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시사회를 갔더니 포스터의 제 이름이 작아서 잘 안 보여요. 나 보고 싶어서 오는 팬도 있는 거 아냐. 영화 보다가 중간에 나와 술 마셨어』
朱鉉
1943년 함남 혜산진 출생. 본명 주일춘. 배명高·건국大 정치외교학과 졸업. ROTC 5기. 1969년 KBS 탤런트 특채 입사. 드라마 「야간비행」, 「꽃피는 팔도강산」, 「옥이 이모」, 「꽃보다 아름다워」 등 출연. 영화 「깃발없는 기수」, 「가족」,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등 출연.
朱鉉
1943년 함남 혜산진 출생. 본명 주일춘. 배명高·건국大 정치외교학과 졸업. ROTC 5기. 1969년 KBS 탤런트 특채 입사. 드라마 「야간비행」, 「꽃피는 팔도강산」, 「옥이 이모」, 「꽃보다 아름다워」 등 출연. 영화 「깃발없는 기수」, 「가족」,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등 출연.
지난해 朱鉉씨가 출연한 영화 「가족」이 관객 200만 명을 넘은 데 이어, 금년에 출연한 영화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도 지난 10월27일 현재 200만 관객을 돌파했다. 「가족」에서는 주인공이었고, 옴니버스 형식의 영화 「내 생애…」에서는 이야기의 중요한 한 축을 맡았다.
지난 9월28일부터 10월1일까지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에서 열린 제50회 아시아태평양영화제에서는 「가족」에서의 열연으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朱鉉씨를 더욱 유명하게 만드는 것은 텔레비전 드라마에서의 활약이다. 최근 종영된 MBC 월화드라마 「비밀남녀」에서 女주인공의 아버지인 알코올 중독자역을 맡았고, 이어 주말드라마 「결혼합시다」에서 경제권을 잃은 아버지역을 맡고 있다. 1969년에 데뷔한 그의 연기 경력은 올해로 36년째다.
1990년 인기리에 방영된 KBS 일일극 「서울 뚝배기」에서 식당종업원 안동팔 역으로 출연, 「~걸랑요」를 국민적 유행어로 만들며 만들어진 희극적 이미지가 워낙 강한 탓도 있지만, 드라마 속에서 형성된 그의 이미지는 「코믹」과 「서민의 아버지」 모습이다. 실제 그의 모습 역시 서민적이고 그의 어투에서는 「~걸랑요」를 발음할 때와 비슷한 비음이 섞여 나왔다.
그는 30년 이상 현재의 키(178cm)와 몸무게(100kg)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 11월9일 오후 5시, 경기도 구리시 교문동에 있는 고깃집에서 그를 만났다. 후배가 운영한다는 고깃집은 공원식으로 꾸며져 있었다. 출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예의 옷깃을 세운 점퍼 차림의 朱鉉씨가 후배와 함께 나타났다.
1·21 사태 때 휴전선에서 실제 交戰![]() |
| 1990년 인기리에 방영됐던 KBS 일일드라마「서울뚝배기」의 한 장면. |
대화 도중 그는 간혹 肉頭文字(육두문자)까지 써 가며 자신의 생각을 진솔하게 말했다. 물론 『이런 욕지거리는 기사 쓸 때 빼달라』면서.
술잔을 주고받는 남자들끼리의 대화. 당연히 출발은 군대 시절 이야기였다. 朱鉉씨는 ROTC 5기 출신으로 전방에서 GP장으로 근무했다. 그는 북한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124군 부대를 침투시켰던 해인 1968년을 전후해 軍생활을 했다.
―그때 전방 상황이 무시무시했겠네요.
『난 그때 제일 먼저 죽는 줄 알았어요. 북한 쪽을 보니까 평소 보이지 않던 직사포가 보이더라구. 우리는 벙커도 없이 막사 앞에다 호를 파 놓고 있을 때였는데 직사포 한 방이면 날아가는 거지 뭐. 실제 가끔 교전도 벌어졌고』
―실제 전투도 하신 거네요.
『그럼요. 그런데 이쪽으로 침투하는 인민군들을 보면 항복이란 게 없어. 꼭 죽기를 작정하고 오는 놈들 같아. 우리 쪽으로 오면서 우리 계급장을 거꾸로 달고 오는 걸 보면 죽겠다고 오는 거 아니겠어요. 우리 쪽을 교란하다가 죽으라는 거지. 마이크로 뒤에서 「손 들고 나오라」고 해도 金日成 찬가 부르고 안 나와요. 독한 놈들이었어요. 난 反共(반공)정신이 누구보다도 투철해요』
反共 집안
朱鉉씨가 반공정신이 투철한 이유는 부친의 영향 때문인 것 같다. 그의 고향은 함남 혜산이다. 한의사였던 부친(주동림·작고)은 천도교도였다. 그의 부친은 공산당에게 잡혀 1년 가까이 옥고를 치른 후 1948년에 가족을 이끌고 월남했다. 朱鉉씨의 부친은 그 뒤 천도교 교령대우, 천도교 서울교구장, 손병희 선생 동상 건립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어머니(조정순·작고)도 한의사였는데, 3형제인 자식들에게는 재산을 거의 물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수입의 대부분을 천도교와 관련된 일에 썼기 때문이다.
