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인 鄭夢憲에게 對北사업은 치명적인 毒杯였음이 드러났다.
결국 그는 南과 北 양쪽에서 버림받았고, 盧武鉉 정권은 그를 외면했다. 財界에서는 『金大中 대통령과 金正日이 벼랑에 선 鄭夢憲 회장을 함께 떠밀었다』는 비판도 나온다
결국 그는 南과 北 양쪽에서 버림받았고, 盧武鉉 정권은 그를 외면했다. 財界에서는 『金大中 대통령과 金正日이 벼랑에 선 鄭夢憲 회장을 함께 떠밀었다』는 비판도 나온다
지난 8월4일 서울 계동 現代 사옥 12층 자신의 집무실에서 투신 자살한 鄭夢憲(55)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 그는 왜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검찰의 강압 수사說, 침체된 금강산 관광사업, 현대그룹의 몰락, 先親에 대한 죄책감 등 여러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하지만 유서에 잠깐 비치듯이 鄭회장의 죽음은 무엇보다도 그가 필생의 과업으로 추진했던 對北사업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데 대해서는 아무도 이견이 없다.
對北사업은 鄭회장에게 「구원의 밧줄」이기도 했고, 또한 처절한 좌절을 맛보게 한 「썩은 동아줄」이기도 했다. 鄭회장의 喪家(상가)에서 만난 재계 인사들은 『무리한 對北사업이 鄭夢憲 회장과 현대그룹을 삼켰다』고 애도했다. 이 자리에서는 『벼랑에 선 鄭회장의 등을 떠민 인물이 바로 金大中 前 대통령과 金正日』이라는 극단적 비판까지 나왔다.
鄭회장은 현대그룹 창업주인 故 鄭周永(정주영) 명예회장의 5男이다. 보성高를 졸업하고 연세大 국문과를 수석(문과대 전체로는 2등)으로 입학할 정도로 문학과 학업에 뛰어난 성적을 보였다.
1975년 11월 현대중공업 차장으로 현대그룹에 입사한 그는 현대건설 부장과 상무를 거쳐 1981년 현대상선 대표이사 사장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경영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 미국 페어레이 디킨스 대학에서 경영학 석사과정을 마치기도 했다.
鄭회장은 1992년 현대전자를 만들었고, 같은 해 현대상선 비자금 사건으로 수감됐을 때는 私食(사식)을 거부해 아버지로부터 『역시 내 아들』이라는 칭찬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1998년 형인 鄭夢九(정몽구) 회장과 함께 현대그룹 공동회장이 됐고, 1999년엔 반도체 빅딜로 LG 반도체를 인수하면서 鄭夢憲 회장의 전성기가 활짝 열리는 듯했다. 現代 관계자는 『鄭회장은 1990년대 중반 반도체와 인공위성 사업을 벌일 때가 기업인으로서 가장 순수했다』고 말했다.
鄭회장이 아버지의 신임을 받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對北사업이었다.
鄭周永씨가 생애의 마지막 목표로 삼은 對北사업에 형제들 가운데 가장 열심히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鄭회장은 1998년 부친 鄭명예회장이 소떼 500마리를 몰고 군사분계선을 넘을 때 수행단에 참가,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했다.
金正日과는 1998년 11월 처음 만났다. 金正日은 당시 『(鄭명예회장의) 거동이 불편하셔서 내가 왔다』며 現代 일행이 머물고 있는 백화원 초대소를 밤 10시가 넘은 시각에 직접 방문할 정도로 鄭명예회장 父子를 우대했다.
金正日은 면담이 끝난 뒤 「금강산 총석정」을 그린 그림을 배경으로 鄭명예회장 父子와 기념사진을 찍을 때 『연장자가 중간에 서야 한다』며 가운데 자리를 양보했다. 몇 차례 사양과 권유가 오간 끝에 결국 鄭명예회장과 金正日이 번갈아 중앙에 서서 기념촬영을 했다.
