在美 작가의 실리콘 밸리 르포- 닷컴 아이들의 「쑥스러운 귀향」

初年의 위기 (Quarterlife Crisis) 닷컴서 실패해 본 아이들은 다시는 모험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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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진 在美 작가·「나는 미국이 딱 절반만 좋다」의 저자
1967년 출생. 한국외국어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샘이 깊은 물」 기자 역임. 美 미주리大 콜럼비아 저널리즘 스쿨 석사. 불룸버그 통신사 아시아 마켓 분석가. 쓴 책으로 「하버드 기숙사」, 「미국에 관한 진실 77가지」 등이 있다.
샌프란시스코의 추운 여름
 
 
  『내가 평생 겪은 가장 추운 겨울은 샌프란시스코에서의 한여름이었다』라는 마크 트웨인의 회고담은 그곳에 갈 때 반드시 상기해야 할 말인 듯싶다. 여름에도 두툼한 긴 소매 셔츠와 바지는 필수 의복이다. 샌프란시스코 사람들이 늘 자랑하는 것 중에 하나가 좋은 날씨임에도, 「준비 안된 여행객」들에게는 자칫 춥고 변덕스러운 곳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몇 년 동안 소위 「광란의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 Madness)」를 경험한 20代 닷컴 아이들은 그 준비 안 된 여행객들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구멍 뚫린 낡은 셔츠, 깎지 않은 수염, 자메이칸 스타일로 태운 사자머리, 아무렇게나 졸라맨 허리띠에 헐렁한 바지, 이런 모양새의 갓 大卒(대졸), 혹은 高卒 아이들이 닷컴과 하이테크 산업이 집중되어 있는 샌호제 밸리, 샌프란시스코 등지로 달려간 것은 1849년에 시작되었던 「골드 러시(Gold Rush)」 이후 가히 최대 규모의 젊은 노동력 이동이었다. 그리고 이것을 「닷컴 골드 러시」라고들 불렀다.
 
  그런데 그들이 지금 몹시 춥다. 失職(실직)을 했고, 주머니는 텅 비었고, 집세를 내지 못한 집은 비워 주어야 하며, 아직 길도 들지 않은 새 스포츠 카들을 중고 시장에 급매물로 내놓았다. 「환상 세계(fantasy world)」가 사라진 후 남은 것은 닷컴 아이들의 「세대 증후군」이다.
 
  4000을 넘어가던 나스닥이 2000대에서 턱걸이하느라 안간힘을 쓰는 사이 낭패한 투자자들은 부동산을 향해 돈줄을 돌리며 사라져 갔고, 「간밤에 새로 태어난 어린 백만장자」들을 연일 보도하던 언론의 관심도 줄어들어 가게 되자 텅 빈 무대에 고스란히 남은 자들은 失職, 또는 도산한 스물 몇 살 아이들(twenty something kids)인 것이다. 닷컴 회사들의 불 같은 성장과 몰락은 그 아이들의 인생과 가치관을 어떻게 변화시켰을까?
 
  스물 몇 살 아이들이 일으켜 세웠던 닷컴 회사에 관련해 두 개의 흥미로운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다. 하나는 「스타트업 닷컴(Startup.com)」으로 govworks.com의 창업인들이자 15세 때부터 절친한 친구였던 톰 허맨(Tom Herman)과 칼레일 이자자 투즈맨(Kaleil Isaza Tuzman)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고, 다른 하나는 조지프 박(Joseph Park·29)이라는 한국계 미국인 청년이 벌였던 kosmo. com이라는 사업을 시작부터 끝까지 담아낸 「이드림스(e-dreams)」라는 작품이다.
 
  먼저 「스타트업 닷컴」은 창업과 경영 과정에서 일어나는 절친했던 두 친구들의 갈등과 반목을 주요하게 다룬다.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골드만 삭스社에서 일하다 창업을 위해 직장을 그만둔 투즈맨은 일반 시민과 정부 사이에 필요한 서류 행정 절차를 간소화시켜 주는 닷컴 회사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낸 허맨과 동업을 시작하면서 한동안 승승장구하게 된다.
 
  백악관에서 클린턴 대통령을 만나기도 하고, CNN을 비롯한 미국의 주요 언론에 게스트로 초청되면서 govworks.com을 소개하기도 한다. 그야말로 한때 미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20代 CEO(최고경영자)들이 된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경영상의 갈등이 생기게 되고, 마침내 허맨을 회사에서 쫓아내는 등 소위 불알친구 같았던 우정이 파경을 맞는 과정까지를 그리고 있다.
 
 
  신선한 충격
 
 
  한편 「이드림스」는 김혜수와 금성무 주연의 「죽기엔 너무 피곤하다(Too Tired to Die)」를 감독했던 진원석(33)씨의 첫 번째 다큐멘터리 작품으로서 일종의 인터넷 슈퍼마켓인 kosmo.com의 흥망사를 고스란히 보여 준다. 지난 5월에 전주영화제 초대작으로 잠시 한국에 상륙했던 적이 있는 이 작품이 만들어진 동기는 우연이었다.
 
  현재 뉴욕에 근거지를 두고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진원석씨는 1999년 9월에 처음으로 kosmo.com과 그의 창업자 조지프 박을 만나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어마어마한 벤처 자금을 모은 사업가가 아주 젊은 사람이었다는 것에 먼저 놀랐어요. 저같이 닷컴 산업에 문외한으로서는 도대체 왜 그렇게 돈이 모이는지 이해가 안 갔습니다』
 
  진 감독은 그 회사가 IPO(Initial Public offering·기업공개)를 눈앞에 두고 처참하게 무너지는 광경에 이르렀을 때는 조지프 박 이상으로 만감이 교차되었다고 했다.
 