―1968년 당시 우리도 HID(북파공작원)를 동원해 보복 공격을 했다고 하던데요.
『그 사람들을 「돼지들」이라고 불렀어요. 조장이 장교였는데, 그 사람들이 GP에 올라오면 우리 막사를 못 보게 해. 불쌍하지. 내가 보기에는 80%는 죽는 거야』
군대 이야기는 한참 이어졌다. 朱鉉씨의 술잔을 들이켜는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軍에서 제대한 후 잠깐 공무원 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아니, 그건 아니고. 공무원 시험을 봤다가 떨어졌어요. 제대 후에 민주공화당 공채 시험을 봤다가 떨어졌고, 중앙정보부 시험도 봤다가 떨어졌어요. 그래서 장사가 맞는 것 같아서 남대문시장에서 장사나 하려고 했는데 그것도 그때는 연줄이 있어야 하더라구. 물론 자본도 필요하고. 그래서 포기했어요』
―군대 체질이신 것 같은데 장기복무를 신청하지 그랬어요.
『ROTC 3기 선배가 「야, 넌 軍 체질이니까 장기복무하는 게 어떻겠냐」고 했어요. 그분은 나중에 기무사령관도 한 분인데, 저는 환경이 달랐어요. 당시는 朴대통령이 이북 출신 군인들을 막 자를 때였거든요. 저는 또 육사 출신도 아니고. 그래서 1969년에 중위로 예편했어요』
장교 출신이라 군인 역은 훌륭히 해냈으나…
朱鉉씨는 1969년 KBS가 제작하는 베트남전선 다큐멘터리 8부작에 출연했다. 그에게 맡겨진 역할은 스턴트맨이었다. 그러다가 기회가 찾아왔다. 중대장역을 맡은 배우가 제때 나타나지 않자 「땜질」용으로 朱鉉씨가 기용된 것이다. 연기는 처음이었지만 장교 출신이었던 그는 중대장 역을 현역 시절의 경험을 살려 그럴싸하게 해냈다. 무전병 역할을 맡을 사람이 없자 이번에는 무전병 역도 무난하게 소화해 냈다. 군대와 관련된 역할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역할이 인연이 돼 朱鉉씨는 KBS 탤런트로 특채됐다.
―탤런트 특채 후 단역만 맡다가 주인공으로 데뷔한 작품이 「사랑의 훈장」이라는 드라마죠.
『1970년 초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훗날 일일드라마 「달동네」로 유명해진 나연숙씨의 드라마 작가 데뷔작이었어요. 원래는 주인공으로 신영균씨나 최무룡씨가 거론됐던 작품인데 저를 파격적으로 기용한 거였어요.
상대역은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고은아씨였어요. 하명중씨가 막내로 나왔고, 민지환씨가 바로 제 아랫동생으로 나왔어요. 제가 맏아들 역이고, 장민호 선생님이 아버지 역할이었어요. 일주일에 한 번 방송되는 주간드라마였는데 크게 히트했어요. 그런데 제 연기가 문제였죠. 그전의 「군사물」 같은 것은 군인 출신이어서 좀 했는데, 연기에 기초가 없는 상태에서 멜로에 나가니까 안 되는 거죠.
그때는 배우가 잘 못하면 PD들이 어찌나 야단을 치는지 주눅이 들어서 못 하는 거야. 女주인공을 사랑스런 눈으로 보는 장면에서는 「야, 넌 사랑스런 눈으로 보라고 했더니 여자를 잡아먹으려고 그러냐」고 야단치고… 너무 표현이 안 되니까 제작진들끼리 고민하다가 10회에서 제가 죽는 걸로 처리하더라구요(웃음). 차라리 아주 잘 됐다 싶더라고』
그런데 의외로 방송국으로 시청자들로부터 항의전화가 쇄도했다. 『인상도 텁텁하고 연기도 구수한 그 연기자를 왜 중도 하차시켰냐』는 항의였다. 그렇게 해서 그는 「죽은 후」에도 상대역인 고은아씨의 회상 장면에서 종종 얼굴을 내밀 수 있었다.
이듬해 朱鉉씨는 역시 나연숙 작가가 쓴 「먹구름 흰구름」이라는 드라마에 주인공으로 출연하게 된다. 주인집 딸을 짝사랑하는 벙어리 머슴 역이었다.
