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人 연쇄 인터뷰 - 국가와 자유민주주의를 옹호하는 自由派 이론가들의 목소리

  • : 배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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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는 本流, 진보는 支流, 支流가 많을수록 강물은 풍부해진다』
「열린 사회」를 지향하는 宋復 연세대 교수
『현재를 바로 세울 능력이 없으니 자꾸 과거를 바로 세우려 한다』

●宋復: 1937年生. 서울大·同대학원卒. 정치학 박사. 「사상계」 기자. 월간 「청맥」 편집장. 연세大 국학연구원 장. 現 연세大 교수.
●金龍瑞: 1939年生. 연세大·도쿄大 대학원卒. 행정학 박사. 외교안보연구원 정책연구교수. 숭실대 부교수. 現 이화여대 교수.
●朴槿: 1927年生. 서울大·펜실베이니아大 대학원卒. 정치학 박사. 駐 스위스·태국·제네바·UN대사. 現 한양大 대우교수.
●呂永茂: 고려大·同대학원卒. 법학박사. 동아일보 논설위원. 통일연구소장, 통일정책평가위원. 연합통신 논설위원.
●林炚圭: 1939年生. 서울大卒. (주)신우화학 공업 대표이사. 「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 총무이사.
●金尙哲: 1947年生. 서울大·同대학원卒. 법학박사. 서울형사지법판사.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 상임집행위원. 서울시장. 변호사.
●金炳局: 1959年生. 하버드大·同대학원卒. 정치학 박사. 대통령자문정책 기획위원회 위원. 「전통과 현대」 편집위원. 現 고려大 부교수.
●柳錫春: 1955年生. 연세大·일리노이大 대학원卒. 사회학 박사. 한국사회학회 총무이사. 「전통과 현대」 편집위원. 現 연세大 교수.
●徐錫九: 1944年生. 경북大卒. 부산지법판사. 대한변협 인권위원. 대구 경실련 공동대표. 변호사.
宋復: 1937年生. 서울大·同대학원卒. 정치학 박사. 「사상계」 기자.
  월간 「청맥」 편집장. 연세大 국학연구원 장. 現 연세大 교수.
 
  10월18일 기자와 만나기로 했던 宋復(송복·63) 연세대 교수는 약속시간을 앞두고 전화를 걸어와 인터뷰를 이틀 뒤로 미룰 것을 요청했다. 예정대로 만날 경우 50분 정도밖에 시간을 낼 수 없는데, 그 시간 가지고는 「보수주의」에 관해 충분한 이야기를 나누기 어렵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인터뷰 하나도 소홀하게 생각하지 않는 깐깐함이 느껴졌다.
 
  10월20일 기자와 만난 宋교수는 『내게서 「보수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찾아왔다고 하는데, 어떻게 해서 「보수주의」에 대한 기획을 마련하게 되었느냐』는 질문부터 던졌다. 기자가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보수」니 「진보」니 하는 말들을 사용하지만, 그에 관한 개념 정립도 명확히 되어 있지 않다. 우선 「보수」의 개념과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부터 분명히 해야 체제 도전세력들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 이런 기획을 마련하게 되었다』고 하자 宋교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일반인들의 보수에 대한 고정화된 관념을 지적하는 것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일반인들은 「보수(주의)」에 대해 일종의 고정관념, 편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수」는 기득권층이 자기의 기득권을 고수, 확대하려는 「가진 자」 위주의 이데올로기이며, 시장경쟁적 適者生存(적자생존)을 강조하다 보니 불평등을 조장하고 소외계층을 양산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참 보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보수」라는 것이 그런 것이라면 오랜 세월 동안 「보수」가 역사의 本流(본류)를 형성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참 보수」의 특징으로 宋교수는 먼저 「傳統性(전통성)」을 들면서 김수영의 詩 「거대한 뿌리」의 한 구절을 읊었다.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더라도 좋더라. 전통이 있는 한 이 썩어빠진 대한민국도 괴롭지 않다…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더라. 역사가 있는 한 이 우울한 시대를 파라다이스처럼 살아간다』
 
  宋교수는 『「보수」는 진한 뿌리의식을 갖고 있다. 뿌리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몸체와 가지가 제대로 될 수가 없다』고 하면서 『뿌리 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은 「상황이 변했다」는 식으로 말을 함부로 바꾸지 않는다. 「정직성」은 보수주의자의 또다른 특성이다』라고 강조했다.
 
  宋교수가 든 「참 보수」의 두 번째 특성은 「經驗性(경험성)」. 보수는 思辨的(사변적)·추상적인 세계 대신 경험적인 사실의 세계를 중시하는 「實事求是(실사구시)」의 사상이라는 것이다.
 
  宋교수는 이 「경험성」으로부터 漸進性(점진성), 順理性(순리성), 透明性(투명성)과 같은 보수주의의 특성들이 도출된다고 했다. 보수주의자는 인간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사회의 발전 단계는 아무리 비약하려 해봐야 비약할 수 없다는 것(점진성), 무리해서 사회구조를 바꾸려 해봐야 오히려 현재의 구조보다 더 못하게 되어버린다는 것(순리성), 진실을 감추려 해봐야 감출 수 없다는 것(투명성)을 안다는 것이다. 宋교수는 『「투명성」을 지키는 것이 「보수」를 지키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 된다』고 하면서 『이른바 진보주의 정부가 보수주의 정부보다 더 부패하다』고 주장했다.
 
  『중국, 북한, 옛 소련, 동구권 국가들의 경우 「투명성」이 결여되어 있는 까닭에 자유민주주의 국가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부패가 심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제투명성위원회」의 조사에 의하면 부패의 정도가 1990년대 초에는 조사대상 국가들 가운데 23위 정도였습니다. 그러던 것이 金泳三 정권 초기에는 27위, 金泳三 정권 말기에는 33위, 현재는 48위 수준입니다. 이른바 진보세력이 정권에 들어가면서 부패지수가 점점 높아졌다는 것은 수치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역사는 현재를 바로 세우면 저절로 바로 서게 마련
 
 
  宋교수는 「참 보수」의 특징으로 「蓄積性(축적성)」도 들었다.
 
  『「축적성」의 가장 중요한 것은 명예로운 것뿐만 아니라 부끄러운 것도 축적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역사는 부끄러움과 명예로움이 함께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부끄러운 것은 버리고 명예로운 것만 갖다 놓는 것은 역사가 아닙니다』
 
  여기서 宋교수는 이른바 진보 세력들의 「역사 청산론」과 金泳三(김영삼) 정권 시절의 「역사 바로 세우기」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역사는 「청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역사는 현재를 바로 세우면 저절로 바로 서고, 미래도 바로 서게 마련입니다. 현재를 바로 세울 능력이 없으니까 자꾸 과거를 들먹이며 「역사 바로 세우기」니 뭐니 하는 것입니다』
 
  宋교수가 강조하는 「참 보수」의 또다른 특성은 「改革性(개혁성)」이었다. 保守는 개혁하지 않으면 停滯(정체)하고, 정체하면 망하게 마련이며, 망하지 않기 위해서는 문제가 있는 부분을 補修(보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宋교수가 「참 보수」의 마지막 특성으로 강조한 것은 「多元性(다원성)」.
 
  『多元性이란 글자 그대로 사회의 주체가 되는 집단이 여럿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 집단들이 토론과 협의의 場을 만들어 「게임의 규칙」에 따라 사회를 꾸려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宋교수의 말을 듣고 있다 보니 보수주의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美德(미덕)의 總體(총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보수주의보다는 진보주의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조선 왕조 500년 동안 우리가 정체되어 있다가 근대화에 뒤처지고 日帝의 식민지로 전락했다는 사실에 대한 반성 때문에 舊韓末(구한말) 이래 진보, 혁신이라면 긍정적으로 보는 인식이 생겼습니다. 또 하나 우리 민족은 농업 사회, 단일 민족이라는 특성상 평등사상이 아주 강합니다.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평등을 강조하는 진보 사상에 쉽게 매력을 느끼게 됩니다』
 
  宋교수는 『1948년 정부 수립 전 美군정청에서 서울 시민들을 상대로 한 조사에 의하면 조사대상자의 77%가 장차 수립될 정부가 지향해야 할 사상으로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꼽았다』면서 『경제력에서도 북한이 남한을 압도했던 상황에 비추어 볼 때, 6·25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남한은 공산화되고 말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宋교수는 남한의 赤化(적화)를 막은 것은 金日成, 李承晩, 朴正熙 세 사람이라고 했다.
 
  『金日成이 일으킨 6·25로 인해 국민들은 공산주의의 실체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서구 민주사회를 체험했던 李承晩 대통령은 이 땅에 자유민주주의의 기반을 닦았고, 朴正熙 대통령은 산업화를 성공시킴으로써 사회주의, 공산주의에 기울어져 있던 국민들의 의식을 자유민주주의 쪽으로 돌려놓았습니다』
 
  ― 朴正熙 대통령은 우리나라에서는 보수주의의 상징처럼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朴대통령은 조국근대화를 내세워 급진적으로 전통을 부인했고, 다소 무리를 해가면서 권위주의적인 방식으로 경제발전을 추진한 측면이 있습니다. 이런 점들은 보수주의의 전통성·점진성·순리성·다원성 등의 특성과는 상충되는 것 같은데요.
 
  『朴正熙 대통령은 내가 정의하는 의미에서는 보수주의자라고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사상적 전력으로 보나 행태로 보나 그는 급진주의자였습니다. 다만 그는 산업화를 통해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보수주의의 기초를 닦았다는 것이죠』
 
 
  지식인 기생충
 
 
  오늘날 宋교수는 自他(자타)가 공인하는 보수주의 논객으로 李承晩, 朴正熙 시대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그에게도 「思想界(사상계)」 기자, 「靑脈(청맥)誌」 편집장으로 권위주의 정권에 반대하는 筆鋒(필봉)을 휘두르던 시절이 있었다.
 
