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인 랜드의 소설「아틀라스」가 고발하는 反기업·평등주의의 위선과 파탄

기업인과 과학자들이 파업하다!

  • : 권혁철  kwonhc@cf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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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오늘의 한국이다

權 赫 喆
1961년 경기 이천 출생. 성균관大 행정학과 졸업. 獨 쾰른大 경제학 박사. 자유기업원 정책분석실장. 저서 「한국경제의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책」, 「시민운동 바로보기」(共著), 「시장경제 질서와 시민단체-우리나라 시민단체 활동의 문제점」.
에인 랜드의 소설「아틀라스」(전 5권, 민음사 刊)
『그 잘났다는 대학교수, 국회의원, 사장님 전부가 뱃놀이 갔다가 물에 풍덩 빠져 죽으면 남은 노동자들이 어떻게든 세상을 꾸려 나갈 것입니다』
 
  1989년 현대자동차 파업현장에서 당시 국회의원이던 盧武鉉 대통령이 파업 근로자들을 상대로 했다는 말이다.
 
  미국의 자유주의 철학자이면서 소설가인 에인 랜드(Ayn Rand)의 소설 「아틀라스」는 盧武鉉 대통령이 말했던 그런 상황을 그린 소설이다.
 
  이 소설에서는 분배와 형평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사회 풍조에 맞서 창조적이고 능력 있는 기업가·발명가·예술인·학자 등 사회 엘리트들이 자신들의 일을 완전히 접고 비밀의 장소인 아틀란티스로 은둔해 버린다.
 
  「아틀라스」는 1957년에 출간됐다. 이 소설은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국에서는 「미국인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책」에서 聖經에 이어 2위를 차지할 정도로 미국인의 정신세계를 이끌어 온 책이다.
 
  현재 미국의 경제계를 움직이는 지도급 인사들은 1950~1960년대에 에인 랜드의 작품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세대들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인 앨런 그린스펀이다. 그는 박사 과정을 밟고 있을 당시 에인 랜드의 아파트를 자주 찾아 우정을 나누었으며, 그 우정은 1982년 에인 랜드가 作故할 때까지 계속되었다고 한다.
 
  에인 랜드는 1905년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약국을 경영하는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알리사 로젠바움.
 
  그녀는 당시 러시아에 만연했던 집단주의와 신비주의 분위기를 무척 혐오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발발하자 가족이 경영하던 약국은 곧바로 국유화되었고, 에인 랜드의 가족은 하루아침에 알거지 신세로 전락했다.
 
  에인 랜드의 가족들은 정치적 박해를 피해 크림반도로 이주했으나 크림반도 역시 볼셰비키의 수중에 들어가자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내용으로 가득찬 일기장을 불태웠다. 대학에서 역사학과 철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잠시 직장을 가졌다.
 
  우여곡절 끝에 1926년 미국에 홀로 도착한 에인 랜드의 지갑에는 단돈 50달러가 전부였다. 미국에 도착한 직후 할리우드로 가서 필명을 에인 랜드로 짓고 단편을 쓰는 한편, 영화의 단역을 맡기도 하는 과정에서 후에 남편이 된 배우 프랑크 오코너를 만났다.
 
  1943년 그녀를 유명하게 만든 소설 「마천루(The Fountainhead)」를 비롯하여 「국가」, 「파업」 등 많은 작품을 남겼다.
 
  소설 집필 이외에도 그녀는 소설 창작론과 객관주의 철학에 대한 순회강연을 다니며 자기이익과 개인주의가 경제적 관점에서는 물론 윤리적인 측면에서도 매우 가치 있는 것이라는 소신을 역설하였다. 1947년에는 의회에서 열린 「영화계의 공산주의자 침투와 非애국적 행위에 관한 청문회」에 출석하여 증언을 하기도 했다. 1957년 출판된 소설 「아틀라스」의 텔레비전 드라마 대본을 집필하던 중 1982년 3월6일 사망했다.
 
 
 
 객관주의
 
   에인 랜드는 집단주의를 매우 혐오하며 개인주의를 지독히 신봉한다. 자신의 이런 사상을 그녀는 「객관주의」라고 불렀다.
 