『상대역인 한혜숙씨의 데뷔작이기도 했어요. 홍수가 나서 온 동네가 쓸려 내려가는 것을 막기 위해 둑을 막다가 또 죽었어요. 벙어리 역할은 더 못 하겠더라고. 벙어리 역이야말로 대사가 없으니까 연기가 더 필요한 거 잖아요. 또 도중하차한 거지(웃음)』
극작가 김동현씨와의 만남연기력 때문에 드라마에서 두 번 죽은 朱鉉씨에게 행운이 찾아온 것은 극작가 김동현씨와의 만남이다. 김동현씨는 KBS에서 1972년에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실화극장을 집필했는데, 오지명·최불암·송재호 등 내로라하는 중견 탤런트들이 이 드라마를 통해 스타가 됐다.
김동현씨는 드라마 「야간비행」을 집필하면서 朱鉉씨에게 잘 해낼 수 있는 역이 무엇인지를 물었다고 한다. 朱鉉씨는 유도와 복싱 등의 운동을 했다.
『김동현 선생에게 「운동을 했다」고 하니까 운동하는 장면을 멋있게 써 주고 그러시는 거예요. 또 다른 뭐를 잘 한다고 하면 그런 장면을 써 주시고… 다행히 드라마가 떴어요』
亞太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 |
| 영화「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의 한 장면. |
―50회 아시아태평양영화제에서 「가족」으로 남우주연상을 받으셨는데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 자신도 조선일보 기사 보고 알았어요. 술을 마시고 있는데 후배가 「형님 축하합니다」 하는 전화를 걸어왔어요. 「뭘 축하하냐, 임마」 그랬더니. 「상 받으셨잖아요」 그러잖아요. 그래서 「내가 무슨 상을 받아」 했더니, 「뉴스에 나왔는데 무슨 소리예요」 하는 거야. 다음날 조선일보를 보니까 조그맣게 「「태극기 휘날리며」 亞太영화제 작품·감독상」이라는 기사 안에 남우주연상을 주현이 수상했다고 써 있어서 알았어요』
―상금은 없었습니까.
『상금이고 뭐고 케이스도 없는 트로피 하나 받았는데요(웃음)』
―「가족」에 출연하실 때는 연기 인생 최초로 삭발을 하셨죠.
『그랬어요. 눈을 애꾸로 만들어서 고생이 많았어요. 한쪽 눈을 감으니까 표정연기가 안 되더라고. 우리나라 분장술이라는 게 한계가 있어요. 분장사들이 하루는 이렇게 하고, 하루는 저렇게 해서 애꾸눈의 형태가 맨날 다른 겁니다.
아주 성질이 나더라고. 우리나라는 의상과 분장에서 전문성이 많이 떨어져요. 미국 배우들은 분장 기술에 덕을 엄청 봐요』
―「내 생애의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홍보 포스터에서 朱선생님이 배제됐다고 영화사에 항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기분 좋은 웃음을 지으며 이야기를 하던 朱鉉씨의 얼굴이 순간 일그러졌다.
『항의까지는 아니고. 뭐 영화가 상업적이 아닐 순 없죠. 극장을 점유하는 층들이 젊은 층들이고 거기다 맞춰야 되니까. 늙은 놈의 얼굴이 나오면 우중충해보여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홍보 포스터를 찍을 때 쓰지 않을 거면 찍지 말라고 했어요. 영화 내용하고 관계 없는 걸 찍는 것도 마음에 안 들었고요. 나가서 찍기는 찍었어요』
「밥상용 배우」들의 슬픔
―홍보 포스터를 찍기는 하셨군요.『근데 기자 시사회에 가서 보니까 사진은 고사하고 포스터에 있는 제 이름도 하도 작아서 잘 안 보여요. 기분이 무지하게 나쁘더라고.
「나도 이제는 대한민국에서 40년 가까이 연기생활을 한 사람이고 단역배우도 아닌 이 영화에서 한 파트의 주인공인데, 젊은 놈들 뽀뽀하는 것만 붙여 놓고 이름도 잘 안 보이고 이게 뭐하는 짓들이야. 너희들, 외국 같으면 이런 짓하겠냐. 그렇게 해놓고는 영화 홍보를 해달라고 그러냐. 안 해. 나도 내 팬이 있고 나 보고 싶어서 오는 관객들도 있는 거야. 그런데 이렇게 해 놓는 게 어딨어」
그렇게 화 좀 냈죠』
―『수십 년 연기의 길에 정진하며 대사 하나, 표정연기에 혼신을 다하는 중년 연기자들은 얼굴 사진 한 장으로 뜨는 얼짱 앞에 무기력하다』는 말씀을 한 적이 있는데, 이번 일도 그런 대중문화계 흐름의 한 단면이라고 보시지는 않습니까.