  『젊은 시절은 氣(기)가 승할 때입니다. 남이 잘하는 것보다는 잘못하는 것이 먼저 보이고, 잘못하는 것을 보면 참지 못하게 마련입니다. 또 개인의 잘잘못보다는 사회 구조나 제도의 문제에 비판의식을 갖고 접근하다 보면 진보주의에 빠져들기 쉽습니다.
 
  저도 젊은 시절에는 朴正熙 정권을 비판하는 글을 쓰다가 筆禍(필화)사건을 겪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사십대 중반을 넘으면서부터는 「세상은 그런 식으로만 가는 것이 아니구나. 세상의 틀을 닦는 사람은 이런 식으로도 세상을 만들어 가는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어느 날부터인가 朴正熙가 보이고, 李承晩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宋교수는 「진보주의」의 필요성과 사회적 기능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젊음이 있는 한, 사회 구조에 不條理(부조리)가 있는 한 진보의 비판은 계속되어 가는 것이고, 또 계속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비판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참 보수」이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極右(극우)」입니다.
 
  하지만 진보는 인류 역사에서 보면 어디까지나 支流(지류)이지 本流는 아닙니다. 역사의 本流를 이루어 온 것은 保守입니다. 支流 없는 강물이 어디 있습니까? 支流가 있어서 강물이 더욱 풍부해지듯이 보수주의는 支流인 비판 세력이 있음으로 해서 더 풍부해지는 것입니다』
 
  宋교수는 『「진보」는 새로운 지식을 창조해 내는 것이 아니라, 「보수」가 생산한 지식을 비판하는 것』이라면서 보수의 창조적인 産物(산물)들을 무조건 비판하는 사람들을, 「그들은 아무것도 생산하지 못한다, 知的(지적)으로도, 노동으로도…」라고 한 칼 마르크스의 표현을 빌어 「지식인 기생충」이라고 말했다.
 
  진보주의의 역할을 긍정하는 宋교수를 보며 몇 년 전에 읽었던 宋교수의 칼럼집 「열린 사회와 보수」가 생각났다.
 
  ―우리 사회는 얼마나 「열린 사회」입니까?
 
  『「열린 사회」라는 것은 「移動(이동)의 자유」가 있는 사회입니다. 여기서 「이동」이란 지역 이동·직업 이동·계급 이동을 말합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역사적으로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이 세 가지 이동이 활발한 나라입니다.
 
  지역 이동을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만에 비하면 3배, 일본에 비하면 5배, 유럽에 비하면 6∼12배 정도 이사를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IMF사태 이후 「평생직장」의 개념이 무너지고 있다고는 합니다만, IMF사태 이전에도 「평생 직장」에 해당하는 경우는 전체 직장인의 6분의 1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길게 얘기하긴 어렵지만 우리나라는 계급이동도 매우 활발한 나라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사회적인 측면에서는 매우 「열린 사회」임에도 심리적으로는 매우 「닫힌 사회」입니다. 사회적으로 이동과 변화가 지나치게 많다 보면(浮動性 사회), 사람의 마음은 오히려 닫히기 때문입니다』
 
  ―「참 보수」의 자세로 「열린 마음」, 즉 관용을 강조하셨습니다만, 그 관용에는 한계가 없습니까?
 
  『폭력으로 헌법기관을 전복하려는 세력에 대해서는 관용할 수 없습니다. 歐美의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자유민주주의와 헌법 질서를 존중하는 한에는 얼마든지 비판을 허용하지만, 그 한계를 넘을 때에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엄중하게 다스립니다』
 
  宋교수와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면서 기자는 시계를 보았다. 「50분 가지고는 보수주의에 대해 충분히 얘기하기 어렵다」던 宋교수와의 인터뷰에 걸린 시간은 100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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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밝고 힘찬 나라 운동」 집행위원장 朴槿 前 駐UN대사
  『美·日과의 유대는 우리의 행복·번영과 직결』

 
  ●朴槿:1927年生. 서울大·펜실베이니아大 대학원卒. 정치학 박사.
  駐 스위스·태국·제네바·UN대사. 現 한양大 대우교수.
 
 
  보수주의 = 溫故知新
 
  외교일선에서 물러난 후 세계일보 논설위원을 거쳐 한양大 대우교수로 있는 朴槿(박근·73·現「밝고 힘찬 나라 운동」집행위원장) 前 駐UN대사를 찾아가며 기자는 묘한 상념에 사로잡혔다. 한양대학교는 1980년대 후반 이래 이른바 「主思派(주사파)」의 아성으로 널리 알려진 대학. 그 한가운데서 朴 前 대사는 우리나라 보수주의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아이러니컬하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보수주의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보수주의는 「생활 태도로서의 보수주의(자세적 보수주의)」와 「가치관으로서의 보수주의(이념적 보수주의)」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前者(전자)는 전통과 正體性(정체성)을 중시하고, 개혁은 반대하지 않지만 급변은 거부하는 태도, 즉 「溫故知新(온고지신)」하는 삶의 방식을 말합니다.
 
  後者(후자)는 개인의 자유와 존엄을 최고의 가치로 강조하면서, 정치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 경제적으로는 시장경제 질서를 추구하는 이념을 말합니다』
 
  ―보수주의와 진보주의는 어떻게 다릅니까?
 
  『「보수주의」는 인간은 천사도 아니고, 악마도 아니며, 그 능력에 한계가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합니다. 보수주의는 인간의 능력에 한계가 있다고 믿기 때문에 권력을 맹목적으로 신뢰하지 않습니다. 보수주의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최소한의 권력은 필요하지만, 권력을 무한대로 확장하여 권력의 힘으로 모든 경제·사회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을 거부합니다. 대신 보수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창의의 힘을 믿습니다.
 
  반면에 진보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개인에게 맡겨서는 안 되고, 국가 권력의 힘으로 사회의 모순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사상입니다. 가장 진보적이라고 자처하는 공산주의의 본질은 국가주의, 권력주의입니다』
 
  ―흔히 「保守란 지킬 것은 지키고, 버릴 것은 버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버려야 할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버려야 할 것들은 한마디로 비합리적인 제도와 관행들입니다. 불투명한 정치자금과 기업회계제도, 밀실 공천 등 …』
 
  朴 前 대사는 이때 판단의 기준이 되는 「합리성」이란 현실에 기초한 것이어야지, 탁상공론에 근거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醫藥分業(의약분업)을 예로 들었다.
 
  『醫藥分業이 실패한 것은 현재까지의 의료 관행이 우리의 의료 여건에 비추어 볼 때 나름대로 합리적인 것이어서 별 문제가 없었음에도, 책상 앞에 앉아 무리하게 선진국의 제도를 도입하려 든 데 원인이 있습니다』
 
 
  외국의 견제가 한국 민주화 앞당겨
 
 
  ―우리는 흔히 「민주주의」 앞에 「자유」라는 말을 덧붙여 「자유민주주의」라고 얘기합니다. 자유민주주의와 민주주의는 다른 것입니까?
 
  『「민주주의」는 흔히 「民에 의한 지배」, 「多數(다수)에 의한 지배」라고 합니다. 이에 의하면 민주주의는 多數의 의사에 의해 종교의 자유를 폐지하는 것도, 재산을 몰수하는 것도, 반대당을 해산하는 것도 가능한 절대적 통치로 흘러갈 우려가 있습니다.
 
  「자유민주주의」란 바로 多數의 이름으로 「자유」라는 기본 가치를 희생시킬 수 없는 민주주의를 말합니다. 자유민주주의는 多數의 결정권이 제한되는 민주주의입니다』
 
  朴 前 대사는 우리나라에서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을 쓰게 된 다른 이유로 『냉전체제하에서 공산주의와 최일선에서 대치하면서 우리가 지향하는 민주주의가 공산주의자들이 내세우는 민주주의와 어떻게 다른가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는 점을 들었다.
 
  『자유민주주의는 時空(시공)을 초월한 가치인지, 각 나라가 처한 경제·사회적 여건에 따라 제약을 받고 수정이 가능한 것인지』를 묻자, 朴 前 대사는 외교관 시절 자신의 경험을 들려 주었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 朴 前 대사는 한국의 민주화와 인권보장을 요구하는 외국의 관리들, 인권단체, 지식인들의 압력에 맞서 정부의 입장을 대변해야 할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때마다 朴 前 대사는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경제적 토대가 필요하다. 경제적 토대가 있어야 중산층이 형성되고, 중산층이 형성되어야 민주주의가 가능한 것 아니냐』라며 『현재 한국의 권위주의 정권은 경제적 여건이 갖추어질 때까지만 존속하는 과도정권임』을 역설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외국인들은 朴 前 대사의 주장을 단순히 권위주의 정권을 옹호하기 위한 것으로 曲解(곡해)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나면서부터 자유와 풍요를 누린 그들에게 우리의 처지를 이해해 달라는 것은 사실 무리였습니다. 肉食(육식)만 하는 호랑이가 菜食(채식)동물을 이해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까요…』
 
  그러나 朴 前 대사는 권위주의 정권에 대한 외국의 견제가 있었기에 한국의 정치가 북한과 같은 전체주의 체제로 변질되는 것을 막고, 자유민주주의로 이행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朴 前 대사는 우리가 우방국의 안전보장 아래 있었기 때문에 1960년 4·19, 1980년의 「서울의 봄」, 1987년 6월 사태처럼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문화의 醱酵(발효) 과정」을 거칠 수 있었다고 했다.
 
  『제가 우리나라의 민주화 과정에서 외국의 역할을 이렇게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은 권위주의 정권 시절, 외교관으로서 그들의 압력과 견제를 직접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직선제 개헌, 문민 정부 출범, 여·야 정권 교체를 겪었으면서 아직까지 민주주의가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니체는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이 괴물이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건국 후 공산주의라는 괴물과 싸우는 과정에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정부는 물론 야당과 이른바 「진보세력」까지도 공산주의를 닮아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문득 태국에서 좌·우익 대결이 극심하던 1976년 당시 朴 前 대사가 駐태국 대사였다는 기억이 떠올라 당시의 상황을 물어보았다.
 