  『몇 달 후에 IPO에 들어간다는 발표를 할 때가 가장 분위기가 고조되었을 때였어요. 조지프가 「IPO, IPO」하고 외치거든요. 그러면 직원들이 함성을 지르며 그를 따라 IPO를 외치더라구요.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얼마 못 가 나스닥 몰락이 시작된 거예요. 순식간에 무너져 버리더군요』
 
  한 시간 안에 소비자가 원하는 물품을 가정으로 직접 배달해 준다는 개념으로 시작되어 다른 여러 비슷한 회사들의 모태가 되기도 했던 코스모는 1998년부터 올해 4월12일까지 3년 동안의 짧은 인생을 마치고 문을 닫았다. 직원의 대다수를 차지했던 20代 아이들 중에는 당시의 경험을, 『지금까지 인생에서 겪은 가장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렇게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함께 열정적으로 일할 수 있었다는 것이 기쁘다』고 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부실한 경영진 때문에 망한 것』이라는 비난을 하기도 했다.
 
 
  조지프 박, 경영서 물러나 쉬고 있다
 
 
  조지프 박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고 싶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아 진원석씨로부터 전해 들은 말은 『닷컴 생활이란 올라갈 때는 다른 어떤 업종보다 높이 올라갈 수 있는 것이고, 내려갈 때는 그만큼 경사도 가파르고 깊다. 올라갈 때는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고 하늘로 치솟는 기분이었다』는 것이었다.
 
  뉴욕 대학 출신으로 골드만 삭스社에서 일한 경험이 있고 창업 2년 만에 미국 전역에 10개의 지사를 갖추고 3000여 명의 직원을 두었으며, 스타벅스 등을 고객으로 두면서 2억5000만 달러의 펀드를 굴릴 수 있었던 조지프 박은 한때 『어디에 살든 랩톱 한 대와 인터넷 접속 환경만 갖추고 있으면 나는 세상을 정복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지만, 지금은 경영에서 완전히 물러나 休止期(휴지기)를 갖고 있는 중이라는 것이 진 감독의 전언이었다.
 
  스스로 닷컴 비즈니스 문외한이라고 표현하는 진 감독이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느낀 것은 무엇인지 궁금했다.
 
  『닷컴은 모험이기 때문에 20代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는 생각을 했어요. 서른이 넘어서 직장 생활을 하고 가정을 갖게 되면 바로 안정을 추구하게 되는데, 20代 아이들은 사실 잃을 게 하나도 없는 거잖아요. 뭐든지 시작할 수 있는 나이이고, 원래 가지고 보호할 게 없으니까 잃어도 상관이 없고… 그런 때에 벤처라는 게 사회적으로 붐을 타니까 그 닷컴 마차에 다들 뛰어올랐던 것 같아요. 저렇게 겁없이 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에 부럽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사회 경험이 거의 없는 아이들이 꼭대기에 서 있는 것이 불안하기도 했어요』
 
  20代는 뭐든지 할 수 있는 세대라는 것은 20代를 지내본 사람들에게 가장 부러운 말이 될 수도 있다. 사회에 막 발을 들여 놓아, 약간의 실수는 「초년병」이므로 용서받을 수도 있고, 싱싱한 젊음과 야망과 투지가 있다. 20代 때에는 뭐든지 OK이다. 그러나 20代를 넘긴 나 같은 사람에게는 부럽기 그지없을 수 있는 그들의 젊음이 그들 자신에게는 오히려 불안과 초조한 삶의 이유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캘리포니아 버클리市 텔래그래프 길에 있는 한 서점, 2001년 7월6일 오후의 일이다.
 
  『Do you have a book called 「Quarterlife Crisis」?(「쿼터라이프 크라이시스」라는 책 있습니까?)』라는 물음에 안내 데스크 직원이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쿼터라이프(Quarterlife)?』
 
  『Yes』
 
  미국인에게 어떤 영어 단어를 내놓으면서 이렇게 당당한(?) 적도 없었던 것 같다. 쿼터라이프(Quarterlife)는 사전에 없는 신종어이다. 「중년」을 미드 라이프(mid-life)라고 하는 것에 견주어 「초년」을 일컫는다. 인생을 100년으로 보고 그것의 4분의 1, 그러니까 스물다섯 살쯤 되는 이들의 인생을 말하는 것이다.
 
  컴퓨터로 그 책이 있는지 검색한 그는 『이런 책이 정말 있네요』 했다. 증세(?)를 말하고 그걸 「초년의 위기」라 한다더라고 했더니 『나도 스물 다섯이고 닷컴 회사에서 일해 봤고, 고민은 많지만 그걸 「초년의 위기」라 부르는지는 몰랐다』며 흥미로워했다.
 
  초년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데 중년기 사람들의 독점어 같았던 「인생의 위기」가 초년기 사람들에게도 있다는 것, 다만 動因(동인)이 다를 뿐이라는 것이 소위 「쿼터라이프 크라이시스(Quarterlife Crisis)」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위기의 발생은 닷컴 특수 문화와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다.
 
  초년의 위기라는 이 다소 생소한 현상을 알기 위해 먼저 미국인들이 정의하는 중년의 위기 현상이 어떤 것인지부터 보자면 이렇다.
 
 
  『나, 지금 중년의 위기에 서 있습니다』
 
 
  6월 중순에 오하이오州 볼링 그린市의 한 카페에서 만난 윗 스캘튼(43)씨가 아마 그 전형일지 모르겠다. 그 자신이 여러 친구들에게 『나, 지금 중년의 위기에 서 있습니다』라고 공표를 했으니, 그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 보면 이렇다.
 
  샛노란 금발 머리로 염색하고 나타난 윗 스캘튼씨는 5년 만에 다시 만나는 사람이었다. 그는 오하이오州 신시네티市의 한 로펌 파트너로서 변호사이다. 키는 178m 정도이고, 미국의 중년 사내들이 가장 열등감을 갖는다는 러브 머슬(Love muscle), 곧 배 둘레에 잡히는 살이 두둑하다. 표정이 없고 다소 거만한 보통 미국 변호사들답지 않게 호탕한 웃음이 잦은 그는 얼추 보기엔 그저 옆집 아저씨 같은 평범한 사람이다.
 