金正日은 이후 2000년 6월까지 鄭명예회장을 세 차례 만났으며, 鄭夢憲 회장을 2000년 한 해에만 세 번을 만나 줬을 정도로 現代 일가를 남다르게 대했다.
鄭夢憲 회장은 2000년 6월 현대아산 회장에 취임하면서 對北사업에만 전념했다. 그는 對北사업을 위해 북한을 40여 차례, 중국을 20여 차례 이상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鄭회장은 신입사원 씨름대회에서 1등을 하는 등 아버지를 빼닮은 뚝심을 보였지만 평소에는 「촌색시」나 「촌닭」이라는 별명처럼 내향적이고 소심한 편이었다. 공항이나 호텔의 체크인도 혼자서 직접 했고, 출퇴근도 회사 뒷문을 주로 이용했다.
일부에서는 이번의 투신자살이 그의 이런 성격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그룹의 후계구도를 둘러싼 형제간 경쟁에서는 집요하고 치밀한 성격도 잘 보여 준다.
鄭씨 일가는 鄭周永 명예회장 말년, 그의 후계자 자리를 둘러싸고 형제들 간에 치열하게 세력다툼을 벌였다. 형제들 사이에는 치유할 수 없는 깊은 골이 패였다.
특히 2000년 3월에 벌어진 鄭夢憲 회장과 鄭夢九 현대자동차 회장 간에 벌어진 「왕자의 난」은 현대그룹의 운명을 갈랐다.
당시 현대건설, 현대전자(現 하이닉스반도체), 현대상선, 현대 엘리베이터 등 주요 계열사를 이끌던 鄭夢憲 회장은 현대그룹의 후계자 지위 굳히기에 들어갔다. 현대자동차의 경영권까지 노렸으나, 형인 鄭夢九 회장의 강력한 반발과 계열사에 대한 취약한 지분구조로 인해 현대자동차 장악에는 끝내 실패했다.
이 과정에서 양측은 각종 恥部(치부)를 드러내면서, 형제간에 눈살 찌푸리는 싸움을 벌여 불명예스런 기억을 남기기도 했다.
특히 李益治 前 현대증권 회장 등 「家臣(가신)」으로 불리는 일부 전문경영인들이 양측 싸움에 깊숙이 개입하면서, 현대그룹은 돌이킬 수 없는 분열의 길로 들어서고 말았다.
왕자의 난이 당시 鄭夢憲 회장의 판정승으로 끝나게 된 결정적 계기 역시 對北사업이었다. 鄭회장은 2000년 3월부터 싱가포르와 중국을 오가며 북한 아태평화위원회의 부위원장 송호경과 비밀협상을 벌였다.
現代는 금강산과 개성 등 북한지역의 독점적 사업권을 보장받으려 했다. 이 과정에서 남북 頂上회담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남·북한 당국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頂上회담 특사로 나선 朴智元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을 송호경과 연결시켜 주는 고리는 鄭夢憲 회장의 몫이었다.
鄭회장은 두 사람의 만남을 주선하면서 頂上회담 성사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북한이 頂上회담 및 경협 대가로 10억 달러를 요구하자 朴장관과 의견을 조율하면서 금액을 5억 달러(현물제공 포함)로 깎았다. 이 돈은 모두 現代가 부담했다.
원래는 現代가 4억 달러를, 한국 정부가 1억 달러를 각각 내기로 했으나 朴장관이 『정부예산을 전용하기 힘들다』고 하자 鄭 회장이 모두 떠안은 것이다.
鄭회장은 올 초 對北송금 사건이 사실로 드러나자 『경협 대가로 주긴 했지만, 남북 頂上회담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頂上회담이 열리면 현대의 對北사업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검찰조사 결과 朴智元 前 장관은 2000년 4월 남북협상 중에 鄭회장에게 頂上회담 준비용으로 150억원을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鄭회장은 계열사를 총동원해 마련한 비자금을 朴 前 장관에게 건넸다. 당시는 총선을 전후한 시기여서 이 돈은 對北협상용이 아니라 정치권으로 흘러 들어갔을 가능성이 높다.