  『월남, 캄보디아, 라오스가 잇따라 공산화된 후 「도미노 이론」에 따라 다음 차례는 태국이 아니냐는 인식이 팽배해지면서 태국 내에서도 좌익세력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태국 대사로 부임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 국립 타마사트 대학의 좌익 학생들이 왕세자의 허수아비를 絞首(교수)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사건이 있던 날 방송에서는 밤새도록 좌익세력에 맞서 시민들이 궐기할 것을 호소하더군요. 다음날 타마사트 대학으로 수만 명의 군중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저도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현장으로 달려갔습니다. 군중들과 좌익 학생들 사이에 유혈충돌이 벌어졌고, 국민들의 지지를 잃은 좌익 학생들은 밀림으로 들어가 게릴라 활동을 펴다가 결국은 소멸되고 말았습니다』
 
  朴 前 대사는 『이 사건은 「침묵하는 多數」의 힘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였다』며, 『우리의 경우 특별한 계기가 없어 보수 세력이 침묵하고 있을 뿐』이라고 보았다.
 
 
  美·日과의 유대는 우리의 행복과 직결
 
 
  美·日과의 관계에 대해 묻자 朴 前 대사는 『우리 국민·엘리트·위정자들이 對美·對日관계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해 걱정』이라며, 『美·日과의 관계는 우리의 행복·번영과 직결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이나 러시아와의 유대는 우리가 평화롭게 살기 위한 善隣(선린)의 필요성에 따른 것입니다. 반면에 美·日과의 관계는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라는 공통의 가치 위에 기반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지식정보화 시대에 우리의 생존에 필요한 첨단 기술을 흡수하기 위해서라도 美·日과의 관계는 매우 중요합니다』
 
  ―북한 趙明祿(조명록)의 訪美(방미)를 계기로 미·북관계가 급진전될 전망입니다. 앞으로 미국은 남·북한간의 등거리 외교를 펴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한반도에서 미국의 이익만 보장된다면 북한과도 손잡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요?
 
  『지금 극동에서 미국의 가장 큰 관심은 중국의 覇權(패권)을 억제하고, 중국과 러시아의 전략적 제휴를 차단하는 것입니다. 중국과의 충돌을 피하는 방법으로 미국은 궁극적으로 중국이 민주화, 자본주의화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즉 단순한 세력균형정책이 아니라 「자유와 민주주의의 확장」이 미국이 추구하는 목표인 것입니다. 미국이 이러한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대상은 남한이지, 金正日 1인 독재하에 있는 북한은 아닙니다』
 
  ―거기에 어떤 變數(변수)는 없을까요?
 
  『한 가지 변수는 한국 정부와 국민의 선택입니다. 한국이 북한과 함께 親中정책으로 선회하거나, 한국이 자유민주주의를 포기하고 미국을 배척하는 상황 아래서 티토가 그랬던 것처럼 북한이 내부적으로는 공산독재를 유지하면서 중국의 패권에 반대하는 정책을 편다면 얘기는 달라지겠지요.
 
  그러나 대한민국의 전략적·경제적 가치로 보아 우리가 먼저 미국에 등을 돌리지 않는 한, 미국이 먼저 대한민국을 저버리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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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國家史觀의 전도사 金龍瑞 교수
  『「民衆史觀」은 있어도「國家史觀」은 없는 사회가 어떻게 유지됩니까』

  ●金龍瑞:1939年生. 연세大·도쿄大 대학원卒. 행정학 박사. 외교안보연구원 정책연구교수. 숭실대 부교수. 現 이화여대 교수.
 
 
  「국가」를 부정적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은 식민지의 유산
 
  행정학은 「국가경영」을 다룬다는 점에서 원래 정치학과 뿌리를 같이하는 학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행정학자들은 행정학의 독자성을 내세우며 정치학과 거리를 두려 애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형 보수주의」, 「국가주의」라는 주제에 穿鑿(천착)하고 있는 金龍瑞(김용서·61·이화여대 행정학) 교수는 다소 특이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金교수가 「보수주의」, 「국가주의」와 같은 「정치적」인 주제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대는 행정우위의 시대입니다. 국가경영에 대한 전문적 식견을 가진 사람이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感(감)의 정치」,「人治(인치)」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前근대적인 3金정치가 나라를 좌우하고 있습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더니, 前근대적인 3金정치의 리더십이 나라를 엉망으로 만들고 있어요. 그러한 폐해를 극복하는 방안을 연구하다 보니 「정치적」인 주제에 천착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민족이나 민족주의란 말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반면, 국가나 국가주의란 말은 매우 부정적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일제 36년을 거치면서 「민족」이라는 구호 아래 통치권력에 저항하는 것이 정당하고, 해방이나 혁명이라는 개념이 긍정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문화가 축적되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나라의 지배 아래 있는 식민지에서는 「국가」에 대해 의미 부여를 못하는 대신, 「민족」이라는 감정적 요소에 호소하게 된 것이죠』
 
  金교수는 광복 후에는 사회주의자들이나, 인기만 좇는 정치인들이 그러한 의식을 확산시켰다고 주장했다. 그들이 「민주」,「민중」만 찾으면서 「국가」에 대해선 언급을 회피하다 보니 우리나라는 「民衆史觀(민중사관)」은 있어도, 「國家史觀(국가사관)」은 없는 나라가 되고 말았다면서, 金교수는 『이런 사회가 어떻게 유지될 수 있겠느냐』고 개탄했다.
 
  기자가 『대한민국이 수립된 지 반세기가 지나도록 여전히 국가의식이 희박하다면 그것은 국가에도 문제가 있었던 것 아니냐』라고 묻자 金교수는 『국가에 문제가 있었다기보다는 국민들을 계도해야 할 지식인들에게 문제가 있었다고 본다』고 답했다.
 
  『서양에서는 중세 해체기의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 「絶對主義(절대주의)」 시대를 겪었고, 그후 시민혁명을 거쳐 근대로 진입할 수 있었습니다.
 
  일제의 강압적인 통치에서 해방된 후 우리가 겪었던 혼란은 중세 해체기의 혼란에 비견할 수 있습니다. 그 혼란을 극복하고 뒤늦게 근대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절대주의적 지도자가 나타나 폭력으로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불가피했습니다. 이는 남·북한은 물론이고 모든 개발도상국에 공통되는 현상입니다』
 
  그런데 해방 후 미국의 민주주의를 접한 우리의 지식인들은 역사적 배경은 무시하고 미국과 같은 「안정된 사회」의 민주주의만을 요구하다 보니, 그에 미치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현실에 대해서는 불평만 일삼으면서 국가의식을 약화시켜 왔다는 것이다. 金교수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미국의 문화가 후진국 지식인의 머리를 식민지화해 버린 셈』이라고까지 표현했다.
 
 
  우리가 자랑할 역사는 우리의 현대사
 
 
  金교수는 「한국형 보수주의와 리더십」에서 국민들의 국가의식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영광스러운 민족사, 팽창의 기억 등을 강조할 것을 주장한 적이 있다. 우리에게 그런 기억이 있는지를 묻자 金교수는 『우리에게 자랑스러운 역사, 내세울 만한 인물이 없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에게 보는 눈이 없기 때문에 있는 데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라면서 『우리에게는 자랑스러운 역사가 먼 옛날에 있었던 것이 아니고, 오늘날의 우리들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시기에 있었다』고 말했다.
 
  『歐美(구미) 여러 나라들이 현대 국가를 이룩하기까지 수백 년이 걸린 반면, 우리는 불과 30년 만에 현대 국가를 이룩했습니다. 이는 매우 자랑스러운 일임에도, 사람들은 그 과정에서의 부작용을 들어 오히려 부끄러워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金교수는 『일본인들은 자신에게 저항하는 사찰을 불태우고, 수만 명의 승려들을 학살한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를 파괴적·부정적 인물로 보기보다는 과거의 병리적 유산을 일소해 버리고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 노력하다가 非命(비명)에 간 인물로 기억하고 있다』면서 『세상에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없음에도 우리는 지도자의 부정적인 측면만을 본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우리는 발전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金교수는 현대 국가를 만든 李承晩, 朴正熙 대통령을 높이 평가했다.
 
  『팽창의 역사를 강조하면 군국주의자라는 오해를 받기 쉬울 것 같다』고 지적하자 金교수는 자신이 주장하는 「팽창」은 과거와 같은 영토적인 팽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기능적·문화적 팽창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朴대통령 시절 월남 파병과 세계경제시장으로의 진출, 全斗煥(전두환) 대통령 시절의 對美무역흑자 등도 얼마든지 「팽창의 역사」로 기억할 수 있습니다』
 
  金교수는 우리의 역사를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것 못지않게 남의 장점을 배워 우리의 것으로 소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도 강조했다.
 
  『우리는 흔히 일본인들은 强者에게 약하고, 弱者에게 강하다고 비판하지만, 그것을 다른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인들을 보면 歐美人들이 자신의 장점을 파악하는 것보다 더 정확하게 구미인들의 장점을 파악하고 있습니다. 일본인들은 구미인들이나 후진국들의 단점은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남의 장점만 보고 그것을 배우려 노력하니 나라가 발전하는 것입니다』
 
 
  「침묵하는 다수」가 하나로 결집해야
 
 
  일본인들은 자기의 역사에서 긍정적인 면을 보고, 남의 장점을 취하는 데 능한 반면 우리는 그렇지 못한 이유에 대해 金교수는 『우리가 실용주의보다는 관념주의에 빠져 있기 때문』이라고 단언했다.
 
  金교수는 실용주의가 체질화된 국가나 개인은 자신의 분수를 지킬 줄 알며, 분수를 지킬 줄 알면 거짓이 없어진다고 강조했다.
 