  랜드가 말하는 객관주의 철학은 『우리 인간은 어디까지나 자신이 목적일 뿐 다른 사람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아니기 때문에 결코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거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라는 것이다.
 
  객관주의는 정부가 경제를 통제하고 富를 再분배해야 한다는 혼합경제를 거부한다. 철저한 시장경제의 구현을 지상과제로 삼고 있는 것이다.
 
  이 객관주의가 소설 속에서는 이렇게 나타난다.
 
  『내 삶과 삶에 대한 내 사랑을 걸고 맹세하노니 나는 결코 他人을 위해서 살지 않을 것이며 他人에게 날 위해 살라고 청하지도 않을 것이다』
 
  소설의 줄거리는 이렇다. 생산보다는 분배, 경쟁과 성과보다는 평등, 개인보다는 집단이 우선시되는 사회와 정부 아래에서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기업가와 기술자, 학자, 예술가 등 각 분야의 리더들(이하 사회의 리더라고 칭함)은 전체를 위한 희생을 끊임없이 강요당한다. 그러한 강요를 견디지 못한 이 리더들은 세상을 등지고 자기들만의 공동체인 아틀란티스로 차례차례 잠적한다. 아틀란티스는 일종의 비밀도시로서 이곳에서는 개인의 창조력과 자발성이 최대한 보장되며, 「존 골트」가 이 도시의 지도자이다.
 
  이들이 사회를 등지자 사회 전체는 중요한 기능을 잃어버린 채 무능력하고 탐욕스러운 정치가와 기업인, 말만 그럴듯한 사이비 리더들의 수중에서 추락하기 시작한다. 이런 와중에도 남녀 주인공인 행크 리어든과 대그니 태거트는 끝까지 세상을 구원해 보겠다며 孤軍奮鬪(고군분투)하지만, 목숨까지 위협하는 정부의 만행 앞에 행크 리어든도 정부에 빼앗기게 된 자신의 사업장을 폐허로 만든 후 아틀란티스로 떠난다. 홀로 남은 대그니 태거트는 마지막까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全力을 다한다.
 
  그 사이 경제공황과 사회혼란은 극에 달하고, 정부는 아틀란티스의 지도자인 존 골트를 찾아내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임을 깨닫고 대그니 태거트를 미행해서 존 골트를 찾아내 연행한다. 그녀 역시 이 세상을 구원하고자 하는 일이 부질없는 짓임을 깨닫는다. 존 골트를 연행한 정부는 전기고문을 가하면서 자신들을 위해 일해 줄 것을 종용한다.
 
  고문으로 인해 죽음의 위기에 처한 존 골트를 아틀란티스의 사람들이 구출해서 모두 아틀란티스로 들어가 세상의 종말을 기다린다. 마침내 공장의 불빛이 모두 꺼지고 철도가 파괴되고 약탈과 방화로 세상이 무너지는 날, 그들은 세상을 재건하기 위해 돌아온다.
 
 
 
 모터가 꺼져 버린 세상
 
  사회의 리더들은 이렇게 말하면서 잠적한다.
 
  『파업에 대해 많은 얘기들을 들었습니다. 비범한 사람이 평범한 사람들에게 의존한다는 얘기도요. 기업가는 기생하는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을요. 노동자들이 그를 떠받치고, 돈을 벌어 주고, 사치스럽게 살 수 있도록 해준다고요. 그러니 노동자들이 사라져 버리면 기업가에겐 끔찍한 일이 일어날 수밖에요. 좋아요. 나는 누가 누굴 의지하고 있는지 세상에 보여 주자고 제안한 겁니다. 누가 누굴 떠받치고, 돈을 벌어 주고, 생계를 유지하게 해주는지 말이에요. 누군가 사라져 버린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요』
 
  그렇다면 이들 「잘난」 사람들이 모두 없어진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그런대로 꾸려 나가는 세상일까, 아니면 형제애와 평등과 평화가 만개한 세상일까? 그것이 아니라면 빈곤과 약탈과 무질서가 판을 치는 암울한 세상일까?
 
  소설 「아틀라스」에서는 그 세상을 이렇게 표현한다.
 
