정치적 신념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그것은 그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아름다운 나라 만들기」일 것이다.
 
  아베 총리가 총리취임 회견에서 한 첫 마디는 『오늘 「아름다운 나라 만들기」를 수행할 아베 내각이 탄생하였습니다』 였다. 아베 총리는 7월 「아름다운 나라로(美しい國へ)」라는 저서를 출판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도, 아베 총리의 다양한 발언을 직접 들어도 그가 지향하는 아름다운 나라는 과연 어떤 나라인지, 너무 추상적이라 이해하기 어렵다. 저서 말미에는 아름다운 나라에 대한 정의가 쓰여 있다.
 
  <우리 일본은 아름다운 자연의 혜택을 누리며 오랜 역사와 독자적인 문화를 가진 나라이다. 그리고 아직도 무한한 가능성을 간직한 나라이다. 이 가능성을 끌어 낼 수 있는 것은 우리들의 용기와 예지와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인이라는 것을 卑下(비하)하기보다 자랑으로 삼고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 땀 흘려야만 하지 않을까? 일본의 결점을 논하는 것에서 사는 보람을 찾기보다 일본의 미래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논의해야 한다>
 
  이 문장 속의 「일본」이라는 단어를 「한국」으로 바꾸어 한번 읽어 보라. 내일이라도 盧武鉉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이와 같은 연설을 할 것 같지 않은가? 「중국」으로 바꾸면 후진타오 주석이, 「러시아」 로 바꾸면 푸틴 대통령이 말할 법한 이야기이다. 즉, 실로 空虛(공허)한 문장이라는 것이다.
 
  아베 정권이 발족한 날 밤, 나는 마침 「현대일본사」 연구의 최고 권위자인 호사카 마사야스(保阪正康)씨와 저녁을 함께 했다. 호사카氏에게 아베 총리에 대한 감상을 묻자 그는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다음과 같이 탄식했다.
 
  『아베 총리의 저서 「아름다운 나라로」를 읽어 보았지만, 너무 空虛한 내용들뿐이라 마치 초등학생의 작문을 읽는 듯한 불안감이 들었다. 고이즈미 前 총리와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고이즈미 前 총리는 일본이 범한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 상응하는 이해를 보인 반면, 아베 총리는 이러한 사실을 되도록이면 승인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형편에 안 좋은 일은 빨리 잊어버리려는 「忘却史觀(망각사관)」이다. 일본이 과거 아시아 나라들에 대해 취했던 행동은 침략 그 자체가 아닌가. 만일 그 시대에 일본이 취한 행동에 잘못이 없었다고 생각한다면 일본의 전통과 문화는 잔혹하고 경박하고 독선적인 것이 되어 버린다』
 
2005년 8월15일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러 간 아베 (당시 자민당 간사장).
 
  한국에 대한 관심은 「3480분의 6」
 
  한국에 대해 생각해 보자. 아베 총리는 총리취임 회견에서 『한국과의 관계개선은 외교상 가장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이다』라고 강조했다. 그의 저서 「아름다운 나라로」에서는 한국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韓日관계는 현재 하루에 1만 명 이상이 양국을 왕래하는 중요한 관계이다. 일본은 오랜 세월 동안 한국으로부터 문화를 흡수해 온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韓流(한류) 붐은 결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다.
 
  나는 韓日관계에 관해서 낙관주의적인 입장이다. 한국과 일본은 자유와 민주주의, 기본적 인권과 법의 지배라는 가치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韓日관계의 기반이 아닐까>
 
  그러나 아베 총리가 자신의 생각을 남김 없이 담아 냈다고 하는 232페이지(총 3480행)에 달하는 본 저서의 내용 중 한국에 대해 언급한 것이 이 여섯 줄뿐이다. 즉, 한국에 대해서 「3480분의 6」만큼의 관심밖에 없다는 것이다. 얼마나 공허한 일인가.
 
