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主永
1985년 7월 대구 출생. 박필용·김옥란씨 사이의 1남1녀 중 둘째. 대구 반야월초·청구中高 졸업. 2003 U-20 세계청소년선수권 대표, 2004 U-20 아시아청소년선수권 3관왕, 아시아축구연맹(AFC) 「2004 올해의 청소년 선수」 선정, 2005 카타르8개국 초청대회 득점왕과 최우수 선수.
李英美 日曜新聞 기자〈bom@ilyo.co.kr〉
1985년 7월 대구 출생. 박필용·김옥란씨 사이의 1남1녀 중 둘째. 대구 반야월초·청구中高 졸업. 2003 U-20 세계청소년선수권 대표, 2004 U-20 아시아청소년선수권 3관왕, 아시아축구연맹(AFC) 「2004 올해의 청소년 선수」 선정, 2005 카타르8개국 초청대회 득점왕과 최우수 선수.
李英美 日曜新聞 기자〈bom@ilyo.co.kr〉
182cm의 키에 70kg의 몸무게, 축수선수로는 가냘픈 몸매다. 하지만 朴主永은 한국 축구선수가 아니었다. 공을 잡으면 더 빨라지는 스피드, 부드럽게 수비수들을 제치면서 공간을 확보하는 탁월한 감각, 사로잡은 사슴의 숨을 끊듯 여유 있게 공을 상대방의 네트 안으로 집어넣는 「킬러」의 본능…. 브라질의 호나우두, 프랑스의 지네딘 지단을 연상케 하는 현란한 개인기였다.
축구 전문가들은 『저런 가냘픈 몸매로는 아직 국가대표급 게임을 치르기 힘들다』고 했지만, 朴主永은 밀려드는 태클에도 부상 한 번 입지 않은 채, 영리하게 골을 집어넣었다. 축구팬들 사이에서 『당장 朴主永을 국가대표팀에 넣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했다.
밤을 새우며 한국 청소년 대표팀의 경기를 지켜보던 국민들은 하나같이 『도대체 어디에서 저런 선수가 나왔느냐』며 탄성을 멈추지 못했다. 천신만고 끝에 공을 골대 앞까지 몰아가지만 골키퍼와 「1 對 1」로 마주선 순간에 나오는 헛발질, 서너 명의 수비수를 제치고 나서 다리가 풀려서 공을 뺏기는 한국 축구의 고질병에 익숙한 축구팬들에게 朴主永은 「驚異(경이)」 그 자체였다.
스포츠 전문기자들에게도 朴主永은 낯선 얼굴로 다가왔다.
朴主永은 2004년 10월 말레이시아 아시아 청소년(U-20) 선수권대회 우승을 통해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는 올해 초 치러진 카타르 「8개국 초청 국제청소년(U-21)대회」에서 4경기 동안 9골을 쏟아내며 팀 우승을 이끌었다.
2002 韓日월드컵 4강 달성 이후 대표팀의 무기력한 플레이에 실망했던 축구팬들은 「朴主永」이란 새로운 스타 탄생에 열광하고 있다.
기자가 朴主永을 처음 만난 건 지난해 10월 중순이었다.
다시 인터뷰를 한 건 지난 1월29일 청소년 대표팀이 카타르 대회에서 우승 직후 시리아로 전지훈련을 떠날 때였다. 두 번째 인터뷰는 전화로 이뤄졌다. 현지 통신사정이 열악해 다섯 시간 동안 씨름을 했다. 통신 사정도 문제였지만 朴主永이 인터뷰 자체를 꺼려했기 때문이다.
처음 朴主永을 만났을 때 그는 매스컴의 취재 열기에 거의 「녹다운」된 상태였다. 무얼 물어보는 게 미안한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기자들의 반복되는 질문에 건성으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머리는 갈색과 노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단골 미용실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朴主永은 『서울 압구정동에 있는 작은 미용실』이라고 했다. 고려大 조민국 감독의 부인이 『외모에도 신경을 쓰라』며 소개해 줬다는 것이다. 그는 『처음엔 머리에 색깔을 입히는 게 어색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염색 안 하는 게 더 부자연스럽다』고 했다.
