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한국 뉴라이트 人脈 지도

집권 左派에 맞설 자유주의 戰線 형성
한국 보수주의 회생의 발판 마련

  • : 이한우  hw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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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 그룹탄생의 산파역 3인]
「자유주의 교육운동연합」발기인 모임 참석자들이 지난 6월6일 창립취지문을 읽고 있다. 왼쪽부터 이명희 공주大 교수, 김정수 구미女高 교사, 이남정 인천 명신女高 교장, 조전혁 인천大 교수, 김진성 명지大 교수, 언론인 류근일씨, 이선정 前 학교사랑실천연대 대표.

  지난 7월27일 동국大 사회학과 姜禎求(강정구) 교수는 某 인터넷 신문에 기고한 칼럼 「맥아더를 알기나 하나요?」에서 『6·25 전쟁은 북한지도부가 시도한 통일전쟁이자 내전』이었으며 『만약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전쟁은 한 달 이내에 끝났을 것』이라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다.
 
  사실 姜교수는 우리 학계에 얼마 안 되는 대표적인 親北성향의 학자로 꼽힌다. 북한과 관련된 논쟁이 생길 때마다 방송출연과 기고를 통해 6·25는 조국해방전쟁이라고 말해 온 특이한 존재다. 심지어 左派(좌파)진영에서조차 『강정구 교수는 국내 극우세력을 도와주려고 암약하는 인물』이라고 폄하할 정도의 주장을 수시로 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姜교수가 이런 주장을 하면 左右 모두 『또 시작했다』며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그의 그같은 주장이 언론에 보도되자 동국大 홈페이지에는 姜교수의 「퇴출」 문제가 논란거리로 떠올랐다.
 
  특히 이 대학 인도철학과 4학년이라고 밝힌 김병관 학생은 「강정구 교수 추방위원회」를 출범시켜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고, 북한학과 4학년 최옥화 학생은 또 다른 인터넷 매체에 「강정구 교수, 당신이 부끄럽습니다」는 글을 올려 姜교수의 주장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한국 교수사회에서 이렇다 할 연구서 하나 내지 않고도 학생들의 존경을 끌어 내며 살 수 있었던 「생존술」의 하나가 이렇게 자유의 가치를 존중하는 학생들에 의해 퇴출 위기에 몰리기 시작했다. 더욱이 과거에는 학생들이 左派라는 이유로 교수를 비판한다는 것은 금기사항이었다는 점에서 이번 동국大 姜禎求 교수 사건을 계기로 표출되고 있는 학생들의 건전한 비판은 대학사회에 적지 않은 충격을 주고 있다.
 
 
 
 진보진영 못지않은 비판 강도
 
  그에 앞서 지난 6월3일 한나라당 田麗玉(전여옥) 대변인이 한 라디오의 시사 프로그램에 나가 『대학 나온 사람이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다』고 발언해 逆風(역풍)을 맞았다. 그런데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이런 발언은 열린당이나 소위 진보세력을 중심으로 한 네티즌 등으로부터 집중포화를 맞고 어쩌면 바로 그날 그는 대변인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을지 모른다.
 
  물론 그 직후 한나라당의 홈페이지가 다운되기 일보 직전까지 가는 등 비판의견이 만만치 않았다. 대표적인 親與(친여)성향의 인터넷 매체에 속하는 「오마이뉴스」는 이 기사를 한동안 머리기사로 올려 놓기도 했다. 그러나 인터넷상의 비판 열기에 비하면 오프라인의 반응은 생각 밖으로 미온적이었다.
 
  열린당에서는 장영달·이미경 의원 정도가 田대변인의 주장은 학벌주의를 조장하는 것이라며 비판했지만, 별다른 정치쟁점으로 떠오르지는 않았다.
 
  그런데 6월7일 뜻밖에도 보수진영의 청년조직인 「자유청년연대」(대표 최용호)가 田대변인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나섰다.
 
  자유청년연대는 한걸음 더 나아가 田대변인이 공식사과하고 대변인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 비판의 강도가 소위 진보진영에 속한다는 논객들 못지않았다. 참고로 자유청년연대는 그동안 탈북자 인권보장, 한총련 해체, 국가보안법 폐지반대 등을 주장하며 다양한 활동을 펼쳐 온 청년 右派단체로 인터넷상의 회원 수는 3000여 명이다.
 