  『도로에는 불이 꺼지고, 집에는 불씨 한 점 없었으며, 열차 운행이 끊기고, 거리에는 수백 구의 시체가 쌓였다』
 
  이 세상의 모터가 모두 꺼져 버린 것이다. 사람들은 이동수단으로 기차 대신 마차를 이용하고, 먹을 것이 없어 무리를 지어 流離乞食(유리걸식)하는 신세로 전락한다. 이 세상의 마지막 열차가 황야 한가운데에서 멈춰 서자 서부개척 시대의 마차가 다시 등장해 호객행위를 하며 외친다.
 
  『우린 모든 사람에게 자릴 줄 테니까! 약간 혼잡하지만 움직이긴 해. 여기서 코요테의 먹이가 되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鐵馬의 시대는 지나갔어! 우리가 가진 건 평범한 구식 마차뿐이야! 느리지만 확실하지!』
 
  소설이 아닌 현실의 북한에서 이런 일은 벌어지고 있다. 목탄차가 굴러다니고, 철도가 끊기고, 식량이 없어 노약자와 어린이들부터 餓死(아사)를 당하고, 그나마 힘이 남아 있는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외부로의 탈출을 감행한다. 비료공장에선 노동자들이 창고를 털어 훔친 비료를, 기계공장에서는 공장 부속품과 전동기 등 돈이 되는 것은 모두 뜯어 팔기에 바쁘다고 한다. 지난 7월 말에는 東南亞에 은신해 있던 460여 명의 탈북자들이 무더기로 남한으로 들어왔다. 과거 東·西獨이 분단되어 있을 때에도 이와 동일한 현상을 우리는 목격했었다.
 
  세상의 모터가 꺼지는 일이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시장과 자유경쟁을 무시하고 평등과 분배를 강조하며 능력 있는 자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사회의 시스템적인 고질병인 셈이다.
 
 
 
 세상을 이끄는 자들의 파업
 
  모든 파업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무언가를 더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일이다. 임금인상·근로조건 개선 등은 물론이고, 요즈음에는 勞使협상의 대상이 되지도 않는 조건들을 내세우면서 파업에 돌입한다. 근로자 경영참여 요구는 당연시되는 분위기이고, 심지어는 정치적 사안인 이라크 파병반대까지도 파업의 빌미가 되고 있다.
 
  소설 「아틀라스」에서 사회 리더들의 無作爲 파업도 파업이기는 하지만, 이들의 파업은 기존의 파업과는 다르다.
 
  항상 무언가를 더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기존 근로자들의 파업과는 달리 이들은 파업을 하면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들의 존재와 능력을 숨기고 눈에 띄지 않는 一 個 평범한 육체 노동자로서 그날그날의 생계만을 유지할 정도로만 일을 한다.
 
  이들이 이렇게 하는 이유는 자신들이 원해서가 아니다. 이 사회와 정부가 그것을 원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단지 정부와 사회가 요구하는 것을 따르는 것일 뿐이다.
 
  각종의 규제, 분배와 평등, 집단주의와 公共善(공공선)을 앞세우는 정부와 사회의 분위기는 이 사회의 리더들로 하여금 자신의 일을 하지 못하도록 종용하면서 「당신들이 없다면 세상은 훨씬 더 살기 좋은 곳이 될 것」처럼 떠들어 왔으므로, 이제 그들이 요구하는 대로 살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저들의 법칙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들을 만날 땐 문자 그대로 그네들의 가치기준을 지켜 주고 저들이 비난해 마지않는 惡行도 하지 않는 거죠』
 
  여기서 저들이 비난해 마지않는 악행이란 다름 아닌 이런 것이다.
 
  『理性이 惡하다지 않습니까? 우리는 우리가 이뤄 놓은 理性의 작품들을 사회로부터 거둬들였지요. 단 하나의 아이디어도 사람들에게 알려지거나 사용되지 못하도록 할 겁니다.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에게서 기회를 앗아가는 이기적인 惡德이라고요? 우리는 모든 종류의 경쟁에서 철수해서 얼간이들에게 모든 기회를 넘겨줬죠.
 
  富를 추구하는 게 탐욕이고 惡의 근원이라죠? 우리는 더 이상 재산을 모으려고 하지 않아요.
 
  생계를 유지하는 것 이상으로 돈을 버는 것도 사악하다면서요? 우리는 가장 미천한 직업을 갖고 단순히 근육만을 써서 생산활동을 하죠. 지금 당장 필요한 것 이상은 절대 만들어 내지 않아요.
 