『영화사의 홍보전략이니까 이해되는 측면도 있어요. 그런데 영화에서 제가 찍은 파트의 3분의 1은 잘렸어요. 영화가 연결이 안 되더라고요. 전 영화를 보다가 중간에 나와서 술 먹었어요. 영화판을 애들의 전성시대로 만드는 것 같고. 미국을 본뜰 필요는 없지만 할리우드를 보세요. 해리슨 포드, 알 파치노, 더스틴 호프만 등 50代에서 70代까지의 배우들이 영화의 주인공으로 전면에 나서서 세계적인 스타로 군림하잖아요』
―한국에만 있는 현상이라는 거죠.
『그럼요』
―중년 연기자들의 경우에는 밥을 먹는 장면에만 필요하다고 해서 「밥상용 배우」라는 얘기도 있지 않습니까.
『시간을 끌어야 하니까. 작가들이 밥 먹고 수다 떠는 걸로 한두 페이지 넘어가는 거죠. 나이 든 연기자들은 그때나 필요한 거죠』
소재의 빈곤―소재의 빈곤 때문인가요.
『서부영화에서 뒤에서 총 쏘는 사람 봤습니까. 사무라이가 뒤에서 칼질하는 거 봤습니까. 그 사람들이 국민에게 심어 주는 영상 메시지의 역할이 엄청나요. 그럼 우리는 무슨 메시지를 주어야 합니까. 우리에게는 孝(효)와 忠(충)이 있잖아요. 그런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주어야죠.
그런데 모든 사극드라마는 음모만 판치고 서로 헐뜯는 게 주잖아요. 현대극은 젊은 애들이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좋아하는 취향에만 맞춰 주기 급급해요. 문제는 문학소녀가 작품을 쓴다는 거예요. 작가는 문학소녀가 아니잖아요?』
―드라마 쓰는 작가들이 주로 여성이라는 것이 그런 문제를 초래한다고 보십니까.
『여성이라고 무시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문학소녀 취향이라는 데에 문제가 있다는 거죠. 드라마는 스토리 구조상 여성 작가들이 유리해요. 많은 이야기들을 넣어야 하니까. 그렇지만 가끔은 孝나 忠을 내세운 드라마도 필요하다는 거죠』
소녀 취향의 드라마를 비판하던 朱鉉씨가 갑자기 말머리를 돌려 최근 음주운전으로 불구속 입건된 영화배우 송강호씨 이야기를 꺼냈다.
『송강호라고 하면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영화배우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사람이 운전기사도 없이 술을 마시고 직접 운전을 하다가 음주운전에 걸린다는 게 말이 됩니까. 미국과 비교하기 뭣합니다만 미국에서 그 정도급의 배우라면 운전기사는 물론이고 분장사, 매니저 등 수십 명을 고용하고 있을 겁니다. 배우가 곧 기업인 셈이죠. 우리 대중문화계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사건이에요』
―현존하는 최고의 드라마 작가는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건 말 못 하죠』
―요즘은 모르겠지만 한동안 김수현씨와 나연숙씨가 최고의 작가로 거론되기도 했는데요.
『우리 마누라는 김수현씨가 최고의 작가라고 그럽디다. 여자 입장에서 재밌게 쓴다고. 나도 그 점은 인정해요. 저는 작가는 작가로서의 역할에 충실한 분이 좋다고 봐요. 연출가의 역할과 배우의 역할을 존중해 주고 서로 선을 넘지 않는 게 좋겠지요. 저는 아직 김수현씨와는 작품을 해본 적이 없어요』
작가는 연출과 연기에 간섭 말아야―드라마를 하면서 작가의 파워가 연출가의 파워보다 센 경우가 많습니까.
『김수현씨 같은 분들은 연출가에 대한 영향력이 크다고 볼 수 있죠』
―그렇다면 인기 작가의 영향에서 자유로운 연출가들이나 배우가 있습니까.
『그 부류는 그 부류끼리 모이는 거고, 그 배우는 그 배우끼리 모이는 거죠』
―지금까지 진지한 역할도 많이 해오셨지만 대중적인 이미지는 코믹함이 더 강한 것 같습니다.
『진지해질 드라마가 없어요. 드라마를 보다 보면 제 자신이 잘못하는 것도 보지만 다른 연기자들의 가식적인 연기도 볼 수 있어요. 연기에서 「가식」처럼 보기 싫은 게 없어요. 코믹 연기를 하면서 제가 보기에도 제 연기에서 가식이 보이면 저 자신이 싫어집니다. 진지함에도 코믹에도 정말 필요한 것은 거짓처럼 보이지 않는 진짜 연기입니다』
인터뷰를 한 지 3시간쯤 지났을 때, 朱鉉씨는 약간의 취기가 오르는지 『술 마시면서 말을 하다 보면 내가 한 소리에 나 스스로가 놀라기도 한다』면서 『실수하는 것은 빼달라』고 기자에게 부탁했다. 「엄살」에도 불구하고 朱鉉씨의 자세는 흐트러지지 않았다.