 
 
 보수논객 저서가 베스트셀러가 되다
 
   지난해 보수논객 孔柄淏 박사는 「10년후, 한국」이라는 저서를 내 50만 부에 이르는 기록적인 판매부수를 올렸다. 침몰하는 「한국號」의 실상을 구체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해부한 책으로 경쟁력과 활력을 함께 잃어 가는 한국사회를 질타해 30代와 40代 화이트칼라로부터 큰 호응을 얻으면서 2004년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떠올랐다. 이후 孔박사는 「10년 후, 세계」와 「한국 번영의 길」을 펴내 3부작으로 보수의 길을 완결지었다.
 
  이를 기획한 해냄출판사 김수영 주간은 『당시 30代와 40代를 중심으로 한국사회의 진로에 대한 고민이 깊어 가던 시점에 그것을 공론화한 것이 大폭발로 이어진 것 같다』며 『그들이 과거에 자신들이 갖고 있던 세계관으로는 현재 한국사회에 닥친 현안들을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현실을 직시한 결과』라고 풀이한다.
 
  桑田碧海(상전벽해), 불과 1년 전과 비교해 변화된 한국의 이념상황을 이 말처럼 명확하게 보여 주는 것도 찾기 힘들다. 2002년 大選에서 인터넷과 젊은 세대의 「반란」에 일격을 당한 한국 기성세대는 한동안 망연자실했다. 자식들을 원망했고 길에서 만나는 청년들을 의구심 가득찬 눈길로 바라봤다. 자신들에 대한 거대한 거부 앞에서 한없이 무력감을 느껴야 했다.
 
   그러나 2003년과 2004년 2년 동안 젊은층의 기대를 안고 출범했던 盧武鉉 정권은 젊은 세대가 보기에도 어이없이 내려앉고 있다. 逆風을 부르긴 했지만 국회의 탄핵을 받는 정권이 돼 버렸고, 최근에는 견고했던 30代와 40代 지지층조차 등을 돌리고 있다.
 
  그러나 盧武鉉을 반대했던 사람들, 소위 보수층도 기댈 곳이 없었다. 결국은 다음에도 盧武鉉 정권과 비슷한 정권이 집권하리라는 전망 앞에서 아무도 代案을 이야기하지 못했다. 울분만 가득했다. 그때 孔柄淏 박사의 「10년 후, 한국」이 나왔고 독자들은 대리만족을 느꼈다. 「나라가 망해 가고 있다」는 데 동의하는 사람들은 서로 이 책을 추천했고, 말 그대로 요원의 불길처럼 독자들이 많아졌다. 아이로니컬하게도 독자들 상당수가 盧武鉉 정권을 열렬하게 지지했던 30代와 40代들이었다.
 
 
 
 「뉴라이트」의 탄생
 
  2004년 10월 무렵 서울 강남의 한 호텔 커피숍에서는 朝鮮日報 주필을 역임한 柳根一(유근일)씨, 한때 민주화 운동의 선봉에 섰던 金鎭洪(김진홍) 목사, 운동권과 현장을 두루 체험한 申志鎬(신지호) 서강大 겸임교수 등 10여 명이 연일 모임을 갖고 있었다. 이들의 목표는 단 하나, 과거 反정부운동을 했거나 학생운동·사회운동을 했던 사람들로서 자유민주주의 수호에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는 사람들을 再결집시켜 이념적 혼란을 야기하고 있는 집권세력의 左派주의에 맞선다는 것이었다.
 
  이미 사회주의 붕괴, 북한체제의 몰락, 개인적인 체험 등을 통해 한국 左派들의 실상을 목격했던 이들은 서로 살아온 배경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지식인 사회를 중심으로 새로운 사조를 불러일으켜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나름의 역할분담도 있었다. 朴正熙 정권 때 투옥경력이 있는 柳根一 前 주필은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운동권 세력 중 양심적이고 反좌파적인 인물들을 규합하기로 했다. 金鎭洪 목사는 기독교계 내부의 비판적인 세력을 결집시키고 申志鎬 교수는 30代와 40代를 중심으로 한 소위 「右派 386」 세력화를 목표로 했다.
 