  그러나 볼링 그린 고등학교 동창들과 교사들에겐 가장 미래가 촉망되는 청년이었으며, 그의 남자 동창들의 말에 따르면, 여학생들에게는, 『처음 만난 여자로 하여금 단 2분 만에 전혀 불쾌해 하지 않으면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잠자리 포즈를 설명할 수 있게 하는 재주를 가진 남자』로 널리 칭송(?)받는 인물이었다.
 
  「제일 많이 노는 데도 공부를 제일 잘하는 친구」로 기억되었던 스캘튼씨는 변호사로서 성공을 거두어 지난 20년 동안 많은 재산과 명성을 쌓았고 예쁜 아내와 자식을 둔 것으로도 꾸준히 입소문을 탔으니, 25회 동창회에 나타날 그에 대한 친구들의 호기심이 가득한 것은 물론이었겠다.
 
  그랬는데 동창회에 나타난 그가 못 참겠다는 듯이 깔깔 웃으면서 터뜨린 첫 인사말은 『나 지금 중년의 위기를 경험하고 있어요』였다. 미국에서 소위 「중년의 위기」 증상으로 꼽히는 첫째 현상학적 증거물은 카 딜러로부터 「방금 접수한」 BMW를 타고 나타나는 것. 그런데 그가 소박하게도 몇 년 묵은 도요타를 몰고 나타났으니 「자격 미달」이라는 친구들의 농담에 그는 곧바로 응수했다.
 
  『BMW를 모는 것은 진정한 위기를 경험하는 남자의 자세가 아니지. 난 밴드를 조직하고 있단 말일세. 변호사 노릇 그만둘 거라고』
 
  그 한 마디에 동창들의 얼굴이 그만 멀뚱해져 버렸다. 전문직을 때려치우고 음악 밴드를 이끌겠다고 선언하고 나선 정도면 상황은 重症(중증)이다. 아니 그의 말대로 「진정한 위기」를 경험하는 중년 남자의 조건에 충분히 들고도 남는다.
 
  『모든 게 지겨워졌어. 아내와 자식들도 귀찮고, 변호사 노릇은 정말 지긋지긋하다네』
 
  스캘튼씨의 이 말을 두고 그의 친구들은 『저 친구 요즘 재판정에도 나가지 않고, 사건 수임도 맡지 않기 때문에 파트너들의 불만이 적잖다더라』는 말을 전했다.
 
  스캘튼씨의 졸업 25주년 기념 고등학교 동창회는 5년 전 서른여덟 살에 모였을 때의 중심 화두였던 「누가 얼마나 성공했나」를 재보던 일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그 대신 스캘튼씨처럼 「너무 정착되고 지루해진 삶을 어떻게 거스를 것인가」하는 이야기로 온통 집중되는 분위기였다.
 
  갑자기 머리카락을 금발로 염색하고, 가죽 재킷을 입으며, BMW 또는 미아타(Miata) 같은 스포츠 카를 구입하고, 무엇보다 조강지처였던 아내를 버리고 자기 나이의 절반쯤 되는 젊은 여자와 데이트에 나서는 것이 미국에서 중년의 위기를 경험하는 남자들의 전형이라면, 초년의 위기는 어쩌면 그와 정반대의 현상이다.
 
 
  무엇이 20代를 채찍질했나
 
 
  요즘 미국의 20代 아이들에겐 빨리 자신들의 부모들처럼 안정적으로 정착된 생활을 하고 싶은 욕구가 지나쳐 우울증으로 이어지는 경향이 짙다는 것이 「초년의 위기」라는 책을 출간한 20代 두 여자, 알렉산드라 로빈스(25)씨와 애비 윌너(26)씨의 주장이다.
 
  책을 출간하게 된 동기는 윌너씨의 고민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미주리州 세인트 루이스市에 있는 사립 명문 워싱턴 대학을 졸업한 뒤 첫 직장을 박물관 말단 직원에서 시작했던 윌너씨는 그후 한 닷컴 회사에서 웹 사이트 운영자로 일하면서 한동안 큰 기쁨을 발견했다고 했다.
 
  『박물관에서 일할 때에는 이제 막 입사한 사람이고 어리다는 것 때문에 관심을 별로 받지 못했어요. 그저 직원의 한 사람으로 여겨졌죠. 그랬는데 닷컴 회사로 옮기고 나니 모든 사람이 제 또래인 거예요. 캐주얼하고, 비슷한 생각들을 하고, 내가 중요한 사람으로 여겨지는 것 같고… 그래서 내가 사회 초년병이라는 생각보다는 회사를 움직이는 사람의 한 명이라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윌너씨는 지난해 닷컴 몰락과 함께 失職者 명단에 들게 되면서 심한 우울증에 빠지게 되었다고 했다. 그녀는 『失職하면서 닷컴 백만장자라는 것이 내게는 일어나지 않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겁니다. 닷컴 자체가 우리 20代 아이들이 원하는, 빨리 자리잡고, 빨리 돈 벌고, 빨리 가정을 꾸려 우리들의 부모님처럼 살고 싶다는 갈망을 이루게 해 줄 것 같은 환상의 세계(fantasy land)였던 거죠』 라고도 했다.
 
 
  「아무 것도 예측할 수 없는 미래」가 주범
 
 
  윌너씨에 견주면 그녀의 친구이자 예일 대학 출신이고 현재 잡지 「마드모아젤」과 「더 뉴요커」에서 객원 기자로 일하고 있는 로빈스씨는 같은 또래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초년의 위기가 널리 퍼져 있다는 것을 실감한 사람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곧바로 저널리즘 활동을 시작했던 그녀에겐 닷컴의 흥망과 관련된 직접 체험이라는 것이 없었다.
 