  아베 총리가 취임 후 방문국을 중국 다음으로 한국을 정한 것은 한국의 중요성을 고려한 결정이 결코 아니다. 고이즈미 前 총리가 할 수 없었던 아시아 외교를 자신은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아베는 「수박 재상」, 고이즈미는 「자두 재상」
 
1993년 4월15일 도쿄 치요다구 아카사카 프린스 호텔에서 열린「아베 신타로의 빛나는 정치 생애」출판기념회에 참석한 아베 신조 총리.
  나가타초(永田町=일본 정치의 중심지)에서 아베 총리는 「수박 재상」이라는 야유를 받고 있다. 표면상으로는 아름답고 속이 꽉 차 보이지만, 속은 수분만 가득 차고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은 점이 수박과 닮았다는 것이다.
 
  반면 고이즈미 前 총리는 「자두 재상」이라고 불렸다. 달콤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한 입 베어 물면, 속은 딱딱하고 커다란 씨(=자기 주장)가 들어 있어서 이가 아프게 된다는 뜻이다.
 
  「아름다운 나라로」가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저자 약력에 학력란이 생략되어 있다는 것이다. 예측컨데 세이케이 대학(成蹊大學)이라는, 빈말이라도 일류라 말할 수 없는 대학을 졸업한 아베 총리의 학력 콤플렉스가 표출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아베 총리는 학력 콤플렉스 때문인지 자신의 오른팔이 되는 수석비서관 자리에 고졸 출신의 前 국철 기관사였던 인물을 발탁했을 정도다.
 
  아베 총리의 유년 시절부터 현재까지의 동급생과 동료들을 취재해 듣게 되는 말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수업 중에 선생님께서 질문을 하면 그는 「모르겠습니다」라면서 얼굴을 붉혔다』(초등학교 동창생)
 
  『학생운동이 한창이던 때, 그는 혼자 빨간 알파로메오를 타고 통학했기 때문에 여학생들에게 무척 인기가 높았다』(대학 동창생)
 
  『아버지인 故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郞) 외무상)의 비서관 시절에도 그가 사무실에서 만화만 보고 긴자(銀座)나 롯본기(六本木)에서 화려하게 놀던 기억밖에 없다』(비서관 시절의 知人)
 
  어떤 시절의 知人들에게 물어봐도 「공부를 잘했다」는 이야기는 결국 들을 수 없었다.
 
  아베 정권이 위험한 세 번째 이유는 선거에 강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고이즈미 정권은 2001년 7월의 참의원 선거에서 대승을 거둔 것을 시작으로, 마지막 선거가 된 지난 9월의 중의원 선거에서 「299의석 획득」이라는 공전의 대승리를 거두었다. 5년 반이나 정권을 이끌면서 최후까지 내각 지지율 50%를 유지한 것은 일본 정치사 중 기적적인 일이다.
 
 
  선거가 정권 수명 결정할 듯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부인 아베 아키에(安倍昭惠). 그가 아키에 여사와 결혼한 이유는 데이트 첫날 자신을 50분간 기다리게 한 당찬 여성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에 비해 아베 정권은 아무래도 선거에 약한 듯하다. 아베 내각의 첫 번째 관문이 되는 것은 10월22일 가나가와현(神奈川縣)의 제16구역와 오사카(大阪府)의 제9구역에서 치러지는 중의원 보궐선거이다. 양쪽 모두 자민당 의원의 죽음에 의한 보궐선거로 자민당이 의석을 취득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지만,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11월에는 오키나와현(沖繩縣)의 지사선거가 있는데 이곳에서도 무척 고전 중이다. 후쿠오카시(福岡市) 시장선거도 11월19일에 있다. 내년에는 후쿠시마현(福島縣) 지사선거, 기타큐슈시(北九州市)시장선거 등 대형 지방선거가 줄을 서 있지만 이들 모두 현재로서는 五里霧中(오리무중)이다.
 
  내년 7월에는 아베 총리가 「천하를 건 결전」이라고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참의원 선거가 있다. 아베 총리는 헌법 개정, 교육기본법 개정, 소비세율 개정 등 많은 주요 과제를 참의원 선거 후로 미루고 있을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의원 선거에서 이길 수 있는 요소가 없다.
 