  출발은 순조로운 듯했다. 2004년 11월초 동아일보는 이들에 대해 처음으로 「뉴 라이트」라는 이름을 부여하며 기획시리즈를 통해 이들의 활동을 집중조명했다. 첫번째로 가시화된 조직은 金鎭洪 목사가 이끄는 「기독교 사회책임」이었다. 비교적 때가 묻지 않은 건실하고 양심적이며 비판적인 기독교 내부의 중도세력들을 연대시키는 전국 조직을 만든다는 것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申志鎬 교수는 과거 운동권 출신을 중심으로 「자유주의연대」를 발족시켰다.
 
  뉴라이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폭발적이었다.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느낌을 한데 모을 수 있는 기폭제가 됐다. 여기저기서 「뉴라이트」에 거는 기대가 나타났다. 열린당을 중심으로 한 과거 운동권 출신은 떫은 표정으로 뉴라이트의 등장을 지켜봤지만 한나라당은 달랐다.
 
  특히 마땅한 미래지향적 가치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던 한나라당에 뉴라이트는 새 희망처럼 비쳤다. 朴槿惠 대표, 李明博 서울시장, 孫鶴圭 경기도지사는 서로 자신이 뉴라이트와 맥을 같이 한다거나 자신과 크게 다르지 않다며 구애의 손짓을 보내기도 했다. 젊은 의원 모임들은 경쟁적으로 뉴라이트 멤버들을 초청해 강연을 가졌다. 그러나 申志鎬 교수는 『우리는 사회운동을 하는 것이지 정치를 하자는 것은 아니다』며 한나라당의 구애에 일단 부정적인 사인을 보냈다. 현재는 한나라당과 자유주의연대가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국면이다.
 
 
 
 뉴라이트는 左右 모두에 자극제
 
  뉴라이트가 일으킨 반향은 左右, 보수와 진보 모두에게 컸다. 우선 右派 진영에서는 金鎭洪 목사가 주도하는 「뉴라이트 전국연합」이 6월30일 발기인 대회를 갖고 발족했다. 다분히 좌파진영의 조직론을 벤치마킹한 형태이긴 하지만 전국적 조직망 구축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일각에서는 뉴라이트 세력의 분열 조짐이라는 비판적 지적도 있다. 金鎭洪 목사와 申志鎬 교수가 지향하는 목표가 다르다는 점을 염두에 둔 때문이다. 이날 대회에서 金鎭洪 목사는 『대학과 교회에도 뉴라이트의 정신을 확산시켜 갈 것이며 순수한 시민운동을 지향한다』고 단체의 성격을 규정했다. 다만 뉴라이트 운동을 이끈 초창기 주도자들의 순결주의에는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지나치게 자기만을 옳다고 고집하는 것은 뉴라이트 운동이 배격하는 左派 독선주의 세력과 크게 다를 바 없지 않느냐는 시각에서다.
 
  그 밖에 지방에서도 「뉴라이트」라는 이름을 내건 조직이나 단체들이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 그만큼 이제 뉴라이트라는 이름은 새로운 세력의 등장을 바라는 국민들의 바람을 담아 내는 그릇으로 주목받으면서 정치적 영향력을 얻어 가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영향력의 존재는 소위 진보진영 정치세력에서도 확인된다. 열린당 신기남·김형주·김태년 의원 등 현역의원 9명과 당내 100여 명의 운동권 출신 활동가들이 주축이 돼 8월 말경 뉴라이트에 대한 대항마로 「뉴프로그레스」를 띄우기로 하고 활발한 준비작업을 벌이고 있다. 명칭을 처음에는 「신진보연대」로 했다가 굳이 영어에서 따온 것도 뉴라이트의 파워를 의식한 측면이 크다.
 
  이들은 한나라당의 新자유주의와 민노당의 左派 노선 중간쯤에 자신들의 역할이 놓여 있다고 보고 노선과 정책을 가다듬어 간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뉴프로그레스는 정당인들이 중심이 돼 있다는 점에서 민간 영역에서 출발한 뉴라이트와는 구별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현재까지 뉴라이트 운동을 주도하는 그룹은 지난해 11월23일 발족한 자유주의 연대다. 이 단체의 대표를 맡아 이끌고 있는 申志鎬 서강大 겸임교수의 이력을 살펴보면 386세대에서 486세대로 변해 오면서 겪어야 했던 시대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연세大 경제학과 81학번인 申교수는 인천과 울산 등지에서 현재 민주노동당 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노회찬 의원 등과 함께 左派 노동운동을 하다가 1990년대 초 사회주의 붕괴라는 충격적 현실을 받아들이고서 명시적인 전향을 선언했다. 이후 시민운동과 일본 유학을 거친 申교수는 『세상의 흐름과 정반대로 왼쪽으로 치닫는 한국사회를 그냥 둘 수 없다』며 뉴라이트 운동에 뛰어들었다.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홍진표(40)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정책실장은 전형적인 주사파의 경력을 갖고 있다. 서울大 정치학과 중퇴, 총학생회 사무국장,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약칭 전민련) 부장, 조국통일범민족연합 간사,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 조직국장 등이 그가 거쳐 온 주요 경력이다. 그는 북한의 인권문제에 눈을 뜨면서 전향을 결심했고, 뒤이어 북한인권에 눈감는 한국의 「얼치기 左派」들에 대한 분노로 자유주의연대에 참여했다.
 