  성공은 强者가 弱者를 짓밟아 이룩되는 것이기 때문에 惡하다고요? 우리는 넘치는 의욕으로 弱者들을 괴롭히는 걸 그만두고 저들끼리 잘 살아 보도록 내버려 뒀어요.
 
  고용주가 되는 것도 나쁜 일이죠? 우리에겐 제공할 일자리가 없습니다.
 
  재산을 갖는 것도 惡行이죠? 우리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았어요.
 
  우리는 사람들이 원한다고 말했던 것, 그들이 수세기 동안 美德으로 추구해 왔던 모든 것을 해주었어요』
 
 
 
 한국, 反기업 정서 가장 높아
 
  우리 사회의 분위기는 위와는 무언가 다를까? 우리가 언제 그런 것들을 비난한 적이 있냐고 반문할 수 있을까?
 
  多國籍 컨설팅회사인 액센추어(Accenture)가 2001년 세계 22개국 880개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를 대상으로 실시한 「세계 각국의 反기업 정서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 최고경영자들의 70%가 「국민들 사이에 기업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있다」고 응답했다. 조사대상 22개국 중 한국에서 反기업 정서가 가장 높게 나타난 것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2003년 한국갤럽에 의뢰해 전국 성인남녀 2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한국경제와 기업에 대한 국민의식조사」에서도, 기업에 대해서는 일반 국민의 60%가, 기업인에 대해서는 68%가 부정적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12월 대한상공회의소와 현대경제연구원이 만 20세 이상 성인 1000여 명을 대상으로 「기업 호감도」를 조사한 결과도 100점 만점에 38.2로 낙제 수준이었다.
 
 
 
 모든 문제는 기업가들의 책임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시장규제(자유기업원이 全세계 62개 연구기관들과 공동으로 조사한 「2002년 경제자유지수」 결과), 시장에서의 경쟁 제한은 물론이고 학교에서의 경쟁도 제한하는 평준화 제도 역시 유사한 의식형태이다. 고교 평준화 제도를 개혁하자고 하면 「있는 집 자식들」만 유리해진다며 반대한다.
 
  부자들의 상징이라고 하는 서울 강남구 도곡동 타워 팰리스 앞에서 貧者들을 위한 위령제를 시위 삼아 벌이고, 「부유세」를 신설해 純資産 10억원 이상의 고액 자산가들에게 고액의 세금을 매겨야만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 재원으로는 무상교육, 무상의료를 시행하겠다고 한다. 『부유세에 반대하는 사람은 국민의 0.1%에 불과한 자산가』들이라며, 「없는 자」들에게 복지와 혜택을 주기 위해서는 「있는 자」들의 부담과 희생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태도이다. 소설 속에 나오는 다음의 발언과 너무 흡사한 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오로지 公共의 복지를 가로막는 장애물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公共善을 위한 것, 사람들에겐 그것이 필요합니다. 필요가 우선입니다. 우리는 다른 것을 고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안전, 그거야말로 사람들이 원하는 겁니다. 그들이 원하고 있는데, 그것을 주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단지 부자 몇 명이 반대하기 때문에?』
 
  『헐벗은 대중 앞에 손에 넣을 수 있는 제품이 있을 경우, 재산권이라는 종이 쪼가리 때문에 약탈하지 않으리라 기대하는 것은 바보짓이죠. 재산권은 미신적 습관일 뿐이에요. 어떤 사람이 재산을 소유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을 탈취하지 않는 다른 사람들의 호의 때문이죠. 사람들은 언제라도 그 재산을 탈취할 수 있어요. 그렇게 할 수 있는 데도 그렇게 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는 뭡니까?』
 
  『그렇게 해야지요. 그들은 그 재산이 필요하지요. 고려할 만한 유일한 기준은 필요입니다. 만약 사람들이 궁핍에 시달린다면 우선 필요한 것들을 탈취하고 나중에 그런 행위에 대해 이야기해야 합니다』
 
  한국사회에서 영향력이 상당히 큰 某 시민단체의 간사였던 한 人士의 글을 보면 우리 사회의 기업에 대한 시각을 읽을 수 있다.
 