  『대학 졸업 후 성공적인 직장 세계로의 진입에는 성공한 편이었어요. 그러니까 솔직히 좌절감이라는 것을 깊이 느껴보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 또래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사이 가슴속에 잠재해 있던 외로움과 불안감, 미래에 대한 걱정들이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녀는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초년 위기」의 주범으로 꼽았다. 닷컴 때문에 쏟아져 나왔던 20代 백만장자들을 보면 자신도 뭔가 빨리 업적을 이루어야 할 텐데 그렇게 되지 못할뿐더러,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작업 환경이 20代 아이들로 하여금 「비팅 유어셀프 업(beating yourself up)」하는 것이었다. 곧 자신을 지나치게 채찍질한다는 말이겠다.
 
  점원이 책을 잘 몰랐을 정도로 세상의 관심 밖 이야기일 것 같았던 「초년의 위기」는 뜻밖의 판매율을 기록하고 있다. 출판사측에서는 7500부를 찍으면서 5년 동안 다 팔면 다행이라고 했다는데, 책은 출판되자마자 금세 언론의 관심을 모았다. 뉴욕 타임스紙와 워싱턴 타임스紙는 물론이고, 말 한 마디로 10년 전에 절판된 책도 다시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를 수 있게 하는 힘을 가진 흑인 여성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 쇼에도 작가들은 초대되었다.
 
  그 결과 7월 둘째 주부터는 뉴욕 타임스紙 베스트셀러 選에 올랐다. 내용의 단단함이나 완결성에 관해서는 지적이 있지만, 20代 중반 사람들의 정신적 방황기가 그동안 사회적으로 무시되어 왔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는 책이었다.
 
 
  부모로부터의 「독립」 문제
 
 
  뉴욕에서 정신과 상담을 하고 있는 심리학 박사 와일리 굿맨(Wylie Goodman)씨는 『초년의 위기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하는 물음에 『물론이죠』라고 답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 미국의 젊은이들은 한 직장에 오래 머무르면서 20代 후반, 30代 초에 결혼해서 가정을 꾸렸던 부모 세대에 비해 훨씬 불안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또 요즘은 사회적 연대감도 훨씬 줄어들었죠. 직접 만나서 대화하기보다는 인터넷을 이용한 통신만 주로 하게 되니까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보다는 자신의 감정, 신체, 정신의 흐름에 더 민감하게 되는 겁니다.
 
  인생에서 자기 자신의 존재 상실감이 훨씬 더 빨리 시작되는 거지요. 닷컴 세대가 겪고 있는 상실감은 신체적으로 접할 수 있는 사회적 연대가 끊어지면서 아픔을 털어놓고 도움받지 못한다는 데에서 더 심각성을 안고 있습니다』
 
  실제로 통계에 따르면 요즘 3630만명에 달하는 미국의 20代 아이들은 부모 세대에 견주어 늦게 결혼하고, 직업을 여러 번 바꾼다고 한다. 부모 세대 남자들의 평균 결혼 연령이 22세이던 것은 27세로 미루어졌으며, 여자들의 결혼 연령은 20세에서 25세로 미루어졌다. 노동부의 非공식 통계 자료에 따르면, 20代 초·중반 사람들이 한 직장에 머무르는 시간이 1983년도에 견주어 절반으로 줄어든 1.1년이라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미국의 20代는 「독립」이라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20代 사람들에게 아이콘(肖像) 같은 역할을 하기도 했던 것 같다. 미국에서는 18세가 되면 부모로부터 독립해 간섭받지 않고 혼자 산다더라는 것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가져도 결혼하기 전까지는 대부분 부모와 함께 사는 우리나라 젊은이들에게 다소 「쿨」(cool)하게 여겨져 왔던 것 같다.
 
  그러나 정작 미국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그 독립은 또 하나의 족쇄 같은 역할을 해온 듯하다. 독립하는 게 너무 당연하게 여겨지는 사회이다 보니 독립하지 않으면 또래 사이에서 인생의 낙오자처럼 여겨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부모에게 의존해 사는 것, 부모의 돈으로 사는 것은 자기 인생을 사는 게 아니기 때문』이라는 윌너씨의 말처럼, 확실히 미국에서는 18세에서 나이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부모와 살고 있는 것이 큰 부담이다. 일단 부모부터 다 큰 자식과 함께 살기를 원하지 않는 경향이 많으므로 解職(해직)을 당했든, 혼자 살 수 있는 재력이 없어서이든 부모 집에 들어가 살아야 하는 이들은 흔히 『같이 살게 되어서 죄송하다』라는 말을 해야 한다.
 
  그런 차에 지난해 미국 전역에서 닷컴 관련해 해직당한 사람의 수효만 4만명에 이른다. 해직되었거나 도산한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부모에게 돌아간 조지 루氏의 경우
 
 
  현상적으로는 크게 세 가지 부류로 나눠지는 듯하다.
 
  첫째 부류는 여전히 닷컴 지대에 남아 있는 이들로서, 20代 닷컴 스타들 중에 休止期를 가진 이들 중 적잖은 이들은 경험을 살려 컨설팅 사업을 시작했다. 2년 동안 6000만 달러를 쏟아 부었던 govworks.com의 칼레일 이자자 투즈맨도 최근에 인터넷 비즈니스 컨설팅 회사를 차렸으며, 중간급 이상 매니지먼트 업무를 보았던 이들 중 적잖은 이들이 컨설팅 비즈니스에 합류했다.
 
  두 번째 부류는 집으로 돌아가 再취업 자리를 구하고 있는 이들이다. 그야말로 「어머니, 돌아와서 죄송합니다」 형국이 된 사람들이다. 실리콘 밸리에서 시카고에 사는 부모 집으로 돌아간 조지 루(George Lu·30)씨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다. 노스웨스턴 대학을 졸업하고 6년 동안 컨설팅 회사에서 일하던 그는 벼르고 벼르다 하필 2000년 닷컴 붕괴가 있기 직전에 실리콘 밸리로 날아갔다.
 
  『세상을 다 바꿀 수 있다고 느끼던 때였잖아요. 그러니 그런 날이 올 줄은 생각도 못했던 거죠』
 
  루氏는 그곳에 도착해 직장 생활을 한 지 1년 만에 실직자 신세가 되었다. 회사가 도산한 까닭이다.
 