  그 밖에 자유주의연대를 이끌어 가는 운영위원단은 송근존·이재교·차기환 변호사, 조영기 건국大 강사, 최홍재씨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 중 최홍재씨의 이력이 눈길을 끈다. 고려大 신방과 87학번으로 고려大 총학생회장과 한총련 조통委 정책실장으로 북한과의 사업을 주도했으며, 전국연합 자주통일위원회 부장 등을 거친 골수 주사파였다가 지금은 북한인권 문제를 고발하는 잡지 「시대정신」 편집위원을 맡고 있다.
 
  현재 자유주의연대는 지난 4월 시사 웹진 「뉴라이트(www.new-right.com)」를 창간했으며, 뉴라이트 리더스 아카데미를 통해 청년 자유주의자를 지속적으로 再생산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新북한 바로알기 캠페인」을 통해 1990년대 초 左派진영이 주도했던 「북한바로알기 운동」의 폐해를 바로잡아 나간다는 계획이다.
 
  한편 자유주의연대를 주축으로 해서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뉴라이트 싱크넷」, 「북한민주화네트워크」, 「한국기독교개혁운동」 등은 현재 보조를 같이하며 뉴라이트 운동의 중핵을 형성하고 있다.
 
 
 
 한나라당內 뉴라이트 「朴世逸 사단」
 
  직접적 연대는 없지만 정치분석가들은 지향점과 구체적인 정책代案들을 중심으로 볼 때 한나라당內에서 흔히 「朴世逸 사단」으로 불리는 그룹이 뉴라이트 운동의 중심에 있는 자유주의연대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것으로 본다. 朴世逸 사단이란 2002년 總選 때 탄핵逆風으로 난파 일보 직전에 있던 한나라당에 朴世逸 前 서울大 법대교수가 朴槿惠 대표와 함께 공동선거대책위원장 겸 비례대표공천심사위원장을 맡으면서 끌어들인 새로운 인물군이다. 여기에는 지역구의 朴亨埈 의원과 비례대표의 金愛實·尹建永·朴宰完 의원 등이 포함된다.
 
  總選에서의 선전으로 인해 朴世逸 의원은 초선임에도 불구하고 黨內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를 맡아 2007년 집권을 향한 「뉴 한나라당 플랜」 기획을 주도했고 지난 1월에는 정책委 의장에까지 올랐으나 행정도시법이 통과되자 정책혼선의 책임을 지고 3월 초 의원직을 사퇴했다. 朴世逸 前 의원으로서는 두 번째 좌절을 맛본 셈이다.
 
  사실 朴世逸 前 교수는 이미 10년 전인 1994년 金泳三 정권 시절 서울大 법대교수직을 버리고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으로 참여해 사법·교육·노동 3大 개혁을 강도 높게 밀어붙였으나 사실상 실패로 끝나고 자리에서 물러난 바 있었다. 이번 한나라당 입당은 그로서는 捲土重來(권토중래)의 심정이었으나 이번에도 구체적 결실을 보지 못한 것이다.
 
  朴 前 교수는 盧武鉉 정권 출범 초기에는 총리후보로 영입설이 있었지만 북한에 대한 온정주의적 정책을 펼치는 햇볕정책에 대해 명확한 반대입장을 표명해 무산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그는 북한에 대해서는 명확한 선을 그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민족공조 운운하는 것은 일고의 가치도 없고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경제·사회정책 면에서는 상당히 개혁적인 성향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열린당의 중도右派 노선을 택하지 않고 한나라당을 선택한 배경에는 이같은 비판적인 對北의식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바로 이 점에서 朴世逸 前 교수는 뉴라이트와 친화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물론 朴 前 교수는 현재 정치일선에서 물러났지만 그가 정치를 완전히 그만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또한 그의 사단으로 불리는 의원들의 활약 또한 만만치 않다.
 