  『재벌은 구조화된 사회 불평등의 원인이며 민주주의의 진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요인이다. …재벌문제의 해결은 우리 사회에서 정치 민주주의와 경제 민주주의의 실현, 시민사회의 건전한 발전을 위한 핵심 과제이다』
 
  탐욕적이고 이기적으로 이윤추구만 하는 재벌만 없었다면 한국사회는 부정과 부패가 사라지고 정치적 자유를 만끽하면서 경제적 번영을 누리고 있을 것이라는 얘기이다.
 
  소설 「아틀라스」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신문에서는 이 나라의 문제가 바로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부자 기업가에게서 비롯된다며 비난을 퍼부었다.
 
  국민들을 굶주리게 하고 겨울에 더욱 추위에 떨게 하며 가계를 파탄에 몰아넣는 바로 그런 사업가들만 아니었다면, 그들이 나라의 법을 어기지만 않았더라면, 이 나라는 벌써 번영을 누리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자신의 이윤 추구 외에는 어느 것에도 신경 쓰지 않는 자. 이 마지막 말은 자세한 설명도 달지 않았다. 마치 「자기 이윤 추구」는 그 자체가 상표처럼 굳어져, 굳이 따로 설명이 필요 없는 단어로 간주되었다』
 
 
 
 기업을 경영하는 것은 시민단체?
 
  얼마 전 열린당의 廉東淵(염동연) 의원은 신입사원 선발時 회사 연고지의 대학 졸업생을 우선 채용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고용정책 기본법 개정안」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지방대 졸업생은 수도권 대학 졸업생보다 노동시장 진입률이 낮기 때문에 할당제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여성할당제가 나오고 대학입시에 지역할당제가 도입되더니, 급기야 私기업 신입사원 선발에도 할당제를 도입하여 이제 신입사원도 기업이 마음대로 뽑을 수 없는 시대가 오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앞으로는 소득계층별로 차별을 받는다고 소득계층별 할당제, 학력별 차별을 받는다고 학력별 할당제, 연령별 차별을 받는다고 연령별 할당제 등이 도입되지 않을까? 요즈음에는 외모 때문에도 차별을 받는다고 하니 외모별 할당제가 나오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하기야 『냅둬유. 기업이 뭐 지껀가』 하는 그 기사에 대한 한 네티즌의 댓글이 정답인 듯도 하지만, 그렇게 「냅두고」 넘어갈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이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권력과 영향력을 갖고 있으며, 그 부작용이 극심하다는 점이다. 기업의 경영에 대한 정부와 사회의 간섭에 대해 소설 「아틀라스」에서 능력 있는 천재 기업가였던 프란시스코 단코니아는 기업을 경영하는 것은 기업가가 아니며 실제로는 경영에는 문외한이거나 무능한 정부관료들과 평등과 박애를 주장하는 시민사회단체 및 사회사업가들이라면서 이렇게 토로한다.
 
  『내가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았을 때, 全세계의 산업 시스템과 거래를 시작했을 때, 나는 의심은 했지만 너무나 기괴해서 그 존재를 믿을 수 없었던 惡의 본질을 꿰뚫어 보기 시작했던 거야.
 
  엄청난 기계들과 1000t 용량의 용광로들, 대서양 횡단 케이블과 마호가니 가구가 갖추어진 사무실, 막대한 주식거래와 번쩍이는 전광판, 힘과 富를 갖춘 세계의 모든 기업들이 은행가나 이사진에 의해 경영되는 게 아니란 걸 알았어. 실제로는 수염도 깎지 않은 채 지하 맥주홀에 앉아 있는 박애주의자나 악의에 가득 찬 얼굴을 한 뚱보들이 기업을 경영하더군. 미덕은 미덕을 갖췄기에 벌받아 마땅하고, 능력은 무능력을 벌어 먹이기 위한 존재일 뿐이고, 인간은 他人들을 위해서만 존재할 가치가 있다고 설교하는 이들 말이야』
 
 
 
 의사는 환자의 도구?
 
  우리나라의 의료보험 및 의료분야에 대한 통제 또한 만만치 않다. 모든 의료기관은 강제로 건강보험 지정기관이 되어 의료보험 환자를 의무적으로 받아야만 한다. 의료보험은 原價에도 못 미치는 의료비를 지급하고, 어떤 질병에는 어떤 약을, 어떤 수술을 해야만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의료비를 주지 않거나 삭감한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의료의 公共性을 강조하면서 의료행위를 통해 돈을 버는 것은 부도덕한 짓이라고 비난을 한다.
 