―드라마나 영화의 주인공도 많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조연배우」라는 평을 듣는 데 불만은 없습니까.
『전 단역을 좋아해요. 간혹 자신이 찍는 영화에 제가 꼭 필요하다는 감독들이 있어요. 「친구」나 「해피엔드」 같은 경우에 아주 짤막한 단역이었죠.
제가 「왜 나를 이런 거 시키느냐」고 물었을 때 「이건 선생님 아니면 할 사람이 없습니다.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입니다」고 하는 거예요. 이러면 저는 고맙죠. 단역은 단역대로의 매력이 있어요. 제가 진짜 배가 고파서 단역밖에 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면 문제가 있겠지만 그런 것도 아닌데 저 친구가 날 필요로 해서 쓴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거죠.
또 하나는 시대 흐름이 젊은 층에 맞추는 분위기다 보니까 조연으로 출연하게 되는 것도 있죠. 간혹 제 경우는 운이 좋아서 주연을 맡기도 하는데 주인공 역, 단역 그런 건 별로 가리질 않아요. 조연이 빛나면 주연을 앞설 수도 있는 거고, 단역이 빛나면 조연을 누를 수도 있잖아요?』
『배우가 불멸의 명작 남긴다면 행운』![]() |
| 1977년 무렵의 주현. |
『좀더 다양한 연기를 해보고 싶다는 뜻이었죠. 미국에는 100년 동안 나온 영화 중에 10大 영화를 꼽는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거기에 들어갑니다. 불멸의 영화죠. 클라크 게이블과 비비안 리가 나옵니다.
배우가 평생 불명의 명작 한 편을 남긴다면 그것만 해도 행운이에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리바이벌하기 위해 로버트 레드포드에게 클라크 게이블이 맡았던 역할을 해달라며 영화 제작업자가 백지수표를 건넸다고 해요. 「당신은 그만큼 훌륭한 배우」라면서 말이죠.
로버트 레드포드는 집으로 돌아가서 그 영화를 세 번 보고 나서 영화 제작업자를 만났답니다. 그 자리에서 백지수표를 반납했대요. 죽었다 깨어나도 클라크 게이블이 될 수 없다는 거죠. 「내가 지금까지 쌓아 온 명성을 이 한 편으로 망가뜨리고 싶지 않다. 클라크 게이블 役을 리바이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답니다.
역시 불멸의 영화인 「노인과 바다」는 리바이벌이 됐지요. 처음에는 스펜서 트레이시가 주인공을 맡았고, 나중에 안소니 퀸이 그 역을 맡았는데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어요. 안소니 퀸이 잘못 선택한 거죠. 그만큼 배역이라는 게 운과 시대가 맞아떨어져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말론 브란도는 의외로 좋은 작품에 많이 나왔어요. 말년은 비참했는지 몰라도, 배우로서는 행복한 사람이었지요』
『아버지』라고 부르는 후배 연기자들
―함께 연기한 젊은 배우들 중에서 「이 친구 싹수가 보인다」 하는 연기자는 있습니까.『그건 금방 보이죠. 이름을 대라면 뭣하지만』
후배 연기자들 가운데는 朱鉉씨를 『아버지』라고 부르며 따르는 연기자들이 많다. 대부분 극 중에서 父子(부자) 관계로 출연한 게 인연이 됐지만 그런 인연이 없어도 『아버지』라고 부르는 연기자들이 많다. 이창훈, 안재욱, 정보석, 윤다훈, 김래원, 김재원, 김호진 등 수를 헤아리기가 어려울 정도다.
―후배들에게 연기 지도보다는 인생을 많이 가르치시는 것 같습니다.
『그렇죠, 연기야 어떤 면에서는 나보다 잘하는 애들도 있으니까. 젊은 연기자들 중에 제 눈에 거슬리는 행동을 하면 「스타가 될수록 머리를 숙이는 자세가 제일 아름다운 거고, 그런 태도가 몸에 배야 한다」고 충고를 해주곤 하죠』
―연기를 잘하는 연기자는 어떤 유형입니까.
『육상선수라고 해서 모두 100m만 뛰는 건 아니잖아요? 연기자의 연기도 역할에 따라서 다를 수밖에 없어요. 획일적으로 누가 연기를 제일 잘한다고 평가할 수는 없는 거죠. 제 생각에 배우에게는 상대배역이 참 중요해요.