  朴世逸 사단 중에서 유일하게 지역구에서 당선된 朴亨埈 의원(부산 수영구·45)은, 대학 시절부터 「이론가」로 평판을 얻었으며 동아大 사회학과 교수를 지냈고 부산 지역 시민사회운동에도 깊이 관여했던 인물이다. 논리정연한 달변과 새로운 감각을 지닌 右派 논객으로 주목을 받고 있으며, 朴世逸 前 교수와도 호흡이 맞아 향후 黨 이념 및 노선정립과 관련해 중요한 역할이 기대된다.
 
  지난 6월23일 4·30 재보선 私조직 동원 문건 파동으로 여의도연구소장직에 물러난 尹建永 의원은, 서울大 공대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大에서 경제학으로 석박사학위를 받은 후 연세大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책협의회 의장 등을 통해 시민운동을 하다가 朴世逸 사단에 합류해 정치권에 뛰어들었다. 한나라당을 대표하는 경제통으로 朴世逸 前 교수의 뒤를 이어 여의도연구소장을 맡았다가 문건 파동 때문에 소장직에서 물러났다. 눌변이면서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확고한 철학을 바탕으로 현안의 핵심을 찌르는 안목 때문에 각종 TV 토론의 단골 패널로 초청받는다.
 
  朴宰完 의원은 초선에 어울리지 않는 정책통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울大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大에서 정책학 박사를 받았으며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재무부 사무관과 대통령 비서실 서기관을 지냈다. 그 후 성균관大 교수(행정학)로 재직하며 경실련 정책위원장을 역임했고 朴世逸 前 교수의 추천으로 정치에 뛰어들었다.
 
  金愛實(59) 의원은 미국 하와이大 출신으로 한국외국어大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 국회에 진출했고, 李周浩(46) 의원은 서울大를 거쳐 미국 코넬大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과 대학원교수를 거쳐 국회에 들어와 교육개혁에 집중적인 관심을 쏟고 있다.
 
  그 밖에 朴世逸 사단은 아니지만 3選의 金文洙·金映宣 의원이나 당 대변인을 맡고 있는 초선의 田麗玉(46) 의원도 성향으로 볼 때 뉴라이트와 가까운 정치인으로 분류될 수 있다.
 
  한편 일각에서는 산업화나 민주화가 아닌 선진화에서 代案을 찾으려는 뉴라이트의 성향과 관련해 孫鶴圭 경기도지사와 뉴라이트 그룹을 연결해서 보기도 한다. 申志鎬 교수는 이런 시각에 대해 『결과적으로 시대진단이나 전망이 일치하는 점이 있지만 특정 政派와의 결합이 뉴라이트 운동의 죽음을 의미한다는 것은 누구보다 우리 자신이 잘 알고 있다』고 부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의 추파는 계속될 전망이다.
 
 
 
 「자유주의」 변호사들의 결집
 
  2004년 행정수도 이전 위헌판결을 이끌어 낸 李石淵(50) 변호사는 법조계의 대표적인 뉴라이트 리더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전공이 헌법인 까닭에 자유주의의 원칙에 위배되는 사안들과 최전선에서 싸움을 맡고 있다.
 
  李변호사도 한때는 참여연대 운영위원을 맡는 등 다소 진보적인 성향을 보인 적도 있었다. 그러나 1990년대 말부터 左派진보진영의 정치참여가 활발해지고 시민운동으로서의 순수성을 잃어가는 데 실망해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도이전 위헌판결을 이끌어 낸 것을 계기로 李변호사는 활동영역을 넓혀 지난해 말 법조인뿐만 아니라 학계와 각 분야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헌법포럼」을 발족시키고 12월15일 창립대회를 가졌다.
 
  여기에는 李변호사를 비롯해 강경근 숭실大 교수, 유한수 前 포스코 경영연구소장, 이달곤 서울大 교수 등 각계 보수성향 인사 21명이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그 후 헌법포럼은 대한민국 정체성 문제를 비롯해 신문법, 일본 자위대 문제 등에 대해 전문가들을 초청해 계속 포럼을 열고 있다.
 