  「왜 의사의 소득이 일반 근로자들의 소득보다 높아야 하는가」하고 흥분하는 의료분야 교수도 있다고 한다.
 
  이런 현실과 대비해 소설 「아틀라스」에서 핸드릭스 박사가 우연히 아틀란티스에 들른 대그니 태거트에게 하는 말을 읽어 보자. 핸드릭스 박사는 의료분야가 정부의 통제하에 들어가자 아틀란티스로 잠적해 버린 세계적인 뇌수술의 전문가이다.
 
  『의료분야가 종속되기 전에, 사람들이 그렇게 될 경우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점에 대해 토론하는 걸 나는 보았어요. 다만 의사들의 욕구를 빼놓았죠. 오직 환자들의 복지만을 고려하는 겁니다.
 
  도대체 누가 그걸 제공하는지에 대해선 손톱만큼도 생각지 않고요. 의사가 어떤 종류의 권리나 욕구, 선택의 여지를 가질 수 있다는 점은 부적절한 이기심으로 여기더군요. 의사의 몫은 선택하는 게 아니라 그저 봉사하는 것이라고 그들은 말했죠.
 
  나를 노예화하고, 내 일에 제 멋대로 간섭하고, 내 의지를 통제하고, 내 양심을 농락하며, 내 이성을 질식시킬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그들의 뻔뻔스러움에 대해 나는 종종 놀라곤 했습니다』
 
 
 
 『기업은 사회적 이익을 우선 고려해야』
 
  소설 「아틀라스」에서 집단주의와 평등주의에 물든 정부와 사회가 기업인들에게 요구하는 기업은 어떤 기업일까?
 
  소설 속에서 부패하고 무능한 기업가인 제임스 태거트는 『누군가를 돕기 위해서가 아니라 돈을 벌고 싶어 사업을 벌이고 추진한다』는 여동생 대그니 태거트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런 태도는 非현실적이야. 이익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탐욕은 옛날 말이야. 무슨 사업에서든 사회의 이익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야』
 
  우리나라에서 기업을 바라보는 시각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기업의 목적이 이윤의 창출이며, 이를 통해 근로자들에게는 일자리를 제공하고 국가재정을 확충하는 것이라는 시각을 가진 국민은 전체의 9%에 불과하다.
 
  얼마 전 실시된 「기업의 목적이 무엇이라 보는가」란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46%가 「기업의 목적은 근로자의 복지향상」이라고 답했고, 32%는 「이윤의 사회환원」이라고 응답했다. 그리고 13%의 응답자는 「기업의 목적이 소비자의 후생향상」에 있다고 답했으며, 나머지 겨우 9%만이 「기업의 목적은 이윤창출」이라고 답했다.
 
  다른 설문조사를 보면 1993년과 2004년 사이에 「기업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응답은 58.4%에서 39.9%로 줄어든 반면에 「나쁘다」는 응답은 41%에서 49.3%로 증가했다.
 
  우리나라에서 기업에 대한 반감, 기업의 목적에 대한 沒理解는 이미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런 사정으로 볼 때 기업인들이 우울증에 걸려 있다는 진단이 나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기업하는 기업인이 죄인시되고, 기업이 이윤을 창출하는 것이 죄악시되는 사회에서 투자가 촉진되고 새로운 富를 창출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마치 나무에서 물고기를 구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기업들이 신규투자를 하지 않아 지난 4년간 국내 기계설비가 48조원이나 줄어들었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귀결이다. 국내 투자는 이렇게 부진한 반면 해외 직접투자는 지난 상반기에만도 66%나 증가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곱씹어 볼 대목이다.
 
  소설 「아틀라스」에서 분배와 평등을 내세우던 정부는 「기회균등법」을 공포하고 시행한다. 「기회균등법」이란 경제적 약자나 중소기업들을 보호하기 위해 특정 기업체의 시장점유율은 물론 제품의 생산량이나 판매처와 판매량, 원자재 확보량까지도 인위적으로 제한하고 명령하는 법을 말한다.
 
