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캐나다 토론토에 사는 운영자 서설희씨가 귀국했을 때 모인 배토미사 회원들.
『대체 일본 여성들이 왜 저렇게 배용준에게 빠질까?』
『과연 욘사마 열풍이 언제까지 갈까?』
욘사마 열풍이 쉽게 식지 않을 거라고 짐작되는 일이 기자의 주변에서 일어났다. 기자의 후배인 J항공사 스튜어디스 이신정(33)씨는 2년 전 기내에서 만난 일본인 남성(31·건축전문가)과 장래를 약속하고 교제를 해 왔다.
대학교수인 남자친구의 아버지와 대학병원 수간호사인 어머니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혀서 결혼을 거의 포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전격적으로 결혼 허락이 떨어져서 2004년 12월24일 결혼식을 올리게 됐다.
시어머니 될 분이 「겨울연가」를 보고 배용준 팬이 되었고, 한국에 대한 인식이 달라져서 성사된 일이다. 이신정씨는 『나도 배용준 팬이지만, 배용준씨 때문에 결혼까지 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며 행복해 했다.
배용준의 골수팬들이 모여 있는 인터넷의 「배토미사 카페」에 들어가 회원들에게 「일본 여성들이 왜 아우성인지, 욘사마 열풍이 어떻게 될지」 질문을 했다. 그들은 이런 답변을 내놓았다.
『배용준에게 안 빠지는 게 이상한 거 아녜요? 우리는 일본 팬들보다 더했어요. 시간이 지나면 욘사마 열기가 좀 가라앉겠지요. 하지만 쉽게 가라앉지는 않을 겁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처럼 평생 같이 갈 팬들이 형성될 겁니다』
채팅에 응해 준 30~40代 주부 팬들은 한결같이 『우리는 예전에 연예인을 좋아한 적이 없다. 가끔 나 자신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배용준이 너무 좋다. 그는 특별하다. 나의 감성을 일깨웠다. 일본 팬들이 춘천에 와서 청소하는 거 전부 이해된다. 배용준을 위해서라면 뭔들 못 하겠나』라고 했다.
2004년 4월 일본에서 배용준씨를 만나 「팬들과의 유대관계가 유달리 끈끈한 이유가 뭐냐」고 묻자 그는 『우리는 마피아』라고 했다. 배용준씨는 어디서나 팬들을 『우리 가족』이라고 부른다.
한국 팬들은 『우리는 그의 보호자이고 그와 가족이다. 우리는 마피아보다 더 끈끈하다』고 말한다. 포털사이트 다음(Daum)에서 「배토미사」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서설희씨는 『우리 팬들은 평생 간다. 우리는 배용준을 끝까지 보호할 거다』라고 했다.
배용준씨 한국 팬의 수는 과연 얼마나 될까. 배용준씨의 매니저 양근환 실장은 한국 배용준 공식 홈페이지(www.byj. co.kr)의 회원은 4만~5만 명 정도라고 했다. 일본 배용준 공식 홈페이지 회원은 현재 20여만 명이라고 한다.배용준 팬들이 운영하는 국내 홈페이지는 대략 30개에 이르는데, 그 가운데 회원들의 교류가 활발하게 이뤄지는 홈페이지는 10여 개다.
팬들이 운영하는 홈페이지 가운데 가장 회원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곳은 다음(cafe.daum.net)의 배용준 카페(/byj)로 회원이 3만8553명이다. 배용준 팬카페(/byjfan)는 8661명, 「배토미사」(/byjintoronto·배용준을 사랑하는 토론토 미녀 사총사)는 4968명, 「배사아모」(/llovebyj·배용준을 사랑하는 아줌마들의 모임)는 4671명이다. 연예인 홈페이지 가운데 가장 수준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시티오브용준」(www. yongjunie. net)의 하루 방문자는 6000~7000명 정도라고 한다.
배용준 팬들은 『우리 팬들은 20代부터 70代까지 나이 분포도가 넓다. 인터넷을 접하지 않는 사람들 중에도 배용준씨 팬이 많다』며 『배용준을 닮아 조용하고 드러내는 걸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아 팬들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배용준 팬들 가운데 『평생 팬이 되어 배용준을 보호하겠다』는 한국 팬의 수는 과연 얼마나 될까. 시티오브용준을 운영하는 정윤희(35·ID 제크)씨는 1만 명 정도 될 것으로 추산했다. 배토미사 회원 30여 명과 채팅했을 때 『아마도 5000~1만 명, 혹은 2만 명 정도』라는 답변이 많았다.