  5년 전의 참의원 선거(일본의 참의원 임기는 6년)에서 자민당으로 출마해 160만 표 획득이라는 경이적인 新기록을 세우면서 당선된 사람이 도쿄大의 유명 조교수였던 마스조에 요우이치(舛添要一) 의원이다.
 
  그는 당선 이후 선거철마다 다른 자민당 후보들로부터 응원연설을 부탁받는 횟수가 자민당內 「넘버 원」인 인물이다. 내년 7월의 참의원 선거에서 자신의 선거운동은 물론, 응원연설로도 크게 한몫 할 것이 확실시된다.
 
  그러나 아베 정권 발족 후, 마스조에 의원을 방문했을 때, 그는 근심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힘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스조에 의원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치가라고 하는 것은 본래 자신의 정치적 이념에 근거하여 행동해야 한다. 물론 정치란 타협의 산물이므로 때로는 소신을 꺾어야만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번에 아베 정권 주위에 몰려든 사람들이 한 일은, 정치적 신념과는 관계없이 단순히 자리만을 욕심내는 獵官運動(엽관운동)이었다.
 
  이처럼 많은 정치가가 노골적으로 엽관운동에 뛰어든 것은 과거에 없었던 일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민당 정치가들의 추한 일면을 국민들은 주시하고 있다. 그러한 유권자들이 과연 선거에서 아베와 자민당에 표를 던져 줄 것인가? 나는 물론 한 사람이라도 많은 자민당 후보자를 당선시키고 싶지만, 솔직히 5년 전처럼 마음속으로부터 강한 의욕이 끓어오르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아무리 열린당이 선거에서 참패해도 盧武鉉 대통령이 하야하지는 않는다. 이는 盧武鉉 대통령은 국민들의 직접투표에 의해서 선출된 지도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원내각제인 일본의 경우, 선거에서 대패하게 되면 총리는 물러날 수밖에 없다. 「아베 정권은 내년 7월까지다」라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돈 관련 스캔들 투성이 될 우려
 
모리나가 제과 사장 마스자키 아키오의 장녀 아키에와 아베의 결혼. 결혼식 후 피로연에는 후루타 다케오, 스즈키 노부로, 가네마루 신 등 당시 정계 거물들이 다수 참석했다.
  네 번째 불안요소는, 아베 총리와 내각 관료들이 스캔들 투성이가 될 우려가 있다. 전임 고이즈미 총리는 돈에 대하여 대단히 엄격한 인물이었다. 선물을 보내면 며칠 후, 예의바른 편지와 함께 보낸 선물이 되돌아온다. 또한 고이즈미 총리는 이혼으로 인해 독신이 되었으므로 어떤 여성과 사귄다고 해도 상대가 독신인 이상 불륜 스캔들에 휩싸인 적도 없었다.
 
  그러나 아베 총리는 부잣집 도련님 출신인 탓에 기본적으로 선물을 거부하는 습관이 없다. 때문에 그의 주위에는 어중이떠중이들이 모여들고 있다.
 
  일본의 정치가는 정치자금 규제법에 입각하여 정치헌금을 받는 단체가 한 곳만 인정되고 있다. 아베 총리의 경우에는 「신와카이(晋和會)」가 그에 해당하며 자신의 선거구인 자민당의 야마구치현(山口縣) 제4선거구와 합쳐서, 작년 2억9507만 엔의 정치헌금 수입을 신고 하였다.
 
  그러나 작년 말부터 커다란 사회문제가 된 「부실 맨션 위장등록」 문제로 지난 1월 국회에서 증인을 섰던 악덕 건설회사 사장이 『안신카이(安晋會)라는 아베氏의 단체에 헌금을 했다』고 폭탄선언을 했다.
 
  이러한 유령단체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정치자금 규제법이나 소득세법 위반에 해당되는 심각한 문제이다. 국회에서 아베氏는 연신 식은땀을 흘리면서 필사적으로 변명하여 겨우 이 소동에서 빠져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때 이름이 나왔던 아베氏의 최측근인 정책비서관은 그 후 한동안 잠적해 버렸다.
 