비자금을 돈세탁해서 朴智元 前 장관에게 전달하는 과정에는 在美 무기거래상 김영완씨가 깊숙이 개입했다. 金씨는 朴 前 장관 및 鄭회장과도 친분이 두터운 인물이다.
鄭회장은 權魯甲 前 민주당 고문에게도 총선 전후 100억원대의 비자금을 건넸다는 것이 검찰의 조사결과다. 現代 비자금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은 8월12일 權 前 고문을 체포, 이 부분을 집중 수사하고 있다.
이른바 「비자금 150억+알파」 사건에서 「플러스 알파」에 해당하는 부분이 드러난 것이다. 항간에는 알파 금액이 600억~700억원에 달할 것이라는 추측도 나돌고 있다.
현대그룹 前 고위 관계자는 『현대는 금강산 유람선에서 카지노 사업을 허용해 달라고 정부에 요구하는 중이었고, 계열사에 대한 금융권의 자금지원도 절실했다』면서 『이런 약점을 잘 아는 정치권 인사들이 정치자금을 요구했고, 鄭회장은 자신과 현대그룹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이런 요청을 절대 거부할 수 없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어쨌든 남북협상과 對정부 관계에서 능수능란한 수완을 발휘한 鄭회장은 對北 경협사업의 독점권을 보장받았고, 부친의 든든한 신임을 확보했다.
부친 鄭周永씨에게 對北사업을 신중히 재검토해야 한다고 건의했던 형 鄭夢九 회장은 후계구도에서 탈락, 현대자동차를 얻고 그룹에서 떨어져 나갔다. 鄭夢準 의원도 對北사업에 그리 열정적이지 않았으며, 그가 大주주인 현대중공업은 현대그룹에서 독립했다.
하지만 非정상적인 루트를 이용한 무리한 對北사업은 곧 탈을 낳았다.
現代가 북한에 5억 달러를 제공하기로 한 시점은 그룹의 주력 계열사들이 모두 자금난을 겪고 있을 때였다. 현대건설, 현대전자, 현대상선, 현대투신 등이 줄줄이 자금난에 빠졌다.
鄭회장은 金大中 정부의 최대 실세였던 朴智元 前 장관에게 긴급구조 요청을 했고, 朴 前 장관은 청와대와 재경부, 금융권을 총동원해 전방위적인 자금지원을 퍼부었다.
하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對北사업에 계속 막대한 돈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2000년 6월 당시 현물을 제외한 對北 송금액 4억5000만 달러는 현대상선 2억 달러, 현대건설 1억5000만 달러, 현대전자 1억 달러씩으로 분담됐다. 현대상선 2억 달러의 경우 朴智元 前 장관과 李起浩 前 청와대 경제수석의 개입下에 산업은행에서 대출된 4000억원 중 2235억원으로 마련됐다.
현대건설의 1억5000만 달러는 현대상선의 남은 대출금 중 1000억원과 자체 보유 자금으로 조달됐으며, 현대전자는 미국·일본 법인의 보유 자금 1억 달러를 동원했다.
당시 현대전자는 반도체 불황으로 인해 막대한 적자를 기록하면서 해외매각을 추진하고 있었다. 현대건설도 언제 부도날 지 모르는 시점이었다. 비교적 영업실적이 좋았던 현대상선도 계열사 지원에 나서면서 속으로 골병이 들고 있었다.
2001년에 金忠植(김충식) 현대상선 사장은 鄭夢憲 회장의 對北사업과 계열사 지원을 비판하면서 스스로 사표를 던지고 물러날 정도였다.
끝내 현대건설, 현대전자, 현대투신 등은 막대한 부채를 떠안고 채권단에 넘어갔다. 2000년 鄭夢憲 회장 취임 당시만 해도 국내 최대 규모였던 현대그룹의 위용은 불과 몇 달 만에 중소 규모의 그룹으로 쪼그라들었다.