이번에 朴主永과 다섯 시간 동안 인터뷰를 하면서 그의 속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됐다. 그는 어른스러웠다. 잠깐의 인기에 휘둘려 자기 일을 잊어버릴 청년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朴主永은 주변의 관심에 대해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마인드 컨트롤을 열심히 하고 있다』고 했다.
『저도 사람인데 자꾸 칭찬만 받으면 우쭐해지죠. 「내가 최고」라면서 자만에 빠지면 안 좋은 쪽으로 빠지게 되겠죠. 한 번 뜨고 나서 자신의 기량을 되찾지 못하는 선배들을 보면서 전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결심했어요. 인기는 잠시, 잠깐이니까. 제가 뭐 연예인도 아니고, 전 공 차는 축구선수인걸요』
―IQ가 150이 넘는다면서요.
『中1 때 IQ 테스트해서 전체 1등을 먹었습니다. 정확한 수치는 사실 잘 몰라요. 아마도 150을 오락가락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IQ랑 축구랑 무슨 상관이 있죠? 공부를 한 것도 아닌데』
―상관이 전혀 없는 건 아니죠. 축구선수도 머리가 좋아야 두뇌 플레이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듣고 보니 그러네요. 제가 잔머리는 잘 굴리는 편이거든요(웃음). 아, 그러고 보니 제가 경기할 때 볼이 오기 전 미리 상황을 예측합니다. 볼을 잡았을 경우 수비가 어떻게 움직일지 순간적으로 판단을 합니다』
朴主永은 『아직 갈 길이 멀고, 넘어야 할 「산」이 한두 개가 아니다. 지금까지 좋은 플레이를 보여 준 것은 실력보다 운이 많이 따랐다』고 했다.
―그냥 하는 소리죠? 겸손한 척하는 거라고 생각되는데….
『아뇨. 흔히 「운칠기삼」으로 표현하는데 저는 「운오기오」라고 해야 될 것 같아요. 즉 50 對 50이란 소리죠. 골을 성공시킨 것도 많지만 헛발 날린 건 더 많아요. 골을 많이 날려 봤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겁니다.
결정적인 슛 찬스를 날리면 솔직히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반복돼서 현실로 나타나면 이젠 공이 두려워지죠. 또 날릴까 봐. 정말 다행인 건 실패한 골을 만회할 수 있을 만큼 골이 들어갔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운이 좋은 거잖아요』
성남 일화의 김학범 감독은 『朴主永의 슈팅에 헛볼이 없다』고 평가했다. 천부적인 위치 선정과 정확한 임팩트로 골대를 벗어나는 슈팅이 적은데다 골대를 크게 벗어나는 경우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기술도 중요하지만 문전에서의 침착함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한다.
朴主永도 金감독의 이야기에 공감했다. 이런 순간을 카타르 대회에서 실제로 맛보았다고 한다.
『경기를 하면 할수록 점점 좋아지는 느낌이에요. 특히 슈팅 전의 마지막 상황에서 의외로 침착해져요. 그래서 기분이 더 좋아요. 문전에서 서두르지 않고 제가 생각한 대로 플레이를 펼칠 수 있으니까. 이것도 운이 좋은 거 아닌가요』
朴主永은 『상대의 수비가 거칠수록 플레이가 살아난다』고 했다. 심하게 태클이 들어오고 공간을 압박해 들어올수록 볼 감각이 업그레이드된다는 것이다. 국제대회를 치를 때마다 朴主永을 밀착 마크하는 수비수들은 2~3명에서 4~5명으로 늘어난다.
지난해 10월 아시아청소년 선수권대회 중국과의 결승전에선 중국 수비수들이 朴主永을 마크하기 위해 떼로 달려들었지만, 朴主永은 여러 명의 수비수를 제치고 드리블을 해나갔다.
『태클을 심하게 걸어오면 그만큼 제게 공간이 확보돼요. 태클을 걸고 넘어진 수비 선수가 제 자리로 돌아오기까지엔 시간이 걸려요. 그 사이에 저는 이미 앞으로 치고 나가고 있고…, 그래서 상대 선수들이 몸을 날려 수비할 때 저는 오히려 고마운 생각이 들어요』
朴主永은 드리블만을 고집하진 않는다. 수비의 벽에 막혀 있으면 주변의 동료 선수에게 패스를 해주고 나서, 다시 자신에게 볼이 올 수 있도록 이동한다.