팬들은 『골수팬 가운데 다수는 배용준씨가 처음 데뷔하던 1994년부터 지금까지 그의 곁을 지키고 있다. 평생 가는 건 어렵지 않다』고 했다.
배용준씨에 대한 팬들의 호칭은 다양하다.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용준님」이라고 부른다. 홈페이지마다 호칭이 조금씩 다른데 나이가 좀 많은 팬들은 주로 「우리 주니」라고 부른다. 『나는 배용준 팬이 아니라 배용준 편이다. 영원한 그의 편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배용준 팬들은 대부분 마니아급이다. 배용준 팬들의 90% 이상은 여성들이다.
주변에서 『일본 여성들이 DVD를 사서 「겨울연가」를 몇 번씩 보며 눈물 흘리고, 배용준씨 때문에 삶의 희열을 느낀다고 말하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이미 한국 팬들이 다 경험한 일이다.
필자는 『가슴이 절절해지는 드라마』라는 소문을 듣고 「겨울연가」를 본 이후 예전과 다른 팬 문화가 신기해 배용준 공식 홈페이지를 3년간 죽 지켜봤다.
「겨울연가」는 2002년 1월부터 3월까지 KBS에서 방영됐다. 40%대였던 「여인천하」의 시청률을 20%대로 끌어내리며 「겨울연가」는 방영 4회 만에 1위를 기록했다. 「겨울연가」 방영시간에 홈쇼핑이 50% 이상 줄기도 했다.
그 즈음부터 인터넷으로 드라마 다시보기가 가능해 「겨울연가」는 TV보다 인터넷으로 다시 본 사람이 더 많다. 그 드라마를 통해 「배용준 신드롬」이 형성되었다. 「겨울연가」가 방영될 때 배용준이 두른 꽈배기 목도리가 불티나게 팔렸고, 남자는 물론 여자들까지 배용준씨의 바람머리 스타일에 염색을 하느라 미장원들이 때아닌 호황을 누렸다. 일본에는 배용준 가발이 인기였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미장원으로 달려간 것이다.
「겨울연가」가 방영될 때 KBS 「겨울연가」 홈페이지는 하루에 접속수 1000만 회가 넘어 다운되는 일까지 있었다. 요즘 드라마가 방영되면 「폐인」을 자처하는 시청자들이 몰려다니는데, 그 시초가 「겨울연가」이다.
당시 웬만한 글은 조회수가 1만 회를 넘어갔고, 하루에 올라오는 글이 수백 개가 넘었다. 배용준 얼굴을 그려 홈페이지에 수시로 올리는 팬들도 있었다. KBS 홈페이지에 아직도 보관되어 있는 「겨울연가」 코너는 2003년 1월30일까지 운영되었는데, 게시물이 26만1116개나 된다.
팬들의 얘기는 다양했지만 한 가지로 귀결됐다. 『첫사랑을 그린 「겨울연가」를 보고 잃어버린 감성을 되찾았다. 바쁘게 살다가 내가 누군지 문득 뒤돌아보게 됐다』는 얘기였다. 그와 함께 『촬영장을 따라다니느라 생활이 안 된다. 하루 종일 「겨울연가」에 빠져 있다. 꿈을 꾸는 것 같다』는 얘기가 主를 이루었다.
그와 함께 『배용준과 역할이 딱 맞다. 다른 배우였다면 다른 분위기의 드라마가 되었을 것』이라는 얘기가 많았다. 윤석호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배용준에게 순정만화 주인공, 백마 타고 온 왕자의 이미지가 있다. 이 드라마에서 그런 모습을 극대화했다』고 말했다.
「겨울연가」를 보면서 팬들은 스스럼없이 『배용준이 마음속의 연인이 되었다. 이제 그와 헤어질 수 없다』는 고백을 했다. 『현실에서 이런 남자를 만날 수 없으니 그를 멀리서 평생 좋아하겠다』, 『내 남편을 사랑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내 남편이 내 취향은 아니다』, 『나는 배용준 같은 남자를 만날 만한 처지가 아니기 때문에 배용준을 평생 좋아하는 것으로 내 갈증을 채우겠다』는 과감한 고백도 있었다.