  그 외에 아베 총리 一家는 부동산·주식·골프 회원권 등, 총 14억 엔에 달하는 재산을 축척한 사실이 「週刊現代(주간현대)」의 조사로 판명되었다. 앞으로 어떤 형태로든 금전과 관련된 스캔들이 터져 나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선전척으로 대장이 짧아 건강 이상
 
  아베 총리는 젊었을 때부터 긴자와 롯본기에서 주로 놀았는데,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1987년 아키에(昭惠) 부인과 결혼한 이유는, 그녀가 데이트 첫날 아베氏를 50분이나 기다리게 한 당찬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아베氏는 「나를 기다리게 하는 여자도 다 있네」 라는 이유로 그녀에게 빠져들었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이다(최종적으로 결혼을 결심한 이유는 그녀가 모리나가 제과(森永製菓) 사장의 딸이라는 점 때문이었다고 한다).
 
  여성들에게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고이즈미 前 총리와 반대로, 아베 총리는 여성에 대해서 적극적이고 과감한 성격인 만큼 여성 스캔들이 분출될 가능성도 있다.
 
  말수가 적었던 고이즈미 前 총리와는 대조적으로, 말이 많고 입이 가벼운 탓에 자칫 경솔한 발언으로 정권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을까 하는 측근도 있다. 雪上加霜(설상가상)으로 총리 외에 아베 정권의 각료 중에는 치명적인 스캔들이 우려되는 각료가 있다.
 
  다섯 번째 불안요소는, 아베 총리의 건강문제이다. 아베 총리와 30년을 알고 지낸 한 인물에 따르면 그는 「선천적으로 대장이 다소 짧기 때문에 설사를 일으키기 쉬운 체질」이라고 한다.
 
  매일 아침 어머니가 직접 만들어 주는 장에 좋은 야채 주스를 마시는 것으로 아베 총리의 하루 일과가 시작된다.
 
  그리고 대낮에 엄지와 검지로 미간을 잡으며 험상궂은 표정을 지으면 「속이 불편하다」는 표시라고 한다. 동료기자가 지난 4월에 아베 총리 본인에게 이 사실을 직접 물어보자,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지극히 건강하다』고 강하게 부정했다. 하지만 가까이서 본 아베 총리는 언제나 얼굴이 거무스름한 빛을 띠고 있으며, 술을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한다.
 
  의사에 따르면 장 건강에 가장 해로운 것은 스트레스라고 한다. 이 때문에 총리라고 하는 격무가 앞으로 그의 건강을 해칠 우려가 있다는 점이 주목을 받고 있다.
 
 
  「運이 좋고 요령이 좋은 아베 총리」
 
  아베 정권이 단명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다섯 가지 이유에 대해 설명했지만, 이제 막 총리에 취임한 사람에게 찬물만 끼얹는 것은 너무 야박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 아베 총리의 명예를 위해서 그의 장점 두 가지를 들어 보겠다.
 
  그것은 「강한 운세」와 「요령이 좋다」는 것이다. 아베 총리의 강한 운세가 빛을 발하는 최대의 테마는 북한문제이다. 고이즈미 정권 발족 당시, 관방 부장관(官房副長官)이었던 아베氏는 상사인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관방장관(官房長官)에게 철저히 무시당했다.
 
  2002년 9월, 고이즈미 前 총리가 전격적으로 북한을 방문해 金正日과 정상회담을 했을 때, 주역은 후쿠다 관방장관이었다. 아베 관방 부장관은 중요한 정보로부터 차단당하고 선 밖으로 밀려나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오히려 「악랄한 독재국가」와 거리를 둔다는 식으로 국민들에게 평가받게 되어, 「납치문제에 있어서는 아베」라고 하는 이미지가 정착되었다.
 
  2004년 6월 고이즈미 前 총리가 두 번째 북한을 방문했을 때에는 전세가 역전되면서 선 밖으로 밀려나 있던 후쿠다 관방장관이 격노하여 사임해 버렸다. 이로써 아베氏는 이듬해 관방장관의 자리를 꿰차게 되었다.
 