  『歐美에서는 실용주의와 거기에 기초한 전문성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정직한 것은 정확한 것이고, 정확한 것은 정직한 것」이라는 생각이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들이 정치문화에 투영될 때 탄탄하고 효율적인 민주주의도 가능해 지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전래의 관념주의적 사고방식을 폭력을 동원해서라도 뜯어 고치려 했던 이가 朴正熙 대통령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18년 동안 하면서 간신히 국민들의 사고 방식을 고쳐놓았지만, 민주화라는 명분을 내걸고 그에게 저항했던 세력들이 정권을 잡으면서 도로아미타불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이걸 어떻게 해야 고칠 수 있겠습니까?
 
  『맞는 얘기입니다. 옳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세력과 병리현상 세력이 싸워서 어느 쪽이 이기느냐에 따라 나라의 命運(명운)이 달라집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관념론자, 허세부리는 자들이 득세해 왔고, 그러다 보니 선동정치, 아니 사기꾼 정치가 판을 쳐왔습니다. 더 이상 이런 풍토가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즉 「침묵하는 多數(다수)」가 하나로 결집해서 사회적인 세력투쟁에서 승리할 때 우리 사회의 병리현상은 극복될 수 있을 것입니다』
 
  ―6·15 남북 공동선언 이후 통일이 당장이라도 이루어질 것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국가의식은 오히려 약화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북한은 대한민국의 국가기능과 북한의 국가기능이 충돌하면 자신들이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때문에 「동족에게 왜 총부리를 겨누느냐」면서 민족 감정에 호소, 대한민국의 국가기능과 민족기능을 분리시킴으로써 우리의 역량을 약화시키려는 것입니다. 북한의 국가기능은 조금도 흔들림 없이 남조선 해방을 위한 전투 태세를 강화하면서, 대한민국에 대해서는 「잠드는 피리」를 불고 있는데, 그걸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 안타깝습니다. 위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위기 상황에서는 「침묵하는 다수」보다는 「행동하는 少數(소수)」가 역사의 물결을 바꾸어 놓지 않았습니까? 우리나라에서 「침묵하는 다수」가 결집이 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歐美에서는 위기가 오면 지도층이 「노블레스 오블리제」 정신을 발휘, 위기극복에 솔선수범합니다. 기득권을 가진 자들이 체제를 지키기 위해 자기가 가진 만큼 내놓는 것을 당연히 여깁니다. 歐美의 민주주의는 이러한 정신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반면에 우리나라의 보수주의자들은 많은 경우 지난 날 정권의 혜택을 받고 편하게 지낸 사람들이면서도, 위기時에 자기를 다 버리며 나서려는 마음은 부족합니다』
 
  그러나 金교수는 『현 정권이 하는 일이 모두 거짓이고, 나라 살림은 엉망이 되어 위기가 올 수밖에 없다. 위기가 오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하다』면서 『위기가 오면 사람들은 눈을 뜨게 되어 있다. 그때까지 횃불을 꺼뜨리지 않고 지키는 사람이 소수라도 있으면 괜찮다. 그 정도의 사람들은 우리 사회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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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전략연구소장
  『「낮은 단계의 연방案」은 고려연방제로 가는 속임수』

 
  ●呂永茂:고려大·同대학원卒. 법학박사. 동아일보 논설위원.
  통일연구소장, 통일정책평가위원. 연합통신 논설위원.
 
 
  6·15 공동선언은 고려연방제에 도장 찍어준 것
 
  「테러리즘과 저항권」,「통일의 조건과 전망」 등의 저작을 통해 국제법적 관점에서 남북한 관계를 조망해 온 呂永茂(여영무·65·前 동아일보 논설위원) 남북전략연구소장을 만나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의 남북한 관계 및 국제관계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체제와 이념을 초월하여 민족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자유민주주의의 소중함에 관한 의식이 흐려지고 있는 이유에 대해 呂소장은 『現 정권이 언론, 특히 방송 매체를 완전히 장악하여 보수, 자유민주주의,온건 중도의 목소리를 완전히 배제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조금 지난 이야기입니다만 6·15 남북공동선언을 어떻게 보아야 하겠습니까?
 
  『제가 볼 때에는 5개항 가운데 80%는 북한이 평소 주장하던 바를 그대로 들어준 것입니다.
 
  제1항에서 「자주성」을 언급하고 있는데 북한이 주장하는 「자주」는 주지하다시피 주한미군 철수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제2항에서 「南의 연합案과 北의 낮은 단계의 연방案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고 인정하고, 이 방향에서 통일을 추진한다」고 한 것은 북한이 그동안 주장해 온 고려연방제에 도장을 찍어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밖에 비전향 장기수 송환, 북한에 대한 경제지원 등 북한은 그들이 원하던 바를 다 얻었습니다. 우리가 얻은 것이라고는 소수의 남북이산가족찾기 하나인데, 그나마 북한이 「催淚性(최루성) 對南 心理戰」의 場으로 활용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1991년 金日成의 신년사 등을 통해 등장한 北의 「낮은 단계의 연방案」은 남·북한 지역정부에 외교·국방권을 준다고 되어 있습니다. 北이 말하는 「낮은 단계의 연방」은 하나의 중앙정부를 두는 것입니까?
 
  『「낮은 단계의 연방」 단계에서도 두 개의 지역 정부 위에 민족통일기구라는 것들을 두도록 되어 있는데, 이는 사실상 하나의 중앙정부를 두는 것으로 봐야 합니다』
 
  呂소장은 『연방국가라는 것은 하나의 헌법 아래 하나의 국가를 건설하자는 것인데, 인류 역사상 서로 상충되는 이데올로기를 가진 두 개의 정치집단이 연방을 구성한 사례도 없고, 가능하지도 않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북한이 끈질기게 연방제를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연방제는 국제법적으로 하나의 주권 안에 두 개의 정치단체가 소속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경우 북한이 다시 기습 남침할 경우, 이는 하나의 주권국가 안에서의 내전이 되기 때문에 미국이나 UN이 개입할 여지가 없게 됩니다. 북한은 바로 이 점을 노리고 있는 것입니다』
 
 
  「낮은 단계의 연방案」은 北의 對南인식이 여전하다는 증거
 
 
  기자가 呂소장을 만난 이틀 후인 10월6일 북한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장 안경호는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 제시 20돌 기념 평양시 보고회」에서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처음으로 「낮은 단계의 연방案」의 개념을 설명하였다.
 
  여기서 안경호는 『우리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案은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두 개의 제도, 두 개의 정부」의 원칙에 기초하되, 北과 南에 존재하는 두 개의 정부가 정치·군사·외교권을 비롯한 현재의 기능과 권한을 그대로 가지게 하고, 그 위에 민족통일기구를 내오는 방법』이라면서 『北과 南에 두 제도, 두 정부의 공존에 기초한 연방통일국가를 창립하자면, 그에 저촉되는 모든 물리적·정치적 장벽들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자는 10월15일 呂소장에게 전화를 걸어 북한이 10월6일 제시한 「낮은 단계의 연방案」에 대한 견해를 물어보았다. 이에 대해 呂소장은 『「낮은 단계의 연방」이라는 용어 자체가 「보다 높은 단계의 연방」으로 가는 과도적 조치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데다, 국가보안법 폐지·주한미군 철수 등 전제 조건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북한의 對南인식이나 통일방안은 남북頂上회담에도 불구하고 전혀 바뀌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역설했다.
 
  ―정부의 對北경제지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金大中 대통령은 마치 자기 집 쌀독 퍼주듯 북한에 대해 무분별한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쌀독이 金대통령 개인의 쌀독입니까? 그 쌀독의 쌀이 어떻게 쌓인 것입니까? 월남의 정글에서 국군 장병들이, 나이 어린 女工들이 구로공단에서, 건설 노동자들이 熱砂(열사)의 사막에서, 원양어선의 어부들이 망망대해에서 가족들과 떨어져 생활하면서 피땀 흘려가며 쌀독을 채워놓은 것 아닙니까?
 
  구조 조정으로 실업자들은 아직도 거리를 헤매고 있고, 다시 구조조정이 시작되면 얼마나 많은 직장인들이 거리로 쫓겨 나올지 모르는 판인데, 金대통령 기분대로 그렇게 마구 쌀을 퍼줘도 되는 것입니까』
 
  呂소장은 남파 간첩·빨치산 北送(북송)이나 對北경제지원을 납북자, 국군포로 송환의 카드로 활용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면서 『국가는 국민의 생명·신체·재산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걸 해주지 못하는 국가는 존재할 의미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납북자·국군포로 문제는 국제테러리즘의 문제로 다루어야
 
 
  ―呂소장님께서는 국제 테러리즘에 관해 많은 연구를 해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趙明祿의 訪美 등으로 미국과 북한의 관계가 급진전되면서 북한에 대한 테러국지정 해제가 논의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납북자들과 국군포로들이 북한에 그대로 억류되어 있는 상태에서 북한에 대한 테러국 지정을 해제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 북한이 납북자들과 국군포로들을 억류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명백한 테러 행위입니다.
 
  테러리즘은 세계인의 公敵(공적) 제1호이며, 全세계가 연대해서 처벌, 말살해야 하는 것입니다. 미국이 납북자 문제 등을 그대로 두고 북한의 테러국 지정을 해제한다면, 그동안 국제테러리즘에 대한 단호한 대처를 이유로 세계의 경찰로 행세해 왔던 미국은 이 문제에 대해 「2중 기준」을 갖고 있음을 자인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나서서 미국에게 북한에 대한 테러국 지정을 해제해 주도록 종용하고 있지 않습니까?
 
  『말도 안 되는 일이지요. 그건 우리 정부 스스로 自國民 보호의무를 포기하는 것밖에 안 됩니다』
 
  ―남북한 및 주변 정세가 급변하면서 국민의 의식이 표류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겠습니까?
 
  『지금까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인권존중의 원칙에 따라 오늘날의 대한민국의 안보와 번영을 가져온 세력들이 총집결하여 현재 돌아가는 상황이 잘못된 것임을 지적하고, 시정하도록 공세를 벌여야 합니다. 혼자서 속으로 걱정하는 것으로는 안 됩니다. 특히 방송매체가 완전히 정부에 장악된 상황인 만큼 우리같이 글쓰는 사람들은 救國(구국)운동을 한다는 마음으로 지속적으로 「글질」을 해서 국민들을 「의식화」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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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주의 신봉하는 기업인 출신 林炚圭 변호사
  『잘하는 사람에게 박수 치는 것이 보수주의』

 
  ●林炚圭:1939年生. 서울大卒. (주)신우화학 공업 대표이사. 「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 총무이사.
 
