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선관委는 盧대통령이 지난 2월24일 방송기자 클럽 회견에서 발언한 내용들이 「공무원의 선거운동 금지」를 규정한 선거법 60조를 위반한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도, 선거와 관련한 공무원의 자세를 규정한 선거법 9조 「공무원의 선거중립 의무」에 위반된다는 결정을 내렸다.
선관委는 발표문을 통해 『대통령은 정치적 활동이 허용된 공무원이라고 하더라도 선거에서의 중립의무를 가지는 공무원으로서 앞으로 선거에서 중립 의무를 지켜 줄 것을 강력히 요청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다만 선관委는 『탄핵 추진과도 연결될 수 있는 사안이냐』는 질문에 대해선 『그것은 선관委가 판단할 사안이 아니다』라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당시 선관委는 격론 끝에 「위원 전원 합의제」의 전통을 깨고 이례적으로 표결로 결론을 내려, 선거법 9조 위반 부분에 대해선 柳志潭(유지담) 선관위원장을 제외한 선관위원 8명 중 6명이 「법 위반」 의견을 피력했다. 그러나 사전선거운동 여부를 규정한 선거법 60조 위반 여부에 대해선 역시 柳위원장을 제외한 8명 중 5명이 「법 위반이 아니다」라는 의견을 냈다.
선관위원들의 이 같은 결정으로 야당은 대통령 탄핵안을 상정했고, 결국 대통령 탄핵의결이라는 사상초유의 사태로 이어지게 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3人, 국회에서 선출하는 3人,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3人 등 총 9人으로 구성되는 합의제 기관이다. 위원의 임기는 6년이며, 위원장과 상임위원은 위원 중에서 互選(호선)하며 대법관이 위원장으로 선출되는 것이 관례로 돼 있다. 「法治(법치)」라는 大원칙을 지켜 낸 중앙선관위원들의 면면을 살펴보자.
◆ 柳志潭 위원장 (1941년 5월3일생)
2000년 7월12일 제13代 중앙선관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柳志潭(유지담) 위원장은 경기도 평택 출신으로 체신高, 고려大를 졸업했다. 柳위원장은 1965년 제5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대구지법에서 판사생활을 시작, 서울지법 형사부장 판사·부산고법 부장판사·서울지법 남부지원장, 울산지법원장을 역임했으며, 1999년 10월 대법관으로 임명됐다. 그는 우체국 직원을 하다 사법고시에 합격, 대법관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꼼꼼한 기록 검토와 매끄러운 재판진행으로 「無色無臭(무색무취)」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그는 지난 大選 때 한나라당 李會昌, 민주당 盧武鉉, 통합21 鄭夢準 후보 등 유력 大選후보들에 대한 지지활동을 벌여 온 「노사모(盧武鉉 후보 지원조직)」·하나로산악회(李會昌 후보 지원조직)」·「청운산악회(鄭夢準 후보 지원조직)」와 인터넷 사이트를 선거법 위반으로 규정, 폐쇄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 鄭壽夫 상임위원 (1944년 2월27일생)
충남 부여 출신인 鄭壽夫(정수부) 위원은 체신高, 충남大 法大를 졸업하고 1977년 서울大 행정대학원 석사학위를 받았다. 1999년 동국大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2년 제11회 행정고시에 합격, 경제기획원에서 첫 공직생활을 시작한 이후, 1978년 제2무임소 장관 기획담당관을 시작으로 법제조정실장(1급)을 거쳐 1998년 법제처 차장으로 승진한 뒤 2001년 4월에는 제23대 법제처장이 됐다.
40여 년 공직생활 중 서기관 승진 이후 20여 년을 법제처에서 근무한 정통파 「법제맨」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역대 법제처장 중 내부 승진으로는 두 번째 케이스다.
차장 재임시 정기적으로 후배 직원들과 티타임을 갖고 애로사항을 챙겨 주는 등 부하직원들로부터 신망이 투터운 것으로 전해졌다.
鄭위원은 2001년 9월 대통령에 의해 선관위원으로 임명됐다.
