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비디오감상 -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스페이스 카우보이」

지난 세대의 자부심 드러낸 신명나는 SF물

  • : 옥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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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베니스 영화제 개막식 상영작
 
 
  현존하는 최고의 영화 감독은?
 
  영화라는 매체와 작품에 대한 해석에 따라 여러 답이 나올 수 있겠지만, 많은 평론가들이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라니. 마카로니 웨스턴에서 입담배를 질겅거리던 냉정한 주인공이었고, 「더티 해리」 시리즈에서 폭력으로 정의를 구현하던, 知的인 것과는 거리가 먼 배우 아닌가. 이렇게 답을 한다면 현대 영화의 흐름을 전혀 모르는 舊세대라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지난해 「스페이스 카우보이」로 베니스 영화제 개막식을 장식했고, 평생 공로상을 수상했다. 『미국 고전 영화와 스튜디오 시스템 안에서 일하면서도 진정한 작가의 관점을 유지해 왔고, 45년 간 배우·감독·프로듀서·시나리오 작가·작곡가로 사적인 영화 만들기와 세계적인 흥행 사이의 줄타기를 해왔다』는 것이 공로상 수여 이유였다. 그러나 국내에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연출 작품에 대한 진지한 분석이나 지지가 거의 없고, 「스페이스 카우보이(Space Cowboys)」(12세 이상 관람가 등급, 워너브러더스 출시)의 흥행 성적도 신통치 않았다.
 
  「스페이스 카우보이」는 나이에 걸맞게 원숙하고 왕성한 영화 연출작을 내놓고 있는 이스트우드가 후배 세대에게 전하는 멋진 교훈극이자, 지난 세대의 자부심을 드러낸 신명나는 영화다. 더구나 SF 장르라니. 제목마저 절묘하고 상징적이지 않은가.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이스트우드가 주로 출연했던 서부극에 대한 헌사이자 새로운 해석인 「스페이스 카우보이」 외의 어떤 제목도 떠올리기 어렵다.
 
  「스페이스 카우보이」에는 오늘의 풍요를 이루는 데 모든 것을 바쳤노라며 지난 세대의 희생을 강조하는 타령이나 고집, 거들먹거림이 없다. 컴퓨터와 디지털 세대에 대한 두려움이나 냉소도 찾아보기 어렵다. 첨단의 영화 장르와 내용에 도전하는 자신감과 여유와 유머로 가득찬 젊은 영화다. 70세의 감독과 71세(제임스 가너), 66세(도널드 서덜랜드), 56세(토미 리 존스) 배우가 출연한 실버 무비라고 일축하기 어려운 미덕으로 가득차 있다.
 
 
  광활한 우주에서 긴박감 넘치는 활약
 
 
  1958년, 우주 비행의 꿈을 안고 고된 훈련을 하던 미국 공군의 최정예팀 다이달로스는 국립우주항공국(NASA)이 창설되면서 침팬지 메리엔에게 우주 여행 기회를 박탈당한다.
 
  40년 뒤인 현재. 러시아의 유일한 통신 위성 아이콘이 궤도 이탈을 해 40일 이내에 궤도 수정을 못하면 대기권으로 추락할 위험에 처한다. 『러시아의 체면을 세워주라』는 대통령의 지시가 하달되나, 미국 기술진은 아이콘의 유도 시스템이 공룡 시대 것이라며 난색을 표한다.
 
  책임자 밥 거슨은 아이콘에 장착된 유도체 스카이랩을 설계했던, 은퇴한 일렉트릭 엔지니어 프랭크 코빈(클린트 이스트우드 扮)에게 협조를 요청한다. 다이달로스의 팀장이었던 프랭크는 당시 팀원과 함께라면 우주로 날아가 고쳐보겠노라고 한다. 나이를 들먹이며 후배에게 설계도와 기술을 가르쳐 주라는 밥에게 프랭크는 『고희는 일년 더 남았네. 존 글렌도 보내주면서』라고 응수한다.
 
  존 글렌은 1998년 10월9일, 77세의 나이로 우주 왕복선 디스커버리호를 타고 8일 22시간의 비행 후 무사 귀환하여 우주 비행사상 최고령을 기록한 인물. 1962년 2월, 프렌드십 7호를 타고 우주인으로는 처음으로 지구 궤도를 선회했던 글렌은 인체 노화 연구를 위해 고령에도 불구하고 다시 우주로 날아갔던 것. 그는 192km 상공서 아름다운 지구를 세 바퀴 돌며 『신에 대한 믿음이 강해졌다』는 소감을 내놓았다. 한국전에 참전했고, 상원의원으로도 활동한 바 있는 미국의 영웅을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스페이스 카우보이」에서 매우 적절하게 인용한 셈이다.
 