 
  국민기초생활제는 「도덕적 해이」 불러올 것
 
  林炚圭(임광규·63) 변호사는 1972년부터 1983년까지 「(주)신우화학공업」이라는 기업을 경영한 특이한 경력의 변호사이다. 사법시험에 한번 합격하면 평생이 보장되는 것으로 여겨지는 풍조 속에서 그가 사업에 뛰어들게 된 것은 막 경제성장이 시작되던 시기에 「답안지 인생」을 거부하고, 창의적인 생산활동의 場에서 자신의 능력을 테스트해 보겠다는 생각에서였다고 한다. 1983년 과로로 기업 활동과 변호사 활동을 함께 하기 어렵게 되면서 회사를 정리하고 난 후 林변호사는 현재 변호사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좌·우익이 첨예하게 부딪치는 부분 가운데 하나인 「경제」에 대한 견해를 물어보자 林변호사는 「경제자유주의자」를 자처했다. 林변호사는 자신이 생각하는 「경제자유주의」란 「기회 균등 속에서 자유롭게 경쟁하면서 잘하는 사람에게 보상을 많이 해주고, 잘못하는 사람에게 보상을 적게 해주는 공정한 규칙을 수립해서 서로 열심히 경쟁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林변호사의 말에 의하면 자기가 부은 비율보다 많이 타가게 되어 있는 의료보험, 국민연금 제도나, SK텔레콤의 시장 점유율을 강제로 낮추려는 공정거래위원회의 방침은 모두 「공정하지 못한 것」이었다. 林변호사는 10월부터 실시에 들어간 「국민기초생활보장제」에 대해서도 부정적이었다.
 
  『누군가의 수입이 일정액에 미치지 못한다고 하여 그 차액을 국가가 補塡(보전)해 준다는 것은 열심히 일하기보다는 가난하게 보여서 국가로부터 돈을 타내려는 「소득이 낮은 자들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를 유발할 우려가 있습니다』
 
  ―그런 보수적인 사고를 가지게 된 것은 역시 기업을 경영했던 경험 때문입니까?
 
  『그런 점도 있겠지만 저는 어려서부터 先親(선친)으로부터 「잘하는 사람에게 박수를 쳐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습니다. 저는 「잘하는 사람에게 박수를 치는 것이 보수주의」라고 생각합니다』
 
  林변호사는 「진보주의」란 『열심히 잘하는 사람에게 박수는 고사하고, 「무거운 세금」이라는 따귀나 때리는 사상』이라고 표현했다.
 
  林변호사에게 그런 교훈을 남겨준 선친은 自手成家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乙未事變(을미사변) 후 高宗(고종)의 密旨(밀지)를 받들어 명성황후의 伸寃(신원)을 꾀하다가 돌아가신 曾祖父(증조부)의 영향으로 저는 일제 말기에도 집에서는 일체 일본어를 쓰지 못할 정도로 엄격한 反日(반일)분위기 속에서 자라났습니다. 그러나 선친께서는 「왜놈들은 우리의 敵(적)이지만 우리보다 앞서 있다. 적이라도 나보다 잘한다면 배워야 한다」, 「잘하는 동포에게 박수를 쳐줘야 이 겨레가 잘된다」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자수성가한 사람은 보수주의자가 된다
 
 
  林변호사는 『가난을 경험하고 자수성가한 사람은 보수주의자가 되는 반면에, 부잣집에서 태어나 별 어려움 없이 자라난 사람은 진보주의자가 된다』고 주장했다.
 
  『자수성가한 사람은 노력과 경쟁의 가치를 알고, 인간의 가능성을 믿기 때문에 「경제자유주의자」, 「보수주의자」가 됩니다. 구멍가겟집 둘째딸로 태어난 대처, 대학 시절 방송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를 벌어야 했던 레이건 등이 그 예입니다.
 
  반면에 케네디나 고어처럼 부잣집에서 태어나 자라난 사람은 늘 마음 한구석에 소외계층에 대한 죄의식을 가지고, 그들에게 무엇인가 보상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다 보니 「진보주의자」를 자처하게 됩니다』
 
  ―경제자유주의 혹은 보수주의가 소외계층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경제자유주의자라고 해서 소외계층에 대한 배려를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문명 사회의 기준으로 보아 자기 힘으로 생활할 능력이 없는 사람에 대해서는 사회안전망을 구축하여 최소한의 생활보호는 해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자기보다 더 많은 것을 누리고 사는 사람들에 대해 느끼는 위화감을 해소해 주기 위해 국가가 개입하여 평등을 구현해 주어야 한다는 주장에는 찬성할 수 없습니다』
 
  林변호사는 노인들이 가지고 있는 금융자산이나 부동산으로부터 나오는 수입을 不勞所得(불로소득)으로 여기는 시각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
 
  『젊어서 뼈빠지게 일해서 장만한 재산에 대해서는 보호하고 축복해 줌으로써 사람들이 젊은 시절 열심히 일하는 풍조를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자기의 노력으로 마련한 재산에서 나오는 수입이 불로소득입니까, 일하지 않고 기초생활보장이나 받는 것이 불로소득입니까』
 
 
  現 정권의 사상적 자세는 「정신분열적」
 
 
  ―스스로 보수주의자라고 생각하십니까?
 
  『공짜는 없다, 자기 힘으로 못사는 사람은 잘사는 사람이 도와주어야 한다, 자유를 누리며 살기 위해서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이렇게 인류가 수천 년을 살아오면서 쌓아온 지혜를 존중하는 것이 보수주의라면 저는 보수주의자입니다』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확신이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자본주의는 특정한 천재의 머리 속에서 나온 사상이 아니라 오랜 경험을 통해 축적된 「생활의 지혜」입니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지혜에서 우러나온 것이라고는 해도 결함 많은 인간이 살아가는 방법이기 때문에 인간의 결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는 제도이기도 합니다. 자본주의는 「인간만큼 나쁜 제도」입니다. 그러나 인류가 발명한 「인간을 자유롭고 풍요하게 만드는 방법」 중에서는 「가장 덜 나쁜 제도」입니다. 그것은 자본주의를 공산주의나 나치즘 등과 비교해 보면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現 정권의 경제에 대한 입장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現 정권의 경제정책은 한마디로 「정신분열적」입니다. 말끝마다 시장경제원리에 충실하겠다고 하면서 國有化(국유화: 서울은행·제일은행 등에 공적 자금을 투입하여 국유화한 것을 말함)는 왜 그렇게 좋아해요?
 
  株價(주가)가 떨어질 때마다 정부가 증권시장을 안정시키겠다고 나서는 것은 또 뭡니까? 株價는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의해 그대로 평가되는 것입니다. 증권시장을 안정시킨다고 정부가 나서서 年(연)·基金(기금)을 투입하는 것은 시장을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것입니다』
 
  林변호사는 시장경제론을 주장하면 極右(극우)로 몰아붙이는 데 대해서는 『원래 남에게 레테르 붙이고, 구호로 정치하는 것이 무식한 사람들, 공산주의자들의 특징』이라고 꼬집었다.
 
  ―구호정치는 꼭 공산주의자가 아니라도 우리가 흔히 보는 일 아닙니까?
 
  『우리나라가 제대로 되려면 그 현수막부터 다 치워버려야 합니다. 대부분의 국민들의 의식은 깨었는데, 아직도 덜 깨인 사람들을 상대로 하는 구호정치는 후진적인 것입니다』
 
  「진보」를 자처하는 목소리가 기승을 부리는 현실에 대해 林변호사는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공안기관, 혹은 반공연맹 같은 관변단체에서 보수주의자들이 할 일을 대신해 왔다』면서 『지금이야말로 우리나라의 우익, 보수주의자들이 그동안의 依他的(의타적), 수동적 자세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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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脫北난민 보호운동 벌이는 金尙哲 변호사
  『자유가 있는 곳에서 왜 진실이 통하지 않는가』

 
  ●金尙哲:1947年生. 서울大·同대학원卒. 법학박사. 서울형사지법판사.
  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 상임집행위원. 서울시장. 변호사.
 
 
  통일의 본질은 자유와 인권
 
  오래 전부터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민주주의와 인권을 외쳤던 인물들이 북한의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데 대해 비판의 소리가 적지 않았다. 인권변호사 출신으로 1987년 6월 사태 당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의 상임집행위원으로 활동했던 金尙哲(김상철·53) 변호사는 그런 의미에서 예외적인 존재이다. 金변호사는 요즘 「脫北난민보호 UN청원운동 본부장」으로 脫北난민에 대한 국내외의 관심을 호소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소리 소문 없이 각급 학교와 교회 등을 중심으로 진행되어 온 脫北난민보호 UN청원운동의 서명자는 2000년 10월 초 현재 880만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탈북난민 보호운동을 벌이는 입장에서 現 정권의 對北(대북) 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現 정권의 對北정책의 목표는 통일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통일 문제의 본질은 북한 주민들을 억압으로부터 해방시켜 자유와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에서 살도록 하는 것입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對北정책은 북한 주민의 자유와 인권을 확대하는 어떤 조치도 수반하지 않고 있습니다. 또 북한 주민의 자유로운 의사는 배제되어 있고, 북한 주민의 압제자인 金正日만을 상대로 하고 있습니다. 金正日은 북한의 현실적인 통치자로서 남북 문제에 대한 대화와 협상의 상대방은 될 수 있지만, 통일 문제의 상대방은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통일 문제의 상대방이 될 수 있겠습니까?
 