1998년 11월 금강산 관광을 시작으로 한 現代의 對北사업은 경직된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마련했다는 평을 들었다. 반면에 무리한 투자로 인해 현대건설·현대상선 등 주요 기업이 자금난에 시달리고, 주 계열사가 채권단에 넘어가는 등 심각한 후유증을 겪었다.
現代는 지난 5년간 금강산 관광 등의 對北사업에 현금과 현물 5억7000만 달러(약 6840억원)를 투자했다. 금강산 관광 대가로 북한에 송금한 돈이 약 4억 달러였고 항구, 호텔, 온천장, 휴게소 등 시설 공사비가 약 1억4000만 달러에 달했다.
2000년에 對北 경협사업권 및 頂上회담 성사용으로 북한에 보낸 5억 달러(현물 5000만 달러 포함)는 이와는 별도 금액이다. 따라서 이를 포함하면 공식적으로 알려진 對北사업 투자비만 1조원을 훌쩍 넘는다.
하지만 막대한 투자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對北사업은 전혀 수익을 내지 못한 채 「돈 먹는 하마」로 전락했다. 現代가 북한에 거액을 지불하고 얻은 사업권은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개발, 전력·통신·철도 사업, 수자원 개발, 비행장 건설 등 여러가지다.
개성市 일대 2000만 평의 토지를 50년간 무상으로 사용하는 토지 임대권도 얻었다. 그러나 이 중 어느 하나 제대로 진행되는 것이 없는 실정이다.
對北사업을 주도하는 현대아산은 자본금 4500억원을 다 까먹고 매달 30억원 가량의 적자가 쌓이고 있다. 한국관광공사에 시설 일부를 팔고 지분을 주면서 900억원의 투자를 받았으나 이마저도 거의 다 써 버려 남은 운영자금은 수십억원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對北 경협사업 중 현재 유일하게 매출이 발생하는 금강산 관광사업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로 중단됐다가 6월27일 재개됐지만 만성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2000년에 21만 명에 달했던 금강산 관광객은 금년(4월 말 현재)엔 1만2000명 수준으로 급감했다.
작년에는 정부가 남북교류협력기금에서 금강산관광 보조금으로 216억원을 지원했으나, 올해는 北核 문제로 인해 보조금 지원이 완전히 끊긴 상태다.
지난 6월30일 착공식을 한 개성공단 사업도 북한의 산업기반시설(인프라)이 부족하고 정치 정세가 안정되지 않아 사업 성사여부가 불투명하다. 鄭夢憲 회장은 지난달 미국과 일본을 돌면서 개성공단 개발에 대한 해외투자 설명회를 열었으나,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鄭夢憲 회장은 『對北사업은 현대 같은 기업이 아니고서는 할 데가 없다』면서 『애국하는 심정으로 對北사업에 나섰다』고 종종 말했다. 물론, 그에게는 누구보다 먼저 북한에 진출해 통일의 초석을 쌓는다는 영광과 명예 외에도 기업가로서 큰 수익을 기대한 야심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야심은 처절한 좌절로 막을 내렸다.
鄭회장은 남북 정권에 대해 모두 섭섭한 감정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金大中 前 대통령은 남북관계를 호전시킨 성과로 노벨평화상을 받았고, 金正日도 막대한 경제적 이득을 얻었다. 그런데도 鄭회장과 현대그룹은 깊은 상처만 입었을 뿐이었다.
그나마 金大中 정부는 남북관계에 있어 鄭회장의 역할과 물심양면에 걸친 지원을 높이 평가, 자금난에 빠진 現代 계열사를 막후에서 지원해 줬다. 그런 보호막은 盧武鉉 정부가 등장하면서 거의 사라졌다.