  이 법이 통과되자 優秀(우수) 철도회사의 경우에는 劣等(열등)한 철도회사에 균등한 기회를 주기 위해 일부러 低速(저속)으로 열차를 운행해야 하고, 우수한 철강회사는 열등한 철강회사의 용광로 당 생산성에 맞추어 생산량을 제한받는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진다.
 
  「기회균등법」에 찬성하는 자들은 정부 관료들과 얼치기 기업인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무능을 「기회라고는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탓」으로 돌린다. 하지만 알고 보면 그들의 불만은 경쟁에서 탈락한 데 대한 불만이고 경쟁자들에 대한 미움과 질투이다.
 
  『왜 우리는 불확실성을 추구하는 몇몇 탐욕스러운 자들의 즐거움을 위해 희생되어야 합니까?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영웅 숭배 따위도 사라져야 합니다! 영웅이라고요? 그들은 역사적으로 볼 때 해를 끼치는 것말고는 아무것도 한 게 없습니다. 그들은 인간이 한순간의 휴식도 없이, 힘든 경주를 하게 만들었고, 안정을 앗아갔습니다.
 
  그들을 따라잡기 위해… 끝없이… 우리는 항상 뛰고, 그들은 항상 저만큼 앞서 있고…. 우리에게는 아무런 기회도 남겨놓지 않고… 그들은 우리에게 아무런 기회도 주지 않았습니다』
 
 
 
 책의 발행부수를 제한하라
 
   이러한 「기회균등법」을 산업분야뿐 아니라 문학에까지 적용해야 한다는 더 우스꽝스러운 주장도 나온다. 바로 밸프 유뱅크란 자로 그는 그 시대의 문학 지도자로 추앙받는 인물이지만, 지금까지 3000부 이상 팔린 책은 한 권도 발표하지 못한 인물이다.
 
  그는 문학적 심미안을 높이려면 「기회균등법」을 문학에도 적용해야 한다고 하면서 이렇게 주장한다.
 
  『어떤 책이든 판매 부수를 1만 권으로 제한하는 법이 마련돼야 해요. 그렇게 되면 문학 시장이 새로운 기능과 참신한 아이디어, 그리고 非상업적인 글쓰기 쪽으로 문을 활짝 열게 될 것입니다. 만약 쓰레기 같은 작품은 1만 권 이상 살 수 없도록 금지 조항을 마련한다면,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좀더 훌륭한 책을 구입할 거예요』
 
  이와 유사한 발상과 주장이 우리나라에는 없을까? 여러 해 전부터 우리나라에서 진지하게 논의되어 왔으며, 열린당이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소위 「신문진흥법」을 보자.
 
  이들이 주장하는 「언론개혁」, 특히 「신문개혁」 방안을 보면 신문사 상위 3개社의 점유율이 전체의 65∼70%(1개 사업자는 20∼25%) 이상일 때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규정해 과징금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신문의 시장점유율을 제한하는 것 등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독자가 아무리 원하더라도 특정 신문의 시장점유율을 일정 한도 이내로 묶어야만 하고, 그래야만 「여론의 다양성」과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고 신문이 「진흥」된다는 발상이다.
 
  소설 「아틀라스」의 무능력한 소설가 밸프 유뱅크의 발상과 유사하지 않은가? 현실에서 이 법의 제정을 적극 찬성하는 측도 물론 자유경쟁체제 아래에서는 경쟁력이 떨어지는 소위 마이너 신문들이라는 점도 유사하다.
 
  「신문진흥법」에 찬성하는 이들에게 물어보자.
 
  『시장점유율 상한선 이상의 독자들이 보고 싶어 한다면 어떡하지요?』
 
  『그건 무의미해요. 어떤 신문이든 시장 점유율 상한선까지만 보면 충분해요』라는 대답이 돌아올까?
 
 
 
 지구를 떠받치기를 거부한 神
 
  「기회균등법」이 시행되면서 정부와의 결탁과 뒷거래는 더욱 심해지고, 그러한 고리를 갖지 못한 유능한 기업가들은 파산하거나 사업을 접고 사라진다. 그리고 그 자리는 이제까지 사업할 기회가 없었다고 투덜댔던 자들에게 헐값에 돌아간다.
 