  『먼저 북한 주민들의 자유로운 투표에 의해 북한에 민주적인 헌법을 가진 정부가 들어서야 합니다. 그 헌법에 의해 들어선 정부만이 통일의 협상 상대자가 될 수 있습니다. 독일 통일이 바로 그렇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까? 통일 문제에 관해 다른 방법은 상정할 수 없습니다』
 
  북한이 노동당 창건 기념행사에 우리측 정당·사회단체들을 초청한 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묻자 金변호사는 생각하기조차 싫다는 듯 『이런 것은 얘기도 하지 말자』며 『도대체 북한 주민들의 자유와 인권의 확대가 병행되지 않는 북한 지배층과의 교류, 협력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지난 9월23일 탈북자 세미나에서 한 중년 여성 탈북자는 「TV를 보면서 북한에 관해 어떻게 이렇게 사실이 아닌 것이 지배할 수 있는가? 속이 끓어서 견딜 수가 없다」면서 「남한에는 자유가 있다는데, 자유가 있는 곳에서 왜 진실이 통하지 않는가」라고 묻더군요』
 
  1999년 10월 아르테TV 촬영팀과 함께 延吉(연길)에 들어가 탈북자 실태에 관해 조사하고 온 앙리 프라뇰 프랑스 하원의원은 金변호사에게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수많은 자기 동족들이 비참하게 죽어가고 있는데 한국 사람들이 이토록 태연하고 무관심할 수 있는 이유는 도대체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거기에 대해 제가 뭐라고 답하겠습니까? 혹자는 탈북자 문제를 거론하는 것이 남북대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느니, 金正日 정권을 화나게 하면 안 된다느니 하는 소리들을 합니다. 정치인들은 혹 그런 소리를 할 수도 있다고 칩시다. 하지만 정치인도 아닌 일반 국민들까지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국민은 침묵, 언론은 왜곡보도
 
 
  1991년 이래 「韓美우호협회」 회장·명예회장으로 韓·美간의 민간 외교에 노력해 온 金尙哲 변호사에게 최근 늘어나고 있는 反美감정에 관한 견해를 물어보자 金변호사는 5년 전 있었던 「미군 지하철 성희롱 사건」 얘기를 꺼냈다.
 
  『미군이 지하철에서 한국 여성을 희롱하고 있는 것을 본 한국 젊은이가 그 미군 일행과 싸움을 벌인 사건이었습니다. 나중에 미군에게 희롱을 당한 한국 여성이 그 미군의 부인이라는 것이 밝혀졌지만, 어느 언론에서도 그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한 신문에서는 기자가 칼럼란을 통해 「주한미군 당국은 사과할 생각은 하지 않고, 뻔뻔스러운 해명이나 늘어놓고 있다」는 글을 싣기도 했습니다. 참으로 창피한 일입니다』
 
  ―反美 일변도의 기사가 나오고 사실이 사실대로 해명되지 않는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 사회가 미성숙한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그에 대한 책임은 지식인들에게 있습니다』
 
  ―북한의 趙明祿이 미국을 방문했습니다. 美·北 관계의 진전에 따라 韓·美 관계도 지금까지와는 달라질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미국과 북한이 수교를 하면 두 개의 한국이 고착화됩니다. 대한민국과 북한은 국제적으로 두 개의 국가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북한에서 자유와 인권을 부르짖는 봉기가 일어나도 우리는 뒷짐지고 가만히 있어야 합니다. 통일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美·北 수교를 그렇게 보아야 합니다』
 
  화제를 우리 사회에서의 보수와 진보라는 문제로 돌려보았다.
 
  ―1987년 이전에는 민주화 운동에도 열심히 참여하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때의 이야기를 좀 해주십시오.
 
  『1987년 이전 제가 변론했던 시국 사건 피고인들 가운데는 공산주의자들이 많았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나는 당신들의 주장에는 동조할 수 없지만, 당신의 인권이 최대한 구현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면서 대신 그들에게 법정에서 법관의 권위를 인정할 것을 조건으로 달곤 했습니다. 변호사 선임권과 법정 진술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은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혜택을 받는 것인 만큼, 그들도 법의 권위는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당시 金변호사는 보다 효과적인 인권변호를 위해 「정의실천법조인회」를 만드는 데 앞장섰는데, 이 모임이 오늘날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모태가 되었다고 한다. 金변호사는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는 시국 사범들을 변호하는 것도 인권 옹호라는 차원에서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지만,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에는 그런 의미가 사라져 공산주의 폭력혁명론을 가진 자들을 위한 변론에는 나서지 않고 있다고 했다.
 
  『보수니 진보니 하는 것은 내정의 정책 방향에 대한 차이를 말하는 것입니다. 국가의 존립과 안전에 대해서는 보수와 진보라는 구분이 있을 수 없습니다. 북한 공산집단은 대한민국의 안전에 치명적인 위협세력입니다.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적대적인 행동을 하는 친북 세력들을 「진보 세력」으로 지칭하는 데는 동의할 수 없으며, 그들은「헌법파괴세력」으로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지역감정 해소는 해외진출을 통해
 
 
  ―그렇다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진보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외국의 예를 보아도 진정한 의미에서의 「진보」란 복지를 위한 투자, 소득 再분배, 노동시간의 단축, 실험적 행동에 대한 관용적 태도 등을 의미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그런 태도에 대해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진보적 자세와 행동이 없으면 사회는 정체되고, 교조화될 우려가 있습니다』
 
  ―스스로를 보수주의자라고 생각하십니까?
 
  『기성의 관념과 가치를 지키는 것이 기득권을 옹호하기 위한 것이라면, 저는 그런 보수주의는 싫어합니다. 그러나 진리를 지키기 위한 제도와 관행을 옹호하는 것이 보수주의라면 저는 보수주의자입니다』
 
  金변호사는 1994년 이후 「태평양아시아협회」의 이사장·회장을 맡아 개발도상국에 청년자원봉사단을 파견하는 일을 하고 있다.
 
  『東西간의 지역 감정이나 남북한의 갈등은 국내 문제, 민족 내부의 문제로 풀려면 잘 풀리지 않습니다. 눈을 나라 바깥으로 돌려 개척자적인 자세로 우리의 힘을 외부를 향해 발산할 때 우리 내부의 결속을 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세계화의 추세 속에서 우리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金변호사는 『비판은 사회의 활기를 위해 필요하기는 하지만, 비판 그 자체는 생산적이지 못하다』면서 『비판하고자 하는 욕구를 참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하고, 할 수 있는가를 찾아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자신이 앞장서서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없다면,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을 찾아서 조금이라도 도와주면 된다. 비판을 절제하고,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찾아서 하는 풍토가 조성될 때 우리에게 희망이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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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정한 자유주의를 지향하는 젊은 보수-金炳局 고려大 교수
  『우리의 과제는 「지금까지 만들어 온 것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아직 완성하지 못한 것」을 완성하는 것』

 
  ●金炳局:1959年生. 하버드大·同대학원卒. 정치학 박사. 대통령자문정책 기획위원회 위원. 「전통과 현대」 편집위원. 現 고려大 부교수.
 
 
  역사발전 순탄한 나라만이 「보수」란 말을 쓸 수 있어
 
  지난 수년간 한국에서의 보수주의의 의미를 탐구해 온 金炳局(김병국·41) 고려大 교수를 만나 한국에서의 보수와 진보란 어떤 것인지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金교수는 『全세계 200여 국가 가운데 보수주의를 지향하는 정당이 「保守」라는 말을 전면에 내걸 수 있는 나라는 영국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런 나라들은 역사발전이 폭력이나 비약에 의하지 않고 순탄하게 이루어져 전통 속에서 미래로 나갈 수 있는 길을 발견할 수 있는 나라들입니다. 「이것은 좋은 전통이고, 이 전통을 잘 살리면 근대-현대-脫근대 시대에도 더불어 잘살 수 있는 자유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는 나라만이 감히 「보수」라는 말을 쓸 수 있습니다』
 
  金교수는 『반면에 歐美에서도 왜곡되고 시련의 역사를 겪은 독일과 같은 나라에서는 보수주의를 지향하는 정당은 있어도 「보수」라는 말을 전면에 내걸지는 못하고 있다』면서 『우리도 국민들이 「유교 등 전통 가치의 한계 때문에 우리가 근대로의 이행을 순탄하게 하지 못하고, 식민지배와 분단의 쓰라림을 겪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전통 속에서 미래로 나갈 길을 발견하기 어려운 국민』이라고 말했다.
 
  金교수는 『흔히 우리나라에서 「보수주의자」라고 하면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옹호하고 미국과의 연대를 주장하는 세력을 의미한다』면서 『그러나 그러한 가치들은 우리의 전통 가치가 아니라 해방 후 外生的으로 주어진 것이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해방 후 이 땅에는 제대로 된 자유민주주의도, 자본주의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1945년 당시에는 전통으로부터 물려받아 지켜야 할 「보수적」인 가치가 아니라, 이 땅에서 새로 만들어 내야 하는 「진보적」인 가치였습니다. 결국 이 땅의 「보수주의자」들은 우리의 전통 가치도 아니고, 이 땅에 존재하지도 않고 있던 가치를 「지키겠다」고 나선 셈입니다』
 
  그러나 金교수는 『소위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건설하기 위해 얼마나 적극적으로 노력했는지는 의문』이며, 『개발국가를 정당화시키고, 거기서 미래의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얘기할 수 있는 「보수주의자」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결국 한국에서 「보수」란, 기존의 질서를 지키려는 「보수(세력)」는 있지만 진정한 의미의 「보수주의」는 없고, 소위 「보수주의자」가 얘기하는 「보수주의」라는 것은 따지고 들어가면 전혀 「보수적」이지 않은, 그래서 「보수주의자」가 내놓고 자신들이 생각하는 「보수주의」를 강력하게 주장할 수 없는, 아주 모순에 찬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진보적 아이디어」와 「민족적 관념」의 결합은 전체주의
 
 
  金교수는 한국에서의 진보 역시 서구적 의미에서의 진보에서 벗어나기는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金교수에 의하면 서구에서 진보의 자리에 서 있던 세력은 그들이 자유주의자건, 사회민주주의자건 간에 민족주의와 상당한 대립, 긴장관계를 이루고 있었다고 한다. 「민족」이라는 집단 전체의 이익을 내세우는 민족주의는 개인의 이익을 우선하는 자유주의나 노동자 계급의 이익을 우선하는 사회민주주의와는 조화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식민 통치를 경험한 때문이겠지만, 1945년 이전부터 「진보」가 민족주의와 맞물리면서 서구적 진보(자유주의, 사회민주주의)와는 전혀 다른 진보가 나오게 됩니다. 예나 지금이나 한국의 진보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이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한국의 진보는 민족과 통일을 내세우는 것으로 그들의 「진보성」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 그들이 진정 「진보」라면 자유주의자는 개인의 존엄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사회민주주의자는 노동자 계급에 대한 관심을 통해 그들의 진보성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봅니다』
 
  金교수는 나치즘이나 소련의 공산주의에서 보듯 「진보적인 아이디어」와 「민족주의적 관념」이 맞물리면 전체주의로 가지, 서구식 의미의 「진보」로 가지는 않는다고 강조했다.
 