  李변호사는 「헌법포럼」의 역할에 대해 『헌법을 국민들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게 하는 헌법 브나로드 운동을 펼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대부분 50代의 합리적 보수 및 자유주의 성향의 인사들이다.
 
  지난 1월25일에는 중도보수 법조인들의 모임인 「시민과 함께 하는 변호사들」(약칭 「시변」)이라는 단체를 결성해 강훈 변호사와 함께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창립 당시 130여 명의 변호사가 참여했다.
 
  이 단체는 左派 진보진영 변호사들의 단체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에 대항한다는 성격을 숨기지 않는다. 현재 법조계에는 「시변」보다 다소 보수적인 「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약칭 「헌변」)이 있다.
 
 
 
 知的 헤게모니를 되찾자
 
  「10년 후, 한국」의 저자 孔柄淏 박사는 『보수의 재건은 학계와 출판계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의 左派들이 집권하게 된 과정을 돌이켜 보면 적어도 20년 전부터 학계와 출판계에 대한 헤게모니 장악투쟁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고, 현재 모든 것을 잃은 右派도 학계와 출판계에서부터 지지자들을 늘리는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左派를 벤치마킹하자는 주장이다.
 
  孔박사의 이런 주장에 대해서는 右派 내에서도 동의하는 그룹과 동의하지 않는 그룹이 있다. 知的(지적) 헤게모니 장악이 중요하다는 「뉴라이트 그룹」과, 현실적인 힘이 중요하다는 「올드라이트 그룹」으로 나뉘는 셈이다. 그러나 전반적인 분위기는 뉴라이트 그룹의 전략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최근 미국의 부시 대통령과의 면담으로 화제를 모은 탈북자 출신의 조선일보 姜哲煥 기자가 쓴 「수용소의 노래」(시대정신 刊)가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것도 출판시장의 달라진 환경을 보여 주는 중요한 지표의 하나다. 이 책을 펴낸 출판사에 따르면 부시 대통령 면담 이후 불과 한 週(주) 만에 5000여 부가 팔려 나갔다고 한다. 책의 내용이 뒷받침될 경우 右派성향의 책도 얼마든지 폭넓은 독자를 확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준 사례다.
 
  이런 면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작업은 「교과서포럼」이 주도하는 「현대사 다시쓰기」다. 지난 1월25일 「고교 근·현대사 교과서들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편향된 역사인식을 심어 준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하며 그에 대한 代案을 모색하기 위해 출범한 전문학자들의 모임인 「교과서포럼」은 서울大 박효종·이영훈 교수, 충남大 차상철 교수가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12명의 운영위원에는 강규형(명지大·서양사) 김광동(나라정책연구원·정치학) 김영호(성신女大·국제정치학) 김일영(성균관大·정치학) 김주성(한국교원大·정치학) 申志鎬(서강大·정치학) 유석춘(연세大·사회학) 전상인(한림大·사회학) 정성화(명지大·서양사) 함인희(이화女大·사회학) 교수가 참여하고 있고, 안병직 서울大 명예교수, 유영익·한흥수 연세大 명예교수, 이성무 前 국사편찬위원장 등 학계 원로와 이동복 북한민주화포럼 대표 등이 고문을 맡고 있다.
 
  박효종 상임공동대표는 『1980년대 초 左派 운동권의 교과서였던 「해방전후사의 인식」(한길사 刊)으로 인해 이 땅에 뿌려진 우리 현대사에 대한 자학사관을 사실에 입각해 하나씩 바꿔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매년 네 차례의 심포지엄을 열어 쟁점을 정리하고 동시에 대중강연과 대안교과서 집필을 통해 성과물의 대중화에도 힘쓰고 있다고 덧붙였다.
 
  교과서포럼은 그 첫 번째 성과물로 지난 4월 「한국 현대사의 허구와 진실」(두레시대 刊)이라는 단행본으로 펴냈다. 이 책은 주로 左派 이념이 은연중에 반영되어 있는 고등학교 근·현대사 교과서들을 중심으로 해서 역사관과 사실의 그릇된 부분을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앞으로도 교과서포럼 측은 다양한 이슈들에 대해 더 이상 左派가 일방적으로 발언권을 독점하지 않도록 충분한 연구를 바탕으로 계속해서 논쟁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눈길 끄는 「자유주의 교육운동연합」의 탄생
 