  프랭크가 왕년의 동료를 찾아가는 대목은 인물 성격과 이야기 전개를 암시하는 전형으로 꼽을 만하다. 부적절한 설교로 몇 명 되지 않는 신도를 지루하게 만드는 시골 목사가 된 항법사 탱크 설리반(제임스 가너 扮), 롤러 코스터를 설계하며 딸 나이뻘의 아내와 인생을 즐기고 있는 구조 공학 설계사 제리 오닐(도널드 서덜랜드 扮), 고객의 혼을 쏙 빼놓는 모험 비행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비행 장교 출신의 호크 호킨스(토미 리 존스 扮).
 
  로켓 개발 시대부터 활동한 이 백발 노장들은 MIT 공대 출신임을 자랑하고, 컴퓨터는 절대 고장나는 법이 없다고 주장하는 새파랗게 젊은 후배들과 체력 단련에 들어간다. 『닉슨 때 달리기를 그만두었다』며 헉헉거리고, 검사표를 외우거나 여의사를 혼란시켜 시력 검사를 통과하며, 「주름살이 펴질 정도」로 뱅뱅돌기 내기를 하고, 노인 영양식을 보내는 후배들에게 거버 이유식으로 대응하는 사랑스러운 노친네들. 알몸 출연까지 마다않은 네 배우의 능청이 여간 귀엽지 않다.
 
  1시간 20분을 비행 준비에 할애한 영화는 마침내 우여곡절을 극복한 다이달로스팀과 두 명의 젊은이를 우주로 날아가게 한다. 지구를 내려다보며 『기다릴 만하군』이라며 감회에 젖는 것도 잠깐. 통신 위성인 줄만 알았던 거대한 고철덩어리는 이들이 쏜 레이저에 자기 방어 체계를 작동시킨다. 냉전 시대의 부산물인 핵탄두 6기가 탑재되어 있는 것을 알게 된 프랭크팀. 호크의 희생으로 지구를 위험에서 구하는 임무를 완수하기까지, 광활한 우주에서의 긴박감 넘치는 활약은 SF 영화의 진수에 다름아니다.
 
 
  가슴 뭉클한 감동으로 다가와
 
 
  현란한 특수 효과 과시를 넘어서, 인생의 쓴 면과 달콤한 면을 모두 경험한 이들이 내린 판단과 행동과 대화는 가슴 뭉클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지리한 예술 영화로 관객을 피곤하게 만들지 않는다. 「사선에서」, 「앱솔루트 파워」 같은 흥행 액션물에 출연하고 연출도 하면서, 자신만의 영화 세계를 잃지 않는 영화인이다.
 
  1930년, 캘리포니아 태생인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떠돌이 노동자였던 부모를 따라 다니며 경제 공황기를 보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벌목공으로 일했는가 하면, 1982년에 연출하고 주연한 「고독한 방랑자(Honkytonk Man)」에서처럼 떠돌이 피아노맨(honkytonk piano man) 생활을 하기도 했다. 이스트우드는 직접 노래를 하고, 작곡·선곡을 할 정도로 음악에 대한 관심과 재능이 남다르다. 전설적인 재즈 뮤지션 찰리 파커의 일대기를 그린 「버드」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기도 했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는 65세란 나이가 믿기지 않는 균형잡힌 단단한 알몸을 자랑했는데, 군대 수영 교관을 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감독 데뷔작은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1971)로 「미스티(Misty)」 란 음악을 신청하는 사이코 여성 애청자와 DJ의 심리적 갈등을 그린 빼어난 스릴러물이다.
 
  이스트우드는 자신이 주로 출연했던 서부극과 액션물을 성찰하는 영화로 스승인 세르지오 레오네와 돈 시겔에 대한 존경을 표해왔다. 사라져가는 서부와 서부극에 대한 哀歌(애가)이자, 영화를 통한 미국 사회에 대한 통찰을 보여 준 「용서받지 못한 자(Unforgiven)」(1992)로 아카데미 작품, 감독, 남우조연, 편집상을 수상하면서 감독으로서의 이스트우드는 진정한 대접을 받게된다.
 
  베니스영화제 공로상 시상 인터뷰에서 이스트우드는 다음과 같이 영화 인생과 영화관을 밝혔다.
 
  『난 항상 분출 중이다. 어떤 끝이 아니라 중간에 있다고 생각한다』
 
  『할리우드는 일시적 유행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젊은 관객 영화가 유행하면 그렇게들 간다. 그래도 소수의 누군가는 그밖의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든다. 영화가 성공하느냐 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영화는 내게 아주 개인적인 것이다』
 
  최소한 100세까지는 살아서 학처럼 우아한 기품과 철학적 사고, 유머, 여유로 가득찬 영화를 계속 내놓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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