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憲杓 朝鮮日報 스포츠레저부 기자
외국인 손에 맡겨진 한국 축구거스 히딩크(55·네덜란드)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이 2002 월드컵 16강 진출에 대한 국민적 여망을 업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지난 1월10일 자신이 직접 뽑은 수석코치 핌 베르베크(44·네덜란드)와 함께 입국한 그는 대표팀의 울산 전지훈련 지휘를 시작으로 자신의 축구철학을 한국에 심어가고 있다. 1월24일부터 홍콩에서 열리는 칼스버그컵 대회가 그의 데뷔 무대. 그는 2월 열리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컵과 3~5월로 예정된 서너 차례의 A매치(국가대표팀 간 경기) 평가전, 6월 컨페더레이션스컵을 통해 「히딩크 축구」의 밑그림을 완성할 계획이다.
지난해 시드니 올림픽과 아시안컵대회서의 부진 그리고 청소년대표팀의 잇단 몰락으로 「한국 축구의 위기론」이 대두된 가운데 대한축구협회가 선택한 지도자가 히딩크였다. 그는 한국 축구와는 惡緣(악연)이 있다. 98프랑스월드컵 당시 네덜란드 대표팀 지휘봉을 잡아 한국에 5대 0의 패배를 안겼다. 무뚝뚝한 표정과 콧수염이 인상적이었던 그에게 2002 월드컵의 「성공」과 한국 축구의 미래를 맡긴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다.
히딩크는 과연 한국 축구를 살릴 수 있을까? 그의 경력과 성품을 높이 평가하는 이들은 『월드컵 16강은 물론 한국 축구의 수준이 그로 인해 한 단계 높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실제로 그의 경력은 화려하다. 1967년부터 1982년까지 네덜란드 아인트호벤, 미국 워싱턴 디플로매츠 등에서 미드필더로 활약했다. 하지만 그는 지도자로 이름을 더 날렸다. 1986년 네덜란드 명문클럽 아인트호벤의 지휘봉을 잡아 3시즌 연속으로 네덜란드 리그를 제패했다. 1988년에는 네덜란드 리그와 FA컵, 유럽 챔피언스 리그를 석권하며 명성을 높였다. 터키 페네르바체(1990~1991), 스페인 발렌시아(1991~1994)를 거쳐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을 맡았다가 레알 마드리드(1998~1999), 레알 베티스(2000년 상반기)를 이끌기도 했다.
1998년 12월 레알 마드리드를 이끌고 도요타컵(남미-유럽 클럽챔피언 대항전)을 제패한 것도 그의 화려한 경력에 보탬이 됐다. 1995년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을 맡아 1996년 유럽선수권 8강, 1998년 프랑스 월드컵 4강이라는 호 성적을 남겼다. 그 기간 치른 A매치의 성적은 38전 22승8무8패였다.
꼼수 없는 솔직한 성격
지난해 말 히딩크와 그의 대리인을 만나 영입 협상을 벌였던 가삼현 축구협회 국제부장은 『인격적으로 높이 평가할 게 많은 인물』이라고 그를 평했다. 가부장은 『밀루티노비치(유고), 자갈로(브라질), 앙리 미셸(프랑스) 등 수많은 세계적 명장을 만나봤지만 히딩크는 그들과는 또 다른 매력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가부장은 그와 두 번 만났다. 에메 자케(프랑스) 영입이 무산된 상황에서 상당히 부담을 갖고 영입 협상을 벌여야 했는데 『의외로 명쾌하게 결론이 났다』고 회고했다. 『히딩크는 꼼수가 필요 없는 솔직한 성격을 가진 신사였다. 한국 축구가 그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솔직하고 진지하게 밝혔더니 반응이 있었다』는 것.
그가 개성이 강하고 자유분방한 유럽의, 특히 네덜란드 선수들을 이끌고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던 것은 타고난 친화력과 철저한 원칙, 그리고 카리스마 때문이었다. 히딩크에 얽힌 유명한 일화가 있다. 96유럽선수권이 한창일 때 수리남 출신인 에드거 다비즈가 『감독이 못하는 선수만 기용한다. 머리가 모자란 것 아니냐』며 선수기용에 대해 공개적인 비난을 했다. 히딩크는 즉각 『말하는 자유도 좋지만 팀에는 규율이 있다. 그걸 지키지 못하겠다면 팀을 떠나라』며 다비즈를 귀국시켰다. 팀 전력 손실을 감수한 조치였다.