  지난 9월20일 치른 포스트 고이즈미 선출을 위한 자민당 경선에 당초에는 아베 對 후쿠다의 접전이 예상되었다. 그러나 지난 7월 초 북한이 미사일을 일곱 발이나 발사하는 바람에 戰勢(전세)는 북한에 강경한 아베 쪽으로 기울어 버렸으며, 온건파인 후쿠다氏는 출마조차 포기해야만 했다.
 
  지난 10월9일의 북한의 核(핵) 실험은 아베 외교의 첫 번째 시험대가 되었던 中日·韓日 간의 정상회담에서 야스쿠니문제와 역사문제를 몰아내고 단연 최고의 화두로 등장했다.
 
  당초 험난하리라던 예상을 뒤엎고, 3국이 北核(북핵) 대처의 결속을 다지면서 추후 재회담까지 약속하는 등의 성과를 올리게 만드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일본 국내에서 현재 아베 내각 지지율은 수직상승의 기세이다.
 
  이처럼 아베 총리에게 있어서 북한은 행운을 가져다 주는 女神(여신)과 같은 존재이다.
 
  총리 취임 후 야당인 민주당에서는, 아베氏의 최대 정적인 오자와 이치로(小泥一郞) 대표가 입원을 하고, 젊은 피로 인기가 높던 의원이 여자 아나운서와 불륜 스캔들을 일으키는 등 자멸현상이 일어났다. 역시 아베氏가 강한 운세를 타고났다고 볼 수 있는 해프닝이다.
 
지난 9월26일 출범한 아베 내각
 
  분위기 파악 능력 탁월
 
  아베 총리는 또한 명문가의 둘째 도련님으로 차남 특유의 「요령」을 가지고 있다. 학창 시절부터 공부에는 취미가 없었으나 공부벌레인 친구보다 오히려 성적이 좋은 경우가 많았다. 경제 분야에 문외한이면서도 기업 경영자로부터 귀동냥으로 들은 말을 그럴듯하게 피력하여 주위를 놀라게 하였다.
 
  총리 취임 時에는 「서민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잣집 도련님 출신의 재상」이라는 비판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총리의 월급을 30% 줄이겠다고 선언했는데, 이도 역시 아베 총리 특유의 요령 좋은 처세술이다.
 
  아베 총리는 유력한 라이벌의 대두를 가장 두려워한다. 때문에 고이즈미 정권에서 비교적 인기가 높았던 아소 타로우(麻生太郞) 외무상만은 유일하게 유임시켰다. 겉으로는 「당신의 외교능력은 탁월하다」고 아소 외무상을 치켜세우고 있지만, 사실은 가까이에 두고 견제하기 위해서다.
 
  한마디로 아베 총리는 「그 자리의 분위기를 파악하는 능력」이 무척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고이즈미 前 총리는 자신의 得失(득실)과 상관없이 자기 주장을 밀어붙이는 타입이었지만, 아베 총리는 항상 그 자리의 분위기를 눈치 빠르게 파악하고 자신이 得을 볼 수 있도록 요령 있게 처신한다.
 
  「국회란 곳은 여우와 너구리가 서로를 속이는 정글」이라는 명언을 토로한 정치가가 있었지만, 이러한 정계에서 승리를 거두고 51세라는 젊은 나이에 戰後(전후) 최연소 총리의 자리에 오른 것은 대단한 능력이다. 모리 前 총리나 고이즈미 前 총리가 아베氏를 총애한 것은 틀림없이 요령 좋은 그의 처세술이 매우 유용하다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역시 강한 운세와 요령만 가지고는 국가경영을 할 수 없다. 아베 정권은 겉치장이 벗겨짐에 따라 서서히 지지율이 내려갈 것이 틀림없다.
 
  따라서 한국은 일본의 헌법 개정, 核 무장화 등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것들은 盧武鉉 대통령이 내년에 악수하게 될 것이라 예상되는 차기 총리와 논의하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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