  하지만 그 결과 경제는 망가지고, 실업자는 급증하며, 사람들은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정부는 급기야 「명령 10-289」라고 하는 것을 시행한다. 이 명령서는 모두 8항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인간의 재산은 물론 행동과 직업선택의 자유 등 모든 자유를 박탈하는 내용들로 가득하다.
 
  그들은 이러한 명령을 「봉사」, 「도덕적 의무」, 「진보」, 「사랑」의 이름으로 미화한다.
 
  『여기 모인 강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봉사하기 위해 왔습니다. 그들이 자기들의 도덕적 의무를 저버리려 한다면 강제로라도 부과해야 합니다. 한 때 이성의 시대가 있었지만, 우리는 그 이상으로 진보해 왔습니다. 지금은 사랑의 시대입니다』
 
  그런데 소위 「약탈자」들이 사회의 리더들을 「가장 우수한 노예」로 부려먹으면서 괴롭히고 모욕한 진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들은 이 사회의 리더들은 자신들이 아무리 괴롭히고 약탈을 하여도 계속해서 일을 하고 富를 창출해 낼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이들은 원래 자신의 일에 열정적이고 富를 창출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믿는 것이 그들이었다.
 
  그런데 이 사회의 리더들이 그 의무를 이행하지 못하겠다고 세상을 등지고 파업을 감행한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파업 중입니다. 뭐가 그렇게 놀랍지요? 인류사에서 파업을 일으키지 않은 사람들이라곤 딱 한 부류뿐이에요. 나머지 다른 부류와 계급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세상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되길 바라고 그걸 세상에 요구할 때마다 파업을 단행했습니다.
 
  그런데 오직 자신들 어깨에 세상을 짊어지고 세상이 움직이도록 만들었던 사람들만이 그 유일한 代價로 고통을 감내해 왔어요. 그들이 인류를 등지고 도망친 적은 없었죠. 그들이 누군지, 무얼 하는지, 그들이 제 역할을 하지 않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세상 사람들은 알아야 해요』
 
  이 소설의 副題 「지구를 떠받치기를 거부한 神」은 여기서 연유한다. 사회의 리더들은 더 이상 희생자가 되기를 거부한 것이다.
 
  『저들은 당신이 계속해 나가길, 非인간적인 한도까지 일해 나가길, 그래서 버틸 수 있는 데까지 자기들을 먹여 살리길 바라고 있죠. 당신이 무너지고 나면 또 다른 희생자가 나타나 살려고 몸부림치면서 저들을 먹여 살리겠지요. 희생자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는 한 이런 일은 지금껏 계속될 수밖에 없었어요.
 
  하지만 이번만큼은 계속되지 않을 겁니다. 희생자들이 파업에 들어갔으니까요. 우리는 순교에 순교를 강요하는 도덕률에 맞서 파업을 일으킨 겁니다』
 
 
 
 무엇이 세상을 움직이는가?
 
  소설 「아틀라스」는 「과연 무엇이 세상을 움직이는가」하는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으며, 「개인으로서 삶과 사회발전에 있어서 개인의 정신이 어떤 역할을 하는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러면서 합리적 개인주의가 경제적 관점에서 이 사회를 풍요롭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윤리적인 측면에서도 가장 가치 있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에 公共의 이익이나 사회적 정의·평등·분배라는 명목으로 개인의 가치 추구를 방해하거나 개인의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아틀라스」는 미국에서는 기업인과 전문직 종사자들이 진정한 기업가 정신을 스스로 다지기 위해서 읽는 책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정부의 규제가 심해지고 경제가 침체에 빠지면 어김없이 인구에 膾炙(회자)되는 책이기도 하다.
 
  정부의 지나친 규제와 간섭, 전투적인 勞組, 장기화되는 경기침체와 기업들의 해외탈출, 公共善과 평등, 그리고 분배가 강조되는 사회분위기, 위험수위에 도달한 反기업 정서 등 우리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도 에인 랜드의 소설 「아틀라스」는 우리에게도 많은 것들을 시사해 준다고 믿으며 一讀을 권한다.
 
  다소 부담스러운 분량이기는 하지만, 소설의 내용과 현실을 비교해 가면서 읽다 보면 상당히 매력을 느낄 수 있어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쉽게 넘길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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