연기는 배드민턴이나 테니스, 탁구처럼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이지 혼자서 하기는 힘든 일이죠. 커플로 나오는 장면에서는 상대방이 잘해 줘야 내가 살고, 내가 잘해 줘야 상대방이 사는 겁니다』
―현역 연기자 중에 대한민국에서 가장 연기를 잘하는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그 질문에는 답을 못 하죠. 「누가 최고의 배우다」 이런 건 있을 수 없죠. 「애수」라는 영화가 있어요. 비비안 리하고 로버트 테일러가 나오는 정통 멜러물이죠. 비비안 리가 처음 배역을 맡았을 때 상대가 로버트 테일러라고 하니까 싫어했대요. 얼굴만 잘생겼지 연기도 안 되고 해서 안 하겠다고 했다는 겁니다. 사귀고 있던 로렌스 올리비에를 추천한 거였어요.
감독을 맡은 대빈 르로이는 「로렌스 올리비에가 로버트 테일러보다 연기를 잘하는 건 알지만 애수의 역할은 로버트 테일러가 해야 그림이 나온다」고 설득했답니다. 감독의 생각이 맞았던 거죠. 맞는 역할에 맞는 연기가 있는 거예요. 배역마다 거기에 맞는 재목이 따로 있는 거죠. 누가 연기를 잘하느냐보다는 누가 그 역할에 잘 들어맞느냐가 중요한 거죠』
『한 가지 캐릭터로, 로비로 먹고 사는 배우 많아』
―그럼 「그 친구는 연기 잘해」 하는 사람은 있습니까.『보편적으로 연기를 잘한다고 하는 것은 다양한 연기를 잘하는 사람들이죠. 자기 캐릭터를 바꿀 줄 아는 사람들이죠. 그런 배우들은 외국 배우나 우리 배우나 캐릭터가 좁아져서 한 분야로 이미지가 굳어진 배우보다는 다양한 배역을 소화하는 배우가 재능이 있다는 거죠. 제가 한 가지 캐릭터만 고집했으면 제대로 못 먹고 살았을 겁니다』
―변신을 잘하는 배우가 훌륭하다고 하시니까 박근형씨가 떠오르는데요.
『아주 좋은 배우예요. 강력한 라이벌이죠(웃음). 좋은 얼굴에 좋은 연기까지 갖춘 좋은 배우예요. 저도 아주 좋아합니다』
―아버지 역할에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는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붉게 달아오르고 있는 朱鉉씨의 얼굴 위로 「그게 그 질문인데 나한테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 하는 표정이 포개졌다. 고개를 외로 살짝 한 번 꼰 다음 대답을 했다.
『아버지에는 여러 아버지상이 있는데 우선 연기 경험이 있어야 하고, 머리가 있어야 해요. 똑같은 배역이지만 자기의 상상력을 불어넣어서 캐릭터를 만들 줄 아는 능력이 있어야 하죠. 그런데 자기 캐릭터 하나만 가지고 가려고 하는 배우들이 많아요. 내가 같이 밥을 먹고 사는 입장에서 뭐라고는 말 못 하지. 그건 남의 밥그릇이 달린 이야기라 말 못 하지』
―어떤 배우들입니까.
기자는 특정한 배우의 얼굴을 떠올리며 朱鉉씨의 입에서 그 배우의 이름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그가 막연히 누구를 지칭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마치 추임새처럼 『아이참』만 연발할 뿐 그 배우의 이름을 좀처럼 말하지 않았다.
『좁은 시장에서 한 가지 캐릭터만 가지고 로비로 먹고 사는 배우가 많아요. 연출자들의 생일도 챙겨 주고 하는 식으로. 그런 걸 안 하는 배우에게 「너는 왜 이런 거 안 하느냐」고 나무라면서 적군을 만들어요. 로비로 살아가는 배우는 벌써 B급이죠. A급은 절대 그런 게 없어요. 연출자도 마찬가지예요. 싸울 때는 싸우더라도 그 배우의 능력을 우려먹을 줄 아는 게 A급 연출자이고, 손이 안으로 굽는 사람은 B급이라고 볼 수밖에 없죠』
―어머니상으로 가장 잘 어울리는 연기자는 누구입니까.
『김혜자씨가 상당히 리얼하게 하고 있다고 봐요. 어머니상을 리얼하게 못 하면 궁상이 될 수 있죠. 시대에 따라서 장점이 단점이 되고, 단점이 장점이 되는 거죠. 제가 감히 남의 연기를 평할 수는 없다고 봐요. 그건 시청자의 몫이라고 봐요』
―국내에서 가장 존경하는 연기자는 김승호 선생님이십니까.
『김승호 선생님을 비롯한 옛날 선배님들이 출연한 영화를 다시 보면 참 훌륭하시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런 리얼리티는 우리가 따라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1세대라고 할 수 있는 그 시대의 연기자들은 선이 참 굵었어요. 거기에 비하면 3세대 연기자라고 할 수 있는 우리들에게는 선이 없어요』
―혹시 朱선생님 자신을 현재 활동 중인 연기자 중에 최고로 생각하시는 건 아닙니까.
朱鉉씨는 이 질문에 고개를 뒤로 젖히며 웃었다. 한마디로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뜻이었다.