그렇다고 맘에 안 들면 무조건 내치는 「폭군」은 아니었다. 히딩크는 98월드컵 때 다비즈를 네덜란드 대표팀에 再발탁해 4강의 주역으로 삼았다. 「친구건 敵(적)이건 그가 온화한 성격을 가진 지도자라는 데는 이의를 달지 않았다」(영국 데일리메일 4월4일자)는 게 대체적인 평가였다. 지난해 12월18일 대한축구협회와 계약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는 『코칭스태프와 선수들 모두가 서로 존중하는 팀을 만들겠다』고 인화를 유독 강조한 그였다.
일에 대한 열정과 선수에 대한 욕심도 대단한 편으로 알려져 있다. 1988년 아인트호벤 감독 시절, 당시까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호마리우(브라질)를 영입하기 위해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 공항까지 그를 쫓아간 적이 있다. 잉글랜드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그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챈 직후였다. 결국 히딩크는 호마리우 영입에 성공한 뒤 3시즌 연속 네덜란드 리그 우승의 영광을 누렸다.
엇갈리는 평가
프로 의식과 신중함도 그의 진가를 높이는 부분이다. 지난 12월 열린 韓·日전 때 보도진들은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가졌다. 경기 후 韓·日전을 본 소감을 듣기 위해 양국 기자들이 득달같이 재촉했지만 그는 『10명이 잘 싸웠다』는 말만 남겼을 뿐이다. 아직 공식활동을 시작하지 않은 마당에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인상적인 한국 선수가 있느냐』는 질문에도 역시 『말하는 것은 불공평하다. 새롭게 시작하는 상황에서는 합당치 않다』고 신중을 기했다.
물론 그에 대한 정반대의 평가도 있다. AFP는 96유럽선수권 직전 그를 다룬 기사에서 「히딩크는 조용하고 차분하지만 카리스마가 부족하다」고 평했다. 지난해 4월 레알 베티스에서 해임된 직후, 스코틀랜드의 셀틱스 팀이 그를 영입하려 했을 때 영국 언론에서는 그의 지도 능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기사를 꽤 실었다.
당시 영국 데일리 메일지는 「그는 편하고 호감을 주는 성격 덕분에 선수들과 친구가 됐지만, 선수들은 그것을 나약함의 반증으로 이용했다」고 썼다.
영국신문 「더 선(The Sun)」은 지난해 4월 히딩크의 신상에 대한 재미난 일화를 소개한 적이 있다. 그는 발렌시아 감독 시절 고급 오토바이인 할리 데이비슨을 몰고 다니기를 좋아했다. 당시 하루에 두 갑 분량의 담배를 피웠지만, 1995년 네덜란드 대표팀을 맡자 곧바로 담배를 끊었다. 1991년엔 발렌시아와 레알 소시에다드의 경기를 앞두고 인종주의자들이 관중석에서 나치 깃발을 흔들며 응원을 하자 경기 시작을 거부하는 배짱을 부리기도 했다.
골프광이기도 한 그가 트레이드 마크인 콧수염을 깎은 이유도 재미 있다. 1998년 도요타컵을 앞두고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 『브라질의 바스코다가마를 꺾으면 콧수염을 깎겠다』고 선언했다. 그 경기에서 레알 마드리드는 2대 1로 승리했고, 그는 더 이상 수염을 기르지 않고 있다.
그는 과연 자신이 추구해온 축구 스타일을 한국에 접목시킬 수 있을까. 이용수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은 에메 자케(프랑스)와 함께 히딩크를 대표팀 감독 후보로 선정했던 배경에 대해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유럽 감독인데다 선수로나 감독으로 검증됐다. 그의 축구 스타일이 빠르고 체력을 중시하는 한국에 적합하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밝혔다.
히딩크가 가장 중시하는 것은 「생각하는 축구」다. 그는 2000년 12월 가진 취임 인터뷰에서 『나의 목표는 90분 동안 통제할 수 있는 팀을 만드는 것이다. 선수들은 포지션별로 임무를 정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