청구高 재학 時 朴主永을 조련했던 변병주 감독은 『朴主永은 고등학교 1학년 때는 사이드 어태커, 2학년 때는 미드필더, 3학년 때는 스트라이커로 성장하면서 경기 운영 면이나 슈팅 감각, 드리블 등이 완숙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했다.
『朴主永은 여러 포지션을 두루 거쳤어요. 기회가 나기만을 기다리는 다른 골잡이들과 달리 패싱력이 뛰어나요. 특히 상대 선수의 압박이 심해질 때 朴主永에게 2선에서 침투하는 역할을 맡기면 훌륭히 소화해 냈습니다. 창조적인 플레이가 가능한 선수였지요. 머리가 좋다는 걸 축구장에서 보여준 선수였습니다』
朴主永은 고교 3학년 때 최전방 스트라이커로 보직을 바꾼 후 4개 대회에 출전해 모두 득점왕을 차지했다. 그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고, 침착한 경기 운영으로 팀을 이끌어갔다. 「전담 프리킥 키커」라는 책임감에 경기 이후에 혼자 남아 별도로 연습을 할 만큼 근성을 발휘했다.
고교 시절 남다른 기량을 보인 朴主永은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프로 축구단이 아닌 일반 대학을 선택했다. 朴主永은 『부모님 때문』이라고 했다.
『부모님은 돈보다 대학 졸업장을 더 원하셨어요. 저도 동감했고요. 가정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는데도 부모님은 돈에 욕심을 내지 않으셨지요. 쉽게 갈 수 있는 길 대신 어렵게 돌아가는 길이라고 해도 더 먼 미래를 내다보셨던 겁니다』
고교 랭킹 1위의 골잡이였던 朴主永은 졸업 당시 여러 프로팀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다. 당시 朴主永의 진로를 담당했던 변감독은 『너무 많은 「콜」을 받아 행복한 비명을 질렀을 정도』라고 했다. 변감독의 말이다.
『(주영이 부모님은) 대학에서 1, 2년 정도 뛰다가 프로에 진출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하셨어요. 고려大를 다니다가 졸업 전에 스페인과 울산현대로 이적한 이천수와 최성국을 모델로 꼽았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레 고려大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제 입장에선 제 모교인 연세大에 가도 좋다고 생각했지요. 고려大와는 라이벌 관계라 상황이 참 애매했습니다. 선택은 朴主永과 부모님의 몫이었고 결국 고려大로 결정나는 바람에 저는 그 뜻을 존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朴主永의 아버지 박필용씨는 대구에서 개인택시를 운행했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불구하고 모 대학 音大에서 피아노를 전공하는 딸과 운동하는 아들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쉬는 날이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아버지 박필용씨는 아들에게 대학 진학을 권했다. 지금은 몸이 좋지 않아 잠시 운전대를 놓은 그는 『한 순간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반짝 선수」가 아닌 命(명)이 긴 선수가 되어 주길 바라기 때문』이라고 했다.
朴主永이 뜨자 매스컴과 네티즌들은 朴主永의 성인대표팀 합류에 대해 설문조사를 벌였다. 본프레레 감독의 월드컵팀이 안고 있는 골 결정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朴主永을 당장 성인팀으로 보내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됐다.하지만 본프레레 감독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朴主永의 경험부족과 신체조건, 체력을 거론하며 『훅 불면 날아갈 것 같다』고 표현했다. 키 182cm에 몸무게 70kg인 朴主永의 체격으로는 성인대표팀에서 외국 선수들을 상대하기 버겁다는 것이었다.
朴主永은 본프레레 감독의 이같은 평가에 대해 대해 서운함을 감추지 않았다.