◆ 田溶泰 위원 (1940년 11월15일생)
2002년 1월15일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 田溶泰(전용태) 위원은 충남 당진 출신으로 경문高, 서울大 法大를 졸업했다. 1967년 사법시험(8회), 행정고시(5회)를 동시에 합격한 田위원은 이듬해 노동청 법무감실 행정사무관을 시작으로 공직에 입문했다. 육군 법무관을 거쳐 1973년부터 천안지청 검사로 변신했다. 이후 광주지검 부장검사, 서울지검 형사4부장, 대검 공판송무부장, 춘천·인천·대구 검사장을 역임했다. 1999년 검찰을 떠난 그는 反부패 특별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됐으며, 그동안 크리스천 12명이 설립한 법무법인 로고스의 대표 변호사로 활약해 왔다. 田위원은 검사재직시 조용하고 온화한 성품으로 선후배 검사들의 신망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으며, 한때 노동청 법무관 경력 덕에 노동 관련 사건에서 뛰어난 실력을 발휘했다.
田위원은 만나는 사람마다 성경책을 건네 주며 종교를 갖도록 권유할 정도록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그의 아들 田文秀씨도 36회 사법시험에 합격, 판사생활을 거쳐 로고스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 金英信 위원 (1943년 3월11일생)
金英信(김영신) 위원은 任在慶 위원과 함께 언론인 출신이다. 1965년 고려大 法大를 졸업한 뒤 朝鮮日報 기자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 金위원은 합동통신, 연합통신 기자에 이어 연합통신 생활부장·문화부장을 거쳐 1994년 한국여기자 클럽 15代 회장에 선출됐다. 대통령 자문 21세기위원회 위원, 한국간행물 윤리위원,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제4분과위원회(생활개혁분과위) 위원, 서울여성위원회 위원, 정무제2장관실 성차별개선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약하며 여성운동에 앞장서 왔다.
金위원은 연합뉴스 논설위원ㆍ연합뉴스 출판국장을 지냈으며, 현재 경원大 신문방송학과 교수ㆍ부패방지위원회 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9명의 선관위원 중 유일한 여성 위원이다. 金위원의 부친은 故 金基玉(김기옥) 변호사이며 슬하에 2남1녀를 두고 있다. 1990년 제7회 崔恩喜 여기자상을 수상하기도 한 金위원은 2002년 국회 몫으로 선관위원에 선출됐다.
◆ 金憲武 위원 (1940년 3월6일생)
金憲武(김헌무) 위원은 대구 출신으로 경북高, 서울大 법대를 나온 정통 엘리트 법조인이다. 2000년에는 한양大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2년 14회 고등고시에 합격, 1968년부터 전주지법에서 판사생활을 시작한 金위원은 이어 청주지법 충주지원장, 서울형사지법 부장판사, 서울고법 부장판사, 서울민사지법 수석부장판사, 전주·대구지법원장을 지냈으며 1993년 청주지법원장을 끝으로 법복을 벗고 변호사로 변신했다. 판사 재직시 온화한 풍모와 인자한 성품 때문에 후배 법관들의 신망이 두터웠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법정에서도 재판진행을 부드럽게 해 재판당사자들의 승복률이 높다는 평을 받아왔다. 「見利思義(견리사의)」를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그는 1970년대 대법원 판사를 지낸 任恒準(임항준) 변호사의 사위이기도 하다. 「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의 모임」 회원이기도 한 그는 재작년 3월 국회에 의해 선관위원으로 선출됐다.