73세의 在美교포 여성은 「겨울연가」를 통해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다는 고백을 담은 장문의 편지를 올리기도 했다.
「겨울연가」는 종영 이후 언론의 관심에서 사라졌고, 언론 인터뷰를 하지 않는 배용준씨의 소식도 자주 접할 수 없었다. 하지만 배용준 팬들의 활동은 「겨울연가」가 끝난 이후 더욱 맹렬히 타올랐다.
「겨울연가」가 끝나자 배용준씨에게 매료된 팬들은 배용준 공식 홈페이지에 집결했다. 이전과 다른 현상은 아줌마들이 인터넷에 대거 등장하여 「배용준이 이래서 좋다」며 연일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그러자 2002년 3월31일 「엔젤」이라는 팬이 쓴 「용준 오빠에게 별 도움이 안 되는 공식의 아줌마 팬들」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홈피가 동네 아줌마 수다방 같다. 「아줌마 팬도 많다」와 「아줌마 팬이 대부분」이라는 건 분명한 차이가 있다. 정말 배용준을 좋아하고 아낀다면 조심해 달라』는 주문을 했다. 그러자 즉각 「jean」이라는 아줌마 팬이 반박문을 올렸다.
『아줌마라는 사람들, 아무리 인터넷 공간이지만 자신을 밝히고 얼굴을 내민다는 것은 큰 용기와 결심이 필요합니다. 그런 아줌마 팬들은 용준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구요? 용준님의 심플하고 쿨한 이미지에 아줌마의 이미지가 안 어울려 젊고 예쁜 아가씨로서는 속상할 수도 있지만, 제 생각엔 그의 곁에 오래오래 있을 사람들은 아무래도 뜨거운 젊은 피보다는 따사로운 아줌마들의 넒은 맘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소망」이라는 팬은 『우리는 사랑을 경험했고, 배용준씨가 우리의 사랑을, 사랑의 추억을 완성시켰기 때문에 열광하는 겁니다. 그리고 아줌마는 특이한 인종도, 연구 대상도 아닙니다』라고 썼다.
배용준 팬들은 뜨거운 공방을 벌인 끝에 『시시콜콜한 가정사는 접어두고 배용준에 대해서만 논하자. 아줌마든 처녀든 누구나 배용준의 팬이 될 수 있다』로 결론내리고 10代부터 60代까지, 그야말로 할머니와 손녀가 한 공간에서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배용준 팬들은 「겨울연가」의 감동적인 장면을 홈페이지 게시판에 계속 올려 감동을 나누었다. 뿐만 아니라 이전에 출연했던 모든 작품을 다시 논하기 시작했다.
배용준씨가 한 줄이라도 언급된 모든 기사들이 속속 공식 홈페이지에서 다시 뉴스가 됐다. 이와 함께 예전에 보도된 사진과 CF 장면들도 모두 새로 선보였다.
「겨울연가」가 끝난 지 6개월이 지난 2002년 10월경에 배용준 공식 홈페이지는 하루에 1000여 개의 글이 올라오고 그 글에 대한 리플이 5000개 이상 되었다. 이 글들을 조회한 횟수를 합치면 30만 건이 훌쩍 넘을 정도였다.
배용준 팬들은 공식 홈페이지에서 대화를 하면서 뜻맞는 사람들끼리 따로 홈페이지를 만들기도 했다.대개의 동영상과 사진 자료들은 컴퓨터에 능한 팬들에 의해서 再가공되었다. 동영상을 장면장면 캡처하여 사진으로 포스터, 카드, 시간표, 편지지, 움직이는 슬라이드 등 다양한 작품을 만들어 선보였다. 팬들은 이렇게 만든 작품들을 모아 교보문고에서 영상작품회를 열었다.
컴퓨터에 능한 팬들이 홈페이지에서 각종 강의를 실시하면 팬들이 동시에 실습하는 일도 벌어졌다. 그래서 배용준 골수팬들은 대개 컴퓨터를 능란하게 다룬다.
배용준 팬들은 『만약 「겨울연가」가 끝난 뒤 인터넷이라는 공간이 없었다면 그냥 혼자서 좋아하다 말았을 거』라고 했다. 「시티오브용준」 운영자 정윤희씨는 『일본 사람들이 저렇게 한꺼번에 공항에 모일 수 있는 것은 인터넷을 통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일본은 저작권법이 엄격해 인터넷 사이트에 사진이나 음악을 링크시키지 못한다. 그래서 한국 팬들의 여러 홈페이지에 일본 팬들이 대거 접속하여 배용준 관련 자료를 살펴본다. 『한국 팬 페이지가 외국 팬을 관리하는 측면도 있다』는 게 팬들의 의견이다.