『본프레레 감독님의 판단을 제가 뭐라 할 입장은 아니라고 봐요. 경험이 미숙하다는 지적은 당연한 말씀이죠. 아직 나이가 어리니까 성인팀의 선배들처럼 많은 경험을 할 수 없었거든요. 하지만 신체와 체력에 대해서는 할 말이 있어요. 저는 지금까지 체력이 부족해서 경기를 못 뛴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체력만큼은 자신 있습니다』
고교 은사인 변병주 감독도 본프레레 감독의 판단에 이의를 제기했다.
『朴主永이 성인대표팀에 합류해도 체력은 전혀 문제가 안 됩니다. 대표팀에 도움을 주는 역할을 충분히 소화해 낼 겁니다. 주영이가 한국 축구를 짊어질 가능성 있는 선수로 평가한다면 당연히 성인대표팀에 합류시켜 키워야 합니다. 성인팀의 주전들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만큼의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물론 걱정도 있습니다.
만약 감독이 실수를 용납하지 않고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면 주영이는 분명 크게 상처를 받을 겁니다. 갖고 있는 재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게끔 배려와 믿음을 심어 줘야 기대 이상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변감독은 『개인적인 성공을 위해서가 아니라 한국 축구를 위해서 主永이를 키워야 한다』라고 했다. 「팀을 이끌고 있는 감독의 개인적 평가에 따라 싹이 잘릴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였다.
朴主永은 성인 대표팀에 선발된 적이 있었다. 지난해 4월 파라과이戰을 앞두고 18세 9개월의 나이로 성인 대표팀에 발탁돼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었다. 그때의 느낌을 朴主永은 이렇게 풀어냈다.
『처음 청소년 대표팀에 합류했을 때도 진짜 힘들었어요. 고등학교에선 수비 신경 안 쓰고 골만 넣으면 됐는데 대표팀에선 공격은 물론 수비에도 신경을 써야 하더라고요. 그게 처음엔 적응이 안 됐던 거죠. 그런데 성인팀에선 더더욱 정신이 없었어요.
훈련 방법이 또 틀렸거든요. 이미 정상에 올라선 선배들 틈에서 숨조차 크게 못 쉴 정도였어요. 월드컵 때 목이 터져라 응원했던 선배들과 함께 생활한다는 점에서 행복했지만 현실에선 조심스럽기만 한 하루하루였습니다』
朴主永의 성인대표팀 합류 문제와 함께 진로도 축구팬들에게는 큰 관심사다. 현재 「K-리그」의 웬만한 팀에선 朴主永을 영입하기 위해 다양한 「당근」을 내놓고 있다. FC서울은 고려大에 인조잔디 구장을 마련해 주기로 해 공사가 진행 중에 있다.
「포항」은 朴主永이 高1 때 연고지 팀이란 이유로 朴主永을 브라질로 10개월간 유학을 보내주기도 했다. 울산 현대는 고려大 조민국 감독과의 인연을 내세우며 기대를 걸고 있고, 수원 삼성도 적극적으로 朴主永 영입에 공을 들이고 있다. 네덜란드에서 활약 중인 박지성의 이전 소속팀이었던 J리그의 교토 퍼플상가는 지난 가을, 실무 책임자가 訪韓해 고려大 조감독을 만난 적도 있었다.
朴主永은 자신의 진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朴主永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언제일지는 몰라도 유럽 프로팀에서 뛰어보고 싶다』고 했다.
『목표는 변함이 없는데 과정이 오락가락하거든요. 혼자 결정할 부분도 아니고. 일단 올해까지는 학교에 있을 것 같아요. 올해 고려大가 100주년이 되는 해라 高延戰에 꼭 나가야 돼요. 그 다음은 아직 구체적으로 결정된 게 없습니다』
朴主永은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그는 경기에서 득점을 한 후 운동장에서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한다.
『제가 축구를 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축구를 통해 선교를 하는 거예요. 만약 기도 세리머니를 보고 감동받아 신앙에 관심을 나타내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생긴다면 저는 성공한 겁니다. 누가 뭐라 해도 그라운드에서 유일하게 표현할 수 있는 크리스천의 모습을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20세 젊은 朴主永에게 『여자 친구가 있느냐』고 물었다.
『하하, 있을 수 없죠. 이렇게 (외국으로) 돌아다니는데 어떻게 여자 친구를 사귀겠습니까』
―대학에서 선수생활을 하다 보면 술을 마실 기회도 있는데….