『아니야, 아니에요. 저는 영화를 하면서 후회를 많이 해요. 술 마셔서 부은 얼굴로 촬영장에 나가고… 우리 마누라가 그래요. 「당신 이 얼굴 가지고 배우 해먹는 거 보면 참 운이 좋다」고요. 그럼 제가 「그래, 니 말이 맞다」고 받죠』
―탤런트하고 영화배우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어느 분야를 선택하겠습니까.
『영화를 선택하고 싶은 게 대부분의 배우들의 소망이지』
―왜 그럴까요.
『연기자로서 영화가 표현하기에도 좋고, 두 시간짜리 가지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잖아요. 6개월 이상 찍고 고민하고… 그에 비하면 텔레비전은 어느 정도 소모품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래도 아직까지는 텔레비전 출연이 연기자의 상품가치를 높이는 데 더 좋지 않나요.
『텔레비전이 대중들과 더 빨리 친숙해지고 많이 알려지는 것은 사실이죠, 평균적으로 볼 때 금전적인 면에서도 텔레비전 출연이 나을 겁니다. 앞으로는 영화 한 편을 하면 한 1, 2년 쉬고도 먹고 살 수 있는 길이 열리리라고 봐요. 우리나라 축구선수가 외국에 나가면 몇 백만 달러를 받는 것처럼 연기자도 그렇게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방송 주인은 10代와 20代
―요즘 젊은 탤런트 가운데는 자기만 튀려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은데요.『부인 안 해요. 보기 흉하죠. 이걸 무슨 경연장으로 알고 내것만 하려는 배우들이 있어요. 나만 멋있게 나오고, 나만 예쁘게 나오게 하고 싶은 애들이 있지. 당연히 잘못된 거고 훌륭한 배우가 될 수 없어요』
―朱선생님 입장에서 상대역으로 가장 잘 맞았던 연기자는 누구인가요.
『코믹 연기는 서로 잘 주고받아야 하거든요. 선배 중에 오지명씨가 아주 배우답고, 남자답고 용기 있어요. 제가 좋아하는 「서울뚝배기」를 할 때 그 형이 연기를 잘 맞춰 줬어요.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너무 자기 캐릭터만 주장하고, 자기 것만 고집하는 배우를 저는 제일 싫어합니다』
―자기 것만 고집하는 그런 배우들이 많습니까.
『많죠. 아주 많아요』
―구체적으로 거명한다면.
『그건 곤란하죠』
―상대 배역이 싫어서 출연을 안 하신 적 있습니까.
『그런 경우 많죠. 출연 섭외가 들어오면 상대 배역이 누구인지를 제가 꼭 물어보죠. 원수질 일은 없지만 진짜 좋은 작품이라면 저는 강력하게 반대합니다. 절 빼든 그쪽을 빼든 둘 중에 하나만 하라고』
―여자 연기자 중에서 호흡이 가장 잘 맞는 분은 누굽니까.
『모르겠어요(웃음)』
朱鉉씨는 방송가에서 애드리브를 잘 하는 연기자로 정평이 나 있다.
―애드리브를 많이 하십니까.
『애드리브를 한 번도 못 들어갈 때가 있어요. 대본이 딱딱하고 모든 상항을 고정해 놓으면 할 수 없어요. 잘 쓰여 있는 작품에선 저도 모르게 애드리브가 나와요. 작가가 어떻게 상황을 전부 잘 설정할 수 있겠어요. 혹시 놓치는 게 있으면 보태 줘야죠.
애드리브에도 원칙이 있다고 봐요. 원작의 뜻을 무시하면 안 된다는 거죠. 작가를 기분 나쁘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죠. 애드리브는 절대 그렇게 하면 안 돼요』
―朱선생님보다 애드리브를 많이 하는 배우가 있습니까.
『없어요. 없어』
―오지명씨도 많이 하신다고 하던데.
『지명이 형 애드리브는 제가 다 알아요. 그 형도 제가 하면 웃어요. 참 잘하시죠』
―작품을 고를 때 연출자를 보고 고릅니까, 작가를 보고 고릅니까.
『출연 섭외가 오면… 글쎄 우리 연기자들이 배고픈 인생이 되다 보니까. 뭐든지 불러 줄 때는 고마워요. 불러 준 다음에 작가가 누구냐, 연출이 누구냐고 묻지』
―데뷔하신 지 36년째인데 그동안 지켜본 방송계의 문제점은 뭡니까.
『연예·교양·오락 프로그램 할 것 없이 모두 10~20代 위주로 가는 게 방송계의 문제점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나이가 든 축에 속한다고 해서 하는 이야기가 절대 아닙니다.
진짜 이 나라를 만들기 위해 고생하고, 사우디에 가서 땀 흘리고, 월남 가고 한 사람들, 자식들 키운 후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선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하나도 없잖아요.