배용준 팬들이 스스로 분석하여 홈페이지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972년생인 배용준씨 또래가 가장 많았다. 전체적으로는 30代가 가장 많고, 20代와 40代가 엇비슷했다. 50代 이상은 많지 않았으나 놀랍게도 1934년생(70세)과 14세도 있었다. 홈페이지를 주도적으로 운영하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시간이 자유로운 전업주부들이다.
시티오브용준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정윤희씨는 남편의 반응이 처음에는 별로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 달에 7만원의 호스팅 비용을 내고, 도메인 사용료를 일년에 한 번씩 내죠. 돈보다도 하루에 두 시간 정도는 홈페이지 관리에 쏟아야 하니, 남편이 못마땅해하는 게 당연하죠. 「겨울연가」할 때 게시판에 어떤 팬의 남편이 「아내가 겨울연가 보면서 매일 울고, 종일 멍하니 앉아서 배용준 생각만 하고 있어서 미치겠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어요. 그랬더니 나도 모르게 남편이 「나는 이 홈피 운영자 남편이다. 나 같은 사람도 있는데 참으라」는 글을 올렸더군요』배용준씨가 야외촬영을 할 때면 열성팬들은 스태프들이 먹을 것까지 싸서 촬영지를 찾는다. 『배용준과 촬영하면 먹을 건 걱정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음식만 전해 주고 못 보고 오는 경우가 많지만, 상관하지 않고 음식을 해 갖고 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팬들이 준비해 가는 음식은 다양한데 솜씨좋은 아줌마 팬은 추어탕 100인분을 끓여 가기도 했다.
「겨울연가」가 시작되기 전인 2001년 6월에 시티오브용준 홈페이지를 만든 정윤희씨는 배용준 팬의 특징을 이렇게 분석했다.
『배용준 팬들은 대개 외곬이에요. 흔들리지 않아요. 조용히 있다가 배용준씨가 나서면 뒤에서 받쳐 주죠. 우리끼리 하는 얘기가 아니라 포털사이트에 가면 다 소문이 나 있어요. 「배용준 팬들은 서로 가족이라고 생각하면서 평생 가는 사람들이다」 이런 얘기가 떠돌고 있죠. 배용준씨가 복받은 거지요. 사람을 끄는 마력이 있어요. 다른 사람이 갖지 못한 강렬한 흡인력을 갖고 있어요. 그건 타고난 거예요』
정윤희씨는 그 비결을 『배용준의 무한한 가능성』 때문이라고 말했다. 로맨틱한 역할부터 악역까지 다 할 수 있는 마스크와 여성의 감성을 뒤흔드는 분위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윤희씨는 일본 여성들의 열기가 쉽게 식지 않을 거라고 내다봤다.
『홈페이지를 운영하던 중에 갑자기 아이가 아파서 수술을 하게 되었어요. 아이가 아프니까 아무 생각이 안 나더군요. 그래서 6개월 정도 홈페이지를 닫았어요. 아이가 수술이 잘 되어 회복되고 마음이 편해지니까 다시 생각이 나는 거예요. 그래서 다시 문을 열었죠. 감동을 받고 마음에 새기면 언젠가는 되살아나요. 일본 여성들이 한풀 꺾여서 배용준씨에게 조금 멀어졌다가도 어느 날 문득 「겨울연가」 주제곡을 듣고 마음이 산란해지면서 다시 찾게 될 겁니다』
배토미사 회원들과 채팅할 때도 배용준 팬은 평소 물밑에서 조용히 있다가 여차하면 나선다고 말했다. 「다크레드」라는 팬은 배용준 팬의 성향을 이렇게 정리했다.