『운동하다 보면 그런 자리 가끔 있지요. 하지만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입만 대는 수준이죠. 고려大 신입생 환영회 때 전통으로 내려오는 「사발식」을 할 뻔했지만 마침 청소년 대표팀에 선발되는 바람에 못 해봤죠. 그래서 선배들이 잔뜩 벼르는 중이에요. 언젠가는 마시게 할 거라며, 하하』
朴主永이 축구 외에 잘하는 거라면 「싸이질」이다. 미니 홈페이지를 관리하고 있는데 최근 방문객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게시판과 방명록에 수많은 글들이 올라와 있다. 처음엔 일일이 답변도 달아놓고 팬카페에 글도 남기고 했는데 지금은 엄두조차 나지 않는 상황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인기를 얻으면 가족들까지 매스컴에 등장하며 다양한 인터뷰를 쏟아낸 것에 비해 朴主永의 가족은 조용하다. 어머니 김옥란씨는 인터뷰를 요청하는 기자에게 『할 말이 없다』고 했다.
가족 중 유일하게 통화가 되는 朴主永의 작은아버지 박수용씨는 『주영이한테 영향을 미칠까 봐 조심스러워 그런 것』이라며 기자의 양해를 구했다.
『언론에서 너무 과하게 포장을 하니까 걱정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주영이는 아직 스무 살이에요. 아무 결정이 나지 않은 선수의 진로를 들먹이며 몸값이 60억이니 70억이니 운운하는 데는 정말 할 말이 없습니다. 형님네 가족들은 「제발 주영이가 축구에만 전념할 수 있게끔 좀 가만 놔뒀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진실로 선수를 위한다면 말입니다』
朴主永도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해 10월 이후 인터뷰를 자제하며 축구에만 매달려 왔다. 朴主永은 『시리아에 있을 때 인터넷이 안 돼 제 기사가 어떻게 나오는지 알 수 없었는데 오히려 그런 환경이 편했다』고 했다. 외국 생활이 고달픈 건 사실이지만 매스컴과 인터넷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어 축구에만 집중할 수 있다며 만족감을 표현하기도 했다.
축구 선배들도 「朴主永 신드롬」을 「기대半 우려半」의 심정으로 지켜보면서 충고도 잊지 않았다.
전남의 황선홍 코치는 『스타덤에 올랐을 때 자만하지 말고 더 조심해야 한다』며 『분명 큰 재목으로 성장할 선수니 주위에서도 주영이가 운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했다.
현재 성인대표팀에서 키플레이어로 활약하는 박지성도 자신의 경험담을 끄집어내며 이런 조언을 보냈다.
『저도 지난 韓日월드컵 때 지하에 숨어야 했을 만큼 인기 몸살을 앓았던 적이 있었어요. 외출은 꿈도 꾸지 못했죠. 그럴 때 중심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해요. 언론의 표적이 되다 보면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거든요』
朴主永은 언론을 통해 축구 선배들의 다양한 충고와 조언들을 겸손히 받아들였다. 자신이 걷고 있는 과정을 이미 체험한 선배들이라 더더욱 마음에 와 닿는 내용들이라고 한다. 朴主永은 「축구선수이기 전에 인격적으로 훌륭한 사람이 돼야 한다」는 말을 가슴에 새기고 있다.
『경기 전 애국가가 나올 때마다 가슴이 뭉클해져요. 축구선수가 된 걸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순간이죠. 그게 자부심이고 사명감입니다. 그래서 태극마크가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해요. 언제까지 이 「훈장」을 차게 될지는 몰라요. 하지만 축구선수로 뛰는 한 이 태극마크를 지키기 위해 모든 걸 바칠 겁니다』
朴主永은 이회택·차범근·최순호·황선홍을 잇는 한국 축구의 스트라이커 계보에 자신의 이름이 등장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런 평가를 받을 만한 단계도, 실력도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朴主永은 위대한 축구선수로서의 욕심이 분명 있다.
『朴主永의 색깔을 잃지 않을 거예요. 제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고 싶어요. 당분간 조용히 지켜만 봐주시면 좋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