  『스톡옵션은 종잇장에 불과해졌고, 생활비는 너무 비싸고… 집값은 거의 제 정신이 아니라고 할 정도로 비쌌어요. 결국 실리콘 밸리를 떠나는 수밖에 없었어요. 그곳으로 갈 때 흥분했었던 것을 생각하면 돌아올 때의 悲感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라고 말하는 루氏는 지난 4월 시카고로 돌아온 이후 직장을 알아보고 있는 중이다.
 
  루氏가 취직하고 싶은 회사의 조건은 포춘誌 랭킹 500大 기업들이다. 미래가 아무리 좋아 보일 것 같아도 스타트업(창업)회사나 인터넷 회사엔 관심이 없다. 회사의 안정성이 최고라는 것을 절감했기 때문이란다.
 
  『저뿐 아니에요. 실리콘 밸리에서 실패해 보고 나면 굴뚝산업이든 뭐든 안정적인 회사를 찾게 되는 거 같아요. 약간 허황된 꿈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래도 안정적인 게 가장 좋다는 생각도 하게 되고요』라고 말한 그는 『이건 회사 경영진들이나 투자자들이나, 그 아무의 잘못도 아니에요. 제 자신이 선택했던 일이니까 책임도 제가 져야 하는 건데…』 하면서 말끝을 흐렸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부류는 非영리단체나 학교로 돌아가는 이들이다. 이 부류야말로 「초년의 위기」를 맞고 있는 이들의 심적 고통과 적잖은 연관성이 있다. 닷컴 아이들 중 非영리단체나 좀더 공익을 위한 단체로 이동하는 이유가 하이테크 세계에 대한 환멸 때문이라는 것이다.
 
  뉴욕 비즈니스 전문 주간지 「크레인」은 7월23일자에서 『이들은 해직을 당했거나, 회사의 도산으로 어쩔 수 없이 직장을 잃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만두고 나와서는 닷오르그(.org·공공기관)로 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초년의 위기」 저자들이 미국 20代 아이들의 고민을 과잉 생산된 사회적 풍요에서 나왔다고 지적했듯이, 닷컴 세계에서 진행되었던 물질적 풍요에 환멸을 느낀 이들이 연봉을 적게 받는 「닷오르그」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이다.
 
  뉴욕의 한 인터넷 투자 자문 회사에서 2년 동안 일했던 제인 배너비(Jane Barnaby·26)씨는 회사를 그만둔 지 6개월 되었다. 그 중 3개월은 유럽 여행을 다니며 휴가를 보냈고, 나머지 3개월은 새 직장을 구하는 데 소요했다.
 
  『보통은 새 직장을 구한 뒤에 그만두잖아요. 그런데 저는 더 견딜 수가 없더라구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일도 아니었고, 날마다 돈 이야기만 해야 한다는 것에 신물이 났어요. 다음 자리는 뭐라도 돈 이야기를 안하는 곳으로 가고 싶어요』
 
  그런데 이렇게 닷컴 아이들 중에는 실리콘을 떠나 새 사업을 시작하는 이들, 계면쩍은 모습으로 부모님 댁으로 돌아간 이들, 좀더 의미 있는 일을 찾아 직업을 전환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여전히 실리콘에 남아 생존 경쟁을 치르는 이들도 있다. 그들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우연히 만난 라즈 자야데브(Raj Jayadev·26)를 통해서였다.
 
 
  실리콘을 떠나지 못하는 생산직 노동자들
 
 
  미시간州 플린트市는 1970년대 말 GM(제너럴 모터스社)이 공장 문을 닫음으로 인해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했던 곳이다. 주민 대부분이 GM의 조립 라인에서 일하는 블루칼라들이었는데 GM이 시간당 임금 70센트를 줄 수 있는 멕시코로 공장을 옮겨 버리자 졸지에 마을 전체가 실직자들로 들끓게 된 것이다.
 
  그래서 생긴 여파는 처참했다. 작고 평화롭던 플린트市에서는 범죄율이 증가했고, 집세를 못 내는 사람들은 강제 퇴거당하여 길거리에 세간들을 늘어놓고 있어야 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새 직장을 찾아 텍사스 등지로 떠나게 되었다. GM의 공장 이전을 반대하는 失職 노동자들의 데모가 잇따랐고, 언론의 보도가 거세어지자 당시 대통령이던 로널드 레이건이 플린트市를 직접 방문, 실직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생산해 주겠다고 했지만 그가 워싱턴으로 돌아간 이후에도 플린트市에 생긴 변화는 없었다. 미국인들이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는 크리스마스 날 아침에마저 강제 퇴거당하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흐른 지금, 꿈의 실리콘 밸리에 어쩌면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듯하다.
 
  실리콘 밸리는 닷컴 냉기류 전선의 시발지이다. 그로 인해 생긴 실직자들 중에서도 조립 라인에서 일하던 계약직 노동자들이 겪는 생활고는 더 크고 깊다. 의욕에 찬 젊은이들 중의 일부가 주식 옵션과 고액 연봉을 받으며 일하는 동안 조립 라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평균 시간당 임금은 8달러 선이었다. 닷컴 붐으로 전국에서 집값이 가장 많이 빨리 치솟았던 실리콘 밸리 지역에서 생활하려면 적어도 시간당 12달러에서 15달러는 벌어야 된다는데, 계약직 노동자들 대부분이 받는 임금은 3분의 2 내지 절반 수준이었던 것이다.
 
  임금뿐만 아니라 정규직 노동자들이 받는 여러 가지 혜택을 받지 못함으로써 생기는 열악한 노동 환경은 하이테크 산업체들의 화려한 성장 뒤에 숨은 그림자이기도 하다. 라즈 자야데브씨는 실리콘 밸리에서 일하는 49만여 명의 조립 라인 노동자들 중 한 명으로서 휴렛 팩커드에서 일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시간당 8달러를 받았어요. 저랑 같은 라인에서 일한 사람이 30명이었는데 거의 대부분이 이민계 노동자들이었고, 맨 파워 회사의 알선을 통해 들어온 사람들이었죠』라고 말하는 자야데브씨를 만난 것은 「실리콘 밸리 데덕(Silicon Valley Dedug)」이라는 무크誌 때문이었다. 실리콘 밸리 지역에서 일하는 20代 노동 인력들을 대상으로 발행되는 잡지로서, 특히 低임금 계약직 노동자들의 권익 향상을 도모한다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었다.
 