現代 관계자는 『새 정부 참모들은 鄭夢憲 회장을 對北협상의 주요 창구로 활용할 의지가 없었다』면서 『鄭회장이 극도의 허탈감과 상실감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막대한 손해를 보면서 對北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자신이 오히려 부도덕한 기업인으로 치부되면서 검찰 수사까지 받게 된 현실을 받아들이기 괴로웠던 것이다. 현대아산 관계자들은 『현대그룹이 공중분해되다시피 한 상황에서 최근 對北송금 문제 등으로 수사를 받게 되자 鄭회장이 몹시 괴로워했다』고 전했다.
金潤圭(김윤규) 현대아산 사장은 『검찰의 짓궂은 취조에 너무도 견디기 어려우셨던 것 같다』고 말했다. 鄭회장 자신도 특검과 검찰의 수사와 관련, 수차례 『괴롭다』고 말했다고 측근들은 전했다.
북한 측의 태도도 鄭회장을 어렵게 했다. 북한은 걸핏하면 금강산 관광을 중단했다. 지난 2월 현대아산이 거액을 투자해 역점사업으로 추진하던 금강산 육로관광은 단 세 차례만 실시됐다. 북한은 『철도와 도로 건설작업에 차질을 빚는다』며 일방적으로 중단했다.
또 여름철 최대의 관광 성수기를 앞두고는 사스 감염이 우려된다며 한동안 관광을 중단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관광예약을 받아 둔 현대아산이 입은 금전적 손실도 이루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그런데도 북한의 눈치를 보면서 사업을 계속해야 하는 現代로서는 이렇다 할 항의조차 못 했다.
북한은 겉으로는 鄭회장을 『민족화해의 초석을 놓은 위대한 기업인』이라고 칭송하지만, 정작 現代의 사업에 대해서는 사사건건 방해를 놓았다는 의혹이 짙다. 金潤圭 현대아산 사장도 『이제부터는 북한이 잘못한 점에 대해서는 당당하게 따지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현대아산 측은 『북한 내에서도 군부나 노동당이 아태위원회 등 경협사업 부서가 담당하는 現代와의 교류사업을 탐탁해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북한을 오가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개방요구가 거세져 자신들의 지위가 흔들릴 것을 우려했다는 말이다.
鄭회장은 「對北 비밀송금 의혹사건」 관련 宋斗煥(송두환) 특검팀에서 지난 5월 30일 첫 조사를 받은 이후 두 달여 사이에 10여 차례 특검과 법원·검찰에 출석했다. 특검 조사가 마무리된 직후인 지난 7월4일부터는 법원에서 對北송금 사건 재판이 시작됐고, 대검에서 (月刊朝鮮이 특종 보도한)現代 상선 비자금 200억원 관련 수사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鄭회장은 7월26일과 31일, 8월2일 특히 자살 직전인 지난 8월1일 법원의 對北송금 사건 3차 공판에도 참석하는 등 7월31일 이후 내리 사흘간 검찰 조사실과 법정을 오가야 했다.
鄭夢憲 회장이 남긴 유산은 국내 최대 그룹의 총수였다는 화려한 경력과 달리 200억원이 채 안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상선 주식과 서울 성북동 자택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마저 담보로 잡혀 있거나 개인적인 부채가 100억원을 넘는 것으로 알려져 빚을 갚고 나면 남는 것이 거의 없을 것 같다.
鄭회장은 3년 전만 해도 보유한 現代 계열사 주식 평가액이 4000억원에 이르렀다. 하지만 2000년 5월에는 현대투신을 부실화시킨 책임으로 私財출연 압박을 받아 1000억원대의 非상장 주식을 채권단에 내놓아야 했다.
그래도 2000년 8월 당시 鄭회장이 보유하던 현대그룹 주식은 건설 2047만 주(629억원), 전자 835만 주(1880억원), 상선 505만 주(210억원), 상사 89만 주(18억원), 정보기술 9816주(1억6000만원) 등 총 2730억여원에 달했다.