  ―자유민주주의는 時空(시공)을 초월한 보편성을 갖는 것입니까, 아니면 각 나라가 처한 사회·경제적 여건에 따라 특수성을 갖는 것입니까?
 
  『자유민주주의 그 자체는 보편성을 가집니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가 가능하려면 상당한 수준의 계층분화가 되어야 하고, 사회 통제망이 느슨해져야 하며, 어느 정도의 경제발전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렇듯 나라마다 처한 환경이 다른 만큼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념 안에 있는 가치들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구현할 수 있을까 하는 방법론에 가서는 여러 가지 길이 있을 것입니다』
 
  ―해방 후에는 우리에게 자유민주주의나 자본주의가 현실적으로 존재하지는 않았다 해도, 지난 50년 동안 어느 정도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이룩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나라의 「보수(세력)」에게는 지킬 만한 가치가 생겼다고 보아도 되지 않겠습니까?
 
  『아직은 아닙니다. 하드웨어는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라는 틀을 갖추었는지 몰라도 그걸 운영하는 관념들은 아직 멀었습니다.
 
  예를 들어 개방된 시장경제질서라고 하는데, 정말 그렇다면 지난 2년 동안 구조조정이 저런 식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자유민주주의 政體(정체)를 가지고 있다지만, 국회는 전혀 힘이 없고, 정당은 이익을 가지고 정책 경쟁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권력 다툼이나 벌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자유민주주의의 가장 큰 특징은 상대방을 인정하는 관용인데, 정부의 정국 운영방식을 보면 전혀 「열린 마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가 아직까지 제대로 구현되지 않고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우리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싹틀 만한 토양이 아닌 곳에서 우리가 이만큼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질서를 만들어 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金교수는 『우리가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를 만들기 위해 지난 50년 동안 몸부림을 쳐왔고, 상당한 발전이 있었지만 아직도 가야 할 길은 엄청나게 멀다』면서 『우리의 과제는 「지금껏 만들어 온 것」을 지키는 데 있지 않고, 「아직 우리가 다 완성하지 못한 것」을 완성하는 데 있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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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 속에서 우리의 나갈 길을 찾는 柳錫春 교수
  『전통으로부터 미래를 건설하는 데 필요한 자원을 찾아낸다』

 
  ●柳錫春:1955年生. 연세大·일리노이大 대학원卒. 사회학 박사. 한국사회학회 총무이사. 「전통과 현대」 편집위원. 現 연세大 교수.
 
 
  유교와 포스트 모던
 
  儒敎的(유교적) 전통을 현대에 接木시키는 작업을 해온 柳錫春(유석춘·45) 연세대 교수는 기자가 인터뷰 요청을 하자 처음에는 난색을 표명했다. 「연세춘추」에 「안티 조선 운동」을 비판하는 글을 실은 것 때문에 시달림을 받고 있다면서 이럴 때 「月刊朝鮮」에 자신의 인터뷰가 나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朝鮮日報에 기고하거나 朝鮮日報와 인터뷰하는 것 자체를 문제삼는 「안티 조선」 세력들의 극성스러움은 익히 아는 터라, 「月刊朝鮮」과의 인터뷰로 柳교수를 더욱 난처하게 만들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柳교수에게 『현실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시는 것이 어렵다면, 그동안 교수님께서 穿鑿(천착)해 오신 「전통과 현대의 접목」이라는 문제에 대해 말씀을 듣고 싶다』고 하자, 柳교수는 『그럼 시간을 정하자』고 했다.
 
  柳교수를 찾아갔던 10월20일 오후, 연세대학교 학생회관 앞에는 柳교수를 비판하는 벽보가 붙어 있었다.
 
  연구실에서 기자를 맞은 柳교수는 舊韓末이나 일제하 지식인들처럼 둥근 뿔테 안경을 끼고 있었지만, 장발에 T셔츠 차림이었다. 柳교수가 천착하는 「전통과 현대」라는 주제에 딱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柳교수가 생각하는 「보수」의 개념을 묻자 柳교수는 『「보수」는 「전통과 가까운 것」이며, 사회의 잘못된 부분들은 온건하고 점진적인 방법으로 고쳐 나가자는 것』이라며 『「溫故知新」하는 생활태도가 곧 보수』라고 말했다.
 
  ―통념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보수주의라고 하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家父長制(가부장제)와 같은 縱的(종적) 질서를 강조하는 儒敎的 전통과 자유민주주의의 접목이 가능할까요?
 
  『유교는 자유민주주의와 거리가 있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그러나 「백성은 곧 하늘」이라는 표현에서 보듯 유교의 民本主義(민본주의) 전통은 민주주의와 맥이 닿습니다. 조선 시대 言官(언관)들이 諫(간)하는 것은 어지간한 暴君(폭군)이 아닌 한 임금도 귀를 기울였습니다. 민주적인 의사전달이 가능했다는 얘기입니다. 유교에서 權利나 法治의 개념을 발견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유교에서도 자유민주주의적인 가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설사 그것이 어렵다 하더라도 유교와 자유민주주의의 공존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현실적으로도 우리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향하고 있지만, 유교가 우리의 思考(사고)와 생활을 지배하고 있지 않습니까』
 
  柳교수는 더 나아가 유교에서 脫近代的(포스트 모던) 가치를 발굴해 낼 수도 있다고 했다.
 
  『서양의 「근대성」이라는 것은 개인을 절대시하고, 他律的(타율적) 규율을 통해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개념입니다. 이에 비해 「脫근대」는 개인 상호간의 관계(間主觀性·간주관성)를 강조합니다. 그런데 유교는 「三綱五倫(삼강오륜)」에서 보듯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 개인을 보고, 자기 수양, 즉 자율적 규제를 강조합니다. 이미 유교는 서양의 「근대성」을 넘어서는 가치를 내포하고 있는 셈입니다』
 
  柳교수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중시하는 사고방식은 종래의 표현대로라면 「緣故主義(연고주의)」가 되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보화 시대에 중시되는 「네트워크(Network)」라는 개념과도 통한다』면서 『사실 따지고 보면 그게 그 소리인데도 「緣故자본주의」, 「情實(정실)자본주의」라면 문제가 있어 보이고, 「네트워크 자본주의」라면 뭔가 있어보인다』고 꼬집었다.
 
 
  시장경제, 사회민주주의의 한계를 儒敎로 치유
 
 
  柳교수는 儒敎를 통해 시장경제 체제와 사회민주주의 체제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유민주주의가 경제 분야에서 구현되는 것이 시장경제 체제입니다. 그러나 시장경제 체제에서는 경쟁에서 탈락하는 사람들이 나오게 마련입니다. 부자들에게 무겁게 세금을 매겨 그 돈으로 소외계층을 돌보고 복지를 확충하자는 것이 사회민주주의입니다. 하지만 정부의 재정적 부담, 과도한 세금, 근로의욕의 저하 등의 문제로 인해 서구의 사회민주주의 모델은 미국식 시장경제 모델에 경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미 드러났습니다.
 
  공동체 의식을 강조하는 儒敎的 전통을 잘 계승한다면 서구의 사회민주주의 모델의 폐해를 피하면서 복지를 확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방 有志(유지)들이 서울로 유학간 학생들을 위해 기숙사를 짓는 것은 그 좋은 예이며, 老부모를 모시고 사는 자녀에게 아파트 분양시 우선권을 주는 제도처럼 전래의 가치들을 현실에서 구현하는 경우 인센티브를 준다면 국가에 큰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복지를 확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柳교수는 「전통과 현대」 1997년 여름호에 실린 「유교 자본주의의 가능성과 한계」라는 논문에서 「한국을 비롯한 東아시아의 경제적 성공은 유교적 전통의 소산」이라는 주장을 편 바 있다.
 
  『그 논문을 쓰셨을 때에는 IMF사태를 겪기 전 우리 경제의 성공이 돋보이던 시절이었지만, 그후 우리 경제가 완전히 망가져 버리지 않았느냐』고 묻자 柳교수는 웃으면서 『저도 IMF사태를 겪으면서 「그동안 내가 연구해 온 것들이 모두 물거품이 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황당했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IMF사태가 극복되어 가는 과정을 보면서 柳교수는 「유교 자본주의」의 底力(저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우선 「金모으기 운동」은 우리 국민들의 공동체 의식을 잘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경제구조가 IMF사태 이전과 근본적으로 변한 것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巨示(거시)경제지표에 의하면 IMF사태가 극복된 것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이것은 과거 개발 연대의 「유교자본주의」가 세계화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전략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政經癒着 끊으면 우리 경제는 망한다
 
 
  IMF사태 이후 IMF나 시장경제주의자들은 政經癒着(정경유착)을 끊고, 경제는 시장 기능에 맡기라고 끈질기게 주장해 왔다. 그러나 柳교수는 『정경유착을 끊으면 한국 경제는 망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柳교수가 말하는 「정경유착」이란 「정치와 경제 간의 부패 구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발전을 위한 정치-경제의 상호협력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다. 柳교수는 포항제철은 정경유착을 「잘」한 사례로, 한보철강은 잘못한 사례로 꼽았다.
 