  『목소리를 합하여 크게 냄으로써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투자자들이나 경영진들이 하이테크 산업에 대해 방침을 세우고 미래를 준비하는 것처럼 현장에서 일하는 우리 생산직 사람들에게도 생각이 있고 비전이 있습니다. 하이테크 산업체들의 특징은 스톡 옵션이라는 것 때문에 노동 조합이 없다는 것입니다. 조합이 없으면 저희 같은 생산직 사람들에겐 어떤 안정성도 보장되지 않아요』
 
  자야데브씨는 하이테크 산업체 조립 라인 직원 대부분이 인력 공급업체를 통해 들어온 계약직들인데다, 계약 기간이 만료되면 再계약되지 않고 다시 다른 자리를 찾아야 하는 관행 때문에 경력을 쌓기가 힘들다고 전했다.
 
 
  에릭과 크리스의 자기 세상 찾기
 
 
  샌프란시스코와 실리콘 밸리에서의 닷컴이 하도 강했던 탓에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긴 했지만 로스앤젤레스(LA) 지역에서 失職한 20代 아이들의 상황도 체감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이 시간대에 차가 이 정도로 빠져 주는 것은 그만큼 실직한 사람들이 많다는 증거예요』 하는 그레이스 김(Grace Kim·29)씨의 차를 타고 LA로 들어가던 시각이 오후 7시.
 
  그녀 역시 인터넷으로 장난감을 파는 닷컴 회사에서 웹 디자이너로 일하다 실직한 지 3개월째였다. 패턴도 샌프란시스코 등지에서 만난 이들과 거의 비슷했다. LA 지역에 있는 한 언론사에서 일하다 두 배에 달하는 연봉을 약속받고 옮겼다 6개월 만에 회사가 문을 닫게 되자 실직자 상태가 된 것이었다.
 
  『재미있었어요. 스톡옵션도 좋았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다 즐겁게 일했고… 그런 점이 다른 거 같아요. 예전 직장에서는 주어진 일을 하는 거였고, 소위 나인 투 파이브(오전 9시 출근, 오후 5시 퇴근) 직이었는데, 이 일은 열심히 일하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 참 매력적이었던 것 같아요. 아니 그보다 훨씬 생동적인 거, 내가 새로운 일을 하고 있다는 기쁨 같은 거였죠』
 
  그녀는 앞으로 한동안 자녀들을 돌보는 專業(전업)주부 생활을 할 계획이다. 개인 사업을 하는 남편을 보조하면서 아이들 돌보는 것이 「남는 장사」일 것 같다면서 웃음지었다. 그런 그녀가 소개해 주어 만난 그녀의 옛 직장 동료 두 사람이 에릭 루이(Erick Louie·26)씨와 크리스 테일러(Christopher H. Taylor·21)씨다. 이 두 사람의 인생관은 대단히 낙관적이다.
 
  회사가 문을 닫기 직전에 스스로 사표를 쓰고 나온 루이氏는 이미 그 전에 혼자 닷컴 회사를 차려 봤던 경험을 바탕으로 라이브소켓츠 엔터테인먼트(Livesockets Entertainment)라는 회사를 차리고, 아시안 아메리칸들을 주요 상대로 하는 웹 사이트 apartment107.com을 운영하고 있다.
 
  루이氏는 닷컴 회사들의 몰락을 보면서 「작고 단단하게 시작한다」는 방침을 세웠다고 했다. 사무실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집에서 그저 두어 명의 직원과 함께 일하며 분야별로 다른 업체들에게 일감을 나누어 준다. 『돈보다 재미를 좇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저 재미있게만 일하려 애쓴다』는 그는 『직장 생활을 하면 지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역시 버겁다. 그보다는 내 스스로 일을 만드는 것이 훨씬 재미있다』고 했다. 벤처 투자자들의 돈을 빌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했다.
 
 
  『초년의 위기요? 그런 것 모르겠는데요』
 
 
  루이氏를 만난 다음날에 LA로 들어가는 405 고속도로상 교통 체증의 악명을 마침내 경험하며 크리스의 집에 당도한 것은 약속 시간으로부터 두 시간이 지난 뒤였다. 바닷가까지 걸어서 15분 거리이면서 멕시칸들이 많이 모여 살고 있는 탓, 또는 덕택에 지리적 환경에 비해 아직은 상대적으로 집값이 높지 않다는 말이 크리스의 인삿말 겸 서두였다.
 
  부동산업에 종사하는 여자 친구 사라의 도움을 받아 크리스가 방 두 칸짜리 이 타운 하우스를 20만 달러쯤 들여 산 뒤 6개월 만에 집값이 3만5000달러 이상 올라갔다고 한다. 연간 3% 상승이 고작인 미국 집값을 따져볼 때 20% 가까운 상승률이다. 그는 2년쯤 살면서 집값이 오를 대로 오르길 기다릴 거라는 스물한 살의 미래 「財테크 투자가」이며 프로그래머이다.
 
  엔지니어였던 백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부터 컴퓨터를 가지고 놀았으며, 열여덟 살 때 고등학교 시절 여자 친구를 만나러 뉴멕시코로 가던 중 자동차가 고장나 그것이 고쳐지기 기다리다 1년 6개월을 뉴멕시코에서 보냈다. 열아홉 살에 네트워크 엔지니어라는 직함으로 첫 직장을 얻은 뒤 프로그래머로 轉職(전직), 2년이 지난 지금 연봉 11만5000달러를 받는 高임금 인력이 되었다. 아직 대학에 갈 생각은 없다.
 