◆ 任在慶 위원 (1936년 5월30일생)
강원도 철원 출신인 任在慶(임재경) 위원은 언론인 출신이다. 전북 군산高와 서울大 영문과를 졸업한 任위원은 프랑스 파리 제1대학에서 경제사를 수료하고, 하버드大에서 국제정치, 독일 베를린자유大에서 유럽현대사를 수학했다. 1960년 朝鮮日報에 입사한 뒤 사회부·경제부 기자를 거쳐, 1972년 정치부 차장, 한국일보 논설위원을 역임했다. 1984년에는 창작과 비평사 편집고문을 지냈다. 1987년 당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 민주언론운동협의회 공동대표를 맡으며 민주화운동에 앞장서 왔다. 1987년 한겨레 신문 이사로 다시 언론계로 돌아온 任위원은 이후 한겨레신문 부사장, 논설고문, 경영자문위원을 지냈다. 지난해 5월 대통령에 의해 선관위원으로 임명됐다. 「상황과 비판정신」, 「한국과 미국(共著)」, 「내마음 우러나는 소리로 살고 싶었네(共著)」, 「한국현대사에 있어서의 유신체체」 등 다수의 저서와 논문을 발표했다.
◆ 金永喆 위원 (1946년 2월25일생)
경북 금릉 출신인 金永喆(김영철) 위원은 경북 사대부고와 서울大 법대를 졸업했다. 1970년 제11회 사법시험에 합격, 검사의 길을 선택한 金위원은 전주·부산·서울지검 검사, 대전지검 서산지청장, 법무부 관찰과장·조사과장을 거쳐 대검 중수부 1과장을 지냈다. 1998년에는 검사의 꽃이랄 수 있는 검사장으로 승진, 법무실장, 대구·대전고검장을 역임했으며, 법무연수원장을 끝으로 검찰을 떠나 2002년부터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고문 변호사로 일해 오고 있다. 인천지검 특수부장, 서울지검 특수2부장·강력부장 등 특수수사·강력수사 분야를 두루 거쳤다.
金위원은 법무부 법무실장 재직 시절에는 인권법과 재외동포법 등을 처리해 능력을 인정받았으며, 온화한 얼굴에 항상 웃음을 잃지 않지만 업무에서는 완벽을 추구한다는 평이다. 범죄피해자 보상제도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국회선출로 지난해 9월 선관위원에 임명됐다.
◆ 金東建 위원 (1946년 11월2일생)
서울고법원장인 金東建(김동건) 위원은 대구 출신으로 경북사대부고와 서울大 법대를 졸업했다. 제11회 사법시험에 합격, 판사의 길을 선택한 金위원은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을 거쳐 법이론과 사법행정에 모두 정통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법원행정처 조사국장으로 재직시 근대사법 100주년을 정리하는 법원사 편찬 작업을 주도하고, 기획조정실장 시절에는 21세기 사법발전계획을 수립하는 등 업무추진력이 매우 강하다는 게 주위의 공통된 평가다. 金龍潭 대법관과는 사시11회 동기로 줄곧 선두 경쟁을 벌여 왔다.
법조 선·후배들로부터 두터운 신망을 받아 온 리더십을 갖춘 법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2월 대법원장 지명으로 선관위원으로 임명됐다. 테니스 실력이 프로급이며, 미술에도 조예가 깊은 金위원은 지난해 2월 서울지법원장 취임식에서도 후배들과 나란히 강당에 앉아 권위의식을 없애려고 애쓰는 모습도 보였다.
◆ 李根雄 위원 (1948년 7월5일생)
現 사법연수원장인 李根雄(이근웅) 위원은 충남 출신으로 고려大 法大를 졸업하던 1969년 제10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부산지법 판사를 시작으로 서울고법 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춘천지법 부장판사, 서울의정부 지원장, 부산고법 부장판사, 사법연수원 수석교수, 춘천·대전지법원장, 대전고법원장을 거쳤다. 李위원은 지난해 8월 대법관 후보로 추천됐지만 사시후배인 金龍潭 대법관에 苦杯(고배)를 마셨다. 평소 온화·인자한 외모와 품성을 갖추고 탁월한 법이론과 실무능력을 겸비한 선비형 법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그는 1999년 서울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로 재직하며 구속적부심과 기소 전보석 등을 전담하는 형사신청부를 시범운영, 불구속 재판의 실무관행을 정착시키고, 계좌추적 등 압수수색영장의 발부요건을 엄격하게 설정해 영장 濫發(남발)에 제동을 걸었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 종교를 통한 사회봉사와 계도활동에 많은 노력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