  『국가가 정경유착을 잘하는지 못하는지 여부는 누가 감시하느냐』고 묻자 柳교수는 『그 일은 지식인과 시민단체가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柳교수는 지금은 일부 시민단체들이 정권의 紅衛兵(홍위병)이 되어 있어 비판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柳교수는 지난 10월12일 연세대학교 동서문제연구원이 마련한 정책 포럼 「한국 시민운동단체의 문제점과 대안」에서도 「한국 시민단체의 目的 轉置(목적 전치)」라는 논문을 통해 한국 시민운동단체의 행태를 비판한 바 있다.
 
  여기서 柳교수는 『주요 시민단체들이 정부의존적인 활동, 내부인건비 중심의 예산집행 등으로 인해 순수한 공익적 목적성을 상실하는 한편 지도자들의 자질에도 문제가 있다』고 비판하면서 『전통적 「공동체 문화」의 再해석을 통해 새로운 운동의 이념과 방법을 모색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었다.
 
  기자는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 柳교수에게 그를 「젊은 보수주의자」로 보는 시각에 동의하느냐고 물어보았다. 柳교수는 이렇게 답했다.
 
  『서양식 개념에서 左派(좌파)에 대립하는 의미에서의 右派(우파)라든지, 시장경제주의자라든지 하는 의미에서라면 저는 보수주의자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의 전통으로부터 우리의 미래를 건설하는 데 필요한 자원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이 「보수주의자」라면 저는 즐거운 마음으로 그러한 평가를 받아들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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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치주의 강조하는 徐錫九 변호사
  『직접민주주의 美名 아래 통일 문제를 국민투표에 부친다면 법치주의에 대한 도전』

 
  ●徐錫九:1944年生. 경북大卒. 부산지법판사. 대한변협 인권위원. 대구 경실련 공동대표. 변호사.
 
 
  진보의 탈을 쓴 人治主義者들
 
  지난 9월21일 대구 지역 변호사들의 시국선언을 주도했던 徐錫九(서석구·56) 변호사와의 인터뷰는 전자 우편(E-mail)을 통해 이루어졌다. 기자가 전화 인터뷰를 요청하자 徐변호사는 질문할 내용을 알려주면 그에 대한 답변서를 작성해서 보내주겠다고 했다. 徐변호사가 보내온 답변서의 분량은 A4용지로 37매, 200자 원고지로는 무려 257매나 되었다. 이 방대한 量(양)의 답변서를 관통하는 하나의 정신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法治主義」였다.
 
  ―법치주의의 관점에서 보수와 진보를 어떻게 개념지을 수 있겠습니까?
 
  『보수나 진보 모두 「人治(인치)」를 거부하고 「法治」를 주장한다는 점에서는 공통됩니다. 그러나 「보수」는 법에 문제가 있을 경우에도 적법절차에 의한 개정이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實定法(실정법)은 존중되어야 한다는 태도를 취합니다. 반면에 「진보」는 법에 문제가 있을 경우 때로는 실정법에 대한 불복종 운동까지 주장합니다』
 
  徐변호사는 『실정법에 대한 불복종 운동은 그 법이 저항권 행사의 대상이 될 만큼 국민의 기본적 인권과 법치주의를 근본적으로 침해하는 경우에 한하여 가능하다』면서 지난 제16代 총선을 앞두고 벌어졌던 총선연대의 활동을 비판했다.
 
  『총선연대가 불복종 대상으로 삼은 선거법 조항은 여·야 합의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었고, 헌법재판소에서도 合憲(합헌) 결정을 내린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선연대는 불복종 운동을 벌인 것입니다. 법치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총선연대 등 우리나라의 진보 집단은 「진보의 탈을 쓴 人治主義者」들입니다. 실정법을 수호하여야 함에도 선거법 불복종 운동을 선동한 金大中 대통령의 행태는 「人治」의 전형이었습니다』
 
  徐변호사는 對北정책에 대해서도 주저하지 않고 법치주의의 잣대를 들이댄다.
 
  『법치주의에 의하면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서 남북대화와 관련된 모든 정보가 공개되고, 對北정책이 논의되어야 합니다. 몇몇 극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비밀리에 추진되는 對北관계는 법치주의에 反하는 것입니다』
 
  ―남북관계의 특성상 비밀을 유지해야 하는 부분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 경우 對外的으로 공표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국회 관련 상임위원회에서 의원들에게는 정보를 공개하면 될 것입니다』
 
  徐변호사는 남북대화 과정에서 요구되는 상호주의 원칙도 법적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남북한 관계도 결국은 남북한의 「합의」나 「협정」에 의해 규율되게 됩니다. 일종의 법적 계약인 것입니다. 계약은 서로가 의무를 부담하는 것이지, 어느 한쪽에만 의무를 지우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상호주의 원칙이 도출되는 것입니다』
 
 
  未전향 장기수 北送은 법치주의 훼손
 
 
  ―이른바 진보 진영에 속하는 언론이나 사람들 가운데는 未전향 장기수 北送과 북한 억류 국군포로 및 납북자 송환은 상호주의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상호주의 원칙을 엄격히 적용하면 北派공작원과 未전향 장기수, 국군포로와 반공포로, 拉北者와 拉南者들을 상호 교환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형식논리로 보면 그럴 듯해도 현실을 너무 모르는 주장입니다. 예컨대 북한체제에 대한 반대자들을 극형으로 다스리는 북한의 형법 아래서 未전향 北派공작원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을까요』
 
  ―北送된 未전향 장기수 가운데는 60여 명의 軍警(군경)을 살해한 빨치산, 일본인 납치범 신광수 등 이른바 확신범, 양심수로 볼 수 없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런 자들을 일률적으로 양심수로 치켜세우는 진보 단체나 언론, 그리고 그들의 송환을 강행한 정부의 행태가 법치주의에 대한 危害(위해)가 되지 않겠습니까?
 
  『동감입니다. 양심수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사상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군경을 살해한 빨치산이나 일본인 납치범 신광수는 양심수가 아니라 테러범입니다』
 
  徐변호사는 대한민국의 헌법과 질서를 문란케 한 未전향 장기수들이 북송될 때 「애국투사 만세」를 외친 진보단체들에 대해 검찰이 국가보안법을 적용해 수사하지 않은 것은 우리 정부가 金正日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국가보안법은 남북한간에 신뢰구축이 이루어졌다고 볼 만한 근본적인 변화와 反혁명 관련 범죄들을 규정한 북한 형법의 개정과 연계되어야 합니다』
 
  ―4·3 제주 폭동, 노근리 사건, 輔導(보도)연맹원들의 집단처형 등을 문제 삼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법치주의의 관점에서 어떻게 소화시켜야 하겠습니까?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것은 역사의 진실을 밝힌다는 점에서 필요합니다. 다만 그런 사건들을 단편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분단 상황이나 북한의 남침에 의한 戰時(전시) 상황 아래서 벌어진 일이라는 점이 충분히 고려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사건들의 진상규명이 누란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국군과 UN군의 희생을 폄하하고, 국군과 UN군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방향으로 작용해서는 안 됩니다. 아울러 불법 남침을 감행한 북한에 대한 책임도 함께 물어야 할 것입니다』
 
 
  통일문제 국민투표 회부 발상은 위험
 
 
  徐변호사는 제5공화국 시절 대구 지역의 대표적인 인권변호사였고, 1987년 6월 사태 당시 대구 지역 변호사들의 시국선언을 주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과거의 인권변호사가 보는 1987년 이후의 상황은 그다지 만족스러운 것이 못 됐다.
 
  徐변호사는 『우리는 민주화 과정에서 너무 값비싼 대가를 치렀다』면서 각종 선거에 비용이 너무 많이 드는 「高비용 정치」, 민주화·개혁 신드롬에 빠져 양산해 낸 非현실적인 입법들, 시민단체의 官邊(관변)단체화 등을 지적했다.
 
  ― 현재 우리나라의 자유민주주의, 법치주의의 실현 정도는 어느 정도로 보십니까?
 
  『자유민주주의는 서로 존중하며 대화와 타협으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相對主義(상대주의)를 기조로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정치는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결에 의한 完勝主義(완승주의)를 고집하고 있습니다.
 
  金大中 대통령은 오랫동안 민주화 운동에 헌신했으면서도 여·야 관계에 있어서는 상대방에 대해서만 법과 원칙을 고집하고, 자신은 법과 원칙으로부터 해방되는 기형적인 법치주의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徐변호사는 우리 사회에 아직껏 자유민주주의가 정착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를 비판 기능을 담당해야 할 지식인은 권력주변을 기웃거리고, 시민단체들은 정권이나 기업과 유착하여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데서도 찾았다.
 
  『현 정권에 대해 비판을 하면 수구반동세력으로 몰립니다만, 부정과 불의에 눈을 감는 집단이야말로 수구반동세력 아니겠습니까』
 
  徐변호사는 마지막으로 金大中 대통령이 지난 10월9일 領袖(영수)회담에서 한나라당 李會昌(이회창) 총재에게 『북한이 사실상 연합제에 접근하고 있다』며 『어쩌면 국민투표를 거쳐야 할 상황도 생길 것』이라고 말한 데 대해 우려를 표시했다.
 
  『일본 척식대학 重村智計 교수는 「세계경제평론」 9월호에서 金大中 대통령이 남북 頂上회담 성사와 노벨평화상 수상을 바탕으로 해서 남북통일을 이유로 헌법을 개정하면서 대통령 重任(중임) 금지 규정을 폐지, 재선을 노릴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은 바 있습니다.
 
  이런 관측이 杞憂(기우)에 그치기를 바랍니다. 만일 金대통령이 국회를 배제하고 직접민주주의라는 美名 아래 통일문제를 국민투표에 부쳐 헌법을 개정하거나 장기 집권을 꾀한다면 이것은 법치주의에 대한 도전으로 국민들의 강력한 저항을 받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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