  『초년의 위기요? 전 그런 거 모르겠는데요』 하는 그가 지금 가장 관심 있는 것은 돈이다. 『제가 원하는 것은 돈이에요. 돈을 많이 벌어서 하고 싶은 취미 생활을 하는 거죠』라고 말하는 그에게 행복한 삶이란 자기 집을 갖고, 가족들과 가깝게 지내는 것이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그렇게 생각하니까 전 벌써 모든 꿈을 이루었군요』 하며 웃음 짓는 그는 좀더 좋은 집으로 옮기고 싶고, 좀더 좋은 차를 갖고 싶고, 종국에는 집장사를 하고 싶어 한다. 첫 번째로 산 집이 6개월 만에 3만5000달러의 부가가치를 얻었으니 더 큰 꿈을 꿔 볼 만도 하겠다.
 
 
  『빠른 시간에 돈 버는 게 인생의 목적』
 
 
  프로그래머이므로 닷컴 회사들이 모두 다 망한다 해도 언제 어디에서라도 직장을 구할 수 있다는 자신이 있는 크리스에게 20代 인생은 어쩌면 「혼자」 화려하고 신나는 출발지이다. 자신의 아버지보다 더 많은 연봉을 받고 있고, 생계를 책임져야 할 가족도 없다. 사진과 여행, 음악을 좋아하므로 원할 때는 휴가를 내 떠나면 그만이다.
 
  언젠가 MBA(경영대학원)를 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지금으로서는 『최대한 빠른 시간에 많은 돈을 버는 게 인생의 목적』이라는 사람이다. 오전 9시30분까지 출근했다 오후 5시30분이면 「칼퇴근」을 하고 주말에는 쉰다. 회사에서 먹고 자고 일하는 닷컴 아이들의 문화도 그에겐 없다.
 
  여자 친구와 同居(동거)를 하고 있지만, 그녀와 결혼하고 싶은 생각도 아직은 없다. 아무것에도 얽매일 이유도, 필요도 없는 사람이다. 2년 동안 배웠다는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는 그의 집 안은 그가 좋아하는 녹색 식물의 화분들이 가득하고, 초대형 TV와 최신형 오디오 세트, 그리고 검은 가죽 소파가 구색을 갖추어 잘 정돈되어 있었다. 스물한 살의 크리스는 지금 자신의 아버지 세대가 오랜 세월 한 직장에서 일하며 받아오는 연봉보다 많은 돈을 모으며 즐겁게 사는 중이었다. 그런 그에게 「초년의 위기」는 비집고 들어설 틈이 없어 보였다.
 
  LA는 샌프란시스코와 기후가 많이 다르다. 같은 캘리포니아에 있고, 해안가에 있어도 LA는 훨씬 더 건조하고 더우며, 무엇보다 햇볕이 늘 쨍쨍하다. 어제 아침과 오늘, 내일 아침이 똑같다. 샌프란시스코에 몰아치는 바람도 LA엔 없다. 그 때문인지는 모를 일이다. LA에서 만난 에릭이나 크리스 모두 맑고 쨍쨍하기만 해 보였다.
 
 
  샌프란시스코 현상
 
 
  소위 「광란의 샌프란시스코」를 체감한다는 것은 그곳에 가보지 않고는 느낄 수 없는 일이었다. 집값이 천정부지로 솟았다 한들, 닷컴 기업이 몰려들었다 한들, 또는 몰락했다 한들, 그 산업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으로서 그곳에 살지 않으면 그저 언론 보도를 통해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이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닷컴 몰락의 기운이 사방에 뻗어 있다는 것은 금세 깨달을 수 있는 일이 된다.
 
  「닷컴 대학살은 계속된다(Dot-Com carnage continues)」
 
  7월4일자,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1면 머리 기사는 「대학살(carnage)」이라는 말로 시작되고 있었다. 6월도 여전히 「피가 흐르는 달(bloody month)」이었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6월 한 달 동안에만 美 전역에서 문을 닫거나 파산 신고를 한 닷컴 회사는 53곳에 이른다. 5월에 50여 곳이 문을 닫았으니 그나마 둔화되었다고 가슴을 쓸어내려야 할 지경이다.
 
  샌프란시스코를 비롯한 캘리포니아 지역은 미국 전체에서 닷컴 몰락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지역이어서 올해 상반기에 문 닫은 330개 회사 중 3분의 1이 이 지역에 있었다. 지난해에 225개 닷컴 관련 회사가 문을 닫았고, 그로 인해 발생한 실직자 수효가 4만명에 이르렀으니, 올해 상반기에만 쓰러진 330개 회사들의 실직자 수효는 훨씬 더 많을 것이다.
 
  닷컴 골드 러시에 합류하며 캘리포니아로 향하는 젊은 人材들이 20시간 근무를 마다하지 않는 「자발적 과로 현상」을 즐겼던 때나, 詩人 바이런이 그랬던 것처럼 「자고 일어나니」 백만장자가 된 20代 사업가들의 신화 속에 살던 때가 겨우 1년 전이라면 2001년 현재 닷컴 시장은 人力의 「대학살」을 버겁게 치러내고 있는 것이다.
 
  오죽하면 인터넷 업계의 오스카상이라는 웨비 어워드(Webby Awards) 수상 발표가 나온 7월 중순에 그 상을 받아야 할 사람들 중 대부분이 轉職이나 失職을 했고, 회사가 사라지는 해프닝이 벌어졌을까 싶다.
 