하지만 「왕자의 난」과 무리한 對北사업 후유증으로 현대그룹 주가가 급락해 막대한 평가손실을 입었다. 또 현대전자·현대건설 등이 막대한 부채를 갚지 못해 채권단에 넘어가면서 鄭회장의 지분은 減資(감자) 형태로 사라졌다.
鄭회장은 살던 집을 담보로 잡혀야 할 정도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등기부등본 열람 결과, 鄭회장의 서울 성북동 2층 양옥집은 작년 3월 막내삼촌인 정상영(67) 금강고려화학 명예회장 앞으로 20억원의 근저당이 설정됐다. 정상영 회장은 조카인 鄭회장이 금융회사로부터 빚 상환 압력을 받자 이 집을 담보로 돈을 빌려 준 것으로 알려졌다. 現代 고위 관계자는 『작년부터 鄭회장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어, 정몽준 의원 등 형제들이 돈을 모아 鄭회장을 도와주자는 얘기를 하기도 했다』고 했다.
자존심이 강한 鄭회장은 형제들과의 갈등을 끝내 풀지 못해 마음고생을 겪은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3월엔 현대상선 비상임이사로 재취임하는 등 한때 경영복귀를 시도하기도 했으나 결국 실패했고, 이후 잦은 폭음 장면이 목격되기도 했다.
鄭夢憲 회장의 사망 이후 對北사업은 어떻게 될 것인가.
鄭夢九 현대자동차 그룹 회장은 鄭회장 빈소에서 『對北사업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재차 강조했다. 李鶴洙(이학수) 삼성 구조조정본부장도 『對北사업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金潤圭 현대아산 사장은 『鄭회장의 유지를 받들어 남북경협을 성실히 추진하겠다』고 했으나, 現代그룹 계열사는 자금여력이 없어 사실상 어려울 전망이다.
현대상선이나 계열사 채권단도 對北사업 지원을 반대하고 있다.
현재 현대아산이 맡고 있는 對北사업은 크게 세 가지다.
1998년부터 시작된 금강산 관광사업과 개성공단 개발사업, 그리고 경의선, 동해선 철도·도로 연결 사업 등이 그것이다.
현대아산이 가장 심혈을 기울인 금강산 관광사업은 鄭회장의 죽음으로 가장 큰 타격이 예상된다. 하지만 북한이 육로관광 등에 편의를 보장해 주거나 올 예산으로 책정된 금강산 관광경비 보조금 200억원을 현대아산에 지원하도록 국회가 승인해줄 경우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일 전망이다.
개성 공단의 경우 현대아산은 시공자로서 추후 공단 분양에만 관계하고, 사업은 시행자인 한국토지공사가 주관하고 있는 만큼 걱정할 문제가 아니며 철도·도로연결 사업에서도 현대아산은 하청을 받아 북측에 단순히 자재·장비를 제공하는 수준이어서 3大 남북경협 사업은 계속 유지될 것이라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그러나 이 모든 사업이 수익성이 불투명하다는 것이 문제다. 시장논리상 수익성 없는 사업에 기업이 나설 리는 만무하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趙明哲(조명철) 연구위원은 『남북 당국 간의 경협 원칙과 제도 측면에서는 커다란 변화가 없겠지만, 그동안의 경협이 당국 차원보다 現代라는 대기업의 탄탄한 인맥구조를 통해 확대·발전돼 왔다는 점에서 실무적 경협은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결국 정부가 어떤 식으로든 직접 개입하는 길 외에는 마땅한 해결책이 없다는 결론이다. 정부가 당분간 金潤圭 현대아산 사장 등을 통해 북한과의 새로운 채널을 개발한 뒤 對北사업을 관광공사나 토지공사 등 공기업 주도로 수행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국민의 세금이 적지 않게 투입돼야 하는 만큼 정부가 큰 부담을 안고 있다. 對北 비밀송금 사건으로 인해 국민들의 인식이 좋지 않아 어떤 식으로든 국민적 동의를 얻어야만 對北사업 참여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