  아직 모습을 드러내진 않았지만 대학교수 사회에서는 진보左派 성향의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이하 민교협)에 맞서 가칭 「자유주의 교수연대」를 만들기 위한 물밑 작업도 활발하다. 경희大 정진영 교수 등이 중심이 돼서 추진 중인 이 조직은 민교협에 맞서 대학사회에서 자유주의적 가치들을 지켜 내는 활동을 비롯해, 그동안 左派에 점령당하다시피 했던 지식인 담론에서 자유주의 담론의 공간을 확보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서울大 사회학과 송호근 교수도 최근 주목받은 중도右派의 논객으로 떠올랐다. 학계의 대표적인 개혁 성향 사회학자였던 宋교수는 지난 2년 盧武鉉 정권과 386 정치인들의 행태를 회고하며 최근에는 그들의 애창곡 「임을 위한 행진곡」을 더 이상 부르지 말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다만 그는 여전히 『한국 사회는 향후 10년은 더 左派집권이 이어질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이런 전망은 「10년 후, 한국」의 저자 孔柄淏 박사도 제시한 바 있다. 그래서 宋교수나 孔박사는 각종 조직에는 전혀 몸 담지 않고, 오직 저술활동을 통해서만 左派진영을 비판하고 右派의 길을 모색하는 데 몰두한다.
 
  그에 반해 최근 지식인 사회에서 左派의 목소리는 잦아들었다. 출판사 휴머니스트 김학원 대표는 『국내외적으로 左派진영이 수세에 몰리고 있는 것도 원인이 되겠지만, 일단 우리나라만 놓고 보면 左派세력의 집권이 이뤄졌고 이들의 실정이 눈앞에 나타나면서 출판계에서도 左派의 목소리는 예전에 비해 작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난 7월1일에는 뉴라이트 교육운동을 표방한 「자유주의 교육운동연합」(약칭 「자교련」)이라는 단체가 발족했다. 이날 구미女高 김정수 교사(교사 대표), 인천大 조전혁 교수(학계 대표), 서울女大 배호순 교수(교육학계 대표), 인천명신女高 이남정 교장(교육원로 대표) 4인이 공동대표로 선출됐다.
 
  이들은 고교 평준화정책과 소위 「3不 정책」, 즉 본고사 반대, 기여입학제 반대, 고교등급제 금지로 대표되는 현행 교육정책과 親北·反美 성향의 전교조에 반대하는 입장을 명시적으로 밝힌 최초의 전국적 규모의 교육운동단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자교련」에는 김선호 前 경희大 교육대학원장, 柳根一 前 조선일보 주필, 정범모 명지大 석좌교수, 김진성 명지大 겸임교수, 金鎭洪 두레교회 목사 등이 상임고문으로 추대됐다.
 
  이들은 기존의 교총을 「수구적」, 전교조를 「좌파적」이라고 규정하면서 자교련의 3大목표로 ▲자유주의 교육운동의 국민 운동화 ▲국가의 교육 독점과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타율과 통제의 교육운영 시스템에 대한 개혁 ▲국민기초학력보장제와 다양화·특성화·전문화된 교육을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받을 수 있는 지역사회의 교육화와 교육의 지역사회화 등을 제시했다.
 
  이 단체는 지난 7월7일에는 정부를 상대로 대학수학능력시험과 국가 수준의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를 공개하라며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내는 등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또 창립대회 때 제시한 대로 교육부의 3不 정책에 대해 교육의 시장원리를 내세우며 다방면으로 압박을 가하고 있다. 아직 전교조와 정면충돌은 피하고 있지만 사안별 대결은 불가피한 것으로 보고 있다.
 
 
 