  샌프란시스코 시청 소속 중소상업 담당 디렉터이자 성공적인 개인 사업가이기도 한 다니엘 황(Daniel Hwang·31)씨야말로 「광란의 샌프란시스코」를 현장에서 고스란히 체험한 사람 중의 한 명이다. 1997년에 한국에 나가 mytechjobs.com을 설립한 경험을 가지고 있고, 「비전케어」라는 하이테크 컨설팅 회사 파트너이기도 한 그는 지난해 11월 닷컴 몰락과 함께 눈물 쏟을 만큼 감정이 격해지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3년 전부터 세 개의 창업 회사들에 거액을 투자했다가 큰 손실을 본 후 11월에 그나마 남은 돈을 보니 눈물이 뚝뚝 떨어지더라는 것이었다. 사라진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자신의 욕심이 과했다는 것 때문이었다고 했다. 『부모님이 아시면 속상해 하시니까 액수는 말하지 말아 주세요』라고 한 그는 닷컴 관련 증권시장 곡선이야말로 인간의 욕심을 그대로 보여 주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나라는 걸 깨달으니 마음이 편해졌다』
 
 
  황씨가 『인간의 욕심에 관해 통감했다』는 것처럼, 어쩌면 닷컴의 흥망성쇠는 돈이 인간 사회를 어떻게 지배할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두 번째 시뮬레이션이었다고도 할 수 있지 않은가 한다. 첫 번째는 닷컴 시장과 흔히 비교되어 온 골드 러시 이야기이다.
 
  150여 년 전의 일이다. 금을 따라 중국인들이 바다를 건너갈 정도로 골드 러시는 성황을 이루었고, 실제 광대한 매장량이 있었지만 그것으로 인해 정작 부자가 된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 대신 마구잡이로 갱도를 파는 바람에 심하게 파괴된 그 지역 자연은 지금까지도 복구가 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그뿐 아니라 그 지역에 급작스럽게 늘어난 인구를 상대로 도박과 매춘이 성행했으며, 이민 노동자들에 대한 인종 차별이 심각해서 멕시칸들과 라티노들이 무고한 죄명을 쓰고 사형당하기도 했다.
 
  특히 금이 묻혀 있는 지대에 넓게 퍼져 살고 있던 인디언들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대학살을 당했다. 1848년부터 1860년까지 그 지역 인디언의 수효는 17만5000명에서 3만명으로 줄었을 정도이다. 그럼에도 오늘날 「골드 러시」가 「꿈」으로 여겨지는 것은 「개척 정신」과 「모험」이라는 슬로건으로 포장한 당시 그 지역 상인들의 광고(?) 덕택이었다.
 
  「닷컴 골드 러시」는 무엇이었을까? 미국의 전역에서 실리콘 밸리로 향하는 마차에 올라 탄 스물 몇 살 아이들의 꿈은 모험과 개척 정신에 있었던 걸까, 크리스의 돈에 있었던 것일까?
 
  닷컴 현상과 관련하여 샌프란시스코와 LA 등지에서 만나보거나 전화 통화를 했던 모든 스물 몇 살 아이들의 공통된 대답은 「돈」이었다. 지난해 말에 나온 한 통계 자료에 의하면 미국의 대학생 중 『미래에 백만장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으냐』는 질문에 거의 50%가 『그렇다』고 답했다 한다. 지난 몇 년 동안 「金」은 그들에게 너무 가까이 있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150년 전처럼 그 금은 모두에게 골고루 나누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한바탕 소동이 가신 뒤 저마다 새겨야 하는 치유법은 다른 듯했다.
 
  『제 나이가 스물다섯이거든요. 대학 졸업 후 직장 생활을 시작했지만 모든 것이 분명하고 안정되지 않는 것에 대한 걱정이 많았어요』라고 말하는 「디트로이트 프리 프레스(Detroit Free Press)」 기자 켈리 카터(Kelley L. Carter·25)씨는 닷컴 시대에 대한 내적 열등감을 극복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그녀는 『겨우 두 달 전이에요. 마침내 나는 나이지 남들과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고 나니까 마음이 좀 편안해졌어요』라고도 했다.
 
 
  돈보다는 일을 좇아야…
 
 
  한편 버클리 대학에서 아시안-아메리칸 스타디즈 교수이자, 비교 인종학과 학과장으로 재직 중인 일레인 킴(Elain Kim·59)씨는 『돈을 좇지 말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위기 없이 20代를 넘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자신은 물론 자녀들의 일상에서 일어난 에피소드들을 들려 준 그녀는 『저나 주변 사람들의 살아온 날들을 생각해 보면 흔들리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좇았던 사람이 마지막에 미소를 짓더라고요』 했다.
 
  사람이 변하면 도시도 변한다.
 
  뉴욕 타임스紙는 7월24일자에서 『샌프란시스코의 2001년 여름은 평상으로 돌아가는 전환점의 시기로 기록될 것이다』고 보도했다. 그건 맞는 말 같았다. 샌프란시스코 토박이들은 집값이 하향세로 접어들었을지언정 진정 국면을 환영하는 눈치였다. 유명 레스토랑들도 밥값을 1달러 정도씩 내렸으며, 임대 사인을 붙인 도심 빌딩도 눈에 띄게 되었다.
 
  버클리 대학(Univ. of Calif-Berkeley) 캠퍼스 뒤쪽 산등성이를 따라 늘어서 있는 집들의 가치는 그 집에서 샌프란시스코 다리를 몇 개나 볼 수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 동네 주민들의 농담이다. 다섯 개를 볼 수 있는 자리에 위치한 집에 사는 사람이 우승자(?)라는데, 샌프란시스코를 떠나기 전날 저녁에 나는 세 개를 볼 수 있다는 집주인의 초대를 받아 갔었다.
 
  중턱에 있는 로즈 가든을 지나 가파른 길을 오른 뒤 그의 집에 당도하여 내려다 본 해 떨어지는 샌프란시스코의 전경은 오랜만에 경험하는 아름다움의 극치였다. 선홍빛 金門橋(금문교) 다리 뒤로 해는 저물고, 도심의 빌딩들은 늘어진 촛불처럼 반짝이고, 내가 서 있는 자리는 소음조차 들리지 않는 고요 속이니 마치 명상이라도 할 수 있을 듯 마음이 평온해졌다. 아침에 해가 뜨면 다시 얼마나 더 많은 닷컴들이 정리된다 한들, 샌프란시스코 토박이들이 원하는 그 「예전 같은 상태」는 이미 금문교 다리 근교의 낭만으로 돌아간 듯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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