『임진왜란 때 스님들의 활약상 있죠? 평소 땐 산속에서 목탁 두들기고 염불 외고 하다가 위급한 일 생기면 죄다 산에서 내려와 목탁 내려 놓고, 죽창·돌·칼 들고 왜놈 쳐부수고… 끝나면 다시 산으로 올라가 언제 무슨 일 있었냐는 듯 다시 스님의 위치로 돌아가는 거…』
한국 팬들은, 일본 팬들의 열기는 이해하지만 좀 조심해 줬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배용준씨가 지나갈 때 잡아당기고 건드리는 건 정말 화가 나요. 우리는 바로 앞에 있어도 절대 그러지 않아요. 사생활도 없이 얼마나 피곤할까 하는 생각에서 가능한 한 멀찌감치 떨어져서 보려고 하죠. 공식적인 사인회 외에는 괴롭히지 않으려는 것이 우리 팬들의 마음이에요』
배용준씨가 일본에서 CF촬영을 많이 한 것은 일본 팬들이 구매력 있는 중년여성들이기 때문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배용준씨가 모델인 업체의 홍보담당은 설문조사를 하여 우리 제품 구매층들이 『가장 선호하는 모델을 선정했다』고 답했다.배토미사 공동운영자 「트윈맘」이 『74세 된 엘비스 프레슬리 팬클럽 회장이 30년 동안 팬클럽을 이끌어 왔다는 보도를 봤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할 겁니다. 할머니가 될 때까지 배용준씨의 팬으로 남을 거예요』라고 하자 채팅에 참여한 팬들이 모두 동감을 표시했다.
배용준 팬들은 요즘 언론의 보도태도가 못마땅하다고 했다. 동남아에서도 배용준 씨가 엄청난 환영을 받았는데, 부자 나라 일본에서 환영을 받자 그제야 언론이 떠드는 게 못마땅하다는 것이다.
배용준씨가 일본 여성들에게 환영받는 것을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경제적인 부분과 연결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했다. 서설희씨는 한국 언론이 일본 언론처럼 「욘사마」라는 호칭을 쓰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지금 언론에서는 마치 일본 팬들만 있는 것처럼 말하는데, 실제로 동남아에 배용준씨 팬이 엄청나게 많아요. 「욘사마」라고 하면 동남아 팬들이 위화감을 느끼죠』
부산의 한 여성팬이 암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 배용준씨가 문상을 가서 세 시간이나 머물렀던 일은 팬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팬들은 배용준씨가 열심히 살기 때문에 자신들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팬들이 배용준씨의 장점이자 단점으로 꼽는 것은 「지나친 신중함」이다. 그 신중함이 지금까지 단 한 번의 실패도 없이 작품을 이어 왔지만, 휴지기가 너무 긴 건 견디기 힘들다고 했다. 그래서 완전 골수가 아닌 팬들은 기다리다 지쳐서 떠나버린다는 것이다.
배용준의 골수팬들 가운데는 다른 드라마를 안 본다는 사람들이 있었다. 「체리맛사탕」이라는 팬은 시청률이 50%를 육박했던 드라마 「파리의 연인」도 안 봤다고 한다. 다른 팬들은 『기다리다 지쳐 다른 드라마를 보긴하지만 다시 돌아오게 된다. 저 역할을 용준님이 했을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만 합니다』라고 했다.
지나치게 신중한 나머지 앞으로도 작품수가 많지 않을 것이라는 게 팬들의 걱정이다. 서른세 살인 배용준씨가 결혼을 마흔 살에 한다 하더라도 그때까지 서너 작품밖에 더하겠느냐며 한숨을 쉬었다. 그 지나친 신중함이 팬들을 지치게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이 그를 「여운이 있는 배우」로 만들었다고 했다.
「일본 팬들이 앞으로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에 많은 팬들은 『일본에도 동남아에도 미국에도 배용준만 한 인물이 없기 때문에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룰루랄라」라는 팬은 『일본 팬들은 우리가 다 지나온 일을 겪고 있는 것이다. 몇 년 후 골수팬들이 남아 우리처럼 인터뷰에 응하게 될 것이다』라고 예측했다.
일본 팬들의 열기에 대해 「젊은언니」라는 팬은 『인터넷의 확산에 따른 감정표출의 대상이 주니로 낙찰됨』이라고 규정하면서 『주니의 독특한 마스크와 부드러움과 남성미에 매료된 이상 헤어나오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배용준 팬들은 「욘사마 광풍」을 보면서 한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됨됨이나 저력을 봐서 당연한 결과이다. 지금까지 조용히 우리 곁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많은 사람이 좋아하니 조금 거리감이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우리 팬들이 더욱 몸가짐을 잘해야겠다는 각오를 한다. 홈페이지 글도 한줄한줄 책임감을 갖고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까지든 그에게 도움이 되고 힘이 되는 팬으로 남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