 여론시장의 균형회복
 
  뉴라이트 출범을 계기로 올해 초부터 눈에 띄게 진행되고 있는 새로운 보수의 출현 내지 右派의 복귀는 인터넷 언론에서도 두드러진다. 기존 오프라인 매체를 갖고 있지 않은 순수 온라인 매체만 놓고 본다면 불과 2년 전만 하더라도 진보左派진영에는 「오마이뉴스」를 비롯해 「프레시안」, 「서프라이즈」 등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그로 인해 일반여론까지도 이 매체들의 영향력下에 놓였고, 2002년 탄생한 盧武鉉 대통령을 「인터넷이 만든 대통령」이라고 할 정도였다. 반면 右派 진영이 가진 인터넷 매체는 강경 보수右派를 대변하는 「독립신문」(대표 신혜식)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동안 右派 진영에서는 「인터넷 매체=좌파적 매체」라는 등식이 성립하는 것이 아니냐며 깊은 패배주의에 젖어들기도 했다. 그러나 2004년 초부터 이에 대한 반동의 움직임이 생겨나고 여론도 親盧매체에 대해 부정적으로 돌아서면서 오마이뉴스에 대한 관심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인터넷의 익명성과 처음 등장한 댓글문화의 장점이 사라지고 인신공격, 편가르기 등의 병폐가 생겨나면서 점차 인터넷 매체가 외면당한 결과라는게 미디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기성세대들이 적극적으로 인터넷 문화에 적응하면서 젊은이들 못지않은 열정으로 댓글달기에 열성을 보이면서 이들 親與 인터넷 매체의 일방주의가 사라진 것도 인터넷 매체의 퇴조에 한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 매체의 상대적 퇴조와 함께 다시 일반여론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인터넷 매체의 특성상 세대 간의 확연한 대립이 나타나는 바람에 현실정치의 쟁점들이 여론조사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다가 점차 盧武鉉 정부의 실정이 하나둘 드러나면서 여론은 반등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에는 「중도 보수」를 표방한 右派 인터넷 매체들이 대거 생겨나고 있다. 지난 6월17일 결성된 「한국인터넷언론협회(www.kipc.or.kr)」은 左派 인터넷 매체에 의한 보수고사 작전에 맞선다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여기에는 「독립신문」을 비롯해 「프런티어타임스」, 「뉴스앤피플」, 「코나스」, 「미래한국신문」, 「코리아리뷰」 등 10여 개의 중도右派 인터넷 매체가 참여했다.
 
  초창기부터 인터넷 매체 운동과 오프라인上의 「반핵반김 운동」에 적극 참여해 온 신혜식 독립신문 대표는 『이 일을 하다가 감옥에도 갔다 왔지만 요즘은 右派운동의 중요성을 깨닫는 사람들이 젊은층 사이에서도 늘어나는 것 같아 일할 맛이 난다』고 말했다.
 
  이같은 인터넷上의 右派 성향 매체가 대거등장하게 됨으로써 한쪽으로 기울었던 인터넷 여론시장의 균형을 회복함과 동시에 앞으로 右派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데도 큰 힘이 될 전망이다.
 
 
 
 향후 전망
 
  정치권이나 지식인 사회에서는 뉴라이트 등장으로 촉발된 右派 르네상스에 대해 기대 반 우려 반의 시각이 있다. 관건은 뉴라이트와 올드라이트의 접점 확보다. 자유주의연대의 申志鎬 대표는 올드라이트의 역할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이제는 뉴라이트가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시각이다. 반면 올드라이트는 『申대표가 지나치게 「뉴」와 「올드」를 구별할 경우 자칫 右派의 분열로 이어질 수 있다』며 『좀더 폭넓은 포용력을 가져야 한다』고 주문한다.
 
  익명의 정치학자는 『결국 다음 大選에서 金正日 요인이 크게 작용하면 올드라이트 쪽으로 힘이 쏠리게 되고, 국내의 소위 386세대나 左派세력과 전선이 형성되면 뉴라이트가 전면에 나서는 게 유리하지 않겠냐』고 전망했다.
 
  그래서 그는 설사 2007년 大選에서 右派가 승리를 거둔다고 해서 新보수의 가치나 내용을 제대로 정립하지 않을 경우 오히려 大選 후에 분열되거나 뉴라이트 운동은 거품으로 끝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중도우파적 가치의 정립을 목표로 한 싱크탱크 만들기에 주력하고 있는 서울大 鄭宗燮(정종섭) 교수(법학)는 『현재의 뉴라이트 관련 움직임을 보면 너무 대통령 선거에 초점이 맞춰진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순수한 운동이라기보다는 정치권 진입을 위한 교두보로 삼으려는 소위 불순한 세력들도 여기에 끼어드는 게 아닌가』라며 『20년, 30년 후의 대한민국 그림을 제시하는 좀더 근본적인 방향으로 가야 한국적 右派 내지 보수는 되살아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申志鎬 대표도 『우리는 올드라이트를 배척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 간에 느슨한 연대는 계속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鄭교수의 지적처럼 사회운동·사상운동으로서의 뉴라이트 운동이 정치적으로 이용당하는 것은 경계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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