있어 봐야 「전국노래자랑」이나 「가요무대」밖에 없어요. 20代와 30代가 상품구매력이 높다는 이유로 이제 방송의 주인은 그들이 됐어요』
考證이 뒷받침되지 않는 史劇―방송이 결국 시청률의 노예가 됐다는 뜻이죠.
『시청률의 노예가 된 거죠. 인생에서 연애가 전부는 아니잖아요. 진지하고 멋있는 드라마는 일상 속에서 나오는 겁니다. 친구의 배신이 얼마나 아픈 거고, 얼마나 나쁜 거고. 나만 독식하는 게 얼마나 나쁜 건지를 드라마가 이야기해 주어야 해요』
―드라마가 국민 啓導(계도) 기능을 담당해야 한다는 말씀입니까.
『모든 프로그램을 그렇게 만들 수는 없겠지만 우리나라를 어떤 나라로 만들고, 나라를 이끄는 정신적 구심점이 뭐고, 세대 간의 단절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등의 방향을 제시하는 프로그램들이 필요해요. 요즘의 드라마들은 대부분 윗세대가 아랫세대에게 끌려가는 설정들이잖아요』
―史劇(사극)에는 출연하신 적 없으십니까.
『많이 했어요. 「김유신 장군」, 최근 방영된 것 말고 이전에 방영된 대하드라마 「이순신」도 했고. 「강감찬」 때는 주인공을 했어요. 그리고 나서 1999년 방영된 「허준」에서 허준의 아버지로 나온 게 사극 출연의 끝이에요.
사극은 더 이상 당파 싸움이나 하는 모습만 보여 주어서는 안 돼요. 우국충정을 소개함으로써 민족적 자긍심을 갖게 해야 돼요. 사극의 考證(고증)도 문제예요. 일례로 연기자들이 수염은 달았지만 대사가 전부 현대 발음입니다. 사극은 우리 조상이 멋지다는 걸 보여 줄 수 있는 고풍스러움을 보여 주어야 해요』
─시청률이 한 자리일 때는 속상하시죠.
『속상하지는 않아요. 좋은 드라마인데 시청률이 안 나오는 경우는 별로 없어요. 우리 시청자들은 순진해요. 시청자가 선하기 때문에 좋은 것은 잘 받아들이죠』
朱鉉씨는 건국大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한때 정치권에는 국민에게 잘 알려진 방송인이나 연예인 영입에 열을 올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혹시 정치 입문 권유를 받은 적은 없습니까.
『남들처럼 국회의원에 출마하라는 얘기는 없었고, 경기도 구리에 살았을 때 시장으로 나오라는 권유는 받은 적이 있어요. 물론 저는 정치에 생각이 없었어요』
―연기인 중에 국회의원 배지까지 달았던 이순재·최불암·강부자씨 등은 배우로서 성공한 만큼 정치에서 성공은 못 이룬 것 같습니다. 이유가 뭐라고 보십니까.
『그분들이 나보다 정치를 우습게 본거지(웃음) 뭐』
밤 10시가 넘자 朱鉉씨의 휴대전화가 자주 울렸다. 친구 또는 선후배들의 한잔 하자는 전화였다.
―과거와 비교해서 연기자들 간의 교류는 어떤가요.
『예전 같지 않아요. 예전에는 서로 촬영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술 한잔 하고 그랬어요. 그런데 요즘은 그런 것은 전혀 없지. 자기 촬영 다 하고 나면 가 버리니까요』
―여의도에서 술 드시는 일이 많이 줄어들었겠습니다.
『스튜디오가 SBS는 탄현에, MBC는 의정부에 있어서 사실 여의도에 갈 일이 요즘은 별로 없어요. 그래도 후배들이나 친구들이 아직은 자주 찾아 주니까 술동무는 많아요(웃음)』
―몇 시에 일어나십니까.
『새벽 6시면 일어나요. 그 전날 술을 아무리 많이 마셔도 그때면 꼭 일어나요. 벌써 늙는 건가. 마음은 62세가 아니라 26세인데 말야(웃음)』
폼생폼사우리는 서로 웃음이 많아졌다. 5시간 30분간의 「음주 인터뷰」가 끝나갈 때 기자가 마지막으로 물었다.
―인터뷰 내내 왼손으로는 옷깃을 세우는 동시에 오른손으로는 머리를 쓸어넘기시던데 버릇이시죠.
『맞아요. 제가 젊었을 때부터 항상 그랬어요. 그게 멋있어 보이잖아(웃음)』
호탕하게 웃으면서 그는 왼손으로 옷깃을 힘 있게 당겨 올렸다. 영락없는 뒷골목 개구쟁이의 모습이다.
기자는 朱鉉씨에게 「언제까지 연기를 할 생각인지」를 묻지 않았다. 그의 눈빛은 5시간30분 내내 『죽을 때까지 연기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으므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